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40
340화. 주도권 (4)
“전부 도착한 겁니까?”
“세이란 성주님을 제외하곤 모두 도착했습니다.”
백우진의 물음에 가옌이 살짝 고개를 내리며 대답했다.
“회의는 언제 열리죠?”
“예정대로 내일 정오에 열릴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늦지 않게 찾아가죠.”
“예. 그럼….”
가옌은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 없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세이란 성의 성주 에드거 세이란이 사실상 연합의 리더나 다름없습니다.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서 늦게 오는 게 분명해요.”
데플이 한숨을 내쉬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에드거 세이란?”
“가장 빠른 검사로 이름이 높은 사람입니다. 절대의 경지에 오른 지도 한참 됐죠.”
“그럼 세이란 연합에서 그가 가장 강한 건가?”
“아뇨. 슈칸 성의 주인인 렉터 프리드 님도 그에 못지않게 강합니다. 두 분은 어려서부터 라이벌이었죠.”
“그럼 그도 절대겠군.”
“네. 맞아요.”
“에드거와 렉터 프리드라….”
백우진이 손으로 깍지를 껴서 턱을 괴었다.
‘둘은 아버지와 대연문주의 관계인 모양이군.’
-슈칸과 세이란은 옛날부터 라이벌 관계였다. 그 관계가 지금도 이어지는 것 같군.
흑암은 옛 생각을 하는 듯 검날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럼 예전에 네가 말한 대로 슈칸과 세이란이 함께 움직일 일은 없겠네.’
-거의 없을 거다. 동맹도 정말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을걸?
‘그럼 됐어.’
백우진이 테이블 옆에 놓여 있던 연합의 규칙이 적힌 서류들을 읽으며 빙긋 웃었다.
‘얼마든지 가지고 놀 수 있어.’
**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제국의 황궁. 그 바로 앞에는 황궁보다도 더 높게 치솟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첨탑도, 감시탑도, 마탑도 아니었다. 그건 신전. 제국의 새로운 국교 카바론을 모시는 신전이었다.
카바론의 신전은 어둑해 보이는 황궁과 달리 백광을 두른 듯 눈처럼 하얗게 반짝였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카바론의 신전을 황궁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 새하얀 신전 앞으로 무리안이 다가왔다.
“부신관장님을 뵙습니다!”
신전을 지키는 성기사와 신관들이 옆으로 물러서서 고개를 숙였다.
“신관장님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다.”
무리안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신전의 문을 열었다. 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신전의 전경이 드러난다.
내부 전체는 백금으로 칠해졌고, 바닥의 붉은 카펫에는 조그마한 먼지도 없었으며 신전 전체에 쌓인 석상들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생생했다.
저벅.
무리안은 그 화려하고 성스러운 길을 걸어 카바론의 석상을 바라보고 있는 신관장에게 다가갔다.
“신관장님을 뵙습니다!”
무리안이 등을 돌리고 있는 신관장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허허….”
신관장은 카바론의 석상을 올려다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 녀석 특이하더구나.”
“예?”
“너와 싸웠던 백우진 말이다.”
신관장은 석상을 보고 있는 채로 말을 이었다.
“내가 준비하려고 했던 네 무대를 완전히 망쳐 버렸어.”
“그, 그게 무슨….”
“마룬과 신관 그리고 군대를 보내서 린덴 성을 치워 버리려고 했는데, 그놈에게 막혔다.”
“아….”
“그분께서 내려주신 신탁에서도 그런 상황은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지.”
신관장이 천천히 등을 돌렸다.
“으음….”
그 모습을 본 무리안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리 신관장의 눈동자는 몸서리를 치게 만드는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놈은 위험해. 너와 내 예상보다도 더.”
신관장이 무릎을 꿇은 무리안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시, 신관장님.”
무리안은 그 절대적인 손길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치이이이잉!
신관장의 손아귀에서 터져 나온 백광이 연기처럼 스멀스멀 피어나 무리안의 전신을 뒤덮었다.
“이, 이건!”
