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72
372화. 마계화
백우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손을 짚은 곳엔 갈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진흙 같은 게 있었다.
‘평범한 진흙이 아니야.’
연무장 관리를 소홀하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진흙 아래에서 미약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기다….’
마기보다 놀라운 건 호흡이다.
이 기괴한 바닥은 용암처럼 부글거리며 마기 어린 숨을 내뱉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주님! 연무장 바닥에 징그러운 진흙이 있습니다!”
“따, 땅만이 아님다! 벽면에도 붙어 있어요!”
문주영과 무영객도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보라색 진흙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으음….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흑암이 침음성을 흘렸다.
‘흑암?’
-이거 좆 됐는데?
‘뭐?’
-위에서 봤을 때부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흑암이 검날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마계가 너희 땅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침식?”
백우진이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대답했다.
-카바론이 지구와 마루툰 대륙, 마계를 합치려고 했던 건 기억하지?
‘그건 막았잖아!’
-마족 놈들이 수를 쓴 것 같다. 확실하진 않지만, 마계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기 전에 빠져나와서 이 땅과 마계를 연결시킨 것 같다.
‘썩을!’
욕이 절로 나온다. 이제 모든 위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마계의 침식이라니,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 기분이다.
‘이게 마계가 이곳을 침식하는 증거라고?’
부글거리며 호흡하는 보라색 바닥을 가리켰다.
-그래. 마계의 땅은 대부분 저 마령토라는 것으로 덮여 있지.
‘마계의 땅이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마기가 약한데?’
마계의 침식이라는 심각한 위협과 달리 마령토에서 강한 마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침식을 주도하는 핵과 떨어져 있기 때문이겠지.
‘핵?’
-핵 근처라면 네가 지금까지 느껴 본 적 없는 마기가 들끓고 있을 거다.
‘망할!’
백우진이 땅을 내려치며 일어섰다.
“그거 만지지 마. 위험할 수도 있다.”
마령토를 만지려는 문주영과 무영객에게 손을 저었다.
“아, 예!”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는 건 또 처음이네.”
문주영은 바로 손을 뗐고, 무영객은 코를 막으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이 침식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 짓을 벌인 놈을 죽여야겠지. 최소 최상급 마족. 아니, 핵과 떨어진 곳까지 퍼뜨릴 정도면 군주급은 될 거다.
‘군주라면….’
-마왕이지. 그 마계가 5마계였으니 그곳을 지배하는 왕일 거다.
‘하아, 신 다음에는 마왕이야?’
백우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신을 꺾은 지 고작 한 달이 지났는데 이젠 마왕이라니,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어디….”
기감을 흩뿌려 백가 전체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뭐지?’
가문 내의 검사들의 숫자가 4분지 1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검사들이 전시 상황 이상으로 많이 빠져 있었다.
“문제가 생긴 건 확실하군.”
혀를 차며 손을 털었다.
“일단 가주전으로 가….”
연무장을 나서려 할 때 문이 벌컥 열리고 백은경이 달려 들어왔다.
“백우진!”
그녀가 당황과 반가움이 어린 눈빛으로 자신의 팔을 붙잡았다.
“왜 이제 온 거야!”
**
백우진은 백은경을 따라 가주전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들어오는 가주전이지만, 꾸준히 관리했는지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일단 앉아.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테이블의 상석에 앉았다. 백은경은 복잡한 감정이 담긴 한숨을 내쉬며 좌측에 의자를 끌어왔다.
“처음부터 설명하자면 네가 보낸 실을 따라, 그 세계에 다녀온 이후야.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 하늘에 처음 보는 별이 나타났지.”
“별이라면?”
“반은 푸르고, 반은 붉은 아름다운 별이었지만, 여태까지 보아온 그 어떤 존재보다도 지독한 기운이 느껴졌어.”
-마계다. 지구 위에 떠 있던 5마계.
‘그래.’
자신 역시 마루툰 대륙에서 백은경이 말한 마계를 보았었다.
“점점 짙어지던 별은 다시 반투명한 상태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어. 그렇게 모두가 안도를 할 때….”
백은경이 입술을 팍 씹으며 테이블을 두들겼다.
“그 별을 감싼 투명한 막이 깨지며 마족들이 튀어나왔어.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숫자가.”
“등급은?”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하급부터, 고등급 능력자도 상대하기 힘들 정도의 최상급까지. 다양했지.”
“상대하느라 힘들었겠군.”
“힘들었지. 하지만 정말 힘든 건 그게 아니야.”
백은경의 눈동자가 지진 난 듯 흔들린다. 그 흔들림의 근원은 공포다. 그것도 압도적인 공포.
“마족들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자신을 마계의 왕이라 칭한 자가 모습을 드러냈어.”
“마계의 왕?”
“놈은 전 세계의 모든 인간에게 염화(念話)를 보내서 자신의 정체와 존재를 알렸지.”
“지구에 있는 모두에게 염화를? 그게 가능해?
“그래. 그것도 동시에 말이지.”
-허!
“미친….”
백우진이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염화를 전 세계에 보내다니….’
