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어검 (8)
처음엔 금발의 남자가 내 뒤쪽을 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그는 확실하게 나를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뭐지?
흑암의 기억을 여러 번 보았지만, 기억 속 인물이 이쪽을 의식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쳐다만 보는 게 아니라, 말까지 한다.
소리….
그러고 보니, 기억에서 소리를 들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흑암은 여자아이를 부둥켜안고 있었고, 금발의 남자는 유령처럼 스윽 일어났다.
달라.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조금 전까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스크린에서 배우가 빠져나오는 듯한 공포스러운 감각이다.
금발 남자가 완전히 몸을 돌려 걸어온다. 선해 보였던 그의 눈동자에 기이한 빛이 어린다.
성스러운 듯한 백광.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어울리지 않는 사이함이었다.
고오오오.
남자의 전신에서 무력과는 다른 무시무시한 격이 피어난다.
그 기운이 피부에 닿은 순간 심장이 꽉 조여들었다.
찌지직.
그가 걸어올 때마다 잔디가 눈을 맞은 듯 허옇게 가라앉았다.
“방해꾼을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은 흉흉한 살의다.
쿠구구구.
남자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이 점차 강해진다.
믿을 수 없는 압력.
이대로 있다가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당할 것 같았다.
젠장.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대로 짓눌릴 수는 없었다.
입술을 깨물며 단전의 오러를 끌어 올리려고 할 때 갑자기 유리창이 깨지듯 세상 전체가 쩍쩍 갈라졌다.
“또 방해하는 거냐!”
금발의 남자가 손을 뻗어온다. 갈라진 세상을 넘어 이쪽에 닿을 정도로 거대해진 손아귀가 쫙 펼쳐졌다.
쩌엉!
그 손이 내게 닿으려 할 때, 시야에 보이는 세상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며 정전이 된 듯 온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대체 무슨!”
이제야 말이 나온다.
“저 남자는 누구고, 넌 뭘 보여 주고 싶은 거야!”
시스템의 의도도, 기억에 불과한 저 남자가 이쪽을 의식한 것도 모두 의문투성이다.
확실한 건 저 남자는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과 아직도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것 정도였다.
[아직은….]구름이 낮게 깔리는 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아직 만나서는 안 돼요.]검은 세상에서 하얀 천이 너풀거렸다. 시스템의 모습과 목소리가 분명했다.
“잠깐! 네게 할 말이….”
[나중에 모두 알게 되실 거예요.]그녀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눈이 감겼다.
도와줄 테니까 설명 좀 하라고….
**
“으윽….”
백우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숙소의 천장이 보인다.
‘머리가 깨질 거 같아.’
예전에 흑암의 기억을 보았을 때는 푹 잔 느낌을 받으며 깼지만, 오늘은 달랐다.
게임을 하다가 랜선을 뽑은 것처럼 기억의 잔상과 고통이 뒤죽박죽으로 섞였다.
-게을러 빠져가지고!
흑암이 머리 위로 내려섰다.
-어검술 좀 익혔다고, 벌써 늦잠이냐?
“흑암! 너도 기억 봤지?”
백우진이 벌떡 일어나서 흑암을 잡았다.
-가, 갑자기 왜 이래.
“기억 봤냐고!”
-봤다. 나와 그 금발 놈은 친구였고, 그 아이는 그놈의 동생이었던 모양이더군.
“그거 말고.”
-엉?
“그 금발 남자 놈이 날 쳐다봤잖아!”
-뭔 개똥 같은 소리야! 너 어제 거짓말한 거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는 거라면 소용없다. 이번엔 절대 안 넘어가!
흑암은 속일 생각하지 말라고 중얼거리며 눈앞을 맴돌았다.
“진짜 모른다고?”
-그건 기억일 뿐인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네 기억에서….”
백우진은 금발의 남자가 일어나 다가온 것을 말해 주었다.
-그, 그게 말이 돼?
