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카바론 (8)
지도자는 중요하다.
기사단의 구성원이 동일하다고 해도 그들을 이끄는 단장이 누구냐에 따라 기사들의 무력은 천지 차이가 난다.
서른 명 남짓한 기사단에도 영향이 큰데 국가 규모라면 지도자의 중요성이 커지는 건 당연한 일.
현명한 성왕이 나라를 운영하면 태평성대가 이루어지고, 어리석은 폭군이 나라를 다루면 그 국가는 순식간에 폐망하게 된다.
그렇기에 지금 카론 제국의 황제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했다.
당대 황제가 유만에게 세뇌를 당했을 뿐이라면 교화의 여지가 있지만, 정신 지배 없이 이렇게 나라를 망쳤다면 그냥 놔둘 수 없다.
‘죽일 필요 없으면 좋겠는데….’
백우진은 성주들과 함께 황궁으로 들어가며 입맛을 다셨다.
대륙 전쟁을 일으킨 주범은 카바론 한 명이다. 제국 쪽도, 연합군도 놈에게 끌려다녔을 뿐이다.
지금까지만 해도 많은 피해와 죽음이 있었기에 더 이상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결단을 내릴 땐 내려야 한다.
‘물론 그래야지.’
만약 이곳에 남는다면 제국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이 떠난 후 제국이 멸망한 땅을 가지기 위해서 새로운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기에 제국은 약소국으로 남기는 게 가장 좋았다.
‘제국의 백성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적게 가도록 할 거야.’
제국의 국민은 아무런 죄가 없다, 그들이 피해받지 않도록 황제가 어떤 자인지 살피고 적절한 자가 아니라며 처리할 생각이다.
‘다만….’
백우진이 황궁 내부를 훑어보며 눈매를 좁혔다.
‘별로 기대는 안 되네.’
황궁 내부는 외부와 달리 온통 금으로 씌워졌고, 화려한 장식품과 예식용 무기로 가득했다. 사치의 극을 보는 느낌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뭐, 사치만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
“멈춰라!”
나름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황궁의 중심에 도착했을 때 금빛 갑옷을 두른 기사들이 검을 뽑아서 겨누었다.
-수준이 높군.
왕을 지키는 근위 기사답게 뛰어난 오러와 투지를 뿜어냈다.
“황제께서 머무는 곳이다.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그 누구의 출입도….”
“우린 그 황제를 보기 위해 왔다.”
에드거가 혀를 차며 검을 뽑았다.
“절대 못 들어간다! 황제를 알현하려면….”
“비켜.”
백우진이 에드거의 앞으로 나서며 의념을 끌어 올렸다.
“허억!”
“아아….”
“끄으윽!”
대붕이 날개를 펼치듯 장대하게 퍼져 나간 기파에 근위 기사들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그들은 고양이 앞의 생쥐처럼 겁에 질려 검을 쥔 손을 떨었다.
“으음….”
“뭐, 뭘 한 거지?”
“저 사람은 정말….”
성주들은 덜덜 떠는 기사들을 보며 벙찐 표정을 지었다.
“가죠.”
백우진은 근위 기사단이 비켜 준 길을 걸어 화려함이 극치에 이른 알현실의 문 앞에 섰다.
안에서 많은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모두 이곳으로 도망쳐 온 것 같았다.
콰아아앙!
문에 손을 얹은 뒤 그대로 날려 버렸다.
“와, 왔다!”
“꺄아아아악!”
“으어어억!”
문이 갈가리 터지는 충격음 사이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꺼멓게 타오르는 연기를 지리 밟으며 내부로 들어갔다.
중앙에 천장까지 솟구친 황제의 옥좌가 세워졌고, 화려한 의복과 갑주를 두른 귀족과 최정예 기사들이 그 앞을 막고 있었다.
‘저자인가?’
백우진은 눈을 돌려 옥좌에 앉은 중년인을 보았다.
금색 수실이 나선의 형태로 휘감긴 화려한 적색 전포를 둘렀고, 머리 위엔 가지각색의 보석이 드러난 팔각의 관을 착용했다.
-관상이 별론데?
‘음….’
그의 눈빛엔 정대함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아집과 분노만이 가득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그 더러운 발을 디디는 것이냐!”
황제가 욕심 많아 보이는 불룩한 볼을 떨며 고성을 내질렀다.
“난 이 제국의 황제다! 네놈들에게 날 볼 수 있는 권리는 주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썩 물러가라!”
