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28
328화. 프레스톤 성 (5)
후우우웅.
세인은 연무장에서 홀로 검을 휘둘렀다.
평소라면 잡념 없이 오로지 검에만 집중했겠지만, 지금은 검을 휘두를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결국 북천명검의 서른두 초식을 두어 번 돌리고서 검을 집어넣었다.
“후우….”
세인이 한숨을 내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전통을 지키라고, 선조로부터 내려온 북천명검을 고수하라고.
하지만 진짜는 자신들이 지켜 온 북천명검이 아니라, 백우진이 보여준 북천명검 같았다.
‘완전히 달랐지.’
그 남자의 북천명검은 빠르고, 강했으며, 다채로웠다. 중간중간 해일처럼 터지는 폭발력은 잘 아는 초식들을 전혀 모르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백우진.”
세인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백우진의 검이 초대 성주 프레스톤의 북천명검 같았다.
‘하지만….’
그의 검이 진짜 북천명검이라고 해도 무조건 따를 수는 없다.
갑자기 찾아와서 일방적으로 도움을, 그것도 그를 속였던 자신에게 이런 큰 도움을 주는 건 이상한 일이다.
‘정말 모르겠어.’
또 머리가 아파져 온다. 이럴 땐 아무 생각 없이 시원하게 검을 휘둘러야 하건만 뭘 해도 답답하기만 하다.
‘그럼 딱 한 번만 해 볼까?’
백우진이 보여준 북천명검을 따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 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그가 보여 준 게 진짜 북천명검이라면 결국 선택해야 하니, 미리 연습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좋아.”
세인이 벌떡 일어났다. 차분하게 심호흡한 뒤 검을 들어 올렸다.
‘그 사람처럼.’
머릿속에 그리는 건 평생을 수련해 온 자신의 은하추가 아니라, 지난 일주일간 단 한 순간도 사라지지 않은 백우진의 은하추.
그 아름다운 곡선을 기억하며 검을 내리그었다.
화아아악!
연무장의 공기가 갈라진다.
이전처럼 강맹한 한 줄기의 선이 아니라, 어디든 들어갈 수 있는 부드러운 검격이었다.
“아….”
세인이 검을 쥔 손을 떨었다.
‘이거야. 이거였어!’
전율이 일었다. 북천명검을 수련하며 느꼈던 갈증이 한순간에 채워진 것 같았다.
‘그 사람의 북천명검이 진짜였어.’
은하추만 써 봐도 알 수 있었다. 진짜 북천명검은 자신의 검이 아니라, 백우진의 검이라는 것을.
후우웅.
세인은 백우진이 보여 준 방식으로 북천명검의 초식을 펼쳤다.
“하아….”
땀이 나고, 호흡이 가빠온다. 하지만 즐겁다. 너무도 즐겁다.
맨 처음 검을 쥐었을 때처럼 강해진다는 순수한 희열이 전신을 휘감았다.
쿵!
세인이 그 즐거움의 몸을 맡기고 검에 빠져들려던 찰나, 연무장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성주님!”
호위대장 다리안이 창백해진 표정으로 달려왔다.
“다리안?”
“노, 놈이 돌아왔습니다.”
“설마….”
“크라켄입니다! 이번엔 제대로 모습을 드러냈고, 해양 몬스터들도 밀려오고 있습니다!”
“…가자.”
**
세인이 보법을 전력으로 운용하여 북벽까지 달렸다. 북벽의 앞에 선 무인들이 보인다.
“아아!”
“어….”
“저, 저걸 어떻게….”
그들은 자신이 옆에 왔음에도 인사조차 하지 않고 넋을 놓은 채로 벽을 올려보고 있었다.
무인들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크다’라는 단어를 초월한 크라켄의 촉수가 끝없이 하늘로 올라간다. 그 그림자에 프레스톤 성 전체가 어둑하게 내려앉았다.
“아….”
이전보다 더 크고, 길어진 촉수에 입에서 헛바람이 흘러나왔다.
“성주님! 밑을 보십시오!”
세인은 다리안의 말에 고개를 내렸다. 첩첩산중이다. 촉수 아래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해양 몬스터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젠장….”
세인이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섰다.
