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4 구역 (4)
쿠구구궁!
백우진은 바포메트와 힘 싸움을 벌이면서도 두 탑주에 대한 경계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의검대 앞으로!”
“앞으로!”
“우리도 가자!”
의검대와 문주영, 협회의 능력자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탑주들이 마법을 준비하겠군. 조심해라.
‘뻔하지.’
엄우성과 바포메트가 더 강한 기운을 방출하며 자신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만 봐도 놈들의 계획을 알 수 있었다.
‘좋아. 넘어가 주마.’
백우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바포메트의 투기를 가르며 검을 찔러 넣었다.
쩌어엉!
설영검이 채찍처럼 휘어지며 바포메트의 대검이 내리치는 궤도를 틀어 버렸다.
콰아아아!
달려가서 바포메트의 팔을 베려 할 때, 놈이 왼손에 든 지팡이를 겨누었다. 검은 지팡이의 끝에서 샛노란 뇌전이 번쩍였다.
쿠우우우!
엄우성도 바포메트를 잃을 수 없었기에 손아귀에 가득 모은 녹색의 마나를 터트렸다.
“그 정도로는 안 돼.”
눈밭을 미끄러지듯 달려가 바포메트가 만들어 낸 뇌전과 엄우성이 운용한 사이클론 캐논을 동시에 베어 냈다.
콰아아앙!
설영검에 베인 마법들이 폭발하며 주변의 숲을 휩쓸었다.
‘움직인다.’
백우진은 바포메트에게 다가가며 피부처럼 민감한 기감을 펼쳤다. 김정우와 강백인의 마나가 은밀하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저 이질적인 기운. 확실해. 파괴의 마나다.
흑암의 말대로 자연의 흐름을 억지로 비트는 듯한 기운이다. 청아한 숲 내음에 쓰레기 냄새가 끼어든 악취가 난다.
우우우웅!
전투 중이라면 듣기 힘들 정도로 낮은 소음과 함께 숨이 턱 막히는 지독한 기운이 등 뒤로 다가왔다.
-온다! 피해라!
‘그럴 필요 없어!’
백우진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파괴의 마법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잘못 피하면 다른 사람이 맞을 수 있다.
-그럼 어쩌려고?
‘베어야지.’
설영검에 풍과 뇌의 묘리를 가득 담아 허공에 그었다.
콰아아아아!
풍벽검흔으로 바포메트와 엄우성을 막아서고 뒤를 돌았다.
쿠구구구구!
파괴의 마나로 이루어진 두 줄기의 마법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쇄도하고 있었다.
‘괜히 파괴의 마나가 아니로군.’
마법에 닿는 모든 것이 지우개로 지운 듯 지워진다. 파괴의 마나라는 이름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백우진이 파괴의 마법 그 뒤를 보았다. 김정우와 강백인이 보인다. 그들의 눈동자가 말한다. 이미 넌 죽었다고.
하지만 저들은 모른다.
자신이 어떤 경지에 올랐는지.
절대자에 오른 무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콰아아아아!
설영검의 검신에 막대한 기운을 쏟아부으며 파괴의 마법에 집중했다.
초집중과 흐름을 보는 눈이 발동되며 빛살 같았던 마법이 굼벵이처럼 느려졌다.
‘보여.’
화 속성과 수 속성 마나가 뒤섞인 이질적인 흐름에서 부조화가 보였다.
‘광호섬.’
백우진이 설영검을 좌측으로 꺾었다. 두 줄기 마법이 자신의 심장을 노리는 그 순간 부조화를 향해 광호섬을 그었다.
찌지지직!
수천 마리의 새가 지저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새하얀 빛을 뿜어내던 파괴 마법이 허공에서 멈춰 섰다.
우우우우!
파괴 마법의 빛은 일출 때의 안개처럼 마지막 광채를 반짝이고서 사그라졌다.
설영검의 특성과 호흡을 베는 광호섬의 능력이 파괴 마법의 부조화를 베어 낸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김정우가 비명을 질렀다. 파괴 마법의 힘은 진짜다. 9등급 마법이나 강기도 녹여 버리는 파괴의 마법이 검에 베여서 사라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젠장! 바포메트! 놈을 죽여!”
엄우성이 시간을 벌기 위해서 지시를 내렸지만, 바포메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왜, 왜 안 움직이는 거야!
엄우성이 주먹을 휘저으며 명령을 내렸지만, 바포메트는 허공만을 바라보았다.
-몰랐다면 나도 당했겠어. 진짜 재빠르네.
‘그러게 말이야.’