흑암이 검날을 부르르 떨었다. 그 꿈은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일 뿐이다. 기억에 있는 놈이 움직였다니, 미친 소리다.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해. 넌 알 수 있잖아.”
-으음….
그 말이 맞았다. 백우진과 연결되어 있는 걸 떠나서 녀석은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럼 진짜라는 건데.
“내 생각이지만, 그 금발 혹은 그놈의 부하가 드래곤하고 사해의 왕을 이쪽으로 보냈을 거야.”
-확실해?
“그놈이 날 인식하고 기이한 힘을 흘렸어.”
-기이한 힘?
“성스러운 백광 속에 사이함이 흐르는 기운. 뭐라 설명하기 애매하네.”
사해의 왕의 기억을 봤을 때 놈의 봉인을 푼 사람은 금발의 남자와 다른 외모였지만, 가지고 있던 기운은 비슷했다.
두 놈은 분명 관계가 있다.
“지금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그놈은 살아 있고, 날 노리고 있다는 점이지.”
-그건 동의한다.
자신의 과거 친구가 인간이라면 이미 죽었겠지만, 기억에서 움직이는 놈이 인간일 리가 없었다.
“어쨌든 나쁘지만은 않아.”
-적이 널 알아차렸는데 나쁘지 않다고?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야. 나도 적이 누구인지 알게 됐으니까.”
백우진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태양 빛을 받으며 일어섰다.
-쯧, 잘난 척은.
“근데 넌 그 남자를 보고도 아무 감정도 못 느끼는 거야?”
-음, 잘 모르겠다. 아이를 볼 때는 안타까웠고, 금발 놈을 볼 때는 열 받았다.
흑암은 기억을 보며 느꼈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어쨌든 위험한 놈인 건 확실하니, 조심해라.
“그래야지. 시스템이 날 놈과 떨어뜨린 건 지금은 상대할 수 없어서 그랬을 테니까.”
-음? 시스템?
“아, 그 얘기는 안 했네. 시스템도 만났어.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이런 쓰벌! 또 못 만났어!
흑암이 자신의 검날을 말벌의 날개처럼 빠르게 흔들었다.
-내 앞에 나타났으면 대가리를 깨 버렸을 텐데! 왜 너한테만 나타나냐고!
녀석은 기억이고 뭐고, 시스템을 만나지 못한 것에 가장 큰 분노를 터트렸다.
“후우….”
백우진은 난동을 부리는 흑암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녀석이 수백 살 먹은 마검이라니.”
혀를 차고서 숙소를 나섰다.
‘일단 이 일은 나중에.’
금발 남자와 시스템에 관한 일은 이곳이 아닌, 마루툰 대륙에서 해결할 일이다.
지금은 코앞에 다가온 아버지와의 결투만을 생각하기도 바빴다.
“수련 시작해야 하니까. 그만 투덜대고 빨리 와!”
**
백우진은 검각에 남았다.
낮에는 무너진 전각의 잔해를 치우는 일을 도와주며 머릿속으로 구결을 파헤쳤고, 밤에는 직접 어검을 날려 낮에 얻은 심득을 풀어 냈다.
검각의 검사들은 잠도 자지 않고 수련하는 자신을 질린 듯 보면서도 경의를 담아 대해 주었다.
-이, 이제 좀 돌아갈 때도 되지 않았냐? 벌써 20일이 지났잖아!
흑암이 비틀거리며 날아왔다.
-잔해도 다 치웠고, 검사들도 다 회복했고, 배울 것도 배웠으니 돌아가자. 응?
“벌써?”
-크으! 드라마 좀 보자고!
“아항.”
백우진이 피식 웃었다. 흑암은 드라마를 억지로 끊은 금단 증상이 솟구쳤는지 요즘 들어 더 과격해졌다.
-아항? 아하아앙? 다 알고 있으면서!
“가긴 가야지. 그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어.”
백우진이 고개를 돌려 연무장의 계단을 올려보았다.
-할 일?
‘절대자와 대련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계단 위로 검후와 검주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천천히 내려와 자신의 앞에 섰다.
