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39
339화. 주도권 (3)
세이란 연합에서 소집 연락이 온 날 밤.
백우진은 숙소에서 흑암에게 드라마를 틀어 주고 있었다.
-캬아! 이게 인생. 아니, 검생이지!
흑암은 태블릿 PC에 저장해 둔 드라마를 보며 히죽였다.
“좋냐?”
-지금이라면 시스템의 퍼주기도 웃으면서 넘길 수 있다.
“띵!”
-헉! 뭐, 뭐야! 저, 정말 퍼주는….
“방금 그거 내 입으로 낸 소리야. 바로 검날이 뻘게지더만, 웃으면서 넘기기는 무슨!”
백우진이 흑암을 삿대질하며 킥킥 웃었다.
“되도 않는 거짓말 하지 말고 드라마나 보셔.”
-끄으윽! 이 망할 놈이!
흑암은 창피했던지 검날이 부러질 정도로 거칠게 떨었다.
“흐흥!”
흑암을 놀려 기분이 좋아진 백우진은 콧노래를 부르며 수첩에 이런저런 글들을 적기 시작했다.
-으음….
그게 궁금했던지 흑암은 느릿하게 떠올라 옆으로 다가왔다.
-너 뭐하냐?
“계획 좀 짜려고.”
-계획?
“세이란 연합을 먹어 치울 계획.”
-정말 거길 다 먹어 치우려고?
“그래야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네 목적이 뭐냐? 거길 먹어서 하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니야.
“전선을 올려야 해.”
-전선?
“현재 우리는 라멜룬 시를 제외하고 전부 대륙의 끝에 모여 있어. 프레스톤 성은 북쪽의 끝, 세이란 연합은 동쪽의 끝이지.”
백우진은 테이블 위에 깔린 대륙 전로를 가리켰다.
“끝에 있는 건 방어에는 좋지만, 그것뿐이야.”
이 전쟁은 제국의 침공을 막기만 하는 방어전이 아니다. 제국의 군세를 뚫고, 그 중심에 있는 카바론 신전을 무너뜨려야 한다.
구석에 박혀 있다면 수비에는 좋을지 몰라도 밀고 들어가는 데에 있어서는 마이너스일 뿐이다.
-그럼 세이란 연합을 먹은 뒤 라멜룬 앞으로 전선을 올리려고 하는 거냐?
“맞아.”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렉스 성의 의결권을 얻었고, 프레스톤 성, 라멜룬과 동맹을 했기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슈칸 성이 도와주면 좋겠지만 확실하지 않으니, 세이란 연합에서 둘 정도만 의결권을 뺏으면 계획대로 되겠지.”
-그, 그게 네 마음대로 되냐?
“되게 만들어야지.”
현재 자신의 이름은 대륙 전체에 퍼진 상태지만, 그 무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드러내는 무력을 적절히 조절한 뒤 상황을 맞추면 불포르처럼 세이란 연합의 의결권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서운 연기력….
흑암은 소름이 돋아 올라 검날을 떨었다. 저놈의 연기력은 드라마 속 배우에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얼마 전에 보여 준 입술 연기는 감탄이 나와서 멍하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제국을 이기려면 집 밖으로 나와야 해. 이대로는 안 돼.”
제국은 흑귀를 만들어 끊임없이 군세를 늘릴 수 있다. 단 한 번의 전쟁에서 확실하게 끝을 내야 한다.
-그래서 계획은 뭔데?
“일단 동맹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띵!
설명을 하려 할 때 청아한 알림음이 울렸다.
-야. 장난치지 말라고!
“아닌데?”
-뭐?
“이번엔 진짜야.”
백우진이 씩 웃으며 앞을 가리켰다.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등껍질에서 나오지 않는 거북이들을 꺼내야 합니다. 세이란 연합의 의결권을 얻어 전선을 올리세요.
조건: 세이란 연합의 의결권 절반을 얻어 전선을 상승시키기.
보상: 7,000포인트.
“이건….”
-끄악!
퀘스트를 본 흑암이 비명을 질렀다.
-아니! 이걸 왜 줘! 진짜 미쳤나!
