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카이저
“자세히 좀 말해 봐.”
[삼 일 밤낮으로 말씀드리고 싶어도 짐 덩어리를 업은 채로 쫓기는 중이라, 자세한 말씀을 드리기 어렵슴다!]“짐 덩어리를 업고 있다고?”
무영객의 목소리는 속사포처럼 빠르면서도 흔들리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다급한 상황인 것 같았다.
[제가 돕는다고 했던 그 암살자 놈 있지 않습니까? 그놈이 얻어터지고 기절해서 업고 도망치고 있습니다.]“너 화천 어디야.”
[다목리에서 봉오리 쪽으로 무작정 도망치는 중입니다. 여기가 숲이긴 한데 어딘지는 모르겠어요.]“그럼 북쪽으로만 달려. 내가 가겠다.”
[지, 직접 오시게요? 놀고 있는 문주영을 보내도….]“안 돼.”
백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무영객의 말이 정말이라면 혼자, 그것도 정체를 감추고 움직여야 했다.
“어쨌든 내가 갈 때까지 잡히지 말고 도망쳐.”
[아, 알겠습니다! 그럼 미친개처럼 북쪽으로만 뛰겠습니다.]“그래. 북쪽으로만 달려.”
백우진은 전화를 끄고, 문주영을 불렀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잠깐 나갔다 와야겠어. 무영객이 쫓기고 있다는군.”
“무영객이요? 그 미친놈이 또 뭘 훔쳤답니까?”
“훔친 건 아니고, 카이저를 추적하다가 역으로 쫓기고 있는 모양이야.”
“카, 카이저? 그 암살자들의 왕에게 왜….”
문주영이 눈을 부릅떴다. 무영객이 안 보여서 사고를 쳤겠거니 예상은 했는데, 카이저에게 쫓길 정도로 스케일이 클 줄은 몰랐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니, 다녀와서 설명해 줄게. 정체를 감추고 움직여야 할 것 같으니, 내가 가문에 남아 있는 척 좀 해 줘.”
“으음, 알겠습니다.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네 친구는 무사히 구해 올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 그놈은 친구가 아닙니다!”
“그런 것 치고는 얼굴에 걱정이 가득한데?”
“그게 아니라….”
백우진은 다 안다는 듯 문주영의 어깨를 툭 치고 휴게실로 들어갔다.
‘이것들 인벤토리에 넣고, 만변귀의 가면이랑 장검 하나 꺼내 줘.’
흑전호포와 전투복, 암인검을 벗어서 흑암에게 넘겨주었다.
-왜 정체를 감추려는 거냐? 그 카이저라는 놈 암살자라며. 그냥 다 죽여도 되는 악인들 아니야?
흑암은 인벤토리를 열어 주면서도 왜 뻘짓을 하냐는 듯 툴툴거렸다.
‘그곳에 카이저와 놈의 부하들만 있다면 네 말이 맞지.’
백우진은 만변귀의 가면과 아무런 무늬도 없는 장검을 받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거기에 그놈들 말고 누가 있는데?
‘그곳에 있어선 안 되는 놈들.’
만변귀의 가면을 사용하며 말을 이었다.
‘흑검대가 있다는군.’
-어엉? 흑검대가 거기 왜 있어?
‘어느 정도 예상은 가지만, 정확히 모르지. 일단 가 봐야 알 수 있을 거 같아.’
백우진은 잠룡혼을 사용해서 자신의 기척과 존재감, 오러를 모조리 감췄다.
바로 뒤쪽 담을 넘어 백가를 빠져나갔다. 차원문을 통해 화천의 북쪽 끝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녀석을 어떻게 찾으려고?
‘다 방법이 있으니 왔지.’
백우진이 씩 웃었다. 현재 자신이 서 있는 곳은 다목리와 봉오리의 사이에 있는 곳이었다.
‘무영객에게 북쪽으로 달리라고 했으니, 녀석은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올 거야. 즉, 이곳으로 다가오는 녀석의 기척을 찾아서 이동하면 된다는 말이지.’
무영객을 쫓을 필요 없이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오게 만들기 위해서 북쪽으로 달리라 한 것이었다.
이 방법으로 움직이는 것이 뒤에서 쫓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무영객을 만날 수 있다.
물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지만 흑암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우우웅!
백우진은 자신의 오러를 넓고 얇게 펼쳤다. 절대자에 이른 민감하고도 광대한 기감이 숲 전체를 뒤덮었다.
기감으로 숲 내부를 뒤진 지 10분이 됐을 무렵, 백우진이 눈을 떴다.
“찾았다!”
**
“제기랄! 이게 무슨 꼴이야.”
