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38
338화. 주도권 (2)
결투 장소는 불포르의 선택에 따라 성 밖의 넓은 공터로 정했다.
백우진은 볼포르와 거리를 두고 결투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은 있냐?
‘없어.’
-엉?
‘질 자신이 없다고. 물을 걸 물어.’
백우진이 픽 웃었다. 불포르가 대륙 최강의 궁수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가 뭘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검사님.”
백우진이 가볍게 몸을 풀 때 무영객이 김이 나는 컵을 들고 다가왔다.
“제가 눈썰미 있는 거 아시죠? 저거 딱 보니까. 얍삽이 계열입니다.”
“얍삽이?”
“멀리서 뿅뿅 쏘는 놈들 말입니다. 궁수나 총잡이들.”
무영객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걸 비밀이라는 것처럼 속삭였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지만, 허세예요. 저 궁으로 공격할 겁니다.”
“그건 누구나 알고 있어! 이 멍청아!”
문주영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너란 놈은 머릿속에 도둑질 빼고는 들은 게 없지?”
“으윽, 닥쳐.”
무영객은 문주영에게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그건 뭐냐?”
백우진은 무영객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가져온 컵을 가리켰다.
“검사님을 생각하는 건 저밖에 없잖습니까. 결투 전에 드시라고 차를 가져 왔….”
“시간이 됐습니다. 두 분은 중앙으로 모여 주십시오!”
무영객이 차를 건네려고 할 때 가운데 있던 데플이 양쪽을 번갈아 보며 백우진과 불포르를 불렀다.
“차라….”
백우진은 무영객이 들고 있는 차를 보다가 문득 멋진 말이 기억났다.
“그 차가 식기 전에 돌아오마.”
아주 유명한 장수의 말을 내뱉고 데플이 있는 중앙으로 걸어갔다.
-아주 지랄을 한다. 지랄을!
흑암이 질렸다는 듯 검날을 떨었지만, 무시했다.
“…….”
무영객은 걸어가는 백우진을 보다가 옆에 있는 문주영도 들을 수 없게 아주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거 냉찬데….”
**
백우진은 데플에게 결투에 관한 설명을 들은 후 불포르와 마주 섰다.
“자신은 있습니까?”
“글쎄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전 검사와 싸워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불포르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절 이기고 싶다면 잘 따라와야 할 겁니다. 물론 소용없겠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고 뒤로 물러섰다.
-진 적 없다는데?
‘저런 걸 보고 하룻강아지라고 하는 거지.’
백우진이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고 해도 저딴 소리는 쉽게 하지 않는다. 고생 없이 큰 철부지나 할 법한 대사였다.
“지금부터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데플이 우렁찬 소리를 지르며 손을 내렸다.
터엉!
불포르는 결투 시작을 알리는 신호를 보자마자 뒤로 땅을 박찼다. 가벼운 뒷걸음질이었지만, 엄청난 속도로 쭉쭉 밀려난다.
-꽤 빠른데?
‘보법은 괜찮네.’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포르는 뒤로 이동하면서도 웬만한 무인들이 앞으로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후후!”
한참을 물러선 불포르가 히죽 웃었다.
“내가 말했지. 잘 잡아야 할 거라고. 이제 끝났어!”
그 말과 함께 대궁에 철제 화살을 올렸다.
끼기기긱.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가 풀리며 철시가 공간을 꿰뚫었다.
피이이잉!
은빛으로 번쩍이는 철시가 소름 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순식간에 코앞에 이르렀다.
쿠구구구!
철시에 휘감긴 오러가 용처럼 꿈틀거린다. 강기에 닿을 정도의 궁술. 불포르는 보법만이 아니라, 궁술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백우진은 날아오는 철시를 향해 설영검을 뽑았다.
빠지직!
설영검의 검신과 격돌한 철제 화살이 길가의 깡통처럼 찌그러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 이 무슨….”
불포르가 터질 것처럼 눈을 떴다.
‘은격시를 이렇게 간단히 막는다고?’
