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27
327화. 프레스톤 성 (4)
백우진은 세인을 따라 프레스톤 성을 넘어 북해 쪽으로 향했다.
“도착했어요. 여기가 북해를 막는 진짜 북벽이에요.”
“어?”
백우진이 북벽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부서졌잖아.’
-어, 어째서….
하늘까지 솟은 북벽의 한 축이 황폐하게 무너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거죠?”
“북해에서 거대한 촉수가 날아와 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세인이 한숨을 내쉬며 무너진 벽을 올려다보았다.
“촉수?”
“빨판 하나가 인간보다 큰 촉수였죠. 그 촉수가 철퇴처럼 떨어져 벽을 부쉈습니다.”
“그런….”
“처음엔 벽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공격하고 사라졌는데, 점점 심해져서 이젠 벽을 부수더군요.”
세인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프레스톤 성의 주인이면서도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한심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촉수에 십자로 갈라진 상흔이 있어서 그곳을 향해 북해현환을 사용했지만, 벨 수 없었어요. 놈은 저를 비웃듯 촉수를 흔들고서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렸죠.”
“그 정도 촉수라면….”
“크라켄인 것 같습니다.”
-그놈이다!
세인이 크라켄이라고 말할 때 흑암이 눈앞으로 날아왔다.
‘그놈?’
-크라켄!
‘그건 세인도 말했어.’
-그냥 크라켄이 아니다. 북해의 끝에서 사는 괴물 중 괴물, 해시 크라켄이다.
‘해시 크라켄?’
-크기가 일반 크라켄의 2배 이상으로 거대하고, 모든 속성과 오러에 저항이 있으며, 가진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바다라면 드래곤과 싸워서 이길 수도 있을 거다.
‘그 정도라고?’
백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일반 크라켄도 거대한데 그 2배라니, 상상이 가질 않았다.
-프레스톤과 내가 마지막으로 싸운 게 바로 그놈이다. 세인이 말한 십자 상처가 바로 내 몸으로 입힌 검흔이지. 간신히 쫓아냈건만 지금 돌아오다니….
‘아, 그러면!’
백우진이 두 눈을 빛냈다.
‘해시 크라켄이 처음에 벽을 두드렸던 건 프레스톤이 아직 살아 있나 간을 본 거였군.’
-그래. 프레스톤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벽을 치면서 상황을 본 거다. 녀석이 없다는 걸 알고 벽을 부순 거지.
‘그럼 이다음에는.’
-직접 쳐들어와 이곳에 있는 모두를 먹어 치우겠지.
‘위험하겠는데….’
아무래도 프레스톤 성에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저희가 동맹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예요. 크라켄과 해양 몬스터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기에 저희는 중앙의 전투에 참여할 여력이 없어요.”
“음….”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인의 말은 합당했다. 뒤에 저런 거대한 적을 놔두고 다른 전투에 신경 쓰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뭐죠?”
“그건 성의 아래에 있어요. 따라오세요.”
세인은 북벽을 훑어본 후 몸을 돌렸다. 그녀는 프레스톤 성으로 돌아가 1층 중앙 계단의 뒤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없어 보였던 계단 뒤에 검은 문이 그림자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우우웅.
세린이 손을 대자 문이 안개처럼 갈라지며 아래로 향하는 백색의 계단이 나타났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는 익숙한 걸음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너 이거 알았어?’
-아니, 계약이 끊어진 후 만든 것 같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고서 계단을 내려갔다.
“여긴….”
바닥도, 벽도, 천장도 모조리 은색인 거대한 방의 중앙에 사각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다만 반짝이는 은빛이 아니라, 북벽처럼 어둑한 은빛이었다. 벽을 만져 보니, 그 재질 역시 북벽과 같았다.
“북벽?”
아무래도 북벽을 만든 그 힘으로 만든 방인 것 같았다.
“한눈에 알아보시는군요. 맞아요. 이 방은 북벽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됐어요.”
세인이 백우진의 반응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방은 뭐죠?”
백우진이 방의 중앙에 세워진 기둥을 보며 눈을 좁혔다. 기둥에서 세인이 가진 오러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기둥이 저희가 못 나가는 두 번째 이유예요.”
