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62
362화. 카바론
쿠와아아앙!
불사의 마룡 불카누스가 머리가 날아간 채로 대지에 처박혔다. 끝없이 재생하던 그의 신체가 삶은 대추처럼 쭈그러들었다.
콰앙!
붉은 비늘보다 더 짙은 피를 흘리는 세르빅 마르카렉터가 불카누스의 시체를 짓밟은 채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크오오오오오!]그 포효는 전쟁의 끝을 알리는 포효였다. 마지막 기대를 놓지 않았던 제국군은 무기를 떨군 채 무릎을 꿇었다.
“으어어억!”
“시, 신관장님!”
“불카누스까지 죽다니…. 마, 망했어! 다 끝났다고!”
“세상에 저런 무예가 있었다니….”
“괴물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신관장님을 압도할 줄은….”
제국의 기사와 병사들은 신관장 유만과 마룡 불카누스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땅을 치고 절규했다.
흑귀들은 건전지를 뺀 장난감처럼 멈춰 섰고, 다크엘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우우우우!
천의가 가른 하늘의 틈새를 뿔피리의 고성이 채운다.
“우와아아아아아!”
전장을 울리는 뿔피리 소리와 함께 연합군과 현대의 능력자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마룡이 죽었고, 총사령관님이 적장을 꺾었다!”
“연합군의 승리다!”
“우리가 대륙의 주인이다!”
“연합군 만세! 총사령관님 만세!”
얼굴은커녕 서로 존재조차 몰랐던 연합군과 현대의 능력자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전쟁의 승리를 자축했다.
“하아, 끝났군.”
백천웅이 탁한 숨을 뱉어 내며 검을 집어넣었다.
“저, 저 사람 대체 무슨 경지에 오른 거죠?”
“나도 모르겠구나.”
적연화의 질문에 적위진이 주먹을 매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의 경지 다음일지도 모르겠어.”
“절대의 다음? 그, 그런 게 있어요?”
“너도 알겠지만, 무에 끝은 없다. 절대의 다음을 넘어선 경지가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진짜 미쳤다니까.”
적씨 부녀의 대화에 끼어든 백은경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전 세계를 뒤져도 절대의 경지에 오른 능력자가 몇 없는데, 그 경지를 뛰어넘은 사람이 20살을 갓 넘은 자신의 동생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우진이가 지금까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해 보면 딱히 이상하진 않지.”
“그렇죠. 전방의 어둠도 걷어 냈던 녀석이니까.”
백천웅의 입매가 초승달 같은 호를 그렸고, 백연휘는 검을 어깨에 걸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 님의 무력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것처럼 보였어요. 제가 검을 제어하듯 세계를 주무르는 느낌이었죠.”
검후가 백우진이 갈라 놓은 하늘과 땅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나도 그리 보았소. 인간의 한계라는 절대를 넘는 경지라니, 초월이라 이름 붙여도 이상하지 않겠어.”
황병훈이 다가와 장창을 땅에 박아 넣었다.
“헤에, 엘프….”
정근호는 백우진에게 관심이 없었다. 실비아의 외모에 빠져 엘프들이 모인 쪽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에라, 이놈아!”
“커헉!”
윤우민이 주먹을 말아쥐어 정근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네 동기가 저런 수준이 되었는데 엘프를 보고 있을 때냐!”
“그, 그냥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엘프들이 가진 정령의 기운을 살피려고….”
“날 바보로 아는 게냐!”
“끄악!”
윤우민이 핑계를 대는 정근호의 뒤통수를 한 번 더 후려쳤다.
능력자들은 두 사제의 모습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
“어르신은 여전하시군.”
백우진은 유만의 복부를 밟은 채 피식 웃었다.
‘일단 심문부터 하고… 음?’
유만부터 처리한 후 능력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할 때 능력자들의 신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음?”
“우진이가 깨어났으니, 돌아가라는 말이로군.”
“시간이 다 된 모양이네요.”
“불러놓고 밥값도 안 주는 건가?”
능력자들은 투명하게 변하는 신체를 만지며 빙긋 웃었다.
힘든 싸움을 치렀지만, 자신을 살렸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움직이면 그대로 사지를 찢어 주마.”
“으으윽!”
백우진은 설영검에 의념을 담아 유만을 억제한 후 능력자들에게도 다가갔다.
“감사합니다.”