백우진과 흑암은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얕은 나뭇가지 위에서 무영객이 회색 구슬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거 찾아?”
“어, 어느새!”
무영객의 손에 들린 구슬을 본 엄우성이 이를 악물었다.
“우리 검사님이 바람의 벽을 썼을 때 그 안쪽을 보려고 주의가 흩어졌잖아. 그때 훔쳤지.”
한 건 한 무영객은 배를 잡고 웃으며 낄낄 웃었다.
“이익! 바포메트!”
엄우성이 다리를 걷어차도 바포메트는 묵묵부답이었다. 예상대로 무영객이 뺏어간 구슬이 바포메트를 조종하는 열쇠였다.
“구슬에 오러를 넣어서 바포메트에게 명령을 내려 봐.”
“오호! 바포메트! 검은 로브를 입은 것들 후려 패 버려!”
무영객이 지시를 내리자, 바포메트가 붉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대검을 들어 엄우성을 향해 내리쳤다.
“으아악!”
엄우성은 다리에 바람의 마나를 두른 채 뒤로 훌쩍 물러났다.
[끼에에에!]바포메트는 긴 울음을 뱉어 내며 엄우성이 데리고 온 녹탑의 마법사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
박주훈이 혼이 빠져나간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보스 몬스터, 엄우성이야 그렇다고 치고, 탑주와 마법사들이 왜 자신들을 공격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놈들 엄우성과 한팹니다.”
“예에? 탑주들이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 타이밍에 우리를 노릴 리가 없죠. 노리는 건 나였지만, 살인멸구를 위해 당신들까지 공격한 겁니다.”
백우진은 박주훈에게 설명을 해 준 뒤 엄우성을 보았다.
“적탑주! 청탑주! 뭣들 하는 겁니까! 다시 파괴 마법을 쓰라고! 이대로 죽을 건 아니잖아!”
엄우성이 꽥 소리를 지르며 두 탑주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으윽….”
“망할! 놈들을 공격해!”
김정우와 강백인은 마법사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다시 파괴 마법을 운용했다.
-가만있을 거냐?
‘그럴 리가.’
백우진이 땅을 박찼다. 전설의 축지법이 발동된 듯 눈 깜빡할 사이에 두 탑주의 앞에 이르렀다.
하지만 두 탑주도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다. 이미 영창을 끝내서 자신을 향해 마법을 쏘아 냈다.
우우우웅!
김정우의 파괴 마법은 둥근 구체 형태였고, 강백인의 파괴 마법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파지지직!
백우진이 묵뢰를 발동시켰다. 사위로 퍼지는 뇌전을 따라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파괴 마법의 흐름을 눈에 담아 내며 부조화를 찾았다.
‘이제 알겠군.’
두 번째라 그런지 부조화를 찾는 속도가 빨라졌다.
샤아아악!
먼저 날아온 강백인의 마법을 광호섬으로 내리긋고, 김정우의 마법은 낙일참으로 갈랐다.
화아아아!
두 탑주가 사용한 파괴의 마나는 이번에도 설영검 앞에서 연기처럼 흩어졌다.
“허어억!”
“으헉!”
“미, 미친….”
김정우, 강백인 그리고 이제야 합류를 한 엄우성 세 명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저, 저거 괴물… 윽!”
“파이어 블링… 커헉!”
“모두 정지.”
백우진이 전방을 향해 막대한 기운을 펼쳐 냈다. 무시무시한 중압이 파도처럼 밀려가 마법사들을 내리눌렀다.
“아악!”
“크억!”
적탑과 청탑의 마법사들이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끄으윽!”
“으으….”
엄우성과 두 탑주는 부서질 정도로 이빨을 부딪치며 몸을 떨었다.
“어, 어떻게든 해야 해.”
“일단 브, 블링크로 물러나… 커헉!”
다시 마법을 사용하려던 김정우가 주저앉아 자신의 왼쪽 가슴을 부여잡았다.
아프다. 개미에 물린 것 같았던 작은 통증이 전신이 불에 타는 듯한 지독한 고통으로 변했다.
“끄아아악!”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크아아아!”
옆에 있던 강백인도 자신처럼 쓰러져서 땅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이제야 파괴의 마나를 사용한 여파가 찾아온 모양이군.
‘역시 이상해.’
백우진이 두 탑주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끄아아악!”
“으아아아!”
탑주들의 몸이 액체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인지 목이 찢어질 정도로 비명을 질러 댔다.
