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64
364화. 카바론 (3)
백우진은 빛의 기둥을 따라 내려오는 금발 여성을 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녀다.
차원을 넘으며 마주쳤던 시스템의 기척이 분명했다.
고오오오!
카바론이 불러낸 빛이 좁아지며 금발 여성의 하얀 발이 신전의 바닥에 닿았다.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말랐다. 너무 말랐다.
손목은 동전을 겨우 올릴 듯 얇았고, 어깨는 책을 다 펼친 것보다도 좁았다. 그렇게 말랐음에도 그녀의 피부는 첫눈처럼 희었고, 얼굴은 장난기와 이지적인 모습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자아냈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지만, 매일 본 듯한 친근감이 느껴졌다.
-저 아이가 카렌….
흑암이 금발 여성을 보고 검날을 세차게 떨었다.
[아!]지금까지 시스템이라 불려 왔던 여성. 카렌은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듯 떨리는 손을 맞잡았다.
[이, 이게 어떻게….]그녀의 작은 입이 열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진 않았다. 전음처럼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이다.
“뭘 그리 놀라는 거냐. 난 네 오빠다. 동생이 어디 있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어야지,”
카바론이 카렌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수천 년 만에 동생을 본 혈육의 얼굴이 아니다. 벼르고 벼르던 원수를 만난 듯 살기로 얼룩진 눈이다.
“난 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깨어났다.”
카바론이 긴 손가락을 뱅뱅 돌렸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몸을 숨긴 채 널 찾아다녔지. 대륙 전역, 바닷속, 신계라 이름 붙은 구름 위의 땅에 혹한과 혹염의 마계까지. 뒤지고 뒤지다가 차원의 미세한 틈에 몸을 숨긴 널 발견했다.”
[그, 그런….]
카렌의 표정이 깨진 그릇처럼 일그러졌다.
“널 발견하자마자, 당장 네 목을 조르고 싶은 살의와 복수심을 간신히 억눌렀다. 왜라고 생각하지? 맞아! 너희에게 진정한 절망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제발 그만해!]
“무얼 그만하라는 거지? 날 배신한 건 너희들이다.”
[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받으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았어! 거기다 그 일과 상관없이 장난삼아 사람들을 죽였잖아!]
카렌이 가냘픈 주먹을 말아쥐며 앞으로 나섰다.
[당신은 빛이 아니라, 어둠에 먹혔어. 고대 부족을 모조리 죽이고 얻은 혈옥의 술식은 신이 아니라, 마신이 되는 방법이라고!] “넌 예전부터 그랬지. 날 어려워했고, 카인에게는 장난을 치고 응석을 부렸다.”[그게 아니라….] “그만 됐다! 너희와 내 길은 이미 갈라졌으니까!”
카바론은 카렌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먹이를 본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마기가 골수에 미쳤군. 이미 되돌리기엔 글렀어.
흑암은 꼬여 가는 카바론의 눈빛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넌 카인을 이용해서 날 막을 인간을 찾아다니더군. 그때부터 복수를 준비했다.”
“복수의 준비?”
“그래. 아주 천천히 제국에 지배력을 펼쳐 카렌에게 내 존재를 알렸지. 카렌은 내가 깨어났다는 걸 알자마자, 흑암을 재운 후 힘을 비축하며 다른 차원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 눈을 피해 뒤지고 뒤져서 발견한 게 바로 너다. 백우진.”
카바론이 느릿하게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을 가리켰다.
“넌 카렌이 비축한 안배와 카인의 가르침으로 평범한 인간은 절대 이루지 못할 성장을 이뤄 냈다. 카렌의 기대 이상으로 강해졌지. 하지만….”
카바론의 금안이 번뜩 돌아가 카렌을 훑었다.
“그건 내 기대였기도 하다.”
“뭐?”
“나 역시 네가 성장해서 이곳에 도달하리라는 걸 믿고 있었다는 말이다. 너희 세계로 보냈던 사해의 왕, 마족에 드래곤까지. 전부 네 성장을 위해 신탁을 내렸지.”
-뭐라?
[마, 말도 안 돼!]
“그게 무슨….”
“널 자극하기 위해서 흑암의 기억에도 들어갔었고, 무리안과 유만 역시 네가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조절해서 보냈다. 잘 생각해 보면 느낄 수 있을 텐데.”
카바론 낄낄거리며 배를 잡고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노골적인 조롱이 어렸다.
[왜, 왜 그런 짓을….] “첫 번째는 백우진의 성장을 가속해서 더 빨리 이곳에 닿게 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날 위해서, 그리고 세 번째는 곧 알게 될 거다.”“널 위해서라는 말이 무슨 뜻이지?”
