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37
337화. 주도권
[쿠오오오!] [크아아아!]세계수의 빛을 받은 정령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포효를 내질렀다.
첫 번째는 이그니스다. 이그니스의 전신을 달구는 홍염이 새빨간 적색으로 바뀌며 녀석의 기운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겁화. 이그니스가 원하는 모든 것을 태운다는 뻘건 불꽃이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이그니스의 특성 이 로 강화됩니다.]-이, 이게 갑자기 무슨!
‘홍염이 겁화로?’
흑암이 검날을 뒤틀고, 백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홍염은 이그니스의 기본 불꽃이고, 겁화는 정령력 소모가 심한 특별한 불꽃이다.
겁화보다 강한 흑염이 있지만, 그건 이그니스가 혼자 쓸 수 없는 궁극의 불꽃. 겁화를 홍염처럼 기본 불꽃으로 쓸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혜택이었다.
쿠구구구!
공기가 진동하며 이그니스의 기운이 점점 강해졌다.
‘겁화만이 아니야.’
이그니스의 기운과 크기도 놀랄 만큼 성장 중이었다. 녀석은 레드 드래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와 막강한 기운을 펼쳐 내고 있었다.
[캬오오오오!]백우진은 이그니스의 옆에서 들린 포효에 고개를 돌렸다.
‘설빙.’
이번에는 설빙이다. 녀석의 은색 깃털들이 도화지 같은 백색으로 바뀌어 간다.
화아아아!
완벽하게 백색이 된 설빙의 몸에서 허연 김이 솟아오른다. 저것만 봐도 녀석이 백빙을 둘렀음을 알 수 있었다.
[설빙 기본 특성 이 으로 성장합니다.]메시지창의 내용 역시 비슷했다.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은설이 특성 백빙으로 변화했다는 내용이었다.
설빙이 가진 궁극의 능력은 적빙이지만, 이그니스와 마찬가지로 설빙 혼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이다.
은설이 백빙이 되는 것으로 설빙의 능력은 5할 이상 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쿠구구구!
설빙 역시 크기와 기운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전설의 봉황이 강림한다고 해도 지금의 설빙에겐 힘과 크기가 밀릴 것 같았다.
[크오!] [캬아!]이그니스와 설빙은 그 거대한 몸체로 하늘에 떠올라 자신의 몸집과 색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크기는 커졌지만, 아이 같은 성격은 여전했다.
[크르르!] [쿠엉!]반면 레오와 크롬은 이그니스와 설빙과 달리 특별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크기와 정령의 기운만 커졌다.
정령왕에게 인정을 받지 않아서 성장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순한 녀석들은 그것만으로도 마음에 드는지 기분 좋은 울음을 내지르며 자신에게 다가왔다.
우우우웅!
세계수가 펼쳐 낸 빛은 네 마리의 정령들을 성장시킨 후에도 멈추지 않고, 백우진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뭐, 뭐야! 왜 너한테 오는 건데! 피해! 저거 잘못 맞으면 골로 간다!
흑암이 비명을 질렀다. 정령은 그렇다 치고, 백우진까지 성장시켜 주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세계수 이 새끼! 시스템이랑 짰냐? 선 씨게 넘었잖아!
크게 봐줘서 정령의 성장은 인정해 줄 수 있지만, 백우진을 성장시키는 건 절대 못 본다. 분노가 타올랐다.
‘웃기고 있네.’
백우진은 흑암의 말을 무시하고 세계수의 빛을 온몸으로 받았다.
우우우웅!
세계수가 쏟아 낸 부드러운 기운은 정령력을 모아 놓은 심장으로 흘러들어 왔다.
‘그대로 스며들고 있어.’
정령의 기운을 운용하거나, 라사둠의 오러를 끌어 올릴 필요도 없었다. 세계수가 내려준 정령의 기운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에 녹아들었다.
띵!
[세계수의 기운을 받았습니다.] [신령의 옥의 단계가 상승했습니다.] [마나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 [오성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 [정신력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아!”
백우진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샘물처럼 차오르는 순수한 기운에 등 뒤로 전율이 흘렀다.
-이런 빠가사리 같은!
흑암이 갓 잡은 물고기처럼 펄떡 뛰며 비명을 질렀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이야!
네 정령의 기운을 증폭시켜 주고, 백우진은 능력치와 특성의 단계를 올려 주다니, 어이가 없어서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미쳤어! 다 미쳤다고!
