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72
272화. 둥지 (4)
설빙을 안고 일어서는 여자의 외모는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긴 머리카락은 바다를 담은 듯 푸르렀고, 눈동자는 새벽처럼 하얗게 반짝였으며, 옅은 눈썹과 눈매는 부드럽게 가라앉아 있었다.
남녀노소 그 누가 보더라도 아름답다고 할 수밖에 없는 외모였지만, 백우진이 주목한 것은 그녀의 얼굴이 아니었다.
‘이 여자….’
자연을 그대로 담은 듯한 거대함과 티 없는 순수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처음 겪어 보는 기운이 아니었다. 이미 두 번이나 보았던 존재감이다.
‘바람, 불 이제는 물인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태어나는 절대적인 존재. 물의 정령왕이 분명했다.
“날 알아본 모양이네.”
“제 생각이 맞습니까?”
“네가 바보가 아니라면 맞겠지? 물의 정령왕 에르윈이라고 해.”
에르윈이 웃었다. 바다가 웃는 듯 그녀의 뒤로 보이는 바다가 파란빛으로 반짝였다.
“정령왕이 이곳엔 어떻게….”
“이 세계엔 몇 번이고 오고 싶었는데, 내 계약자나, 내 힘이 닿은 물건이 없어서 오질 못했어.”
“그럼 바다에 있는 드래곤 때문에 나올 수 있던 겁니까?”
“맞아.”
에르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뒤로 보이는 바닷속을 가리켰다.
“저 녀석 지금 이곳과 마나에 적응하느라 바쁘거든. 심심해서 돌아다니다가 이 아이의 기운이 느껴져서 여기 왔는데 네가 있더라고.”
에리윈이 품에 안은 설빙을 쓰다듬었다. 설빙은 기분이 좋은 듯 강아지처럼 갸르릉거렸다.
“사실 네가 궁금해서 이프리트에게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 대답을 안 해 주더라고. 왕이라는 놈이 뒤지기 전인데도 찌질하다니까.”
에르윈은 툴툴거리며 이프리트의 욕을 내뱉었다.
‘무슨 동네 누나 같네.’
-에르윈은 예전부터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던 녀석이지. 잘 대해 준다면 드래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다.
‘확실히.’
에르윈의 눈동자에 비치는 건 분명한 호감이었다. 잘만하면 드래곤이 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저 바다 안에 있는 드래곤은 누구죠?”
“케레스 이스드리온. 블루 일족의 웜급으로 지금 나이는 3,300살 정도 됐나? 나이에 비해 꽤 강하고 학살을 좋아해서 마룡이라고 불리는 녀석이지. 저 녀석 때문에 멸망한 항구 도시가 5개가 넘어.”
에르윈은 호박씨를 까듯이 묻지도 않은 부분까지 알려 주었다
“그럼 저 케레스는 왜 아니, 어떻게 이곳에 온 겁니까?”
“그건….”
에르윈의 말하려던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장난기가 흘렀다.
“맨입으로는 말할 수 없지.”
“예? 그럼 뭘….”
“이 아이가 이쪽 세계 이야기를 많이 해 줬거든? 그 초록색에 검은 알갱이가 박힌 음식 있잖아.”
“초록색에 검정 알갱이? 서, 설마 민트 초코요?”
“그래. 그거! 그것 좀 가져다줘. 보기는 많이 봤는데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거든.”
“어….”
백우진의 눈동자가 빙그르 돌아갔다. 민트 초코를 가져다주는 게 좋은 선택 같지는 않았다.
분명 실망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것과는 다른 준비도 필요했다.
-딱 보면 입맛 떨어지는 색이구만. 그걸 또 먹겠다고? 하여튼 정령왕들은 철이 안 들어.
‘됐고. 인벤토리에 있지?’
백우진이 슬쩍 흑암을 보았다. 흑암의 인벤토리에 넣는 물건은 그 상태대로 보관이 되기 때문에 설빙용 아이스크림도 몇 개 넣어 두었다.
-그래. 2통 있다.
‘다른 건?’
-네놈이 먹겠다고 한참 전에 넣어든 초코 아이스크림 정도?
‘그것도 꺼내 줘.’
-쯧.
흑암은 혀를 차면서도 백우진에게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과 초코 아이스크림을 꺼내 주었다.
백우진은 받은 민트 초코를 에르윈에게 넘겨주었다.
“이거야?”
“예.”
“색이 예뻐서 먹어 보고 싶었어. 우리 세계엔 없거든.”
에르윈은 설빙이를 내려놓고 민트 초코를 스푼으로 푹 떠서 입에 넣었다.