“북벽은 버리고 몬스터들을 이곳에서 막는다! 모두 내려와!”
“성주님! 북벽을 버리는 건….”
“하지만 북벽은 저희의 자랑이자 전통….”
“어쩔 수 없다! 북벽을 지키다간 전멸이야!”
크라켄이 없다면 모를까, 놈의 여덟 촉수를 상대로 북벽을 지키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쿵!
벽이 울린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촉수의 연속된 내려치기에 북벽이 무너져 내린다.
“이런….”
“벼, 벽이!”
“북벽이 무너졌어….”
수백 년간 북해를 지켜 온 프레스톤의 자부심이 벽과 함께 부서진다. 그 포악한 광경에 무인들의 눈동자가 공포로 흔들렸다.
“북벽….”
세인은 무너지는 벽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미 전통은 무너졌다. 지금은 전통이 아니라, 사람을 살릴 때다.
쿠구구구구!
북벽이 완벽하게 가라앉으며, 북해의 장대함에 올라탄 크라켄의 몸체가 보인다.
“허….”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하늘의 다리 같은 여덟 개의 촉수에 몸체는 이 성만큼이나 웅장하다. 한눈에 다 담기도 힘든 거대함. 드래곤이라고 해도 저 정도 크기는 아닐 것이다.
“아아….”
“서, 성주님….”
“젠장! 저걸 어떻게 막아!”
크라켄의 촉수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걸 보고 무인들이 질겁하며 물러섰다.
“크라켄은 내가 맡는다! 너희는 그 위치를 사수해! 절대 물러서지 마라!”
세인이 북해를 향해 튀어 나가며 검을 뽑았다. 전력으로 끌어올린 오러를 검신에 쏟아부었다.
콰아아아아!
북벽까지 솟구친 은빛의 강기에 크라켄이 몸을 돌렸다. 성을 내려치려는 촉수의 궤도를 바꿔 자신을 노렸다.
“흐읍!”
세인이 이를 악물고 검을 위로 올려 쳤다. 북천명검의 위연벽이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촉수와 바다에 닿을 듯한 검강이 격돌하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크윽!”
촉수에서 전해지는 무시무시한 힘에 신음이 절로 나왔지만 버텨야 했다. 자신이 꺾이는 순간 프레스톤 성의 모두는 죽은 목숨이다.
“흐아아압!”
세인이 기합을 내지르며 크라켄의 촉수를 밀어냈다.
쿠구구구!
그 작은 검으로 크라켄의 촉수를 밀어내는 놀라운 광경에 무인들이 용기를 되찾았다.
“크라켄은 성주님이 막아 주신다! 물러서지 마라!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막아!”
“위치를 사수하고 검을 들어라!”
“막아!”
무인들은 무너진 북벽을 넘어 들어오는 몬스터들을 향해 검을 세웠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잊고 있었다. 크라켄의 촉수가 아직 일곱 개 남았다는 것을.
후우우웅!
하늘이 내려앉는 듯한 파공음과 함께 두 번째 촉수가 우측의 벽을 내리친다.
콰아아아앙!
어마어마한 위력에 남은 벽의 잔해가 가루가 되고 그 앞에 있던 건물들이 모조리 무너졌다.
쿠와아앙!
이번에는 좌측이다. 크라켄의 세 번째 촉수가 좌측의 벽을 폐허로 만들고 그 앞에 있던 무인들을 깔아뭉갰다.
“끄아아아악!”
“서, 성주님!”
“크윽! 이쪽도 뚫렸습니다!”
“초, 촉수가 하나 더 내려옵니다! 전부 피해!”
“크아아아악!”
사방에서 무인들이 죽어 가는 소리와 절망에 빠진 소리가 들려왔다.
쾅! 콰아아앙!
크라켄의 촉수는 무자비할 정도로 북벽과 성을 때려 부쉈다.
“젠장….”
세인이 피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뭘 어떻게 해야….’
답이 보이지 않는다.
촉수 두 개를 상대하기도 버거운데 지금 움직이는 촉수는 다섯 개고, 다가오는 몬스터들은 수를 헤아릴 수도 없었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북천명검의 진의를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북천명검을 제대로 익혔다면 이런 꼴은 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끝없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백우진이 와 준다면 크라켄을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일주일 전 성을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제기랄!”
