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54
354화. 총사령관
백우진은 파윈, 무영객, 문주영과 함께 푸른 들소 부족의 철책을 나섰다.
“그대로 가려는 건가?”
라멜룬 시로 출발하려 할 때 세르빅이 우측 철책을 훌쩍 뛰어넘어 내려섰다.
“워프로 라메룬 근처까지 보내 줄 수도 있는데?”
“워프를 타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왜지?”
“현재 라멜룬 시 부근엔 제국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런 때에 장거리 이동 마법을 썼다간 세르빅 님의 정체를 들킬 수 있습니다.”
“하긴 유만이라면 알아차릴 가능성이 있긴 하지.”
“당신의 정체를 밝힌 제가 말하긴 좀 그렇지만, 이왕 시작한 유희는 끝까지 하셔야죠. 전쟁이 심각해지지 않는 이상 본체로 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흐음!”
세르빅이 감격한 눈빛을 빛내며 큼지막한 미소를 지었다.
“머리 회전도 빠르고, 볼 때마다 마음에 드는 소리만 골라서 하는군. 흑암. 저 쓸데없는 고철과는 달라.”
-대가리에 빵구 난 도마뱀 때문에 화병 걸리겠네! 저놈은 보기와 달리 얍삽하기로 차원 제일이라고!
흑암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모기약에 맞은 모기처럼 허공을 뱅뱅 돌았다.
“이제야 만난 게 아쉽군. 좀 더 일찍 만났다면 더 좋은 관계가 되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인 거죠.”
“크하하하! 그 말도 맞군. 네 부탁대로 정예들이 모이는 대로 바로 라멜룬 시로 향하겠다.”
“감사합니다.”
백우진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친우를 보는 듯한 세르빅과 눈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렸다.
‘역시 일방적인 지시보다는 친분 관계가 좋지.’
세르빅에게 억지로 지시를 내리는 주종 관계보다는 지금처럼 약간이나마 신뢰가 묻어나는 관계가 훨씬 나았다.
‘부탁하는 일에 진심을 담아서 해 줄 테니까.’
-끄윽! 보라고! 백우진 이놈은 속이 시꺼멓게 물든 악마라고! 너 속고 있어! 이 멍청한 도마뱀아!
백우진과 세르빅은 떠났고, 아무도 듣지 못하는 흑암의 공허한 외침만이 남았다.
**
“흐음….”
백우진이 멀리 보이는 라멜룬 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다들 제시간에 왔군.’
라멜룬 내부에서 강력한 군기가 전해져 온다. 이전에 느꼈던 프레스톤과 세이란 연합 무인들의 기운이었다.
-뭐?
‘저 안에 세이란 연합, 프레스톤 성의 무인들이 와 있어.’
-허, 여기서 그들의 기세를 느꼈다고?
흑암이 헛웃음을 흘렸다.
‘무식할 정도의 기감이군.’
간신히 눈에 보일 듯한 라멜룬 내부에 있는 무인들의 기척을 읽다니, 기만큼은 초월에 도달한 게 사실이었다.
‘오러가 초월에 닿으면서 기감이 크게 상승한 것 같아.’
백우진이 씩 웃으며 라멜룬 시의 남문을 향했다.
“거, 검사님을 뵙습니다!”
남문 앞에 도착하자, 경비대장 자크가 경례를 취해 왔다.
-웬 경례? 너 쟤 상사냐?
‘도움받은 게 많으니까 그렇겠지.’
본인의 목숨만이 아니라 라멜룬 시 전체를 구해 줬으니, 경례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랜만입니다.”
백우진이 손을 올려 자크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뭣들 해! 빨리 문을 개방해!”
자크가 다급하게 수신호를 보내자, 쪽문이 아니라 거대한 정문이 활짝 열렸다.
“우와아아아!”
“흑색의 검사님이다!”
“돌아오셨군요!”
자신을 본 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손을 흔들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빛을 마주한 듯 경의로 반짝였다.
“험험!”
“누가 구해 줬는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구만. 고생한 보람이 있네.”
