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33
333화. 교역도시 라멜룬 (3)
“네놈은 뭐야!”
시겔이 품에 가지고 있던 단도를 꺼내며 눈을 부라렸다.
“데플의 호위.”
백우진은 시겔을 놀리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데플에게 네놈 같은 호위가 있다는 건 들은 적 없어!”
“네 정보가 부족한가 보지.”
“이놈….”
시겔이 슬쩍 옆으로 눈을 돌리자, 다크엘프가 이를 악물며 하나 남은 오른손으로 시미터를 뽑았다.
“절대 놓쳐서는 안 돼! 지금!”
시겔의 신호에 다크엘프가 땅을 박차며 시미터를 내리쳤다.
“헛수고다.”
백우진은 자신의 목을 베려는 시미터를 향해 설영검을 그었다.
촤아악!
허공에 검은 선이 피어나며 다크엘프의 목이 땅으로 떨어졌다.
“허억!”
다크엘프를 보낸 뒤 도망치려던 시겔은 그 모습을 보고 기겁하며 멈춰 섰다.
‘어, 어떻게….’
다크엘프다. 흑귀가 아니라, 다크엘프. 검술의 달인인 다크엘프가 고작 일검도 버티지 못하고 목이 베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망할!”
놈의 무력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준을 벗어났다. 무조건 도망쳐야 했다.
우우웅!
시겔이 오러를 끌어 올려 주변과 동화되는 암살 기술 소귀은신을 운용했다.
‘이제 천천히 움직이기만 하면… 어?’
사라지는 자신의 몸을 보며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다리만이 아니다. 전신이 움직이지 않았다.
“억!”
너무 놀라서 은신했다는 것도 잊고 육성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미안하지만, 도둑놈 때문에 그런 숨바꼭질은 질리도록 해 봤거든.”
백우진은 시겔이 은신한 곳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우우웅!
시겔의 은신이 해제되며 그의 몸이 백우진의 앞으로 날아왔다.
“어억….”
그의 눈동자가 백우진에 대한 공포에 잠겨 허우적거렸다.
“캐일락 시장의 비서이자, 로돈 의장의 스파이 시겔.”
“그, 그걸 어떻게….”
시겔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너와는 할 말이 많겠어.”
백우진이 서늘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나, 날 잡아도 소용없다. 계획은 이미 시작됐다!”
“그게 무슨 소리냐!”
캐일락 시장이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시겔을 노려보았다.
“우리가 노리는 건 당신만이 아니다. 제국의 반대편에 선 의원들과 간부, 무인들까지. 모조리 흑귀로 만드는 게 계획이다. 당신이 살아남았다고 해도 이 도시는 이미 제국의 것과… 어?”
시겔이 창밖에 비치는 붉은 빛을 보고 말을 멈췄다.
“불이야!”
“불이 났다!”
“더 번지기 전에 나와서 막아!”
도시의 중심에서 불길이 솟구치고, 사람들은 불이 났다고 비명을 질렀다.
“미안하지만, 그것도 아는 내용이야. 다른 건 없어?”
“아, 알고 있었다고? 이 습격을?”
“그래. 시장님 다음은 의원들과 경비대장이잖아.”
“너, 너 뭐야!”
시겔이 입을 쩍 벌렸다. 습격 우선순위까지 알다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대체 넌… 커헉!”
백우진이 시겔의 목을 쳐서 기절시켰다.
“그, 그럼 저 불은….”
“제가 질렀습니다. 저놈의 말대로 사람들이 흑귀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
다크엘프와 가고일 기사단은 이 조용한 밤을 이용해서 제국 반대파를 흑귀로 만들 생각이었겠지만, 저 불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다.
놈들이 시장과 함께 첫 번째로 노렸던 의원 루랑과 경비대장 자크에겐 문주영과 데플이 갔으니, 제국과 로돈의 계획은 망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크게 번지지 않도록 조정했으니까.”
지금 불을 지르는 건 이그니스다. 단단히 주의를 주었으니,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적절하게 조절하고 있을 거다.
“일단 마비부터 풀어 드리겠습니다.”
백우진이 캐일락의 명치에 손가락을 올려 그의 몸을 굳게 만들었던 마비 독을 빼냈다.
“으음, 가, 감사합니다.”
캐일락이 손을 쥐었다가 펴며 백우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자는 대체….’