-무릎을 꿇고 어떻게 물러가라는 거지?
흑암이 황제의 볼살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아직도 상황을 모르는 겁니까?”
데플이 서늘하게 웃으며 황제의 눈을 노려보았다.
“당신들은 패배했습니다. 물러가야 할 건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야!”
“패, 패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알론소 공작은 어디 있는가! 신관장은 어디 있어!”
황제가 들고 있던 봉으로 바닥을 쿵 내리쳤다.
‘꽝이로군.’
백우진이 들리지 않게 한숨을 뱉었다. 상황을 보니, 귀족들이 전쟁의 상황을 말해 줬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게 분명했다.
자신과 싸웠던 제국제일검 알론소 공작이 죽으면서도 답답해 보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모두 죽었다.”
백우진은 욕망에 찬 황제의 눈동자를 직시하며 입을 뗐다.
“제국제일검도, 부신관장과 신관장도 내 손에 죽었다. 제국의 군대는 패했고, 남은 건 너희들뿐이다.”
“헛소리! 유만이 당했을 리도 없고, 짐의 군대가 패했을 리가 없다! 기사단이 몇 개고, 병사가 몇 명인데 조잡한 네놈들에게 패했단 말이냐!”
“직접 확인해 보시든가.”
“닥치거라! 내 신력으로 네놈들을 당장에!”
황제가 들고 있던 붉은 봉으로 자신을 겨누었다. 봉이 하얗게 변하더니, 거대한 빛살을 쏘아냈다.
챠앙!
백우진이 나설 것도 없이 문주영이 튀어나와 그 빛을 베어 버렸다.
“버러지 따위가 짐의 행사를 막다니! 뭣들 하는 게냐! 놈들을 죽여!”
황제의 떨리는 손짓에 그의 주변을 지키던 근위 기사들과 귀족들이 돌진해 왔다. 황제와 달리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유만도, 알론소도 돌아올 거다! 싸워라!”
유일하게 황제만이 패배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싸움이다!”
성주들이 자신의 앞으로 달려 나와 근위 기사들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근위 기사들은 강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성주들과 그들의 호위를 이길 수는 없었다. 짧은 시간에 수십 명의 근위 기사들이 바닥을 기었다.
“하아악!”
기사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본 황제가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의 뒤에 있는 거대한 옥좌 때문에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찰팍.
백우진은 기사들에게서 흘러나온 피를 밟으며 옥좌를 향해 걸어갔다.
“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다! 이 천한 것아!”
황제가 옥좌의 왼쪽 팔걸이를 내리치자, 옥좌를 감싸는 반투명한 보호막이 생겨났다.
주변에 귀족으로 보이는 아이나, 여자, 노인이 있었음에도 황제는 그 누구도 부르지 않고 오직 혼자만을 위해 보호막을 발동시켰다.
-글렀군.
‘그래. 유만과 카바론이 제국을 마음대로 주무른 이유가 있었어.’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만과 카바론이 죽었음에도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그의 원래 성정이 저렇다는 뜻이다.
밑에 그의 혈육으로 보이는 왕족들이 있음에도 홀로 살려는 심보, 전쟁에 패했음에도 생각 없이 떼를 쓰는 멍청함, 누릿한 욕망까지 모든 게 불합격이었다.
“조금이라도 기대했던 내가 한심하군.”
차게 웃으며 옥좌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천한 놈답게 멍청하구나! 이 막은 초대 황제께서 설치한 방어막이다. 인간이 뚫을 수 없어!”
“그래?”
“한평생 그거나 두드리고 있어라!”
황제는 헤죽거리며 우측 팔걸이를 들어 올렸다. 옥좌의 뒷부분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열렸다. 비밀 통로인 것 같았다.
-멍청한 놈! 미리 도망을 갔어야지!
‘그 정도 머리도 없는 놈이야.’
유만과 카바론은 세뇌도 필요 없는 저 멍청함에 현 황제를 옥좌에 앉혔을 거다.
“한평생? 바로 깨 주지.”
백우진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설영검을 뽑았다. 바람을 가르듯 가볍게 검을 내리쳐 옥좌를 두른 막을 베었다.
캬아아앙!
절대 깨지지 않는다는 황제의 발언과 달리 방어막은 종잇장처럼 찢어져 먼지가 되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황제 드리스리 뷔 카루나미티는 침이 질질 흐르는 턱을 딱딱 부딪치며 뒤로 자빠졌다.
