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05
305화. 결전 (2)
1월 1일.
새로운 해가 떠오른 그날.
전 세계의 사람들은 기대감을 가득 안은 채 새벽부터 TV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백우진과 백천화.
아버지와 아들이지만, 가치관이 정반대인 두 무인의 결투를 기다리느라 밤을 지새운 것이다.
-드디어 오늘이다!
-기다리느라 돌아 버리는 줄 알았음. 잠이 안 와!
-서른 넘어서 나이 먹는 날을 기다린 거 처음임. ㅋㅋㅋㅋ-그래서 누가 이길 거 같음?
-백천화지! 백우진이 절대자가 된 시간이라고 해 봐야 겨우 1년임. 그에 비해 백천화가 절대자에 오른 세월은 비교할 수가 없지. 볼 만한 싸움이겠지만, 승자는 이미 결정되어 있음.
-흑검대 어서 오고.
-윗윗놈 개쌉소리하네. 백천화랑 동급으로 여겨졌던 대연문주가 탈탈 털렸는데? 카이저도 같이 뒤졌는데?
-ㄹㅇ 백까네. 한 달 전에 적색탑주랑 청색탑주, 차기 녹색탑주에 마족까지 꼈는데도 백우진한테 다 터진 거 기억 못 하나?
-맞아. 그거 때문에 난리 났잖아요. 루카스 대국민 사과하고, 길드 활동 중지됐잖아요.
-검을 익힌 세월로 따지기엔 백우진이 가진 재능의 질이 다름. 지금 상황으로 보면 딱 반반임.
-에이! 아무리 그래도 백천화지. 백우진이 발버둥 쳐도 이기어검 쓰는 백천화는 못 이김. 거기다 백천화가 백우진에게 검술 알려 줬을 텐데, 약점도 다 알겠지.
-백천화가 검술을 가르쳤대.ㅋㅋㅋㅋㅋㅋㅋ. 백천화는 백우진 신경도 안 쓰고 챙겨 주지도 않았음. 백우진이 혼자 커서 기적 소리가 나온 건데 모르는 애들이 많네.
-여기도 그렇지만 토토 배당에서도 딱 반반 뜬 거 보면 막상막하긴 한 듯.
-오, 오늘만큼은 백우진이 되기 싫다. 오늘은 안 돼. 심장이 터져서 죽을지도 몰라….
전 세계의 사람들은 오늘 이루어질 두 절대자의 결투를 기대하며 서버가 터질 정도로 많은 게시글과 댓글들을 작성했다.
**
백우진은 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눈을 떴다.
바닥을 뚫고, 지하 깊숙한 곳까지 가라앉은 듯한 깊은 눈.
오늘 목숨을 건 결투를 한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침착한 눈이었다.
-정말 안 자도 되겠냐?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조금이라도….
“명상하는 게 더 나아.”
-그거야 나도 알지만.
흑암이 입맛을 쩝 다셨다. 백우진은 잠을 자지 않고, 해가 뜰 때까지 명상과 연공을 반복했다.
-잠을 자지 않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백우진 정도의 고수가 잠을 자지 않는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걱정해 주는 거야?”
-거, 걱정은 무슨! 네놈이 죽으면 새로운 노예를 찾아야 하니 귀찮을 뿐이다.
“죽을 일 없으니까.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백우진이 씩 웃으며 일어섰다. 목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몸을 풀었다.
-명상에선 뭘 했지?
“마음의 안정.”
어깨를 돌리며 흑암을 보았다.
“오늘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도 당황하지 않도록 정신을 가다듬었어.”
-좋은 자세다.
흑암이 기꺼운 웃음을 흘리며 눈앞으로 다가왔다.
-네 말대로 백천화는 바보가 아니고, 강하며, 악독하다. 분명 많은 준비를 해서 올 테니, 흔들리지 않는 정신을 전투 내내 유지하도록 해라.
“그래야지.”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와 티르안이 습격을 해 준 덕분에 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분노에 몸을 맡긴 연기로 방심을 유도하는 전략.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닐 거다.
전투적인 부분도, 무력의 성장도, 야비한 술수도 준비해 왔을 게 뻔하다.
-네 아버지는 언제라도 널 죽일 수 있는 사람이다.
흑암의 목소리가 늪지에 깔린 진흙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네게 조금의 감정도 없어. 적보다도 못한 인간으로 보고 있지. 기회만 된다면 네 심장을 뚫고 목을 벨 의지가 있다. 넌 그럴 수 있나?
부모나 형제에게 복수하다가 마지막에 마음이 약해져서 역습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백우진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었기에 확실하게 경각심을 세워 줘야 했다.
