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훗날은 없다
천장과 바닥이 은은한 보랏빛으로 일렁이는 거대한 방.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장수말벌들이 날아와 군인처럼 줄을 서서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끼이이.
말벌들은 뻗어 나온 독침을 집어넣고, 천천히 기어 방의 중앙으로 향했다.
방의 중심에는 2m 정도 크기의 새하얀 알이 박혀 있었고, 그 주변의 바닥에는 작은 구멍들이 열려 있었다.
끼이익!
가장 앞에 있던 장수말벌들은 구멍 앞으로 다가가 입 안에 물고 있던 투명한 구슬을 뱉어 냈다.
구멍에 들어간 구슬들은 또르륵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녹아들었다.
두웅!
장수말벌들이 투명한 구슬을 구멍에 넣을 때마다 중앙에 박힌 알은 심장처럼 약동했다.
“오, 이게 누구야?”
거대한 알 뒤에서 여성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타오르는 듯한 적발에 파충류처럼 길게 찢어진 눈을 가진 작은 키의 여자였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녀는 말벌의 시야를 통해 백우진을 보고서 두 눈을 빛냈다.
“내 원수는 아니지만.”
뒤를 돌아 거대한 알에 손을 올렸다.
우우웅!
여성이 손을 올리자, 알이 새하얀 빛을 뿜어내며 반투명하게 변했다.
알 속에는 20대로 보이는 흑발의 남자가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우웅.
남자의 입과 코에서 작은 기포가 나오고, 그의 전신에서 보라색 기운이 흘렀다.
“당신이 깨어나기 직전에 백우진이 찾아오다니, 인생은 참 재밌다니까.”
그녀가 알을 쓰다듬자, 알에서 흐르는 빛이 강해지며 희미했던 방의 벽이 비쳤다.
“으으….”
“끄윽….”
백여 명의 사람들이 보라색 벽에 박힌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마스터.”
여성은 벽에 박힌 사람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알 속에 잠든 남자를 바라보며 웃었다.
“당신의 원수가 스스로 찾아왔어.”
그 순간 알 속에 잠든 남자가 시뻘건 눈을 떴다.
**
“원기….”
백우진이 구슬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구슬에 들어 있는 기운은 자연의 마나와는 다른, 인간이 가진 생명의 근원 진원진기였다.
-왜 진원진기가 여기에 담겨 있는 거지?
‘뻔하잖아.’
장수말벌들은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라, 사령술사의 사기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놈들이다.
그 사기를 사용해서 사람들에게 원기를 뽑은 뒤 사령술사에게 전하는 게 분명했다.
사령술사는 원기들을 이용해서 인륜을 벗어난 짓거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지독한 놈들….’
기감을 펼쳤다. 주변에서 움직이는 장수말벌들의 날갯짓이 느껴졌다.
저 말벌들의 숫자만 계산해 봐도 엄청난 수의 희생자가 생겼을 것이다.
-하여튼 사령술사 놈들은 어딜 가나 똑같다니까.
사령술사들은 인간을 생명이 아닌 재료로 생각하기에 만나면 필히 죽여야 할 해충이나 다름없었다.
“소가주님.”
문주영과 의검대가 장수말벌들의 사체를 넘어 백우진에게 다가왔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홍남기는 백우진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이건 원기다.”
“예? 원기요?”
“이 장수말벌들은 사령술사가 만든 놈들이야. 인간의….”
백우진은 모두에게 이곳의 사정을 말해 주었다.
“저, 정말이에요?”
적연화가 마른침을 삼키며 되물었다.
“그래. 산에 사령술사가 만들어 놓은 굴이 있을 거야. 아마도 저 안쪽….”
백우진이 말을 할 때 산 전체가 들썩이는 굉음이 울리며 80여 마리의 장수말벌들이 하늘로 솟구쳤다.
장수말벌들은 방금 잡은 놈과 달리 처음에 마주한 놈들처럼 2m에 가까운 크기였다.
“갑자기 저렇게 많이 나타났다고?”
“자, 장수말벌의 특성이에요.”
적연화가 목소리를 살짝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성?”
“장수말벌들은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페로몬을 뿌려요. 저놈들은 그 페로몬 냄새를 맡고 나타난 게 분명해요.”
“벌레를 무서워한다며 잘도 알고 있군.”
“무, 무서우니까 조사를 했죠! 근데 다 듣는데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요!”
적연화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저런 소리를 하니 백우진의 뒤통수를 치고 싶었다.
“아, 미안.”
백우진은 피식 웃고서 흑암으로 장수말벌들을 가리켰다.
“저것들부터 처리해.”
“알겠습니다!”
문주영과 의검대는 명령을 받자마자 백우진의 앞으로 튀어나왔다.
