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교역도시 라멜룬
“이걸로 프레스톤 성과 린덴 성의 동맹이 체결됐습니다.”
세인이 두 장의 서류에 성주의 인장을 찍으며 미소 지었다.
“이대로 괜찮으신가요? 저희가 많이 유리한데….”
데플이 서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이 계약은 자신들이 너무 유리했다.
“네. 괜찮아요. 서류상으론 저희가 불리해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거든요.”
세인이 인장을 집어넣으며 데플의 옆에 선 백우진을 힐끔 보았다.
‘저 사람이 있으니까.’
백우진은 대륙 전체를 뒤져 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무인이다. 그가 데플의 스승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계약은 절대 손해가 아니다.
거기다 백우진에게 도움을 받은 게 한두 가지도 아니니, 적당한 양보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는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데플은 동맹 서류를 꼭 끌어안은 채 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동맹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모두 기뻐하겠네요. 전부 스승님 덕분입니다.”
그는 옆으로 몸을 돌려 백우진에게도 90도로 머리를 내렸다.
“약속을 지킨 보상이다.”
백우진은 빙긋 웃으며 데플을 일으켜 세웠다.
“네? 약속이요?”
“내가 돌아올 때까지 성실하게 수련하겠단 약속. 그거 잘 지켰잖아.”
“고작 그걸로….”
데플이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스승님….’
심장이 격하게 뛴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그 약속을 지켰다고 이리 큰 선물을 주시다니, 너무 감사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감사하다는 말뿐이었다.
“민망하니까 그만해.”
백우진은 손을 저은 뒤 세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성주님. 그동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신경은 우진님이 쓰셨죠. 어? 설마 바로 돌아가시게요?”
“이 녀석도 성주인데 집을 너무 오래 비워 둘 수는 없죠.”
“그래도 조금만 더 있으시면….”
“중간에 들러야 할 곳도 있어서요.”
“으음….”
세인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벌써 간다니….’
돌아간다는 말을 들으니, 왼쪽 가슴이 살짝 아려 왔다.
단순히 정이나, 고마움 때문은 아니다. 그는 그 이상의 무언가로 자신에게 각인된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아….”
백우진이 세인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 짓자,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슬쩍 내렸다.
-또 하나 빠졌구만. 에휴….
흑암은 다 끝났다고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그럼 어디에 들르시는 건가요?”
“교역 도시 라멜룬입니다.”
“아, 역시….”
세인은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라멜룬이 제국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 때문이시군요.”
“어? 알고 계셨습니까?”
데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발 다가갔다.
“소문의 반쯤은 진실일 거예요. 저희도 조사해 봤는데, 의회의 절반 이상이 제국을 지지한다고 하더군요.”
세인은 옅게 한숨을 쉬며 라멜룬의 상황을 전해 주었다.
“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다만 현 시장님은 슈칸 성 출신이라 아직 중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 그건 저도 기억나요. 그걸 확인해 보려고 가시는 거군요.”
“네. 제가 시장님과 조금 인연이 있습니다. 정보도 얻고, 기회가 되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 한번 가 보려고 합니다.”
데플이 희망 어린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흑암. 라멜룬은 어디 있지?’
-대륙 중앙에서 약간 남쪽에 치우친 곳에 세워진 도시다.
흑암은 벽에 걸린 대륙 전도에서 남쪽의 큼지막한 도시 하나를 찔렀다.
-라멜룬에는 대륙 모든 나라의 문물이 모여 있다. 다양한 인종과 출신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도시라, 어떤 상황에서도 중립을 유지한 곳이지.
‘그래서 교역 도시라고 부르는 거군.’
-그래. 그곳은 성주나 왕이 없고, 각 성과 국가에서 모인 의회와 의회가 뽑은 시장이 의사 결정을 내린다. 다만 이제 그 중립이 무너진 모양이군.
흑암이 혀를 찼다. 수백 년을 이어온 도시의 특색이 무너진 것 같아서 씁쓸했다.
‘교역 도시 라멜룬이라….’
백우진이 다시 대륙 전도를 보았다. 라멜룬은 교역지답게 대륙의 모든 나라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세워졌다.
저곳이 자신들을 도와준다면 제국과의 전쟁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후, 그렇다면야 잡을 수 없겠군요.”
세인이 아쉬움을 억지로 감추며 고개를 저었다.
“프레스톤 성의 자랑인 백랑으로 중부 지역까지 빠르게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녀가 자부심이 어린 얼굴로 일어섰다.