“…….”
백우진은 말없이 창밖을 보았다. 전생에서 살던 수련생 숙소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이 내 첫 번째 삶이었다면 네 말대로 힘들었을 거야.”
아버지는 아버지. 피와 살을 준 사람이니, 아버지를 죽이는 건 말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이건 두 번째 삶이다.
첫 번째 삶에서 힘줄을 끊고, 심장의 오러를 터트려서 쫓아내라고 지시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다.
백가의 성을 빼앗기고, 땡전 한 푼 없는 폐인이 되어 노숙할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백우진의 두 눈에 기광이 어렸다. 단호함과 신중함이 어우러진 진중한 빛이다.
-좋은 눈빛이다.
흑암이 마음에 든다는 듯 검날을 끄덕였다.
“너도 그거 쓸 준비 됐지?”
-물론이다. 언제라도 싸울 수 있다.
“그럼 됐네.”
백우진이 씩 웃으며 흑전호포를 걸쳤다.
“나도 완벽하게 준비됐으니까.”
허리춤에 설영검을 착용하고 방문을 열었다.
“우진아.”
바로 대연무장으로 가려 할 때 백위전 로비에서 한 남자가 다가왔다.
“부가주님?”
부가주 백천웅이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은색 물병을 내밀었다.
“굶고 가는 거지?”
“예? 아, 예.”
백우진은 벙찐 얼굴로 백천웅이 내민 물병을 받았다. 열린 틈으로 따스하면서도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녹차의 향이었다.
“녹차?”
“네가 아침을 먹지 않고 갈 것 같아서 말이다.”
백천웅이 부드럽게 웃었다.
“역시 절 잘 아시네요.”
“내가 재배한 찻잎으로 만든 차다.”
백우진이 고개를 꾸벅이고 차를 마시려 할 때 백천웅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차를 재배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더구나. 날씨와 온도를 생각해야 하고, 땅도 물도 관리해야 해서 여러모로 귀찮았지. 그래도 녹차 나무가 제대로 성장해서 잎을 피우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더구나.”
“음….”
“내겐 네가 그 찻잎 같았다. 어리고 미숙했던 녀석이 지금처럼 거대한 인물이 되었으니,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래서 그 첫 번째 차를 너에게 주고 싶었다.”
“…….”
백우진은 말없이 녹차가 들어 있는 물병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뚜껑을 열고 입 안으로 녹차를 흘려 넣었다.
고급 차와는 전혀 다른 꺼끌꺼끌함이 혀를 적셨다.
씁쓸했고, 향이 진했으며, 고소함은 덜했다.
외부에서 판매하기 힘든 맛이지만, 그 어떤 제품도 따라올 수 없는 따스함이 가슴을 울렸다.
그 자리에서 병에 담긴 녹차를 모두 마셨다. 밥을 먹지 않았음에도 속이 꽉 찬 것 같은 포만감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다치지 말거라.”
-이기라는 말도, 힘내라는 말도 아니군. 멋진 사람이다.
‘평생을 홀로 싸워 온 사람이니까. 나도 따라갈 수 없는 분이야.’
평생을 가문을 위해 싸우고, 마지막엔 가문의 검사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남자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상 없이 이기겠습니다.”
백우진이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백천웅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소가주님을 뵙습니다!”
백천웅의 배웅을 받으며 백위전을 나섰다. 줄을 지어 대기하던 문주영, 무영객, 의검대가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어 올리는 모두의 눈동자에도 기대는 없었다. 그저 신뢰뿐이었다.
-네 주제에 인연 하나는 잘 쌓았어.
‘과분하지.’
백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가자.”
**
“후우….”
흑검대주 강원진이 얕은 한숨을 내뱉고 꽉 닫혀 있는 연공실의 문을 열었다.
한동안 열리지 않아,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껌껌한 어둠이 나타났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어두운 방의 중앙을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처음부터 백천화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존재감이었다.
하지만 그의 뻘건 눈동자가 번뜩이는 순간. 거대한 연공실 전체가 진득한 악의와 살기로 가득 찼다.
“으음….”
강원진이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시간인가?”
아교가 달라붙은 듯 꽉 닫혀 있던 백천화의 입이 열렸다.
“예.”
“알겠다.”
백천화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새빨갛던 눈동자가 검은빛으로 가라앉았다.
백우진에게 보여 준 것과 달리 냉정함과 광폭함이 어우러진 듯한 모습이었다.
“준비는 끝나셨습니까?”
“그곳에서 얻은 세 가지 모두를 완벽하게 습득했다.”
