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68
268화. 왕좌를 위한 준비 (3)
1월 1일 그날이 밝았다.
백우진이 21살이 되는 날이자, 후계자가 되는 바로 그날이었다.
후우욱.
밤새 연공을 하던 백우진이 오러를 갈무리하고 눈을 떴다.
-이제야 무인의 느낌이 좀 나는군.
흑암은 백우진의 새까만 눈동자에서 타오르는 정광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는 애송이라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제대로 된 무인의 모습이었다.
“이상해.”
-뭐가 말이냐?
“그토록 기다리던 날인데 가슴이 뛰지 않아. 평범하게 지나가는 날 같아.”
-그렇게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게 최고의 상태다.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뜻이니까.
흑암은 차분한 목소리로 백우진을 격려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기 때문에 이번 일만큼은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난 아직도 조금 무리라 생각한다.
“뭘?”
-1년의 기약. 네 아버지는 적위진보다 반수 강해. 3년, 아니 2년이라면 네가 네 아버지를 꺾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1년으로는 알 수 없다.
“길게 잡으면 나야 좋지. 하지만 아버지는 그 시간 동안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야.”
백천화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결투를 기약한 시간이 1년을 넘어간다면 어떤 핑계나 이유를 대서라도 약조를 지우거나, 자신을 죽이려 들 사람이다.
솔직히 1년이라 말해도 분명 자신을 죽이려 들 것이었다.
“1년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이야. 수를 쓰기에도, 약조 자체를 무시하기도 힘들지. 사람들의 관심이 꺼지지 않을 테니.”
2년이라는 시간이라면 여러 수를 써서 약조를 무효로 할 수 있지만, 1년은 아니다.
모두의 기억 속에 박혀 있기에 아버지가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일을 벌이기에는 힘들다.
-으음, 그래도 승산이….
흑암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 다셨다. 단순히 능력치가 강해지고 오러의 양이 많아지는 것으로는 백천화를 이기기 힘들다.
무리와 무예 자체의 수준을 올려야 하기에 1년은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항상 완벽한 승산이 있는 상태에서 싸울 수는 없잖아. 그리고 아직 1년 남았어. 누가 들으면 오늘 싸우는 줄 알겠네.”
오늘은 싸우는 날이 아니라, 선전포고를 하는 날이다. 아버지에게 당신의 왕좌가 영원하지 않다고 말하는 날이다.
-하긴 안 되면 그 정신 나간 시스템이 운빨로 어떻게든 해 주겠지.
“뭐, 그럴 수도 있고. 일단은 좋게 생각하자고.”
백우진이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전투복이 아니라, 신검의 문양이 그러진 화려한 백색 예복이었다.
그 위로 흑전호포를 걸쳤다. 백과 흑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예복 하나만 걸친 것보다 특색 있는 존재감이 드러났다.
철컥.
마지막으로 허리춤에 암인검을 착용하고 방을 나섰다.
“도련님을 뵙습니다!”
무영객과 의검대는 백위전 앞에서 백우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흑전호포처럼 검은 코트를 두른 채로 고개를 숙였다.
“준비는 됐겠지?”
“예!”
“가자.”
백우진은 의검대의 힘찬 대답을 들으며 대연무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앞서가는 그의 등 뒤로 문주영과 의검대가 검은 코트를 휘날리며 따라붙었다.
**
“허, 이런 날이 다 오네.”
행검부 검사인 하철무는 후계자 취임식 준비를 마치고 연무장 구석에 앉아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게 말이다. 호중 도련님한테 죽냐 사냐 했던 우진 도련님이 후계자가 되다니….”
옆자리 동료인 박명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믹스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예전에 기억나냐? 우리 여기서 우진 도련님은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이야기한 거?”
“기억나지. 말단이라 커피도 눈치 보며 마실 때였잖아.”
두 사람은 옛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힘도 없고, 세력도 없으며, 나이마저 가장 어렸던 백우진이 모두를 이기고 후계자가 되었다.
그것도 그 누구도 반발할 수 없는 위대한 실적을 이뤄 내며 말이다. 다시 생각해도 소설 같은 일이었다.
“거의 다 끝났네.”
하철무는 연무장 바닥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다 마신 커피잔을 구겼다.
행사 시작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기에 검사들이 하나둘씩 올 시간이었다.
“저기 오네.”
신검백가의 돌격부대 척검대와 척검대주 김형운이 연무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도 다른 무력 단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첫째 도련님이다!”