“협제를 뵙습니다.”
열 명의 검주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백우진은 그들에게 마주 인사를 한 후 고개를 들어 올렸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백우진이 좌측에 선 여희에게 미소를 지었다.
“아, 네! 저,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 할지….”
여희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말을 더듬었다.
“원래 이런 아이가 아닌데. 백우진님을 원래부터 좋아했다고 하더군요.”
“조, 좋아한 게 아니라요!”
“그럼 싫어했니?”
“사, 사부님!”
“그래. 그래.”
검후는 후후 웃으며 여희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른 검주들도 따스하게 웃으며 여희와 검후의 장난을 바라보았다.
‘좋네.’
백우진이 흐뭇하게 웃었다. 저게 진정한 문파의 모습이다. 부러우면서도 백가를 꼭 저렇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장난은 칠 만큼 쳤으니, 이제 시작할까요?”
“전 준비됐습니다.”
백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연무장의 중앙으로 나갔다. 검후도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다.
-너 검후에게 대련을 하자고 한 거야?
‘그래.’
-어, 언제?
‘네가 드라마 보자고 찡찡거릴 때.’
-으윽….
‘돌아가면 네가 보고 싶다던 은은한 숲인가 뭔가 다 보여 줄게.’
-은밀의 숲이다! 그것도 시즌 2라고!
‘어쨌든.’
백우진은 킥 웃으며 흑암의 손잡이를 꽉 잡았다.
치이이잉!
서늘한 기운을 흘리는 흑암의 칼날을 향해 의념과 오러를 쏟아부었다.
의념과 오러의 선을 유지한 채 흑암을 손에서 놓았다.
고오오오!
흑암이 강맹한 기운을 흘리며 하늘에 섰다.
“그게 협제가 숨기고 있는 비장의 검이군요. 확실히 평범한 검이 아니네요.”
-흠, 저 여자 좀 알긴 하네.
검후는 빙긋 웃고서 그녀의 애검 백령검을 뽑았다.
우우우웅!
새를 날려주듯 검을 허공으로 날리자, 백령검이 우아하게 떠올랐다.
백우진과 검후는 같은 어검을 사용하지만, 떠오르는 방식부터가 달랐다.
“인사는 필요 없겠죠?”
“물론입니다.”
“그럼 오세요.”
검후의 손짓에 백우진이 두 눈을 빛냈다.
치이이잉!
흑암의 검병에 모아놓은 막대한 기운을 폭발시켰다.
콰아아아!
탄환이 쏘아지듯 흑암은 검은 선이 되어 백령검을 향해 날아갔다.
우우웅!
백령검은 나비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아 흑암의 궤도를 막아 냈다.
치아아앙!
강검과 유검이 부딪치며 어딘가 어긋난 듯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흑암과 백령검이 동시에 튕겨 나갔다.
“유검인데도 튕겨 나다니, 대단한 힘이네요.”
검후가 훗 웃고서 백령검으로 하얀 기운을 토해 냈다. 부드러우면서도 빠른 검격이 흑암을 향해 휘몰아쳤다.
“큭!”
부드러움을 담고 있음에도 힘이 가득 차 있다니, 대단한 기예였다.
-이 자식아! 제대로 못 해?
‘하고 있잖아!’
백우진은 쾌와 강, 와의 묘리를 담아 흑암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콰아아아!
백령검은 고무처럼 그 기운을 받아들인 뒤 흑암에게 되돌려 주었다.
‘다 받기는 무리야.’
백우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검후는 그냥 검격을 돌려 주는 게 아니라, 더 증폭시킨 힘을 던져 냈다.
‘그럼 이쪽도….’
흑암으로 퍼지는 기운을 막아 내거나, 튕겨 내지 않았다. 같은 유의 묘리를 이용해서 흘려 냈다.
유의 묘리에 유로 맞서는 묘수였다.
콰아아앙!