무영객은 욕설을 뱉으며 땅을 박찼다. 그의 등엔 파란 머리 여인이 업혀 있었기에 원래 보법이 가진 속도와 은밀함을 발휘하지 못했다.
타다닥!
뒤에서 들리는 나뭇가지가 밟히는 소리에 무영객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따라오고 있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아무리 이 짐 덩어리를 업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보법은 빠르다.
전력으로 달리고 있음에도 따라오는 것을 보면 괜히 카이저의 밑에 있는 암살자들이 아니었다.
“이, 이 멍청아. 그냥 나 버리고 튀라고….”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너희 사부가 꿈에 나올 거 같아서 그건 안 되겠다.”
업혀 있는 박채영이 중얼거리는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달렸다.
‘나도 변하긴 변했군.’
무영객이 피식 웃었다. 원래의 자신이라면 적들이 이 정도로 추적했을 때 박채영을 버렸을 것이다.
백우진과 함께 지내며 그의 협의에 감화되었는지 그녀를 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질 않았다.
뿌드드드.
무영객이 뒤를 한 번 돌아보고서 입술을 깨물었다. 소리가 가까워진 것을 보니, 거의 따라붙었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아직인가.’
사실 중간에 다른 곳으로 빠질 수 있었다. 방향을 바꿨다면 추적을 조금은 늦출 수 있었지만, 백우진의 말을 믿고 계속 북쪽으로만 향했다.
“으으, 나 버리라고. 도둑놈아!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좀… 튀어.”
박채영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중얼거렸다.
“닥치고, 기절이나 좀 해라!”
“부, 북쪽으로 가 봐야 잡힌다니까. 저긴 사로야.”
“아니, 여기가 생로야.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생로다.”
무영객은 백우진의 말을 신의 계시처럼 믿으며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치이잉!
큼지막한 바위를 넘었을 때 뒤에서 공기를 꿰뚫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검기!’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날카로운 검기가 쏘아지는 소리였다.
“젠장!”
무영객은 긴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놈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샤아악!
두 번째, 세 번째 검기들을 연속으로 날려 움직일 공간을 막았다.
“크윽!”
무영객은 검기들을 피하느라 속도가 한발 느려졌고, 결국 적의 접근을 허용했다.
“잡았다! 쥐새끼들!”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등 뒤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퍼어엉!
무영객이 다급하게 몸을 던졌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둘 다 죽게 생겼다.
“젠장!”
업은 박채영을 밀어 버리고, 자신도 땅을 굴렀다.
퍼어억!
대지에 스무 줄기가 넘는 검기가 휘몰아쳤다. 만약 몸을 던지지 않았다면 바로 걸레짝이 되었을 것이다.
“잘도 도망치는구나.”
다른 암살자들과 달리 검은 복면을 쓴 암살자가 다가왔다. 그의 검에선 시퍼런 검기가 일렁거렸다.
“파란 머리. 역시 청살이었군.”
암살자들의 조장으로 보이는 검은 복면인이 기절한 박채영을 보고 비틀어진 웃음을 지었다.
“이제 네 정체를 밝힐 차례인가?”
그는 뒤로 자빠진 무영객을 향해 검을 겨눴다.
스으윽.
검은 복면인이 검기를 두른 검으로 무영객의 다리를 꿰뚫으려 할 때 좌측에서 퍼런 빛이 번쩍였다.
차아앙!
복면인의 검이 튕겨 나감과 동시에 무영객의 앞으로 키가 큰 남성이 내려섰다.
“아!”
무영객의 창백한 얼굴이 환해졌다. 처음 보는 얼굴과 복장이지만, 자신을 구해 준 남자가 누구인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오셨어!’
백우진. 현시대 검사들의 정점에서 선 남자가 자신을 구하러 왔다.
고무줄처럼 당겨져 있던 죽음의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역시 여기가 생로잖아!’
일관된 믿음이 보상을 받는 순간이었다.
**
백우진은 차분하게 주변을 살폈다. 암살자 열둘. 그것도 전부 뛰어난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강자들이었다.
“네놈은 뭐냐.”
검은 복면인이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그가 조장이거나, 대장인 것 같았다.
“이 근처는 내가 수련하는 장소다. 내 영역에서 살인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영역? 미친놈이로군. 쳐라!”
검은 복면인이 지시를 내리자, 뒤에 있던 암살자들도 빛살처럼 달려들었다.
“아직 내 말이 안 끝났거든.”
백우진이 혀를 차며 장검을 휘둘렀다.
치이이잉!
평소 애용하는 기본 검술이 아니라 변과 쾌, 환의 묘리가 들어간 화려하고 복잡한 검술이었다.
촤아아악!
