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20
320화. 선택 (2)
[선택]신검백가는 위대한 가문이 되었고, 당신은 위대한 검사로 우뚝 섰습니다. 흩날리던 맹세가 굳건한 기둥이 되었으니, 이제 선택할 시간입니다. 이 세계에 남을지, 마루툰 대륙으로 건너가서 모든 일을 끝낼지 선택하세요.
조건: 퀘스트를 수락하면 30일 뒤 마루툰 대륙으로 전송됩니다. 퀘스트를 거절하면 흑암과 시스템이 사라지고, 이곳에 남게 됩니다.
보상: 없음.
백우진은 차분한 눈으로 퀘스트 내용을 읽어 내렸다. 평소와 달리 진지하면서도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문체였다.
“올 게 왔지만, 내게 선택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런 퀘스트가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선택권을 자신에게 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퀘스트를 받아들이면 한 달 후 마루툰 대륙으로 넘어가는 거고, 거절하면 여기 남아서 백가의 가주로 사는 거지?”
-그래.
“이상하지 않아? 시스템이 날 키운 이유는 내게 원하는 게 있어서잖아. 왜 선택권을 주는 거지?”
백우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스템은 흑암이 매번 난리를 칠 정도로 많은 보상을 퍼 줘서 지금의 자신을 키웠다.
분명 바라는 게 있을 텐데, 이곳에 남는 선택지를 주는 건 이상한 일이다.
-왜인지 대충은 알 것 같군….
“왜?”
-너와 함께 오랜 기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네가 더 잘 알겠지만, 시스템은 기계가 아니라, 감정을 가지고 있다. 즉, 네게 정이 들었다는 말이지.
“아!”
-넌 미래를 알고 있고, 그 누구와 싸워도 가볍게 이길 정도로 강해졌다. 네가 이곳에 남는다면 최강의 무인이자, 최고의 가주로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다. 하지만….
흑암은 비웃음 혹은 안타까움이 어우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루툰 대륙에는 내 기억에 나오는 금발 놈이나, 무리안의 힘이 직접 미치는 곳이다. 천년 넘게 내려오는 최고의 무예를 익힌 자들과 싸울 수도 있고, 타락한 다크엘프와 흑귀들은 수도 없이 많지. 아무리 너라도 위험한 곳이야.
“…….”
백우진은 조금은 흥분한 듯한 흑암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거기다 시스템도 이곳에서처럼 널 도와주기 힘들지도 모르지.
“그래서 시스템이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런 선택지를 준 거라고?
-내 예측이지만 그렇다.
“그럼 너희는? 나를 이렇게 키워 놓고 쓰지 않으면 너희는 어쩌려고?”
-뭐, 어떻게든 되겠지?
흑암은 남 일처럼 덤덤한 목소리로 검날을 으쓱였다.
“넌 괜찮아? 그 금발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가 살아 있는지, 그 여자아이는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기억을 되찾아야 하잖아.”
-흥, 내가 누구냐. 최강의 마검. 흑암님이다! 기억쯤은 별 상관없어. 거기다 저 밑을 봐라. 보상 보이냐?
흑암은 말을 돌리며 퀘스트 창의 가장 아래에 있는 보상을 가리켰다.
-퀘스트를 하면서 보상이 없는 게 말이 되냐? 이런 걸 왜 해. 그냥 거절해 버려!
“…….”
백우진은 다른 대답을 바라며 흑암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가 속마음을 숨기고 있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제기랄! 혼이 연결되어 있다는 건 이래서 불편하다니까! 좋다. 속이기도 힘드니, 솔직하게 말하마.
흑암이 욕을 뱉으며 검날을 배배 꼬았다.
-한참 떨어진 시스템이 네게 정이 들 정도인데 난 어떨까?
“…….”
-넌 내게 제자이자, 동생이며, 친우다. 네가 이곳에서 즐겁게 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아.
“흑암. 너….”
백우진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흑암의 목소리엔 그의 진심이 녹아 있어 망치로 심장을 친 듯 가슴이 크게 울렸다.
흑암은 자신이 이곳에 남아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시스템도 바보가 아니니, 다른 대책을 준비했을 거다. 사실 마루툰 대륙은 너와 관계가 없는 곳이니까. 그냥 무시하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
“여기 퀘스트 내용을 보면 내 목표를 이뤘다고 되어 있는 거 보여?”
-그래.
“그럼 그 목표를 정할 때 기억은 나냐?”
-당연하지. 넌 처음부터 내 예상을 깬 미친놈이었으니까.