“몇몇 특별한 인간은 죽을 위기를 통해 가진 능력 이상의 것을 발휘한다는 거 알고 있나?. 무리안과 유만이 그런 아이들이지.”
카바론은 유만을 흡수했던 오른손을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
“그 둘에게 내 신성력과 육체를 맡긴 후 죽을 때 강화시킨 육체와 신성력을 도로 흡수했다. 그리하여 지금의 내 육체와 신성력, 마나가 이루어진 거지.”
-저, 정신 나간 새끼!
[당신은 끝까지….]
흑암이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고, 카렌은 분노한 듯 어깨를 떨었다.
“유만은 날 정말 죽일 뻔했어. 그것까지 예상했다고?”
“아, 그건 오류였다.”
“오류?”
“네가 유만에게 당할 때 네 몸에 카인이 강림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한 번 있었지?”
“음….”
백우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놈의 말이 맞다. 죽을 뻔했었던 김남길과의 전투에서 갑작스럽게 카인이 강림한 적이 있었었다.
“지금까지 넌 죽음의 순간에 흑암이나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해 왔다.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스스로 초월에 이르더군. 그건 확실히 내 예상을 벗어난 일이지만 별 상관없어.”
“상관없다고?”
“지금 이 자리에 우리 넷이 모인 순간 내 계획은 완성됐으니까.”
카바론이 손바닥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그 손 위로 세 개의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저, 저건….’
몰라볼 수가 없었다.
첫 번째는 지구, 두 번째는 이 마루툰 대륙이다. 세 번째는 굉장히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말했지. 너희에게 절망이 될 복수를 생각했다고. 그게 이거다. 네가 온 지구, 이 마루툰 대륙, 그리고 혹한과 혹염의 마계를 하나로 만드는 것.”
-차, 차원의 융합!
[그건 불가능해!]
“아니, 가능해. 수천 년 전에 벌어진 너희와 내 싸움으로 이 세 차원에는 작은 틈이 생겼거든.”
카바론의 웃음이 흐르며 세 공간에 자그마한 구멍이 생기고, 실 같은 마나가 그 틈을 지나갔다.
“저놈, 뭐라는 거지?”
-차원을 합친다는 뜻이다. 저 세 가지 차원이 융합되는 순간 각 차원의 생명체 절반 이상이 죽게 될 거다! 미쳤다는 말로도 부족한 병신 짓이라고!
[아, 안 돼. 저건 절대….]
카렌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눈망울이 떨어질 듯 흔들렸다.
“그 표정! 바로 그 표정이다! 너희들이 절망하고 절규하는 그 얼굴을 보기 위해서 지금까지 기다렸다!”
“누가 그렇게 놔둔대?”
“이미 늦었다.”
백우진이 달려들려고 할 때 카바론이 손가락을 튕겼다.
콰아아아!
하늘에서 쏟아지는 후광이 공작의 깃털처럼 펼쳐지며 보이는 모든 것을 백광으로 물들였다.
**
“으음….”
세르빅 마르카렉터는 카바론 신전에서 하얀빛이 내려선 걸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불길한데?’
레드 일족의 수치인 불카누스를 죽이기 위해서 많은 체력과 마력을 소모했기에 움직이기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고조되는 빛을 보니 가슴이 떨려 왔다.
“주인 하나 잘못 만나서 쉬지도 못하는군.”
세르빅 마르카렉터가 한숨을 내뱉고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단숨에 제국의 중앙으로 날아가 빛을 살폈다.
‘역시 일반적인 신성력이 아니야.’
신이 직접 강림한 듯한 강대한 신성력에 자신 이상의 마나마저 느껴진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일단 가봐야… 크윽!”
신전으로 들어가기 위해 내려가려 할 때 신전의 위로 거대한 빛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
새하얀 빛은 동그란 대접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반원형으로 피어나며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흔적도 없이 지워 버렸다.
“크윽!”
세르빅 마르카렉터는 급히 떠올라 빛의 반구체를 피해 냈다.
‘이건 위험해.’
만 년에 가까운 삶을 살며 얻은 감각이 경고한다. 재빨리 여기서 벗어나라고, 아니, 이 세계를 떠나라고.
“그럴 수는 없지.”
최강의 일족이라는 자존심에 입술을 비틀며 본체로 현신했다. 천공으로 떠올라 입을 벌렸다.
‘오늘 마지막이지만….’
불카누스에게 두 번 사용했기에 이제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플레임 브레스를 내뿜었다.
콰아아아아!
태양이 그대로 떨어진 듯한 어마어마한 화염이 백색 반구체로 쏟아져 내렸다.
찌지지지직!
그 어떤 존재도 녹여 버릴 열기가 한곳으로 집중되었음에도 빛의 구체엔 금조차 가지 않았다.
우우우웅!