“네?”
“초대 성주께서 만든 방과 기둥이에요. 그분께서 후계가 중앙으로 진출하고 싶다면 북해현환으로 이 기둥을 무너뜨린 후에 나가야 한다고 모두에게 못을 박으셨죠.”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이 방도 너랑 헤어진 이후에 만들었다며. 그럼 당연히 못 듣지.’
흑암은 이 방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 이 기둥을 수백 년 동안 아무도 부수지 못했다는 겁니까?”
“4대 성주님까지는 이 기둥을 베었던 거로 전해지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도 없었어요.”
세린은 민망한지 고개를 숙였다. 벽 아래에 서 있기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졌다.
-하여튼 그놈은….
흑암이 혀를 찼다.
-진출에 제한을 걸어 놓다니, 뒤지기 전에도 변하질 않는구만.
다만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녀석은 약한 후계들이 중앙에 진출했다가 쫄딱 망하는 걸 걱정했을 거다.
“이 기둥을 베려면 북해현환을 써야 한다구요?”
“네. 오직 그것으로만 기둥을 벨 수 있다고 알고 있어요.”
“흐음….”
백우진이 입맛을 다시며 기둥을 올려보았다. 일단 보기에는 그리 단단해 보이지 않았다.
“제가 한번 베어 봐도 될까요?”
“그러세요.”
세인은 의외로 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참마라면 벨 수 있을지도.’
설영검 들었다. 북해현환을 베었던 참마를 운용하며 기둥을 내리쳤다.
우우우웅.
설영검에서 솟구친 검은 칼날이 기둥을 반으로 갈랐지만, 그 은빛들은 다시 모여들어 기둥의 형태를 만들었다.
‘진짜였군.’
백우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기둥이 아니라 용의 뼈와 비늘도 벨 수 있는 검격이건만, 물을 베는 듯한 감각과 함께 기둥이 재생되었다.
“진짜군요.”
“네. 오직 북해현환으로만 벨 수 있어요.”
-저 아이의 말대로 북해현환을 사용해야만 저 기둥을 벨 수 있는 게 맞을 거다. 프레스톤 녀석 참 귀찮은 일을 벌여 놓았군.
“음, 크라켄과 달리 이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선조분의 말을 꼭 지켜야 하는 겁니까?”
몇백 년 전의 선조가 한 말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지켜야 해요. 전 이곳에서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자랐어요. 답답해하시는 게 당연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세인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들은 평생 여기서 못 나가는 건가?
-안다.
‘응?’
-북해현환의 완성형을 내가 알고 있다고.
흑암은 기둥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북해현환은 나와 프레스톤이 함께 만든 검로다. 저 아이처럼 강, 쾌, 와만으로 펼치는 허술한 검격이 아니라, 여덟 가지 묘리가 뒤섞인 아름다운 검술이다.
‘역시.’
백우진이 씩 웃었다. 예상대로 세인의 북해현환은 완성된 무예가 아니었다.
-다만 왜 저런 북해현환이 전승된 건지는 모르겠군.
‘난 왜 그렇게 됐는지 알 것 같아.’
-응?
‘네가 프레스톤은 강하고 성의 주민들을 아꼈다고 말했지?’
-그래.
‘그가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 성 주변의 몬스터는 씨가 말랐을 거야. 전부 쓸어버렸을 테니까.’
-맞다. 정확해.
흑암이 옳다는 듯 검날을 끄덕였다.
‘시간이 지나며 초대 성주가 기를 꺾었던 몬스터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겠지. 5대 성주 때부터는 몬스터가 너무 늘어나서 무인들은 단련한 시간을 얻지 못하고 그저 힘과 속도에 중점을 둔 무예들을 수련했을 거야.’
백빙전을 하며 확실하게 느꼈다. 프레스톤 성의 무인들은 강검과 쾌검에만 매몰된 상태였다.
-으음, 확실히…. 한 번에 쓸었으니, 나중에 한 번에 나올 가능성이 높긴 하군. 진짜 대가리는 잘 굴러간다니까.
흑암은 백우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감탄이 나오는 녀석이라니까.’