흑암이 피식 웃었다. 백우진은 첫 훈련부터 자신을 놀라게 했다. 그때의 기억을 어떻게 잊겠는가.
“그럼 내가 맹세한 것도 기억나?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검사가 되는 것이었지. 부수적으로 네 아버지를 꺾어서 가문을 가문답게 만들고, 세계를 구하는 것도 있었고. 전부 이루긴 했군.
유치하지만 진심이었던 백우진의 목표는 전부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맞아. 그 목표들 결국 다 이루긴 했지.”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다만 오롯이 내 것이 아니야.”
그 목표를 이루는 데 자신의 공은 삼분지 일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삼분지 이가 되어 준 흑암과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루지 못했을 목표들이다. 그 둘에게 커다란 빚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난 너희에게 빚이 있어. 내 성격상 그걸 갚지 않고서는 못 배기지. 그리고 방금 네가 말했지. 날 제자, 동생, 친우라 생각한다고.”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넌 내게 스승이자, 형이며, 친구다. 네 일은 내 일이고, 네 은원은 내 은원이야.”
흑암의 진심 어린 말과 시스템이 준 선택권으로 확실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아니지. 선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어.”
-어? 야!
백우진은 단호하게 퀘스트 수락 버튼을 눌렀다.
[퀘스트가 수락되었습니다.] [30일 후 마루툰 대륙으로 이동합니다.] [남은 시간 29일 23시간 59분 58초]남은 시간이 나오는 메시지 창이 눈앞으로 떠올랐다.
-이 미친놈아! 제대로 생각해야 할 거 아니야! 가문은 어쩌려고!
“그걸 위해서 미리 백가의 명성과 내 이름값을 올려놓은 거잖아.”
백우진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 미리 조직을 개편하고, 백가의 명성을 올려놓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당장 마루툰 대륙으로 이동해도 백가는 알아서 굴러갈 거다.
“내가 마루툰 대륙으로 가면 무리안이 이쪽으로 몬스터를 보낼 리도 없고, 2년 뒤에 나올 발록도 미리 제거했으니, 남은 위험도 없어.”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군. 그곳으로 넘어간 네가 죽을 수도 있다.
“죽을 거면 진즉에 죽었겠지.”
백우진은 자신감이 흐르는 미소를 피워 올렸다. 흑암이 있고, 시스템이 있으니, 어떤 역경이 나타나도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마음먹기로 했다.
-하아, 이제 나도 모르겠다.
흑암은 한숨을 쉰 것과 달리 목소리에 활기가 들어섰다. 자신과 헤어지지 않게 되어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그럼 수련이나 하자고.”
-그 말할 줄 알았다.
백우진과 흑암은 서로를 보며 큭큭 웃었다.
-너만이 아니라, 시스템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니, 평소와 달리 조금은 괜찮게 보이는군. 시스템도 사실은 착한….
띵!
[10분 안에 결정을 내리는 히든 퀘스트 을 완료하셨습니다.] [3,000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레전더리 타이틀 이 지급되었습니다.]“어? 히든 퀘스트가 있었어? 이거 오랜만인데!”
-이, 이게 뭐야! 보상 없다며!
“이건 히든 보상이잖아. 내가 10분 안에 퀘스트 수락을 눌러서 받은 거라고.”
-10분? 한 시간은 됐겠구만!
“아니야. 시간만 보면 짧았어.”
-젠장! 시스템. 이 미친놈이 정말!
조금 전만 해도 같은 감동을 공유했던 검과 인간은 사라졌다. 기뻐하는 인간과 분노하는 검만이 남았을 뿐이다.
“좀 전까지는 내 목숨을 걱정해 놓고 보상 좀 받았다고 난리 치는 거 너무 추하지 않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아까 한 말 다 취소야! 착하기는 개뿔!
흑암이 검신을 비틀며 전투 직전의 투견처럼 으르렁거렸다.
-시스템 이 자식아! 당장 내려와! 대가리 깨 버릴라니까!
**
우우우웅!
끝없이 높게 솟구친 신의 석상에서 새하얀 광휘가 내려선다.
수백 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천사의 석상들이 그 빛을 퍼뜨려 성당 전체를 백광으로 물들였다.
기둥 사이로 늘어진 신성의 길 끝에 금발의 미청년이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 앞의 옥좌에는 은발의 중년인이 손을 벌린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우우우웅!
별무리처럼 쏟아지던 빛이 그치고, 은발의 중년인이 눈을 떴다. 그의 안광은 검은자와 흰자가 역전하여 기괴한 빛이 흘러내렸다.