문주영과 무영객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두 사람은 히죽이며 환호를 즐겼다.
“그만하고 가자.”
“옙!”
백우진이 대로로 향하자, 몰려든 시민들이 홍해처럼 쫙 갈라졌다. 그들의 인사를 받아 주며 대로에 올라 시청으로 향했다.
이미 소식이 전해졌는지 시청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캐일락 시장이 나와 있었다.
“돌아오셨군요!”
캐일락 시장이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뛰어난 안내인 덕분에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럼 다행이군요. 파윈, 수고했다.”
“아닙니다.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파윈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시장, 동맹에 관한 건 묻질 않는군.
‘실패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복귀했으니,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동맹에 관한 걸 묻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빨리 돌아오긴 했지.
‘야수왕이 거기에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으니까.’
세르빅이 푸른 들소 부족에 없었다면 지금보다 몇 달은 더 걸렸을 테니, 그의 생각은 당연한 바였다.
“세이란 연합과 프레스톤 성의 병력은 그저께 도착했습니다. 지금은 성주들과 간부 회의를 하는 중이니, 검사님도 함께하시죠.”
“알겠습니다.”
백우진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회 건물 안에서 성주들의 기척이 느껴졌기에 그들이 모여 있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탁.
캐일락의 뒤를 따라 회의실에 들어갔다.
‘전부 왔군.’
성주들은 큼지막한 타원형 테이블을 둘러싼 채로 앉아 있었다.
우측에는 프레스톤 성주 세인과 실비아, 데플이 위치했고, 그 반대편에는 세이란 연합의 성주 네 명이 앉았다. 바렉스 성주 불포르는 외톨이처럼 조금 떨어져 있었다.
“백우진 님!”
“스승님!”
“검사님!”
자신을 보자마자 실비아와 세인, 데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일어나서 다가왔다.
“성을 구해 주자마자 남방에 가시다니요! 감사 인사를 할 기회는 주셔야죠!”
“맞아요. 그런 도움을 주셔 놓고 말없이 떠나시다니, 고맙다는 말도 못 해서 저희가 얼마나 민망했던지….”
데플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숙였고, 실비아는 드물게도 큰 소리를 냈다.
“우리가 남도 아니고, 그런 걸로 무슨 인사예요.”
백우진이 다가온 데플과 실비아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웃었다.
“커흠, 회포는 나중에 풀고, 일단 회의부터 진행하는 게 좋지 않겠소?”
세이란 성주 에드거가 헛기침을 하며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 일은 나중에 말하고 일단 앉죠.”
백우진은 고개를 돌려 비어 있는 테이블의 자리를 살폈다.
우측와 좌측에 다섯 자리 그리고 상성이 비어 있었다. 망설임 없이 상석에 가서 앉았다.
세이란 연합 쪽은 인상을 팍 찡그렸고, 다른 사람들은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침없군.
‘나 말고 누가 여기에 앉겠어.’
자만이 아니다. 여기서 상석에 앉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무슨 회의를 하고 있었죠?”
“오전에 전략 회의를 끝냈고, 지금은 지휘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캐일락이 우측에 앉으며 서류를 건네주었다.
“지휘권?”
“지금 라멜룬에는 세이란 연합, 프레스톤 그리고 라멜룬의 군대가 모여 있지만, 함께 싸워 본 적은 없습니다. 즉, 그들 모두를 통솔할 총지휘권이 필요하다는 에드거 성주의 제안으로 총지휘관을 뽑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스승님을 추천했는데, 지금 없는 사람이라고 거부당했습니다.”
“그렇군.”
백우진이 에드거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을 보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총지휘관에 오르려고 한 거였군.’
-이런 상황에서 숨구멍을 찾다니, 난 놈은 난 놈이야.
흑암이 에드거를 보며 픽 웃었다.
“전 당연히 스승님이 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이곳에 모일 수 있던 이유는 스승님 때문이니까요.”
“저도 동의해요.”
“물론 저도요.”
데플이 백우진을 추천했고, 실비아와 세인, 캐일락이 손을 들었다.