두 개의 촉수를 아무리 막아 봐도 크라켄은 멈추지 않았다. 남은 촉수로 북벽을 성을 깨부수고, 무인들을 깔아뭉갰다.
“다 끝났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였다.
[크오오오오!]하늘을 울리는 괴수의 포효에 고개를 들었다.
“드래곤?”
전신이 검은 화염에 타오르는 드래곤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온다. 용의 날개에서 피어난 검은 불꽃은 비가 되어 떨어져 내린다.
화아아아악!
쏟아진 검은 불꽃은 북벽의 잔해 위로 타올라 벽을 넘던 몬스터들을 모조리 재로 만들었다.
콰아아앙!
검은 불꽃의 위로 흑발의 남자가 내려선다. 모든 것을 녹이는 흑화조차 그의 존재를 침범하지 못했다.
“배, 백우진….”
기억났다.
검은 코트, 흑발, 검은 검, 그리고 검은 드래곤. 그가 세운 전설의 한 축인 검은 드래곤이 사방에서 몰려든 몬스터들을 녹여 버렸다.
“이제야 생각을 바꾼 모양이군요.”
백우진이 뒤로 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 나섰다.
“당신이 갈 길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가 검을 뽑았다. 선명한 검은 강기가 검극을 타고 치솟았다.
“은하추.”
북천명검의 첫 번째 초식을 말하며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크라켄의 촉수를 내리쳤다.
퍼어엉!
그의 검극은 흔들렸지만, 힘이 부족한 떨림이 아니다. 강함과 빠름에 뒤섞인 부드러움이 크라켄의 촉수를 터트렸다.
‘어떻게 저런….’
세인이 눈을 부릅떴다. 자신이 전력을 쏟아도 벨 수 없었던 크라켄의 촉수가 부드러운 땅처럼 파여 나간다. 저 단단한 촉수가 저리 쉽게 찢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끼아아아아!]북해가 출렁이며 크라켄의 몸체가 솟구쳤다. 그 거대함은 이 성을 넘어섰고, 놈의 움직임에 막대한 해일이 치솟았다.
“이제야 보이는군.”
백우진이 앞으로 나섰다.
“백결선.”
그는 북천명검의 두 번째 초식을 말하며 검을 일자로 그었다.
촤아아아악!
빠르면서도 부드럽다. 흔들리는 검극에서 흑색의 검풍이 불어와 쏟아지는 해일을 갈라 버렸다.
[키아아아아!]크라켄이 다시 괴성을 내지르며 세 개의 촉수를 동시에 들어 올렸다. 촉수가 허공에서 호를 그리며 떨어진다.
제대로 맞는다면 이 성 자체가 무너질 듯한 크라켄의 공격 앞에서 백우진이 검을 세웠다.
“위연벽.”
다수의 공격을 검 한 자루로 막아 내는 북천명검의 방어 초식 위연벽이 펼쳐졌다.
우우우웅!
십자로 그어진 흐릿한 검막 위로 세 개의 촉수가 쏟아진다.
콰아아아앙!
바람만 불어도 지워질 것처럼 약해 보이던 검막은 촉수 세 개를 동시에 막아 내고도 깨지지 않았다.
딱딱.
세인이 윗니와 아랫니를 부딪쳤다.
‘내 오러와 별 차이가 없어.’
백우진이 사용하는 오러의 양은 자신과 비슷했지만, 그의 위연벽은 하나의 촉수를 막기도 벅찬 자신과 달리 세 개의 촉수를 동시에 막아 냈다.
그는 검술의 성취만으로 저 거대한 괴물을 압도하고 있었다.
“저, 저거 위연벽 아니야?”
“아까는 분명 배, 백결선이었어.”
“처음엔 은하추였지.”
뒤에서 무인들이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지만 좀 아니, 많이 달라.”
“힘만이 아니라, 부드러움이….”
“북천명검을 저런 식으로….”
백우진은 북천명검의 진의가 어떤 것인지 직접 보여 주고 있었다.
