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4 구역 (3)
“이랬단 말이지.”
백우진은 단추를 통해 두 탑주의 대화를 듣고 히죽 웃었다.
“이 새끼들 지금 검사님을 노리는 겁니까? 아주 미쳤구만?”
무영객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끙….
‘내 말이 맞았지? 이상하다고 했잖아.’
-아주 무당 납셨네! 무당 납셨어!
흑암이 검날을 바르르 떨었다. 저 괴물 같은 놈은 이제 귀신 같은 감까지 얻어 적이 짜 놓은 계획마저 때려 맞춰 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한 집단의 수장 놈들이 그렇게 찌질할 줄은 몰랐다. 지들이 먼저 문제를 일으킨 걸 잊은 건가?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놈들이니까. 그리고 그놈들만 찌질한 게 아니야.’
-응?
‘찌질하고 유치한 건 우리 아버지를 따라갈 사람이 없지.’
-그리 말하니 할 말이 없군.
흑암은 클클 웃으며 검날을 끄덕였다.
“저 근데 탑주들은 그렇다고 치고, 보스 몬스터를 데리고 온다는 엄우성은 누구죠?”
“몰라?”
“예? 으음, 모르겠는데요….”
무영객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레오를 얻을 때 갔었던 섬은 기억나지?”
“풍신의 섬이었던가? 저희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잖아요.”
“그 섬이 기억난다면 엄우성이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을 텐데?”
“음, 걔는 모르지만, 섬은 확실하게 기억나요. 제가 풍신의 구슬도 훔치고, 무기랑 도구들도 훔쳤으니까. 거기 호구 많았잖아요! 아, 재밌었는데.”
그때의 생각이 나는지 무영객이 손뼉을 쳤다.
“걔야.”
“예?”
“거기서 네가 구슬을 훔쳤던 호구가 엄우성이라고. 녹색탑주의 제자. 이름은 들어 봤을 텐데.”
“허억!”
-이야, 이름을 모르는 것도 대단하네. 진짜 이 도둑놈 마인드 하나는 거물이야. 거물!
흑암이 헛바람을 뱉었다. 지가 신나게 가지고 놀았던 녀석의 이름을 잊다니 대단한 배짱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
-왜?
‘쟤한테 엄우성은 구슬 주고, 무기 주는 호구였을 뿐이니까.’
백우진이 무영객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럼 그 호구가 검사님을 노리는 이유는….”
“섬에서의 원한 때문이겠지.”
“으아악! 죄,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무영객이 폴더폰처럼 직각으로 몸을 숙였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자신의 도둑질 때문에 백우진을 노리는 놈이 있다고 하니, 너무 죄송스러워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똑똑.
방문 밖에서 자로 잰 듯한 일정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문주영이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소가주님. 브리핑이 끝났습니다. 검사들은 회의실에서 대기시켜… 음? 분위기가 왜 이러죠?”
문주영은 무영객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영객.”
“예에….”
“고개 들고, 네가 설명해.”
“으윽….”
무영객이 말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너 또 무슨 사고 쳤어!”
“사실 이전에 풍신의 섬에 갔을 때….”
무영객은 단추를 통해 들었던 말들을 모두 문주영에게 전해 주었다.
“이 미친 자식! 너 때문에 문제가 생길 줄 알았어!”
문주영이 무영객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끄으, 죄송….”
“죄송할 필요 없으니, 그만 놔 줘.”
“예?”
“…알겠습니다.”
문주영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아, 무영객을 노려보면서도 백우진의 명령은 충실하게 이행했다.
“엄우성이 날 노리는 건 네가 구슬을 훔쳤기 때문이 아니야.”
“예? 그, 그럼….”
“내가 놈이 가져야 할 정령왕의 힘을 얻었고, 그 이후에 죽기 직전까지 팼었거든. 사실….”