무시무시한 무력에, 자신도 모르는 시겔과 로돈의 계획을 파악한 정보력, 그걸 막는 행동력까지. 적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지만,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대륙 어디에도 이런 젊은 나이에 이 정도 그릇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로돈과 제국파 의원들이 스스로 죄를 고백할 겁니다. 그때 나와서 기회를 잡으시길.”
“스, 스스로 죄를 고백한다구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그리 만들 겁니다. 그 혼란을 이용해 제국파를 모조리 물러나게 만드세요. 그리고….”
백우진이 캐일락에게 서류 뭉치들을 넘겨주었다.
“로돈과 의원들이 제국에 도시를 팔았다는 증거들입니다. 물론 습격에 관한 것도 있으니, 이용하세요.”
그는 그 말을 남긴 후 시겔을 들쳐 메고 시장실을 나섰다.
“허….”
캐일락은 백우진이 문을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단단하게 박힌 그들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다만….’
그의 목소리엔 힘과 의지가 있었다. 불가능한 것 같은 일도 이뤄 낼 수 있을 것 같은 힘과 의지가.
“후….”
캐일락이 벌떡 일어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
‘해 봐야겠지.’
**
“허억! 허억!”
경비대장 자크는 침대 아래에 쓰러진 다크엘프를 보고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의 집에서 다크엘프에게 습격을 받았지만, 한 남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근데 당신은….”
“린덴 성의 성주 데플입니다.”
“데, 데플? 린덴 성주께서 대체 왜 여기에….”
자크가 눈을 부릅떴다. 다크엘프의 습격에 그걸 구해 준 사람이 린덴 성주라니, 이해되지 않는 일뿐이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측하셨겠지만, 당신을 습격한 건 제국의 반대파이기 때문입니다. 로돈 의장이 당신의 정보를 제국에 넘긴 거죠.”
“으음….”
자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모를 수가 없었다.
“이걸 받으세요.”
데플은 다크엘프가 가지고 있던 신의 눈물이 든 유리병을 자크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게 뭐죠?”
“인간을 흑귀로 만드는 액체입니다.”
“아! 그, 그럼 놈들은….”
“당신을 죽이는 게 아니라, 흑귀로 만들려고 한 겁니다.”
“이런 미친놈들!”
자크가 잡은 유리병을 부술 듯이 꽉 쥐었다.
“아, 그건 부수면 안 됩니다.”
“예?”
“증거로 써야 하거든요. 경비대장님은 그 병을 들고 의회 앞으로 가서 흔들기만 하세요. 의장이 볼 수 있게.”
“그, 그냥 흔들기만 하라구요?”
“네. 병을 흔들면서 의장에게 진실을 밝히라고만 하세요.”
“으음….”
자크가 데플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확신을 가진 사람처럼 침착했다.
‘그러고 보니, 린덴 성은 제국과 전쟁 중이었지.’
제국과 전쟁 중인 데플이 자신을 속일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목숨도 빚졌으니,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데플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 일반 끝나면 모든 게 술술 풀릴 겁니다. 약속드리죠.”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의장실에 있던 로돈이 창틀을 부서질 정도로 꽉 쥐었다.
‘하필 이럴 때에!’
제국 반대파를 흑귀로 만들어야 할 이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도시 전체에 불길이 치솟으며 시민들이 모두 밖으로 튀어나왔다.
저 망할 불길 때문에 흑귀화 계획은 중지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시겔은 왜 안 오는 거야!’
다른 사람도 중요하지만, 특히 캐일락을 제대로 처리했는지가 중요한데 시겔이 나타나질 않았다.
“내가 직접….”
“의장님!”
손톱을 씹으며 나가려 할 때 의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시겔이 달려 들어왔다.
“왜 이렇게 늦은 거냐! 그리고 이 불은 대체 뭐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화재 때문에 사람들이 튀어나오면서 반대파를 흑귀로 만들려던 다크엘프와 가고일 기사단의 행동이 들켰습니다.”
“이런 젠장!”
로돈이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자크 놈은 신의 눈물까지 확보했습니다. 다크엘프에게 들었는지 그 이름과 능력도 알고 있더군요. 지금 밖에서는 화재만이 아니라, 신의 눈물과 제국 군대의 습격에 대해서도 해명하라는 말이….”
“제기랄! 그 멍청한 놈은 지금 어디 있어!”
“알로이드와 가고일 기사단은 데플을 쫓아 성 밖으로 나갔습니다.”
“지금 데플을 쫓을 때가 아니건만!”