퍼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방금 백우진이 말한 걸 그대로 가져다가 퀘스트를 주다니, 이건 너무 심하다.
“나하고 시스템하고 생각이 같네. 역시 잘 통해.”
-머리에 똥만 찼냐? 생각이 같기는 무슨! 네가 말한 거 듣고 그대로 퀘스트 내려 준 거잖아!
“그게 잘 통하는 거야. 우리 시스템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준 거지.”
-끄으윽! 말빨은 진짜….
흑암이 승질을 내며 허공을 휘저었다. 저 망할 놈은 혓바닥에서 모터를 달았는지, 입도 무지하게 잘 턴다. 흑색의 검사가 아니라, 흑색의 혀다.
“어쨌든 잘됐네.”
백우진은 만족스러운 고갯짓을 하며 퀘스트를 수락했다.
“일석삼조가 되었으니, 내일 바로 출발해야겠어.”
**
다음 날 아침. 백우진은 무영객과 문주영, 데플을 자신의 숙소로 불렀다.
“바렉스 성에 오늘 출발하자구요?”
데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벌렸다.
“그래.”
“그, 그러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아, 잠깐.”
백우진이 당장 나가려던 데플의 어깨를 잡았다.
“다 듣고 나가.”
“예?”
“혹시라도 제국의 정찰대나, 군대가 다시 올지 모르잖아.”
“그건 그렇죠….”
“그거 대비 좀 해야겠어.”
그 말을 하며 문주영에게 만변귀의 가면을 내밀었다.
“이걸 갑자기 왜 저에게….”
두 손으로 만변귀의 가면을 받은 문주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써 봤지? 그거 사용해서 나로 변해 봐.”
“알겠습니다.”
문주영은 조금의 의문도 없이 바로 가면을 쓰고 자신의 모습으로 변했다.
“와….”
“저건 아무리 봐도 내 변장보다 위라니까.”
그 모습을 본 데플은 입을 쩍 벌렸고, 무영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음….”
백우진은 자신으로 변신한 문주영을 천천히 살폈다.
“검을 뽑아서 오러를 주입해 봐.”
“예.”
문주영은 물음 따위 없이 바로 검에 오러를 밀어 넣었다.
치이이잉!
자신과 똑같은 검은 오러가 솟구쳐 검날을 불태웠다.
“어때?”
“또, 똑같아요. 분위기도 비슷하고.”
“인정함다. 구별할 자신이 없을 정도예요.”
데플과 무영객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그럼 됐네.”
백우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문주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가 남아서 내 대역을 해라.”
“예에?”
“제국이 언제 다시 올지 몰라. 다만 놈들은 내 무력에 겁을 먹은 상태이니까. 내 모습만 보여 줘도 시간을 끌 수 있을 거야.”
-아! 그래서 가면을 넘겨준 거였냐?
‘그래.’
일부러 제국의 모두를 포로로 잡지 않고 도망치게 놔두었다.
혹시 제국이 쳐들어오더라도 자신의 모습으로 변한 문주영이 시간을 끌 수 있을 거다.
-진짜 그냥 하는 일이 하나도 없군.
흑암이 혀를 내둘렀다. 백우진에게 그냥은 없었다. 모든 것이 녀석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가, 감히 제가 어떻게!”
문주영이 검을 들고 있던 손을 떨었다. 자신에게 백우진은 하늘이다. 그런 그의 대역을 하라니, 심장이 마구 뛰었다. 이전에 잠시 했던 대역과는 차원이 달랐다.
“전에도 했었잖아.”
“그때는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괜찮아. 넌 가까이에서 날 가장 많이 봐 왔어. 봤던 대로만 하면 돼.”
백우진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맞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검사님은 네가 나보다 자연스러울 거다.”
“스승님을 처음부터 모시지 않았습니까. 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으음….”
무영객과 데플의 격려에도 문주영의 어두운 얼굴은 풀어지지 않았다.
“너 내 검술도 따라 할 수 있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럼 뭐가 문제야. 사실 내 첫 제자는 너나 다름없는데.”
데플 이전에 문주영이 있었다. 녀석은 자신의 검술을 가장 많이 봐 왔기에 데플보다 훨씬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었다.
