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설영 (2)
백우진은 한시라도 빨리 설영검을 휘둘러 보고 싶어서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출구로 향했다.
덜컥.
서인아와 함께 계단에 올라가려 할 때 누군가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 좀 처리하느라 늦었는데, 벌써 가시는 겁니까?”
“아빠!”
계단에서 내려온 서공명이 안경을 고쳐 쓰며 부드럽게 웃었다.
“새 검을 써 보고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렇겠죠. 그 검 때문에 여기서도 난리가 났으니까.”
“죄송합니다. 제 물건 때문에 문제가 생겼네요.”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정도 대작을 보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라, 저희 장인들에게도 공부가 됐을 겁니다.”
서공명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목소리엔 진한 호감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소가주님은 얼마든지 문제를 일으키셔도 됩니다. 제 목숨도 구해 주셨고, 이전에 넘겨주신 전투선과 해상용 장비 덕분에 더 좋은 장비들을 제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성했으니까요.”
“서로 도우면서 사는 거죠.”
“전 도움만 받은 것 같습니다만….”
“아뇨. 저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백우진이 씩 웃으며 흑전호포와 설영검을 가리켰다.
-전투선하고 해상용 장비?
‘드래곤을 잡을 때 멍청이들이랑 내기해서 얻은 배랑 장비들 있잖아. 그거 사고 싶다고 해서 싸게 넘겨줬어.’
서공명은 배와 장비를 제 가격에 사겠다고 했지만, 어차피 공짜로 얻었고 필요도 없는 물건이라 낮은 가격에 팔아 주었다.
“사실 해상용 장비들을 분석하다가 새로운 도구를 만들었는데, 소가주님이 시험 삼아 써 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새로운 도구요?”
“예.”
서공명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검은 단추를 내밀었다.
‘단추? 이 형태는….’
백우진은 고개를 숙여서 흑전호포에 달린 단추를 보았다.
-어? 똑같네.
‘그러니까.’
서공명이 넘겨준 단추는 흑전호포의 단추와 완전히 같은 형태였다.
“녹음 장치입니다.”
“녹음 장치요?”
“기계 감지에도, 오러 감지에도, 마법에도 걸리지 않는 특별한 물건이죠.”
서공명이 단추를 보며 두 눈을 빛냈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눈동자다.
“아시다시피 고등급 능력자들은 뛰어난 감지력이 있어서 녹음기가 돌아가는 기계 소리나, 마나의 작용을 알아차립니다. 던전 내부나 전투 중이라면 모르겠지만, 평범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대화를 녹음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맞아요. 다 느껴지니까.”
“하지만 그 단추는 다릅니다. 소가주님이라도 녹음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겁니다.”
“음….”
“믿지 못하시는군요. 그럼 한번 시험해 보시죠. 단추의 앞면을 눌러 보세요.”
“알겠습니다.”
호기심이 일었기에 단추의 앞면을 살짝 눌렀다.
“소가주님만 느낄 정도의 진동이 있었죠? 그 상태가 녹음 상태입니다. 혹시 안의 소리가 들리거나 마나가 느껴지십니까?”
“아뇨. 전혀.”
백우진이 벙찐 얼굴로 단추를 살폈다.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조용한 곳임에도 녹음이 된다는 걸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단추를 향해 기감을 펼쳐 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단추를 누르면 꺼질 겁니다. 재생할 때는 앞면에 오러를 넣으면 됩니다.”
[소가주님만 느낄 정도의 진동이 있었죠? 지금 그 상태가 녹음 상태입니다. 혹시….]단추에 오러를 넣으니, 서공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의 기척도 없이 녹음이 되다니, 놀랍다 못해 신기할 정도다.
“단추의 앞이 아니라, 뒤를 잡으면 녹화가 되고….”
서공명은 단추의 사용법을 하나하나 알려 주었다.
“근데 갑자기 이 단추를 주시는 이유가 뭐죠?”
백우진은 단추가 아닌 서공명을 보며 물었다.
“소가주님은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무력이 있지만, 너무 선하십니다.”
-선하다고? 이 안경잡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무력이 아닌 치졸한 술수로 소가주님의 자리를 노리거나, 명예를 추락시키려는 자들이 나타날지도 모르기에 만들어 봤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시험 삼아 만든 물건입니다.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음….”