**
우우우웅.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게 솟아오른 북벽의 문이 열렸다.
중형차 크기의 하얀 늑대 백랑을 탄 백우진, 데플, 무영객, 문주영이 열린 문 앞으로 향했다.
‘승차감 좋네.’
백우진은 자신이 탄 백랑의 털을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 부드러운 털이 가득해서 백랑의 등에 오래 앉아 있어도 불편함이 없었다.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여유롭게 백랑을 타고 있었다.
“다 준비됐으면 가자.”
“옙!”
“알겠습니다!”
백우진이 먼저 문을 나섰고, 그 뒤로 문주영과 데플, 무영객이 따라 나왔다.
“그럼 라멜룬으로….”
“백우진 님!”
새하얀 눈밭으로 달려가려 할 때 북벽의 위에서 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간 정말 고마웠어요! 앞으로의 무운을 빌겠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그 뒤로 프레스톤 성의 무인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우오아아아아!”
“감사했습니다!”
“제국과의 전투가 벌어진다면 목숨을 다해서 싸우겠습니다!”
“북천명검 수련해서 갈 테니, 기대하고 계십시오!”
“또 만나자구요!”
무인들은 양손을 흔들며 환호를 내질렀다.
“저 녀석들….”
백우진이 옅게 미소를 지었다. 북천명검을 전수하며 눈에 익은 얼굴들이었기에 뭔가 가슴이 뜨거워졌다.
“조만간 또 보자.”
그 말을 남기고, 뒤를 돌았다.
“백우진! 백우진!”
“잘 가십시오!”
“무운이 함께하시길!”
백우진은 북방을 울리는 자신의 이름을 들으며 백랑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가자!”
**
백랑의 체력과 속도가 말보다 훨씬 뛰어났기에 백우진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교역 도시 라멜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게 라멜룬인가?”
백우진이 멀리 보이는 교역 도시 라멜룬을 올려보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크구만.”
거대한 원형 성벽 위로 각기 형태가 다른 건물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색도 양식도 다른 걸 보니, 전부 다른 문화의 건물 같았다.
‘돔구장 같네.’
단순하게 보자면 거대한 돔구장에 여러 건물들을 꽉 채워서 세운 듯한 모습이었다.
-예전보다 더 높고 커졌군.
흑암은 저 도시와도 인연이 있는 듯 어딘지 그리운 듯한 목소리를 흘렸다.
“확실히 크죠? 인구도 많고, 출신도 다양해서 제국도 섣부르게 건드리지 않았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데플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일단 들어가죠. 너무 늦으면 라멜룬의 자랑 엘프의 쉼터의 고기 스튜를 놓칠 거예요.”
“라멜룬에 오면 그건 무조건 먹어 봐야 한다며! 절대 안 되지!”
무영객이 고개를 저으며 데플의 옆에 착 달라붙었다.
“맞아. 가주님께 쓰레기 같은 방과 음식을 드릴 수는 없다.”
문주영은 당장 달려가려는 듯 자세를 낮췄다.
‘이제 죽이 잘 맞네.’
백우진은 세 사람의 등을 보며 미소 지었다.
두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저 셋은 죽마고우라도 되는 듯 친해졌다.
-관계가 좋아진 건 고무적이지만, 가장 놀라운 건 데플의 성장이지.
‘맞아.’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오는 동안 세 사람을 틈틈이 수련시켰는데 그중 가장 많은 발전을 이룬 사람은 데플이다.
6등급 중반 정도였던 녀석은 어느새 6등급 끝자락에 올라갔다. 그에겐 성장하는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꾸준히 수련해 온 씨앗이 다시 너를 만나 싹을 틔운 거다.
흑암이 달려가는 데플을 보며 픽 웃었다. 데플이 저리 빠르게 성장한 건 백우진에 대한 동경과 정직하고 꾸준하게 해 왔던 수련 때문이었다.
‘그럴지도.’
“스승님! 빨리 오세요!”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데플이 뒤를 돌아 빨리 오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늦으면 방도 못 구한다구요!”
“알겠다.”
세 사람을 따라 라멜룬의 성문으로 향했다. 도시의 크기만큼 성문은 컸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긴 줄을 서 있었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입장할 수 있는 차례가 돌아왔다.
백우진은 검문에서 린덴 성이나 프레스톤 성의 패가 아니라, 이곳에 오면서 구한 루난 마을의 패를 내밀어 검문을 통과했다.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바로 통과된 걸 보니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길이 거의 10차선급이네.’