“음, 흑색의 검사.”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에드거가 테이블 쪽으로 상체를 들이밀었다.
“혹시 전략이나 전술, 전쟁을 공부한 적이 있소?”
“없습니다.”
“그럼 전략적으로 병력을 운용해 본 경험은?”
“없습니다.”
“그렇군.”
에드거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내비치며 일어섰다.
“당신의 무력은 인정하오.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도 강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강한 무력을 가져도 완성된 전략에는 당할 가능성이 있소. 총사령관은 강함보다도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배우고 익힌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맞는 말이군요.”
백우진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세이란 성주께서는 전략을 제대로 공부하셨습니까?”
“물론이오. 10살 때부터 전쟁에 관한 전략과 전술에 대해 끝없이 익혔소. 내게 총사령관 직책을 맡겨 준다면 최선을 다해서 적을 무찌르겠소.”
“그럼 전략과 전술을 실전에서 운용하신 적은 있습니까?”
“당연히! 제국과의 전투에서 전술들을 자유자재로….”
“제 기억으로 세이란 연합은 성에 박혀서 나온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린덴 성이 신검의 악마에게 먹힐 때도 구경만 했지 않습니까.”
“그, 그건 전략상….”
그 부분에선 할 말이 없었는지 에드거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저와 배웠지만 쓰질 못하는 세이란 성주님은 비슷한 조건인 것 같네요.”
“끄으윽!”
“크하하하하! 맞는 말이지. 내가 가자고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두더지처럼 박혀 있었잖아!”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있던 슈칸 성주 렉터 프리드가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네놈….”
“전 총사령관 후보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으니, 투표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 말고 한 명이 더 오면 하죠.”
“한 명 더?”
“누가 또 오는 겁니까?”
에드거와 데플이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남방의 야수왕 마르카가 일주일 내로 도착할 겁니다.”
“허억!”
“야, 야수왕? 남방을 통합시킨 그 야수왕이?”
“정말 그 야수족들을 설득하신 겁니까?”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모두가 기겁하며 일어섰다.
“네. 야수족들과 동맹을 체결했습니다.”
“그 야만인과 도, 동맹을 맺다니….’
백우진이 서류를 내밀자, 캐일락이 벙찐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당연히 실패했다고 생각했는데.’
백우진은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당연히 동맹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묻지도 않았건만, 그건 자신의 큰 착각이었다.
그는 이 짧은 시간에 야수왕과 동맹을 체결해서 돌아왔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이분은 정말….’
북쪽의 프레스톤, 동쪽의 세이란, 마지막으로 남쪽의 야수족의 힘까지 얻다니, 백우진은 괴물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존재였다.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그걸 진짜 해내실 줄은 모, 몰랐어요!”
“북과 남 그리고 동까지 모두가 모이겠네요.
“끄윽….”
데플과 실비아, 세인은 감탄의 눈빛을 보냈고, 에드거는 망했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조만간 야수왕이 도착할 테니, 총사령관은 그가 오면 모두의 투표로 뽑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음?”
백우진이 말을 하다 말고 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도착했어.’
-도착?
‘제국의 군대가 도착했어. 생각보다 빠르군.’
“스승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말을 하다 멈췄기에 데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국군이 왔다.”
“예?”
“제, 제국군이요?”
“서쪽에서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어.”
백우진이 서쪽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저 멀리서 강대한 군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부서질 듯 문이 열리고 자크가 들어왔다.
“시, 시장님! 서쪽에서 제국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수만이 넘는 숫자입니다.”
“뭐, 뭐야? 진짜였어?”
“여기서 제국군의 기척을 느꼈다고? 그런 미친 일이 가능해?”
“허어….”
성주들이 넋이 나간 얼굴로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제국군이 오는 것 이상으로 백우진의 기감에 경악한 것 같았다.
“나가보죠.”
백우진은 사람들의 당황한 시선을 느끼며 열린 문으로 향했다.
**
백우진은 서쪽 성벽에 오르자마자 수많은 깃발이 펄럭이는 걸 보았다.
