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21
321화. 선택 (3)
백우진은 신검백가를 나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친 빌딩으로 향했다.
-간다는 곳이 아케인이었냐?
‘맞아.’
설영검을 받은 기간은 짧았지만, 워낙 강자들과 싸웠기에 마루툰 대륙으로 가기 전에 검을 정비받고 싶었다.
-아직 3주나 남았는데 이렇게 빨리 갈 필요가 있냐? 뭔가 급해 보이는데?
‘혹시 모르잖아.’
-뭘 모른다는 거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백우진이 흑암을 향해 손가락을 그었다.
‘너는 못 봤다고 했지만, 난 네 기억에서 그 금발 남자가 움직이는 걸 봤어.’
-아….
‘남의 기억에 간섭을 할 수 있는 놈이니, 차원 이동할 때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음, 그건 그렇군.
‘그놈이 차원 이동 자체를 뒤틀 수도 있고, 시스템이 출발 날짜를 앞당길 수도 있으니, 미리 준비해 놔야 해.’
그 금발 놈은 흑암의 기억에 침입할 정도의 괴물이다. 차원 이동에 간섭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바로 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럼 큰일인데?
‘왜?’
-드라마가 다 들어가기 전에 마루툰 대륙으로 가면 망하는 거잖아!
“하아….”
백우진은 한숨을 푹 쉬고서 아케인 본사로 들어갔다.
-얀마! 농담이야!
흑암이 다급하게 불렀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오셨네요.”
로비에 앉아 있던 서인아가 방긋 웃으며 일어섰다. 웃고 있지만, 얼굴에 그림자가 진 느낌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백우진이 서인아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헥!”
그 모습에 서인아가 깜짝 놀라며 달려왔다.
“검사님은 신검백가의 가주시잖아요! 저한테 그런 인사를 하실 필요는 없어요. 남들이 흉봐요!”
“인아 씨는 제 은인이잖아요. 그리고 남들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
서인아가 동그랗게 토끼 눈을 뜨며 입을 벌렸다.
‘정말 변하지 않으시네.’
백우진은 처음 의뢰에서 만났을 때부터 최고의 무인이 된 지금까지 항상 같았다.
누구에게도 예의를 지켰고, 자신감과 그에 따른 실력이 있었으며,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최근엔 무너지는 던전에 들어가서 적가주를 구해 오지 않았던가. 늘푸른나무처럼 올곧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인아 씨?”
백우진은 멍하니 자신의 얼굴을 보는 서인아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아! 미안해요!”
서인아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장인의 마을로 안내했다.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실 테니, 바로 가요.”
**
“이제 열기가 돌아왔네요.”
백우진이 장인의 마을로 들어서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설영검을 얻을 때와 달리 장인의 마을 전체에는 뜨거운 기운이 짙게 퍼져 있었다.
“설영검과 흑전호포 때문에 만들어진 냉기였으니까요. 그 두 물건이 없어지자마자 열기가 돌아왔죠.”
“그땐 죄송했습니다. 제 기운과 드래곤의 재료들이 그런 효과를 발휘할 줄은 몰랐어요.”
“아니에요. 재밌었어요.”
서인아가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흑전호포를 업그레이드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 이후로 아버지랑 할아버지도 실력이 늘었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그건 대단하네요.”
백우진이 살짝 입을 벌렸다. 서공명과 김장훈은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에게서 실력이 늘었다는 말이 나왔다면 정말 솜씨가 좋아졌을 거다.
“아직 멀었어요.”
서인아는 부끄러운지 조금은 붉어진 얼굴을 감췄다.
“그래도 조금 자신이 생기기는 해서 다음에는 흑전호포보다 더 좋은 걸 만들어 드릴….”
“청춘 사업은 나중에 하고 빨리 와라!”
서인아가 새로운 제작품을 말하려 할 때 언덕에 서 있던 김장훈이 손을 흔들었다.
-아직 정정하구만.
흑암은 젊은이 못지않게 우렁찬 목소리를 내지르는 김장훈을 보며 웃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은 무슨. 그런 인사는 됐으니, 빨리 올라오거라.”
