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65
365화. 카바론 (4)
[카인….]카렌은 흑암을 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자신의 장난을 받아 주던 기억 그대로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눈동자에 담긴 건 끈적이는 살기뿐이다.
가장 큰 분노를 가진 그가 카바론에게 세뇌되어 이쪽에 칼을 겨누다니, 그 칼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려 왔다.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초월에 오른 백우진과 카인이 힘을 합쳐 카바론을 막으면 끝이건만, 이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 이길 수 있을까?’
두 사람의 무력이 비슷하다고 가정해도 백우진은 지금까지 힘겨운 전투를 치렀고, 카인에게 살수를 쓸 수도 없을 거다.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다.
다만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백우진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우진 님….’
카렌이 백우진의 얼굴을 살폈다. 직접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고, 제대로 인사도 못 했지만, 그간 함께했기에 가족 같은 친근감이 들었다.
[아….]백우진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저으며 옅게 웃었다.
‘뭐지?’
그 따스함이 어린 미소를 보자,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는다. 이 최악의 상황이 해결될 것만 같은 안도감이 가슴을 울렸다.
[카인!]카렌은 백우진의 미소에 용기를 얻고 백색 눈동자를 뒤트는 카인을 불렀다.
[아니, 흑암! 네게 장난을 치는 건 내 쪽이잖아! 벌써 잊었어?]주먹을 꽉 움켜쥐며 소리를 질렀다.
[빨리 일어나라고! 이 근육 덩어리야!]**
‘근육 덩어리라. 맞는 말이군.’
백우진이 흑암을 훑어보며 피식 웃었다. 흑암의 키는 2m에 육박했고, 전신은 차돌처럼 단단한 근육으로 덮여 있었다.
정신세계에서도 느꼈지만, 검사라기보다는 권각술을 사용하는 무투가의 몸이었다.
“흑암.”
“…….”
흑암은 대답하지 않았다. 백색의 눈을 부라리며 살기와 오러를 끌어 올렸다.
“소용없어.”
카바론이 흑암의 어깨를 두드리며 히죽였다. 흑암은 카바론의 손길을 받으면서도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카렌이 카인의 영혼으로 검을 만들었을 때부터 준비한 세뇌의 술식이다. 녀석의 영혼이 저 육체를 벗어나기 전에는 내 명령을 따르는 노예일 뿐이야. 조심해야 할 거야. 저 육체는 실제 카인의 몸보다 더 강하거든.”
“세뇌 따위에 당하다니, 귀찮은 녀석이라니까.”
백우진이 차게 웃었다. 차라리 자신에게 세뇌를 걸었다면 바로 튕겨 냈을 텐데, 그게 아쉬웠다.
“흑암.”
“…….”
여전히 대답이 없다. 녀석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자세를 낮추고 오러를 사위로 뿌렸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설영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포기하는 건가? 하긴 네 스승과 같은 카인에게 검을 겨눌 수 없겠지. 처음부터 허세일 거라고 생각….”
“말 한번 더럽게 많네.”
카바론이 주둥이를 털 때 발을 구르며 흑암을 향해 뛰어들었다.
샤아악!
흑암의 검이 목을 노리고, 떨어져 내린다.
치리리링!
그 검날의 중심을 향해 흑왕탄을 쏘아 냈다.
콰아아아앙!
검과 검이 맞닿자, 시퍼런 불꽃과 함께 막강한 충격파가 백색 공간을 휩쓸었다.
끼기기긱!
백우진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검을 맞댄 흑암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피워 냈다.
“흑암.”
“…….”
“너 그대로 정신 놓고 있다간 나한테 뒈진다.”
그 말을 하며 왼손으로 수왕무 혈호조를 펼쳤다. 호랑이의 발톱처럼 손가락을 세운 채 흑암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캬앙!
흑암은 무표정을 유지한 채 오러를 휘돌려 혈호조를 튕겨 낸 후 그 반동을 이용하여 뒤로 물러섰다.
“어딜 도망가!”
백우진은 만상보를 밟으며 흑암을 쫓아가며 비뢰섬을 그었다.
어둠에 물든 벼락 줄기가 자석처럼 흑암에게 따라붙었다.
“흑현금.”
흑암의 입이 느릿하게 열린다. 녀석이 호를 그리는 검을 펼친다. 잘려 나간 공간이 비단처럼 부드럽게 펼쳐지며 비뢰섬을 모조리 감싸 버렸다.
백에 가까운 뇌전의 검기를 한 번에 지우다니, 역시 흑현금은 방어에 있어서는 사기 그 자체였다.
