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카이저 (2)
“백우진, 대연문주, 뒤처리….”
백우진은 박채영에게 들은 세 단어를 하나씩 중얼거렸다.
“그 세 가지가 제가 확실하게 들은 단어들이었어요. 임무나, 끌어들인다는 말도 있긴 했지만 부정확한 것들이라….”
박채영은 전부 듣지 못해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정도면 충분해요. 감사합니다.”
“어욱! 아니에요!”
백우진은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박채영은 이마가 땅에 닿도록 마주 인사했다.
“허….”
무영객은 두 사람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박채영을 오랜 기간 봐 왔지만, 저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맨날 앵무새처럼 협협 하더니, 검사님한테 완전 빠졌구만….’
박채영은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존경하는 위인을 마주한 듯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으음, 제 생각인데요….”
무영객이 두 사람의 눈치를 슬쩍 보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뭔데?”
“카이저가 검사님과 대연문주를 싸우게 만들려는 거 아닐까요?”
“그리고?”
백우진은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두 사람이 부딪치면 살아남은 한 사람도 큰 부상을 입은 상태겠죠. 카이저는 그 살아남은 한 사람의 뒤처리를 하려는 것 같아요.”
“아예 바보는 아니네.”
“다, 당연하죠! 바보는 도둑질 못 해 먹습니다!”
무영객은 자신의 예측이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히죽 웃었다.
“멍청아! 그건 누구나 알 수 있어. 협제께서도 전부 생각하고 계셨던 거라고!”
박채영은 콧방귀를 뀌며 무영객을 흘겨보았다.
“널 살려서 여기 데려온 건 난데! 하루 종일 구박만….”
“아, 그건 고마워.”
“으윽….”
무영객이 들어 올린 주먹을 부르르 떨며 다시 내렸다. 고맙다는 말이 바로 나오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재들 꽁트 찍냐?
‘생각보다 친한 모양이네.’
백우진은 박채영과 무영객의 말싸움을 보며 작게 웃었다. 두 사람은 무영객의 말과 달리 꽤 친한 것 같았다.
‘일단 무영객의 말대로 나와 대연문주를 싸우게 만들고 그 뒤처리를 카이저가 하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겠지. 다만….’
-대연문주를 어떻게 무대 위에 올리는지 모르겠다는 거지?
‘그래. 대연문주는 어설픈 계획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야.’
백우진이 눈매를 좁혔다. 대연문주가 아버지 이상으로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하는 건 맞지만, 그가 직접 움직여서 자신을 공격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건 나도 예측이 안 가는군.
카이저라는 놈이 백우진과 대연문주를 어떻게 부딪치게 한다는 건지 예상되질 않았다.
“저기… 카이저에 대해서 알려 드릴까요?”
박채영은 백우진의 고민을 알아차린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뗐다. 무영객과 싸울 때의 그녀와는 인격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다.
“그놈을 쫓으며 알게 된 게 좀 있거든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저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면 놈이 어떻게 움직일지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이저의 알려진 특징인 무의 재능과 전투 센스는 말씀드릴 필요 없겠죠. 다만 그의 정말 무서운 점은 그 능력들이 아니에요.”
박채영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카이저가 가진 최고의 능력은 분신이에요.”
“분신?”
“혼원이 가진 분신과 달리 다중 분신이죠. 제가 봤던 것만 30명 정도였어요.”
-부, 분신이 서른? 서어른?
“서른 명이라구요?”
“대신 혼원처럼 본체와 완전히 같은 능력과 움직임을 내지는 못해요. 능력도 감소되고, 지시를 내려야만 움직이죠.”
“그나마 다행이네요.”
카이저는 많은 분신을 소환할 수 있는 대신 그 제약이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제약이 있다고 해도 분신 서른이라니, 정신이 나갔군.
‘문제는 그게 최대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지.’
백우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박채영이 목격한 건 카이저의 전력이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는 더 많은 분신을 소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이저는 그 능력을 숨기기 위해 목격자까지 모조리 죽였던 거군요.”
“맞아요. 그는 분신을 사용하여 목표를 죽인 적도 많아요. 그 능력을 숨기기 위해 목격자와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죽였죠.”
“역시….”
카이저의 전투를 목격한 사람이 없는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놈의 두 번째 능력은 설득이에요.”
“설득?”