흑암의 칼날을 스쳐 지나간 검격이 허공에서 큼지막한 폭발을 일으켰다.
“역시 대단하세요.”
검후가 진심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강검을 고집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 찰나의 순간 검술을 전환하다니, 유연한 발상이다.
20살에 저런 수준이라니, 장래가 두려울 정도.
“그래도 아직은 질 생각이 없네요.”
“그러셔야죠.”
검후는 백운검결의 묘리를 풀어 내며 흑암을 몰아쳤다.
이 대련은 백우진을 위해서 한 것이지만, 자신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 점점 들뜨기 시작했다.
백우진과 검후는 흑암과 백령검을 이용해서 자신들이 가진 무위를 마음껏 펼쳐 냈다.
“허….”
검후가 헛웃음을 흘렸다.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백우진의 검이 담고 있는 묘리가 급변했다.
대체 몇 가지 검술을 익히고 있는 건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중간중간 뻗어 나오는 막대한 검격은 유의 묘리를 이용해도 흘려 내기 힘들었다.
싸울 때마다 강해지다니,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어검이 거의 완숙에 올랐어.’
제대로 된 어검의 수련을 시작한 지 30일 만에 저런 경지라니, 놀랍다 못해 경악스러웠다.
‘하지만….’
아직은 어설픈 모습이 보인다. 그렇기에 여기서는 꺾어 줘야 한다. 그가 자만하지 않도록.
우우웅.
검후가 심후한 기운을 끌어 올리며 서늘한 안광을 빛냈다.
‘아직은 밀려날 때가 아니야.’
**
‘역시 대련이 최고라니까.’
백우진이 흑암으로 겁화검형의 검로를 펼쳐 내며 미소를 지었다.
검후가 어검을 이용해서 검로들을 받아 주니, 실전 이상의 수련이 되었다. 아직도 그녀의 어검에서 배울 게 많았다.
-호오.
“음?”
대련을 즐기던 백우진이 움찔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기세가 바뀌었어.’
검후의 기파가 태풍처럼 웅대하게 퍼진다.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막대한 기운이다.
‘결착을 내자는 거로군.’
남은 힘을 끌어모아 끝을 내자는 뜻이었다.
-받을 거냐?
‘당연히 받아야지.’
백우진은 흑암을 자신의 머리 위로 띄웠다.
‘이것도 기연이니까.’
아버지와 결투 전에 이런 대련을 할 수 있는 것도 기연이다. 덩굴째 굴러온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이해가 빨라서 좋군요.”
검후가 빙긋 웃으며 백운선공의 기운을 압축시켰다.
“이번에 제가 사용할 초식은 백운검결의 절기 위영화예요.”
“제 검로는 극리입니다.”
“그럼 시작하죠.”
검후의 백령검이 장대한 빛을 내뿌렸다.
치이이잉!
검날을 미세하게 흔드는 것으로 백색의 꽃이 피어났다.
환과 변 그리고 유와 정의 어우러짐이 완벽에 가까웠다.
아름다운 꽃잎이지만, 저 안에는 대해처럼 광대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어설프게 공격하는 순간 막대한 기의 해일이 덮칠 것이다.
‘후우….’
백우진은 용암처럼 들끓는 오러를 끌어 올려 흑암에 밀어 넣었다.
고오오오!
흑암에 라사둠의 오러가 가득 실리며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냈다.
정오의 하늘이 밤이 된 듯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위영화의 꽃잎이 완벽하게 피어나는 순간 극리를 발동시켰다.
치이이잉!
흑암이 장대한 빛무리를 뿌리며 쏘아진다. 흑과 백의 빛이 갈라지며 새로운 길이 열렸다.
으득.
검후가 바싹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위력이다.
‘이런 어검이….’
기감으로 느낄 때와 천지 차이.
오러와 무리의 조화가 천의에 닿았다. 약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묘리들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질 수 없다.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백우진을 위해서.
쿠구구구!
백운선공의 기운을 극성으로 끌어 올려 백령검에 휘감았다.
