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63
363화. 카바론 (2)
“기사들은 오러를 제압한 후 좌측으로, 병사들은 손을 묶어서 오른쪽으로 몰아!”
문주영은 잠시간의 승리를 즐긴 후 어지러운 전장을 정리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가주님이 맡기셨으니까.’
백우진이 자신에게 직접 지시한 일이니, 조금의 문제도 없이 완벽하게 처리해야만 했다.
백기를 든 제국의 기사와 병사들을 제압해서 가두는 걸 꼼꼼하게 확인한 후 백우진이 갈라 버린 하늘과 땅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강해지시는군.’
자신도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아 강기를 익혔지만, 백우진의 성장은 비교 불가다.
오늘 그가 보여 준 검술은 무신이 강림했다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그 소환술도 엄청났지.’
백우진의 강함은 무력만이 아니다. 그는 신검백가의 검사들을 비롯한 현대의 능력자들을 소환하는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 주었다.
절대적인 무력에, 본 적도 없는 특별한 소환술. 제국군, 연합군 모두가 백우진을 신이라고 여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근데 왜 불안하지?”
문주영은 백우진이 넘어간 제국 수도의 성벽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막강한 무력과 신기를 보았음에도 심장이 파도를 타는 듯한 불안감이 들었다.
“불안하다고? 그 인간을 보고 불안하다니, 너도 정상은 아니네.”
무영객이 먼지투성이가 된 얼굴을 들이밀며 킥킥 웃었다.
“하늘이랑 땅 갈라진 거 보이냐? 저거 검사님이 하신 거잖아. 검 한 자루로 저런 신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누가 이기겠냐. 신이니, 마왕이니 하는 것들이 와도 소용없어.”
“그렇긴 하지만….”
“그 사람 걱정하지 말고, 지시 내린 일이나 하라고. 봐. 저쪽 일손이 부족하다잖아.”
무영객이 제국 기사들을 묶어 놓은 곳을 가리켰다.
“그건 그렇네. 일단 내려온 지시부터 따라야겠지. 고맙… 음?”
문주영이 제국 기사들에게 다가가려다가 멈춰 섰다.
“야! 저기 네 담당이잖아! 지금까지 뭘 하다가 나한테 넘기는 건데!”
“오늘 너무 뛰어댕겼더니, 발이 좀 아프네. 흐흐.”
“이 자식이 진짜!”
문주영이 이를 갈며 무영객에게 다가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데플, 무영객과 함께 지시를 받았는데, 움직인 건 자신과 데플뿐이었다. 무영객은 지시를 받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졌었다.
“너 일루 와. 엉?”
“헉!”
무영객의 멱살을 쥐고 흔들자 그의 소매에서 자잘한 보자기들이 떨어졌다.
“이건 또 뭐… 너 이 새끼!”
떨어진 보자기를 열어 보자 가지각색의 장신구가 빛을 반짝였다. 흠집이 있는 걸 보니, 제국의 귀족이나 기사들이 착용한 걸 훔쳐 온 것 같았다.
“다들 일하고 있을 때 이런 거 훔치고 있었냐?”
“하하, 손이 저절로….”
무영객이 찔끔하며 뒤로 물러섰고, 문주영은 보석을 던져 버리고 그를 쫓았다.
“형님들 그만하세요!”
데플이 한숨을 쉬며 문주영과 무영객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기본적인 정리는 끝났으니, 두 분은 쉬세요. 나머지는 저랑 성주들이 처리하겠습니다.”
“…….”
금방이라도 싸울 것 같았던 문주영과 무영객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멍하니 하늘을 올려보고만 있었다.
“형님들?”
“저, 저게 뭐냐?”
“무슨 빛이….”
두 사람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
턱이 나갈 정도로 입이 떡 벌어졌다.
빛이다.
그 어떤 색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하얀 빛이 수도의 중심을 비추고 있었다.
너무도 밝은 빛이 쏟아져, 다른 곳은 밤처럼 어둡게 보인다. 세계의 빛이 오직 그곳에만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스, 스승님….”
**
‘흑암을 본다고?’
백우진이 어깨 위에 뜬 흑암을 훑으며 눈가를 찌푸렸다. 구현하지 않은 흑암을 본 자는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신을 떠나 범상치 않은 놈이다.
-역시 그놈이다. 내 기억에서 나왔던 그 금발 남자.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흑암의 말대로 금발 남자는 수천 년 전의 기억에서 본 외모 그대로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
다만 눈동자는 달랐다. 그의 금빛 눈동자는 무저갱처럼 깊고도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네가 카바론인가?”
“불필요한 질문이군. 그 녀석의 기억을 봤을 테니, 전부 알고 있지 않나? 그래도 대답을 원한다면 해 주지. 내가 카바론이다.”
카바론의 그 선언 같은 말이 퍼지며. 그를 비추는 후광의 빛이 짙어졌다.
‘저 빛은 뭐지?’
카바론을 비추는 후광은 기세도, 마나도, 신성력도 아니거늘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의 압박을 가해 온다. 양쪽 폐에 무거운 추를 매단 기분이다.