시스템만 정신이 나간 게 아니었다. 백우진에게 퍼주는 놈들 중엔 제정신인 놈이 하나도 없었다.
“세계수가 검사님께 보답한 거예요.”
실비아가 다가오며 선한 미소를 그렸다.
“네? 그게 무슨….”
“세계수도 자신을 지킨 사람이 검사님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당시에 힘이 없어서 아무런 보답을 해 주지 못한 걸 지금 갚는 거예요.”
“아….”
-그게 말이 되냐! 나무가 그걸 어떻게 기억해! 다 뻥이야! 이건 시스템의 농간….
‘시꺼.’
난리 치는 흑암을 밀어 버리고 세계수를 쓰다듬었다.
후우우.
하늘에 닿은 듯한 세계수의 가지들이 살짝 흔들린다. 그 모습은 자신에게 고마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고맙다.’
백우진은 빙긋 웃고서 손을 뗐다.
“그런데….”
실비아가 헛바람을 흘리며 이그니스와 설빙을 올려다보았다.
“이젠 왕의 인정을 받은 정령이 둘이군요.”
이그니스 하나만 봐도 놀랄 지경인데, 물의 정령왕에게 인정받은 그릇까지 함께하고 있으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최상급이라는 경지를 한참 넘었어.’
저 둘은 오늘의 기연 덕분에 정령이라는 단어를 초월해 곧 진정한 왕의 위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정령왕이 둘이라….’
역사서 어딜 뒤져 보아도 인간이 정령왕 둘을 소유했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드래곤이나 하이엘프도 2마리의 정령왕을 가진 적은 없었다.
백우진은 이 대륙의 최초라고 불릴 만한 일을 이루기 직전에 와 있었다.
“아까 블루 드래곤을 잡았다고 했죠?”
“아, 네!”
“그때 정령왕의 시험도 함께 치렀습니다. 덕분에 저 녀석이 왕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죠.”
백우진이 손을 들어 날개를 펼친 설빙을 가리켰다.
“허어….”
그 손을 따라간 실비아가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을 잡으면서 정령의 시험을 함께했다니, 백우진의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놀랍다.
“자, 그만.”
백우진이 손가락을 튕기자, 정령들이 모두 강아지만 한 크기로 돌아갔다.
레오와 크롬은 이전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이그니스와 설빙은 본체와 똑같이 적색과 백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모두 수고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
“크릉!”
“캬옹!”
이그니스가 콧김을 내뿜으며 손바닥을 펼쳤고, 설빙 역시 날개를 파닥였다.
“하이파이브 하자고?”
백우진이 씩 웃으며 손을 마주치려 했지만, 정령들은 인상을 쓰면서 손과 날개를 접어 버렸다.
“캬웅!”
바닥에 내려선 두 정령은 자신의 다리를 쪼면서 다시 손과 날개를 내밀었다.
-하이파이브는 지랄! 밥 달라잖아!
흑암의 호통에 백우진이 정령들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분위기도 모르는 먹보 놈들….”
**
백우진은 숲의 한구석을 빌려서 흑암의 인벤토리에 저장해 둔 순살 치킨과 민트 초코 아이스크림, 지렁이 젤리, 국밥을 꺼냈다.
“크르릉!”
“캬오!”
“고로롱!”
정령들은 걸신이 들린 것처럼 각자의 그릇에 머리를 박고 음식을 흡입했다.
“잘도 먹네.”
-쟤들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냐?
“아니.”
백우진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주인보다 간식을 좋아하는 정 없는 녀석들이 뭐가 이쁘다고. 하이파이브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아직도 그걸 생각했냐? 찌질하기는.
흑암이 팽 하고 백우진을 비웃었다.
“내 성격이 어때서. 쟤들 먹이려고 음식도 다 챙겨 왔는데!”
흑암을 위해서는 태블릿 PC와 휴대용 배터리들을, 정령들을 위해서는 간식을 산더미처럼 챙겨왔다. 세상에 이런 주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 맞다! 드라마! 요새 못 봤잖아!
흑암이 백우진의 눈앞으로 날아왔다. 이곳까지 달리느라, 며칠간 드라마 구경도 못 했었다.
-틀어 줘! 당장 틀어 줘!
“이따 밤에 틀어 줄 테니까. 좀 비켜 봐.”
-오케이! 근데 뭐 하려고?