시험 삼아 만들었다고 했지만, 단추의 형태는 흑전호포의 단추와 완전히 같았다.
즉, 시험 삼은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만든 물건이 분명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가격은 확실하게….”
“그건 테스트 제품입니다. 저희는 완벽한 물건이 아니면 판매하지 않으니, 그건 그냥 가져가십시오.”
거짓말이다.
서공명이 하자 있는 물건을 넘겨주었을 리가 없으니, 이 단추는 바로 상용화를 시켜도 될 거다.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소가주님이 제 목숨을 구해 주신 일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뿐이죠. 인아야.”
서공명은 옆으로 빠져 있던 서인아를 불렀다.
“흑전호포에 이 단추를 달아 드리거라.”
“옙!”
서인아는 빼앗듯이 흑전호포를 가져가서 녹음 단추를 달아 주었다.
김장훈에 서인아, 그리고 서공명까지. 세 사람의 다정함에 자신의 마음까지 따스해지는 것 같았다.
-다들 모르고 있어….
감동한 백우진과 달리 흑암은 서씨 부녀를 보며 혀를 찼다.
-얘가 선해? 개똥 같은 소리! 이 자식은 수백 년을 살면서 본 인간 중에 제일 영악한 놈이라고!
**
루카스 녹색탑이 자랑하는 공중 정원.
하늘까지 솟은 나무들 사이로 투명한 호수가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반짝이는 호수의 옆엔 정원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사부님!”
오늘 그 정자에서는 수려한 정원과 어울리지 않는 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 된다.”
“젠장!”
녹색탑주 선우민이 고개를 저었고, 그의 수제자 엄우성은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백우진. 그놈을 이대로 놔둔다면 다시는 손댈 수가 없다구요!”
“이미 늦었다. 그는 손댈 수 없는 거물이다. 공격할 명분도 없고.”
선우민은 제자가 아닌, 호수 쪽을 보았다. 현재 백우진은 백천화와 동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를 건드렸다가는 녹색탑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놈이 제가 가져야 할 풍신의 보상을 훔치고, 제 이와 양팔을 부러뜨린 거 다 아시잖아요!”
엄우성은 자신이 먼저 백우진을 공격했다는 것을 잊고, 죽기 직전까지 맞은 것만 기억했다.
“백가에서는 네가 먼저 공격했다고 했고, 넌 거기에 대해서 아무 말도 못 하지 않았느냐.”
“그, 그때는…. 어쨌든 저만이 아니라, 같이 간 아이들까지 놈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았습니다! 이대로 참을 수는 없습니다! 사부님, 제발!”
엄우성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스승을 설득했다.
“후우, 지금 넌 너무 흥분해 있어. 머리 좀 식히거라.”
선우민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정자에서 일어섰다.
“사부님!”
“우성아. 우리는 마법사다. 강한 힘보다도 마음이 중요해. 네게 풍신주를 넘긴 건 힘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험을 통해 네가 인간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서였다.”
엄우성의 진짜 성격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평생을 키워 온 제자인데 왜 모르겠는가.
풍신의 시험을 치르지도 못했지만, 녀석의 모난 성격이 고쳐지고, 마음이 성장해서 돌아왔다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의 제자는 더 흉악한 심성을 가진 채 매일 복수만 외치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너와 대화할 생각이 없다. 복수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면 찾아오거라.”
선우민은 그 말을 남기고 정원을 떠났다.
빠드득.
엄우성은 부러질 정도로 거세게 이를 갈았다.
“제기랄! 제에기랄!”
그는 거친 욕을 뱉으며 정자가 무너질 정도로 주먹을 내리쳤다.
“원한이 깊군.”
“허억!”
등 뒤에서 들린 남성의 목소리에 엄우성이 황급히 뒤를 돌았다.
“너, 넌 누구야!”
검은 정장을 입은 장발의 남자였다. 머리 색은 붉었고, 눈동자는 파랬다.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잘생긴 사내였다.
“어떻게 여기에 온 거냐!”
엄우성이 마나를 끌어 올리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대답하지 않는다면 공격….”
“혹시 이렇게 생긴 놈을 죽이고 싶지 않아?”