검사로 치면 강기와 비슷한 강도와 위력을 가진 은격시가 저리 간단하게 막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고성을 내지르며 다시 철시를 꺼내 백우진을 겨누었다.
콰아아아아!
전신에 퍼진 오러를 끌어모아서 다시 은격시를 쏘아 냈다.
‘이게 진짜다!’
손끝에 걸린 맛이 제대로다. 살기도 가득 담았기에 백우진을 죽이지는 못해도, 팔과 다리 하나는 터트릴 수 있을 위력이다.
하지만 기대감 어린 불포르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쩌적!
전력을 다한 은격시가 놈의 백색 검날 앞에서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어, 어떻게….”
“이게 전부라면 실망인데.”
백우진은 설영검을 툭툭 털며 불포르를 향해 다가갔다.
“그게 전부일 리가 없잖아!”
“이제 어울리지도 않는 존댓말은 그만둔 건가?”
“닥쳐!”
흥분한 불포르는 존칭을 사용하지도 않은 채 물러섰다.
자신이 한 걸음 다가간 것에 비하면 겁을 먹은 듯 다섯 걸음이나 뒤로 갔다.
“사지를 터트려 주마!”
불포르가 대궁에 철시 다섯 개를 올린 후 활시위를 당겼다.
끼기기긱!
온 힘을 다했는지 놈의 대궁이 부러질 듯 흔들리고, 시위에서는 끊어질 것처럼 탁탁 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아아아아!”
불포르는 끌어 올린 오러와 살기를 모조리 불태워 다섯 발의 철시를 쏘아 냈다.
피아아아앙!
다섯 발의 화살은 대기를 가르는 굉음을 흘리며 각자 다섯 개의 환영을 만들었다.
콰아아아아아!
총 스물다섯 발의 철시가 자신의 전신을 노리며 날아온다. 결투가 아닌, 생사결에서나 나올 법한 공격이었다.
“쓸데없는 짓이다.”
백우진의 두 눈에 검은 불길이 일었다. 흐름을 보는 눈 덕분에 진짜 화살 다섯 개가 무엇인지 전부 보이고 있었다.
다만 그걸 골라서 막을 필요는 없었다.
치이이잉!
설영검은 가볍게 내리쳐 하나의 선을 그었다.
화아아아아!
그 선에서 검은 벼락과 회색의 바람이 피어나 거대한 장벽을 만들어 냈다.
쩌저저저정!
불포르가 쏘아 낸 화살들은 뇌의 풍벽검흔에 꺾여 종잇장처럼 구겨진 채로 땅에 처박혔다.
“아아….”
불포르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뒤틀렸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전력의 귀흉시는 검강으로 만든 검막조차 뚫어 낸다. 저따위 바람으로 막을 수 있는 위력이 절대 아니다.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불가능하다고!”
다시 화살을 쏘기 위해 대궁을 들었다.
“보여 줄 건 다 보여 준 모양이네. 그럼 끝내자.”
“아직! 아직이다!”
이를 악물고 철시로 백우진을 겨눴을 때 그의 몸이 안개처럼 흐릿해지면서 사라졌다.
“이, 이형환휘!”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형환휘는 자신조차 익히지 못한 보법의 최고 경지였다.
“어디냐! 당장….”
“참 시끄럽네.”
기겁하며 놈을 찾으려고 할 때 등 뒤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
“이미 늦었어.”
뻐어어억!
뒤를 돌려고 할 때 뒤통수에서 공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한 충격이 느껴졌다.
“어억….”
통증이 너무 심해 시야가 꺼멓게 물들며 땅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퍽!
불포르는 뒤통수에 작렬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한 채 땅에 머리를 박았다.
“간단하네.”
백우진인 설영검을 툭툭 턴 뒤 검집에 집어넣었다.
“아….”
“저, 저게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서, 성주님!”
엘리드 레인저들은 자신을 귀신처럼 보며 몸을 떨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레인저들은 쓰러진 불포르를 향해 달려왔다.
“잘 챙겨 주세요. 또 놀랄 일이 생길 테니까요.”
“으윽….”
