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66
366화. 카바론 (5)
“백우진….”
카바론은 경악을 숨기지 못했다. 바닥에 처박힌 흑암을 보며 턱을 드르륵 떨었다.
“카인은 네놈의 스승이잖아! 살기를 담아 공격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냐!”
“맞아. 흑암은 내 스승이지.”
백우진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스승이자, 형제이며, 친구다. 누구보다 소중하지.”
“근데 왜 죽이려 들었던 거냐! 설마 카인을 죽여서 육체를 벗어나게 한다는 멍청한 생각을 한 건가?”
“아니. 내가 흑암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잘 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카바론의 눈동자가 반숙된 달걀처럼 찌그러졌다.
“흑암이 만약 지금 자신의 꼴을 보고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 것 같지? 살려 달라고? 구해 달라고? 아니야.”
설영검으로 쓰러진 흑암의 허벅지를 툭 두드렸다.
“이 녀석의 성격이라면 팔다리를 분지르거나, 잘라서라도 자신을 막아 달라고 했을 거다. 설사 크게 다치거나, 죽더라도 상관없다고 했겠지. 흑암은 그런 놈이다.”
“으음….”
“난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온 힘을 다해서 놈을 후려 팬 거지.”
백우진이 손목을 돌리며 씩 웃었다.
‘조금 감정이 실리긴 했지만….’
정신세계에서 흑암과 수많은 대련을 하며 수천 번을 얻어터졌다.
그게 기억에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 흑암의 뒤통수를 내갈길 때 힘이 좀 과하게 들어갔다.
[그의 말이 맞아.]카렌은 쓰러진 흑암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카인이라면 분명 그렇게 말했을 거야.’
육체와 기억을 잃고 흑암이라는 마검이 되었지만, 카인이 가진 성정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겉으로 차가운 척해도 속은 따뜻하고,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카인이라면 백우진의 말대로 팔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자신의 몸을 멈춰 달라고 했을 거다.
“너 말이야.”
백우진은 흑암을 두드리던 설영검을 어깨에 걸친 후 카바론을 향해 다가갔다.
“흑암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면서 이 녀석의 성격도 모르는 건가? 친구 헛사귀었는데?”
“닥쳐라….”
카바론이 살점을 물어뜯은 맹수처럼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저게 정말 신인가?’
카바론의 언행을 볼 때마다 신이 아니라, 미치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점점 상태가 심각해지는 또라이.
감정과 표정을 숨기고 계획적으로 움직이던 유만이 더 신 같은 느낌이다.
카바론은 금술에 손을 대서 몸도 정신도 괴물이 된 것 같았다. 아니면 원수라고 생각하는 흑암, 카렌을 마주하며 아예 미쳐 버렸는지도 모르고.
“마기가 골수까지 뻗쳐서 생각을 못 하는 것 같군.”
백우진이 카바론의 열 걸음 앞에 멈춰서 설영검을 중단의 위치에 세웠다.
“이대로 너까지 끝내 주마.”
“…….”
카바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이를 드러낸다. 그 입매의 형태는 웃음. 그것도 비웃음이다.
‘저놈!’
그 웃음을 알아차린 순간 오싹한 소름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피해요!]카렌의 목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무수한 숫자의 검은 칼날이 치솟았다. 흑암의 두 번째 검 암인의 극한 발동이다.
터엉!
어두워지는 바닥을 차 공중으로 떠올랐다. 몸을 비틀었음에도 암인의 칼날은 채찍처럼 휘어져 급소를 노려 왔다.
캬갸갸걍!
뱀처럼 이를 드러낸 암인의 칼날들을 향해 낙일참을 내리쳤다.
예리한 참격이 공간을 장악하며 흑색의 검들이 수수깡처럼 분질러졌다.
“흑암!”
뒤를 돌아보았다. 땅에 처박혀 있던 흑암이 허연 눈을 빛내며 일어서고 있었다.
‘일어설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는데?’
백우진이 입술의 옆면을 얇게 씹었다. 마지막 검격은 흑암의 육체를 관통했고, 정신에 큰 충격을 주었다.
뒤통수를 칠 때도 한동안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온 힘을 줬는데, 저렇게 빨리 일어나다니, 질겁할 수준이다.
“재, 재생?”
흑암의 가슴을 뚫은 검흔과 자잘한 상처들이 시간이 되돌아간 듯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
카바론이 목을 쥐어뜯으며 광소를 터트렸다.
“너도 모르고 있구나. 아까 말했지? 저 녀석의 육체는 특별하다고.”
“무슨 짓을 한 거지?”
“밖에서 만났을 터다. 불멸의 마룡 불카누스.”
“설마….”