세르빅 마르카렉터는 혀를 차고 다시 인간으로 변해 땅으로 내려섰다.
“드, 드래곤님!”
“어이, 용님!”
문주영과 무영객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이 하얀 막은 무슨….”
“이건 못 부순다. 안에 들어간 백우진이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다만….”
세르빅이 말을 아꼈다. 저 막이 생기기 전 그 안에선 고등의 존재가 느껴졌다. 아무리 백우진이라고 해도 그걸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걱정 마세요. 그분은 저희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습니다.”
문주영이 눈을 내리감은 채 고개를 저었다.
“곧 웃는 얼굴로 나오실 겁니다.”
“암암.”
막을 보는 문주영과 무영객의 눈동자는 빈틈없는 신뢰의 빛으로 반짝였다.
**
“여긴 또 뭐야.”
백우진이 백색과 금색으로 점철된 둥근 공간을 보고 눈매를 좁혔다. 신전을 구성하던 벽과 땅이 지워지고 보이는 건 오직 흰색과 금색의 문양뿐이었다.
“차원의 융합을 위한 공간이다. 너희들이 가진 파동을 이용하여 세 차원의 융합을 진행하는 거지. 저 위의 바늘이 보이나?”
카바론이 둥근 막 위에 뜬 시계 초침 같은 바늘을 가리켰다.
“저 바늘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원래의 자리에 도달했을 때 차원이 합일된다. 그 이후에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지.”
-저런 미친 새끼!
[우, 우진 님!]
카렌이 돌아가기 시작한 바늘을 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우우웅!
백우진이 양의심공을 운용했다. 흑암을 이기어검으로 띄우고 설영검의 검병에 손을 얹었다.
‘놈에게 있어서 유일한 변수는 나야.’
카바론은 지금 자신의 무력을 초월의 초입이라고 생각할 터, 예측을 벗어난 무력으로 놈의 계획을 무너뜨려야 한다.
‘준비됐지?’
-물론이다!
흑암의 차가운 검명이 하얀 공간을 울렸다.
“그렇게 나와야지.”
카바론이 펄럭이는 소매를 걷으며 손짓했다.
“오라!”
“안 그래도 간다!”
백우진이 흑암을 날리며 땅을 박찼다. 카바론의 공간에 들어선 순간 그의 입이 나풀거렸다.
“멈추어라.”
“크윽!”
무리안이 사용했던 언령. 그 언령이 막대한 의지를 담아 몸을 짓눌렀다.
“꺾이어라.”
카바론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가던 흑암 역시 언령에 억제되어 속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차원이 달라….’
무리안의 언령과 카바론의 언령은 격이 달랐다. 무식할 정도의 힘이 그 안에 어려 있었다.
‘하지만….’
변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초월에 오른 의념을 흩뿌려 카바론의 언령을 깨뜨렸다.
“확실히 초월에 이르렀구나. 예전 카인을 보는 기분이다.”
카바론이 히죽이면서 손을 펼쳤다. 그의 손아귀에서 넘실거리던 백광이 수백이 넘는 빛의 화살로 조형되어 쏟아졌다.
콰아아아!
풍벽검흔을 운용하여 빛의 화살을 차단하면서 흑암을 쏘아 냈다.
최속의 검공 극리가 발동하여 흑암이 카바론의 심장을 뚫으려는 순간, 그가 오른손을 들어 수도를 만들었다.
우우우웅!
카바론의 내리친 수도에서 장대한 흐름이 피어난다.
파아앙!
직선으로 쏘아지던 흑암은 그 흐름에 휩쓸려 방향을 잃고 튕겨 나갔다.
콰아아아아!
백우진은 카바론의 손이 내려간 틈을 노리고 앞으로 짓쳐 들어 흑왕탄을 펼쳐 냈다.
고오오오!
새하얀 검날 위로 타오르는 검은 해일이 카바론을 휩쓸려는 찰나, 놈의 오른손과 왼손이 각기 금빛과 백빛으로 어우러진 원을 그렸다.
콰아아아아아!
무시무시한 흑왕탄의 검격은 원에서 피어나는 파동을 깨지 못하고 주변으로 흩뿌려졌다.
“아직이다.”
백우진이 올라간 손목을 틀어 그대로 내리쳤다. 흑왕탄에 이은 무령참이다. 두 검로는 처음부터 하나였던 듯 물 흐르듯 연결되었다.
콰구구구구구!
무령참이 만들어 낸 패악적인 압력은 카바론의 공간을 깨뜨릴 것처럼 짓눌렀다.
“영패.”
카바론은 검지와 중지를 세운 주먹을 쳐올려 무령참의 칼날을 막아섰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충격파가 터지며 공간이 찢어질 듯 뒤틀렸다. 하지만 카바론의 주먹은 무령참의 중압 앞에서도 밀려나지 않았다.