백우진이 눈을 치켜떴다. 여기서 설득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카이저에겐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며 호감도와 설득력을 높이는 능력이 있어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해도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들리게 되죠. 오러나 마나를 이용하는 능력이 아니기에 고수라고 해도 알아차릴 수 없어요.”
“어느 정도의 효과길래….”
“그와 오래 대화를 나누거나, 격양된 정신 상태를 가질수록 쉽게 통해요. 사실 저희 사부님도 그놈의 그 능력에 당했었죠….”
박채영은 그때의 일이 생각이 나는지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랬군. 이제야 알겠어.’
백우진의 눈빛이 달이 뜨지 않는 밤처럼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대연문주는 나 때문에 굉장히 몰려 있는 상태야.’
광룡은 시간을 달라고 말하며 대연문을 떠났고, 그의 제자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세력권도 줄어들었으며 대연문주와 대연문의 명성 자체가 바닥에 떨어졌으니, 그의 정신은 분노로 가득 찬 상태일 거다.
‘지금의 대연문주에겐 카이저의 설득 능력이 통할 가능성이 높아.’
-그러면….
‘그래. 카이저는 대연문주를 직접 찾아갈 생각이야.’
**
대연문주 전수환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대나무와 곧게 자란 소나무들로 어우러진 정원을 거닐었다.
청아한 느낌의 정원이지만 그곳을 걷는 대연문주의 걸음은 어둡고 거칠었다.
나무 사이를 걷던 그의 걸음이 정원의 중앙에 있는 장대한 소나무 앞에서 멈췄다.
“나와라.”
대연문주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소나무를 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터억!
그 목소리가 사라지기 전에 소나무 위에서 덩치 큰 사내가 내려섰다.
금발 벽안에 각이 진 외모를 가졌으나, 입가에 피어난 미소는 둥글게 휘어져 있었다.
흑색 정장에 금색의 테를 둘렀다. 가슴 위에 금색과 백색으로 어우러진 매듭이 이어져 있었고, 머리엔 독수리가 새겨진 왕관을 착용했다.
전수환은 처음 보는 얼굴임에도 저 복장을 통해 금발의 남자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황제가 대연문주를 뵙소.”
카이저, 세계 최고의 암살자라 불리는 카이저가 대연문주의 정원에 홀로 나타났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군.”
대연문주가 서늘한 눈빛을 빛내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아귀에서 광대한 빛이 일렁였다.
“싸우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손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게 어떻겠소.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왔으니.”
“암살자 주제에 객이라? 개소리는 집어치워라. 언젠가는 죽이려 했는데 알아서 와 줬으니 수고를 덜었어.”
“백우진.”
“뭐?”
백우진이라는 이름에 금방이라도 움직이려던 전수환의 손이 멈췄다.
“그놈을 직접 죽일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대연문은 다른 어떤 길드보다도 백우진에게 쌓인 게 많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본론만 말하라.”
“백우진의 목을 직접 꺾어 버리고 싶겠지. 내가 그 소원을 들어주겠소.”
카이저는 빙긋 웃으며 뒷짐을 졌다. 정말 황제라도 된 듯 그의 전신에서 진중한 위엄이 흘러내렸다.
“백우진을 노리는 사람은 많지만, 그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소. 놈의 능력도, 가문도 문제니까.”
“그런데?”
“하지만 당신은 그를 죽일 능력이 있지. 그리고 난 놈을 끌어올 수 있소. 놈을 직접 죽일 수도 있지만, 그 기회를 당신에게 주고 싶소.”
“개소리로군. 설사 네게 그 방법이 있다고 해도, 그 일을 해서 네가 얻는 게 뭐지?”
전수환은 붉어진 눈빛으로 카이저를 쏘아보았다.
“백우진을 죽였다는 명예. 당신에게 백우진을 직접 죽일 기회를 주는 대신 놈을 죽인 명예는 제가 가져가겠소. 그리고….”
카이저가 목을 틀며 히죽 웃었다.
“대연문이 가진 레전더리급 무기와 무예 하나를 넘겨 주시오.”
“네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조건일 텐데? 백우진을 죽이고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을 거요.”
“시간 낭비했군. 네놈의 말은 처음부터 들을 필요 없는 개소리였다.”
전수환이 카이저를 차게 비웃었다.
“그 멍청한 놈은 백천화에게 도전장을 보냈다. 어차피 내년에 죽게 되어 있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뭐?”