로돈이 피나도록 이를 갈았다.
‘뇌에 근육만 든 새끼….’
데플도 중요했지만 이곳의 문제가 훨씬 중요한데, 생각 없이 데플을 쫓아간 알로이드에게 욕이 절로 나왔다.
“넌 어떻게 됐어! 캐일락은!”
“흑귀화시켰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은 그 다크엘프에게 맡겼습니다.”
“후….”
캐일락이 흑귀화되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 그가 있었다면 큰 문제가 생겼을 거다.
“시장은 나와라! 의장 나와!”
“불이 났는데 뭣들 하는 거야!”
“빨리 병사들을 움직이라고!”
“왜 제국의 기사들이 집에 쳐들어온 건데!”
밖에서 시민들이 자신과 시장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의장님. 차라리 먼저 선수를 치는 게 어떨까요?”
“선수를 쳐?”
“시장은 어차피 나올 수가 없으니, 모든 걸 그에게 떠넘기는 겁니다.”
“하지만 그는 제국의 반대파인데….”
“괜찮습니다. 오늘 투표에 대한 건 아무도 모르니, 그걸 이용해서 제국을 받아들인 건 시장의 의지였다고 하고, 제국과 일단은 선을 끊어야 합니다. 믿지 않아도 어떻게든 얼버무린 뒤 다시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음, 확실히….”
“어설프게 행동하면 더 의심을 받을 테니, 처음부터 신의 눈물에 대해 이야기해서 이쪽과는 관계가 없다고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알겠다.”
로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시겔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다.
‘이 녀석. 도움이 되는군.’
시겔은 눈치가 빠르고 은신 능력이 뛰어나 받아들인 녀석인데, 지금 보니 머리 회전도 빠르다.
이번 일이 잘 풀리면 중책을 맡겨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간다. 준비해.”
“예.”
**
“시장은 어디 갔냐고!”
“불을 빨리 꺼야 할 거 아니야!”
“의장이랑 의원들도 하나도 안 나오잖아!”
시민들이 의회와 시청 앞에 몰려 있을 때, 로돈 의장과 십여 명의 의원들이 함께 나와 단상 위로 올라갔다.
“대체 뭘 하다가 이제 오는 겁니까!”
“시장님은 어디 계시는 겁니까?”
“모두 일단 침착해 주십시오.”
로돈의 진중한 목소리에 시민들이 입을 다물었다.
“일단 화재는 경비대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니, 곧 잡힐 겁니다. 그리고….”
“그거 말고도 할 말이 있을 텐데! 로돈 의장! 왜 다크엘프가 날 습격한 거요!”
“맞아! 난 가고일 기사단에 습격을 당했단 말이오!”
제국 반대파 의원 루랑과 해리가 고성을 터트렸다.
“의장! 나 역시 다크엘프에게 습격을 받았소! 확실하게 해명하시오!”
로돈이 중앙에서 신의 눈물을 흔드는 경비대장 자크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저 망할 놈….’
저 신의 눈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겔의 말대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것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저희 의회는 오늘 밤 제국이 벌인 사건과 관계가 없습니다. 저흰 대륙의 패권을 쥔 제국과 우호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들을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로돈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왜 제국이 우릴 습격한 겁니까!”
“그걸 아는 사람은 저희가 아니라, 지금 보이지 않는 사람 같습니다.”
“설마 시장?”
“시장이? 시장은 제국의 반대파였잖아.”
“시장은 겉과는 달리 실제로는 제국의 찬성파였습니다. 오늘 낮에 있었던 투표에서도 제국 군대를 받아들이는데 그가 거수했습니다.”
이미 기호지세였다. 시겔의 말대로 투표에 관한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전 시장과 제국 군대가 신의 눈물이라는 액체로 흑귀를 만들 줄은 몰랐던 일입니다. 그래서….”
“잠깐만요!”
로돈이 어깨를 떠는 연기를 하며 말을 이으려 할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겔이다. 녀석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모두의 귀에 파고들었다.
“흑귀를 만드는 물건이 신의 눈물이라는 액체인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분명 그 누구도 이름과 능력을 말하지 않았는데?”
“나, 나도 이게 신의 눈물이라는 이름인지 몰랐소! 습격을 이겨 내고 구한 물건일 뿐이오!”
“나 역시 마찬가지요! 흑귀라니! 처음 듣는 소리야!”
경비대장 자크와 살아남은 의원들이 자신들이 든 병과 로돈을 번갈아 보며 소리쳤다.