오성이 최상급에 오른 이후로 녀석의 잔머리와 예측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젠 자신도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다.
-백우진. 부탁이 있다.
‘응?’
-저 아이에게 제대로 된 북해현환을 알려 줘라. 동맹을 떠나, 친우의 후예들이 이런 모습이 된 게 너무 안타까워서 볼 수가 없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인과 무인들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았기에 감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자유 의지라면 모를까, 이런 벽에 막혀 있는 건 불쌍하기에 도와주고 싶었다.
-고맙다. 네게 도움을 다 받다니, 해가 서쪽….
띵!
흑암이 백우진에게 고맙다고 하려 할 때 알림음이 울렸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수백 년 전 북방을 호령하던 프레스톤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래의 강함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조건: 세인에게 진정한 북해현환을 보여 주고, 해시 크라켄 처치.
보상: 6,000포인트, 타이틀
-퀘, 퀘스트….
‘나쁘지 않은데?’
백우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어차피 할 일이었는데 퀘스트를 주다니, 고마울 뿐이다.
-아, 아니! 또 시작이야? 거기다 6,000포인트라니! 단가가 또 올라갔어!
‘나도 좀 비싸졌으니까. 그리고 좀 전에 고맙다고 해 놓고 또 발작이냐?
-이거하고 그건 다르지!
‘시꺼.’
눈앞에서 펄떡이는 흑암을 밀고서 세인을 보았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기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답답하지 않을 리가 없지.’
전통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여 있으니, 가장 답답한 사람은 성주 본인일 것이다.
“성주님.”
백우진이 옅은 한숨을 뱉으며 세인에게 다가갔다.
“제가 어떻게 백빙전에 대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죠?”
“맞아요. 젊으신 분이 알기 어려우실 텐데….”
“사실 제 스승님과 프레스톤 성의 초대 성주께서는 친우 사이셨습니다.”
“네에?”
세인이 눈을 부릅떴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냉기마저 사라진 듯한 모습이다.
-얀마!
‘거짓말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흑암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입만 삐죽였다.
“저, 정말이십니까? 하지만 저희 초대 성주님은 수백 년….”
“전 스승님을 직접 뵙지 못하고 그분이 남기신 서책을 우연히 구했습니다. 그 서책에는 스승님의 친우였던 프레스톤 성주에 대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죠.”
“아!”
백우진의 말을 이해한 세인이 탄성을 터트렸다.
“전 저희 스승님의 친우가 세웠던 이 성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기 위해서 데플과 함께 이곳을 찾았습니다.”
“아, 전 그것도 모르고….”
세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 이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술수를 쓰려고 했으니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북벽을 부순 크라켄은 해시 크라켄이라는 놈입니다. 초대 성주께서 물리쳤던 놈이고, 북해현환은….”
백우진은 세인에게 흑암에게 들은 해시 크라켄과 북벽현환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으음….”
세인이 여러 감정이 뒤섞인 듯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당연하겠지.’
아무리 자신이 명성이 뛰어나도 이 말들을 바로 믿을 리가 없다. 눈으로 보여 줄 게 필요했다.
“사실 북해현환을 어렵지 않게 깬 이유도 제가 그 절기를 알고 있어섭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제 스승님은 친우이자, 호적수였던 프레스톤 성주를 쓰러뜨리기 위해 북해현환을 포함한 북천명검에 대한 연구도 남기셨습니다.”
“아….”
“제가 성주님의 검이 완성될 수 있게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으니….”
백우진이 웃으며 세인의 검을 가리켰다.
“북천명검 좀 보여 주시죠.”
**
세인은 백우진을 자신의 연공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이게 잘하는 짓일까….’
생판 남에게 검술을 보여 주다니, 다른 사람이 지금 자신의 행동을 봤다간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당장 그만두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백우진의 눈을 보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갔다.
그 맑고 곧은 눈은 절대 사기꾼일 수가 없었다. 거기다 초대 성주님과 그의 스승이 친구였다는 말도 신빙성이 높았다.
그는 성주가 아니라면 모를 프레스톤 성의 비밀들을 알고 있었고, 초대 성주는 자신에게 라이벌이 있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졌으니까.
“하아….”