“예!”
백우진은 여전하시다고 중얼거리며 김장훈의 공방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더 훤칠해졌군.”
김장훈은 백우진의 위아래를 훑으며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네 녀석의 얼굴은 원래도 잘났지만, 지금은 신비로움까지 더해진 느낌이야.”
더 강해진 듯한 백우진의 상태를 살핀 후 서인아에게 눈을 돌렸다.
‘아주 단단히 빠졌군.’
손녀는 백우진의 얼굴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눈에서 꿀이 뚝뚝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런가요? 딱히 한 건 없는데….”
“됐고 검이나 뽑아 봐라.”
“알겠습니다.”
백우진이 빙긋 웃고서 설영검을 뽑아 김장훈에게 건네주었다.
“후우….”
김장훈은 설영검을 받으며 그 묵직함을 느꼈다.
‘무겁군.’
무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검으로 이룬 믿을 수 없는 업적들이 무거웠다.
‘천류검을 깨부순 검이니까.’
천류검은 태어났을 때부터 최흉의 검이라 불렸고, 백천화의 손에 들어가며 최강의 검이라 칭해졌다.
그런 절대적인 검을 자신이 만든 설영검으로 부러뜨려 준건 지금까지의 삶에서 최고의 감동이었다.
‘네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김장훈이 경의와 고마움이 어우러진 눈으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검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말하지만, 정말 고마운 건 자신이었다.
세계 최강의 검사가 자신의 검을 써 준다는 건 장인으로서 최고의 영광이니까.
“어때요?”
“에잉, 손볼 곳이 꽤 많아. 너무 험하게 쓴 거 아니냐?”
김장훈은 속마음과 다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죄송합니다. 싸움이 격할 때가 있어서….”
“농이다. 꽤 손상되긴 했지만 금방 고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저도 장난인 거 알고 있었습니다.”
“능글맞은 녀석.”
백우진과 김장훈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말 나온 김에 바로 시작하자. 너희 둘 다 따라 들어와서 도와!”
“네!”
“알겠습니다.”
김장훈이 먼저 공방에 들어가고, 서인아와 백우진이 그 뒤를 따랐다.
“근데 갑자기 왜 고치러 온 거냐? 싸움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잠시 여행을 가려고요.”
“여, 여행이요?”
“지금?”
“네. 조만간 출발할 생각입니다. 한동안….”
백우진은 두 사람에게 백연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가문은?”
“외부에는 제가 폐관을 하는 거로 전해질 겁니다.”
“구라를 치는 거로군. 그거 우리에게 말해 줘도 되나?”
“두 분은 남이 아니니까요.”
“끌끌.”
“아….”
백우진의 말에 김장훈은 기꺼운 웃음을 지었고, 서인아는 얼굴이 빨개졌다.
“인아야. 네 생각이랑은 다른 말이니 꿈 깨고, 벽에 걸린 망치나 가져와라.”
“아, 네!”
서인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서 망치와 도구들을 가져왔다.
화르르륵!
백우진은 다섯 개의 화로에 불을 지피는 김장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로가 다섯 개로 늘었군요.”
“각자 쓰임새가 다르니까.”
“쓰임새가 다르다…?”
“불꽃의 화력이 높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때로는 화력이 낮더라도 검에 적절한 온도에 맞추는 게 중요해.”
김장훈은 중앙 화로에서 배구공만 한 불씨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네 검술의 특징인지 설영검은 검신보다 검극에 손상을 많이 입었다. 이걸 고치려면 불꽃을 모두 끌어모은 극한의 화력보다는 섬세한 불꽃이 필요하다. 즉, 화력이 다른 불꽃도 각자의 쓰임새가 있다는 말이지.”
“아….”
백우진이 쥐고 있던 망치를 떨어뜨렸다.
‘극한의 화력보다는 불꽃의 쓰임새. 조화보다 오러의 쓰임새….’
머릿속으로 단어들이 분해되고, 뭉치고, 어우러진다.
뒤섞이는 여러 무리들이 꼬이고 꼬여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어? 검사님, 이거 떨어뜨리….”
“쉿!”
