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프레스톤 성 (2)
“제, 제한이 풀렸어.”
백우진이 입을 쩍 벌렸다. 100이었던 능력치 한계가 105가 되었다. 메시지가 떴을 때 혹시나 했지만, 정말 올랐을 줄은 몰랐다.
“능력치 한계는 100이 끝 아니었어?”
-내, 내 주인 중에서 능력치 제한이 100을 넘어간 건 네가 처음이다! 나도 이런 건 본 적 없어!
흑암의 목소리에 진동이 일었다. 그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던 모양이다.
-인간의 신체로는 100이라는 수치를 넘을 수 없을 텐데….
“결국 너도 모른다는 거네.”
능력치가 100이 넘어가는 건 흑암에게도 미지의 세계인 것 같다.
-펴, 편애도 정도가 있지! 이건 심하잖아!
흑암이 검신을 펄떡이며 고성을 내질렀다.
‘악마 같은 시스템….’
타이틀과 특성을 던져 주고, 능력치를 퍼주는 거로도 모자라서 이젠 능력치의 제한마저 풀어 버리다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백우진은 다시 상태창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더 강해질 수 있겠어.’
능력치의 성장은 한계가 왔고, 무예의 깨달음을 얻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능력치를 이용해서 성장할 구석이 아직 남아 있었다.
“아주 좋아.”
100이 넘어간 능력치가 어떤 힘을 발휘할지 벌써 기대가 되고 가슴이 뛰었다.
-좋기는 개뿔….
즐거워하는 백우진과 달리 흑암은 짜증을 가득 담아 툴툴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스템이 노망난 게 분명해. 암, 그렇고말고! 아주 단단히 미쳤어!
“여태 욕하고 있었어?”
백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흑암은 냉철하고 침착하지만, 시스템과 연관되면 이성을 잃어버린다. 참 신기한 녀석이다.
-너도 생각을 해 봐라! 능력치 제한을 걸어 놓고 풀어 준다는 건 미치지 않고서야….
“어. 그래.”
흑암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특성에 새겨진 카인의 오러연공법과 북명신공을 보았다.
‘카인이라….’
모두 카인이라는 존재와 연관이 있었고, 오늘은 그의 조각을 받아 능력치 제한까지 해제됐다. 아무래도 자신과 카인은 어떤 선으로 연결된 것 같았다.
‘언젠가는 만날지도.’
**
다음 날. 백우진과 문주영, 무영객은 데플을 따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폭설을 뚫고 북쪽으로 향했다.
떨어지는 눈과 쌓여 가는 눈만을 보며 2주일을 걸었을 때 하늘에 닿을 듯한 거대한 벽이 나타났다.
높다란 벽은 떨어지는 눈으로 쌓은 듯 새하얀 빛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저게 북벽인가 봅니다. 이제 다 왔네요.”
데플이 북벽을 가리키며 활짝 웃었다.
-조금 낡긴 했지만, 그대로군.
흑암은 감회가 새로운 듯 멍하니 북벽을 올려다보았다.
-저 거대한 벽이 나와 그 녀석이 세운 북벽이다. 저 안에 프레스톤 성이 있지.
‘높게도 세웠네.’
-몬스터만이 아니라, 인간까지 막는 벽이니까.
‘역시 다른 국가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한 벽이기도 했군.’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벽은 몬스터만이 아니라, 타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저렇게 높이 설치한 것 같았다.
‘벽 위에 무인들이 있어.’
그저 벽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 벽 위에는 뛰어난 고수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쿠구구구.
북벽 근처에 가자, 매서운 기세가 흐르기 시작했다. 벽 위의 무인들이 오러를 끌어 올린 것이다.
“스승님.”
데플은 의견을 묻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았다.
“공격 의사는 없으니, 이대로 간다. 그리고 스승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예정대로 진행해.”
“옙.”
데플에게 자신을 흑색의 검사 백우진이 아닌 평범한 호위로 소개하라고 지시를 내려놓았다.
고오오오!
데플과 함께 북벽 앞에 가자, 벽 자체가 살의를 가진 듯 싸늘한 기세가 더욱 커졌다.
“정지!”
한 발 더 다가가려 할 때 벽 위에서 털옷과 털모자를 착용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원을 밝히시오!”