백우진인 패를 품에 놓으며 성문 바로 앞에 있는 중앙 도로를 보았다.
여섯 대 이상의 마차가 동시에 지나가도 될 정도로 굉장히 넓은 도로였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라멜룬 시청과 의회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허세용이지.
‘허세라. 어디나 똑같군.’
백우진이 도로 위에 세워진 멋들어진 건물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검사님! 감상은 나중에 하시고 빨리 가요! 스튜 놓친다구요!”
“그놈의 스튜….”
이곳에 올 때 데플이 엘프의 쉼터의 스튜가 대륙 제일이라는 말을 해서 무영객은 그걸 꼭 먹어야 한다고 계속 떠들어 댔었다.
“무영객! 가주님께 함부로 말하지 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먼저 가서 예약해 놓고 있겠습니다!”
세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기니 하며 엘프의 쉼터를 향해 달려갔다.
“애들도 아니고.”
**
백우진은 엘프의 쉼터에서 방과 저녁 식사를 예약한 후 데플과 함께 대로를 올라갔다.
“좀 긴장되네요.”
“뒤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
“우와, 대박! 이건 적어야 해!”
데플은 작은 수첩을 꺼내서 자신의 말을 중얼거리며 메모했다.
-어휴, 미친놈이 하나 늘었네.
흑암이 검날을 절레절레 저었다. 도둑질에 미친 무영객에 이어 백우진에게 미친 데플이 나타났다. 벌써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민망하니까 그만하고 올라가자. 근데 시장이랑은 아는 사이라고?”
“네. 현 시장님은 예전에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 뵌 적 있어요. 그때는 의원이셨지만.”
“그럼 이야기가 좀 통할 수도 있겠군.”
“그렇다면야 바랄 게 없지만, 완고하신 분이라서요. 힘들지도 몰라요.”
데플은 현 시장인 캐일락에 대해서 몇 가지 설명을 해 주었다. 들어 보니, 융통성 없기로는 문주영과 맞먹을 사람이었다.
데플 역시 동맹을 기대하기보다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백우진이 시청 앞에 도착했을 때 철문 앞에 서 있던 경비대장이 길을 막아섰다.
“시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약속을 잡으셨습니까?”
“네. 락토라고 전하면 아실 겁니다.”
데플은 약속한 적도 없으면서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경비는 락토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면서 시청으로 들어갔다가 5분 정도 후에 나와서 철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십시오. 시장실은 3층의 중앙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데플은 마주 고개를 숙인 뒤 철문을 넘어 의회 건물로 들어갔다.
“락토가 뭐지?”
백우진은 계단을 오르며 데플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가 시장님이 서로를 놀리는 별명이에요. 두 분만이 통하는 은어 같은 거죠.”
“그럼 네가 왔다는 걸 알고 있겠군.”
“그럴 거예요.”
데플은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3층 시장실의 입구에 섰다.
똑똑.
“들어오시오.”
문을 두드리자, 방에서 꺼끌꺼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흰머리가 듬성듬성 난 중년인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얼굴은 평범했지만, 고무줄을 당긴 듯한 팽팽한 기세를 가지고 있었다. 데플의 말대로 완고한 인상이었다.
“역시 너였구나. 데플.”
“캐일락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후우….”
캐일락 시작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내리감았다.
“네겐 미안함뿐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니에요. 충분히 도와주셨잖아요.”
데플이 고개를 저었다. 캐일락은 라멜룬의 힘을 이용하지 않았을 뿐, 그 개인의 재산과 인맥으로 린덴 성을 도와주었다.
엄청난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정말 고마웠었다.
“얼굴이 밝아졌구나.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그런데 이분은….”
“호위입니다.”
백우진은 자신을 밝히지 않고, 프레스톤 성 때와 같이 호위라고만 말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네가 그렇다면야… 음!”
캐일락이 말을 멈추고 문을 보았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집사 차림을 한 남성이 들어왔다.
“차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세 잔의 차를 테이블에 올려 주고 빙긋 웃으며 문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것이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라멜룬과 동맹을 맺고 싶습니다.”
“그 말을 할 줄 알았다.”
“아저씨. 제국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아요. 저희만이 아니라, 라멜룬도 먹어 치울 겁니다.”
“미안하지만, 안 된다.”
캐일락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
“아니, 다시 말하마. 안 되는 게 아니라 못 한다.”
“예?”
“난 말이야. 힘이 없어.”