서인아가 넋을 놓은 백우진을 건드리려고 할 때 김장훈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지금 중요한 순간이다. 건드려서는 안 돼.”
“아….’
“일단 나가자꾸나. 수리는 나중에 해야겠어.”
“하지만 불꽃들이….”
“걱정하지 마라. 저 불꽃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것 같으니까.”
김장훈은 조용히 속삭이며 서인아를 데리고 공방 밖으로 나갔다.
“별일이 다 생기는구나. 저 상태에서 더 강해질 수가 있는 것도 신기한데, 깨달음을 내 공방에서 얻다니…”
“저 좀 다녀올게요!”
“어? 어딜 간다는….”
서인아는 대답도 하지 않고, 위쪽에 있는 공방으로 달려갔다.
잠시 뒤 공방에서 들리던 망치 소리가 멈췄고, 서인아는 또 다른 공방으로 뛰었다.
“허….”
김장훈이 헛웃음을 흘렸다. 서인아는 깨달음을 얻고 있는 백우진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장인들의 망치 소리를 멈추게 한 것이다.
체력도 좋지 않은 녀석이 헉헉거리며 공방들을 돌아다니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사랑의 힘인가.”
혼자 피식 웃고서 불씨를 바라보는 백우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정리하기 쉽진 않겠어.”
김장훈은 호위를 서듯 백우진의 앞을 조용히 지켰다.
-아….
흑암은 모기약에 젖은 모기처럼 힘없이 가라앉았다.
‘대, 대장간에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이게 말이야 방귀야! 소설에서나 나오는 기연이잖아!’
차마 소리를 지르지는 못하고, 속으로 악을 질렀다.
‘왜 얘한테만 이런 기연이 생기는 거야! 세상은 똥이야! 똥!’
**
‘너무 조화에 신경을 썼어.’
라사둠의 오러와 혼원벽력신기, 발록의 투기는 각자 사용해도 막강한 위력이었기에 세 기운을 조화시키려고 안달이 나 있었다.
조화가 이루어지는 게 가장 좋지만, 깨달음이 모자란 상태에서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때라는 게 있으니까.’
상황과 순간에는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 지금의 자신이 추구해야 할 것은 오러의 쓰임새였지, 조화가 아니었다.
초월에 닿지도 못했고, 북명신공 하권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조화를 넘보다니, 우스운 일이다.
김장훈의 대답 덕분에 조화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놓자, 머리가 깔끔하게 정리되며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왔다.
“후우….”
백우진은 푹 자고 일어난 듯 상쾌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오성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 [북명신공의 단계가 상승했습니다.]오성 능력치가 오르고, 북명신공이 4단계가 되었다. 이미 깨달음을 얻을 때 예상했던 바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 지독한 운빨…. 저주 같은 운빨….
‘흑암의 반응도 예상대로.’
흑암이 이를 갈고 있는 모습 역시 눈을 뜰 때 예상한 그대로였다.
“어?”
백우진이 입을 쩍 벌렸다. 흑암과 다르게 예상을 벗어난 게 있었다.
“이게 무슨….”
김장훈의 공방 주변은 아케인의 수호자들이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고, 불씨가 타는 소리를 제외하곤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서인아 때문이다.
흑암이 공방의 밖에 서 있는 서인아를 가리켰다.
-네가 무아에 빠지자마자, 장인들이 만드는 소음을 멈춰 버리고, 이곳을 수비하는 수호자들에게 호위를 지시했다. 네가 깨달음을 얻는 이틀 동안 저 자리를 벗어나지도 않았어.
흑암은 질렸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군.’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이 상황이 이해가 갔다. 서인아가 자신을 위해 힘을 써 준 덕분이었다.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고마웠다.
“이제 일어났느냐?”
“일어나셨어요?”
백우진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온 것을 본 김장훈과 서인아가 달려왔다.
“어떻게 됐느냐.”
“두 분 덕분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축하드려요!”
“제가 감사를 드려야죠. 두 분께 갚기 힘든 빚을….”
“됐다. 일부러 한 것도 아니니까.”