“그래. 카인의 육체는 마룡의 뼈와 살을 연결해서 만들었다. 네놈이 장기를 가르든, 뼈를 부수든 끝없이 일어선다는 말이다!”
카바론은 손가락을 튕기자, 흑암은 싸우기 전처럼 막강한 오러와 살기를 피워 냈다.
“물론. 녀석의 체력과 오러 역시 끝이 없지.”
‘젠장!’
백우진이 이를 악물었다.
‘이건 좀 큰데….’
흑암의 반응이 조금 떨어진다고 해도 녀석은 초월에 오른 무인이다. 신체와 오러가 끝없이 재생되는 흑암이라니, 구역질이 절로 나온다.
‘흑암만이 문제가 아니야.’
가장 큰 문제는 흑암 때문에 카바론을 잡을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려 바늘을 보았다. 어느새 3분지 1이 지나가 있었다.
흑암만을 상대하고 있을 수도 없고, 흑암을 뒤로한 채 카바론을 상대할 수도 없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백우진이 회복의 호흡을 발동시키며 차게 웃었다. 항상 느끼지만 편한 싸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한계를 넘어야 한다.
“또 후려 패면 그만이다.”
“그 자신감은 대단한데, 빨리 움직여야 할 거다.”
카바론이 키득거리며 바늘 위의 하늘을 가리켰다.
“이제 차원들이 모이기 시작했거든.”
**
“잘 됐겠지?”
적연화는 연무장의 땅바닥에 주저앉아 피식 웃었다.
‘꿈 같았어.’
갑자기 나타난 검은 실을 잡은 것만으로 백우진의 상황이 느껴졌다.
그 후 실이 물었다. 그를 구하러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대답은 필요 없었다. 백우진이 위기라는 걸 알자마자, 절대 놓치지 않기 위해 실을 손등에 묶었으니까.
‘나도 참….’
적연화가 손을 올려 달아오른 뺨을 감쌌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웠다. 백우진에겐 빚을 갚는다고 말했지만, 실제 그의 위기를 봤을 땐 목숨을 걸어서라도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적이 얼마나 강하든, 얼마나 많든, 그곳이 어디든 중요하지 않았다.
‘백우진….’
엘프와 다크 엘프, 드워프가 있는 신비로운 세계에 다녀왔음에도 생각나는 건 백우진뿐이다.
다만 예전과는 달랐다.
그의 강함이 아니라, 백우진이라는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가 무사한 걸 보자, 요동치던 가슴이 간신히 가라앉았다.
‘도, 돌아오면 수련 좀 봐달라고 할까?’
이번에 큰 도움을 주었으니, 부탁하면 들어줄지도 모른다.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니, 잔잔했던 가슴이 다시 떨려 온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가 되어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의 감정을 모를 나이도 아니다.
이젠 제대로 말을 할 때인 것 같았다.
‘그가 돌아오면 백가로 가야겠어.’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다짐을 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
적연화가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저, 저게 뭐야….”
푸른 하늘 위로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크기의 구체였다.
구체의 우측에선 불길이 타오르고, 좌측엔 냉기가 피어난다.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아아아….”
“저, 저건 또 뭐야!”
“운석인가? 도통 뭐가 뭔지….”
연무장 밖에서 권사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자신만 보이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점점 짙어지고 있어.’
반투명한 형태의 구체의 빛이 진해지면서 그 안에 있는 존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지각색의 피부에 이마 위엔 뿔이 솟아 있고, 눈빛은 시꺼멓게 죽어 있었다.
‘마, 마족? 마족이라고?’
마족이다. 직접 싸워 보기도 했고, 자료로 보았던 마족들이 광기 어린 눈빛을 빛내며 투명한 막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설마 저게 마계? 이, 이건 안 돼….’
마족은 동급의 능력자 10명 이상이 붙어야 싸울 수 있는 막강하고 사악한 존재다.
저 숫자의 마족이 튀어나온다면 이 세계가 무너진다. 전 세계의 능력자가 모조리 나와도 소용없다.
그때 떨어지던 마계가 멈춰선 후 그 위로 영사기처럼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백우진!”
그 빛 위로 떠오른 건 백우진이다.
그가 눈이 검게 물든 거대한 남자와 검을 부딪치고 있었고, 신처럼 후광을 두른 금발의 남자가 그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 싸움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어.’
이제야 깨달았다. 백우진은 그 차원만을 위해서 싸운 게 아니었다. 그 전쟁에는 이 땅의 명운마저 걸려 있던 게 분명했다.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적연화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았다.
‘제발!’
평생 신을 믿지 않았던 그녀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를 바쳤다.
**
콰아아앙!
백우진이 왼 주먹으로 꽂아 넣은 명후권에 흑암의 상체가 다시 바닥에 꽂혔다.