백우진은 문주영과 무영객에게 다시 돌아가서 녹색탑 마법사들을 반 죽여 놓았던 사실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무영객이 도둑질을 하지 않았어도 난 결국 풍신의 힘을 얻었을 테니, 놈은 날 노렸을 거야.”
“그랬군요.”
“하아, 다행이에요.”
무영객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때문에 놈이 검사님을 노렸다면 진짜 도둑질 끊었을 거예요.”
-그냥 끊어!
“그냥 좀 끊어! 이 자식아!”
흑암과 문주영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됐고. 일단 준비부터 하자.”
백우진이 손을 올려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계획을 들었으니, 놈들의 뒤통수를 후려칠 준비를 해야지.”
사실 탑주들의 말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중요한 정보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첫 번째로 두 탑주가 말한 파괴 마법.”
“그게 뭘까요?”
“탑주들은 내게 속성 저항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법이 통할 거라 확신하고 있었어.”
두 탑주는 바보가 아니다.
그렇게 확신하듯 말한 걸 보면 평범한 속성 마법을 벗어난 특별한 마법을 준비했을 거다.
-파괴 마법은 모르겠고. 파괴의 마나라는 건 있다.
‘파괴의 마나?’
-두 가지 속성을 가진 마법사라고 해도 방출할 때는 하나의 속성만 사용한다는 거 알지?
‘물론.’
-파괴의 마나는 상극에 가까운 수 속성과 화 속성을 심장에서 조화시켜서 만드는 마나다.
흑암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파괴의 마나에는 상대의 속성 저항이나 방어를 무시하는 효과가 있다. 강기조차 녹여 버리니, 아무리 너라도 위험해.
‘그런 게 있었다니….’
-다만 우리 대륙에서도 쓰지 않는 마법이다.
‘응?’
-그 마법을 사용하면 몸이 붕괴한다. 아무리 고등급 마법사라고 해도 버티지 못해.
파괴의 마나를 사용하는 건 죽음을 각오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게 맞을 것 같아. 그 마법이라면 내게도 통할 테니까. 다만 이상해….’
백우진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놈들이 내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건 맞지만, 자신의 생명을 불살라 날 죽이려는 건 이해가 가질 않아.’
-하긴, 놈들이 정말 널 죽이고 싶었다면 진즉에 노렸을 테니.
‘몸의 붕괴를 막을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몇 번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방법은 없다. 그 마법은 원래 마족의 것이니까.
‘그럼 지금 고민해도 소용없군. 일단은 뭘 하려는 건지 알았으니 됐어.’
백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문주영과 무영객을 불렀다.
“지금부터 파괴의 마법에 대해 설명해 줄게.”
흑암에게 들었던 내용을 무영객과 문주영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역시 소가주님은 모르시는 게 없군요!”
“대단하십니다! 그런 마법이라니, 좀 무섭네요.”
“막거나 베지 말고, 무조건 피해. 타이밍을 알고 있으니 피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문주영 네가 모두를 이끌도록.”
“예!”
-크윽, 내 정본데….
‘고마워.’
흑암에게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한 뒤 두 번째 정보를 꺼냈다.
“두 번째로 엄우성이 보스 몬스터를 데리고 온다는 말을 통해서 보스를 조종한다는 뜻임을 알 수 있어. 즉, 놈에겐 보스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야.”
“그 녀석 녹색탑이잖아요. 그런 능력이 있나요?”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한 걸 보면 있겠지. 다만 그냥 할 수는 없을 거야.”
4구역에서 나오는 보스 몬스터의 수준은 8등급에서 9등급.
특별한 현혹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 능력을 증폭시키는 도구가 필요할 거다.
“그래서 여기선 네 역할이 필요해.”
백우진이 손가락을 들어 무영객을 가리켰다.
“저, 저요?”
“호구 한 번 더 털자. 네가 조커 역할을 하는 거야.”
-진짜 미쳤군.