부아아아앙!
장수말벌들이 붉은 투기를 불태우며 빛살처럼 공격해 왔지만, 의검대는 이미 새로운 검진 연혼을 완성시킨 상태였다.
쩌저저정!
의검대는 연혼의 수비 형태로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장수말벌들의 공세를 완벽하게 막아 냈다.
치이이잉!
의검대는 강렬한 기세를 피워 내며 부채꼴로 퍼졌다.
전방에 선 검사들이 말벌들의 공격을 차단하고, 중앙에 선 검사들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틈을 보이는 말벌들을 공격했다.
끼이이이!
끼아악!
장수말벌들은 의검대의 체계화된 검진을 깨지 못하고 하나씩 죽어 나갔다.
-저 녀석들도 많이 컸군. 이제 어디 내놓아도 쓸 만하겠어.
‘투기를 가진 몬스터와도 싸울 정도니까.’
예전의 의검대라면 장수말벌들의 투기를 본 순간 겁에 질려 물러났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투지를 불태우며 놈들과 정면에서 싸우고 있었다.
-매번 데리고 다닌 보람이 있네.
‘그래. 특히 저 녀석.’
백우진은 중앙에서 움직이는 홍아라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의검대 모두가 성장했지만, 그중에서도 홍아라는 발군이었다.
투현지체의 특성이 개화하며 움직임은 물처럼 유려했고, 검격은 불길처럼 매서웠다.
다른 검사들은 세 번을 찔러야 장수말벌의 외갑을 부술 수 있었지만, 홍아라는 놈들의 틈새를 파고들어 단 일격으로 장수말벌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하압!”
백우진은 우렁찬 기합 소리에 우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적연화는 쉴 새 없이 눈동자를 떨면서도 장수말벌을 향해 주먹을 뻗어 냈다.
뻐어억!
그녀는 철퇴 같은 권격으로 말벌의 갑주를 깨 버린 뒤 미친 듯이 손을 털어 냈다.
오기로 전투를 시작했지만, 아직 곤충에 대한 공포심을 이겨 내진 못한 것 같았다.
‘그래도 저 정도면 인정해 줄 법하지.’
공포심은 쉽게 벗어나기 힘들다. 차근차근 나아가다 보면 적응할 수 있을 거다.
부우우우웅!
장수말벌들은 복제라도 한 것처럼 끝없이 나타났다.
능력자들이 40여 마리를 처리했음에도 하늘엔 장수말벌들로 가득했다.
“빠르게 처리해야겠어.”
백우진은 흑암의 칼날에 막대한 뇌기를 휘감아 마흔 줄기에 가까운 비뢰섬을 쏘아 냈다.
빠지지직!
허공이 흑색 뇌전으로 가득 차며 달려들던 장수말벌 40여 마리가 모조리 동강 났다.
“허억!”
“와아….”
“저, 저렇게 쉽게 잡는다고?”
능력자들은 땅으로 추락하는 장수말벌들의 사체를 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거 정말 같은 놈들 맞아?”
자신들이 연계해서 겨우 잡는 장수말벌과 백우진이 잡은 장수말벌이 같은 놈들이라는 게 믿기질 않았다.
“으….”
적연화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백우진을 보았고, 의검대와 문주영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놈들이 문제가 아니야.’
백우진은 눈앞의 장수말벌들을 보지 않고, 산 전체로 기감을 펼쳤다.
‘사방에서 몰려든 말벌들이 산의 중턱으로 향하고 있어. 여기에 관심도 가지지 않고.’
페로몬에 대한 내용이 정말이라면 대부분의 장수말벌이 이곳으로 몰려와야 하지만, 대부분의 놈들은 숲의 중앙으로만 향했다.
“적연화.”
“왜, 왜 불러요….”
“장수말벌의 특징을 더 말해 봐.”
“자, 장수말벌의 장수는 장수(長壽)가 아니라 장수(將帥)예요. 오래 산다는 게 아니라, 전장의 장수죠. 그래서 모든 벌들이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적연화는 기억을 더듬으며 장수말벌에 대한 정보를 말해 주었다.
“강한 거 말고.”
“집은 보통 바위틈이나 땅속에 짓고, 유충에게 먹이를 주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자신의 목숨 이상으로 먹이를 챙겨야 한다는 본능이….”
“유충과 먹이….”
백우진은 손에 쥔 원기의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말벌들은 이 원기를 유충에게 주는 먹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사령술사가 이 원기로 무언가를 깨우려는 모양인데?’
-내 생각도 같다. 장수말벌들은 저들에게 맡기고 넌 움직여라.
‘그래야겠어.’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문주영과 홍남기를 보았다.