‘저 녀석 역시….’
백우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카바론의 시선은 자신만이 아니라, 어깨 위에 떠 있는 흑암에게도 향해 있었다.
“흑암을 볼 수 있는 건가?”
“볼 수 있냐고?”
카바론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성스럽고 아름다운 외모로 저런 웃음을 보이니, 등골 사이로 섬뜩함이 돋아났다.
“그 또한 불필요한 질문이다. 내가 어찌 친구를 몰라볼까. 나를 봉인시킨 가장 친한 친구를 몰라보는 건 말이 되질 않지.”
“봉인?”
-봉인이라고?
“역시 모르는 건가?”
카바론이 큭큭 웃으며 턱을 들어 올렸다.
“카인을 꺼내라.”
“카인?”
“마검에 든 내 친구의 이름이 카인이다. 아직 몰랐나?”
“서, 설마 무신이라고 불렸던….”
“아니, 이름이 같을 뿐이다. 뭐, 그 정도로 강하긴 했지만.”
‘흑암.’
-괜찮아.
흑암은 괜찮다는 듯 검날을 끄덕였다.
치리리링!
오른손으로 흑암을 검병을 잡자, 평소보다 훨씬 짙고 예리한 칼날이 검은 불길을 피워 올렸다.
우우우웅!
흑암은 카바론을 향해 오싹한 검명을 울렸다.
“카인이여.”
카바론이 흑암을 내려다보며 눈을 내리감았다.
“무신의 현신이라 불리고, 대륙의 최강에 오른 네가 그런 날붙이에 갇혀 있는 꼴이라니, 불쌍하구나. 카인이여.”
-저 새끼가 감히!
흑암은 당장에 카바론을 찌를 것처럼 검날을 떨었다.
“카인도 기억을 잃었겠지?”
“그렇다면 어쩔 거지?”
“옛날이야기 하나 할까?”
“뭐?”
“옛날 옛날에 무신을 모시는 어린 신관이 두 명 있었습니다.”
카바론의 목소리와 어조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선생님처럼 보드랍게 변했다.
“무신….”
백우진이 부르르 떠는 흑암을 아래로 내렸다.
‘저놈과 흑암이야.’
그가 말한 두 어린 신관은 카바론과 카인이었던 흑암이 분명했다.
“신전에서 함께 자란 두 신관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수많은 역경을 넘고 넘어 결국 신전의 최고 자리인 무의 신관과 빛의 신관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무의 신관이 흑암, 빛의 신관이 카바론인가?’
“최고위 신관에 오른 둘은 여전히 우정이 넘쳤고,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우정이라는 단어를 뱉을 때 카바론의 표정이 아주 잠깐 묘하게 바뀌었다.
“그중 빛의 신관에겐 카렌이라는 어여쁜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였죠.”
-시스템….
‘맞아. 그녀야!’
이제 확실해졌다. 빛의 신관은 카바론, 그의 여동생이라는 카렌이 시스템이었다.
“카렌은 문과 무의 재능은 부족했지만, 신에 대한 신앙심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나 어린 나이에 신관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친가족처럼 투닥이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드러웠던 카바론의 어조가 급격히 딱딱해졌다. 시멘트가 굳어 벽이 된 느낌이다.
“어느 날 카렌의 몸에 검은 반점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신의 저주라고 불리는 불치병이었습니다.”
-신의 저주….
‘그때인가?’
금발의 아이가 계속해서 침대에 누워 있을 때의 장면이 기억났다.
“그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은 아이에게 신의 저주라니!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두 신관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대륙 전역을 돌아다니며 신의 저주를 풀 방법을 찾아다녔지만, 어떠한 약과 치료도 소용없었습니다. 여동생은 천천히 말라 죽어 갔고, 두 신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절규했습니다.”
카바론이 히죽거리며 두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양 손가락에서 각자 검고, 하얀빛이 솟구쳐 인간의 형상이 되었다.
“무의 신관은 여동생의 곁에 남았고, 빛의 신관은 방법을 찾기 위해 대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카바론의 목소리가 다시 변한다. 희망이 어린 음성이 흐르며 후광이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빛의 신관은 결국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건 고대 신을 모시는 부족이 가진, 신이 되는 고대의 술식이었습니다. 다만 여동생의 몸 상태론 그 술식을 발동시킬 수 없어서 먼저 신이 되자고 결정했습니다.”
‘인간의 피….’
세르빅 마르카렉터가 말했던 카바론의 학살이 바로 저 때였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결국 빛의 신관은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고, 여동생을 살릴 힘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에 본 그 기억이다.
‘그래.’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바론은 흑암을 막은 뒤 카렌의 방에 들어갔을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빛의 신관은 여동생을 반신으로 만들어 수명을 연장했습니다. 제대로 된 신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 다시 세상에 나가 준비를 할 때, 아주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카바론의 어조와 신전의 분위기가 찰나의 순간에 전환된다. 죽음, 분노, 살의가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반신으로 만들어서 목숨을 연장해 준 여동생이 무의 신관과 함께 신을 배신한 겁니다! 천재지변 같았던 세 사람의 전쟁이 끝나고, 신은 봉인되었고, 신관은 목숨을 잃었으며, 여동생은 저주의 고통을 간직한 채 홀로 남았습니다. 자, 끝!”