“문주영. 너니까 시키는 거야.”
“아….”
“믿으마.”
믿는다는 말에 문주영이 감격을 받은 듯 몸을 떨었다.
“목숨을 바쳐서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고.”
-융통성 없는 녀석.
백우진이 손을 저었고, 흑암은 기껍다는 듯 웃었다.
“하나 더.”
손가락을 튕겨서 정령의 문을 열었다.
[크르릉!]겁화를 둘러 빨개진 이그니스가 하품을 하며 느릿하게 날아왔다.
“이그니스도 여기에 둘 테니까. 잘 써먹어.”
“아, 알겠습니다!”
문주영은 이제 부담이 좀 가셨는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저 둘이라면 뭐가 와도 막을 수 있겠지.
‘그래.’
백우진이 신뢰가 담긴 눈으로 문주영과 이그니스를 바라보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준비는 마쳤으니, 그럼 다 먹어 치우러 가 보자고.’
**
불포르는 바렉스 성에 돌아오자마자, 상처를 회복하지도 않고 성에 있는 보물들과 성주의 인장을 나누어서 숨겼다.
“하아….”
보물들을 꼭꼭 숨긴 불포르가 한숨을 내쉬며 사무실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하군.”
새벽부터 밤까지 일해서 몸은 힘들지만, 걱정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속이 편해졌다.
“성주님. 이제 좀 쉬시는 게….”
호위이자, 부관인 가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보석은 다 숨겼지?”
“예. 적당한 것들은 그 자리에 놓아 두고, 귀한 것들은 전부 그 벽 안에 숨겼습니다.”
“그럼 됐어.”
“저 그런데….”
“왜?”
“이것들을 숨길 필요가 있을까요? 아무리 그 사람이 온다고 해도….”
“의결권이 넘어갔다는 게 뭔지 몰라?”
불포르가 이를 갈며 의자의 손잡이를 부숴 버렸다.
“그놈이 여길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뜻이야. 망할!”
그 또라이의 술수에 넘어가서 모든 것을 잃게 생겼다. 언제라도 빠져나가 재기할 수 있도록 중요한 보물과 인장은 것들을 숨겨 놔야 했다.
“그, 그렇군요….”
“애들 입 관리 잘 해. 죽어도 물건들이 어디 있는지 뱉지 않도록.”
“물론입니다. 믿을 수 있는 녀석들로만 움직였습니다.”
“그럼 됐어. 나가 봐.”
불포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옌이 고개를 숙인 뒤 문을 닫고 사무실을 나갔다.
“하아, 하필 여기서 모임을 한다고 해서….”
억지로라도 실비아를 데리고 오기 위해서 회의 장소를 자신의 성으로 정했는데, 백우진 때문에 모든 게 망했다.
보물들은 숨겼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나질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벗어나야… 음?”
테이블을 두드리던 불포르가 눈을 찡그렸다.
‘뭐지?’
무언가 두려운 것을 본 것처럼 심장이 오그라들며 등골이 오싹했다.
“이, 이 느낌은….”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콰아아앙!
사무실 문이 부서질 것처럼 열리고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놈이 들어왔다.
“끄악! 배, 배, 백우진!”
백우진이다. 저 미친놈은 넋이 반쯤 나간 가옌을 허리에 낀 채로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다, 당신이 여길 왜! 그리고 어떻게!”
“왜라뇨. 회의가 있어서 왔죠.”
백우진이 함께 온 린덴 성주와 실비아를 가리켰다.
“안내는 이 친구에게 받았고.”
“으윽….”
“안내 고마웠어요.”
그는 허리에 낀 가옌을 풀어주며 부드럽게 웃었다.
“회, 회의는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내가 의결권을 가진 성이 어떤 곳인지 보러 왔습니다. 여기 위치나, 환경이나 괜찮던데요.”
“아, 아니….”
불포르는 어쩔 줄을 모른 채 입술을 떨었다.
“자, 그럼….”
백우진은 자신의 안방이라도 된 듯 불포르의 책상에 걸터앉아 손을 내밀었다.
“인장 주셔야죠?”
“어?”