“!”
그리고 바로 뱉었다.
“이거 뭐야! 더럽게 맛없어! 너 이런 거 먹으면 탈 나!”
“째액!”
설빙은 에르윈에게 반항을 하듯 부리를 세웠다. 날개를 쭉 뻗어 민트 초코 통을 뺏어서 뒤로 물러났다.
“하여튼! 얘는 불량식품 같은 걸 먹고….”
“그럼 이거 한번 드셔 보겠습니까?”
“이건 알겠네. 초콜릿이지?”
에르윈은 초콜릿은 알고 있었는지 초코아이스크림을 받아서 입 안에 넣었다.
“으음, 이건 괜찮네!”
적당하다는 듯한 말과 달리 그녀의 표정은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초코 아이스크림 한 통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저 그러면….”
“아, 대답해 줘야지.”
에르윈이 손가락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니, 꽤 만족한 것 같았다.
“케레스가 레어에 있을 때 인간이 하나 찾아왔어. 신이라도 된 것처럼 백색의 후광을 두른 놈이었지.”
-그놈이다! 사해의 왕을 보낸 젊은 인간 놈!
‘그래.’
같은 놈인지는 몰라도 그와 관계가 있음은 분명했다.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하얀 빛 속에서 케레스와 인간이 정신력 대결을 벌였고, 거기서 진 케레스는 그 인간에게 세뇌됐어.”
“정신력 대결이요?”
“그래. 상대를 죽이거나, 세뇌하는 정신력 대결이었던 것 같았어. 케레스는 그 인간이 열어 준 통로를 따라 이곳에 오게 됐지.”
-드래곤이 정신력으로 졌다니, 그놈 대체 정체가 뭐야!
“그럼 그 인간이 케레스에게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아십니까?”
“아니, 엿들을 수가 없었어. 보통 인간이 아니더라고.”
에르윈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 다셨다.
“그렇군요.”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대답은 듣지 못했어도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사해의 왕의 기억에서 보았던 신관 놈이 수를 쓴 게 분명했다.
다만 철벽의 정신을 가진 드래곤까지 조종하다니,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드래곤의 정신력은 굉장히 강하지 않습니까?”
“강대하지. 최고 등급의 정신 공격도 통하지 않으니까. 나도 드래곤이 세뇌당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 봤어. 인간인지 모를 그놈은 정상이 아니야.”
처음으로 에르윈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가라앉은 눈매 사이로 무서운 안광이 번쩍였다.
“초콜릿값으로 충고 하나를 하자면, 케레스는 원래 여러 종족들을 학살하던 마룡이야. 그 인간에게 세뇌된 이후 더 흉폭해졌으니, 어떻게든 빨리 처리하는 게 좋을 거야.”
“그 마룡과 계약하신 거 아닙니까?”
“정령왕은 드래곤이 성룡이 되었을 때 자동으로 계약하게 돼. 인간으로 따지자면 태중혼약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부터 저 녀석 마음에 안 들었어.”
에르윈은 바다를 흘겨보며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에르윈의 말이 맞다. 해츨링이 성룡이 되는 순간 정령왕과 자동으로 계약을 하게 되지.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가지 더 할 말이 있어. 오늘 찾아온 이유기도 하고.”
“네?”
“이 아이를 아껴 줘서 고마워. 외부에서 태어났는데도 이렇게 잘 큰 건 네 덕분이야.”
에르윈이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 통을 쪼고 있는 설빙이를 보며 보드라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너와 저 아이에게 시험을 내리려고.”
“시험이라면….”
-왕의 시험이로군.
“왕의 그릇이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는지를 시험해야지.”
“짹!”
설빙이 아이스크림 통을 박차고 에르윈의 시야 위로 뛰어올랐다.
“케레스를 칠 거지?”
“예.”
백우진은 드래곤과 계약을 한 정령왕의 앞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원래도 흉폭한 놈이니, 마나 적응이 끝나는 순간 인간들을 공격하겠지.”
“그래서 충고대로 먼저 치려 합니다.”
“그때 나도 싸우게 될 거야. 싫어하는 것과 계약은 다르니까.”
“그럼 시험은….”
“나를 소환한 케레스과 싸워서 이기는 거야. 간단하지?”
에르윈이 강대한 물의 기운을 펼쳐 냈다.
동네 누나처럼 친근했던 그녀의 기운이 순간 신에 근접할 정도로 치솟았다.
쿠구구구!
바다가 분노한 듯 용트림을 일며 태풍을 맞은 듯 요동쳤다.