“문주영은 날 따라오고, 나머지는 여기를 막는다. 너희끼리 싸울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당연하죠! 믿고 가십시오!”
의검대 검사들은 걱정하지 말고 가라는 듯 검을 들어 올렸다.
“적연화.”
“또 왜 불러요.”
“저 녀석들 위험하면 봐 줘. 부탁한다.”
“어? 아, 예….”
적연화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틀었다. 백우진이 이런 식으로 부탁한 일은 처음이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예!”
백우진은 피식 웃고서 산으로 총알처럼 내달렸다. 문주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백우진을 따랐다.
“음….”
적연화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백우진에게 부탁을 받으니, 갑자기 용기가 샘솟았다.
‘부탁이라….’
죽어 있는 말벌들의 사체를 보았다. 아직도 징그럽지만, 무서운 건 좀 가신 것 같았다.
“후우, 해 보자고.”
**
백우진과 문주영은 비처럼 쏟아지는 장수말벌들을 때려잡으며 산의 중턱에 도착했다.
작은 장수말벌들의 움직임을 파악해 놓았기 때문에 놈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저기가 기지인가.”
작은 장수말벌들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언덕의 구멍으로 들어갔다.
-저기가 놈들의 둥지인 모양이군.
‘아까 적연화가 바위의 틈에 집을 짓는다고 했었지.’
백우진은 의외로 적연화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며 바위로 향했다.
부우우우웅!
언덕의 앞에 선 순간 언덕의 구멍과 수풀들 사이에서 수십 마리의 장수말벌이 튀어나왔다.
끼이이이!
“알고 있었어.”
백우진은 조금의 당황도 없이 독을 쏘아 내는 장수말벌들을 향해 뛰어올랐다.
라사둠의 오러를 끌어 올리며 흑암과 함께 몸을 회전시켰다.
콰아아아!
흑암의 칼날에서 피어난 강기가 빠르게 휘돌며 검은 폭풍을 만들어 냈다.
칠흑의 칼날폭풍이 사위로 퍼지며 벌집을 방어하러 나온 장수말벌들을 모조리 찢어 버렸다.
탁.
백우진은 장수말벌들을 모조리 처리하고 벌집의 입구로 내려섰다.
-밑에 거대한 기운을 가진 놈이 있다.
‘그것도 둘이야.’
벌집의 아래에 무시무시한 기운을 가진 존재가 둘 있었다.
한 놈은 사령술사 같았고, 다른 놈은 잠을 자듯 힘을 가라앉히고 있어서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가자.”
“예!”
백우진은 모든 정리를 끝낸 뒤 문주영을 불렀다. 문주영은 뒤에 있던 말벌 둘을 처리하고 백우진의 옆으로 붙었다.
-위험해 보이는데.
‘문주영은 괜찮아. 그리고 저 아래 사람도 있어.’
-뭐?
‘거대한 사기 뒤로 희미한 생기가 느껴져. 사령술사에게 잡힌 사람들이겠지.’
사악한 기운의 바로 옆에 죽어 가는 인간의 기운이 느껴졌다. 사령술사에게 잡힌 능력자일 거다.
-허어….
흑암은 백우진을 올려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검의 상태라고 해도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희미한 기운을 알아차리다니, 감탄밖에 나올 말이 없었다.
-쯧, 이제 정말 애송이라는 말은 못 하겠네.
**
백우진은 문주영과 함께 장수말벌이 파놓은 굴의 지하로 향했다.
놈들이 워낙에 컸기에 이동엔 아무 문제도 없었다.
‘거의 도착했군.’
장수말벌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보법을 밟았기에 30분도 되지 않아 최하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조금도 경계를 풀지 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문주영도 거대한 사기를 느꼈기에 마른침을 삼키고서 정신을 집중했다.
-저 방이군.
흑암이 보라색 빛이 흐르는 3m 크기의 거대한 구멍을 가리켰다.
우우우웅!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구멍으로 다가가려 할 때 귀를 때리는 날갯소리가 굴 전체를 울렸다.
굴 안쪽에서 무수한 그림자들이 솟아오르며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작은 크기의 장수말벌이 쏟아져나왔다.
“전부 여기 있었군.”
“소가주님!”
“괜찮으니, 뒤나 막아.”
백우진은 흑암에 얇고 예리한 강기를 둘러 쏟아지는 말벌들을 베어 냈다.
쩌저적!
경쾌하게 내리치는 검에 예와 정, 절검의 묘리가 깃들어 말벌들을 갈라 버렸다.
백우진의 간결하고 예리한 검술에 200마리가 넘던 장수말벌들은 독 한 번 쏘아 내지 못하고 사체가 되었다.
“저 정도 숫자가 한 번에 튀어나올 줄은 몰랐네요.”