박명진이 우측을 가리켰다. 서늘한 인상의 백연휘가 형형한 기운을 가진 현검대 검사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저분까지 오셨군.”
“너도 알잖아. 첫째 도련님이 막내 도련님을 지지한 거. 오는 게 당연하지.”
“그 말 듣고 다들 뒤로 넘어갔잖아.”
백연휘 그리고 백은경이 백우진을 지지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행검부, 아니 백가 전체가 뒤집혔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백우진이 단순히 무력만 가진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은경 아가씨도 오셨어.”
현검대 뒤로 백은경과 얼마 남지 않은 멸검대가 연무장으로 다가왔다. 소수임에도 그들의 기세는 다른 단체에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다른 직계와 검대, 경원대와 행검부, 제검대, 백연단까지 들어서자, 연무장은 검사들로 꽉 차올랐다.
“오, 온다!”
무인들의 숫자를 헤아리던 하철무가 오른쪽을 보며 입을 벌렸다. 오늘의 주인공이 들어오고 있었다.
꿀꺽.
검은 코트를 휘날리며 다가오는 백우진과 의검대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이 삼켜졌다.
“달라….”
지금 연무장에 있는 검사들도 어딜 가든 강자 소리를 듣는 무인들이었지만, 백우진은 그들과 달랐다.
그저 걸어오는 것만으로 숨을 죄는 압도적인 기파를 펼쳐 낸다. 이 공간 전체가 저 남자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느낌이었다.
“저게 진짜 백우진인가….”
**
백우진은 독보적인 기파를 펼치며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무력 단체들이 새의 날개처럼 양옆으로 줄을 지어 서 있었고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저곳이 바로 자신의 자리였다.
중앙에 자리를 잡자, 양옆에 선 백연휘와 백은경이 눈짓을 보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시선이 모이는군.
‘당연하겠지.’
주변의 시선이 밀물처럼 들어온다. 그 시선 속에는 동경, 열망 같은 감정도 있었고, 질시와 질투 그리고 무시도 섞여 있었다.
‘그래도 예전과는 달라.’
이전에는 좋지 않은 감정 쪽이 압도적이었다면 지금은 좋은 감정 쪽이 더 많았다.
그간의 노력이, 그간의 성장이 효과가 있다는 뜻이었기에 뜨거운 고양감이 치솟았다.
“강철민입니다. 모두 오셨으니, 지금부터 행사 식순을 설명하겠습니다.”
행검부의 수장인 강철민이 단상 위에 서서 오늘 취임식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백우진은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에 적당히 흘려들으며 정말 오늘 해야 할 일을 되뇌었다.
“이제 곧 손님들이 오실 겁니다. 모두 위엄 있는 자세로 신검백가의 위대함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강철민이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잠시 뒤 입장하는 손님들이 양옆에 세워 둔 고급 좌석에 앉기 시작했다.
얼굴만 봐도 이름이 툭 튀어나올 협회의 고위직, 대기업 임원, 정부 인사, 대형 길드의 마스터와 고등급 능력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좌측에 놓아 둔 손님들의 자리가 어느 정도 찼을 때, 모두가 입을 떡 벌릴 법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초대형 생산 길드 아케인의 마스터 서공명이 딸 서인아와 대장인 김장훈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들은 백가의 좌석이 아닌, 우측에 있는 백우진의 손님 석에 앉았다.
블랙마켓 한국 본부의 삼분지 일을 장악했다는 부본부장 유진아도 직속 비서들과 나타나 백우진의 손님 석으로 향했다.
전방의 총사령관이자 창왕이라 불리는 황병훈 역시 그의 딸과 함께 우측의 손님 석에 자리를 잡았다.
최근 가장 이름을 떨치는 소환사 길드 유니타스와 윤우민, 정근호도 백우진의 손님 석에 앉았다.
“우와….”
“뭐, 뭐냐?”
“어우, 저쪽이 더 화려한데?”
백가의 무인들은 우측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신검백가 손님들의 면면도 화려했지만, 백우진의 인맥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숫자가 많지는 않아도 한 명 한 명이 비교하기 힘든 유명세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어? 저, 적가?”
적가. 그 이름은 딱 하나, 패력적가뿐이다. 그 적가라는 소리에 사람들을 고개가 모두 뒤로 돌아갔다.
“적경훈이다!”
“적연화도 있어!”
“둘은 도련님과 친분이 있잖아. 올 만하지.”