“경하드립니다!”
강원진이 연공실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끝났어.’
백천화가 그 세 가지를 모두 얻었다면 새로운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결투의 승자는 이미 결정되었다.
“준비는?”
백천화가 서늘한 미소를 그리며 몸을 일으켰다.
“모두 끝났습니다.”
“너무 쉽게 끝날 것 같아서 걱정되는군.”
연공실을 나서는 그의 등 뒤로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흉흉한 기운이 펼쳐졌다.
**
백우진과 백천화의 결투가 벌어질 대연무장의 양옆으로 참관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무도 기대되는 대결이었기에 참관인들의 얼굴은 흥분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오늘이 왔군.”
단상 위에 선 백연휘가 손님들을 보며 귀밑머리를 긁적였다.
“난 아버지가 술수를 써서 이 결투를 멈출 줄 알았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있던 백은경이 눈매를 좁혔다.
“실제로 멈추려고 하긴 했지. 우진이가 잘 막았을 뿐.”
“그렇긴 하네. 대연문주를 이용할 줄이야.”
두 사람은 백천화가 백우진을 죽이기 위해서 카이저와 대연문주를 이용한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가 이길 거 같아?”
백은경이 의자에 앉으며 텅 빈 연무장을 보았다.
“누가 이기냐라….”
백연휘가 턱을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진이가 이기기를 바라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군.”
막냇동생의 성장은 자신이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지만, 아버지가 쓰러지는 모습도 상상이 가질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야.”
백은경이 턱을 괴며 눈을 내리감았다.
“두 사람의 무력은 우리의 예측 범위를 벗어나 있어. 그간 어떻게 변했을지도 모르고.”
백우진과 백천화는 절대자 중에서도 각기 다른 영역을 구축했다. 한참 아래인 자신들이 결과를 예측하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됐든….”
백연휘가 자신에게 배정된 의자에 앉으며 두 눈을 빛냈다.
“오늘의 승자가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자기 가문의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이 경천동지할 결투의 승자가 천하제일이 될 거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온다.”
“음?”
백연휘의 긴장 어린 목소리에 백은경이 좌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백우진이 의검대와 함께 연무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네.”
백우진의 걸음에는 힘이 넘쳤고, 그의 눈동자는 한밤의 호수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기대감과 걱정을 모두 털어 버린 모습이었다.
“난 놈은 난 놈이야.”
자신감 넘치는 걸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졌다. 백가와 어울리지 않지만, 또 가장 잘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저쪽도 왔다.”
“으음, 벌써 저런 기운을….”
백은경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백우진의 진중한 기운과는 전혀 다른 패도무쌍의 기운이 밀려온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독한 기세와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전포를 두른 백천화가 연무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버지도 달라지셨어.”
백연휘가 마른침을 삼켰다. 백우진을 보며 미소가 지어졌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다.
‘강함과는 달라….’
백천화의 살벌한 기파가 닿는 순간 심장이 꽉 조여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죽음, 파멸의 기운을 흘리는 괴물이 다가오는 기분이다.
“저런 기운이라니, 악몽 같아. 대체 무슨 짓을….”
백은경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백천화의 기파가 너무도 살벌하여 이대로 있다간 질식할 것만 같았다.
“이, 이길 수 있을까?”
“…….”
아까와 같은 백은경의 질문에 백연휘는 백우진을 보았다.
그는 백천화가 뿌리는 막대한 기파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잔잔한 눈빛을 발하며 석상처럼 그 자리를 지켰다.
“이길 수 있어.”
백연휘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우진의 덤덤한 얼굴을 보고 있자, 전방의 악몽을 부쉈을 때의 녀석이 생각났다.
“녀석의 특기는 악몽을 끝내는 거니까.”
**
백우진은 연무장에 서서 다가오는 백천화를 바라보았다.
신검이 그려진 백색의 전포에 허리춤엔 최흉의 천류검이 흔들린다. 살기로 가득 찬 적색의 눈빛을 불태우며 다가오는 모습은 귀기가 서려 있었다.
-무서운 기파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군.
‘그래.’
흑암의 말대로 피부를 아리게 만들 정도로 진한 살기였다.
쿠구구구.
백천화는 더욱더 흉악한 기파를 끌어 올리며 자신의 앞에 섰다. 대기 자체가 그의 통제에 있는 듯 뻘겋게 일렁거렸다.
“마지막 기회를 주마.”
“기회?”
“여기서 멈추고 무릎을 꿇어라.”
백천화가 인심을 쓰는 듯 손을 내밀었다.
