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92
292화. 어검 (3)
“너희는 잠시만 나가 있어.”
“엑? 재밌을 거 같은데….”
“옙!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문주영은 버둥거리는 무영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아신 거죠?”
백우진은 다시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대체 뭘 보고 안 거지?’
오러를 끌어 올리지도, 기세를 펼치지도 않았다.
설사 자신의 기운을 느꼈다고 해도 딱 어검만 집어서 알아차린 건 이상한 일이다.
-상단전이다.
“상단전이에요.”
흑암과 검후는 동시에 같은 단어를 꺼냈다.
“상단전?”
“상단전이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았죠? 어검을 익히기 시작한 건 더욱 최근일 테구요.”
검후는 옅게 웃으며 빈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맞습니다.”
어차피 들통난 일이었기에 거짓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단전을 흐르는 오러가 일정하지 않아요.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검을 익히느라 무리해서 그렇게 된 거죠.”
“검후께서 그걸 아시는 이유는….”
“네. 저도 어검을 익힐 때 겪었던 일이니까요.”
검후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현재 겪고 계시는 일은 저도 전부 경험해 봤어요.”
“그랬군요….”
백우진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검후는 어검술을 수련하는 사람의 상단전의 흐름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린 거였다.
“다만 저와는 다른 점이 있어요.”
“다른 점이요?”
“예. 전 어검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무예의 구결을 익히고 있어요. 그 구결을 따라 상단전을 열고, 어검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검후가 백우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달라요. 구결 없이 홀로 어검술을 익히신 거죠?
“그렇습니다.”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기에 백우진은 이번에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구결 없이 대체 어떻게 그 영역에 들어가신 건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전 여러 검의 묘리를 익히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조합하다 보니, 어검의 길이 나타나더군요.”
“허….”
검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숨을 내뱉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대단하시네요. 솔직히 말해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거예요.”
절대의 영역에 오른 이후로 이렇게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는 건 오랜만이었다.
‘이런 무인이 존재했다니….’
백우진이라는 이름 석 자는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구결 없이 스스로 어검의 길에 들어서는 괴물 중의 괴물일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재능.
상상조차 불허하는 재능과 끝없는 수련을 통해 저 영역에 들어선 게 분명했다.
기사나 정보, 영상 속에서 본 협제의 이미지는 실제의 십 분의 일도 표현되지 못했다.
꾹.
백우진은 검후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테이블 밑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검후가 어검술을 익히고 있을 줄이야.’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검술을 익혔을 줄은 몰랐다.
‘이거 잘하면….”
검후가 자신을 보는 시선에는 호감으로 가득했고, 직접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대화의 흐름상 그 도움은 어검술일 테니, 그녀의 도움을 받아 어검술의 흐름을 익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제, 젠장!
흑암이 참지 못하고 칼날을 바들바들 떨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고!
오랜만에 쓸데없는 물건이 나와서 좋아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 망할 물건은 어검술을 익히기 위한 퀘스트 아이템이었다.
-이 사이코 같은 시스템! 이젠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저 각명준지, 각다귄지가 나왔을 때 백우진을 비웃었는데, 이제 자신이 비웃음을 당하게 생겼다.
흑암은 슬쩍 검날을 돌려 백우진을 보았다.
히죽.
놈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녀석은 검후의 앞에서 손까지 가려 가며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이, 이 자식….
“그러면 아까 도움을 주신다는 말씀은….”
백우진은 흑암을 놀려 준 뒤 다시 검후를 보았다.
“어검술의 습득에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검후가 망설임 없이 즉답했다.
“요령, 구결, 시연까지 전부 도와 드릴게요.”
“아….”
-오라질!
백우진이 감격으로 입술을 깨물었고, 흑암은 짜증이 줄줄 흐르는 욕설을 내뱉었다.
‘무영객, 문주영. 잘했다!’
백우진이 문 앞에서 기다리는 무영객과 문주영을 돌아보며 초승달 같은 미소를 그렸다.
저 녀석들이 자신을 믿어 준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최고의 보상을 받게 되었다.
-무영객. 저 망할 놈!
흑암은 역으로 무영객의 욕까지 중얼거렸다.
백우진과 흑암은 5분 만에 무영객의 평가를 뒤바꿨다.
“그 전에 한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어요.”
“경청하겠습니다.”
“검사님이 사용하시는 검술들은 직접 만드신 거죠?”
“맞습니다.”
“제가 구결을 알려 드릴 수는 있지만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직접 검술을 만드셨으니, 어검술도 기본이나 기존의 것이 아닌 새로운 어검술을 만드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후의 어검술을 본다고 해도 그걸 그대로 따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에게 배울 어검의 장점만 뽑아 자신만의 어검으로 승화시키는 게 당연한 일이다.