‘알론소도 부술 수 없다고 했는데….’
제국제일검이었던 알론소 공작도 반나절은 걸려야 깰 수 있다고 했던 초대 황제의 보호막이 저 인간의 일검에 깨져 버렸다. 현실이 아니라,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또 꺼낼 거 있나?”
백우진이 설영검을 휘돌리며 황제를 향해 다가갔다.
“꺼, 꺼져! 짐은 황제다! 무릎을 꿇어!”
황제가 붉은 봉을 내질렀다. 터져 나오는 마나의 덩어리를 피한 뒤 봉을 베어 버렸다.
“히이익!”
황제는 반 토막 난 봉을 내던지고 전신을 바르르 떨었다.
“네게 이 제국을 맡기면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겠지. 불합격이다.”
“자, 잠깐만! 일단 짐의 말을 듣… 커헉!”
백우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황제의 목을 베어 버렸다. 죽음을 믿지 못하는 듯 눈을 감지 못한 황제의 목이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꺄아아아악!”
“으허헉!”
“아아….”
아래에 있던 귀족들이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지만, 딱 한 명 적발의 청년은 황제의 목을 보며 눈을 내리감았다.
“일황자는 누구지?”
“접니다.”
조용히 있던 적발의 청년이 손을 들어 올렸다. 황제와 달리 눈빛에 정광이 어려 있었다.
“너희들은 먼저 우리의 영토를 침략했고, 패했다.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하, 하지만 우리에겐 힘이 없었소. 유만과 황제께서….”
“그만.”
옆에 있던 귀족이 끼어들려고 했지만, 일황자가 손을 저어 막았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소. 제국은 전쟁을 일으켰고, 패했지. 그게 전부요.”
“으으….”
일황자의 음성에 흔들림은 없었다. 체념인지, 인정인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당신은 그나마 말이 통하는군. 이게 우리의 요구요.”
백우진이 고갯짓을 하자, 데플이 일황자에게 조약서를 넘겨주었다.
“영토, 재물, 사과….”
저 조약서에는 제국의 영토를 연합군이 나누어 가지고, 전쟁 배상금과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 영토를 반으로 줄인다고?”
“전쟁 배상금의 액수가 너무 큽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모든 걸 잃기 싫다면 조용히들 하시오.”
일황자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귀족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었다.
“이것만 지키면 되는 겁니까?”
“아니, 하나 더 있소.”
백우진이 고개를 저으며 알현실 전체를 훑었다.
“연합군 병사들은 아직 굶주려 있소. 당신들을 모조리 죽이고, 이 땅 모두를 차지하고 싶어 하지.”
“허억!”
“히이이….”
기세를 실은 목소리에 귀족들의 눈동자가 벼랑 끝에 선 꽃잎처럼 바르르 흔들렸다.
“그들을 멈추기 위해서 즉각적인 보상이 필요하오. 이 황궁에 쌓여 있는 재물들의 절반을 가져가 그들에게 나눠줄 생각이오.”
-고작 절반?
‘저 황자가 아무리 정대하고 뛰어난 인물이라고 해도 황실에 돈이 없다면 결국 고생은 백성이 하니까.’
제국의 왕족과 귀족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면 그들은 백성들을 더 괴롭히게 될 거다.
“알겠습니다. 그것만으로 끝내 주신다면 고마울 뿐입니다.”
“일황자!”
“그, 그건 안 됩니다! 황궁엔 우리들의….”
“제발! 정신 좀 차리시오!”
일황자가 참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나름 무를 쌓았기에 알현실에 미약한 진동이 일어났다.
“제국은 패했소! 누가 우릴 이용했건, 이용을 당했건. 상관없이 패했단 말이오! 저들은 우릴 몰살시키고,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음에도 여지를 주고 있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거요?”
“아….”
“으음….”
귀족들은 입술을 깨문 채로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신 조건들을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일황자는 담담한 눈빛으로 조약서에 서명을 끝마쳤다.
“혹시라도 의견에 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 주시오. 바로 베어 줄 테니.”
“끄흑!”
“으으….”
백우진이 황제의 피가 흐르는 설영검을 털자, 귀족들은 쥐구멍에 들어갈 준비를 하듯 몸을 움츠렸다.
“괜찮습니다.”
일황자는 옅은 숨을 뱉으며 조약서를 내밀었다.
“음!”