김장훈이 끌끌 웃으며 손을 저었다.
“다만 고생은 이 녀석이 했다. 네가 깨달음에 빠졌을 때 빨빨거리며 돌아다녔으니까.”
“감사합니다. 덕분에 깨달음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그렇게 고마우면…. 자요!”
백우진이 고개를 숙일 때 서인아가 눈을 감으며 양팔을 쫙 벌렸다.
-역시 신경 쓰고 있었군.
흑암이 피식 웃었다. 서인아를 로비에서 만났을 때 표정이 어둡다 했더니, 백우진과 적연화가 포옹한 걸 신경 쓰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야, 뭐 해. 한 번 안아 줘.
“끌끌.”
흑암과 김장훈이 낄낄거리며 서인아를 가리켰고, 뒤에 있던 장인들도 빨리 안아 주라고 소리를 질렀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우진은 어깨를 으쓱이고서 서인아에게 다가갔다. 가볍게 안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
서인아는 적연화와 달랐다.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품속으로 더욱 파고들고 손을 꽉 잡았다.
-오호!
“이, 인아야?”
“휘이익!”
“아가씨! 제법인데?”
흑암은 입맛을 다시고, 김장훈은 곰방대를 떨어뜨렸으며, 장인들은 환호를 질렀다.
“제가 깨달음에 도달한 건 장인님 덕분이고, 깨달음을 무사히 마친 건 인아 씨 덕분이에요.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백우진이 손을 놓고 물러나서 서인아를 보았다.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이 헤죽 벌어져 있었다.
“저도 이번 일로 영감이 올랐거든요. 나중에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드릴게요.”
“전 그럼 더 좋은 재료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아직 네 검 수리도 안 했어! 사랑놀음은 나중에 하고 따라와라!”
“아, 네!”
백우진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김장훈을 따라 공방에 들어갔다.
-흐음….
흑암은 백우진과 서인아를 번갈아 보며 히죽 웃었다.
-이거 막장 드라마 냄새가 나는데?
**
후우우웅!
구름 한 점 없이 햇볕 쨍쨍한 날 폭풍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들린다.
쿠구구구!
자연의 바람이 아니다. 백우진이 설영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검풍이 이는 소리였다.
-무슨 확인을 일주일 동안 하냐?
흑암이 혀를 내둘렀다.
‘진짜 질린다니까.’
백우진은 아케인에서 설영검을 받아 온 이후 잘 고쳐졌는지 확인한다면서 일주일가량 검술 수련만 해 왔다.
자신도 어디 가서 수련량으로 지지 않지만, 백우진을 따라가기엔 무리였다.
후웅!
백우진은 기본 검술들을 수없이 반복한 후에야 설영검을 내렸다.
“그럼 두 번째 수련을….”
-또 해?
쉬는 줄 알았건만 녀석은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마루툰 대륙에 가면 수련할 시간 없을지도 모르잖아.”
-시간이 없다고 네가 수련을 안 하겠냐? 잠잘 시간도 쪼개서 할 거면서!
“그건 그때고.”
백우진은 피식 웃고서 설영검을 세웠다. 검로 수련을 하려고 할 때, 연무장 문이 열리고 자신이 들어왔다.
-엥?
“어?”
잘못 말한 게 아니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흑전호포와 설영검을 차고 걸어온다.
“의검대는 어디 갔지?”
자신이 항상 짓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이며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허어, 꽤 비슷한데?
“역시 이런 쪽 능력은 탁월하군.”
백우진이 도플갱어처럼 자신과 완전히 같은 외모를 한 남자를 보며 웃었다.
“무영객.”
“어때요? 똑같죠?”
순식간에 목소리가 바뀌며 무영객의 어리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야! 비슷하긴 하네.
흑암이 검날을 끄덕였다. 백우진과 똑같이 생긴 이 남자는 무영객이 변장을 한 백우진의 모습이었다.
“일주일 만에 이 정도면 대단해.”
“제가 관찰왕이잖아요. 평소 관찰을 잘한 덕분이죠.”
백우진의 칭찬에 무영객이 어깨춤을 추며 웃었다.