“성주의 인장. 당신에겐 의결권이 없으니, 제가 가져야죠.”
“어, 없습니다.”
“뭐?”
“우리 바렉스 성에 인장 같은 건 딱히 없습니다.”
불포르가 식은땀을 흘리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다, 다행이야.’
성에 돌아오자마자 인장과 중요 물건들을 숨긴 게 정답이었다. 조금이라도 늦게 움직였다간 모든 보물을 빼앗겼을 것이다.
“흐음….”
백우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성의 보물들을 넣어 놓은 보고나 보여 주시죠.”
“보고요?”
“네.”
“으음….”
불포르는 가옌을 흘끔 보았다. 가옌은 믿으라는 듯 눈짓을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일어섰다.
“따라오시죠.”
**
백우진은 불포르를 따라 바렉스 성의 지하 보고에 들어갔다.
-별거 없네?
‘그러게.’
보석이나, 무구, 영약 같은 것들이 꽤 쌓여 있었지만, 전부 중급 정도였다. 특별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미 옮겼나 보군.’
-너한테 속은 것과 달리 머리 회전은 빠른 녀석이다.
‘그래 봐야 우리의 개코에겐 상관없지만.’
백우진이 서늘하게 웃으며 불포르에게 다가갔다.
“이게 다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성주님께서는 사치하시는 성격이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보물들의 대부분은 선대에서 물려받은 것들입니다.”
불포르의 호위라는 가옌이 갑자기 끼어들어 묻지도 않은 불포르의 성격을 말해 주었다.
“정말 여기 있는 게 다죠?”
“무, 물론입니다.”
“마지막으로 물어보겠습니다. 이 성에 성주의 인장은 없고, 보물은 여기 있는 게 전부라는 거죠?”
“그렇다니까요!”
불포르는 믿어 달라는 듯 양손을 모으며 간절한 표정을 그려 냈다.
“그 말이 거짓일 경우 이 성의 숨겨진 물건들은 모두 제 겁니다.”
“그, 그런….”
“대신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의결권을 돌려드리죠. 어때요?”
“허억!”
불포르가 굽힌 허리를 벌떡 일으켰다.
‘의결권을 다시 찾기만 하면….’
의결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소리에 불포르의 눈동자가 회까닥 돌아갔다.
‘아무리 이놈이라고 해도 그것들을 찾는 건 불가능해!’
보물들을 숨긴 곳은 자신조차 쉽게 열 수 없는 것들이다. 아무리 이 괴물이라도 그건 찾을 수 없다.
“조, 좋습니다! 대신 약속 확실히 지키셔야 합니다!”
“물론이죠.”
백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뒤를 돌았다.
“무영객!”
자신의 부름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흑의 무복을 입은 무영객이 나타나 부복했다.
“찾았어?”
“예압!”
-폼 잡을 거면 계속 잡지, 갑자기 예압이라니….
흑암은 무영객을 보며 검날을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여기에도 있슴다.”
무영객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파리처럼 손을 비볐다.
“여기에?”
“이쪽으로 오세요.”
녀석은 팔자걸음을 걸으며 보석들이 놓인 테이블의 뒤로 향했다.
“여긴 테이블에 보석이 있어서 벽면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죠. 그래서….”
무영객은 텅 빈 벽면의 여덟 곳을 순차적으로 두드렸다.
쿠구구구!
마지막 손길이 닿았을 때 벽면에 사각의 문이 생겨나며 푸른 빛을 내비치는 공간이 드러났다.
“역시.”
“어어억!”
백우진이 빙긋 웃고, 불포르의 한쪽 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역시!”
무영객은 손뼉을 치며 열린 곳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이전의 방에 있던 보물보다 훨씬 화려한 보석들과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무구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흐응!”
백우진은 콧노래를 부르며 무구들을 살폈다.
-저 방에 있던 것들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군.
검, 도, 창, 궁, 갑옷에 영약까지 이전의 방에 있던 물건들과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보물들이었다.
전방의 수준을 4에서 5라고 친다면 이곳은 최소 6에서 7 수준이었다.
“아아악!”
불포르는 흐르는 코피도 닦지 않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 대체 어떻게 그 비밀 장치를….”