백천웅을 비롯한 신검백가의 무인들부터 검각의 검후까지. 자신의 가슴을 격동시킨 현대의 능력자들과 눈을 마주친 후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들이 오시지 않았다면 전 죽었을 겁니다. 진심으로 감사….”
“가족 사이에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우리한텐 안 해도 돼.”
백은경은 단호히 뱉은 말과 달리 부끄러운 듯 고개를 홱 돌렸다.
“은경이가 저런 말을 할 줄도 알았나?”
“그러게요. 너 철들었구나.”
백천웅이 허허 웃었고, 백연휘는 백은경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 시꺼!”
백은경은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아예 몸을 돌려 버렸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네가 해 준 것들을 돌려줄 뿐이니,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
“제가 어떻게 해서든 빚 갚는다고 했죠?”
적위진이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적연화는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듯 붉어진 얼굴로 환한 웃음을 그렸다.
“오랜만에 네 얼굴을 봐서 좋았다. 너도 말 좀 해라.”
“나, 난 별로… 끄억!”
윤우민이 정근호의 뒷덜미를 잡아 앞으로 내밀었다. 정근호는 콧방귀를 뀌다가 윤우민에게 또 얻어맞았다.
“이놈들이 전방을 노렸던 그놈들 맞지?”
“맞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제대로 복수하니, 속이 다 시원하구만! 크하하하!”
황병훈이 창대에 등을 기댄 채 껄껄 웃었다. 전방의 능력자들 역시 복수를 확실히 연소시킨 듯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새로 오르신 경지가 궁금하네요. 후에 기회가 된다면 대련을 청하고 싶습니다.”
“얼마든지요.”
검후의 대련 제안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정말 시간이 다 된 듯하구나.”
상체만 남은 백천웅이 자신의 손을 잡았다.
“너라면 어떤 일이라도 이뤄 낼 수 있을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 내가 증명할 수 있어.”
“가주님!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의검대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현대의 능력자들이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한 명 한 명 사람들을 배웅해 준 뒤 유만에게 돌아가려 하는데 사라지지 않는 두 사람이 보였다.
“어?”
백우진이 남은 두 명, 아니 두 해골을 보며 고개를 틀었다.
“우린 왜 그대로 남은 겁니까?”
“빨리 보내 달라능. 세이브도 못 하고 날아 왔다능!”
두 마리의 해골은 사자의 성에 박혀서 미연시 게임만 하던 씹덕 리치 카르덴과 페스였다.
-쟤 말투 왜 저래?
‘게, 게임 때문인가?’
흑암의 말대로 카르덴의 말투가 괴상해진 상태였다.
“이 녀석들 내 리치들이잖아! 너희 사자의 성에 있던 카르덴과 페스 맞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세르빅 마르카렉터가 피를 줄줄 흘리며 다가왔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주인님. 오랜만이라능.”
“…….”
세르빅이 눈매를 찌그러뜨렸다.
“카르덴의 말투가 왜 저러냐? 네가 그 신급의 소환술을 발동시킬 때 문제가 생긴 건가?”
“그, 글쎄요?”
백우진이 모른 척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저 녀석들 사자의 성에 박혀 있는 거 불쌍하니까. 이제 해방해 주시죠.”
“안 그래도 보내 주려 했다. 너희들과 맺은 계약을….”
“잠시만요!”
“기다리라능!”
세르빅이 용언으로 주종 관계를 해제하려 할 때 리치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저흰 지금이 좋습니다.”
“성에서 우혁이가 가져다주는 게임 하는 게 최고라능! 성으로 보내 달라능!”
페스와 카르덴이 들어 올린 손을 저었다.
“게임? 게임이 뭐냐? 그게 뭐길래 애들이 저 모양이지?”
세르빅이 애들을 왜 저렇게 만들었냐는 표정으로 백우진을 본다.
“나, 나도 모르겠는데?”
백우진이 마른침을 삼키고서 물러났다. 차마 씹덕 게임 때문에 저리됐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하아, 네 주변에는 정상이 없다니까.
흑암이 쯧 하고 혀를 찼다.
‘너도 마찬가지야.’
씹덕 게임에 빠진 리치나, 드라마에 빠진 마검이나 다를 게 없었다.
**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유만이 피를 토하는 신음을 흘리며, 입매를 비틀었다.
‘왜 다 안 되는 거냐고!’