적연화와 적경훈은 백우진과 함께 싸운 적이 있었기에 그 인연으로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적경훈의 뒤에 선 남자를 보고 순간 숨을 멈췄다.
“저, 적위진!”
“권황이라고?”
“왜, 왜 권황이!”
“적위진….”
권황이라는 칭호, 그리고 적위진 세 글자의 이름에 사람들이 눈을 부릅떴다.
권황 적위진. 백천화와 맞먹는 무력과 세력을 가진 절대자가 적경훈의 뒤에 있었다.
“미, 미친!”
“왜 저 남자가 여기에 온 거야!.”
“설마 전쟁이라도….”
모두가 넋이 나간 얼굴로 다가오는 적위진을 보았다.
“으음….”
그가 어떤 의도로 왔는지 알 수 없었기에 백가의 무인들은 긴장을 풀지 않고 검병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적위진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우측, 백우진의 손님 석으로 걸어갔다.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앉아 백우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허억!”
“이, 이건 또 뭐야!”
“적위진이 마, 막내 도련님의 손님이라고?”
그 경악스러운 상황에 백가의 검사들과 손님들이 몸을 떨었다.
“와….”
“역시 도련님이라니까!”
“미쳤다. 미쳤어.”
검사들은 덤덤하게 선 백우진을 보고 선망의 눈길을 보냈다.
“으음… 헉!”
강철민이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단상으로 내려왔다.
저벅.
이곳에 있는 모두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걸음 소리였다.
쿠구구구.
그 절대적인 존재감과 세상을 아우를 기파에 모두가 단상에서 눈을 돌렸다.
“다 모인 건가.”
백색의 장포를 두른 백천화가 흥미로운 눈으로 연무장과 손님 석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천천히 흐르던 그의 시선은 우측의 적위진 앞에서 멈췄다.
두 사람은 각자 미소를 지은 채로 서로의 눈을 쏘아보았다.
“흠….”
불꽃이라도 튀길 것 같았던 눈빛들은 적위진이 먼저 고개를 돌리며 사그라졌다.
백천화는 조금 더 적위진을 바라보다가 백우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백우진은 차분한 얼굴로 백천화의 시선을 마주했다.
“…시작하라.”
백천화는 눈매를 좁히고서 단상의 중심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아, 예!”
강철민이 황급하게 대답하고서 행사의 시작을 알려는 징을 치라 지시했다.
대애애애앵!
거대한 징이 울리며 각자의 욕망이 담긴 신검백가의 후계자 취임식이 시작되었다.
**
지루한 행사가 지나가고 드디어 마지막 식순이자, 가장 중요한 취임 행사가 시작되었다.
백우진은 뜨거운 눈빛으로 백천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의지의 표명이 아닌, 욕심이 담겨 있는 거짓된 눈빛이었다.
“신검백가의 가주께서 직접 후계자에게 그 위를 수여하겠습니다! 백우진 도련님은 단상 위로 올라가 주십시오!”
강철민의 외침에 모두가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후우….”
백우진은 숨을 고르며 발을 뗐다. 단상의 계단 위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긴장하지 마라.
‘그래.’
계단을 보며 백천화를 생각했다. 그가 지금까지 했던 일들, 그가 지금까지 뱉은 말들, 그가 지금까지 펼친 악독함을 가슴에 새겼다.
턱.
백우진은 단상에 끝에 섰다. 백천화가 신검이 그려진 왕좌에서 일어나서 성큼 다가왔다.
“적위진은 왜 부른 것이냐.”
백천화는 기막을 펼쳐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만든 뒤 입을 뗐다.
“백가를 위해서였습니다.”
“백가를 위해서?”
“그렇습니다. 전 적가에 몇 가지 빚을 만들어 놨습니다. 그 부탁으로 오늘의 행사에 참여해 달라 말했습니다.”
“왜지?”
“그 빚은 어차피 큰일에는 쓸 수가 없습니다. 대신 그를 이곳에 불러 적가보다 백가가 더 높이 있음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백우진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백천화를 보았다.
“백가의 후계자 취임식에 적가의 가주가 그 손님으로 온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적가보다 백가를 더 높이 칠 겁니다.”
“음….”
백천화는 백우진을 눈을 보며 진의를 파악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조금의 떨림도 없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올지 확신하지 못했기에 말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백천화는 슬쩍 고개를 돌려 적위진을 보았다. 여유롭게 이곳을 보고 있는 그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우진의 말이 일리가 있기도 했지만, 녀석들이 무슨 수를 써도 의미가 없었기에 넘어가 주기로 했다.