“상태창 좀 확인해 봐야지”
백우진은 흑암을 옆으로 밀어내며 상태창을 불러왔다.
이름: 백우진.
나이: 21세.
타이틀: 마검의 주인 외 20개.
등급: 8등급.
기술: 카인의 오러연공법(9단계), 라사둠의 오러(묵뢰), 초집중(6단계), 흑왕탄(6단계), 무령참(5단계), 비뢰섬(5단계), 투현지체의 전투 특성(4단계), 관일극(4단계), 낙성위화(4단계), 잠룡혼(3단계), 천독불침, 겁화검형(3단계), 명경지수, 흐름을 보는 눈, 광호섬(3단계), 초회복(회복의 호흡), 완벽한 검의 지휘자, 풍벽검흔(3단계), 검희(3단계), 사성류, 낙일참 (3단계), 결계역장, 신성 적응, 암흑 적응, 신살 (2단계), 금강불괴(6단계), 천무지체(5단계), 신령의 옥(6단계), 흑색 광휘. 왕의 투벽, 왕의 기백, 칠흑의 벽, 홀로 싸우는 자, 양의심공, 극리. 북명신공(4단계), 혼원벽력신기(3단계), 발록의 투기(3단계) 참마(1단계), 불완전 예지.
신체: 92/110 (최상급) (+92)
검술: 94/110 (최상급) (+139)
마나: 94/110 (최상급) (+117)
오성: 93/110 (최상급) (+57)
체력: 92/110 (최상급) (+108)
정신력 : 93/110 (최상급) (+103)
포인트: 35,000포인트.
“입이 떡 벌어지네.”
백우진이 히죽 웃었다. 저 수많은 특성과 90이 넘은 능력치를 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웃음이 나온다.
‘확실하게 올랐어.’
세계수의 기운 덕분에 정령의 힘을 끌어 올리는 신령의 옥과 능력치가 올라가 있었다.
-으으….
흑암이 신음을 흘렸다. 백우진과 달리, 저 꽉 찬 상태창을 보면 속이 갑갑했다. 특히 100을 넘어간 능력치를 보면 누가 목을 꽉 조이는 것 같았다.
“포인트 좀 써 볼까?”
-그래. 아끼다 똥 된다. 좀 써라.
“한 방에 넘기는 것도 괜찮겠지?”
포인트를 모두 사용해서 검술을 눌렀다.
띵!
[모든 능력치가 100이 되어야 합니다.]-응?
“모든 능력치가 100이 되어야 그 이상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모양인데?”
모든 능력치를 일단 100부터 만들어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백우진은 33,000포인트를 사용해서 신체 2, 검술 1, 마나 1, 오성 2, 체력 3, 정신력 2. 총 10포인트를 올렸다.
신체를 제외하곤 전부 95가 되자,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로 전신이 활력으로 가득 찼다. 지금 당장이라면 무신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아오, 포인트를 써도 열받고, 안 써도 열받아! 다 열받아!
흑암은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툴툴거렸다.
“너도 참 꼬였다. 꼬였어.”
-시꺼!
“드라마를 봐도 배우는 게 없다니까. 성격을 좀 부드럽게… 음?”
백우진이 말을 하다 멈추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
데플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혼자 전부 처리하셨다면서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데플은 고맙다고 말하며 맨땅에 머리를 박았다.
“나 혼자 한 건 아니야.”
백우진이 고개를 저으며 순살 치킨을 먹는 이그니스를 쓰다듬었다.
“캬룽!”
이그니스는 먹을 때 건들지 말라는 듯 뒤를 노려보고서 다시 그릇에 머리를 박았다.
-나 말고, 네 정령 성격이나 관리하십쇼.
“커흠….”
백우진은 헛기침을 하면서 데플에게 다가갔다.
“문주영이랑, 무영객은?”
“두 사람 다 성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무영객은 조심해라. 그놈은 진짜 너희 보고를 털 놈이야.”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데플이 알고 있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데플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세이란 연합에서도 지원이 도착했습니다.”
**
백우진은 데플을 따라 다시 린덴 성으로 향했다.
“세이란 연합은 어떤 곳이지?”
“동쪽에 치우친 다섯 개의 성이 뭉친 동맹입니다. 오늘 온 사람은 바렉스 성의 볼포르 성주죠.”
데플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세이란 연합의 설명을 해 주었다.