흑암이 혀를 내둘렀다. 백우진은 두 탑주가 말한 짧은 대화를 통해 놈들의 계획을 낱낱이 파악하고 바로 대책까지 세웠다. 머리 회전이 비상한 걸 넘어 정신 나간 수준이다.
역시 저 녀석은 무력보다 대가리가 무서운 타입이었다.
“조커라는 칭호를 듣기만 해도 심장이 뛰네요. 너무 멋있어요! 조커!”
무영객은 조커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던지 손바닥을 비비며 히죽거렸다.
-조커가 아니라, 좁밥이겠지….
흑암이 백우진에게 넘어간 무영객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
백우진은 문주영과 의검대, 두 탑주와 마법사들, 박주훈과 협회 능력자들을 이끌고 4구역의 입구에 도착했다.
“지금부터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박주훈이 걸음을 멈추고 모두를 돌아보았다.
“이 결계 뒤에 있는 몬스터들은 최소 7등급이고, 강한 놈은 9등급이 넘습니다. 능력을 떠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이 많으니, 한 걸음마다 주의해 주세요.”
“우린 처음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
강백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좌측에 선 백우진을 보았다.
“그럼 검사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시선을 따라간 박주훈이 백우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가자.”
“예!”
백우진은 의검대의 우렁찬 대답을 들으며 결계에 발을 들이밀었다. 무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결계를 넘었다.
후우우웅!
눈앞으로 장대한 넓이의 숲이 나타났고, 숲 전체에 골프공 크기의 함박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좀 흘렀는지 땅 위에는 이미 발목 이상의 높이로 눈이 쌓여 있었다.
-눈이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그러게.’
박주훈의 브리핑에서 눈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아무래도 엄우성이 어떤 일을 벌인 것 같았다.
“크워어어어!”
4구역의 전경을 모두 살피기도 전에 하얀 털을 길게 늘어뜨린 거인이 숲의 중앙을 부수며 달려 나왔다. 8등급 몬스터 에티다.
“크아아아!”
에티는 순식간에 다가와 건물 기둥만 한 몽둥이를 내리쳐 왔다. 단숨에 때려죽이겠다는 기세다.
‘환영식 한번 화려하군.’
백우진이 피식 웃으며 설영검을 뽑았다.
쩌억!
거대한 몽둥이와 에티의 몸이 동시에 반으로 갈라졌다.
“끼아아아!”
“카아아악!”
내려앉는 에티의 시체 뒤로 작은 용의 모습을 한 가고일과 검은 피부의 하피들이 내려왔다. 8등급 몬스터 레이븐 하피와 9등급 드라쿤 가고일이었다.
“허억!”
“끄읍!”
뒤늦게 들어온 협회의 능력자들과 마법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몬스터들이 너무 빠르고 많아서 마법이나 능력을 쓸 여유가 없었다.
샤아아악!
백우진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며 설영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예리한 검신의 선을 따라 칠흑의 빛이 솟구쳤다.
쩌어억!
백지를 가르는 붓처럼 허공에 검은 선이 그어졌다.
“끼이익….”
“끄르륵….”
불길을 뿜고 발톱을 세우던 드라쿤 가고일과 레이븐 하피들의 몸이 비스듬히 갈라지며 눈 덮인 대치로 추락했다.
하얀 설원이 몬스터들의 피로 덮어지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박주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저 검을 가볍게 그었을 뿐인데 방향과 위치가 다른 몬스터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쪼개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으음….”
“쯧.”
김정우와 강백인은 백우진의 등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기운도 제대로 끌어 올리지 않고 저런 검격이라니, 듣던 것 이상의 괴물이었다.
“소가주님. 혼자 다 하시면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우리 연습할 기회는 주셔야죠.”
박혜리와 김우혁이 툴툴거리며 다가왔다.
“앞으로 싸울 일 많을 테니, 몸이나 확실히 풀어.”
“네!”