“린덴 성의 성주 데플이오. 프레스톤 성주를 뵙기 위해 왔소.”
“데플 린덴. 약속은 되어 있지만, 보고받은 외모와는 다른 것 같소.”
“제국을 피해 염색을 하고 왔소.”
데플은 그리 대답하며 성주의 자격을 증명하는 금색의 패를 남자에게 던졌다.
턱.
중년인은 데플이 던진 패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했소. 문을 열어라.”
“음?”
백우진이 눈매를 좁혔다. 문을 열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눈앞의 하얀 벽이 진흙처럼 꾸물거리며 거대한 문을 만들어 냈다.
-저게 북벽의 문이다.
‘마법인가?’
-마법이라기보다는 특별한 아이템의 힘이다.
‘특별한 아이템?’
-여러 능력을 가진 물건이지.
‘그거 기대되네.’
-흥, 넌 볼 일 없을 테니, 꿈 깨.
‘글쎄.’
백우진은 피식 웃고서 가장 마지막으로 문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덜 춥네.’
바람이 막혔기 때문인지 벽 내부는 외부에 비해 꽤 따스했다.
“오, 여긴 좀 괜찮네.”
“그래. 기온이 훨씬 올라갔어.”
문주영과 무영객도 그걸 느끼고 작게 웃었다.
그렇다고 아예 추위가 없지는 않아서 건물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추위를 막는 방식으로 건설되어 있었다.
백우진은 마을과 건물들을 살핀 후 중앙 도로를 따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은반을 밀어 놓은 듯한 도로 위로 얼음을 깎아 세운 궁전이 보인다. 아름다움과 서늘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신비로운 모습이다.
‘저게 프레스톤 성인가?’
-그래. 저곳도 그대로군.
‘장관이네.’
-저 얼음 성을 유지하는 것도, 이곳이 따뜻한 것도 모두 그 아이템의 힘이다.
‘대체 그 아이템이 뭔데?’
-안 가르쳐 준다.
‘엥?’
-너도 맨날 나한테 안 알려 주잖냐. 나도 똑같이 해 주마.
흑암은 꼬리를 흔들듯이 검날을 돌리며 히죽였다.
‘그래? 알겠어.’
백우진은 어깨를 으쓱이고서 데플을 따라 경비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 안 궁금해?
‘별로.’
세상에 놀랄 일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그, 그러면 안 되는데? 야, 다시 생각해 봐!
“프레스톤 성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북벽의 경비를 담당하는 경비대장 리제론입니다.”
벽 위에 있던 중년인이 내려와 양 주먹을 맞대며 고개를 숙였다.
“환대에 감사하오.”
데플은 리제론의 인사를 받으며 정중한 예를 취했다.
“프레스톤 성주께서는….”
“사람을 보냈으니, 곧 소식이 올 겁니다.”
리제론은 확실한 예를 취했지만, 어디서 쉬라는 말도 없고 차를 내주지도 않았다. 그저 눈앞에서 대기해 달라고 말할 뿐이다.
“흐음, 지하에서 보물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데? 이것 참….”
“여기 백가 아니다. 허튼짓했다간 진짜 죽는다.”
“에이, 난 의적이야. 뭔지 모르는 곳에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의적은 무슨!”
무영객과 문주영은 리제론이 알아들을 수 없도록 그 괴상한 통역기를 벗고 한국말로 떠들었다.
두 사람이 가볍게 다투고 있을 때 얼음 궁전에서 오크처럼 단단한 체격을 가진 청년이 걸어 나왔다.
“성주께서 손님들을 알현실로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가시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리제론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몸을 돌렸다.
“이제야 만나는 건가.”
데플이 주먹을 꽉 쥐며 리제론을 따라갔다. 성에 보냈던 전령들은 성주의 얼굴도 못 봤다고 했었기에 자신이 직접 온 게 정답인 것 같았다.
‘진짜 얼음이군.’
백우진은 가장 뒤에서 움직이며 프레스톤 성을 살폈다. 성의 외벽은 얼굴이 비칠 정도로 투명하면서도 강철보다 단단해 보였다. 이 성 역시 흑암이 말한 특별한 물건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성 내부에 들어가며 그 누구도 눈치챌 수 없도록 은밀하게 기감을 흘렸다.