벽면의 저 장치는 잘못 누르면 절대 열리지 않는 기관이며, 알아볼 수 없게 은밀한 결계까지 쳐 놓았었다.
저 괴물은 또 뭐길래 저걸 찾아내고, 단숨에 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난 당신에게 3번이나 기회를 줬습니다.”
“으윽!”
“지금부터 이 보물은 제겁니다.”
백우진이 씩 웃으며 뒤를 돌았다.
“무영객. 데플. 보물들 전부 챙겨.”
“아, 안 돼! 안 된다고!”
“내기에 동의했잖습니까. 숨긴 보물이 있다면 전부 내 거라고.”
“아니야! 안 된다고!”
“이미 늦었어. 얘들아. 시작해라.”
“예!”
무영객과 데플은 히죽 웃으며 방에 있던 보물들을 한곳에 모았다.
‘흑암.’
-어휴….
흑암은 검날을 절레절레 저은 뒤 보물들을 모조리 인벤토리에 넣었다.
“검사님. 아직 세 군데 더 있습니다. 가시죠!”
“끄으윽….”
“으헉!”
불포르와 가옌은 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자신들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지, 진짜 성을 쌩으로 털어먹네?
흑암은 덤덤한 백우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양아치 새끼….
**
백우진과 흑암은 성 밖에 숨겨 둔 비밀 창고와 2층 창고에 숨겨 둔 보고의 물건들도 모조리 챙긴 뒤 성의 최상층에 있는 성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 여긴 또 왜 오셨습니까.”
불포르는 이제 극존대를 사용하며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무영객.”
“히이익!”
무영객을 불렀건만, 소리는 불포르에게서 들려왔다.
-무영객의 이름만 부르면 숨겨 둔 비밀 장소가 들키니 당연하겠지.
흑암은 재밌다는 듯 낄낄 웃었다.
“여기가 마지막임다.”
무영객은 개구리처럼 뛰어올라 성주의 방 천장에 달라붙었다.
끼기긱!
녀석이 이곳저곳을 한참동안 두드리자,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흐르며 천장의 한 공간이 열렸다.
“여긴 딱 3개밖에 없네. 에잉.”
“끄르르륵!”
불포르는 무영객이 물건들을 꺼내는 것을 보자마자, 드디어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갔다.
“으헉! 성주님!”
가옌은 기절한 불포르를 업고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괘, 괜찮을까요?”
실비아가 조금 어두운 얼굴로 다가왔다.
“괜찮아요. 세 번이나 기회를 줬는데, 거절했으니 자업자득입니다.”
백우진이 손을 저었다. 한 번에 성주의 인장을 가져왔다면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텐데, 전부 거절했으니, 다 자기의 업보였다.
“거기다 저 녀석은 대련에서 제 목숨을 노렸어요. 이 정도는 받아야 수지가 맞죠.”
-아예 성을 통째로 달라고 해라! 이 양아치 자식아!
‘그건 불쌍하잖아.’
-지금이랑 다를 게 뭔데!
“커흠….”
할 말이 없어진 백우진은 귀밑머리를 긁적이며 무영객에게 다가갔다.
“확인했어?”
“일단 이게 성주의 인장이네요.”
무영객은 첫 번째로 바렉스 성의 인장을 넘겨주었다.
“이건… 우와!”
보석을 자세히 살핀 무영객이 환호를 내질렀다.
“아케리우스의 눈동자!”
“그게 뭔데?”
“모르세요? 우리 세계에서도 딱 하나뿐인 보석 중의 보석임다! 이 영롱한 푸른빛을 보세요!”
“세 번째는?”
백우진은 보석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세 번째로 가져온 피처럼 붉은 액체가 들어 있는 유리병을 가리켰다.
“음, 이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다만 이 중에서 가장 보물의 냄새가 풍깁니다.”
“그래?”
백우진은 세 물건을 전부 받은 뒤 흑암에게 유리병을 가리켰다.
‘감정 좀 해 주시죠.’
-누가 보면 맡겨 놓은 줄….
‘좀 해 줘.’
-하아, 이젠 시스템과 세계수를 넘어 적도 퍼주는구나. 지겹다. 지겨워!