무리안이 눈을 부릅떴다. 심장에 걸려 있던 봉인이 깨지고, 그분의 힘이 일어나고 있었다.
“봉인을 해제했다. 봉인이 완전히 풀린 건 처음이니, 그 힘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거다.”
신관장이 무리안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섰다.
“기운에 적응이 끝나는 대로 린덴 성을 찾아가라. 백우진은 찢어 죽이고, 린덴 성과 라인 숲을 불태워라.”
“아….”
무리안은 요동치는 기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양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가능해! 이 힘이라면 뭐든 가능해!’
백우진만이 아니라, 세이란 연합의 성주들이 한 번에 덤벼도 이길 수 있다. 그야말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전능한 힘이 심장에서 꿈틀거렸다.
“명을 받듭니다!”
무리안은 바닥에 닿도록 고개를 숙인 뒤 일어섰다.
“널 믿겠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신관장은 부드럽게 웃으며 무리안의 어깨를 두드렸고, 무리안은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출구로 걸어갔다.
“…….”
다만 무리안도 모르는 게 있었다. 그를 바라보며 웃는 신관장의 입과 달리 눈은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
똑똑.
다음 날 백우진이 명상을 하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검사님. 시간이에요.”
실비아가 문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다른 성주들은 이미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해요.”
“알겠습니다. 가죠.”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제일 늦게 가는군.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들어가는 법이야. 드라마 많이 봤잖아.’
-지 입으로 주인공이래. 하….
흑암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검날을 저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고서 실비아를 따라 2층에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들어가십시오.”
백우진과 실비아를 확인한 집사들이 회의실의 큼지막한 문을 열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원형 테이블 주변으로 다섯 명의 성주들이 앉아 있었다.
다만 상석이라고 할 법한 중앙의 자리에는 불포르가 아니라, 멋진 회색 수염을 기른 청발의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저 녀석이 세이란 성주로군.
‘그런 거 같아.’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를 제외하고 가진 무력만 봐도 그가 월등했다.
“그 유명한 흑색의 검사를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오. 세이란의 성주 에드거라 하오.”
“백우진입니다.”
에드거가 앉은 채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백우진 역시 그와 같은 인사를 했다.
“다만 이 회의는 성주만이 참석할 수 있는 곳이오. 미안하지만 나가 주셨으면….”
“전 대리인으로 참석했습니다.”
“대리인?”
“린덴 성주가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서 제가 대신 참여했습니다.”
“으음….”
“세이란 연합 규정에 성주가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면 대리인을 보내야 한다고 적혀 있던데 아닙니까?”
“음, 그렇다면야 문제는 없소.”
에드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푸른빛으로 번쩍였다.
“퓨런 성의 성주 페이든이라고 하오.”
“전 켈든 성의 주인 틸리입니다.”
“렌다누스 성주 쿠탄이오.”
에드거의 허락이 떨어지자, 세 성주도 차례로 자신을 소개했다.
“으윽.”
불포르는 자신의 눈치를 보다가 그냥 고개만 숙였다.
“오늘 하루 실례하겠습니다. 백우진입니다.”
백우진은 예를 갖춰 인사를 한 뒤 실비아와 함께 우측 자리에 앉았다.
삐걱.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회의실 문이 열렸다.
저벅.
키가 작지만, 강철처럼 단단해 보이는 적발의 남자가 정광 어린 눈빛을 뿜어내며 에드거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절대의 경지.’
에드거에 못지않은 강대한 기운이다. 이 남자가 바로 슈칸 성의 성주 렉터 프리드인 것 같았다.
“흑색의 검사로군. 듣던 대로 아주 잘생겼구려! 렉터 프리드요!”
그는 예상대로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호탕한 목소리를 흘리며 눈인사를 보냈다.
“백우진입니다.”
백우진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
서로 안면을 익혔고, 모두 모였음에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바렉스 성주.”
“아, 예!”
에드거의 부름에 불포르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너무 긴장해서 자신이 회의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도 잊은 것 같았다.
“다, 다들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불포르가 자신의 눈치를 슬쩍 보면서 벽면으로 다가갔다.