레인저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듯 이를 악물고 불포르를 데리고 린덴 성으로 들어갔다.
“스승님! 수고하셨습니다!”
데플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이길 줄 알았다는 얼굴이다.
“저 녀석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 잘 해.”
“알겠습니다!”
데플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레인저들을 뒤따라갔다.
-몸도 안 풀렸겠군.
‘그렇지.’
백우진이 씩 웃으며 무영객과 문주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금방 끝났지?”
불포르가 계속 공격해서 길어 보였지만, 실제 전투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차 줘 봐.”
“아, 네.”
무영객은 뜻을 알 수 없는 애매한 얼굴로 차를 건네주었다.
“응?”
차다. 컵을 쥐자 차가운 냉기가 손을 적셨다.
‘이, 이게 왜 차가워?’
-크하하하하! 뭐? 차가 식기 전에 돌아와? 내가 이렇게 망신당할 줄 알았다! 이 날씨에 차가 안 식는 게 이상하지!
흑암은 잘 걸렸다는 듯 비웃음을 터트렸다.
“나름 뜨듯하네. 하하.”
백우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뜨듯하다구요? 그럴 리가 없는데? 그거 냉차라 처음부터 차가웠어요.”
“부, 분명 김이 났는데?”
“프레스톤 성에서 구했던 특이한 냉차라서….”
“얀마! 이 추운 날씨에 누가 냉차를 가져와!”
“우엑!”
어처구니가 없어서 무영객의 뒤통수를 후렸다.
“거기다 전투 직전에 냉차라니, 진짜 미쳤나!”
“크악!”
다시 뒤통수를 내리쳤다.
-크하하하하! 저거 진짜 미친놈이라니까! 널 놀릴 수 있는 건 저놈뿐이다!
“그, 그거 모르십니까? 얼어 죽어도 아아라는 말? 전 한겨울에도 찬물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만을… 끄헉!
“아아는 지랄! 너나 마셔!”
백우진은 쓰러진 무영객의 뒤통수에 찻잔을 박아 놓고 린덴 성을 향해 걸어갔다.
“하아….”
문주영은 엎어진 무영객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넌 맞아도 싸.”
**
백우진은 실비아, 데플과 함께 치료를 받은 불포르의 병실로 들어갔다.
“히이익!”
침대에 누워 있던 불포르가 자신의 얼굴을 보고, 팔꿈치로 기어 뒤로 물러섰다.
“깨어났나 보네.”
백우진은 불포르의 겁에 질린 표정과 뒤통수에 난 큼지막한 혹을 보고 웃었다.
“다, 당신….”
불포르의 눈동자는 격하게 흔들리고, 입술이 덜덜 떨렸다.
“머리는 좀 괜찮나?”
“으윽!”
여유로운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자, 불포르는 겁에 질린 강아지처럼 구석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처, 처음부터 날 노린 거였나?”
“무슨 소리지?”
“내게 시비를 걸어서 이런 결과를 만들려고….”
“뭘 착각하는데, 시비는 내가 아니라 네가 걸었지. 잘 생각해 봐. 누가 먼저였는지.”
백우진이 코웃음을 치며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으윽….”
불포르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백우진을 도발한 건 자신이 먼저였다.
‘이 정도 괴물일 줄 몰랐으니까.’
그저 과장된 전설이라 생각했지만, 과장이 아니라, 한참 과소평가된 거였다. 정령을 떠나 저 인간은 괴물 그 자체였다.
“내기를 한 건 기억나겠지?”
백우진이 눈동자를 굴리는 불포르에게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내, 내기?”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주겠다는 내기 말이야.”
“끄으윽!”
불포르는 자신의 옆에 있는 실비아를 보고 손톱으로 손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내 조건을 말하지. 바렉스 성을 넘겨.”
“말도 안 되는 소리!”
불포르가 벌떡 일어나서 고성을 질렀다.
“그게 가당키나 한….”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주는 내기이지 않았나?”
“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심하잖아!”
“마, 맞습니다. 가벼운 내기였지 않습니까!”