흑암은 찡찡거리면서 액체에 감정을 사용했다.
[정제된 마룡의 피] 수천 년 전에 봉인된 최흉의 마룡 불카누스의 피를 정제해서 만들어 낸 회복제다. 전설의 엘릭서까진 아니지만, 어떤 회복 마법이나, 치유제보다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등급: 레전더리.
-뭐, 뭐시여! 이게 왜 여기 있어!
마룡 불카누스는 아직도 전승으로 내려오는 최악의 용이자, 강대한 재생 능력을 가진 존재다. 그놈의 피로 만든 회복제라니, 이런 게 남아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너 엘릭서도 있잖아! 이런 쓰벌! 목숨이 대체 몇 개야!
회복의 호흡에 엘릭서, 마룡의 피까지 하면 목숨이 세 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후후후.’
백우진은 어깨춤을 추면서 마룡의 피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대박 터졌네.’
바렉스 성에 빠르게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았다. 예상했던 것 이상의 수확이었다.
“무영객. 수고했다.”
“저도 재밌었슴다. 대놓고 훔치다니,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뜰 거 같은….”
무영객이 황홀한 표정으로 어깨를 떨었다.
“다 했으니까. 넌 이제 돌아가.”
“예에?”
눈이 반쯤 돌아갔던 무영객이 빽 소리를 질렀다.
“여기 있다가 연합 사람들에게 사고 치지 말고 성에 돌아가서 문주영이나 도와줘.”
“와, 심하시네. 내가 다 찾아 줬는… 엉?”
따지려던 무영객은 백우진이 내민 물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 아케리우스의 눈동자? 이거 저 주시는 거예요? 이 귀한 걸?”
“우리 중에 보석에 관심 있는 사람은 너뿐이잖냐. 수고했어.”
“으하하하하! 당장 돌아가겠슴다!”
무영객은 내민 아케리우스의 눈동자를 냉큼 챙긴 뒤 문이 아니라,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허….”
“아….”
데플과 실비아는 무영객의 움직임과 행동력에 깜짝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와, 쟤 행동력은 진짜….
흑암 역시 저럴 줄은 몰랐다는 듯 검날을 절레절레 저었다.
‘원래 저런 녀석이야.’
백우진만 열린 창문을 보며 미소 지었다.
**
백우진은 회의가 시작되는 날까지 바렉스 성에서 머물며 성주보다 더한 대우를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해 줘도 보물들 돌려주지 않을 텐데….
흑암은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음식들을 보며 혀를 찼다.
‘혹시 모르지.’
백우진은 큼지막한 고기를 씹어먹으며 웃었다.
-웃기고 있네. 네가 돌려주면 내 몸을 똥통에 처박는다! 이 양아치 자식아!
‘어, 그거 보려면 돌려줘야겠는데?’
-이, 이 미친….
흑암은 백우진이 진짜 할 놈이라는 걸 알기에 검날을 부르르 떨었다.
“제가 바렉스 성에서 이런 대우를 받을 줄은 몰랐네요.”
함께 식사하던 데플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불포르 성주가 항상 보이던 그 지저분한 눈빛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과일을 먹던 실비아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말대로 불포르는 가져간 보석을 돌려받기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해서 자신들을 모시고 있었다.
“보물들을 돌려받고 싶어서겠죠.”
“돌려주실 건가요?”
“하는 거 봐서요.”
백우진은 뜻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남아 있던 고기를 꿀꺽 삼켰다.
‘이게 대주주의 기분이구만.’
성주가 벌벌 기고, 앉은 자리에서 모든 일이 다 해결되니, 편하기 그지없었다.
타악!
남은 식사를 즐기고 있을 때 거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식당의 문이 열렸다.
“아, 저….”
성주의 호위인 가옌이 눈동자를 떨며 들어왔다. 그는 요즘 자신을 볼 때마다 귀신을 본 듯 몸을 부들거렸다.
“말하세요.”
“세이란 연합의 성주들이 도착했습니다.”
“흐음….”
백우진이 마시던 포도주를 내려놓고 빙긋 웃었다.
‘새로운 호구들이 도착했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