백우진은 홍아라의 낭랑한 대답에 미소를 지으며 박주훈에게 다가갔다.
“눈이 오는군요.”
“아, 죄송합니다. 분명 저희가 갔을 때는 이런 기상 변화가 없었는데….”
박주훈이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이미 벌어졌으니, 어쩔 수 없죠. 계획대로라면 입구에 있는 동쪽 결계부터 확인하는 거죠?”
“아, 예! 적탑주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김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사들과 함께 결계를 살폈다. 그는 결계를 확인한 뒤 박주훈을 불렀다.
“손상 상태가 꽤 심하네.”
“저, 정말입니까?”
“몇 년 전에 누가 3구역에서 난리를 쳤기 때문이겠지. 그때 정비를 해 놓았어야 했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어.”
김정우가 박주훈의 옆에 있는 백우진을 보며 눈을 흘겼다. 그는 이전에 흑전호포를 얻기 위해 만티코어를 잡았을 때의 일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백우진이 김정우와 눈을 마주치며 피식 웃었다.
“그때 정비를 제대로 하셨어야죠. 그럼 지금 편했을 텐데.”
흑살로 결계에 손상을 준 건 맞지만, 당시에 이미 알려진 일이었다. 김정우는 여전히 억지로 시비를 걸고 있었다.
-크하하하! 맞긴 맞네! 그때 했어야지. 일부러 시비를 건다고 해도 너무 뻔하잖아!
흑암은 입술을 깨물며 백우진을 노려보는 김정우를 보며 키득거렸다.
“크윽, 못 배워 먹은 놈이….”
“먼저 시비 걸고, 먼저 화내는 거 지치지도 않습니까?”
“닥쳐라!”
김정우가 강렬하기 그지없는 화 속성 마나를 뿜어 냈다. 바닥에 깔린 눈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하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않나.”
강백인이 한숨을 내쉬고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일단 결계부터 보수하고 나가서 싸우든 하게. 어서!”
“후우….”
김정우는 못 이기는 척하며 강백인을 따라 결계의 핵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의검대. 지금부터 이 자리를 사수한다. 쥐새끼 한 마리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예!”
백우진의 지시에 의검대가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며 기세를 불태웠다.
우우우웅!
두 탑주와 마법사들은 뒤를 한 번 힐끔 보고서 결계의 보수 작업에 착수했다.
“다음은 중앙이었죠?”
“아, 예!”
백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스 등장까지 남은 시간 00:00:00]시간은 멈춰 있었다. 즉, 이미 보스가 나와 있다는 뜻이었다.
-보스가 나왔음에도 아무도 모른다는 건. 그 엄우성이라는 호구가 숨겼다는 뜻이로군.
‘그래. 주의하면서 움직여야겠어.’
보스가 있는 건 알지만 어떤 보스인지는 알 수 없고, 엄우성에게도 어떤 능력이 있는지 모른다. 절대로 흥분하거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
우우우웅!
백우진은 기감을 흩뿌리며 좌측의 나무를 보고 눈을 빛냈다.
**
백우진은 일행들을 이끌고 동, 서, 남, 중앙의 결계를 보수했다.
이제 북쪽의 결계 하나만 남았고, 부상자도 없었기에 모두의 마음은 꽤 풀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협회의 능력자들만.
‘마법사들도 한패야.’
마법사들을 관찰하며 확실하게 깨달았다. 탑주들만이 아니라, 마법사들도 자신들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알고 있었잖아.
‘의심이 확인된 거지. 두 탑주는 날, 마법사들은 의검대와 협회의 능력자들을 노릴 거야.’
백우진은 문주영과 의검대에게 자신이 파악한 엄우성과 두 탑주의 계획을 알려 주었다.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모두 힘내 주세요!”
박주훈은 쾌활한 성격답게 북쪽의 결계의 앞에서 모두를 격려했다.
이전과 똑같이 마법사들은 점검을 위해 결계로 다가가고, 의검대는 그 앞을 지켰다.