백색의 검이 박힌 깃발, 천사가 그러진 깃발, 그리고 백광이 어린 깃발까지. 전부 제국의 깃발이었다.
‘많군.’
가장 앞에서 달려오는 흑귀의 숫자만 만이 훨씬 넘었고, 그 뒤를 따르는 병사들 역시 만 단위였다.
숫자만 많은 게 아니었다.
그들을 지휘하는 무인들과 기사들의 군기는 강렬했으며, 그 중심에 있는 기사에게선 절대의 상위에 오른 막강한 기파가 출렁였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지?
‘신관장 유만이라는 놈이 무슨 짓을 했겠지.’
차원의 틈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유만에게 저들을 이동시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저건 선봉대야.’
세르빅이 말했던 본대는 아직 도착도 하지 않았다. 선봉으로만 저 숫자의 병력을 만들어 내다니, 역시 저놈들을 여기서 막는 게 정답이었다.
“저, 전원 전투 준비!”
“전투를 주, 준비하라!”
“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해!”
“자리를 어떻게 잡아야….”
갑작스러운 적의 등장에 연합군만이 아니라, 라멜룬 군대도 어쩔 줄을 모른 채 당황하고 있었다.
-어중이떠중이 같군.
‘어제 도착했으니 어쩔 수 없지.’
저들이 도착한 시간은 어제였으니, 이런 모습이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모두 진정해라!”
“아!”
“거, 검사님!”
백우진의 기세를 실어 입을 뗐다. 그 묵직한 목소리에 흔들리던 병사들의 눈동자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지금 자리에서 침착하게 대기하도록.”
모두를 진정시킨 뒤 다시 성벽으로 향했다.
제국군은 쉼 없이 달려와 화살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멈춰 섰다.
중간중간에 선 신관들이 무슨 주문을 외우자, 충차와 투석기, 공성탑 같은 공성 병기들이 소환되었다.
마법이 아니라 신성력으로 저런 기예를 부리다니, 매번 봐도 놀라운 놈들이다.
공성 병기 위로 병사들이 올라갈 때 제국군의 중심에서 한 남자가 말을 탄 채로 다가왔다.
“쏘, 쏠까요?”
“기다리세요.”
백우진이 자크에게 고개를 젓고서, 성문으로 걸어오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성문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투구를 벗고 말에서 내렸다.
“구, 구렌!”
데플이 남자의 얼굴을 보고서 눈을 부릅떴다.
“아는 사람이야?”
“제국십검 중 네 번째로, 전에 왔던 마룬과는 비교가 안 되는 괴물입니다!”
“확실히….”
이전에 싸웠던 마룬과 달리 절대의 상위에 오른 기세가 느껴졌다.
“우리는 신의 명을 받아, 추악한 짓을 벌인 라멜룬을 징벌하기 위해 왔다!”
구렌이 성벽 위를 올려보며 입을 열었다. 소리치는 것 같지 않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라멜룬 전체로 울려 퍼졌다.
“지금이라도 죄를 고하고 항복한다면 모두를 죽이지는 않겠다!”
“죄? 우리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이오!”
“친선을 위해 보낸 가고일 기사단을 기습해서 죽인 걸 모를 줄 알았나!”
“그건 너희들이 나와 시의 간부를 노렸던 일이잖아!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캐일락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멍청하군.”
구렌은 찬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돌아가지 않고, 성문을 향해 몇 걸음 더 다가갔다.
“공성전을 치르기 전에 단기 접전을 제안한다! 내 이름은 구렌! 제국십검 중 네 번째이며 선봉대의 사령관이다! 자신 있는 자는 나오도록!”
‘단기 접전?’
-일대일로 맞짱 뜨자는 말이다.
“없나? 역시 라멜룬 시에 모여든 무인들은 겁쟁이만 있군. 추잡한 놈들답구나! 크하하하!”
구렌이 성벽을 올려다보며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를 따라 제국군이 비웃음을 흘렸다.
“으음….”
“내가 나가겠소!”