“오늘 회의의 중요 안건은 린덴 성과 라인 숲입니다.”
그가 벽면에 펼쳐진 대륙 전도에서 린덴 성과 라인 숲을 가리켰다.
“이 두 곳은 현재 저희 연합에서 가장 전방에 위치해서 제국으로부터 큰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3년 전 제국의 침략을 간신히 막아 냈을 때 세이란 쪽으로 이동을 하라고 했지만, 두 분은 거절하셨었죠.”
“맞아요.”
“이번엔 정말 위험했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흑색의 검사께서 제때 당도하지 못했다면 성 자체가 무너졌을 겁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실비아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고집 좀 그만 부리시오. 린덴 성을 지키고 있어 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잖소.”
퓨런 성주 페이든이 고개를 저었다.
“맞아. 거기다 이전 회의에서 이미 결정이 난 일이잖아.”
렌다누스 성주 쿠탄이 동의하며 손을 매만졌다.
“음….”
실비아는 입술을 깨물며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결정하라는 거구나.’
백우진은 자신에게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준 것 같았다.
“그럼 저도 다시 말씀드릴게요. 거절합니다.”
“뭐요?”
“아니, 대체 왜!”
“린덴 성과 라인 숲에는 세계수가 있습니다. 현재 제국의 침략이 늦어진 이유가 바로 세계수 때문이라는 걸 부정하실 분은 없을 겁니다.”
“세계수가 중요한 건 알고 있소. 다만 정말 중요한 건 전쟁의 행방이오. 우리는 한곳에 뭉쳐서 제국의 침략을 몰아내야 하오. 세계수가 살더라도, 우리가 모두 죽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소.”
에드거가 입을 열자, 다른 네 성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윽!”
백우진의 눈빛을 받은 불포르는 끄덕이던 고개 그대로 멈춰 버렸다. 다만 그가 가장 뒤에 있었기에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린덴 성주의 대리인이신 흑색의 검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전 이대로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에드거의 물음에 백우진이 모두를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위험하다니까!”
“언제 어떻게 침공해 올지 모른다고!”
“괜찮습니다. 언제, 어떻게 오더라도 제가 지킬 수 있으니까요. 성주분들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호오….”
“흐음….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에드거가 인상을 찌푸렸고, 렉터 프리드는 감탄의 눈빛을 보이며 씩 웃었다.
“그럼 투표로 결정할 수밖에 없겠군. 이번이 두 번째이니, 동의에 다섯 표 이상이 나오면 결정 사항을 반드시 따라야 하오.”
“잠시만요.”
에드거가 불포르에게 지시를 내리려고 할 때 백우진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제가 듣기로 세이란 연합의 초기 멤버 다섯 분께서는 항상 의견이 같다고 하던데, 이거 저희가 불리한 거 아닙니까?”
“우리가 한 몸도 아니고 어찌 항상 의견이 같을 수 있겠소. 말도 안 되는 일이오.”
에드거가 손을 저으며 피식 웃었다.
“다수가 선택한다는 건 그만큼 이치에 맞는 일이라는 뜻이니, 곡해 없이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소.”
“듣던 것과 달리 속이 좁네.”
“그러게.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크크….”
에드거는 부드러운 말과 달리 비웃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고, 다른 성주들도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조롱을 하기 시작했다.
-짜증 나는군.
흑암이 검날을 비틀었다.
-은근히 조롱하는 찌질한 놈들.
스스로의 생각도 없이 강자의 의견만 따르는 개들이 백우진을 비웃는 꼴을 보니, 화가 솟구쳤다.
‘걱정마. 역으로 돌려줄 테니까.’
백우진은 서늘한 눈빛을 발하며 흑암을 두드렸다.
“그럼 찬성 넷에 거절 넷이면 이 안건은 없던 일로 되는 겁니까?”
“물론이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다시는 이 안건을 올리지 않겠소.”
에드거는 얼마든지 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런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입꼬리는 더 올라가 있었다.
“믿겠습니다.”
“후후, 그럼 바로 시작하지. 바렉스 성주.”
“아, 예!”