우우웅.
권격이 적중하여 뼈가 드러날 정도로 터진 상처가 실처럼 꼬이며 재생된다. 재생이 아니라, 상처가 회귀하는 듯한 모습이다.
“…….”
흑암은 조금의 고통도 느끼지 않는 표정으로 일어서서 검을 들었다.
“이게 네 번째인가….”
백우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흑암을 네 번째 쓰러뜨렸음에도 녀석의 세뇌는 풀리지 않았다. 속이 얹힌 듯 답답한 상황이다.
“말했잖아. 소용없다니까?”
카바론이 턱을 얇게 틀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카인은 죽지 않고, 세뇌는 풀리지 않아. 네 잘난 무력도 소용없다.”
“시끄러워.”
“위를 봐라. 차원들이 실체화되기 시작하는군.”
“어?”
백우진이 카바론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계 초침 위로 거대한 구체가 내려서고 있었다.
‘서, 설마….’
보자마자 그 구체가 무엇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지구?”
“말했잖아. 세 차원이 합쳐질 거라고. 이제 머지않았다.”
‘젠장….’
이가 갈린다.
적의를 가진 흑암을 놔두고 카바론을 공격할 수도 없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다만….’
카바론의 말과 달리 흑암은 완벽하게 세뇌되지 않았다. 전투 중에 한 번씩 그의 손이 멈칫거리는 게 느껴졌다.
‘세뇌는 완벽하지 않아.’
흑암이 완전히 세뇌되기 전에 그를 가둔 기둥을 깬 덕분일 거다.
꽉 잡히지 않은 흑암의 정신이 카바론의 명령을 방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끼기기깅!
흑암이 내리친 검을 막아서며 몸을 돌렸다. 짧은 순간 흑암의 눈에 카렌이 비친다.
‘역시!’
아주 찰나였지만, 흑암의 반응과 검을 쥔 손에 힘이 빠졌다. 카렌도 흑암의 세뇌를 풀 수 있는 열쇠 중 하나였다.
즉, 자신과 카렌이 흑암의 정신을 깨우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 그게 100% 중 80% 정도. 흑암을 깨우기까지 20%가 부족한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띠잉!
가슴에 떨림이 인다. 아니, 그보다 깊다. 혼의 떨림. 흑암과 실로 연결된 영혼의 울림이다.
흑암이 빨리 깨워 달라 재촉하는 것 같았다.
‘흑암이 무얼 좋아했지?’
흑암은 정령들처럼 음식을 먹지 않았다. 검술 수련을 봐주었지만, 터치가 많지 않았고 잘못된 길로 갈 때만 잔소리를 했다.
‘그럼 역시 드라마인가?’
흑암은 그 무엇보다 드라마를 좋아했다. 심심할 때 드라마의 이야기를 풀며 즐거워했다.
“드라마.”
백우진은 흑암과 검을 맞대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드라마라는 단어를 흘렸다.
“…….”
몸을 숙인 채 달려들던 흑암의 칼날에 예기가 가라앉고, 그 움직임이 느려졌다. 확실한 반응이었다.
‘진짜 돼?’
말해 놓고 당황스러울 정도다.
“흐, 흑암! 드라마 봐야지! 여기서 뒤질 거야?”
“크….”
흑암은 검을 쥔 손을 부르르 떨며 이쪽을 노려본다. 부족했던 10%가 드디어 나타났다.
“카인! 뭐 하는 거냐! 놈을 죽여!”
“으음….”
카바론의 고성에 풀려 가던 흑암의 눈동자가 다시 조여졌다. 녀석이 빛살처럼 짓쳐 들어 검을 휘둘렀다.
캬앙!
설영검으로 호를 그려 그 공격을 튕겨 낸 후 뒤로 물러섰다.
‘효과는 있어.’
카바론의 지시에 움직이고 있지만, 고장 난 장난감처럼 움직임이 많이 굳었다.
그를 깨울 마지막 한 발이 필요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일단 제압하고.’
백우진이 땅을 박차 흑암의 간격으로 뛰어들었다. 흑암이 검을 내리칠 때 그 검의 결 사이로 흑왕탄을 내질렀다.
콰아아앙!
흑왕탄의 오러가 포탄처럼 쇄도하여 흑암의 방어를 뚫어 버렸다.
치이이잉!
흑암이 그 충격을 흘리려 할 때 수왕무 멸후고를 이용하여 그의 가슴을 찍어 버렸다. 흑암이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이미 다 파악했어.’
흑암이 펼치는 검격의 위력은 식겁할 정도지만, 점점 반응이 늦어지고, 궤도는 단순하다.