불포르가 눈을 부라리고, 그의 호위인 레인저가 망토를 펄럭이며 앞을 막아섰다.
“너희는 가벼운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사람을 죽일 수준의 화살을 쏘나?”
백우진이 서늘한 눈빛을 발했다. 불포르가 쏜 화살은 목숨 혹은 팔다리 한 짝은 날려 버릴 위력이었다.
그런 걸 마구 쏘아 놓고, 가벼운 내기라니, 우스운 일이다.
“그건….”
레인저가 할 말이 없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네가 날 이겼다면 바로 네 밑으로 들어오라는 소리를 한 뒤 실비아 님과 데플도 데리고 오라는 명령까지 내렸겠지. 아닌가?”
“…….”
불포르는 입술을 깨물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그렇다고 해도 너무 과합니다! 내기 하나로 성이라니….”
“뭐, 좋아. 바렉스 성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걸 달라는 건 좀 그렇긴 하지.”
“아!”
그 말에 불포르의 어두운 얼굴이 형광등을 켠 듯 밝아졌다. 하지만 자신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신 바렉스 성의 의결권을 가지겠다.”
“의결권?”
“다시 말해서 의사 결정권. 바렉스성이 어떤 결정이나 행동을 할 때 그 의사결정을 내가 내리겠다는 뜻이다.”
“그, 그건 성을 가지겠다는 것과 별 차이가 없잖아!”
“아니, 큰 차이가 있지. 네가 성주로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백우진이 씩 웃었다. 회사나 길드, 가문에서도 가장 큰 힘을 가진 자는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다.
의사 결정권만 얻는다면 바렉스 성을 얻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성을 날름 먹는 것보다 독한데?
‘쟤는 날 죽이려고 했잖아. 살려 주고, 성도 안 뺏었으니 이 정도면 보살이지.’
-근데 이걸 저놈이 받아들일까?
‘받아들일 수밖에. 그렇게 계획을 짰으니까.’
-계획?
“데플.”
백우진은 흑암에게 대답해 주지 않고, 데플을 불렀다.
“옙!”
데플이 품에서 같은 서류 2장을 꺼내서 한 장을 불포르에게 넘겼다.
“이, 이건….”
“계약서다. 바렉스 성의 성주의 의결권을 내게 넘긴다는 계약서.”
“자, 잠깐만! 여기 계약 사항을 위반하면 성을 넘긴다는 조건은….”
“그건 당연히 넣어야지. 네가 성에 돌아간 이후 입을 싹 닦으면, 내가 너희 성 전체를 지워 버려야 하잖아.”
“으허헉!”
불포르가 백우진의 차가운 눈동자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이, 이 미친놈 진짜야!’
전신의 솜털이 우수수 일어섰다.
가벼운 목소리지만 진심이었다. 저놈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정말 바렉스 성 자체를 무너뜨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 읽었으면 서명이나 해.”
“으으….”
주먹을 떨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젠장!”
불포르는 침대를 쾅 내리치고서 데플이 건넨 2장의 서류에 모두 서명을 마쳤다.
“감사합니다.”
두 장의 계약서 중 한 장을 챙긴 백우진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호구, 아니 동업자 씨.”
“너, 너….”
“어허! 의결권을 가진 사람에게 너라니. 존칭 써 주시죠.”
“끄으윽!”
“그리고 이 이야기는 떠벌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의사 결정권이 없는 성주라니, 쪽팔리잖아요.”
“끄르르륵!”
“서, 성주님!”
불포르가 거품을 물며 다시 기절했고, 백우진은 어깨를 으쓱이고서 병실을 떠났다.
“괘, 괜찮을까요?”
실비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괜찮을 거예요. 성을 뺏기는 것보다는 낫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서, 설마 검사님은 일부러 성을 달라고 하신 건가요?”
“맞습니다.”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성을 달라고 했던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가짜입니다. 반항을 할 게 뻔하니까. 한발 물러나 주는 척하면, 두 번째 제안인 의결권을 넘겨줄 가능성이 높아지거든요.”
“아!”
실비아는 백우진의 대답에 경악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입을 쩍 벌렸다.