“섬야.”
흑암이 상단으로 세운 검을 그대로 내리친다. 검신에 휘감긴 강기가 야수의 발톱이 되어 공간을 갈랐다.
“섬야엔 무령참이지.”
백우진이 두 눈을 빛내며 무령참을 그었다.
콰드드드득!
파도처럼 밀려오던 섬야의 발톱이 무령참의 중압에 짓눌려 터져 나갔다.
쿠구구구구!
막강한 기운이 충돌한 여파로 카바론이 만들어 낸 공간 외부까지 그 충격이 새어 나갔다.
터엉!
백우진은 바스러진 땅을 밟으며 흑암에게 달려들었다.
치이잉!
철판교로 허리를 펼쳐 흑암이 내리친 검을 피해 낸 후 그의 심장을 향해 관일극을 내질렀다.
째앙!
흑암은 휘돌리던 검파로 관일극을 막아 낸 다음 근접의 섬야를 그었다.
칼날 위로 세 줄기의 강기가 삼지창처럼 솟구쳐 목과 심장을 노려 왔다.
화르르륵!
어둠에 물든 설영검의 칼날 위로 시뻘건 불길이 피어올랐다.
겁화. 그 지옥의 불길을 검에 두른 채 흐름을 베었다. 겁화검형. 새로운 차원에 오른 연계검술의 발현이다.
콰아아아아!
섬야가 녹아내리고, 겁화가 사그라들었지만, 백우진과 흑암은 멈추지 않았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는 거리에서 각자가 가진 무를 펼쳐 상대의 숨통을 노렸다.
“저놈….”
카바론은 흑암의 목을 향해 검을 찌른 백우진을 보며 콧등을 구겼다.
‘진짜 죽일 생각인 건가?’
백우진은 자신에게 세뇌가 된 것도 아니면서 카인을 죽일 듯이 검을 휘둘렀다.
‘제대로 공격도 못 할 거라 생각했는데….’
백우진은 스승인 카인에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살기를 담아 검을 내리쳤다. 자신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광경이다.
‘이게 아니야. 이게 아니라고!’
보고 싶었던 광경은 이따위 것이 아니다.
카인을 공격하지 못한 채 살이 찢기는 백우진과 그 모습을 보며 울부짖는 카렌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백우진과 카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서 제압한 후 세뇌를 풀어 카인마저 절망하게 만드는 게 자신의 계획이었다.
‘근데 저놈은 뭐냐고!’
백우진. 저 정신 나간 인간은 진심으로 카인을 죽이려 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저 망할 놈 때문에 카렌의 눈엔 아직 희망이 어려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냐. 괜찮아.’
카바론은 짜증을 참으며 하늘에 떠 있는 바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시간이 지나면 네놈이 뭘 하든 끝나니까.’
**
“저, 저게 뭐야….”
실비아는 하늘에 뜬 기다란 바늘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바늘? 초침?’
하얀 바탕에 금색 문양이 새겨진 바늘이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꼭 시계 초침 같은 형태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형태의 바늘이지만, 저걸 보는 순간 배를 탄 듯 속이 울렁이고, 심장이 꽉 조여 드는 느낌이다.
‘우진 님.’
실비아가 투명한 막을 보며 두 손을 꽉 모아쥐었다.
에이션트 드래곤의 브레스조차 뚫지 못한 공간 안에 있는 백우진이 걱정되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에게 그리 많은 도움을 받아 놓고,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내가 차라리 검에 재능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풍요의 능력을 얻은 걸 후회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강한 무력이 있는 검의 하이엘프가 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만큼 백우진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었다.
“실비아 님. 마음 놓으세요.”
전장 정리를 마무리하고 온 데플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데플 님?”
“스승님은 뭐든 쉽게 해내시잖아요. 오늘만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아….”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플의 말대로 오늘 백우진이 보여 준 무력과 소환술은 인세의 그것을 초월했다.
신에 닿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활약이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나오실 거예요.”
“그렇겠죠?”
“물론입니다.”
그리되길 바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 그럼 엘프들에게 휴식 지시를… 어?”
엘프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위해 몸을 돌리려 할 때 공중에 뜬 바늘이 딱 소리와 함께 움직였다.
쿠구구구구!
그 순간 하늘이 일그러지고, 대지가 진동한다.
“지, 지진?”
“이건….”
실비아가 눈을 부릅떴다. 데플은 모르겠지만, 이건 단순한 지진이 아니다.