캐일락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차를 바라보았다.
“너도 알다시피 라멜룬은 시장과 의회가 의사 결정을 내린다. 내가 시장이라고 해도 의원 중 삼분지 이가 거절하면 답이 없어.”
“그럼 설마!”
“그래. 절반이라는 외부의 소문과 달리, 의원 대부분이 제국에 넘어갔다. 뭘 해도 늦었다는 말이다.”
“아….”
“놈들이 날 시장 자리에 올린 이유도 간단해. 자신들의 일을 방해할 수 없게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날 놔둔 거야. 방금 차를 가져온 비서도 날 감시하고, 네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온 거다.”
“그, 그런….”
데플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동자를 떨었다.
‘기막을 펼치길 잘했네.’
백우진이 문을 보며 서늘한 눈동자를 빛냈다. 이 방 주위에서 사람의 기척이 많아 기막을 펼쳐 소리가 빠져나가는 걸 막았는데 잘한 선택이었다.
-저 캐일락이라는 시장은 꼭두각시에 불과한 모양이군.
‘그런 거 같아.’
캐일락의 꽉 조여졌던 분위기가 끊어진 고무줄처럼 풀린 것처럼 달라졌다.
“도와주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요즘 들어 잘못 살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저씨….”
데플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 보니, 못 본 사이에 그의 이마가 주름살로 가득 찬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네 부탁을 들어줄 수 없겠구나. 네 정체를 들켰을지도 모르니, 내일 해가 뜨는 대로 바로 빠져나가라.”
“후, 알겠습니다.”
데플은 힘없이 일어서서 문을 나섰다. 백우진은 그 뒤를 따라 일어서며 캐일락을 살폈다.
그의 눈빛은 후회와 한탄,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쉽군. 이곳의 지원을 받는다면 여러모로 편했을 텐데.
‘아쉬워할 필요 없어.’
백우진은 자신감이 흐르는 눈빛으로 방을 나섰다.
‘아직 안 끝났으니까.’
**
그날 밤.
캐일락이 시장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때 노크도 없이 방문이 열렸다.
“캐일락 시장.”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얼굴에 인자한 웃음이 가득한 중년인이었다.
“로돈 의장님.”
캐일락이 눈매를 좁히며 일어섰다.
“낮에 누가 찾아왔다고 하던데.”
시장과 의장. 서로 존중해야 하는 관계임에도 로돈은 캐일락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지인이 찾아왔었습니다.”
“지인? 자네에게 그런 젊은 지인이 있었나? 호위가 있는 걸 보면 신분도 있는 것 같고. 락토라는 또 말은 뭐지?”
“음….”
로돈의 능글맞은 표정에 캐일락이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전부 파악하고 있었군.’
시청의 호위, 비서, 청소부까지 이곳의 모든 것은 로돈의 눈이 된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데플이 린덴 성주인 건 몰라.’
데플이 로돈에게 정체를 들키기 전에 최대한 빨리 떠나기를 바랐다.
“예전 떠돌며 여행할 때 만났던 아이입니다. 잊지 않고 찾아와 줬더군요.”
“흐음, 호위까지 있는데?”
“호위가 아니라, 용병입니다.”
“뭐 좋아.”
로돈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했던 그 이야기 결정은 내렸나?”
“의장님. 라멜룬은 단 한 번도 중립을 어겨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카론 제국이 득세한다고 해도….”
“허, 아직도 모르는 건가? 자네에겐 선택권이 없어. 이미 의회의 80% 이상이 제국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건….”
“이건 이미 결정 난 사항이야. 의회를 열기 귀찮으니, 자네 손으로 결정을 내리라는 것뿐이지.”
로돈이 인상을 찌그러뜨린 캐일락을 차게 비웃었다.
“며칠 뒤 자네가 제대로 선택해야 하는 날이 올걸세. 그때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자네와 자네 가족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야.”
로돈이 손을 빙글 흔들고서 문을 나섰다.
“하아….”
캐일락이 깊은 신음을 내뱉으며 머리를 감싸 쥘 때, 그의 뒤에 있던 창문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우우웅.
바람에 나부끼듯 흔들리던 그림자는 아행복을 입은 남성의 형태로 바뀌었다.
“이거면 되겠지?”
야행복을 입은 남자는 시장실 내부를 힐끔 들여다본 뒤 소리 없이 벽을 박찼다.
“에혀, 귀찮은 건 문주영 말고, 나한테만 시킨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