“음….”
잠시 뒤 결계 확인을 끝낸 김정우가 다가왔다.
“이곳 결계의 손상은 그리 크지 않네. 금방 끝낼 수 있겠어.”
“오! 다행이네요!”
“대략 20분 정도 걸릴 테니, 잘 막아 주게나.”
“물론입니다.”
백우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김정우는 자신을 훑어보고 결계 쪽으로 돌아갔다.
‘이제 오겠군.’
찰나였지만, 김정우의 감정의 변화가 느껴졌다. 자신에 대한 증오가 기대로 바뀌었다.
-그 기대는 네 죽음에 대한 기대겠지. 확실히 좋은 타이밍이군. 모두 방심할 때야.
마지막 결계였고, 결계 보수 시간이 20분으로 짧으며, 부상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방심하기에는 최고의 상황이었다.
[이제 엄우성이 보스를 데리고 올 거다. 전부 준비하도록.]백우진은 의검대와 문주영에게 전음을 보내 주의시키고 기감을 흩뿌렸다.
쿠구구구!
15분 정도 지나고 사람들이 긴장을 거의 풀었을 때, 눈 덮인 숲 전체가 움직이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아!
30여 마리의 에티들이 숲을 부수며 달려 나왔고, 20여 마리의 드라쿤 가고일과 레이븐 하피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쇄도해 왔다.
“전원 전투 준비!”
“개진!”
“우리도 가자!”
문주영과 홍남기의 지시에 의검대가 앞으로 달려 나갔고, 박주훈과 협회의 능력자들이 무기를 뽑았다.
하지만 백우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히 멈춰서서 바로 앞의 허공을 바라보았다.
쩌억!
눈이 쏟아지는 공간이 길게 갈라지며 4m가 넘는 괴물이 그 거체를 드러냈다.
거대한 염소의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나선으로 솟구쳐 있었고, 상체는 오우거처럼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등에는 가고일처럼 악마의 날개가 펄럭였다.
-바포메트!
‘바포메트?’
백우진이 흑암을 돌아보았다.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는 자신도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몬스터의 등급을 벗어난 괴물이다. 투기와 마법 모두를 사용하는 놈이야! 라포르의 미궁에 갇혀 있어야 할 놈이 왜 여기에!
흑암이 경악한 눈으로 바포메트를 쏘아보았다. 놈은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다. 악의로 똘똘 뭉친 악마보다 더 사악한 존재였다.
‘재밌는 놈을 불러내셨군.’
흑암의 말대로 강해 보인다. 생각 이상으로 일이 재밌게 돌아갈 것 같았다.
우우웅!
바포메트가 열고 나타난 차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그중 회색 구슬이 매달린 지팡이를 가진 남자가 앞으로 나오며 후드를 벗었다.
“날 기억하고 있겠지?”
얼굴이 창백해지고,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변했지만 엄우성의 얼굴이었다.
“엄우성?”
백우진이 놀란 척하며 눈을 부릅떴다.
“네놈을 죽이기 위해 찾아왔다. 백우진!”
엄우성이 백우진을 노려보고 살의를 불태우며 강렬한 마나를 끌어 올렸다.
-여기서 정체를 드러낸다고?
‘일부러야.’
백우진이 엄우성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뭐?
‘자신에게 시선을 모아서 뒤에 있는 마법사들이 공격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는 거지.’
짧은 순간이지만,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이미 파악했다.
“바포메트! 놈을 죽여라!”
“끼에에에에!”
바포메트가 포효를 내지르며 땅을 박차자, 멈춰 섰던 에티와 가고일, 하피들이 함께 달려들었다.
쿠구구구!
엄우성과 녹색탑의 마법사들의 손아귀에서도 풍 속성의 마나가 폭발했다.
터엉!
백우진은 감각을 예리하게 갈고 닦으며 바포메트를 향해 달려 나갔다.