‘절대자 초입 하나, 9등급 둘, 나머지도 보통은 아니군.’
북방의 지배자라는 이름대로 프레스톤 성의 무인들의 수준은 높았다. 자신이 없는 백가의 전력보다도 강한 것 같았다.
‘네가 자랑할 만하네. 전부 강해.’
-으음….
‘왜?’
-무인들의 기운이…. 아니다. 보면 알겠지.
‘싱겁긴.’
백우진은 옅게 웃으며 리제론을 따라 성의 2층으로 향했다. 그는 다섯 개의 뿔이 새겨진 악마의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리제론은 고개를 숙인 후 돌아갔고, 문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검사가 몸을 옆으로 틀며 그 거대한 문을 열었다.
문은 얼음으로 만든 듯 크기에 비해 조금의 소음도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후우우웅!
문이 열리자마자 알현실 내부에서 뼈를 시리게 만들 정도로 차가운 냉기가 퍼져 나왔다.
‘음….’
백우진이 입맛을 다셨다. 이곳에 오면서 느낀 추위가 간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냉기였다.
“으윽!”
“크음….”
“아오!”
데플과 문주영이 인상을 찡그렸고, 무영객은 팔을 부여잡고 몸을 떨었다.
“크윽….”
백우진은 냉기에 영향받지 않았지만, 당황한 척 신음을 흘렸다.
“들어오세요.”
내부에서 얼음장을 덮은 듯한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여자가 성주라고?
데플을 보았지만, 녀석도 몰랐던지 당황한 표정으로 알현실에 들어갔다.
알현실의 양옆에는 뛰어난 무인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중앙에 세워진 얼음의 왕좌에는 은발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빛이 피어나는 듯한 새하얀 은발에 신이 조각한 듯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성이었다.
“오….”
“억!”
데플과 문주영도 그녀의 외모에 잠시 넋이 나갔고, 무영객은 아예 입을 쩍 벌리고 그녀의 얼굴만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인형이라도 된 듯 아무런 표정도 없었기에 나이가 파악되지 않았다.
‘저 여자였군.’
백우진이 두 눈을 빛냈다. 저 여자가 이곳의 절대자이자, 성주임을 알 수 있었다.
“크흠!”
정신을 차린 데플은 뺨을 가볍게 두드리고서 앞으로 나와 살짝 고개를 내렸다.
“린덴 성의 성주. 데플 린덴입니다. 프레스톤 성주를 뵙습니다.”
“프레스톤 성을 맡고 있는 세인 슈라펠입니다.”
세인은 목소리도 아름다웠지만, 기계가 말을 하는 듯 차가우면서도 딱딱했다.
“…….”
세인은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데플을 넘어 문주영과 무영객을 살피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시선을 던졌다.
힘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시선은 자신에게 아주 잠시 머물다가 데플에게 돌아갔다.
‘역시 못 알아보는군.’
-네가 훨씬 강하기도 하고, 네 오러의 특성도 있으니….
세인은 자신이 강한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마 체격 좋은 정령사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거다.
“린덴 성주께서 프레스톤에 오신 이유는 뭐죠.”
“저희와 동맹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데플은 단도직입적인 세인의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동맹….”
세인은 동맹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오른팔로 턱을 괴었다.
“이걸로 네 번째군요. 동맹 제안이.”
“현재 카론 제국에 기사들과 흑귀들이 무수히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저희지만 그 이후에는 북과 남도 노릴 게 뻔합니다. 지금 움직이지 않는다면….”
“거절합니다.”
데플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세인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눈을 내리감았다.
“예?”
“거절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체 왜….”
“성주께서 직접 오신 것도 알고, 제국이 움직이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동맹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그럼 이유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이유라….”
세인은 괴고 있던 턱을 떼고 데플을 내려보았다.
“거절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알려 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그런….”
“돌아가십시오.”
세인은 할 말이 끝났다는 듯 왕좌에서 일어섰다.
“쯧….”
백우진이 혀를 찼다.
‘방법이 없나?’
동맹하지 않겠다는 곳에 뭐라 할 자격은 없었지만, 힘들게 왔는데 저리 딱딱하고 냉정하게 나오는 세인에게 짜증이 일었다.