잘려 나간 신체도, 가슴의 검흔도 재생되지 않았다. 도망치기 위해 공간 이동을 사용했지만, 그것 역시 발동되지 않았다.
“크헉!”
가슴의 중심을 뚫은 백우진의 검에서 지독한 고통이 흘러들어온다. 이 무식할 정도의 통증 때문에 신성력이 효과가 없는 걸지로 모른다.
‘일단 고통 차단부터 해야… 끄윽!”
신성력을 운용하여 정신과 고통을 단절시키려 했지만, 더 끔찍한 고통만 계속됐다.
‘시, 신성력이 말을 듣질 않아….’
카바론 님에게 받은 신성력과 정신력은 맹물이 된 듯 어떠한 효과도 내지 못했다. 악몽을 꾸는 기분이다.
“심문 시간이다. 유만.”
“나,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차단했다.”
백우진은 문주영과 데플에게 전장의 정리를 맡기고 유만의 머리맡에 주저앉았다.
“차, 차단?”
“네가 가진 신성력을 그 검으로 막아 놓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유만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대답에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왜 못 믿는 거지? 네가 지금 겪고 있잖아. 그 몸으로 직접.”
“끄으으,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대체 어떻게….”
“잘.”
절대의 무인은 의념으로 자신의 신체와 오러를 강화하고, 초월에 이른 무인은 의념으로 자신만이 아니라, 이 세계에 간섭한다.
지금은 유만의 신성력을 의념으로 억제시켜 놓은 상태였다.
-초월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 자신만이 아니라, 세계의 이치에 닿을 수 있지.
흑암은 짜증이 난 듯 검날로 땅을 치며 말을 이었다.
-초월에 오른 무인을 꺾기 위해선 초월에 올라야 한다. 즉, 초월에 닿지 못한 저 유만이라는 놈은 네 억압을 깰 수 없지.
‘왠지 짜증 나 보이는데?’
-그럼 좋겠냐?
‘초월에 오르라고 응원해 줄 때는 언제고?’
-그, 그때랑 지금은 다르지. 그리고! 네놈은 초월의 초입을 순식간에 뛰어넘어 중급에 올랐잖아! 그게 말이 되냐?
‘그 점은 나도 어이가 없긴 했어.’
백우진이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녀석이 연습도 없이 의념으로 세계를 주물럭거릴 수 있는 이유가 중급에 닿았기 때문이다. 이 꿀덩이 자식아!
‘그랬구만. 어쩐지 편하더라.’
겁에 질린 유만을 내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놈이 날카로운 계략 덕분에 지금의 경지에 올랐으니, 그야말로 전화위복이었다.
“카바론은 뭘 노리고 있지?”
-상황을 관통하는 좋은 질문이군.
“나, 나도 모른… 끄아아아악!”
유만이 거짓을 뱉으려 할 때 그의 명치에 박힌 설영검을 비틀었다.
“넌 날 벗어날 수 없고, 널 도와줄 사람도 없어.”
“그, 그건 아직 모른다!”
“제국의 군대도, 네가 소환한 천사도, 봉인을 푼 마룡도 모조리 쓰러졌다.
“아….”
“난 고문엔 별 취미 없지만, 꽤 잘하거든.”
설영검의 검병에 손을 얹었다. 유만의 눈동자가 매미의 날개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 말할 생각 없지? 그럼 몸으로 느껴 보자.”
“자, 잠깐!”
검신에 흑색의 뇌전을 두르려고 할 때 유만이 하나 남은 손을 저었다.
“이미 늦었어.”
백우진이 흘러넘치는 뇌전을 유만의 명치를 향해 쏟아부었다.
“끄아아아아악!”
한평생 고통이란 걸 느껴 본 적 없는 유만이 괴랄한 비명을 내지르며 피를 토했다.
“제, 제발 그만! 말하겠다! 전부!”
유만은 1분도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손을 긁으며 맹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말해. 카바론의 목적은?”
설영검을 흐르는 뇌전을 지우고 유만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가, 강림이다.”
“강림? 설마 이 세계에 강림한다고?”
“그렇… 다.”
-미친! 그런 일은 불가능해!
“신이 어떻게 현세에 나타난다는 거지?”
“으음….”
머뭇거리는 유만을 겁주기 위해 설영검의 칼날 위로 다시 뇌전을 끌어모았다.
빠지직!
검은 불똥이 튀기기 시작하자, 유만이 기겁하며 고개를 들었다.