콰아아앙!
설영검과 바포메트가 내리친 대검이 격돌하며 새하얀 눈이 비산했다.
**
바포메트가 무시무시한 투기를 불태우며 대검으로 백우진을 내리찍고, 녹탑의 마법사들이 가진 마력을 모두 쏟아부었음에도 백우진은 밀려나지 않았다.
[끼이익….]바포메트의 당황이 담긴 울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백우진은 바포메트를 힘으로 밀어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기교가 아닌 힘으로 9등급에 이른 괴물을 압도하다니, 현실이 아닌 듯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엄우성은 조금의 당황도 없이 백우진을 넘어 그 뒤를 보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됐어.’
백우진과 의검대, 협회의 능력자들 모두가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뒤에서 두 탑주와 마법사들이 마법을 운용하고 있었다.
고오오오!
김정우와 강백인의 손아귀에서 내리는 눈처럼 하얀 기운이 타올랐다. 화 속성과 수 속성을 융합시킨 파괴의 마나다.
‘눈을 뿌린 보람이 있군.’
파괴의 마나가 가진 새하얀 빛을 감추기 위해서 이곳에 눈까지 뿌려 놓았다. 이제 그 노력의 결실이 맺어질 때였다.
우우우웅!
두 탑주의 손아귀에서 파괴의 마나가 쏘아졌다. 두 줄기 백광은 그야말로 빛살이 되어 백우진의 등을 노렸다.
‘끝났어!’
엄우성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파괴의 마나가 이미 발동되었는데도 백우진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백우진의 목숨은 이미 끊어진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우우우우!
파괴의 마나가 코앞에 이르렀을 때 백우진이 웃었다.
“기대했어?”
“뭐?”
“알고 있었다고.”
백우진이 풍벽을 그어 자신의 접근을 막고 뒤를 돌았다.
‘멍청한 놈!’
엄우성이 코웃음을 쳤다.
‘이미 늦었어!’
두 탑주가 사용한 파괴 마법은 그 어떠한 물질이나, 기운도 뚫어 버린다.
유도 기능도 있기에 일단 발동되었다면 대상에게 남은 건 죽음뿐이다.
‘물론 희생도 있지만.’
히죽 웃으며 두 탑주를 보았다. 두 사람에게 말한 것과 다르게 파괴 마법을 사용한 육체의 붕괴를 막는 방법은 없었다.
우우우웅!
엄우성이 다시 백우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놈의 검에서 칠흑의 강기가 피어났다. 놈은 그 강기로 파괴의 마법을 베려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강기로도 파괴의 마법은 벨 수 없다. 놈이 죽어 가는 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엄우성의 미소는 찰나의 순간조차 이어지지 않았다.
치이이잉!
백우진이 파괴의 마법이 지나가는 궤도를 검으로 긋자, 두 마법이 천천히 멎었다. 회전이 그치고, 마법이 안개처럼 흩어져 버렸다.
“아….”
“어억!”
“어?”
엄우성과 두 탑주가 찢어질 정도로 입을 벌렸다. 백우진이 검과 함께 죽어야 하는데, 오히려 파괴 마법이 사라지다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다야? 준비가 영 허술하네.”
백우진이 엄우성을 보며 서슬 퍼런 살기를 피워 냈다.
“아, 아악! 바포메트!”
엄우성이 기겁을 하며 바토메트를 불렀다. 하지만 바포메트는 응답하지 않았다.
“바포메트! 뭐 하는 거야!”
[…….]바포메트는 풀려 버린 눈으로 허공을 올려보고 있었다.
“대, 대체….”
엄우성이 기겁을 하며 돌아보다가 지팡이에 달아 놓았던 현혹의 구슬이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이거 찾아?”
우측 나무 위에서 간드러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밉살맞게 생긴 남자가 현혹의 구슬을 든 채로 빙긋 웃었다.
“너도 진짜 호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