에드거는 인상을 찌푸렸고, 렉터 프리드는 본인이 나가겠다고 성벽을 붙잡았다.
‘저 둘은 안 돼.’
구렌과 에드거, 렉터 프리드의 실력은 동급이지만, 구렌에겐 유만이 준 신성력이 있다. 저 둘은 이길 수 없다.
“제, 제가 나가겠습니다!”
“넌 안 돼.”
데플이 이를 악물며 들어 올린 손을 억지로 내렸다.
“내가 갈 테니, 여기서 구경이나 하고 있어.”
백우진은 흑전호포를 꺼내 걸친 후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턱.
부드럽게 땅에 내려선 뒤 구렌의 앞에 섰다.
“당신은….”
“백우진이오.”
“흑색의 검사!”
구렌이 눈매를 좁히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하필 이놈인가….’
이곳으로 향할 때 총사령관이 상대하지 말라고 했던 남자가 바로 백우진이다.
‘듣던 것과 조금 다른데?’
백우진의 기세는 대단했지만, 단단히 여물지 않고 흐트러져 있었다.
‘저 정도라면 이길 수 있어.’
같은 절대의 경지라도 신관장의 힘을 받은 자신에겐 미치지 못할 것 같았다.
‘백우진은 저쪽의 정신적 지주. 놈을 꺾는다면 적의 기세는 바닥을 치겠지.’
평소보다 좋은 컨디션, 그리고 유만에게 받은 힘 때문에 자신감이 넘치듯 흘렀다.
“좋소. 전설의 실력을 보도록 하지.”
구렌이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뽑으며 심장에 어린 오러와 신성력을 동시에 뿜어냈다.
콰아아아아!
그의 전신에서 청백색 광채가 타오르며 어마어마한 기의 파동이 퍼져 나갔다. 막대한 힘의 발현에 대지가 뒤흔들리고, 성벽에 진동이 일어났다.
치이이잉!
구렌의 검 위로 기둥 같은 강기가 솟구쳤다. 방심 따위 없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겠다는 뜻이었다.
“가겠소!”
구렌이 검을 들어올린 채 땅을 박찼다. 빛의 화살이 된 듯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시험하기 딱 좋겠군.’
백우진은 그 자리에 서서 돌진해 오는 구렌을 바라보았다.
그의 검에서 솟구친 거대하고도 굳건한 강기는 그의 무력이 절대에서도 상급임을 보여 주었다.
구렌이 상단으로 들어 올린 검을 내리친다. 대기가 쩍 갈라지며 막대한 기파가 쏟아진다.
이전이었다면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한 압박을 받았겠지만, 신체와 기가 초월에 이른 지금은 그저 산들바람 같았다.
떨어져 내리는 구렌의 검격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보였다.
그의 강기가 머리에 닿기 직전, 왼발을 내밀어 자세를 낮춘 뒤 설영검을 뽑았다.
치리리링!
설영검의 검신에 응집시킨 흑왕탄의 기운이 구렌의 막대한 강기를 찢어발겼다.
“허억!”
구렌이 기겁을 하며 검을 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빠직!
흑왕탄의 검격은 강기와 검을 가르고 그의 심장마저 베어 버렸으니까.
“끄으윽!”
구렌이 피가 뿜어지는 가슴을 움켜쥔 채 흙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 어찌….”
그는 단발마조차 지르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다.
일검이다.
절대의 상급에 오른 무인조차 일검에 베는 검. 이게 초월에 닿은 자가 낼 수 있는 무력이었다.
라멜룬 시에 있는 연합군도, 라멜룬 시를 침공하기 위해 온 제국군도 모조리 입을 다물었다.
스르릉.
백우진은 설영검을 휘돌린 뒤 검집에 넣고 고개를 들었다.
투웅!
그 순간 그의 눈동자에 어린 어둠이 제국군을 꿰뚫었다. 그 절대적인 기파에 제국군의 전열이 뒤틀렸다.
저벅.
백우진이 격을 벗어난 패기를 피워 내며 제국군의 앞에 섰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