“일단은 그리 받아들여 주마. 앞으로는 보고를 철저히 하도록.”
“알겠습니다.”
백천화는 기막을 풀고서 박철민을 보았다. 박철민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손에 든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백천화 가주께서 선택하신 후계자 백우진은 20살이라는 나이에 9등급 능력자가 되는 남다른 재능을 보유하고, 그 힘을 세상을 위해 써 왔습니다. 균열에서 나온 미노타우르스를 시작으로….”
박철민은 백우진의 활약이 담긴 서류를 한참이나 읽어 내려갔다.
“…최근에는 루마니아에서 마족을 죽이고, 세뇌당한 사람들마저 구해 냈습니다. 그 실적을 높게 쳐 신검백가의 가주께서 후계자의 위를 내리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박철민은 서류를 덮고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간 수고했다. 신검백가의 후계자로서 앞으로도 한국을, 아니 이 세상을 위해 그 능력을 발휘하기 바라마.”
백천화의 목소리는 오러가 실리지 않았음에도 연무장과 손님 석에 있는 모두의 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 세상? 끝까지 지랄하네. 어휴!
“감사합니다.”
백우진은 흑암의 욕을 흘려들으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부터 네가 이 신검백가의 후계자다.”
백천화는 그 말을 하며 백우진의 가슴에 신검의 무늬가 박힌 배지를 달아 주었다.
백우진은 배지가 왼쪽 가슴에 달릴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백천화! 백천화!”
“백우진! 백우진!”
“신검백가 만세!”
백천화가 배지를 달아 주고 일어서자, 연무장에 선 검사들이 검을 뽑아 올리며 함성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만.”
백천화는 손을 들어 올려 박수와 함성을 잠재웠다.
“축하한다. 그토록 바라던 것을 이제야 얻었구나.”
“감사합니다.”
백우진은 무릎을 꿇은 채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예로부터 백가의 가주는 그 후계자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게 되어 있다. 소원이 있다면 말해 보아라.”
“그 소원으로 가주만 들어갈 수 있는 천검서고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까?”
백우진은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은 채로 천검서고의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이다. 그 어떠한 소원이라도 들어주마. 다만 내가 내리는 임무를 수행했을 때에 한해서다. 물론 네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임무지.”
백천화는 서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백우진의 반응을 기대하듯 눈을 빛냈다.
-저 얌생이 자식! 임무 이야기는 없었잖아!
‘저럴 거라 생각했어. 예전보다 더 추잡해졌으니까.’
흑암과 달리 백우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노림수가 있듯이 백천화에게도 노림수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럼 소원을 말하겠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백우진의 목소리에 백천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했던 상황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년 뒤.”
백우진의 진중한 목소리가 연무장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 땅, 이 자리에서.”
그가 거대한 의지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백천화가 눈을 부릅떴다.
“아버지와 제가 신검백가의 가주 자리를 걸고 결투를 하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그의 눈동자에서 피어오른 장대한 흑광이 백천화를 꿰뚫었다.
“큭!”
강렬한 의지가 담긴 기광에 백천화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섰다.
“…이, 이게 무슨 짓거리냐.”
낮게 깔리는 목소리와 함께 백천화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백우진을 당장이라도 때려죽일 것처럼 지독한 살기를 피워 냈다.
“여태까지 하지 못했고.”
백우진이 백천화를 향해 한 걸음을 걸었다. 이 일보는 아버지의 욕심에 죽어간 검사들의 일보였고.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두 번째 걸음을 걸었다. 이 일보는 전생에서 버림을 받아 죽어 간 자신의 일보였으며.
“늦게나마 행하려 합니다.”
세 번째 걸음을 걸었다. 이 일보는 신검백가의 미래를 위한 일보였다.
쿠구구구!
백천화와 눈을 마주쳤다. 그가 펼쳐 내는 흉흉한 살기와 무시무시한 기파가 몸을 짓눌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스스로 쌓아 올린 업이 위대한 격이 되어 뒤를 받쳐 주었다.
화아아아!
백우진의 뒤로 어둠의 신이 강림한 듯한 칠흑의 서광이 내려섰다.
쿠구구구!
서로의 의지와 살기가 맞부딪치는 그 중심에서 백우진이 마지막 걸음을 걸었다.
“일 년 뒤 당신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