무한에 가까운 재생력과 체력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쓰러뜨렸을 거다.
밀려나면서도 반격하는 흑암의 검을 광호섬으로 올려 친 뒤 연속으로 무령참을 그었다.
콰아아아아앙!
세계의 중력이 뒤틀린 듯한 충격파가 터지며 흑암이 대지에 처박혔다.
“들어라. 흑암.”
백우진이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흑암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전쟁 전에 네가 마지막으로 본 드라마가 오빠의 유혹이었지?”
가슴의 상처를 재생하는 흑암의 오른손가락이 움찔거렸다.
“그거 여주인공의 친엄마가 남주인공의 엄마고, 남주인공의 친아빠가 여주인공의 아빠다. 네가 보지 못한 18화에 나오는 내용이지. 그리고 여주인공의 할머니가 사실 아저씨….”
흑암을 향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스포를 그대로 내뱉었다.
[우, 우진 님?]카렌이 황망한 눈으로 입을 쩍 벌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이다.
“키하하하! 네놈도 미쳐 가는구나!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카바론이 머리를 부여잡고 괴이한 웃음을 터트렸다.
부스스.
흑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더 진한 살기를 휘감은 검으로 자신을 겨누었다.
“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카인에게 죽든가, 카인을 죽이든가!”
“아니, 하나 더 있지.”
백우진이 몸을 돌렸다.
“네놈을 죽인다.”
땅을 박차고 카인을 향해 달렸다.
“네 뒤에 카인을 놔두고?”
“먼저 베면 그만이다!”
“멍청한 놈! 카인! 놈을 쳐라!”
백우진은 뒤에서 흑암이 쫓아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카바론을 향해 짓쳐 들었다.
우우웅!
카바론이 자신을 비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가느다란 손아귀에서 무엇이든 막을 수 있는 백광이 번쩍였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이를 악물고 카바론의 간격을 파고들었다.
우우웅!
카바론이 백광을 터트리기 직전, 놈에게 검을 내리치지 않고 옆으로 물러났다.
“지금 뭐 하는… 어?”
자신을 따라붙던 카바론의 금안이 당황으로 뒤틀렸다.
당연한 일이다.
흑암의 눈이 원래의 흑백을 되찾았고, 녀석의 검에 담긴 흑일은 백우진이 아니라, 카바론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어, 어떻게 세뇌가 풀린 거야!”
“잘!”
백우진은 다시 흑암의 옆에 붙어 신살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아!
신을 베는 참격에 검은 태양이 어린다. 두 검격은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뒤섞이며 무시무시한 위력을 폭발시켰다.
“끄아아악!”
카바론의 백광이 갈가리 찢어지며, 그의 가슴에 거대한 상흔이 새겨졌다.
“이, 이 버러지 놈들이 감히!”
가슴의 상처에서 살벌한 양의 피가 쏟아졌음에도 놈은 쓰러지지 않았다. 흑암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상처가 재생되고 있었다.
“준비됐지?”
“물론이다!”
백우진이 말아 쥔 두 손에 오러와 의념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흑암 역시 가진 모든 것을 검 위로 담아 냈다.
터엉!
찰나의 순간 흑암과 눈을 마주치며 카바론을 향해 내달렸다.
“크아아아아!”
고통에 절규하던 카바론이 응집시킨 신성력과 마나를 쏘아 냈다. 두 절대의 기운이 어우러지며 대지를 뒤엎을 어마어마한 백색의 파도가 일어났다.
쿠아아아아아!
백우진과 흑암은 물러서지 않았다. 피부가 뜯겨 나갈 압력을 견디며 꽉 잡은 검을 내리쳤다.
두 사람의 검에 진득한 어둠이 타오른다. 지옥에서 끌어 올린 듯한 흑색의 불길이 찬란한 빛의 해일을 갈랐다.
[백우진과 흑암의 두 번째 검 인의가 생성되었습니다.]누군가는 말한다. 하늘의 뜻이 가장 높이 있다고.
하지만 인간에겐 인간의 길이 있는 법.
하늘에 올랐던 검과 인간이 두 명의 사람이 되어 펼친 영혼의 울림은 신이 일으킨 재앙마저 벨 수 있었다.
“끄어억….”
카바론이 반으로 갈라진 채 뒤로 넘어간다.
캬아아앙!
그가 만든 백색의 차원이 유리 조각처럼 깨져 나가고 원래의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백우진….”
흑암은 쓰러진 카바론의 앞에 서며 백우진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스포하지 말라고 했지!”
“신의 세뇌를 풀다니, 역시 스포야. 효과 한번 확실하구만.”
백우진은 흑암의 호통을 들으며 히죽 웃었다.
“이게 대한민국 드라마의 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