이 땅의 지축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이 대륙이, 아니 차원 전체가 뒤틀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실비아는 불안을 담은 눈동자로 하얀 막을 보았다.
“우진 님….”
**
백우진은 쏟아지는 흑암의 검격을 향해 낙일참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앙!
둥글게 뭉쳐진 흑암의 검격이 쾌청한 하늘처럼 갈라지며 공간 전체가 출렁였다.
흑암은 당황하지 않고, 허공으로 검을 쳐올렸다. 오러가 일어난 건 그의 검이 아니라, 밟고 있는 바닥이었다.
치이이잉!
그림자에서 솟구치는 무수한 숫자의 검은 칼날. 흑암의 두 번째 검 암인이다.
까드득!
설영검은 눕혀 그림자에서 솟구친 흑색의 칼날을 막아 냈다. 흑암은 그 틈을 노리고 세 번째 검 흑살을 찔러 왔다.
쿠구구구!
산봉우리처럼 거대한 검날이 심장을 향해 가시를 세웠다. 설영검을 손에서 놓고 극리를 펼쳤다.
콰아아아아아!
최속의 검공 극리가 흑살의 검은 기둥을 꿰뚫고 흑암의 명치를 노렸다.
극리가 흑암의 가슴을 가르기 직전 녀석의 검이 사선으로 떨어져 극리의 궤도를 틀어 냈다. 단순한 투로지만 그 안에는 무의 묘리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차악!
만상보를 밟아 흑암의 우측으로 짓쳐 들었다. 떨어져 나간 설영검을 쥐었을 때 흑암이 검을 찔러 왔다.
키기기기깅!
광호섬을 운용해 흑암의 검격을 흘려 낸 후 한 발 더 접근해 수왕무 낭운장을 날렸다.
경쾌한 장법이 흑암의 복부에 터지려 할 때 녀석의 검이 반원을 그리며 낭운장의 투로를 차단했다.
‘변, 환, 절, 쾌, 와.’
백우진의 두 눈에 검은 불길이 피어났다. 흑암 역시 만검을 익힌 자. 찰나의 순간에 무의 묘리들을 조화할 수 있는 검사였다.
설영검으로 겁화검형을 그어 흑암을 압박했다.
치리리링!
흑암은 그 짧은 순간 최적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연속 검격인 겁화검형의 흐름을 끊어 왔다.
‘반대라면?’
그 흐름을 역으로 꺾었다. 강물을 거꾸로 오르는 연어처럼 겁화검형이 가진 흐름을 반전시켜 흑암을 공세를 뿌리째 뽑아 버렸다.
“으음….”
반 초 전에 공격하던 흑암이 수세에 몰렸다.
‘재밌는데?’
백우진이 참지 못하고 입매를 말아 올렸다.
즐겁다.
세뇌당한 흑암, 이곳으로 이동되어 아무것도 못 하는 카렌, 아직도 힘을 숨기고 있는 카바론, 차원이 융합되어 수십억의 생명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의 상황.
즐거워서는 안 되는 순간임에도 웃음이 나오고 전신에 활력이 솟구친다.
‘보이고 느껴지니까.’
검을 휘두를 때마다 새로운 무의 세계가 펼쳐진다.
흑암과 정면에서 무를 격돌할 때마다 초입에서 중급에 오를 때까지 비워졌던 초월의 무리가 샘물처럼 차오른다.
마른 우물 위로 청량한 여름비가 쏟아지듯 무리의 파도가 정기신에 가득했다.
단순히 무의 경지만이 성장하는 게 아니다. 세계의 이치에 닿는 의념. 그 정신까지 함께 확장된다.
설영검과 흑암의 검이 마주치며 서로의 심장을 노리는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었다.
치이이잉!
흑암이 막강한 강기를 압축한 검을 내리친다. 쾌, 강, 중, 뇌, 와, 폭, 살, 변의 무리를 조화시켜 머리를 찍어 온다.
캬아앙!
설영검에 유와 풍, 정, 절의 묘리를 감아 그 검을 흘려 냈다. 흑암의 검은 우측 팔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지나 땅을 쳤다.
치이잉!
녀석은 제비처럼 몸을 회전시킨 후 검에 변, 환, 쾌, 와, 폭의 묘리를 담아 급소를 찔러 왔다.
찰나의 순간 그 흐름을 파악해 흑암의 검격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
조금의 틈도 없는 방어에 흑암의 손끝이 떨리는 게 보였다.
허나 아직 멀었다.