“부, 분배다! 그분은 현세에 강림하기 위해서 육체와 신성력 그리고 마나를 따로 나눠 두셨다.”
“육체와 신성력….”
백우진이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유만의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게 하나 있었다.
‘무리안의 육체인가?’
두 번째 본 무리안은 인간의 틀을 벗어난 육체를 소유하고 있었고, 놈의 기운을 흡수했을 때 모든 능력치, 특히 육체 능력이 크게 상승했었다.
“무리안에게 카인의 신체를 넘겨주고, 네겐 신성력을 넘겨 놓았던 거군.”
“그, 그걸 어떻게….”
유만이 핏발이 선 눈을 부릅떴다.
“마나는 누구에게 넣어 놨지?”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시, 신전에 있는 카바론 님의 석상에 담겨 있다.”
“신전의 석상? 그럼 무리안에게 있던 육체는?”
“그, 그것 역시 석상에 넣어 두었다.”
“그럼 그 석상에 네 신성력까지 넣는다면 카바론이 강림하는 건가?”
“모른다.”
유만이 턱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카바론 님께선 때가 되면 강림하시겠다고 하셨을 뿐. 그 이상은 나도 모르는 일이다. 저, 정말이다!”
-반응을 보니, 저 말은 진짜인 것 같다.
백우진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유만은 목소리에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그 석상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유만을 데리고 신전에 가기 위해 그의 명치에 박아 넣은 설영검을 뽑았다.
“어?”
그 순간 유만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남은 건 바닥을 적신 핏물뿐이었다.
“뭐, 뭐야!”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유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의념을 풀지 않았는데?’
유만의 신성력을 억제시킨 의념을 풀지 않았거늘 어떻게 이동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백우진!
‘알아!’
백우진이 무극을 발동시키며 기감을 펼쳤다. 시간이 멈춘다. 흑백으로 내려앉는 세상의 흐름이 자신의 피부처럼 와 닿는다.
‘신전!’
눈 한 번 깜빡할 수도 없는 찰나의 순간에 유만의 기척을 느꼈다. 놈은 방금 말한 카바론의 신전에 있었다.
‘넌 도망칠 수 없어.’
바로 땅을 박찼다. 무너진 성벽을 넘어 신전으로 내달렸다. 유만이 다시 도망치기 전에 확실하게 제압해야 한다.
콰앙!
신전의 문을 걷어차 부숴 버리고 안에 들어갔다.
다채로운 형태의 천사 동상이 세워진 화려한 길이 있었지만, 그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전의 중앙. 카바론의 석상이 있어야 할 단상 위는 폐허처럼 부서져 있었고, 그 앞에 유만이 있었다. 금발의 남성에게 목이 잡힌 채로.
“끄으으윽, 카, 카바론… 님. 대체 왜….”
“아아, 이래야 네가 가진 신성력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거든. 그동안 수고 많았어.”
금발 남성이 주먹을 움켜쥐어 유만의 목을 터트려 버렸다.
꾸르르륵.
유만의 신체가 투명한 액체처럼 변했고, 그 액체는 자석에 닿은 쇠붙이처럼 남자의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좀 부족하지만, 나쁘진 않군.”
금발 남자가 웃음을 흘리며 손을 털었다.
“분명 한 명뿐이었는데….”
백우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 전만 해도 이 신전에선 유만의 기척밖에 느껴지지 않았었다.
“신의 존재는 원래 인간이 느낄 수 없는 법이지.”
금발 남자가 부드럽지만 섬뜩한 음성을 흘리며 몸을 돌렸다.
-저, 저놈….
“너!”
백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옥을 깎은 듯 남자의 피부엔 잡티 하나 없었다. 두드러진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선이 고와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그 아찔한 외모의 뒤로 후광이 태양처럼 치솟는다. 오러나 마나가 아닌, 순수한 빛이었다.
다만 놀란 건 그의 외모 때문도, 후광 때문도 아니다.
그자다.
흑암의 기억을 통해 보았던 그 금발 남자가 조금의 변화도 없는 얼굴로 이 자리에 나타났다.
“초면은 아니지?”
금발 남자. 인간의 몸으로 악의 신좌에 오른 카바론이 비소를 흘렸다.
“백우진. 그리고….”
그의 시선이 백우진의 우측 어깨 위에 떠 있는 흑암에게 향했다.
“내 친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