키기기기깅!
되돌아온 흑암이 분노의 검명을 울리며 섬야를 그었을 때, 카바론이 왼손으로 공간을 뒤틀었다.
우우웅!
섬야의 발톱이 잘려 나간 공간으로 사그라졌다. 흑암의 네 번째 검 흑현금과 비슷한 운용이었다.
우우웅!
카바론의 등을 비춘 후광이 셀 수 없이 많은 빛이 검이 되어 쏟아진다.
캬캬갸걍!
백우진은 겁화검형으로 카바론의 광검을 불살라 버린 뒤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무리안 유만과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지만, 그 위력이 천지 차이다.
‘위력만이 아니야. 속도, 투로, 모든 것이 차원이 달라.
무리안의 투로에는 제대로 된 의념과 기운이 담겼고, 유만이 사용한 신성력이 정립된 투로와 함께했다.
놈은 완벽에 이른 무의 경지를 바탕으로 신성력과 마나를 운용했다.
“놀라워.”
카바론이 손가락에서 뚝뚝 흐르는 붉은 피를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놈이 무령참을 막을 때 생긴 상처였다.
-다만 저놈이 신 같은 존재라도 해도 너 역시 인간의 격을 벗어났다. 네 공격은 저놈에게 통해!
‘그래.’
고개를 낮게 주억였다. 흑암과 함께라면 카바론을 이길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자. 저놈을….’
“딱 좋은 순간이야.”
다시 달려들려고 할 때 카바론이 고개를 들어 하얗게 빛나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네가 내 생각보다 약하다면 놀아 주려고 했지만, 계획대로 해도 되겠어.”
“뭐?”
“아까 말했던 세 번째가 지금이다!”
카바론이 발을 구르자, 바닥에서 빛의 기둥이 솟구쳐 흑암을 가둬 버렸다.
“흑암!”
-크어어어억!
흑암을 감싼 빛이 진해지며 강렬한 스파크가 터졌다. 내부가 보이진 않지만, 흑암의 비명은 생생히 들려왔다.
[우, 우진 님! 막아야 해요!] “젠장!”백우진이 설영검을 세웠다. 아껴 두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참마의 칼날을 세워 흑암을 가둔 기둥을 내리쳤다.
촤아아아악!
기둥을 두른 백색 광채에서 막강한 반탄력이 느껴졌지만, 검을 끝까지 내리그었다.
쿠구구구.
설영검이 기둥을 통과하며 빛이 갈라지고, 그 내부가 드러났다.
[카, 카인….] “이게 무슨….”백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기둥 속엔 더 이상 흑암이라는 마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안에는 키가 2m에 육박하고 어깨가 떡 벌어져 철탑 같은 남성이 눈을 감고 있었다.
“흐, 흑암….”
검이 아닌, 정신세계에서 만났던 흑암이 육체를 가지고 현신해 있었다.
극한까지 단련한 육체, 끝을 알 수 없는 오러, 패도적인 기세까지 정신세계나 기억에서 본 흑암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걸 벨 줄은 몰랐군. 생각보다 좀 빨리 나왔지만 상관없겠지.”
카바론이 손가락을 튕기자, 흑암이 눈을 떴다. 흑백이 역전된 눈동자. 카바론이 타인을 조종할 때 나타나는 그 현상이 흑암의 두 눈에 어려 있었다.
스르르릉!
흑암은 말없이 허리춤에 걸린 검을 뽑아 자신을 겨누었다.
“으음….”
고작 검을 들어 올린 것만으로 믿기 힘든 압력과 검기가 전해진다. 녀석은 진짜였다.
“대륙에서 두 번째로 초월에 오른 무인이자, 너의 든든한 후견인이었던 카인이 널 베는 것! 이게 세 번째다! 크하하하하!”
[아, 안 돼. 카인!]
카렌이 울먹이며 카인의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흑암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검을 겨눈 채 살기와 오러를 끌어 올릴 뿐이다.
“…확실히 예상 밖이긴 하지만, 좋은 기회를 줘서 고맙군.”
“뭐?”
백우진이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올리며 빙긋 웃었다. 그 모습에 낄낄거리던 카바론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 녀석과 제대로 결판을 낼 때가 됐지. 저 시간이 다 지나기 전에 흑암을 꺾고, 네 목을 베면 그만이다.”
[우, 우진 님….]
“네놈이 그걸 할 수 있다고? 개소리도 작작 해!”
“내게 그리 말했던 자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뒤통수를 맞고 땅에 처박혔다.”
백우진의 검은 안구 위로 서슬 퍼런 불길이 치솟았다.
“네놈도 마찬가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