“지금까지 백우진은 가능성 없는 일을 내지른 적이 없었지. 그가 입으로 뱉은 말은 무조건 이루어져 왔소.”
“그건….”
전수환이 입술을 깨물었다. 카이저의 말대로 백우진은 아무런 대비 없이 일을 저지르는 놈이 아니다.
일단 나서기만 하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해결해 왔다.
“백우진은 일 년 안에 백천화를 따라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도전장을 내민 거요. 지금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강해지고 있겠지.”
“으음….”
“놈은 결국 백천화를 쓰러뜨리고 백가의 가주가 될 거고. 그가 가진 인기와 명성을 바탕으로 신검백가는 더욱 커지겠지. 그때가 되면 대연문은 지금보다 더 심각한 상태가 될 거요.”
카이저는 고고한 정원을 둘러보며 빙긋 웃었다.
“이 정원은 하늘을 찌를 듯 멋지지만, 그에 비해 대연문의 세력은 점점 축소되고 있지. 그건 모두 백우진 때문 아닌가?”
“닥쳐라.”
전수환이 이를 악물었다.
‘이 망할 놈이 뚫린 입이라고!’
분통이 터졌지만,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카이저의 말은 사실이었다.
백우진이 나오기 전까진 대연문은 신검백가와 비등, 아니 그 이상의 위치였다. 실제로 더 많은 세력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백우진. 그놈 때문에….’
하지만 백우진이 출도한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고작 5년. 놈은 5년 만에 백가를 세계 최고 위치의 가문으로 만들어 놓았다.
반면 대연문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영주의 절반이 죽었고, 광룡은 놈에게 감화되어 한동안 문파를 떠난다 했다.
문파 내부와 외부에서 모두 문제가 생긴 상태였다. 지금 대연문이 유지되는 건 오직 자신 때문이었다.
“백천화는 강하지만 이미 인망을 잃었소. 백우진을 죽인다면 백가의 기세는 날개 떨어진 매처럼 추락하게 될 거요. 그리된다면 대연문이 다시 비상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
“닥치라 했다!”
전수환이 입술을 비틀었다. 카이저의 말은 완벽하지 않았다.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지만, 그 말에 끌리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혹시나 놈이 오러나 능력을 사용하여 술수를 부리나 확인해 봤지만 그런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네놈이 그 이후에 내 뒤통수를 친다면….”
“천하의 대연문주가 그런 걱정을 하는 거요?”
“이 자리에서 죽고 싶은 게냐.”
“크하하하! 농담이오. 당신이 원한다면 믿을 만한 호위들을 데려와도 상관없소.”
“…백우진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려올 자신은 있는 거냐.”
“물론이오. 만약 백우진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이 거래를 취소해도 좋소.”
카이저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주고받는 거래요. 그렇다고 오래 끌 수도 없소. 내 의사를 떠나 백우진을 끌어당기는 방법에도 제한이 있으니까.”
“뭐?”
“딱 2주. 2주 뒤에 다시 찾아오겠소. 그땐 결정을 내려주시오.”
카이저는 빙글거리고 소나무 위로 올라가 대연문주와 눈을 마주쳤다.
‘먹혔군.’
전투가 일어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왔지만, 대연문주의 눈을 보니 제안이 먹힌 게 분명했다.
‘악마의 혀’의 능력이 이렇게 빠르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보니, 대연문주는 자신의 예상 이상으로 백우진을 증오하고 있었다.
‘2주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겠는데.’
저 모습을 보니, 2주가 아니라, 1주 뒤에 와도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터엉!
카이저는 소나무를 박차고 대연문의 밖으로 향하며 비틀어진 미소를 지었다.
‘이 몸의 이름이 하늘 위로 갈 날도 머지않았군.’
**
2주 뒤.
김재환은 백천화의 연공실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전수환이 받아들였다고?”
“그렇습니다.”
“화가 나면 주변을 보지 않는 성격은 여전한 모양이군.”
백천화는 큭큭 웃으며 함정에 넘어간 대연문주를 비웃었다.
“카이저는 어떻게 움직인다고 했지?”
“한 달 후부터 자신의 행적을 흘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움직일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 이제 나갈 때가 되었군.”
백천화가 천천히 일어섰다.
“으음….”
김재환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백천화가 일어서는 것을 보자, 태산이 일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거대함에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백우진을 불러와라.”