세인이 한숨을 내쉬며 검을 뽑았다.
“오러 운용은 알려 드릴 수 없어요.”
“물론입니다.”
백우진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래도 이상한 점이 느껴지면 바로 그만두겠다고 다짐하며 검을 들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이게 북천명검의 첫 번째 초식 은하추예요.”
그 말과 함께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후우우웅!
조금의 오차도 없이 직선으로 떨어지는 검격에 연공실에 가득 찬 서늘한 바람이 갈라졌다.
-역시 잘못되어 있군.
흑암은 세인의 은하추를 보고 혀를 쯧쯧 찼다.
-칸젤이라는 그 남자만이 아니야. 성주라는 녀석도 북천명검을 잘못 배웠어.
‘나도 보여.’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인의 은하추는 빠르고 강했지만, 흐름이 일정하지 못했다. 빈틈이 있다는 뜻이다.
-은하추의 원본은 부드러움이 섞여 있다. 이게 진짜다.
흑암은 허공에서 자신의 검신을 내리그었다. 세인처럼 빠르고 강하면서도 방향을 전환할 수 있게 부드러움과 변화까지 섞인 검로였다.
“흐음….”
백우진은 설영검을 뽑아 허공에서 은하추를 몇 번 휘둘러 본 후 멍하니 선 세인을 보았다.
“성주님. 제가 하는 거 한번 봐 주시겠어요?”
그녀의 대답을 듣지 않고, 설영검을 들어 올려 아래로 내리쳤다.
공간이 갈라진다.
그저 검으로 벤 게 아니라, 저 하늘의 별이 떨어진 듯 다채로운 변화가 어린 내려치기였다.
-더럽게 제대로군.
흑암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 망할 놈….
북의 제왕이라 불렸던 빙제 프레스톤의 은하추를 한 번 본 것으로 현현시키다니, 웃음밖에 안 나왔다.
“아아….”
세인이 떨림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에 든 검을 떨어뜨렸다.
‘저, 저게….”
항상 은하추를 사용하면서 느꼈던 그 부족함과 이질감이 완벽하게 채워진 채로 눈앞에 나타났다.
빠르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변화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듯한 힘. 하지만 그 조화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어울렸다.
“다, 당신. 대체 뭐야!”
“이제 좀 믿어지시나요?”
“믿고 말고가 아니라….”
“제 스승께선 북천명검은 여러 검술이 조화롭게 모인 검술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은하추를 휘둘렀을 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천재. 대륙 제일의 천재라고 해도 말이 되질 않았다. 제국 최강이라는 가렌도 저 정도는 아닐 거다.
“다음 초식을 보여 주시죠. 이번엔 마지막까지 쭉 이어서.”
백우진은 싱긋 웃으며 설영검을 검집에 넣었다.
“하아, 내가 뭘 하는 건지. 알겠어요. 시작할게요.”
세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기호지세야.’
시작한 이상 되돌릴 수 없다. 특히 방금 그 완벽한 은하추를 보고 나서는 더욱.
후우웅.
은하추부터 마지막 북해현환까지 서른두 가지 초식을 모두 보여 주었다.
“이게 북천명검의 모든 초식이에요.”
세인은 북천명검의 모든 초식을 보여 준 뒤 몸을 돌렸다. 그녀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눈빛으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제 차례군요. 나름 보완하겠지만 완벽하진 않을 겁니다.”
백우진은 그렇게 말하고 설영검을 들어 올렸다.
검을 내리고, 검을 올린다.
그의 검에서 아름다운 호가 그려지기도 하고, 폭풍처럼 거센 기운이 폭발하기도 했으며, 별처럼 찬란한 빛이 발하기도 했다.
“아….”
세인이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저거였던가….’
연습하면서 의심했던 검술이, 휘두르면서 이질감을 느꼈던 검술이 완벽이라는 단어로 재탄생한 것 같았다.
검술을 전수받으며 생각 없이 익혔던 벽이 깨어지며 머리에 뇌성이 치는 것 같았다.
후우웅!
백우진의 검은 서른한 번째 초식 북위삭풍을 마지막으로 아래로 향했다.
“왜….”