“어?”
로돈이 입을 쩍 벌렸다.
‘이, 이게 뭐야! 저 새끼가 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시겔이 자신에게 저런 질문을 던진단 말인가. 머리가 백지처럼 텅 비어 버렸다.
“로돈 의장! 해명하시오!”
“이게 흑귀를 만드는 신의 눈물인지 어떻게 안 거요!”
“로돈 의장! 의원들! 당신들이 정말 우릴 팔아넘긴 건가!”
시민들이 호통을 내질러도 로돈은 멍한 눈으로 시겔만을 보았다.
그때 시겔이 자신의 얼굴에 손을 얹었다. 올라간 손이 내려오자, 그의 얼굴이 바뀌었다. 데플의 호위라던 그 남자의 얼굴로.
“너!”
[알아서 죄를 밝혀 주니, 수고를 덜었어.]
“네놈 누구야!”
“로돈!”
등 뒤에서 들린 호랑이 같은 목소리에 로돈이 뒤를 돌았다.
“너, 너….”
흑귀가 되었다던 캐일락이 당당한 걸음으로 단상에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제국의 편을 들었다고?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건가! 거기다 라멜룬의 시민들을 흑귀로 만들어 제국에 팔아넘기다니,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어!”
“아, 아니야! 나는!”
“도시 비상 사태를 선포한다! 경비대! 로돈 의장과 단상 위에 있는 의원들을 모조리 체포하도록!”
“예!”
자크와 함께 왔던 경비대들이 단상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이놈들! 감히!”
“꺼져라!”
“너희 따위가!”
로돈 의장과 의원들, 그들의 호위들이 무기를 뽑고 오러를 끌어 올릴 때, 백우진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촤아아악!
뻗어 나가는 일검. 그 직선의 일검에 의원들과 호위들의 무기가 모조리 깨져 나갔다.
후우웅!
백우진이 두 번째 검을 그었다. 호를 그리며 퍼진 검풍이 의원들과 호위들의 오러를 끊어 버렸다.
“꺼헉!”
“끄으으….”
“아아악!”
오러가 깨진 의원들과 호위들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너, 너….”
로돈이 경련하듯 전신을 떨며 백우진을 노려보았다. 깊은 수렁에 빠진 듯 절망이 어린 얼굴이다.
“매번 속이기만 했지? 속는 기분은 어때?”
“끄으윽!”
백우진이 차갑게 웃자, 로돈이 화를 참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으며 뒤로 넘어갔다.
“전부 체포하세요.”
“아, 예!”
경비대는 처음 보는 백우진의 명령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로돈과 의원들을 끌고 갔다.
“제 말대로 됐죠?”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아직 모든 일이 끝나지 않았어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일?”
“부하에게 가야 합니다.”
백우진이 씩 웃었다.
“지금 열심히 도망치고 있거든요.”
**
“데플이 저렇게 빨랐다고?”
알로이드가 거칠게 이를 갈았다. 데플이 성벽을 넘는 걸 보고 바로 쫓아갔지만, 놈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보법도 빠르지만, 포위망을 쥐새끼처럼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이쪽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두 알고 있는 느낌이다.
“진형을 더 넓게 퍼뜨려! 에워싸란 말이야!”
알로이드가 직접 지시를 내린 끝에 라멜룬 근처의 언덕에서 데플을 포위할 수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 이제야 잡았구나.”
“너희가 잡은 게 아니야. 내가 잡힌 거지.”
“뭐?”
“여기가 약속 장소거든.”
데플이 히죽이며 얼굴에 손을 올렸다.
쫘악!
종이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데플의 얼굴이 사라지고, 처음 보는 능글맞은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 인피면구? 너, 넌 누구야!”
“내 부하다.”
“허억!”
뒤에서 들린 무거운 목소리에 알로이드가 기겁을 하며 뒤를 돌았다.
언덕의 끝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뭐, 뭐야….’
인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기운이 느껴지질 않는다. 흡사 귀신이라도 된 듯 허허롭고, 흐릿했다.
저벅.
남자가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그 걸음을 보는 것만으로 등이 축축이 젖은 느낌이다.
“아, 검사님! 늦었잖아요! 진짜 뒤질 뻔했어요!”
무영객이 데플로 변장했던 가발과 옷을 벗어 던지며 툴툴거렸다.
“수고했다.”
백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영검을 뽑았다.
“이젠 내가 처리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