“숙소를 내어 드릴 테니, 오늘은 쉬시고 내일부터 시작하죠.”
“전 괜찮으니, 일단 저분부터 회복시키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백우진이 뒤에 있는 여희를 가리켰다.
“각명주가 있다고 해도 저 아이의 기운을 끌어 올려야 깨어날 가능성이 높고, 부작용이 적어요. 기운을 좀 북돋아 준 뒤에 시작할 거예요.”
미리 여러 가지 조사를 했는지 검후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습지만, 검각이 만들어진 이후로 남성분이 묵는 건 처음이에요. 영광으로 아셔야 할 거예요.”
“일생의 영광입니다.”
검후의 웃음에 백우진도 빙긋 웃었다.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내일 뵐게요.”
백우진은 검후에게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왔다.
“어, 끝나셨습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문주영과 무영객이 다가왔다.
“여기서 좀 있다가 돌아가야 할 거 같다.”
“예? 정말요? 우왁!”
무영객이 환호를 내질렀다.
“주영아. 오지는 행운이 터졌다. 검각에서 잠을 자다니, 평생 술안주 생겼어!”
“창피하니까 좀 닥쳐!”
“숙소는 아래에 있다고 하니, 가자.”
백우진은 무영객과 문주영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아래로 내려갔다.
‘너희는 돌아가면 보너스다!’
-저 방해만 되는 도둑놈!
흑암은 칼날을 뉘여 무영객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물론 아무 영향도 없었지만.
**
푸르러야 할 대나무 숲 전체가 지는 노을처럼 붉게 물들었다.
숲만이 아니다. 바닥에 깔린 대나뭇잎 위에도 뜨거운 피가 가득했다.
계곡처럼 흘러내리는 피를 따라 올라가니, 인간, 짐승, 몬스터 가릴 것 없이 수십 구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크르륵!”
“크르르르!”
붉은 털을 가진 웨어울프들은 식욕 충만한 눈길로 시체의 산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딱!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에 웨어울프들의 시선이 뒤로 돌아갔다.
“먹어라.”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에 2m가 넘는 키, 얼굴이 흉터로 가득한 거친 인상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르륵!”
“크어어어!”
남자의 명령에 웨어울프들이 몸을 돌려 시체에 달려들었다.
찌익! 찌지직!
웨어울프들은 허공으로 피가 솟구칠 정도로 게걸스러운 식사를 시작했고, 적발의 남자는 시퍼런 눈길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적발의 남자가 바로 레드 웨어울프 일족의 수장 크라온이었다.
그의 전신은 강철같은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좌측 어깨에는 아물지 않은 검흔이 새겨져 있었다.
“페토.”
“예!”
크라온의 부름에 바위 옆에서 대기하던 호위 페토가 고개를 숙였다.
“다시 그곳으로 갈 준비를 해라.”
“그 검후라는 여자는 강합니다. 부상이 모두 회복되시면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페로가 크라온의 어깨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인간들을 고문해서 정보를 빼냈기에 족장의 어깨에 검을 박은 여자가 누구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검후.
이 세계에서 절대자라 칭해지는 그 인간은 아무리 족장이라고 해도 쉽게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내 주술에 걸린 여자의 몸 상태를 억지로 끌어 올리고 있다. 회복시킬 준비를 하고 있겠지.”
크라온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를 물어뜯으며 말을 이었다.
“내 주술을 풀기 위한 물건을 찾은 모양이다.”
“그러면….”
“조만간 물건을 이용해서 주술을 풀려는 시도를 할 거다. 그 검후라는 여자가 직접 해주를 하겠지.”
크라온은 검후라는 말을 하며 서늘한 살기를 피워 냈다.
“그때를 노린다.”
혈욱 주술에 걸린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기에 그때를 인지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오늘 식사를 끝으로 아이들을 굶겨 놔라.”
크라온이 이를 드러냈다.
끼이익!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들이 갈리며 소름 끼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의 야들야들한 살로 배를 채우게 해 줄 테니까.”
**
백우진은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검후의 연무장으로 나왔다.
검각의 검사들 세 명이 연무장을 정비하고 있었다.
-부지런하구만.
“좀 도와줄까.”
연무장 정비를 도와주려 할 때 뒤에서 낮은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건조한 목소리와 담백한 표정. 어제 안내를 해 준 칠검주 정소연이었다.
“은인께 일을 시킬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습니다.”
“은인이요?”
“여희를 위해서 아무런 대가 없이 귀중한 물건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소연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지만, 어제보다는 훨씬 인간적으로 들렸다.