‘이 부작용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마법의 최고봉에 오른 저들이 이런 부작용을 모를 리가 없다. 아무리 자신이 미워도 이런 죽음을 각오하며 덤벼든 건 이상한 일이다.
“사, 살려줘! 아아악!”
“엄우성! 이 개새끼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김정우와 강백인은 백우진이 아니라, 엄우성을 향해 욕을 뱉고 괴성을 질렀다.
“몸이 녹는 것 같아! 끄으으!”
“사, 살려 줘! 아아악!”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어, 엄우성이. 전부 엄우성이 한 일이야. 이 마법도, 계획도! 제, 제발 살려 줘! 아니, 죽여 줘!”
백우진이 엄우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놈은 겁에 질려 뒤로 넘어갔다. 예전 풍신의 성에서 보았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지?”
엄우성을 향해 다가갔다. 탑주들의 계획에 엄우성이 낀 줄 알았지만, 그 반대였다. 알아보니, 엄우성의 계획에 탑주들이 낀 상황이었다.
“나, 나는….”
엄우성이 부들부들 떨며 뒷걸음질 쳤다.
“거기서 한 발이라도 더 움직이면 벤다.”
“흐읍!”
백우진의 살기 어린 목소리에 엄우성이 멈춰 섰다.
“솔직히 말해. 무슨 짓을….”
“여기까지로군.”
-저놈 목소리가 달라졌어.
‘그게 아니야.’
지금의 목소리는 엄우성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라, 놈의 그림자에서 흘러나왔다.
우우웅!
엄우성의 그림자가 확장된다. 머리 쪽에는 뿔 같은 것이 돋아나고, 등 쪽에서는 악마의 날개 같은 것이 피어났다.
“크하하하!”
“끄으윽!”
엄우성의 그림자가 광소를 터트리자, 엄우성은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바포메트를 불러 주고, 저놈들까지 세뇌시켜 줬는데 이런 결과라니. 쓸모없는 놈!”
“으아아악!”
그림자의 살벌한 목소리와 함께 엄우성의 몸이 반으로 쪼개지며 바닥에 시꺼먼 피를 뿌렸다.
우우웅!
피로 얼룩진 그림자에서 한 남자가 일어섰다.
붉은 머리에 푸른 눈이 인상적인 잘생긴 남자였지만, 놈에게선 믿기 힘들 정도로 사이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넌….”
“널 만나기 위해서 먼 곳을 건너온 손님이지.”
남자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모아 작게 고개를 숙였다.
-티르안?
‘알아?’
-저 새끼 마족이다! 그림자를 이용하는 최상급 마족! 분명 마계로 쫓겨났는데 어떻게 여기에….
흑암의 목소리가 낡은 기타처럼 바르르 떨렸다.
‘먼 곳? 쫓겨난 마족? 설마 그놈이….’
백우진이 티르안을 보며 안광을 빛냈다. 저 말대로라면 흑암의 기억에서 본 그놈이 이 마족을 보낸 게 분명했다.
“아, 이놈이 불쌍해서 그러는 거야?”
티르안은 엄우성의 시체에 시선을 고정한 백우진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럴 거 없어. 이놈은 제 손으로 스승을 죽인 놈이니까.”
“스승을 죽였다고?”
“그래. 녹색탑주라고 했었지, 아마?”
“음….”
-역시 티르안이 맞군. 놈은 인간의 그림자를 이용해 상대를 조종한다. 자식이 부모를, 제자가 스승을 죽이도록 지배하는 사악한 놈이다.
듣기만 해도 속이 뒤집히게 만드는 놈이다. 백우진이 입술을 깨물며 티르안에게 다가갔다.
“아아, 잠깐.”
티르안이 손을 저으며 히죽 웃었다.
“너 내 생각보다 더 강하더라고, 정신 마법에 방벽도 있는 것 같았고.”
“뭐?”
백우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티르안 자신이 바포메트와 싸우는 동안 여러 가지를 시험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림자에 숨어 있는 동안 술수를 좀 썼지.”
“뭐?”
“내 세계에 초대하마.”
티르안의 사이한 웃음과 함께 세상이 멈췄다.
우우우웅!
인간, 돌, 나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그림자가 이어지며 이 세상을 덮어 버렸다.
-조심해라!
“도련님! 피하세요!”
문주영이 자신도 모르게 백우진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그림자 속에 파묻혔다.
“이미 늦었어….”
백우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잘 알고 있군. 영계가 발동된 이상 막을 방법은 없어.”
티르안의 비웃음과 함께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자 하늘부터 땅까지, 보이는 모든 것이 검은 그림자로 물들어 있었다.