**
백우진은 가문으로 돌아와 의검대를 가르치고, 개인 수련을 하며 평소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대연문주나 카이저와 지금 당장이라도 싸울 수 있도록 마음과 정신을 굳게 세웠다.
무영객과 청살을 구한 지 2주하고도 이틀이 지났을 때 김재환이 검각으로 찾아왔다.
“가주님께서 도련님을 호출하셨습니다.”
김재환은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예 인형은 아니었군.’
백우진은 고개를 일으키는 김재환과 눈을 마주쳤다. 깊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에서 약간의 흔들림을 읽을 수 있었다.
“연공실에서 나오신 건가?”
“예. 어제 나오셨습니다.”
“나오자마자 바로 찾는 걸 보니, 날 죽일 방법을 생각해 내신 모양이군.”
“…….”
백우진의 덤덤한 말에 김재환이 흠칫 몸을 떨었다.
“아닌가?”
“저, 전 모릅니다. 그저 불러오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백우진은 피식 웃고서 김재환의 눈빛을 살폈다. 그의 눈빛의 흔들림이 더욱 거세졌다. 때가 다가온 것이다.
“알겠다. 가겠다.”
“예….”
김재환은 마른침을 삼키고 검각을 떠났다.
‘대연문주가 제안을 받은 모양이군.’
자신을 부른 시기와 김재환의 반응을 보니, 카이저가 대연문주를 성공적으로 끌어들인 것 같았다.
-결론은 내렸냐?
‘생각해 보면 이건 기회야.’
-기회?
‘대연문주의 무력은 아버지와 호각 혹은 한발 뒤처져 있겠지. 이번 일은 그와 일대일로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기연이야.’
강대한 무력을 가진 무인일수록 생사결을 이루는 경우가 흔치 않다. 졌을 때 잃는 것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은 달라.’
목숨을 노리고 오는 습격이었기에 대연문주든 카이저든 전력을 다해 자신을 노릴 것이다.
그들과 싸우는 것은 아버지와의 결투를 대비하기 위한 최고의 기회였고, 한 발자국 남은 카인의 오러 연공법과 묵뢰의 단계를 올릴 기회였다.
‘뒤통수 맞을 염려도 없고.’
거기다 놈들의 계획을 미리 알고 있기에 카이저가 뒤를 치는 것을 막는 방법은 이미 계획해 두었다.
-나쁘지 않은 자세다. 이럴 땐 또 괜찮단 말이야.
“아버지가 아들을 성장시켜 주고 싶으시다는데 당연히 가 드려야지.”
백우진은 씩 웃고서 가주전으로 향했다.
“도련님을 뵙습니다.”
“가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흑검대는 가주전의 문을 열어 주었다. 자동문처럼 열리는 거대한 문을 넘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욱.
그 안에 한 발을 들여 놓은 것만으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쿠구구구!
세계를 깨뜨릴 듯한 무겁고 파멸적인 기파가 가주전 내부를 꽉 채우고 있었다.
저벅.
백우진은 천천히 그리고 곧은 발걸음으로 가주전의 중심에 섰다.
고개를 들어 자신만의 왕좌에 앉은 백천화를 보았다.
눈빛은 먹이를 본 맹수처럼 이글거렸고, 전신에서 펼쳐지는 무시무시한 기운은 심장을 옥죄는 것처럼 막강했다.
하지만 그 정도에 밀리기엔 자신은 너무도 멀리 왔다. 차분하게 내려앉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
백천화는 백우진의 무력을, 그의 생각을 가늠하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툭툭.
손가락으로 의자를 몇 번 두드리고서 굳게 닫힌 입을 뗐다.
“취임식 때 네가 뱉은 말은 기억하겠지?”
“물론입니다. 잊을 수 없죠.”
“그럼 내가 했던 말도 기억하느냐.”
백천화의 무겁고 뚝뚝 끊기는 음성은 그의 기세처럼 자신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제게 임무를 내린다고 하셨습니다.”
“그 임무를 지금 내리겠다.”
“듣겠습니다.”
백천화는 의자의 등받이에서 몸을 떼며 백우진을 내려다보았다.
“한국에 카이저가 들어왔다고 한다. 놈의 목을 가져와라.”
“카이저…?”
백우진은 처음 듣는다는 듯 흠칫 몸을 떨었지만, 고개를 숙인 그의 입가엔 서늘한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