“그들 모두는 린덴 성을 감시와 정찰 기지로만 사용하고, 저희 모두가 세이란 연합 쪽으로 이동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응? 이동?”
“사실 저희라기보다는 실비아 님을 데려가려고 하는 거죠.”
“그녀가 풍요의 하이엘프라서?”
“예. 그분의 힘은 특별하니까요. 거기다 볼포르 성주는 실비아 님에게 반하기도 했구요.”
데플은 비밀이라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 이렇게 빨리 달려온 이유도 제국을 막는 게 목적이 아니라, 실비아 님을 데려가려고 했을 거예요.”
“그럼 내가 방해를 한 건가?”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긴 하는데, 검사님이랑 정령이 제국을 막았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순간 인상이 팍 굳더라구요.”
데플이 킥킥거리며 작게 웃었다.
“그래?”
백우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당첨 복권이 시궁창에 떨어진 기분이겠군.’
제국의 공격을 기회로 실비아를 끌고 가려 했다가 자신에 의해 모든 상황이 끝났으니, 짜증이 끝까지 솟았을 것 같았다.
“세이란과 너희의 관계는 어때?”
“저희 역시 그 연합 소속입니다. 세이란 연합의 성주 다섯 명, 슈칸 성주, 린덴 성주인 저, 그리고 라인 숲의 지배자 실비아 님까지. 이렇게 8명이 라멜룬처럼 투표로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다만….”
데플의 얼굴이 굳어졌다.
“세이란 쪽 성의 의견은 항상 같아서 거의 그쪽의 말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죠. 사실 이전의 의사결정에서 린덴 성과 라인 숲을 버리라고 나왔지만, 실비아 님이 거절해서 아직 남아 있는 겁니다.”
“이곳을 버리라는 이유는 세이란을 더 단단하게 지키기 위함이겠군. 실비아 님을 이용해서 식량을 보급하고.”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하여튼 인간들은….
흑암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제국이라는 강대한 적이 눈앞에 있는데도 서로의 이익을 따지려고 하다니, 여전하다. 여전해.
‘인간은 그런 생물이니까.’
백우진은 옅게 웃고서 활짝 열린 린덴 성으로 들어갔다.
푸른 망토를 휘날리는 엘리트 레인저들 사이로 적발의 중년인과 실비아가 보였다.
“보세요. 오늘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저희 쪽으로 오시는 게 실비아 님에게도 엘프들에게도 이롭다니까요! 저희 바렉스 성에 오신다면 제가 끝까지 보호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수는 이곳에 있어요. 절대 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도 돌아오셨구요.”
적발의 중년인은 양손을 펼치며 열을 올리고 있었고, 실비아는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 모습만 봐도 저 남자가 바렉스 성의 성주 불포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
백우진을 발견한 실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령들과의 대화는 끝나셨나요?”
불포르와 대화할 때와 달리 실비아의 표정이 풍부해졌다.
“네. 방금 끝났습니다.”
“그렇군요.”
별것 아닌 대화임에도 실비아의 목소리도 한 톤 올라갔고, 그녀의 양 뺨에는 옅은 홍조가 피어났다. 그 모습을 본 불포르의 얼굴이 깡통처럼 찌그러졌다.
“으음….”
불포르가 차가운 시선을 빛내며 백우진의 앞으로 다가왔다.
“흑색의 검사인 모양이군요.”
“당신은….”
백우진은 아무것도 모른 척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이란 연합에 속한 바렉스 성의 성주이신 불포르 님이세요. 저희를 도와주기 위해서 이곳까지 와 주셨어요.”
“불포르라 합니다.”
“백우진입니다.”
백우진은 불포르와 눈을 마주치며 그의 기운을 살폈다. 가볍고 빠르면서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등의 맨 대궁과 가벼운 복장을 보니, 검사가 아니라 궁사인 것 같았다.
“제국의 군대를 홀로 무찔렀다고 들었습니다. 대단하시군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백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하긴 그 거대한 화염 정령의 힘이 대단했다고 하더군요”
“음?”
“검사님이 가진 특별한 플레임 드레이크. 그 정령의 힘으로 제국의 군대를 꺾은 거 아닙니까? 그런 강력한 정령을 가지고 계시다니 부럽습니다.”
불포르의 말에 주변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대단했다고 말한 것과 달리 그 안에는 정령에 대한 칭찬으로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아, 여전하네.