“곧 문주께서 나오실 겁니다.”
그녀는 그 말을 한 뒤 다른 검사들과 함께 연무장 정리를 마무리하고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검주면 대주 같은 건가?
‘십부장 같은 거지. 여기 있는 111명 중 100명은 일반 무인, 10명은 검주, 1명은 문주인 검후.’
-편제 한번 심플해서 좋군.
흑암이 킥킥 웃었다. 적당히 몸을 풀고 있을 때 계단 위에서 검후가 내려왔다.
“일찍 나오셨군요.”
“잠자리가 편해서 평소 깨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검후가 부드럽게 웃으며 백우진의 기운을 살폈다.
‘다시 봐도 놀라워.’
어제 잘못 본 게 아니다. 미숙하긴 해도 백우진의 상단전에는 어검의 묘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몸은 푸신 것 같으니, 바로 시작할까요?”
“그래 주시면 좋죠. 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걸 좋아해서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검후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백우진의 앞에 섰다.
“어검의 가장 큰 장점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죠.”
“자유 아닌가요?”
“역시!”
검후가 탄성을 내질렀다. 처음부터 어검의 위력이 아니라, 자유로움을 생각하다니, 역시나 범인을 벗어난 사고였다.
“맞아요. 자유. 다만 검을 통해 자유로움을 펼쳐내기 위해서는 의념과 오러를 동시에 잡아야 해요.”
검후가 손목을 세워 왼손에 든 검집을 앞으로 내밀었다.
치이이잉!
얇은 백검이 스스로 뽑혀 하늘 위로 떠 올랐다.
우우웅!
백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나와는 달라.’
검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허공을 부드럽게 유영했다.
단순히 부드러운 게 다가 아니다. 검과 검후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되어 있었다.
신검합일의 의념.
그 경지를 손을 떠난 상태에서도 연결한 것이다.
“그저 빠르게, 그저 강하게만 생각하는 건 잘못된 길이에요. 중요한 건 마음. 그리고 기의 흐름과 연결이에요. 멀리 보면 심검을 이룰 수 있는 요체죠.”
“심검….”
마음이 가는 곳에 검이 있다는 전설상의 경지가 갑자기 툭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아, 너무 놀라지 마세요. 저도 고서에서만 본 거라 그렇게 반응해 주시니 민망하네요.”
검후가 빙그레 웃자, 백검은 빛살이 되어 좌측 담장에 있는 나무로 날아갔다.
파앙!
백검은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나뭇잎을 꿰뚫어 버리고, 순식간에 다시 눈앞으로 돌아왔다.
‘빠르고 정확해. 거기에 자유까지 실려 있어.’
검후의 검은 빨랐고, 부드러웠으며, 정확했다.
가장 놀라운 건 떠오른 검으로 검술을 펼침에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는 점이었다.
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것 이상으로 검의 흐름이 완성되어 있었다.
우우웅.
검후는 허공에서 자신의 검술들을 펼쳐 낸 뒤 검을 불러왔다.
“어때요?”
“아주 조금이지만 감이 옵니다.”
백우진이 두 눈을 빛냈다.
기감을 넓게 퍼뜨리며 어검을 느꼈기에 앞으로 어떤 길을 추구해야 하는지 약간이나마 감이 잡혔다.
“지금부터는 어검의 구결에 대해 알려 드릴게요. 어제 말씀드렸듯이 참고만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저, 정말 구결을 알려 주신다는 겁니까?”
백우진이 입을 쩍 벌렸다.
‘그냥 해 본 말이 아니었어?’
구결이란 무예의 혼.
구결을 넘겨준다는 건 무예 그 자체를 넘겨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외부인인 자신에게 정말 구결을 알려 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각명주를 주시며 구결을 달라고 했으면 주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협제께서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셨으니까요. 이 힘을 세상을 위해 쓰시리라 믿어요.”
검후는 자신의 눈을 보며 활짝 웃었다. 그녀의 눈동자엔 조금의 사심도 없었다.
“아….”
백우진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세 사람에게 고마움을 빌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검후.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무영객, 문주영 고맙다!’
그 두 사람이 앞에서 깝쭉거린 덕분에 검후에게 어검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검술의 이름은 백운. 집중해서 들어 주세요. 일시무영화 백운지성….]검후는 전음보다도 한 단계 높은 심어를 통해 백운의 구결을 읊어 주었다.
-끄으윽!
흑암은 백우진과 검후를 보며 앓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이 운빨 검사 놈은 더 고생해야 하는데! 왜! 왜에!
왜 일이 이렇게 잘 풀린단 말인가.