카바론이 히죽이며 손가락을 접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빛나던 백색의 빛과 흑색의 빛이 동시에 사그라들었다.
“어때? 재밌는 이야기지 않아?”
“그게 흑암과 너의 이야기인가?”
“크하하하하!”
카바론이 길게 내려온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광소를 터트렸다.
“알아?”
“뭐?”
“네놈 따위가, 너희들 따위가 배신당한 신의 감정을 알 것 같냐고.”
그의 눈동자가 뱀처럼 뱅그르르 돌아간다. 정상적인 생물의 눈동자가 아니다. 광기, 아니 귀기가 어린 눈이다.
“대륙 너머에 세워진 고대 부족의 유산을 찾아 신이 될 수 있는 길을 얻었고, 수많은 노력을 통해 동생을 살렸는데, 그 동생과 가장 친한 친구에게 배신당한 기분을 네놈 따위가 알 것 같냔 말이다!”
카바론은 이제 빛의 신관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나’라고 한다. 역시 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흑암과 카바론 그리고 시스템이었다.
-…….
흑암은 인상을 찡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건지, 기억이 돌아오며 혼란스러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카바론은 개소리를 하고 있었다.
“왈왈. 개소리를 길게도 하는군.”
백우진은 한 발 앞으로 걸으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지금 뭐라 했지?”
흑암을 노려보던 카바론의 누런 눈동자가 자신을 향했다.
“개소리라고. 네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졌잖아.”
“뭐?”
“네가 어떻게 고대 신을 모시는 부족의 유산을 찾았는가, 네가 어떻게 신이 되었는가, 네가 어떻게 네 동생을 반신으로 만들었는가. ‘어떻게’가 빠져 있어.”
칼날처럼 예리한 눈으로 카바론을 쏘아보았다.
“몇 명이나 죽였지?”
“호오.”
카바론이 삐걱거리듯 턱을 틀며 히죽였다.
“그런 것도 알고 있나? 아, 세르빅. 그 덜떨어진 드래곤이 말해 준 모양이군.”
“…….”
“글쎄. 몇 명일까? 세보진 않았지만 십만은 확실하게 넘었지.”
-시, 십만?
“으음….”
예상했던 숫자긴 하지만, 실제로 들으니, 혀가 말라붙었다.
“고대 신을 모시는 부족들도 죽인 건가?”
“물론. 모두 죽였다. 그들이 가진 신이 되는 방법은 세 가지. 그중 가장 빠른 방법은 인간의 피다. 인간의 시체를 혈옥이라는 작은 구슬로 만들어 흡수하는 방법. 그걸 인간의 체형의 두 배가 될 때까지 모아야 했으니, 죽인 숫자는 한참 전에 잊어버렸지. 근데 그게 왜?”
카바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처럼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생을 구하고 싶었을 뿐이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 아닌가? 목적을 위해 몬스터를 죽이고, 타 종족을 죽이고, 같은 인간마저 죽인다.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힘이 있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
백우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흑암을 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 녀석은 겁쟁이다.”
카바론이 젓가락처럼 긴 손가락을 들어 흑암을 가리켰다.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카렌이 죽기만을 기다린 꼬리 만 개일 뿐이다!”
-…….
기억이 돌아오고 있는 건지 흑암은 떨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렌을 살린 건 나다.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을 죽여 살려 놓았건만, 저놈에게 붙어 날 배신했다. 평생을 바쳐 사귄 친구와 인생을 갈아 살린 동생이 날 배신했는데, 그 심정을 네놈들이 아냔 말이다!”
카바론의 노란 눈동자가 백색으로 이글거린다. 그 빛은 무력과 마나를 초월해 영혼을 옥죄였고, 신전은 피 냄새가 흐르는 백광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신이 아니라, 정신이 대가리를 탈출한 놈이로군.’
-저놈, 언제 공격할지 모른다. 준비해!
‘알겠어.’
무극을 발동시킬 준비를 하려 할 때 카바론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손뼉을 쳤다.
“자, 다시 옛날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뭐?”
“아직 이야기는 다 끝나지 않았거든. 이번엔 좀 가까운 과거의 이야기지.”
카바론이 실실 웃으며 손을 모았다.
“봉인에서 깨어난 신은 자신을 봉인한 여동생과 친구가 다른 존재가 되어 살아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때 그가 무얼 생각했을까요? 그렇습니다. 복수! 자신을 봉인한 친구와 동생을 향한 복수입니다! 그것도 그 둘이 절망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복수.”
그가 모았던 손을 쫙 펼쳤다. 빛의 아우라 속에서 짙은 살의가 울렁였다.
“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그 주인공을 불러와야겠지?”
카바론이 손가락을 튕기자, 자신과 카바론의 사이에 빛의 기둥이 쏟아졌다.
콰아아아아!
어디서부터 이어졌을지 모를 빛의 기둥을 타고 백색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여성이 내려서고 있었다.
‘시,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