떨어지는 벚꽃처럼 허공을 수놓은 화려한 검기가 암살자 다섯을 한 번에 베어 냈다.
“이, 이놈!”
“한 번에 공격해!”
백우진은 경쾌한 보법을 밟으며 암살자들의 검기를 피해 냈다. 쏟아지는 검기의 외곽을 파고들어 놈들에게 접근했다.
촤아악!
다채로운 변화와 환상이 담긴 검술에 암살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끄윽….”
“커헉!”
백우진은 다섯 번의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검은 복면인을 제외한 모두의 숨통을 끊었다.
“젠장!”
검은 복면인은 백우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도망쳤다.
“어딜 가려고?”
백우진은 복면인의 등을 향해 쾌와 강의 검기를 쏘아 냈다.
캬아앙!
조장의 자리를 엿 바꿔서 얻은 것이 아닌지, 그는 제대로 된 검격을 쏟아 검기를 막아 냈다.
하지만 백우진은 이미 그의 머리 위에 위치해 있었다.
퍼어억!
장검으로 복면인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어 땅에 박아 버렸다.
“끄아아악!”
“넌 누구냐. 왜 저들을 죽이려 한 거지?”
백우진은 암살자의 복면을 벗겼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매부리코 중년인이었다.
“네, 네놈이야말로 누구냐! 이런 실력으로 왜….”
“말했잖아. 이곳에서 수련하는 무인이라고.”
백우진은 중년인의 어깨를 뚫은 검을 비틀었다.
“끄흐흐….”
하지만 암살자는 비명이 아니라, 비웃음을 지으며 검은 피를 토했다.
“검은 피?”
어깨가 뚫렸다고 검은 피를 뱉을 리 없다. 독단을 삼킨 것 같았다.
-독단이다! 지금의 너라면 놈의 몸에서 독을 빼낼 수 있다. 빨리 빼!
‘안 돼. 여기선 이놈이 죽도록 놔둬야 해.’
백우진은 흑암에게 한 말과는 달리 암살자를 살리려고 그의 몸을 두드리고 오러를 밀어 넣었다.
“내, 내게서 정보는 듣지 못할 거다. 전부 죽인 건 네 실수였어. 크흐….”
암살자는 백우진을 비웃으며 죽어 갔다.
“젠장!”
백우진은 얼굴을 찡그리며 거칠게 검을 뽑았다.
-너 대체 뭐 하냐? 지금의 네 경지라면 독을 빼서 살릴 수 있었다니까?
‘그게 아니라고.’
암살자의 시체 위에 복면을 버리며 땅을 거칠게 걷어찼다.
‘무영객의 말대로라면 흑검대와 카이저가 만났어. 아버지가 흑검대를 카이저에게 보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음? 그건….
‘날 죽이기 위해 카이저에게 의뢰를 넣었겠지. 그것 외엔 지금 흑검대를 움직일 리가 없어.’
-그러니까 정보를 빼내야지!
‘아니, 그러니까 죽도록 놔둬야 해.’
백우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카이저는 아버지에게 날 죽이라는 의뢰를 받았을 거야. 이 녀석들을 통해 그 의뢰 내용이나, 암살 계획이 빠져나간다면 계획을 수정하거나, 암살을 취소할 가능성이 있어.’
-음….
‘하지만 독단을 삼키고 죽었다면 정보가 빠져나가지 않았다는 생각에 계획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아. 일단 의뢰자의 정체가 파악됐다는 생각은 아예 못 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저들이 그 계획을 들어서 추적한 거 아니냐?
흑암은 무영객과 그가 간호하는 파란 머리 여자를 가리켰다.
‘아냐. 암살자들의 숫자를 볼 때 귀찮은 파리 정도로 여겼을 거야. 제대로 들은 게 없다고 생각할걸.’
카이저가 정말 저들을 죽일 거였으면 여기까지 도망치지도 못했을 거다.
‘거기다 이 근처는 실제로 은거기인들이 있는 곳이야. 이 만남은 우연으로도 가능하다는 말이지.’
-그래서 그 모습으로 변하고, 실력도 검기지경으로 낮춘 거였냐? 북쪽으로 오라고 한 거도 전부 다 계획이고?
‘맞아.’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영객에게 카이저와 흑검대가 만났고, 암살자들에게 쫓긴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지금의 계획을 세워 두었다.
-허, 무슨 이런 놈이 있지?
흑암은 생각에 잠긴 백우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오늘 상황은 거의 돌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런 상태에서 지금 이 상황까지 예측해서 움직인 이 미친놈에게 소름이 돋아올랐다.
-어우, 살 떨려….
이젠 백우진의 순발력에 무서울 지경이었다.