-똑같군.
‘똑같다니?’
-저 차가운 은발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프레스톤 녀석과 닮았어. 다만 그놈의 무는 이어받지 못했군.
흑암은 알현실을 나가려는 세인을 보며 클클 웃었다.
-백빙전을 하겠다고 말해라.
‘응?’
-데플 녀석에게 백빙전을 하겠다고 말하라고 전해.
‘백빙전이 뭔데?’
-프레스톤 성의 고유 행사로 성의 무인 열 명을 상대하여 이긴 사람은 성주에게 가벼운 부탁을 할 수 있다. 프레스톤 녀석이 굉장히 좋아했었지.
‘확실히 그거라면….’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데플에게 전음을 날렸다.
“자, 잠시만요!”
데플이 외침에 알현실을 나서려던 세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백빙전을 하겠습니다!”
“무슨!”
“으음!”
“그건….”
세인의 얼음장 같은 표정이 깨졌고, 일렬로 서서 정면만을 바라보던 백 명의 무인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백빙전을 치르고 나서 동맹을 하지 않는 이유를 들어야겠습니다.”
“그걸 어디서 들었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백빙전이 무엇인지 알고….”
“프레스톤 성의 무인 열 명을 차륜전으로 상대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데플이 피식 웃으며 백우진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역시 스승님이라니까.’
백우진이 어디에서 그 내용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세인과 프레스톤 성의 무인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
세인은 데플이 아니라, 그 뒤에 선 문주영과 무영객, 백우진을 쳐다보았다.
한 명씩 살피던 그녀의 눈이 백우진에게서 멈췄다.
‘저 남자로군.’
데플의 움직임과 당황하지 않는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데플에게 정보를 준 사람이 바로 저 남자였다.
‘얼음 정령사.’
그에게서 강한 얼음 정령의 냄새가 난다. 뛰어난 정령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후우….”
세인이 발걸음을 돌려 중앙에 있는 데플과 마주 섰다.
“호위 중에 식견이 뛰어난 사람이 있는 모양이군요.”
세인은 데플이 아닌 백우진을 노려보며 입을 뗐다.
‘날 노려보는데?’
-귀찮게 했으니까 그러겠지.
흑암은 상황이 재밌어졌다는 듯 낄낄 웃었다.
“손님의 입에서 백빙전이 나왔으니, 하지 않을 수는 없죠. 다만 백빙전은 대련입니다.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세인이 서늘한 기운을 끌어 올리며 경고했지만, 데플은 그저 웃었다. 스승이 있는 한 자신이 죽을 일은 없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요.”
**
프레스톤 성의 대연무장. 바닥은 빙판처럼 투명했지만, 조금도 미끄럽지 않았다.
얼굴이 비칠 것 같은 연무장의 중앙에 데플이 자리를 잡았고, 그 반대편에는 세인과 프레스톤 성의 무인들이 서 있었다.
“칸젤.”
“예.”
“네가 나가라.”
“…….”
“확실하게 끝내도록.”
“알겠습니다.”
칸젤이라 불린 사내는 한순간 머뭇거렸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섰다.
‘시간을 끌 필요는 없어.’
세인이 눈매를 좁혔다. 저들이 백빙전을 아는 건 의외지만, 그 속사정까진 알 리 없다. 좀 다치더라도 빠르게 처리하고 돌려보내는 게 나았다.
-단단히 잘못됐군.
흑암은 데플에게 다가가는 칸젤을 보며 혀를 찼다.
-데플의 수준은 6등급 중후반이지만, 칸젤이라는 놈은 7등급이다. 상대 자체가 안 돼.
‘그건 알지만 원래 저렇게 하는 거 아니야?’
-전혀! 백빙전은 손님의 무를 보기 위한 행사다. 처음엔 손님보다 낮은 수준의 무인을 내보내고, 차근차근 실력이 높은 무인들을 내세우는 거다. 그래서 10명이나 상대하는 거라고! 처음부터 이렇게 나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자신이 떠나 있는 동안 프레스톤 성이 변한 건지, 아니면 현재의 성주가 잘못된 방향으로 운용하는 건지 모르겠다.
“린덴 성의 데플입니다.”
“설영대 칸젤입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예를 취한 뒤 검을 뽑았다.