불포르가 입술을 잘근 씹으며 앞으로 나왔다.
“지, 지금부터 린덴 성과 라인 숲의 인원을 세이란 쪽으로 이동시키는 안건에 대한 투표를 진행하겠습니다. 동의하시는 분은 거수하여 주십시오.”
불포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에드거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를 따라 남은 세 명의 성주도 거수했다.
자신과 실비아는 당연히 가만히 있었고, 렉터 프리드는 팔짱조차 풀지 않았다.
“네 명이군요.”
백우진이 슬쩍 고개를 돌리며 손가락을 접었다.
“음?”
에드거가 손을 든 숫자를 센 후 눈을 부릅떴다. 불포르가 손을 들지 않고 있었다.
“바렉스 성주! 사회자인 자네도 투표권이 있네!”
“아, 알고 있습니다.”
“근데 뭘 하는 거야! 왜 손을 들어 올리지 않는 건가!”
“…….”
에드거가 직접 지목했음에도 불포르는 손을 올리지 않았다. 그의 떨리는 시선은 에드거가 아니라 백우진에게 향하고 있었다.
“설마….”
“찬성 4에 반대 4네요. 이러면 안건이 무효가 되고, 이 안건이 다시 올라올 일도 없는 거 맞겠죠?”
백우진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려서 시선을 모았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이라뇨. 저와 바렉스 성주가 한 몸도 아니고, 그가 스스로 선택한 거죠. 다수가 선택하지 않았으니, 곡해 없이 사실을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군요.”
에드거와 똑같은 말을 하며, 그처럼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퓨런 성주 페이든이 테이블을 쾅 치며 일어섰다.
“네가 개수작을 부려서… 으윽!”
욕설을 내뱉던 페이든은 백우진이 피워 낸 서늘한 기파에 풍이 든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말조심하지?”
“아아….”
백우진이 기세를 풀어 주자, 페이든은 쓰러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세이란 성주님. 안건이 취소된 건지 아닌지 확실하게 확인해 주시죠.”
“…이 안건은 취소요.”
에드거가 이를 가는 듯한 얇은 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말에 실비아가 손을 모으며 활짝 미소 지었다.
-크하하하하!
흑암이 성주들을 둘러보며 광소를 터트렸다.
-너는 무조건 갚아 주는구나! 이 얌생이 같은 놈!
백우진은 에드거의 대사를 그대로 가져와서 성주들을 엿 먹였다.
같은 편이었기에 속이 시원했지만, 만약 이놈과 적이었다면 답답해서 끙끙 앓았을 거다.
“그럼 오늘 모인 이유는 끝났으니, 제가 안건 하나를 제안하겠습니다.”
“안건?”
“네. 그리 어렵지 않은 겁니다.”
백우진이 불포르가 서 있던 대륙 전도로 다가갔다. 불포르는 자신이 다가오자, 움찔 놀란 후 옆으로 물러섰다.
“세이란 연합의 전선은 지금 이곳에 있죠?”
동쪽의 끝. 손가락 한 마디만 넘어가면 바다가 있는 그곳을 가리켰다.
“맞소.”
“이 전선을 여기로 옮기는 게 제 제안입니다.”
손가락을 대륙의 중앙에서 조금 남쪽에 있는 교역 도시 라멜룬으로 이동시켰다.
“그 무슨 헛소리를!”
“말도 안 되는 소리!”
“거길 왜 간단 말이오!”
세 성주가 고성을 질렀고, 에드거는 살벌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았다.
“드디어 옳은 소리를 하는 자가 나타났군!”
석상처럼 가만히 앉아 있던 슈칸 성주 렉터 프리드가 팔짱을 풀고 일어났다.
“찬성이다!”
그가 테이블을 세차게 내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이 구석에 박혀 있을 생각인지! 이래서는 죽도 밥도 안 돼!”
인사를 할 때도 느꼈지만, 렉터 프리드는 작은 체구에 비해 굉장히 호쾌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회의를 이끌어 나가는 것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고. 아주 마음에 들어!”
“갑자기 전선을 올리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못 할 건 또 뭔가!”