‘정보는 저 녀석들의 목격담을 통해 예측해 봐야지.’
백우진은 무영객과 청발의 여성을 보며 두 눈을 빛냈다.
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사소한 실마리만 있으면 그들의 생각을 예측할 수 있다.
“일이 아주 재밌게 됐어.”
백우진은 피식 웃으며 전화를 꺼내 들었다.
**
백우진은 유진아에게 근처에 있는 블랙마켓 안가의 위치를 듣고, 그곳으로 무영객과 박채영을 데리고 갔다.
회복약과 응급 처치 도구를 이용해서 청발의 여성을 치료하고 무영객을 불렀다.
“이 여자가 그때 말한 네 친구야?”
“친구가 아니라 지인이라니까요. 일단 외부에 알려진 이름은 청의 암살자. 청살이에요. 이름은 박채영.”
“아….”
백우진이 박채영을 다시 보았다. 작은 체구와 귀여운 얼굴에 청발, 알려진 청살의 이미지와 같았다.
“알고 계시는군요.”
“그래. 악인만 죽인다는 암살자.”
“맞아요. 암살 그만두고 카이저를 쫓은 지 2년 정도 되긴 했지만.”
무영객은 씁쓸한 표정으로 박채영을 보았다.
“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봐.”
“알겠습니다. 저희는 2달 전부터 카이저를 추적했습니다. 카이저의 부하 놈들은 스스로 라이히라고 부르더군요.”
“제국과 황제? 더럽게 거만한 이름들이로군.”
카이저와 라이히는 독일어로 황제와 제국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저희는 여러 경로의 추적 끝에 카이저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들키지 않은 채로.”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멀리서 카이저를 관찰할 때 놈이 복면을 쓴 누군가와 만나는 걸 발견했습니다.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하는 걸 보니, 부하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죠.”
무영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놈을 자세히 보다 보니, 많이 봤던 놈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많이 본 놈?”
“예. 검사님이 가주전에 가면 항상 만나는 흑검대 검사 있지 않습니까? 맨날 같은 소리만 하는 놈.”
“김재환?”
“맞습니다!”
무영객이 시원하게 박수를 쳤다.
“아시겠지만 전 눈썰미가 좋습니다. 그때부터 김재환과 그 뒤에 있는 놈들의 몸짓과 체형을 살피고 그들 모두가 흑검대라는 것을 알아차렸죠.”
-도둑놈의 눈썰미는 믿을 만하지.
‘그래.’
백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영객은 도둑답게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체형을 파악하는 데 도가 터 있었다.
“그때부터 이 일에 도련님도 관계된 것 같다고 생각하고 놈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녀석이 특별한 지청술을 익히고 있어서 대화를 엿들으려고 좀 더 접근했죠.”
“그때 들킨 건가?”
“아뇨. 너무 느리게 움직이다 보니, 흑검대는 돌아갔고, 카이저가 부하들에게 계획을 말하는 것만 들었습니다.”
“뭐라고 했지?”
“저도 잘 모릅니다. 저 멍청이가 조용히 듣다가 갑자기 깜짝 놀라서 은신을 풀었거든요. 그때 들켜서 여기까지 도망친 겁니다. 어휴! 이 화상!”
무영객은 짜증 어린 표정으로 박채영의 이마에 꿀밤을 날렸다.
“으윽….”
그 통증 때문인지 박채영이 슬쩍 눈을 떴다. 푸른 눈동자다. 저 눈의 색을 보니, 청발도 염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당신은… 어?”
박채영은 백우진을 보고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가 다시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였다.
“배, 백우진! 협제! 비켜!”
“으헉!”
그녀는 황급하게 일어서 무영객을 밀어 버렸다.
“저희를 구해 주셨군요. 저, 정말 감사합니다!”
박채영은 백우진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 또라이가!”
무영객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자기를 여기까지 살려 온 사람이 누군데 이렇게 대우한단 말인가.
“백우진이라고 합니다. 꼭 죽일 자의 암살 의뢰만 받는 청살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백우진은 손을 들어 무영객을 막고, 박채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검사님의 협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박채영은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존경하는 위인을 마주한 모습이었다.
“아! 거, 검사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흑검대와 카이저가 만난 것과 카이저가 부하들에게 말한 계획 말이죠?”
“맞습니다. 굉장히 중요하지만, 충격을 받으실 수도 있는 말이라….”
“괜찮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백우진이 옅게 웃었다. 이미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놀랄 일이 또 뭐가 있겠는가.
“그럼 확실하게 들은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채영은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뗐다.
“제가 들은 단어는 ‘백우진’, ‘대연문주’, ‘뒤처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