“북해현환은 단순한 초식이 아니라, 깨달음을 담은 초식입니다.”
백우진은 아쉬움으로 가득 찬 세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 초식은 북천명검의 모든 초식을 한 수에 담아내는 초식. 바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평생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거기다 잘못된 길로 갈지도 모르니, 지금 보여 드리긴 애매하네요.”
완성되지 않은 북해현환을 세인에게 보여 줬다가 독이 될 수도 있기에 검을 멈췄다.
-만검을 익히게 한 값은 하는구나.
흑암이 기껍다는 듯 백우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백우진은 만검을 단련하는 검사답게 북천명검의 단점을 순식간에 보완했다.
조금만 연습한다면 북해현환까지 포함한 북천명검의 모든 것은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다.
“그, 그렇군요….”
“어쨌든 제가 보여 준 방식으로 검을 수련하신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경지에 오르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통이….”
세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들이 익힌 북천명검은 위에서부터 내려온 검술이다.
정말 백우진이 보여 준 검술이 진짜 북천명검이라고 해도 전통으로 내려온 검술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전통일까요?”
백우진이 설영검을 검집에 넣으며 세인의 앞에 섰다.
“제 스승님은 북천명검을 상대할 때 강함과 빠름 속에 변화와 부드러움, 그리고 폭발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다른 무인들만이 아니라 성주님의 검에서도 그런 건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 스승님이 서책에 적으셨던 북천명검은 당신들의 검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냉혹하리만큼 차가운 시선으로 세인을 바라보았다.
“당신들에게는 강인한 신체와 막강한 오러가 있지만, 검술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이미 추락한 검술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정말 전통을 따르는 걸까요? ”
“아….”
“전 다른 곳에서 북해현환에 대해 연구하겠습니다.”
백우진이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어떻게 하실지 결정을 내리신 뒤 찾아와 주십시오.”
**
콰아아아!
검은 바다가 일렁인다.
칠흑의 바다는 잔잔했다가도, 변화무쌍했으며, 흉폭하리만큼 폭발적이었다.
검은 바다에서 일어난 묵색의 해일은 하늘에 뜬 태양을 지울 것처럼 솟아올랐다가 안개처럼 사그라졌다.
후우우웅.
녹아내린 오러의 바다 아래에서 백우진이 검을 내렸다.
“어때?”
-저, 적당하네….
“완성이구만.”
백우진이 피식 웃었다. 흑암의 입에서 나온 적당하다는 말은 완성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망할 놈. 일주일 만에….
“전부 내가 익힌 묘리들이었으니까.”
일주일간 북천명검을 수련하며 그 묘리들을 파악했고, 결국 북해현환까지 익힐 수 있었다.
‘조금 미안하네.’
세인은 오러 운용법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만, 흐름을 보는 눈과 흑암 덕분에 한 번 본 것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근데 그 아이, 올까?
“올 거야.”
백우진이 옆의 나무 밑동에 주저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융통성이 없던데….
생각해보면 세인은 백빙전을 받아 줄 필요가 없었다.
백빙전이 사라졌다고 하면 그만이거늘 그걸 두 번이나 받아 줬고, 옛 전통에 따라 이곳에서 나가지도 않았다.
그 차갑고 아름다운 얼굴에 비하면 너무도 답답한 아이였다.
-그걸 어떻게 알아?
“검사니까.”
백우진이 자신감 있는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어려서부터 전통에 대한 압박을 받았다고 해도, 그녀는 검사다.
자신과 대련을 겁내지 않았고, 마지막 북해현환을 쏟아 낼 때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물론 뒤통수를 맞을 때는 당황했지만.
-대답 한번 근사하군.
“나도 검사니까.”
-흥! 폼 잡기는!
“검사님!”
흑암이 이죽거릴 때 무영객이 달려왔다.
“노, 놈이 나타났습니다!”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뛰어온 녀석이 입술을 떨며 말을 이었다.
“크라켄이 다가오고 있어요! 진짜 더럽게 커요!”
“딱 좋은 타이밍이네.”
“예?”
백우진이 크라켄이라는 말을 듣고 빙긋 웃었다.
‘잘하면 오늘 퀘스트를 깨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