“이 신검백가를 잇는 사람은 결국 너다. 고작 십여 년을 당기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건 미련한 짓이다. 내가 너를 위해서….”
“그게 아닙니다.”
백우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 신검백가의 가주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막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날 막아?”
“신검백가는 길드도, 문파도 아닌 가문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길드나 문파보다 훨씬 차가운 장소입니다. 검사들의 유대감은 제로에 가깝죠.”
그간 생각해 왔던 신검백가의 문제가 자신도 모르게 술술 흘러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는 가문의 명예와 확장만을 생각하셨습니다. 그건 구멍 난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결국엔 텅 비어 버릴 겁니다. 제대로 된 근원이 없으니까요. 이 가문이 그러합니다.”
“닥쳐라!”
“가문의 검사들이 범죄자나 다른 길드에 당해도 아버지는 그 이후에 얻을 것만을 생각하셨습니다. 위기에 빠진 검사들을 구하기는커녕 그들의 죽음으로 얻을 이득만을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아는 그 어떤 장사꾼들도 그렇게 추잡하진 않습니다!”
더러운 일을 한다고 욕을 먹는 블랙마켓의 유진아도, 스스로 장사꾼이라고 말하는 서공명도 자신의 사람은 목숨처럼 아꼈다.
신검백가의 백천화라는 이름값에 비하면 작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훨씬 훌륭하게 보였다.
“신검백가는 처음부터 그런 가문이었다! 나는 그저….”
“그럼 바꿔야지요. 아버지는 힘도, 능력도 가지고 계십니다. 잘못된 길을 바꿀 능력이 있음에도 하지 않은 건 능력이 모자란 것보다 더 치졸합니다.”
“네놈이 정녕….”
백천화의 전신에서 천지를 압도할 기파가 치솟았다. 연무장을 덮은 모래 알갱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현재 가문은 반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아버지를 따르는 사람 반 그리고 저를 따르는 사람 반. 가주가 멀쩡하게 살아 있음에도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백우진의 전신에서 백천화의 기파에 뒤지지 않을 장대한 서광이 어렸다. 스스로의 의지와 그간 쌓아온 업이 패왕의 격이 되어 그의 뒤를 받쳤다.
“백가는 가주의 권력이 절대적인 가문. 아버지가 제대로 가문을 이끌었다면 제가 무엇을 해도 저를 따르는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저들이 저를 따르기 시작한 이유는 아버지의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네놈이 첫째와 둘째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였지 않느냐! 물질적인 것을 가져다주면 당연히….”
“사람들이 제게 마음을 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돈? 명예? 강한 무예? 아닙니다. 제가 저들을 설득할 때 한 말은 그저 하나였습니다. 가문을 가문답게!”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울분을 그대로 말로 내뱉었다.
“가문의 일원들을 경쟁자로밖에 볼 수 없는 이 차갑고 지독한 가문을 바꿔 주겠다! 동료를 동료로 여기고 식솔을 보호할 수 있는 벽이 되어 주겠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너….”
“저는 이 냉정하고 차가운 가문을 바꾸고 싶습니다. 그 생각은 처음 검을 잡았을 때부터 시작됐고, 제가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벌주를 마시겠다는 건가?”
“그 답변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제가 검을 다시 든 그날부터!”
“다시 검을 들어?”
백천화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뭐든 상관없다. 제안을 걷어찬 건 네놈이니 죽어도 원망하지 말거라.”
“저도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죠.”
백우진이 백천화를 향해 오른손을 내뻗었다.
“지금 결투를 포기하신다면 아버지의 오러를 끊어 버리는 정도로 봐 드리겠습니다. 제 마지막 제안이 어떠신지?”
“하! 크하하하하!”
되로 주고 말로 받은 백천화가 광소를 터트렸다. 그의 웃음이 퍼질 때마다 연무장이 대기가 요동쳤다..
“찢어 죽여 주마.”
백천화의 어깨 위로 소름이 돋아 오를 듯한 끈적한 살기가 타올랐다.
쿠아아앙!
바닥이 깊게 내려앉을 듯한 막대한 충격파가 공간 전체를 뒤흔들었다.
“시작 신호는 필요 없겠죠.”
백우진이 자세를 낮추며 설영검의 검병에 손을 올렸다.
“네놈이 어떻게 죽을지나 생각해라.”
백천화가 장포를 걷고 천류검을 뽑아 들었다.
두 절대자는 언제라도 상대의 심장을 찌를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한 채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툭.
지켜보고 있던 참관인이 떨어뜨린 커피잔이 바닥에 닿는 순간.
백우진의 흑왕탄과 백천화의 적류폭이 맞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