남자의 얼굴이 진흙처럼 꾸물거리며 형태를 바꿨다. 2초도 되지 않아서 그의 얼굴이 백우진과 똑같이 변했다.
“배, 백우진….”
“그래. 백우진. 그런 이름이었군. 그놈을 죽이고 싶지?”
남자의 푸른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을 본 엄우성의 눈이 흐리멍덩하게 변해갔다.
“무, 물론이다! 놈을 죽인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어.”
“크하하하!”
백우진의 얼굴로 변한 남자가 광소를 터트렸다.
“제대로 찾아왔군.”
“대체 넌 누구….”
“네 소원을 들어줄 존재다.”
남자가 히죽 웃자, 그의 세모꼴 눈동자에서 빛나는 황금빛이 더욱 진해졌다.
“그놈을 죽일 힘은 내가 주도록 하지.”
**
“하아….”
선우민이 바닥에 낮게 깔릴 정도로 무거운 한숨을 흘렸다.
“대체 언제 정신을 차리려는지.”
엄우성에게 꾸준히 인성 교육을 했지만, 녀석은 앞에서만 선한 척을 하고 뒤에서는 악행을 벌였다.
자신이 막지 않았다면 벌써 큰 사고를 쳐서 녹색탑의 명예가 땅으로 추락했을 것이다.
“제자와 자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더니….”
선우민이 혀를 차고서 서류를 작성할 때 문이 열렸다.
“사부님.”
엄우성이다. 녀석은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음, 이제 좀 괜찮아진 모양이구나.”
“아주 편해졌습니다.”
“그래.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일은 별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앞으로 마법보다 마음의 안정에 힘쓰거라. 그리하면 언젠가는 협제의 명성에 맞먹는….”
“사부님. 아까 하셨던 말씀은 아직도 그대로입니까?”
엄우성이 웃었다. 그 웃음에서 뭔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뭐?”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정말 백우진에게 복수할 마음이 없으십니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썩 나가라!”
“그럼 됐습니다. 여기까지군요.”
“무슨….”
선우민이 두 눈을 부릅떴다. 엄우성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물들며,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괴이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제 사부님의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네가 미쳤구나!”
“노망난 사부님 대신 제가 탑주가 되겠습니다.”
“이놈! 네가 얻은 사악한 힘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건지… 윽!”
마나를 끌어 올리던 선우민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멈춰 섰다.
‘모, 몸이 안 움직여!’
엄우성의 금색 눈동자를 보자, 몸과 마나가 굳은 것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명예롭게 스스로 물러났다고 해 드릴 테니까.”
“너….”
“편히 가십쇼.”
엄우성이 양손에 마나를 모은 채로 선우민에게 다가갔다.
“크윽! 이대로 당할 것 같으냐!”
“소용없습니다.”
선우민의 심장에서 광대한 마나가 폭발하고, 엄우성의 손아귀에서 사이한 기운이 휘몰아치는 황금빛이 치솟았다.
쿠구구궁!
녹색탑주의 집무실 창문을 통해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다.
작은 그림자가 쓰러지고, 큰 그림자가 남았다.
홀로 남은 큰 그림자 옆으로 뿔과 날개를 가진 인간이 아닌 자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
백우진은 아케인에 다녀온 뒤 바로 개인 연무장에 들어갔다.
-바로 수련하려는 거냐? 진짜 징해….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수련장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로 올라가 암인검의 검집을 풀었다.
“그간 수고 많았다.”
암인검을 뽑아서 검날을 닦아 준 뒤 납겁했다.
터엉!
암인검을 검집에 담은 채로 땅에 박아 넣었다.
-뭐 하는 거냐?
“이곳에 이 녀석을 놔두면 내가 게으름을 부리고 싶어도 부릴 수가 없잖아.”
백우진이 멋쩍게 웃었다. 처음부터 함께했던 암인검이 이곳에서 지켜본다면 열심히 수련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허, 지금도 미친 듯이 하는데. 더 열심히 할 수가 있어?
흑암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백우진의 머릿속에는 수련과 뽑기 두 가지밖에 없을 거다. 진짜 지독한 놈이다.
툭.
백우진은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듯 암인검의 검병을 툭 치고 뒤를 돌았다.
“이제 꺼내 줘.”
-으, 없애 버리고 싶다….
“빨랑.”
-젠장!