[끼이이이이!]크라켄이 화가 난 듯 북벽을 향해 다가왔다. 뒤쪽의 촉수 2개를 제외한 나머지 여섯 촉수를 끌어와 난잡하게 땅을 내리친다.
콰아앙! 콰과과광!
하늘이 무너질 듯 울리고 대지의 지축이 흔들렸지만, 백우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북천명검의 초식을 하나하나 보여 주며 크라켄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 냈다.
‘저럴 수가 있다니….’
보면 볼수록 놀랍다.
초대 성주의 북천명검을 보지 못했지만, 그가 살아 돌아와도 백우진 이상의 검술을 보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퍼어엉! 퍼엉!
크라켄의 촉수가 풍선이라도 된 듯 터져 나간다. 백우진이 북천명검의 스물두 번째 초식 쌍휘차로 두 개의 촉수를 동시에 베어 버린 것이다.
[끼아아아아!]크라켄이 몸을 돌렸다. 터진 촉수 두 개를 북해에 담그고 남은 여섯 촉수를 배배 꼬아서 하늘로 올렸다.
쿠구구구구!
그 형태는 말 그대로 철퇴. 철퇴처럼 휘감긴 촉수가 백우진을 향해 떨어졌다.
‘난 못 막아….’
세인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섯 촉수가 하나로 모인 철퇴에서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진다. 가진 힘을 다해 북해현환을 그어도 저 공격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우우우웅!
백우진은 검을 모로 눕혔다. 북위삭풍의 준비 자세다.
쿠구구구!
그는 크라켄의 촉수 철퇴가 닿기 직전 검을 세웠다. 검에서 타오르는 검은 불길이 거친 삭풍이 되어 몰아친다.
칠흑의 기운을 두른 바람이 촉수의 철퇴를 유연하게 받아 낸 뒤 그 탄력을 이용하여 폭발했다.
퍼어어엉!
부드러움에 숨었던 흉악한 삭풍이 피어나 크라켄의 촉수 여섯 개를 동시에 터트려 버렸다.
파아아아아!
푸른 피와 녹색 살점이 해안으로 추락한다.
[끼아아아아아악!]크라켄은 지금까지 중 가장 큰 비명을 지르고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두 눈에 담긴 건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딜 가려고.”
백우진이 푸른 피로 뒤덮인 해안을 박차고 바다를 달렸다. 그는 바다의 신이라도 된 듯 북해를 밟으면서도 속도가 전혀 줄지 않았다.
[끼이이이익!]크라켄이 바닷속으로 잠수하려 했지만, 백우진은 이미 그 괴물의 앞에 이르러 있었다.
치이이이잉!
설영검의 검신에서 칠흑의 빛이 피어난다. 그는 수평선에 닿을 듯 끝없이 타오르는 검을 내리그었다.
콰아아아아아!
허공에 열린 검은 선에서 바다가 일어선다. 검은빛이 명멸하며 푸른 바다를 집어삼킨다.
북해현환.
북해를 현현한다는 북천명검의 최종절기가 수백 년 만에 진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잔잔하게 퍼지던 묵빛의 바다가 급변한다. 바다 위로 수십 개의 용오름이 솟구치고, 거대한 해일이 일어섰다.
화아아아아!
잠수하려던 크라켄이 기둥처럼 내려선 용오름에 의해 억지로 끌려 올라갔다.
[끼아아아아!]용오름 하나하나는 막대한 기운을 담고 있었기에 크라켄의 몸이 사정없이 터져 나가며 해수면 위로 치솟았다.
[키이이이….]비명을 지르던 크라켄의 위로 놈의 몸을 넘어선 거대한 해일이 쏟아져 내린다.
콰아아아아!
강기의 해일에 휘감긴 크라켄의 몸이 태양 앞의 서리처럼 지워진다.
[끼이! 끼아아악….]크라켄은 단말마의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해일과 용오름에 휘감겨 숨통이 끊어졌다.
우우우웅.
백우진이 검을 내리자, 폭주하던 흑해가 가라앉으며 푸른빛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 북천명검입니다. 그리고….”
백우진은 천천히 걸어와 망부석처럼 선 세인에게 다가갔다.
“당신이 가야 할 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