“이 모습으로 다니니까 진짜 좋더라구요. 다들 인사를 아주….”
“가주님!”
무영객이 건들거리며 입을 열려고 할 때 문주영이 문을 열고 달려왔다.
“이 미친놈이 저 모습으로 정문에서부터 들어왔습니다. 이놈에게 대역을 맡기면 절대 안 됩니다!”
문주영이 손으로 가위 표시를 하며 맹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 반응은 어땠어?”
“흐흐! 아무도 못 알아봤습니다.”
무영객은 자랑을 하듯 가슴을 쭉 내밀었다.
“가문의 검사들이 속을 정도면 다른 곳은 껌이겠네.”
“그래서 더 문제입니다. 이놈 가주님의 얼굴로 사고 칠 게 분명합니다.”
“에이, 사고 안 쳐!”
“안 치기는 무슨!”
“네가 있잖아. 널 믿으니까 무영객에게 대역을 맡긴 거야.”
“아!”
백우진의 진심 어린 말에 문주영이 눈이 퉁 하고 울렸다. 그가 자신을 믿는다고 하자마자 천군만마가 부럽지 않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팔다리를 분질러서라도 이놈을 관리하겠습니다.”
“파, 팔다리를 분지르다니….”
“너무 각지게 굴지 말고, 힘 좀 빼면서 해.”
백우진은 문주영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문주영은 똑똑하면서도 강직한 사람이니, 알아서 잘할 거다.
“아, 그리고 전에 지시하셨던 태블릿 PC 가져왔습니다.”
문주영은 두 대의 태블릿 PC와 20개에 가까운 휴대용 배터리를 꺼내 놓았다. 중간에 책자가 있었는데 거기에 드라마 내용과 반전이 적힌 것 같았다.
-크하하하하! 빨리! 빨리 넣어!
흑암은 광소를 터트리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에휴, 알겠어.’
백우진은 태블릿 PC와 배터리들을 흑암의 인벤토리에 넣고, 스포가 적힌 책자는 품에 챙겼다. 전부 읽어서 나중에 흑암이 까불 때 놀려 줄 생각이다.
“전 이 도둑놈 교육 좀 시키겠습니다.”
“야, 교육이라니! 내가 학생도 아니고….”
문주영과 무영객이 실랑이를 벌이며 서로의 멱살을 쥘 때였다.
두웅!
선택 퀘스트가 나올 때 들렸던 알림음이 귀를 때렸다.
[차원 통로에 외부의 기운이 침입하려 합니다.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차원 이동을 앞당기겠습니다.] [남은 시간 10분.]다급해 보이는 메시지창과 함께 남은 시간이 10분으로 바뀌었다.
-이게 무슨….
‘역시.’
당황하는 흑암과 달리 백우진은 덤덤한 눈으로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적은 자신과 시스템을 특정했다. 아무 일 없이 마루툰 대륙에 가는 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네 말대로 되었군….
‘그래서 미리 준비해 놨잖아.’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미리 준비물들을 챙겨 놓았다. 지금 당장 떠나도 아무 문제 없었다.
“문주영, 무영객!”
“예!”
“넵!”
백우진의 부름에 무영객과 문주영이 싸움을 멈추고 달려왔다.
“아무래도 바로 출발해야겠다.”
“네?”
“엥?”
“그, 그게 무슨….”
“여행 다녀올 테니까. 형이랑, 누나한테 잘 말해 줘.”
“아니, 잠시만요.”
“이렇게 빨리 가신다구요?”
문주영과 무영객이 한 발 더 다가올 때 하늘에 가득 찬 태양이 하얗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시스템 오류.] [대기 중인 차원 통로에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남은 시간이 멈추고 오류가 났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설마! 여기에 침입했다고?
“오셨군.”
차게 웃으며 허연 하늘을 보았다. 성스러우면서도 추잡한 기운. 무리안 혹은 그 금발 놈의 기운이 분명했다.
콰아아아아!
대지가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지며 세상이 하얗게 변한다.
스르릉!
백우진은 천공에서 내려서는 거대한 손을 보며 설영검을 뽑았다.
“기다리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