“부신관장 무리안.”
“예.”
중년인의 부름에 금발 청년 무리안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신탁이 내려왔다.”
“아!”
“그 인간이 곧 대륙으로 돌아올 거라고 하셨다. 놈이 이 성스러운 땅에 발을 디디기 전에 그곳에서 확실하게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믿겠다.”
중년인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선장을 무리안에게 내밀었다.
콰아아아!
선장에 매달린 다섯 개의 종이 울리며 장대한 빛이 무리안을 뒤덮었다.
“아아아!”
무리안은 이글거리는 빛을 몸에 휘감은 채 눈동자를 뒤집으며 희열 가득한 신음을 흘렸다.
중년인은 증폭되는 무리안의 기운을 느끼며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드디어 그 차원에….”
**
사흘 후 백우진은 백연휘와 백은경, 문주영을 가주전으로 호출했다.
“우리 바쁘신 가주님이 웬일로 우릴 다 불렀대?”
백은경이 의자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필요한 일이 있으니 불렀겠지.”
백연휘는 백은경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에 서류들을 내려놓았다.
“할 말이 있어서.”
“뭔데? 또 무슨 사고 칠 거야?”
백은경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최근 백우진이 저지른 일 중에 재미없는 게 없었기에 벌써 기대가 되었다.
“잠시 가문을 떠나 있으려고.”
“음….”
“뭐?”
“예?”
“헉!”
백연휘, 백은경, 문주영이 기겁을 하며 입을 쩍 벌렸다. 다만 이곳에 있는 사람은 셋인데 네 명의 목소리가 울렸다.
“잠깐. 방금 목소리가 하나 더….”
“너도 이제 내려와.”
백우진이 천장에 거미처럼 매달린 무영객을 향해 손짓했다.
“무영객!”
“에이, 당황해서 들켜 버렸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무영객이 천장에 은신하고 있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재밌어 보여서 그냥 놔뒀을 뿐이다.
“정말요? 아, 진짜 검사님은 속일 수가 없다니까.”
“이 미친놈! 여기가 어디라고!”
“너도 오는데 내가 못 올 건 또 뭐야. 우리 동급이잖아.”
“동급은 무슨! 넌….”
“됐고, 너도 앉아. 문 호위도 그만하고.”
백우진은 피식 웃으면서 두 사람을 말리며 자신의 양 옆자리를 가리켰다.
“다시 말할게. 한동안 가문을 좀 떠나 있을 거야.”
“대체 왜?”
백은경이 테이블을 치며 일어섰다. 이제야 가문의 기틀이 잡히고, 예전의 명성이 돌아왔는데 가주가 가문을 떠난다는 게 이해되질 않았다.
“여행도 좀 하고, 검술 수련을 하려고.”
“여행?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놈이 무슨 여행을 해!”
“변장하면서 움직일 거고, 내가 떠난다는 건 극소수의 사람만 알 테니까 상관없어. 외부에는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고 알려 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백은경이 다시 반대 의견을 내놓으려 할 때 백연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이는 평생을 싸워 왔어. 강해지기 위해서, 아버지를 꺾기 위해서, 백가를 최고의 가문으로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끝도 없이 싸웠지.”
“음….”
백은경이 인상을 풀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가주가 된 이후로는 가문의 명성을 드높이고, 체계를 정비했으며,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무예도 만들었지. 바쁘거나 중요한 일도 없으니, 한동안은 현 상태를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건 그렇네….”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연휘의 말에 백은경과 문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개인의 수련 때문에 가문을 아예 팽개치고 나갔다 온 적도 많잖아. 그거에 비하면 양반이지.”
-예전부터 느꼈지만 네 첫째 형이 백가랑 가장 안 어울리지 않냐?
‘맞아. 나랑은 비교할 수 없이 선한 사람이지.’
백우진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찬성이다. 적당히 쉬다가 와라.”
“이해해 줘서 고마워.”
“이해는 무슨. 가주가 정했으니, 따를 뿐이다.”
“그럼 어쩔 수 없네.”
백연휘가 찬성을 하자, 백은경이 동의를 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서 어딜 가려는 거냐?”
“전 세계를 돌면서 여러 문물도 보고 자연에서 수련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도와주려고.”
“여행을 가서도 도움이라, 너다운 말이다.”
백연휘가 부드럽게 웃었다.
‘여전하다니까.’
백우진은 전방에서도, 광화문에서도, 대연문에서도 항상 같았다.