흑암은 욕을 뱉으며 설영검을 꺼내 주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네.”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난다!
백우진은 흑암의 짜증을 흘려들으며 허리춤에 설영검을 착용했다.
암인검보다 살짝 컸지만, 무게는 비슷했다. 처음 착용했음에도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듯 익숙한 기분이다.
치리리링!
설영검을 뽑았다. 검신의 빛은 여전히 흑과 백으로 번쩍이며 신비로움을 뿜어냈다.
“어디….”
가볍게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보았다.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속을 시원하게 때린다.
-어떠냐?
“적응이 좀 필요하겠지만 마음에 들어. 능력치가 상승한 감각도 좋고.”
거짓말 좀 보태자면 기본 힘과 속도가 20%는 상승한 기분이다.
우우우웅!
오러를 끌어 올려 설영검에 주입했다. 흑과 백으로 명멸하던 검신이 어둠보다 진한 흑빛으로 물들었다.
치이이잉!
검신에서 칠흑의 강기가 피어난다. 그 강렬한 기운에 공기가 갈리고, 대지가 일그러졌다.
“음?”
백우진은 강기를 두른 설영검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직 검에 공간이 남았어.”
강기를 사용할 정도로 많은 오러를 주입했는데도 설영검의 공간을 채우지 못했다.
‘혹시….’
설영검의 공간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더 많은 오러를 집어넣었다.
콰아아아아!
그 순간 검신에 휘감긴 강기를 타고 냉기와 뇌전이 치솟았다.
설영검이 주인을 정하겠다고 힘자랑을 할 때 퍼져 나왔던 냉기와 뇌전이었다.
-미, 미친….
“허억!”
흑암이 경악하고, 백우진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묵뢰를 쓴 것도 아닌데….”
뇌기를 끌어올리지도, 묵뢰를 발동시키지도 않았건만 강렬한 뇌기가 공간을 지배했다.
-그게 다가 아니잖아!
뇌기만이 아니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지독한 냉기가 바닥에 깔렸다. 쩌적 소리와 함께 대지가 얼어붙었다.
-하필 저 두 기운이라니….
뇌기와 냉기 모두 정면 대결에서 사기라고 불리는 지랄맞은 능력들이다.
뇌기는 일순간 움직임을 마비시키고, 냉기는 움직임과 오러의 발동을 늦춘다.
그 두 기운을 오러만으로 만들어 내다니, 개사기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검이다.
“몸은 풀었으니….”
백우진이 설영검의 오러를 잠재우고 검집에 넣었다.
“제대로 해볼까.”
왼손으로 검집을, 오른손으로 검병을 잡았다. 발을 앞으로 뻗으며 전력을 다해 검을 뽑았다.
콰아아아!
검집에서 검이 아닌, 어둠의 파도가 치솟았다.
설영검의 검신에서 터져 나온 흑왕탄의 기운에 냉기와 뇌기가 어우러졌다.
콰아아아앙!
흑왕탄의 검격에 직격당한 연무장에서 무시무시한 폭발음과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후우웅!
황색 먼지가 가시자 수십 발의 폭격을 맞은 듯한 연무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
백우진이 신음을 흘렸다. 기분 좋게 흑왕탄을 내질렀을 뿐인데 말이 안 되는 위력의 검격이 터져서 연무장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스트레스 쌓였냐? 다 때려 부수려고?
“오, 오랜만이라 힘 조절이 안 됐어.”
-이 멍청아!
흑암이 백우진의 어깨를 내리쳤다.
-넌 검각에 가서 어검술만 배워 온 게 아니야! 어검으로 검술을 연습하는 동안 검술 묘리들의 숙련도가 올라가서 검로들의 위력도 상승했다고!
“윽!”
-거기다 새로운 검 때문에 능력치와 검로의 공격력이 올라갔는데, 그걸 평소처럼 쓰면 되겠냐! 연무장에 다른 놈들이 있었다면 모조리 뒤졌을 거다!
“미, 미안….”
백우진이 땀을 삐질 흘렸다. 강해졌다고 혼나다니, 웃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넌 네 무력에 대한 자각이 없어. 맨날 부족하다고 하다 보니, 정말 약한 줄 아는 거냐?
“오랜만에 전력으로 흑왕탄을 써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검사님!”