조약서 아래에 적힌 일황자의 서명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뒤를 돌아서 함께 온 성주들에게 조약서를 보여 주었다.
“이제 끝났습니다.”
백우진은 라인 숲의 지도자 실비아부터 북방의 세인, 세이란 연합의 에드거와 렉터 프리드까지. 모두와 눈을 마주친 후 입을 열었다.
“시작은 가망성 없는 전쟁이었지만, 이곳에 계신 모두가 끝까지 싸워 주신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간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주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무,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감사 인사는 저희가 해야죠!”
“맞아요. 저희도 북방에 있다고 방심했었다간 제국에게 전멸당했을 거예요!”
실비아와 세인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해서 세이란을 지키고 있는다면 제국의 본대가 쳐들어와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소.”
세이란 성주 에드거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건 너무도 안일한 생각이었소. 제국제일검 알론소 공작, 마룡 불카누스, 신관장 유만. 셋 중 하나만 왔어도 세이란은 무너졌겠지.”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동쪽의 귀족이 보이는 최고의 예였다.
“당신을 믿지 못하고 의심했던 걸 사과드리오. 그리고 내 멍청한 정신을 깨워 주셔서 감사드리오.”
“이제야 정신을 차리는구나. 에드거.”
슈칸 성주 렉터 프리드가 클클 웃으며 에드거 옆에 같은 자세를 취했다.
“총사령관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있는 모두는 결국 죽었을 거요. 그저 지킬 생각만 했던 바보들을 깨닫게 해 줘서 고맙소.”
“저희도 마찬가집니다.”
“승리로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아 있던 퓨렌 성주, 켈든, 성주, 렌디누스 성주, 불포르도 그들의 옆에 무릎을 꿇었고, 실비아와 세인 역시 각자의 예법을 행했다.
-전부 아는 거겠지.
흑암은 무릎 꿇은 성주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네가 없었다면 패했다는 걸.’
제국제일검을 비롯한 제국십검, 신관장 유만과 그가 소환한 불카누스, 그리고 보지는 못했지만 진정한 절망을 느끼게 해 주었던 카바론.
백우진이 없었다면 그 괴물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전쟁을 끝낸 일등 공신이 누구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함께 이뤄 낸 일입니다. 그만 일어나세요.”
-초월에 올랐다고 그릇 큰 척하기는.
‘시꺼.’
거짓이 아니다.
인연의 검은 실 때도 느꼈지만, 홀로 이 싸움을 끝내려 했다간 자신도 진즉에 죽었을 거다.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싸웠기에 이길 수 있었다.
“으음….”
“그, 그리 말씀해 주시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데플이나, 실비아처럼 처음부터 호감을 가진 성주들 말고, 한때 적의를 가지던 성주들도 이젠 진한 동경이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럼 다음으로.”
백우진이 조약서를 다시 데플에게 넘기며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우린 많은 성을 정복했지만, 그 안에서 유의미한 보물들을 얻진 못했습니다.”
제국의 수도까지 진격하는 동안 많은 성을 점거했지만, 귀족들이 먼저 도망쳤기에 특별한 보상들을 얻진 못했다.
“황궁에는 황제의 재산 말고도 이곳으로 도망 온 귀족들의 재물이 가득할 겁니다. 조약서에 적힌 보상금을 받을 때까진 시간이 걸릴 테니, 귀족들의 재산을 챙겨서 병사들에게 뜨끈한 밥이라도 줍시다.”
“따르겠습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자, 잠깐… 허억!”
“뭐?”
백우진의 살기 어린 말에 나서려던 제국의 귀족들이 흠칫 놀라서 다시 들어가 버렸다.
“무영객.”
“옙!”
무영객이 앞으로 튀어나와서 황제의 옥좌에 올라갔다. 그는 황제가 나가려던 구멍을 살피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깁니다.”
“거긴 비밀 통로잖아.”
“함께 있슴다. 이런 방식이 숨기기 좋죠.”
히죽이던 무영객이 구멍으로 뛰어내렸다.
“그, 그걸 어떻게….”
“한눈에 그걸 찾았다고?”
귀족들은 믿을 수가 없는지 당황하며 소매를 쥐어뜯었다.
끼기기긱!
잠시 뒤 구멍에서 기괴한 소리가 흐르며 황제의 옥좌가 엘리베이터처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그 후 바닥이 열리며 차가 다녀도 될 정도로 넓은 계단이 나타났다.