“내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저 하늘까지 솟구친 그림자가 땅에 닿을 때까지 이 세계는 끝나지 않아.”
백우진의 바로 앞쪽 그림자가 일렁이며 티르안이 솟구쳤다. 그의 모습은 아까와 달랐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붉은 머리에 퍼런 눈은 황금빛으로 번쩍였다.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등 뒤에 푸른 빛의 날개가 달려 있었다.
인간이 아닌, 놈의 그림자가 보여 주었던 악마의 모습이었다.
“넌 대체….”
백우진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듯 손을 떨었다.
“너 아주 대단한 사람에게 밉보였더군.”
“대단한 사람?”
“아니, 사람이 아닌가? 마족인 나조차도 놈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더군. 인간인지, 신인지, 마신인지.”
티르안이 턱을 긁으며 킥킥 웃었다. 그 웃음을 보자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설마 금발에 백광을 뿜어내는 인간을 말하는 거냐?”
“역시 너도 알고 있는 건가?”
-그럼….
‘예상대로야. 네 기억에서 나타났던 그놈. 혹은 그놈의 부하겠지.’
그 기억 이후 2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으니, 놈들이 자신을 노려 오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난 놈과 거래를 했거든. 널 죽이고, 네 기억을 가져오기로.”
“거래라고? 그럼 뭘 받는….”
“인간.”
티르안이 양팔을 넓게 벌렸다.
“만 단위의 인간을 산 채로 내어 준다고 했다.”
-어?
“뭐? 그게….”
“가능하다. 그놈들이라면 가능해. 어차피 넌 못 보겠지만.”
마계에 있는 자신에게 찾아올 정도이니, 그놈이 못 할 일은 없을 거다.
“그놈이….”
“죽을 놈이 궁금한 것도 많군. 이제 질문 시간은 끝이다.”
타르안이 입맛을 다시며 금안을 번쩍였다.
“몸이 움직이지 않겠지. 시간을 끌어 봤자 소용없다. 이곳의 지배자는 나야.”
“결계나 진법 같은 건가?”
“그 둘 모두가 섞인 곳이지. 지금부터 네 기억을 읽을 거다.”
티르안이 느릿하게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에 그림자의 세계에 파문이 일어났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그런 힘을 가졌는지, 어떻게 기억을 읽는지를… 어?”
티르안이 걸음을 멈추고 전신을 떨었다.
“너, 너 뭐야!”
백우진이, 움직이지 못해야 할 백우진이 목을 돌리며 몸을 풀고 있었다.
“나한테는 결계가 통하지 않거든. 네 말대로 정신 공격에 방벽도 있고.”
백우진이 피식 웃었다. 그 금발 남자는 정신 지배를 노리기 위해서 티르안을 불렀겠지만, 결계와 진법은 결계역장이, 정신 공격은 왕의 강벽이 막아 준다.
무력보다 강한 게 자신의 정신이었다.
“그리고 네가 이곳에 부른 건 나만이 아니야.”
“뭐?”
“나보다 더한 괴물도 같이 불렀지.”
“그게 무슨 소리….”
티르안이 백우진을 보다가 눈을 부릅떴다. 놈의 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솟구쳤다.
백우진을 넘어서는 큰 키에 전장의 장수라도 되는 듯 무시무시한 기상이 솟구쳤다.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패도적인 기파가 그림자의 세계를 잠식해 갔다.
구구구구!
인간이다. 아니, 인간을 벗어난 무언가다. 있을 수 없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파천의 기운이 하늘까지 타올랐다.
“그, 그놈은 뭐야! 뭐냐고!”
“내 친구.”
“친구가 아니다. 악우다.”
흑암은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나섰다.
“크으윽!”
티르안의 얼굴에 흐르던 여유가 훅 하고 날아갔다.
“젠장!”
그림자의 방벽을 세우고, 그 아래로 숨었다. 저놈이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이곳에서는 자신이 우위다. 숨는다면 찾을 수 없다.
“저놈은 내가 처리한다. 예전부터 없애고 싶었어.”
흑암은 대답조차 듣지 않고 땅을 박차며 주먹을 뻗었다.
콰아아앙!
솥뚜껑 같은 주먹에 그림자의 벽이 무너지고, 바닥으로 들어가려는 티르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콰아아아앙!
흑암이 오른발로 땅을 굴렀다. 그림자의 세계가 쩍쩍 갈라지며 가라앉던 티르안이 튀어나왔다.
“흐억!”
“어디 가냐?”
흑암이 티르안의 붉은 머리카락을 쥐고 놈을 들어 올렸다.