연무장의 문이 부술 듯이 열리며 무영객이 달려왔다.
“뭐, 뭡니까? 마족이라도 쳐들어온 겁니… 헉!”
무영객은 백우진의 앞에 펼쳐진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이, 이게 대체….”
“마침 잘 왔다.”
백우진이 무영객에게 손짓했다. 흑암의 잔소리를 멈추게 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예?”
“주기로 한 거 줘야지.”
흑암을 보며 드래곤의 발톱과 뼈를 꺼내 달라고 눈짓했다.
‘빨리 꺼내 줘.’
-하여튼 빠져나가는 데에는 선수라니까.
흑암은 한숨을 내쉬고서 드래곤의 발톱과 뼈, 비늘을 꺼내 주었다.
“오오!”
재료들을 본 무영객의 눈동자는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반짝거렸다.
“이게 드래곤의 발톱이군요! 으아아….”
무영객은 드래곤의 발톱과 뼈, 비늘을 한 번씩 만지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잘라 줄 테니까. 필요한 만큼만 말해.”
“으음, 그러면 발톱은 여기까지, 뼈는 요만큼만, 그리고 비늘은….”
무영객은 가지고 있던 펜으로 선을 그어서 재료들의 양을 알려 주었다.
우우웅!
백우진은 설영검에 강기를 담아 재료들을 잘라 주었다.
“뭘 만들 건데?”
“단검이랑 비도, 그리고 신발이요.”
무영객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며 웃었다.
“감사함다! 그럼 전 가 볼 테니, 열심히 수련하시길….”
“정지.”
백우진이 등을 돌리는 무영객의 어깨를 잡았다.
“예?”
무영객이 몸을 바르르 떨며 고개를 돌렸다. 녀석의 눈빛에서 격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배 까 봐.”
“그게 무슨….”
“후우….”
백우진이 한숨을 내쉬고 무영객의 상의를 들어 올렸다.
툭.
녀석이 옷 속에 숨겨 두었던 드래곤의 비늘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거 뭐냐?”
“죄, 죄송합니다!”
무영객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무릎을 꿇었다.
“달라는 만큼 줬는데 대체 왜 훔치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었다.
안 준 것도 아니고, 필요한 만큼 줬는데 훔친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정말 잘못….”
“됐고. 왜 훔쳤냐니까?”
“무, 무방비 상태인 보물을 보니까. 저절로 손이 갔습니다. 크흑! 저도 어쩔 수 없는 도둑인가 봅니다!”
-…….
“…….”
저 말은 자기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쟤는 우리랑 사고 방식이 달라.
“훔치려고 한 게 아닌데, 저도 모르게 소, 손이….”
“안 되겠다.”
백우진이 무영객을 끌어다가 연무장의 중앙에 놓았다.
“오늘 버릇 좀 고쳐 보자.”
“예?”
“내가 아직 힘 조절이 잘 안 되거든. 잘 피해 봐.”
설영검을 뽑아서 수직으로 내리쳤다.
“으아아아악!”
무영객은 다급하게 보법을 밟아. 짐승의 발톱처럼 뻗어 나가는 검격의 범위를 간신히 벗어났다.
-쟨 저래도 못 고쳐.
“못 고치면 내 검술 수련이랑 저 녀석 보법 수련은 되겠지.”
백우진은 피식 웃고서 무영객을 표적 삼아 검로를 내뿌렸다. 물론 맞지 않게 적당히 힘을 조절했다.
**
“이쪽으로 와.”
무영객을 목표로 모든 검로를 쏟아 낸 뒤 녀석을 불렀다.
“허억, 허억! 이, 이제 끝난 겁니까?”
무영객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곧 죽을 듯 거친 숨을 내뱉었다.
“다, 다시는 도둑질하지 않겠습니다. 정말! 레알루다가!”
“안 믿으니까, 이쪽으로 오라고.”
“아, 옙!”
무영객은 비틀거리며 백우진의 옆으로 다가갔다.
“이거 보고 전력으로 보법을 사용했을 때 피할 수 있는지나 말해 줘.”
“신기술입니까?”
“그래.”
-그걸 쓰는 거냐?
백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설영검을 양손으로 잡고, 발동어를 외쳤다.
“설화흑영.”
설영검이 가진 특수기 설화흑영이 세상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