어둑한 계단의 끝에서 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금빛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꺼허억!
“엄청나군.”
백우진이 입을 쩍 벌렸다. 지금까지 많은 비밀창고와 보고들을 보았지만, 그 어떤 곳도 이곳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좌측엔 보석과 장신구, 우측엔 무기와 갑주, 중앙엔 책과 영약들로 가득했고, 바닥에는 헤아릴 수 없는 금이 깔려 있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의 보물들이다.
“캬하!”
어느새 따라온 무영객은 황홀한 표정으로 금빛 바다에 뛰어들었다.
“아, 안 돼!”
“망했어….”
“…….”
귀족들은 그 모습을 보고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가져온 보물들의 상당량을 이 보고에 숨겨 놓았던 것 같다.
“딱 절반만 챙겨.”
“예!”
황궁의 곳간을 모조리 가져가면 남은 백성만 피를 본다. 놈들이 딴생각하지 못하게 절반 정도만 가져간 뒤 감시하는 게 나았다.
“빨리빨리 챙기죠. 다음도 있으니까.”
무영객이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로 다가왔다.
“다음?”
“저 귀족들이 황제의 보고에 보물들을 다 부었을 리는 없잖아요. 아직 한참 남았슴다.”
무영객의 눈동자가 노랗게 빛날 때 제국의 귀족들은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
백우진은 데플과 성주들에게 보물들의 처리를 맡긴 후 황궁 밖으로 나왔다.
-저놈 진짜 귀신 아니냐?
‘그러게. 어떻게 그렇게 잘 찾는 거지?’
무영객은 그 뒤로도 귀족들이 숨겨 놓은 보물 창고들을 세 개나 더 찾아냈다. 초월에 닿아도 놈의 후각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음, 저 녀석….
‘그대로 계셨군.’
흑암이 한숨에 고개를 돌렸다. 카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카바론이 거품이 되어 사라진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 오셨어요?]자신을 본 카렌은 빠르게 눈가를 훔쳐 낸 뒤 어색하게 웃었다.
“덕분에 잘 끝났습니다. 연합군 모두에게 적당한 보상이 돌아갈 것 같습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넌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카렌.
[돌아가야지.]
“네? 이곳에 있는 것도….”
[전 이미 인간이 아니에요. 대륙에 있을 수는 없죠.]
카렌이 고개를 살짝 내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좀 쉬다가 가는 게 낫잖아.
[이제 걱정할 것도 없고, 힘쓸 일도 없어. 잘 먹고, 푹 쉬면 돼.]
-흐음….
카렌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저었지만, 흑암은 그 얇은 팔목 때문에 더 걱정스러운지 신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네요.]카렌은 차분하게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제 억지를 따라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처음에 제대로 설명해 드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말씀드렸듯이 저 역시 카렌님에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도 감사드려요.”[후후, 그런가요….]
백우진과 카렌은 서로를 바라보며 같은 미소를 그렸다.
-야, 나는! 나한테도 감사 인사 하라고!
[넌 한 거 없잖아.]
-너가 아니라, 오빠라고 불러! 그리고 내가 왜 한 게 없어! 저 녀석 업어 키운 거 나라고!
[아닌데. 우진 님은 혼자 크셨는데? 가끔 내가 도와줬을 뿐.]
-가끔 도와줘? 맨날 퍼줘 놓고? 이 자식이 진짜!
흑암이 카렌의 머리를 치려고 검면을 내리쳤지만, 그녀에게는 닿지 않았다. 둘은 한참을 실랑이를 벌였다.
그 모습이 흑암의 기억에서 장난을 치던 둘과 똑같았기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돌아가야겠네요.]카렌은 지쳤지만 즐거워 보이는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우진 님 귀환도 준비해야 하니까요.] “아, 그렇겠네요.”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일도 다 끝냈으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귀환 전에 혹시라도 제게 원하시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들어 드릴게요.] “무엇이라도요?”[아, 무력 쪽은 안 돼요. 솔직히 말해서 우진 님의 무력은 제가 제어할 수 있는 한계를 한참 넘었어요.] “음….”
턱을 긁적이며 생각을 해 보았다. 더 이상 무력은 안 된다고 하니,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저 괴물 말고 나도 좀 챙겨 주라고!
[카인도 마찬가지야.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딱히….]
카렌에게 붙은 흑암을 보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있네요. 부탁.”
백우진이 히죽 웃으며 카렌에게 다가갔다.
“제 부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