“자, 잠까… 커헉!”
티르안의 얼굴의 중앙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티르안의 잘생긴 얼굴이 길가의 깡통처럼 찌그러졌다.
“이놈은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최악의 악마다. 마계로 도망치기 전에 잡아 족치고 싶었는데 잘 걸렸어.”
티르안은 사람을 그냥 죽이지 않는다. 자식이 부모를, 형이 동생을 죽이게 만들고,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를 먹어 치우는 악귀다. 절대 그냥 보낼 수 없었다.
“크헉! 제, 제발!”
“닥쳐.”
흑암은 검조차 사용하지 않고 주먹질만 사용하여 티르안을 폭풍처럼 후려 팼다.
“하아….”
백우진은 한숨을 내쉬고서 한마디를 뱉었다.
“살려만 놔. 물어볼 게 있으니까.”
**
“그, 그놈은 부신관장 무리안이라는 놈입니다.”
티르안이 무릎을 꿇은 채로 입을 열었다. 놈은 뒤에 선 흑암의 발끝만 보고도 몸을 떨었다.
“또 그놈이군.”
“놈이 행동대장인 것 같아.”
사해의 왕, 드래곤, 그리고 앞에 있는 티르안까지 모두 부신관장 무리안이 보낸 놈들이었다.
“금발에 백광을 내뿜는 놈 맞지?”
“맞습니다.”
티르안이 즉답했다.
“놈은 어떻게 네게 나타났지?”
“저, 저는 마계의 왕께 벌을 받는 중이었는데, 제가 있는 마계의 끝자락까지 나타나서 당신의 기억을 가져오라고 제, 제안했습니다.”
티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제안을 받아들이면 이곳에서 꺼내 주고, 제물까지 주겠다고. 그래서….”
“그 외의 다른 말은 없었나?”
“다, 당신의 시체를 가져오거나, 기억을 읽어서 오라고만 했습니다.”
“그쪽도 널 경계하고 있군.”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암의 말대로 기억을 읽어서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려 하는 것 같았다.
트리안에게 다른 질문들을 했지만, 녀석이 아는 건 거의 없었다.
놈이 엄우성의 정신을 지배해 녹색탑주를 죽이고, 적색탑주와 청색탑주를 세뇌한 것만 알게 되었을 뿐이다.
트리안은 말 그대로 무리안의 심부름꾼밖에 되지 않았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는….”
“살려 둬서는 안 되는 놈이다. 이놈이 건드린 인간이 수천이 넘을 거다.”
백우진은 흑암의 말을 들으며 티르안의 앞에 섰다.
“살려만 주신다면 대륙으로 돌아가서… 커헉!”
설영검을 찔러 티르안의 심장을 터트려 버렸다.
놈은 자신의 몸에 흑암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앞으로 어떤 능력을 사용할지도 모른다. 이용하는 것보다는 죽이는 게 옳았다.
우우우웅!
트르안의 시체가 바닥에 물든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
“……?”
백우진과 흑암은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놈이 죽고 시체가 사라졌음에도 이 세계가 끝나질 않았다.
“이거 왜 안 끝나냐?”
“아, 그림자가 다 사라져야 끝난다고 했잖아.”
티르안은 이 하늘을 덮은 검은 그림자가 바닥에 닿아야 이 세계가 끝난다고 말했었다.
“그럼 한참 남았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던 흑암이 씩 웃으며 몸을 돌렸다. 마족을 잡을 때처럼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라면 오히려 잘됐다.
“오랜만에 몸 좀 풀 수 있겠어.”
그간 저 얌생이 백우진에게 얼마나 고통을 받았던가.
드라마로 사기 치고.
운 없다고 놀려 먹고.
지 필요할 때만 부르는 악덕 주인에게 복수할 기회가 찾아왔다.
스르릉.
흑암이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뽑았다.
“잠깐만. 흑암아. 칼은 왜 뽑아….”
“왜긴 왜야. 나와 대련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잖냐. 이것도 수련이다. 너 좋아하는 수련.”
“수련하자는 사람의 눈빛이 아닌데? 개인 감정이 실린….”
백우진이 손을 저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흑암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잘 아네.”
“응?”
“드라마로 구라 칠 때마다 네 뒤통수가 마려웠거든!”
흑암이 살기등등한 눈동자를 불태우며 돌진해 왔다.
“일단 진정하고 말로….”
“뒈져라!”
“이런 망할!”
백우진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설영검의 검병에 손을 올렸다.
“그냥 뒈질까 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