에드거와 렉터 프리드는 서로를 노려보며 인상을 구겼다.
“그럼 언제까지 여기에 박혀 있을 생각들입니까?”
백우진이 픽 웃고서 앞으로 나섰다.
“제국은 포로를 이용해서 흑귀를 끝없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 구석에서 소모전을 해 봐야 손해는 연합만 받을 겁니다.”
“흑귀? 그걸 어떻게 만드는지는….”
“저흰 알고 있습니다.”
“헉!”
“저, 정말인가?”
흑귀를 만드는 방법을 안다고 하자, 성주들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렇습니다.”
“대체 어떻게….”
“지금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어렵지 않은 방법입니다. 정말 얼마든지 만들 수 있죠.”
성주들을 향해 한 발 앞으로 나갔다.
“다시 말해서 이곳에 계속 박혀 있어 봐야 전쟁은 멈추지도, 끝나지도 않습니다. 끝없는 소모전을 벌이다가 결국 제국에게 잡아먹힐 겁니다.”
“맞는 말이야! 기사라면 응당 앞으로 나가 싸워야지!”
렉터가 동의한다고 말하며 짝 소리가 나도록 손뼉을 쳤다.
“흑색의 검사. 당신의 말엔 어폐가 있소.”
“어폐?”
“그렇소. 일단 저곳.”
에드거가 교역 도시 라멜룬을 가리켰다.
“라멜룬은 중립도시요. 아니,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미 제국에 먹혔다는 게 기정사실이지. 저곳까지 전선을 올린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요. 적을 앞뒤로 두는 꼴이지.”
“맞는 말입니다!”
다른 성주들이 에드거의 의견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멜룬은 아직 제국과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위치상 대륙의 거의 중앙에 있어서 다른 곳의 지원을 받기에도 좋죠.”
“지원? 어디가 지원을 한단 말이오. 서쪽은 전부 제국에게 먹혔고, 북방의 프레스톤 성이나 남방 야수족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지 않소. 거기다 라멜룬은 이미 제국에 먹혔다니까!”
“그니까 교역 도시와 프레스톤 성, 그리고 야수족이 문제라는 거군요.”
“그렇소. 교역 도시가 우리의 뒤를 받쳐 주고, 프레스톤 성이나 야수족 중 하나가 전쟁에 참여한다면 모를까. 지금의 상황에서 전선을 올리는 건 불필요한 일이오. 아니, 다 죽자는 소리지.”
에드거는 되지도 않는 소리라고 일축하려는 듯 기세를 끌어올리며 압박해 왔지만, 그 정도로는 간지럽지도 않았다.
“그럼 그 셋 중 둘과 동맹을 하면 세이란 성주께서는 전선을 올리는 데 동의하시겠군요.”
“물론이오!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나도 동의하지.”
“마찬가지요!”
에드거가 눈을 깜빡이자, 다른 세 성주도 동의했다.
계속 보고 있으니 저들은 에드거의 꼭두각시 같았다. 아마 불포르의 의결권을 뺏지 않았다면 그도 저랬을 거다.
-크흐흐! 난리 나겠군.
저들의 반응이 기대가 되는지 흑암이 히죽거렸다.
“그렇군요. 동맹이라….”
백우진이 빙긋 웃으며 품에 손을 넣어 두 장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그럼 됐네요. 여기 라멜룬과 프레스톤 성 두 곳과 린덴 성이 동맹했다는 서류가 있으니까.”
“그, 그게 무슨!”
역으로 조롱을 받았을 때도 침착하게 앉아 있던 에드거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으헉!”
“악!”
그가 벌떡 일어서며 너무 힘을 줬기 때문에 테이블이 쾅 소리와 함께 반으로 쪼개지고, 다른 성주들이 뒤로 자빠졌다.
“성주께서 말했던 라멜룬 시와 프레스톤 성과의 동맹서입니다.”
백우진은 성주들을 놀리듯 양손에 든 서류를 흔들었다.
“말씀하셨듯이 전선을 올리는 이 안건에 동의해 주시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