데플이 먼저 검을 상단으로 들어 올리며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칸젤은 대검을 위로 세우며 바위처럼 자세를 낮췄다.
“하앗!”
데플이 전진하며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자세가 제대로 잡힌 완벽한 가로 베기였다.
치잉!
칸젤은 미끄러지듯 발을 놀려 한 끗 차이로 검격을 피해 낸 뒤 사선으로 검을 그었다.
치이이잉!
데플은 검을 살짝 비틀어 힘과 속도가 어우러진 칸젤의 검격을 흘려냈다.
‘저건….’
백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어설프지만, 자신이 사용한 광호섬과 비슷한 흘리기였다.
“하압!”
칸젤의 검을 흘린 데플이 한 발 전진하며 검을 내리친다. 강함과 무거움이 섞인 무령참과 비슷한 검격이다.
칸젤은 비틀어진 몸의 균형을 되돌리며 검을 올려 쳤다.
쩌어엉!
칸젤의 검격은 한 호흡 늦었지만, 밀려 나간 사람은 데플이었다.
칸젤은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검을 내리쳤다. 그 순간 데플이 검극을 휘돌려 검격을 비껴 냈다.
캬아아앙!
쇠와 쇠가 부딪치며 튀긴 뻘건 불똥이 바닥을 녹였다.
‘광호섬에 무령참, 낙일참이라…’
백우진이 불똥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데플 녀석은 가르치지도 않은 검로들을 본 것만으로 따라 하고 있었다. 저런 재능이 있을 줄은 또 몰랐다.
‘떨어지는 무력을 검로로 메우고 있어.’
-대단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흑암이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검로는 완벽하지 않았고, 수준과 실전 경험의 차이가 극심하다.
뻐억!
예상대로 칸젤은 데플의 자세를 무너뜨린 후 그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끄억….”
데플이 비틀거리며 물러나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간장에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끝났습니다.”
“아, 아직입니다.”
데플은 이를 악물고 다시 검을 세웠다.
“음….”
칸젤의 두 눈이 잠시 이채를 발했지만, 세인의 시선에 다시 기계 같은 눈으로 돌아갔다.
챠앙!
데플은 극심한 통증에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칸젤의 검을 흘려 내고 앞으로 돌진해 검을 내리쳤다.
쩌어엉!
칸젤은 검에 힘을 풀지 않았다. 강검으로 데플의 검을 튕겨 낸 후 무릎으로 데플의 오른쪽 가슴을 찍어 버렸다.
“꺼억!”
데플이 뒤로 날아가며 비명을 토해 냈다.
‘제, 젠장!’
방금의 충격으로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머리가 아찔해졌다.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칸젤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더라도 백우진에게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끝입니다. 빨리 치료를 받고….”
“아직… 입니다.”
데플이 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섰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칸젤에게 검을 겨누었다. 몸은 흔들리지만, 눈빛과 기세는 죽지 않았다.
“음….”
칸젤이 입술을 깨물며 세인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제대로 끝을 내라는 뜻이었다.
“하아….”
칸젤이 들리지 않는 숨을 내쉬고서 발을 뗐다.
콰아앙!
검에 휘몰아치는 오러를 담아 데플의 검을 후려쳤다.
“끄헉!”
검이 산산조각 깨지고 데플이 피를 토하며 뒤로 튕겨 나갔다.
‘어쩔 수 없었어.’
칸젤이 인상을 찡그리며 데플에게 다가가려 할 때, 흑발의 남자가 나타나 그의 몸을 받았다.
‘어, 언제?’
칸젤이 입을 쩍 벌렸다. 저 남자는 분명 가장 먼 곳에서 이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수를 써서 이곳에 나타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우우웅!
흑발의 남자가 데플의 심장에 손을 올리자, 데플의 일그러진 표정이 풀리며 그의 입에서 죽은 피가 흘러나왔다.
‘저 남자, 대체….’
평범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무언가 기이하다.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그의 기운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스, 스….”
“괜찮다. 수고했어.”
백우진은 다가온 문주영에게 데플을 건네주고, 세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당신은….”
“데플 성주의 호위입니다.”
인상을 찌푸린 세인에게 서늘한 웃음을 피워 냈다.
“두 번째 백빙전을 신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