문주영이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근데 너무 막 보낸 것 같지 않나요?”
“일부러야.”
백우진이 눈빛을 서늘하게 가라앉혔다.
“예? 일부러요?”
“사령술사가 목표를 이뤘기에 필요 없어진 벌을 버린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벌들을 이렇게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아까 말했던 대로 넌 인질만 신경 써.”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문주영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경의가 담긴 눈으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인질의 기운을 느꼈다니.’
바로 앞에서도 인질의 기운을 느끼기 힘든데 백우진은 한참 위에서 그들의 기운을 알아차렸다. 까도 까도 대단하다는 말만 나오는 사람이다.
“여긴….”
백우진은 보랏빛으로 가득 찬 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알?”
중앙에 거대한 알이 있었고, 벽에는 백이 넘는 사람들이 전시품처럼 박힌 상태였다.
우우웅.
사람들이 박힌 벽 아래에 있는 호수는 알이 있는 바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건 또 뭐 하는….”
“잘 왔어.”
백우진이 분노를 피워 낼 때 알의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우.진.”
붉은 머리에 맹수의 눈을 가진 여자다. 그녀의 전신에서 지독한 사기가 펼쳐졌다.
“로자미어인가?”
로자미어의 외모에 대해 밝혀진 건 붉은 머리밖에 없었지만, 저 여자가 피워 내는 기운만으로도 그 이름이 떠올랐다.
“천하의 협제께서 날 알고 있다니 영광이야.”
로자미어가 자신의 정체를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아! 지금 움직이면 벽에 박힌 인간들이 죽을 거야.”
백우진이 움직이려 할 때 로자미어가 사람들을 가리켰다.
“이제 시작이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로자미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뒤에 있는 거대한 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쩍! 쩌저적!
알은 풍선처럼 터져 나가고, 그 안에서 젊은 남자가 내려섰다.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 백옥 같은 피부. 이목구비의 조화마저 완벽해 미의 결정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미남자였다.
그리고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자였다.
“김남길….”
백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하와이에서 죽었던 김남길이 보랏빛 사기를 뿜어내며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네놈과 만나다니, 재밌는 운명이군.”
목소리마저 김남길과 같았다. 알에서 깨어난 저 인간은 김남길이었다.
“네놈에게 당한 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 왔다.”
김남길이 손가락을 쥐었다 펴며 싸늘하게 웃었다. 그의 전신에서 퍼지는 사기와 오러가 공간 전체로 퍼졌다.
“허나 지금은 아니야.”
그는 자신의 힘을 시험하듯 손가락 위로 폭풍 형태의 강환을 만들어 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네놈의 목을 꺾어 버려야 내 속이 풀려. 이런 구덩이 속에서 죽일 수는 없지. 훗날 네놈만이 아니라, 너와 관계된 모든 인간을 죽여 주마.”
“무슨 개소리를….”
“지금 덤비려고? 네 손해일 텐데?”
김남길은 벽에 박힌 사람에게 강환을 겨누었다.
“저들을 살려야 하지 않겠어?”
“그러게. 우리는 죽이는 게 일이지만, 넌 살리는 게 일이잖아.”
로자미어가 킥킥 웃으며 앞으로 나왔다.
“원기와 오러만 빼내서 아직은 살릴 수 있는 상태야. 좀 더 사기에 노출되면 죽을지도 모르지만. 빨리 구하는 게 좋을걸?”
“알아들었으면 물러나라.”
“…….”
김남길은 붉은 눈동자를 태웠다. 백우진은 천천히 검을 내렸다.
“후후!”
로자미어는 히죽 웃으며 백우진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협제가 협박에 굴하는 꼴을 보다니, 세상 오래 살고 봐야 한다니까. 어쨌든 저 인간들은…어?”
로자미어가 말을 맺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그녀의 목이 빙그르르 돌며 땅으로 툭 떨어졌다.
“떠나? 누구 마음대로?”
백우진은 로자미어의 목을 베어 버린 흑암을 세워 김남길을 향해 돌진했다.
“이 미친놈이!”
김남길이 손가락 끝에 만든 강환을 키워 백우진을 향해 쏘아 냈다.
치이잉!
하지만 백우진은 이미 그의 지척에 이르러 있었다.
콰아아앙!
강환과 흑암이 부딪치며 굴 전체가 무너질 듯한 폭발이 터졌다.
“크으윽!”
김남길이 뒤로 쭉 밀려났다. 이를 바드득 갈면서 백우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저 인간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거냐!”
“그것도 생각하지 않고 움직일 거 같아?”
백우진이 손가락을 튕기며 김남길을 향해 다가갔다.
“훗날은 지랄. 넌 여기서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