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카이저 (3)
“최흉의 암살자라 불리는 카이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백우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입가에 떠올라 있던 초승달 같은 미소는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그렇다. 자신을 황제라 칭하는 그 미친놈을 치우는 게 네 임무다.”
“으음….”
백우진은 의외의 말을 들은 것처럼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놈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걸 알려 주면 시험이라 말할 수 없지.”
“그럼 카이저가 한국에 들어온 건 확실한 겁니까?”
“물론이다.”
“나쁘지 않군요. 언젠가는 죽여야 할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백우진은 무거운 표정을 풀고,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은 카이저만 잡으면 되는 겁니까?”
“조건이 있다.”
백천화가 손을 툭 털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인간이 아니라, 거인이 일어선 듯한 막대한 위엄이 퍼져 나왔다.
“조건이라 하시면….”
“정보를 모으는 건 상관없지만, 카이저를 추적하고 잡는 건 전부 너 혼자 해야 한다.”
“카이저가 홀로 움직이지 않을 텐데, 저 혼자 처리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적이 단체라고 물량을 쏟는다면 시험의 의미가 없지. 그리고 놈의 부하들까지 모두 처리하라는 말이 아니다. 카이저만 죽이면 된다.”
백우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놈의 부하들이 당연히 막아설 텐데, 카이저만 처리하면 된다는 건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소리다.
“이번 시험은 전투원의 능력이 아닌, 후계자의 능력을 판단하는 시험일 텐데요. 단체전을 조율하는 건 수장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아닙니까?”
“…시험의 내용은 내가 정한다.”
-하….
백천화의 대답을 들은 흑암이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이지 애새끼 같군.
백천화는 어설픈 핑계조차 대지 않았다. 대놓고 제멋대로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번만 그런 거 아니잖아.’
-그렇다고 해도 점점 꼴 보기가 싫어진다. 아오, 뒤통수 마려워.
‘걱정 마. 곧 끝나니까.’
백우진은 겉으로 짜증 난 표정을 지었지만, 속마음은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홀로 움직인다면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임무군요.”
“그 정도 일도 하지 못한다면 신검백가의 후계자의 위에 설 자격이 없다. 무서우면 포기해도 좋다.”
백천화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늘 처음으로 짓는 웃음이건만 노골적인 비웃음이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어떻게 해서든 살아 돌아와야겠군요. 어쨌든 제한 사항은 ‘카이저를 홀로 죽인다’. 하나 맞습니까?”
“하나 더. 기한은 2개월 내다. 그 시간이 지난다면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겠지.”
“알겠습니다. 그 시험 받아들이겠습니다.”
백우진은 백천화를 보며 두 눈을 빛냈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듯 의지로 넘치는 안광을 빛냈다.
-와, 연기 한번 더럽게 잘하네.
흑암은 백우진을 옆에서 지켜보며 진심 어린 감탄을 내뱉었다.
-너 진짜 배우 할 생각 없냐?
백우진은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예측해 놓고 전혀 몰랐던 것처럼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지금은 어떤 역경이라도 이겨 내겠다는 듯한 영웅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해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 중에서도 저런 연기력을 가진 녀석은 하나도 못 봤다.
-이 드라마 후속편 나오냐?
웬만한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
백우진은 백천화와 눈을 마주치며 혀끝으로 다가오는 쓴맛을 느꼈다.
‘더 심해졌군.’
아버지는 김재환과 달랐다. 자신의 친자식을 죽음의 늪으로 보내면서도 조금의 반응도 없었다.
그는 예전보다 더 지독하고 냉정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왜? 이제 와서 생각이라도 바꾸려고 했던 거냐?
‘그럴 리가.’
백우진은 보이지 않게 주먹을 꾹 쥐었다. 저 사람은 저 위치에 있어서는 안 된다. 백가를, 아니 이 세계를 망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모래성에 물을 부어 단단히 만드는 것처럼 아버지를 왕좌에서 내리겠다는 의지가 확실하게 다져졌다.
“다 알아들었으면 가 보거라. 무운을 빌지.”
“그 말씀 정말이십니까?”
“무엇을 말이냐.”
“무운을 빈다는 말씀 말입니다.”
“물론이다.”
백천화는 당연하다는 듯 빙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꼭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백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서 뒤를 돌았다.
‘당연히 살아 돌아와야죠. 아버지를 그 왕좌에서 끌어내려야 하니까.’
다시 굳은 다짐을 하며 가주전을 나섰다.
“소가주님을 뵙습니다.”
“척검대주?”
백우진이 검각으로 돌아가려 할 때 척검대주 김형운과 가주전의 입구에서 마주쳤다.
그는 금방이라도 전투를 치를 것처럼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임무라도 있는 겁니까?”
“세종시 쪽에 말벌 형태의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놈들을 처리하기 전에 가주님께 보고드리러 갑니다.”
김형운은 백우진이 후계자의 위에 오른 이후 제대로 된 경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말벌 형태?”