백운선공의 오러가 중첩된 백령검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위연화를 피워 냈다.
하늘이라는 정원에서 백화가 피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이거라면 막을 수 있어!’
백우진의 극리는 여러 묘리가 합쳐졌지만, 결국 강검이다. 유검으로 막아 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우우우웅!
극리의 강렬한 빛이 다가온 순간 위연화의 꽃잎을 휘감았다.
콰아아아아!
수백의 꽃잎이 오므라들어 극리를 차단했다.
빛과 어둠.
어둠과 빛이 힘을 겨루는 듯 하늘과 땅이 극명한 대비의 빛을 펼쳐 냈다.
‘이, 이런….’
검후가 눈을 부릅떴다. 위연화라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만이었다.
백우진의 극리는 강검이었지만 열 개가 넘는 무리가 모여 격이 다른 강검이 되었다.
찌지지직!
부드럽기로 제일이라는 위영화의 꽃잎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퍼어어엉!
백색의 꽃이 떨어지고, 흑색의 길이 열렸다.
우우우웅!
흑암은 백색의 꽃잎을 즈려 밟으며 검후의 앞에 이르렀다.
꿀꺽.
검후가 자신의 코앞에서 둥둥 떠 있는 흑암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후우….”
한숨을 내쉬고 손을 내렸다.
“제가 졌어요.”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우진이 흑암을 뒤로 물리고 고개를 숙였다.
“양보요? 누가 봐도 전력을 다했는데 양보라뇨. 애들 보는 앞에서 망신 주셔 놓고.”
검후가 콧방귀를 뀌며 눈매를 좁혔다.
“어, 그, 그게….”
“농담이에요.”
농담도 섞여 있긴 했지만, 진심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계속 흘겨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악물고 이기려고 했어요. 협제께서 좀 더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네요.”
검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검 자체는 거의 비슷하고, 마지막에 보여 주신 극리라는 검로는 따라갈 수도 없을 것 같네요. 하, 장강의 물결이 무섭다더니.”
“아직 많이 모자랍니다.”
“후후, 그 성격이 마음에 들었지만, 절 이기고 그런 소리를 하니 좀 열 받네요.”
“으음….”
“농담이에요.”
이번에도 농담이라는 말과는 달리 째려보면서 입술을 삐죽였다.
-농담 맞아?
‘모르겠어.’
계속 농담이라고 하는데 표정과 분위기는 쌀쌀하다. 어쩔 줄 몰라 할 때 검후가 피식 웃었다.
“진짜 농담이에요. 저도 여러 가지로 깨달았거든요. 저 아이들도 공부가 됐을 테니, 만족해요.”
백우진이 검후의 손짓을 따라 외곽에 선 사람들을 보았다. 검각의 제자들과 문주영, 무영객의 표정은 모두 같았다.
너무 놀라운 무예들을 봤기에 파리가 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이제 하산하셔도 되겠어요.”
“검후께서 진심을 다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백우진이 왼손을 펼치고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어 모았다.
포권.
검후가 했던 인사를 돌려주어 감사를 표했다.
“감사는 이쪽이 해야죠. 수고하셨어요.”
검후는 백우진의 포권에 감격을 받은 듯 느릿하게 포권지례를 취해 인사를 받았다.
“우와! 검사님!”
무영객과 문주영이 들뜬 얼굴로 달려 나왔다.
“마지막에 그거 뭡니까? 검술이 아니라, 무슨 마법 같던데요?”
“처음 보는 거 아니잖아. 웨어울프가 덤벼들 때도 쓰셨다고.”
“나 그때 훔친 보석 보느라 못 봤어.”
“하아, 너랑은 대화가 안 된다….”
문주영이 한숨을 내쉬며 백우진에게 다가갔다.
“소가주님. 대련하실 때 서인아 아가씨께 문자가 왔습니다.”
“문자?”
백우진은 문주영에게 핸드폰을 받아서 문자를 확인하고 웃었다.
“드디어 완성됐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