녀석은 자신보다 남을 위해서 움직인다. 백가에서 모진 일은 다 겪고 컸음에도 저렇게 곧게 자라 준 것에 감탄이 나왔다.
“알았다. 외부에는 네가 폐관에 들었다고 전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신나게 놀고 와라.”
“고마워.”
“그래도 가끔은 얼굴을 비추는 게 좋을 텐데….”
백은경이 입맛을 다시며 테이블을 두드렸다. 백우진은 현재 그 어떤 인물보다 영향력이 크다. 사업을 확장할 때 꼭 필요하기에 조금 아쉬웠다.
“그건 걱정하지 마. 얘가 있으니까.”
“엑?”
백우진이 씩 웃으며 무영객의 팔을 잡아 들었다.
“저, 저요?”
“너 변장이랑 연기가 특기잖아. 나로 변신할 수 있지?”
“할 수는 있는데, 정말 해도 됩니까?”
무영객의 눈동자가 흥분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가, 가주님! 안 됩니다! 이 도둑놈에게 맡기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니까 네가 균형을 잘 잡아 줘야지.”
백우진이 믿겠다고 말하며 문주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흐흐, 문주영이 제어하지 않으면 저놈은 네 얼굴로 남의 집에 들어가서 도둑질할 놈이지.
‘보나 마나 뻔하지.’
흑암의 말대로 무영객은 스스로 통제가 안 되는 놈이다. 그나마 문주영의 말은 들으니, 그가 맡아줘야 했다.
“언제 출발할 거냐?”
“3주 정도 뒤에. 그보다 빠를 수도 있고.”
“알겠다. 네가 원하는 대로 처리하마.”
“나도 조만간 여행이나 가야겠네.”
백연휘는 미소를 유지한 채로, 백은경은 양손으로 머리에 깍지를 끼며 회의실을 나갔다.
“으하하하! 저도 변장 준비해서 돌아오겠습니다!”
무영객은 다람쥐처럼 방방 뜨면서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하아, 그럼 저도 저놈을 막으러….”
“잠시만, 부탁이 있어.”
“예?”
“이것들을 태블릿 PC에 저장 좀 해 줘.”
백우진이 무영객을 따라 나가려던 문주영을 불러서 쪽지 하나를 넘겨주었다.
“불시착한 사랑, 대박 빌라, 낭만검사 박사부…. 이것들 드라마 아닙니까?”
“맞아.”
“가주님. 드라마 정말 좋아하시네요. 수련할 때도 태블릿을 틀어 놓으시더니. 여행을 가실 때도 가져가시는군요.”
“그게… 아냐. 좋아하지…. 좋아하고말고.”
백우진이 한숨을 쉬며 어색하게 웃었다.
‘난 드라마 관심도 없다고….’
저건 당연히 흑암이 볼 드라마다. 녀석은 협박하듯이 드라마를 저장해 오라고 요청했고, 그게 너무 많아서 문주영에게도 반을 넘겨준 거다.
-흐흐흐, 잘했다. 역시 백우진이야.
흑암은 무예 수련을 할 때도 들은 적 없는 칭찬을 날리며 검날로 자신의 머리를 쓸어 댔다.
“아, 그리고 대용량 휴대용 배터리도 많이 구해놔 줘. 돈은 내 카드로 쓰고.”
“알겠습니다. 준비해 놓겠습니다.”
-마루툰 대륙에서도 드라마를 볼 수 있다니! 문명의 선물이여!
흑암은 광소를 터트리며 회의장을 미친 듯이 날아다녔다.
“아, 하나만 더.”
백우진은 정신없는 흑암의 상태를 확인한 후 나가려던 문주영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
“내가 준 드라마들 내용 스포나 반전 같은 거 찾아다가 좀 뽑아 줘.”
“스포랑 반전이요?”
“그래. 출생의 비밀이라든가, 마지막 반전이라든가. 아무거나 좋아.”
“음, 알겠습니다.”
문주영은 평소와 같이 질문 따위는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서 문을 나섰다.
‘좋아.’
백우진이 뒤를 돌아 흑암을 보았다. 녀석은 아직도 기분이 좋아 난리를 치고 있었다.
‘이건 목줄이지.’
자신이 구할 드라마와 문주영이 구해 오는 드라마의 결말을 확인한 뒤 흑암이 까불 때마다 스포를 풀어 버릴 생각이었다. 당황할 흑암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야. 회의 다 끝났으면 수련이나 하러 가자. 오늘은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오늘 수련은 패스야.”
백우진이 고개를 저으며 일어섰다.
“그 세계로 떠나기 전에 꼭 가야 할 곳이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