“처음 나온 몬스터지만, 개체가 그리 많지는 않아서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백우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벌 형태의 몬스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너희 세계에 벌 형태의 몬스터가 있어?’
-킬비라는 놈들이 있긴 하지만 저 인상 더러운 녀석 말대로 상대하기 어려운 놈들은 아니다.
‘그래?’
척검대주의 말대로 금방 해결해서 전생의 자신이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소?”
“아닙니다. 조심히 다녀오시길.”
“고맙습니다.”
척검대주는 예를 갖춰 고개를 숙인 뒤 가주전으로 들어갔다.
‘김형운….’
전생에서 그는 당연히 아버지의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는 백천화가 아니라, 신검백가를 위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가야겠군.”
백우진은 가주전을 한 번 돌아본 뒤 검각으로 돌아갔다.
**
백우진은 다음 날 블랙마켓의 본사에 있는 유진아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전날 연락을 하고 갔기에 유진아는 시간을 비워 놓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깔아 놓은 덫을 밟았습니다.”
“드디어군요.”
백우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유진아는 모두 알고 있었기에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연문의 움직임은 어떤가요?”
“변화 없어요. 물론 보기에만….”
유진아가 커피를 한 입 마시며 눈을 내리감았다.
“대연문주도, 귀서를 비롯한 영주들도 움직이지 않지만, 대연문주가 내외부에 숨겨 두었던 고수들이 조용히 강원도 화천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고수들?”
“대연문이 아닌, 대연문주 전수환만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외부에 들키지 않는 상태에서 고수를 모은다면 카이저를 견제하기 위함이겠군요.”
백우진은 유진아의 말을 듣자마자 상황을 파악했다.
-카이저를 견제?
‘대연문주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고 했잖아. 카이저에게 넘어갔다고 쳐도 그냥 당할 사람은 아니야.’
대연문주는 이미 자신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그 이후 카이저와 라이히를 처리할 생각을 하는 게 분명했다.
“역시 소가주님과 말하면 편하네요. 단초만 던져도 다 알아들으시니.”
유진아가 빙긋 웃었다. 백우진에겐 자그마한 정보만 전해도 그 속사정을 파악하는 통찰력이 있었다. 누구보다 말하기 편했다.
“대연문주는 검사님과의 싸움 이후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마 카이저와 그의 부하들까지 처리할 생각이겠죠.”
“제 생각도 마찬가집니다. 다만 카이저도 그걸 모르진 않겠죠.”
“네. 그도 산전수전 다 겪었으니, 추가적인 대비를 해 두었을 게 분명해요. 난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으니, 소가주님도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백우진은 손가락을 커피잔을 쓸며 말을 이었다.
“신검백가와 흑검대도 주의 깊게 살펴 주세요.”
“네? 흑검대를요?”
“지금까지 제가 본 아버지라면 카이저를 그냥 보낼 사람이 아닙니다. 흑검대를 위장시켜 보내서 대연문주의 세력들을 견제해 주는 척하다가 모든 일이 끝나기 직전 카이저의 뒤를 칠지도 모릅니다.”
“아, 확실히….”
유진아가 귀신에 홀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우진의 말이 맞았다. 지금의 백천화라면 카이저를 그냥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요! 제가 왜 그런 생각을 못 했는지….”
“그게 일반적인 사람의 생각이니까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의뢰한 암살자를 죽일 생각까진 하지 않지만, 아버지는 다르다.
토사구팽. 사냥개만이 아니라, 솥까지 삶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알겠습니다. 머리카락 한 톨 놓치지 않고, 대연문과 흑검대의 움직임을 관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도와줄 사람은 준비되셨나요? 그게 가장 중요할 텐데….”
유진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물론입니다.”
백우진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연문주든, 카이저든 혹은 아버지라도 눈치채지 못하게 준비해 두었습니다.”
**
백우진은 백천화에게 시험을 받았음에도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새벽에는 의검대를 훈련시키고, 오전부터 밤까지는 개인의 수련에 집중하는 생활을 1주일간 반복했다.
그가 의검대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을 때 문주영이 다급하게 찾아왔다.
“무,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이걸 봐 주십시오.”
문주영은 백우진을 데리고 식당을 나가서 뉴스를 보여 주었다.
[긴급 속보입니다! 화천에 거점을 둔 적학 길드가 하루아침에 전멸했습니다. 사고 시간은 오늘 오전 11:00에서 11:30 사이. 피해 인원은 능력자와 일반인을 포함해 100명이 넘습니다. 조사를 나선 협회에서는 목격자와 생존자가 없는 것과 사건이 짧은 시간에 일어난 것을 보고, 최흉의 암살자 카이저가 움직였다고 예측 중입니다. 저희 방송은….]백우진은 뉴스를 보며 주먹을 꾹 쥐었다.
-저 망할 새끼들이 저렇게 나와?
“이런 식으로 움직였다 이거지….”