-어어억!
흑암이 검날을 부르르 떨었다.
-너 계획이라는 게!
‘맞아. 이거였어. 불포르가 의결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거.’
-미쳤어! 넌 진짜 미친놈이야!
소름이 돋아올랐다. 이놈은 이 세계에 와서도 모든 일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조종하고 있었다.
-으으!
흑암은 백우진을 따라가지 않고, 그의 뒤를 보며 검날을 저었다.
-무서운 놈이야….
**
불포르는 부끄러웠던지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렉스 성으로 돌아갔다.
“이 대주주님에게 인사도 없이 가네.”
백우진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미친놈….
흑암은 질렸다는 듯 검날을 세차게 저었다.
“창피하니까 그랬겠죠. 그의 성격상 어디에 말을 하거나 하진 않을 겁니다.”
검을 내리치던 데플이 히죽 웃었다.
“하긴 쪽팔려서라도 말 못 하지.”
지가 시비를 걸다가 털려서 성의 의결권이 넘어갔는데 대체 누구에게 말하겠는가.
그걸 알 사람은 병실에 있던 그의 호위뿐일 거다.
“어쨌든 통쾌합니다. 연합 회의를 할 때마다 불포르가 실비아 님에게 음흉한 눈빛을 보내고, 전 어리다고 무시했거든요.”
“됐으니까. 자세나 잘 잡아. 문주영 너도.”
“알겠습니다!”
“옙!”
“검술의 진정한 힘은 자세에서 나온다. 조금 강해졌다고 농땡이 피지 말고 항상 기초를….”
“검사님!”
문주영과 데플의 검술 자세를 잡아 주려고 할 때 실비아가 공터로 달려왔다.
“저랑 데플 님에게 회의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어요.”
“회의?”
“세이란 연합 회의예요. 전에 말씀드렸던….”
“투표로 의사를 결정한다는?”
“네. 그 회의요.”
“음, 시기를 보니, 저희를 세이란 쪽으로 부르려고 회의를 하려는 것 같네요.”
데플이 실비아가 건네준 편지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세이란 다섯에 슈칸 성, 린덴 성, 라인 숲까지 여덟이라고 했지?”
“네? 아, 네!”
“슈칸 성은 어떻게 움직이지?”
“거의 중립이에요. 맞는 말에는 찬성하고, 아닌 거엔 확실히 반대.”
“소신 있는 쪽이군.”
백우진이 빙긋 웃었다. 저들은 모르지만, 바렉스 성이 이쪽으로 넘어와서 이제 세이란은 다섯이 아니라 넷이고, 이쪽은 둘이 아니라 셋이다.
‘거기다….’
린덴 성은 프레스톤 성과 라멜룬 시와 동맹을 맺었다. 즉, 이쪽이 다섯이고 세이란이 넷이 된 것이다.
‘잘하면 세이란 연합을 통째로 먹을 수 있겠는데?’
-허억!
백우진의 속마음에 흑암이 검날을 바르르 떨었다.
-이, 이놈….
진심이다. 백우진은 진심으로 세이란 연합을 먹어 치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의는 어디서 열리지?”
“세이란 연합의 성에서 돌아가며 열리는데 이번에는 불포르가 있는 바렉스 성이네요.”
“잘됐네.”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뭐가?
‘바렉스 성에 쌓아 둔 보물들도 좀 가져와야겠어.’
-그걸 그 욕심 많은 놈이 놔뒀겠냐. 아주 꼭꼭 숨겨 놨겠지.
‘쯧쯧.’
백우진이 혀를 차며 나무 위를 올려보았다.
‘땅굴 깊숙이 숨겨도 아무 소용없어.’
나무 위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하품만 하는 무영객이 있었다.
-무, 무영객!
‘개코를 가진 저 녀석이 있으니, 뭘 숨겨도 찾을 수 있지.’
이번 회의는 바렉스 성의 보물을 챙기고, 세이란 연합에서 주도권을 가져올 일석이조의 기회였다.
‘기대되는데?’
백우진이 손을 마주 잡으며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