“이곳에서 내 전력을 보여 주기는 힘들겠지만, 봐주지는 않을 거야.”
“째액!”
설빙이 백우진의 앞에 섰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 날개를 길게 펼쳤다.
“이 아이가 지지 않겠다고 말하니, 저도 물러날 수는 없겠네요.”
“자신감 좋아! 그럼 그때 보자고.”
에르윈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몸이 투명한 물로 변해서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준비 단단히 해야겠는데? 저렇게 친근하게 보여도 봐줄 놈은 아니다.
“모든 사태에 대비해야지.”
-드래곤이 꼬리를 내리치고, 발톱으로 긁어도 물 위에서 버틸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네가 현재 가진 재능이 내 생각보다 높으니, 삼 일간 훈련을 더 빡시게 하자.
백우진은 케레스가 꼬리를 내리쳐 바다를 가르던 모습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정말 가능한 거 맞아?”
**
3일이 지나고 드래곤을 잡기 위해 출항을 하는 날이 밝았다.
백우진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아케인의 전투선에 올라탄 상태였고, 다른 길드들도 각자의 배에 올라타 출항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제가 준비할 게 있나요. 그냥 몸으로 때워야지.”
서공명이 다가오면서 건넨 말에 백우진이 암인검의 검집을 툭 건드렸다.
“그 자신감이 부럽군요.”
“자신감이라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니까요.”
백우진이 피식 웃었다. 이제 와서 해상 전투의 전략을 배우거나, 장비를 익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지금은 자신의 검을 믿는 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갑니다. 만약 검사님이 해상전의 도구를 익히든가, 전략을 배우려고 하셨다면 실망했을 겁니다.”
서공명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동안의 전투와 운전, 준비는 전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검사님은 드래곤과의 전투에서만 움직여 주십시오.”
“우리는 딱히 나서지 않아도 될 겁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쟤들 보이시죠? 잘난 척하고 싶어서 안달 난 놈들이라, 가만히 있으면 저희보다 앞서 가면서 몬스터들을 다 잡아 줄 겁니다.”
백우진이 해신과 타이푼, 괴령 길드의 배가 모여 있는 좌측을 가리켰다.
“저들은 단순히 드래곤을 잡으려는 게 아니에요. 절 제치고 드래곤과 많은 몬스터를 잡았다는 명예까지 원하고 있어요. 조금만 자극해 주면 우리 앞에 있는 몬스터들까지 잡아 줄 게 분명해요.”
“어떻게 자극을 하신다는 거죠?”
“쟤들이 해양 몬스터들을 가볍게 잡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거나,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어 주면 기분이 좋아져서 알아서 쭉쭉 나갈 겁니다. 저희는 그 뒤를 따라가며 힘을 아끼면 됩니다.”
백우진이 피식 웃었다. 저런 놈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뻔하게 보였다. 놈들을 놀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허어….”
서공명이 안경을 살짝 올려 썼다. 안경 너머로 비치는 그의 눈동자엔 놀라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볼 때마다 새롭군.’
20살이라는 나이에 명예마저 이용하는 백우진을 보자 소름이 돋아 올랐다.
많은 사람들을 봐 오며 그들의 미래를 예측해 왔지만, 백우진만큼은 어떻게 변할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이해를 벗어난 존재였다.
-아, 그러네! 저것들은 널 이기고 싶어서 버둥거리는 놈들이니, 진짜 알아서 움직여 주겠는데?
‘그렇다니까. 조금만 놀라는 척을 해 주면 알아서 다 싸워 줄걸?’
해신, 타이푼, 괴령 길드들은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어떻게든 더 나은 활약을 보이려 할 테니 그걸 이용하면서 따라가면 그만이다.
‘이래서 명성을 쌓는 거지. 따지고 보면 저들은 앞에서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드래곤 앞에서는 어그로를 끌어 주는 내 부하나 다를 바가 없어.’
-허….
‘거기다 쟤네가 먹은 몬스터들의 아이템이나 마석도 결국엔 내 것이 되니까. 고마울 뿐이지.’
-와, 이 지독한 양아치한테 협제라는 칭호 붙인 새끼 누구냐? 찾아가서 조져야겠다.
백우진에게 어울리는 칭호는 협제나 협검이 아니라, 양아치였다. 저놈에게 저런 멋진 칭호를 붙은 놈을 후려치고 싶었다.
“결계 설치가 모두 끝났습니다! 20분 뒤에 바로 출항할 테니, 준비를 끝마쳐 주십시오!”
백우진은 한성윤의 외침을 들으며 해신 길드의 카즈마가 있는 곳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