카이저의 움직임은 무영객과 청살에게 맡겨 두었는데 이런 사태가 난 것을 보면, 그들도 카이저의 움직임을 놓친 것 같았다.
우우웅!
백우진은 진동을 느끼고 전화를 꺼내 들었다. 액정에 적힌 이름은 무영객이었다.
[검사님! 죄송합니다!]“어떻게 된 거야.”
[청살이 들킨 이후 카이저와 라이히들의 움직임이 훨씬 조심스러워졌거든요. 추적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상황이라 저희가 갔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난 이후였습니다.]무영객은 목소리엔 죄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옆에 있는 청살이 죄송하다고 말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지금 놈들은 어디에 있지?”
[화천 풍산리에 있는 산에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검사님을 이곳으로 유인하려는 것 같습니다.]“놈들이 준비하는 거 하나하나 다 파악해서 문주영에게 알려 줘.”
“그리고 네 잘못 아니니, 신경 쓰지 말고.”
고작 30분 만에 100명이 넘는 인원이 죽었기에 적학 길드의 일은 무영객이나 청살의 탓이 아니다.
“무리하지 말고 대기하고 있어.”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겠습니다.]“수고해 줘.”
백우진은 전화를 끊고 이를 꽉 깨물었다.
-적학 길드에 가면 카이저를 추적할 단서가 나오겠군.
‘맞아. 그걸 따라가면 풍산리의 산이 나올 테고, 그곳엔 대연문주가 있겠지. 예상대로지만 놈들은 너무 더러운 방법을 사용했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저런 방법 말고도 자신을 부를 방법은 많았다. 놈은 최악의 방법을 사용했다.
‘원래부터 카이저를 살려 둘 생각은 없었지만, 저런 사고를 친 이상 곱게 죽일 수는 없겠네.’
-그럼 어쩌려고?
‘잘못 건드렸다는 걸 보여 줘야지.’
백우진은 전투복을 입고, 흑전호포를 걸쳤다.
“놈들이 만든 판을 깬다.”
**
[카이저는 최강이자, 최악의 암살자라 불리는 자로 목격자가 없이….]전수환은 적학 길드 몰살에 관한 뉴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신호 한번 거창하군.”
카이저가 적학 길드를 몰살시킨 건 두 가지 이유다. 백우진을 유혹하는 것과 자신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우우웅.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핸드폰에 진동이 일었다. 액정에는 번호도,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신호는 봤겠지? 준비는 모두 끝났소.]전화를 받자, 카이저의 히죽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천 풍산리에 신월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소. 백우진의 무덤은 그곳으로 정했소.]“놈이 오는 시간은?”
[오늘 저녁 9시.]카이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정확한 시간을 말했다.
“확실한가?”
[적학 길드에 조사를 나간 협회 직원 중에 내 하인이 있소.]“하인?”
[그렇소. 그 녀석이 백우진에게 날 찾을 힌트를 내어 줄 테니, 그 시간은 정확하오. 난 완벽한 암살을 목표로 하니, 걱정하지 마시오. 실수는 없소.]“…알겠다.”
전수환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생각 이상으로 철저한 놈이로군.”
카이저와 연락을 하며 느꼈다. 놈은 단순한 무력으로 암살을 하는 놈이 아니다. 모든 것을 계획에 두고 움직이는 놈이었다.
똑똑.
방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사부님을 뵙습니다.”
귀서가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준비는?”
“화천 전체를 둘러싸고 인원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위치는 신월산, 시간은 9시다. 민감한 놈들이니 조심히 움직여야 할 거야.”
“끓는 물 속의 개구리를 삶아 죽이듯,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천라지망을 펼쳐 놓겠습니다.”
귀서는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 묵직하게 고개를 숙였다.
“구제도 안 되는 쓰레기들에게, 내게 거래를 건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알려 주어라.”
“물론입니다.”
“믿겠다.”
“예!”
귀서는 준비를 하겠다고 말하며 방을 나섰다.
“백우진….”
전수환은 문주전의 문이 닫히는 것을 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놈의 검술과 오러는 만능형.’
많은 영상을 통해 백우진의 검술과 움직임을 파악해 둔 상태다.
녀석은 언제 어떻게 움직여도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만능형의 검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절대자급에 올랐다.
다만 같은 절대자급이라 해도 그 안에서 많은 차이가 났다. 백우진은 아직 초입이다. 자신이 진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시작해 볼까.’
전수환은 눈을 감고 심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곳에서 백우진과 다섯 번의 전투를 끝내고 눈을 떴다.
물론 다섯 번 모두 승리했다. 심상의 세계에서 겨뤄 보니, 놈이 어떻게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제 가도 되겠군.’
시간을 보니, 6시였다. 천천히 화천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려고 일어섰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아까와 똑같이 번호도,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뭐지?”
전수환이 인상을 찡그리며 전화를 받았다.
[무, 문제가 생겼소.]카이저의 목소리에는 그 어느 때와도 달리 심한 당황이 묻어났다.
[백우진! 이 미친놈이 지금 쳐들어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