숨을 내뱉는 이 순간에도 무의 한계가 성장한다. 뇌리 속으로 뭉게구름처럼 무의 표리가 펼쳐진다. 지금이라면 더 위로 갈 수 있다.
흑암이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선 후 검을 젖혔다. 암극. 그 극점의 검공이 그의 손에서 펼쳐진다.
우우우웅!
시야가 좁아진다.
느려지는 시야 속에서 흑암은 조금의 억제도 걸리지 않은 듯 맹호처럼 달려온다.
‘의념.’
이 느려지는 공간을 움직이는 힘은 의념이다. 초월에 닿은 의념으로 세계의 이치에 간섭한다.
툭.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손목에 단 무거운 추가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치이잉!
목을 노린 암극의 칼날을 향해 관일극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아!
암극과 겁화의 관일극이 한 점에서 부딪치며 응축된 기운이 폭발했다.
쿠구구구구!
열기와 강기로 가득한 공간 안에서 흑암이 검을 올려쳤다.
보인다.
흑암의 돌아가는 손목이, 박동하는 근육이, 솟구치는 오러가, 세계를 조율하는 의념까지.
모든 게 보이고 느껴진다.
이제 생각은 필요 없었다. 검을 들면 그 오러와 묘리가 절로 일어났다. 심즉동. 마음이 일어나면 몸이 움직이는 경지였다.
타악!
흑암의 좌측으로 붙어 낙성위화를 펼쳐 냈다. 이전과 차원이 다른 변화. 한순간에 수백의 별이 떨어지고, 수천 개의 꽃이 피어난다.
흑암의 손이 어지러워진다. 감정 없는 그의 얼굴에 당황이 묻어난다.
“아직 멀었어.”
완성된 검로에 새로운 묘리들을 추가하니, 전혀 다른 검로가 만들어진다.
휘두르는 검이 검로가 되고, 내딛는 발이 보법이 되는 지고의 경지다.
콰아아아앙!
참다못한 흑암이 검극에 모은 오러를 폭발시켜 자신을 뒤로 밀어냈다.
고오오오!
그가 검을 위로 들어 올리며 무시무시한 기운을 불태웠다. 조화된 무리가 스무 개가 넘고, 응축된 오러는 하늘에 닿을 정도다.
‘들은 적이 있어. 여섯 번째 검.’
흑암은 여섯 번째 검의 위력이 너무 커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깨달음을 얻어 이뤄 냈다는 그 절세의 검공 흑일(黑日)이 현실이 되어 떨어져 내린다.
화아아악!
흑암의 검에서 검은 빛이 솟구친다. 우주의 심장이라 불리는 태양이 강림한 듯 그 빛 앞에서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그 작열하는 화광을 본 순간 바위가 폐부를 짓누르듯 숨이 막혔다.
‘호흡이다. 호흡.’
백우진이 이를 악물었다. 초월에 오르며 호흡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다. 숨을 고르며 무극에 이른 의념을 발산했다.
쿠웅!
떨어지는 흑일을 직시하며 바닥에 다리를 박아넣고, 설영검의 검극을 위로 세웠다.
콰아아아아!
내재된 기와 대자연의 기를 조화시켜 설영검의 칼날에 담았다. 장대한 어둠의 광휘가 새하얀 검신을 물들였다.
칠흑의 빛이 휘감긴 설영검을 좌측으로 젖혔다. 이글거리는 흑일이 눈앞에 이르렀을 때 검을 그었다.
꾸드드득!
박아 놓은 다리부터 허리, 그리고 검을 쥔 손끝까지. 한 호흡에 근육과 오러, 무리와 의념을 조화시켜 무적의 검공을 펼쳐 냈다.
콰아아아아!
그간 쌓아 올린 무수한 검리들이 어우러지며 하나의 선을 지핀다.
쩌어어억!
세계를 불사를 듯했던 흑암의 마지막 검격 흑일은 그 절대의 선을 넘지 못하고 반으로 갈라졌다.
“커헉!”
쪼개지는 흑일의 뒤로 흑암이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그가 들고 있던 검은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빠아악!
백우진은 흑암의 뒤로 짓쳐 들어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수천 대 맞았었는데, 이제야 한 대 때리는군.”
흑암은 출렁이는 그물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이, 이게 무슨….”
바닥에서 피어나는 회색 연기가 사그라들며 카바론이 보인다. 그의 눈동자에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 있었다.
“흑암을 꺾었으니.”
백우진이 시퍼렇게 빛나는 설영검을 들어 카바론을 겨누었다.
“이제 네 목을 벨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