사실 자신에게도 어검의 구결은 있었다. 일부러 알려 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다니, 일이 참 더럽게 안 풀린다.
-야! 야야!
확 짜증이 솟구쳐 백우진을 방해하려 들었지만, 녀석은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구결에만 집중했다.
[…백련우화운. 여기까지예요.]검후가 읊어주는 구결은 30분간 계속되었지만, 높은 오성 덕분에 모조리 외울 수 있었다.
“다 기억하셨나요?”
“전부 기억했습니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음, 제 나름대로 해석한 것도 있지만 그건 알려 드리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검후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는 그의 해석 방식이 있을 테니까.’
같은 무예를 익혀도 사람마다 해석의 방법은 다르다.
홀로 검을 익혀 온 백우진은 더욱더 그러할 테니, 자신의 방식을 알려 주지 않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듯싶었다.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드려요. 외부인에게 무예를 알려 주고도 이렇게 부담이 없는 건 처음이네요.”
백우진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검후는 포권을 취하며 싱긋 미소 지었다.
“낮에는 어검의 기본 수련을 하세요. 제가 보여드렸듯이 신검합일의 선을 늘린다고 생각하시면 좀 편할 거예요. 밤에는 알려 드린 구결을 해석하시면 될 테구요.”
“그게 좋겠네요.”
“수련하시면서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전 여희를 보고 있을 테니.”
검후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대박!”
백우진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어검술을 익히는 와중이었기 때문인지 백운의 구결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무조건 할 수 있어.’
지금의 기분이라면 백운의 좋은 방식을 따 와서 완전 새로운 어검술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흥! 그게 그리 쉽게 될 거 같냐?
흑암이 툴툴거리며 백우진의 어깨를 건드렸다.
-네 방식으로 해석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어검의 기본 수련을 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 둘을 언제 다 해서 내년에 쓰려는 거냐!
‘갑자기 왜 심술이야. 부러워?’
-시, 심술이 아니라, 이제 와서 만드는 새로운 어검으로 내년 싸움에 쓰는 건 무리라는 거다. 그냥 배우던 거나….
‘너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어.’
-응?
백우진이 손을 내젓자, 흑암이 검날을 갸우뚱했다.
‘내가 최근에 뭘 얻었는지 벌써 잊었어?’
-최근? 어어! 야, 양의심공!
‘그래. 간단히 말해서 난 구결을 풀어 새로운 어검을 만드는 것과 어검술의 기본 연습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거지.’
양의심공은 마음을 두 개로 나눠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심공.
머리로 무공을 만들고, 몸으로 수련을 해야 하는 이 상황에 가장 잘 맞는 능력이다.
‘양의심공이 있으니, 내년 1월 1일까지 새로운 어검을 만들고 실전에서 쓸 수 있을 정도로 훈련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야. 시간을 2배로 쓸 수 있으니까.’
백우진은 흑암의 검날을 손가락을 툭 밀며 씩 웃었다.
‘방해하지 말고 보고나 있으라고.’
부들부들 떠는 녀석을 놔두고 구결의 해석을 시작하며 허리춤에 찬 암인검을 허공으로 띄웠다.
‘된다.’
어검의 연습과 구결의 해석 모두 뇌 전체를 써야 할 정도로 힘든 일이건만, 머리가 두 개가 된 것처럼 그 둘을 동시에 할 수가 있었다.
암인검을 띄워 신검합일과 의념, 기를 밀어 넣으면서 검후가 알려 준 구결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진짜 미쳤어!’
자신이 생각해도 이 능력은 사기다.
뜨거운 희열이 전신을 스쳤다. 그저 말만이 아니라, 정말 새로운 어검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의지가 절로 솟구쳤다.
[초집중이 발동됩니다.]백우진이 두 가지 일에 온 정신을 쏟자, 초집중이 발동되어 그의 정신력의 질을 높이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 주었다.
-아아악!
흑암은 백우진의 번쩍이는 눈동자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양의심공과 각명주를 준 거였어!
시스템 이 정신 나간 놈은 이제 보상도 그냥 퍼주는 게 아니라, 계획적으로 퍼주기 시작했다.
어제 처음 본 타인에게 어검술을 배우는 정신 나간 상황이 대체 어떻게 나온단 말인가.
양의심공을 주고, 각명주를 줬을 때부터 이 상황을 계산한 게 분명했다.
-나한테는 맨날 고생만 시키고, 백우진한테는 퍼주기만 하고! 편애도 정도가 있지! 시스템 넌 나 만나면 순간 뒤통수부터 잡아라!
백우진이 집중하며 수련하는 연무장엔 흑암의 분노가 폭발한 비명과 허공을 노니는 암인검의 소리만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