‘뭐?’
-무인 놈들은 마법사나 정령사를 인정하지 않거든. 강한 건 강한 건데. 하여튼 머저리들은 괜히 머저리가 아니라니까.
흑암은 불포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검날을 비틀었다.
“아니에요. 검사님은 정령이 아니라, 검술로….”
“아, 흑색의 검사께서 검술로도 유명한 건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를 전설로 만든 건 특별한 플레임 드레이크 때문이잖습니까. 전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실비아가 백우진의 활약을 직접 말하려 했지만, 불포르는 그 모습에 더 짜증을 냈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무시하고 정령을 띄워 주고 있었다.
“그래도 그 정령 덕분에 다친 사람 없이 제국의 공격을 막아 냈으니 다행입니다. 잘됐어요.”
불포르는 말끝마다 정령을 꺼내 놓았다. 정령이 없다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처럼.
‘보자마자 시비라. 예상대로네.’
백우진이 피식 웃었다. 데플에게 들었던 대로 불포르는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고 있었다.
-이놈 미래가 보이네. 보여.
흑암은 불포르가 어떻게 될지 알고, 쯧 혀를 찼다.
“제 정령은 분명 강합니다. 다만 저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백우진은 시비에 넘어간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아, 그거야 당연히 알고 있소.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사과를 한다는 말과 달리 불포르의 입에 매달린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와, 이 새끼. 싸움 걸어 달라고 고사를 지내는데?
‘그러게.’
백우진은 찌푸린 겉모습과 달리 속에선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현재 겉으로 드러낸 자신의 무력은 8등급 수준. 불포르는 그것만 보고 노골적으로 시비를 거는 것이다.
‘신선하네.’
강해진 이후 이런 식으로 시비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기에 흥미가 돋았다. 유치하지만 그의 시비를 받아 주기로 했다.
-똥대가리 새끼. 신나게 얻어터지고 울부짖겠구만.
흑암은 기대가 되는 듯 검날을 살살 비볐다.
“오랜만에 몸이나 풀어 보려고 왔는데, 전부 치워져서 할 일도 없군.”
“그럼 저와 대련 한번 하시겠습니까?”
백우진이 뒤를 돌려던 불포르를 불렀다. 불포르가 기다렸다는 듯 홱 고개를 돌렸다.
“대련?”
“할 일이 없다고 하셨으니, 정령 없이 제 검과 당신의 궁으로 대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백우진은 짜증이 난 것처럼 입술을 살짝 떨었다.
-이, 입술 연기라니, 네놈 연기 하나는 진짜….
흑암은 그 연기의 디테일에 혀를 내둘렀다.
‘드디어 걸렸군.’
불포르가 백우진의 굳은 얼굴을 보며 히죽 웃었다. 노골적으로 정령을 띄우고, 그의 무력을 무시한 결과가 돌아왔다.
‘다 네놈이 자처한 거야.’
처음 제국이 린덴 성 근처에서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낀 감정은 기쁨이었다.
드디어 실비아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임시 차원문까지 사용해서 미친 듯이 달려왔건만, 이곳에 당도했을 땐 제국의 군대는 모조리 잡히거나 죽어 있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행방불명이었던 흑색의 검사가 나타나 제국을 막았다고 한다.
실비아를 손에 넣을 기회가 날아가서 짜증이 났는데 더 좋은 기회가 생긴 것 같았다.
‘백우진을 꺾는다면 실비아도 날 다시 볼 테고, 그녀를 데리고 가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
불포르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거 재밌겠어요.”
“근데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백우진이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내기 하나 걸고 하는 게 어떨까요?”
“내기? 어떤 내기를 말하는 겁니까?”
“상대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성주님이라면 이 정도 내기는 해야죠.”
“흐음….”
불포르가 턱을 쓰다듬으며 백우진을 살폈다. 그의 기운은 자신과 비슷한 수준. 다만 검사이기에 진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싫다면 그만두죠. 실비아 님. 저희 숙소를….”
“조, 좋습니다! 그 내기 받아들이죠. 제가 진다면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드리겠습니다!”
백우진이 실망하는 표정으로 실비아를 부르자, 불포르가 황급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대련을 준비해라!”
불포르의 말에 그와 함께 온 레인저들이 성의 바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백우진은 등을 돌린 불포르를 바라보며 빙긋 미소 지었다.
‘바렉스 성이 공짜로 들어오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