염화란 텔레파시다.
입을 열지 않고 자신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초능력인데, 그걸 전 세계 모두에게 동시에 보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시에 마계의 왕이 있던 곳은 중국 상공이었지만, 여기서도 놈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어. 공기가 떨리고, 마기의 압력에 짓눌리는 느낌이었지. 그렇게 무시무시한 놈은 처음이야.”
항상 당찬 백은경의 목소리가 칼로 자른 듯 잘게 떨린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보니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모든 마족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그녀는 마계의 왕이라는 놈의 힘에 짓눌린 상태였다.
“그 왕이라는 놈이 뭐라고 했는데?”
“게임을 하자고 말했어.”
“게, 게임?”
“66일간 힘을 모은 후 정복을 시작할 테니, 그 전에 자신을 찾아와 죽이는 게임을 하자고….”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할 놈은 얼마 없는데…. 그놈 이름이 뭔지 물어봐라.
“그놈의 이름은?”
“벨제뷔트. 스스로 모든 악마들의 군주라고 말했어.”
-역시 그놈이었군.
벨제뷔트라는 이름을 듣자, 흑암의 칼날이 극한으로 떨렸다.
‘아는 놈이야?’
-예전 3마계의 왕이었던 놈이다.
‘3마계? 그러면 쫓겨난 건가?’
-아니지. 정복한 거다. 그 욕심 많은 파리 새끼가 5마계까지 먹어치운 거라고!
‘그럼 드럽게 강하다는 거잖아!’
백우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본 5마계의 크기는 지구보다 좀 작은 정도다.
3마계도 그 정도 크기는 될 테니, 그 두 개를 모두 얻은 벨제뷔트라는 놈은 상상 이상의 괴물임이 분명했다.
-강하지.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놈은 내가 인간일 적부터 마계에 군림한 괴물이다. 괜히 악마들의 왕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으음….’
-솔직히 말해서 백은경의 입에서 그놈만큼은 나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아무래도 넌 어려운 싸움만 골라서 하는 모양이다.
흑암은 반쯤은 안쓰럽게, 반쯤은 흥미로운 울림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 이후에는?”
“벨제뷔트는 사라졌고, 마족들과 놈들이 데리고 나온 마물들로 온 지구가 들끓기 시작했어. 능력자들은 힘든 싸움을 벌이면서도 계속해서 벨제뷔트의 은신처를 수색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그곳을 발견해 냈지.”
“거기가 어딘데?”
“너도 잘 아는 곳이야. 놈은 전방의 땅속 깊은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어.”
-그럴 만하군.
흑암이 물레방아처럼 검날을 천천히 주억였다.
-처음 놈이 숨었다고 들었을 때부터 그곳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땅은 인간들과 흑귀, 몬스터들의 저주와 피로 얼룩진 땅이니까. 그 땅에 박힌 기운들을 흡수해서 차원을 넘어올 때 소모한 마기를 회복 중일 거다.
‘예전에 정화했다고 들었는데?’
-그래 봐야 얕은 바닥이겠지. 대지 깊숙이 잠든 저주스러운 기운은 인간의 힘으로 지울 수 없어.
‘망할!’
백우진이 혀를 찼다. 힘이 약해졌을 때도 백은경이 공포를 느낄 정도인데, 마기를 되찾은 놈이 어느 정도의 기운을 뿌릴지 예상되지 않았다.
“벨제뷔트의 위치를 찾았으니, 능력자들이 놈을 잡으러 가기 위해 모였겠지? 출발은 언제야?”
“이미 출발했다. 벨제뷔트가 나타난 지 오늘로 65일째니까.”
백은경가 옅게 한숨을 내뱉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서류를 보여 주었다.
“전방의 이상을 발견한 건 한참 전이지만, 출발하지 않고, 널 기다렸다. 네가 있어야 벨제뷔트를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넌 한 달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능력자들은 64일째인 어제 그 숲으로 진입했어.”
그녀는 아쉬움과 답답함에 테이블을 거칠게 긁었다.
“형과 부가주님이 검사들을 데리고 나가서 가문에 사람들이 없었던 거였군”
“그래. 나를 포함한 소수의 검사들만 이곳에 남았지. 도시에서 나오는 문제도 해결해야 하니까.”
“이제 알겠어.”
백우진이 벌떡 일어섰다.
“백우진?”
“가야지. 지금이라도.”
“바로 간다고? 너도 힘든 싸움을….”
“쉴 만큼 쉬고 왔으니, 걱정 마.”
“하지만!”
“누나는 여기를 잘 지켜 줘.”
“아….”
백은경은 말을 잇지 못하고, 여러 감정이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작게 웃어 주고서 가주전의 문으로 향했다.
“가자.”
“예!”
“알겠슴다!”
입구에서 듣고 있던 문주영과 무영객이 문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모든 사정을 들었음에도 그들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음….
가주전을 나서는데 흑암이 힘 빠진 연처럼 너풀거렸다.
‘왜?’
-우리의 일 때문에 너희 세계에 피해를 주다니, 뭐라 할 말이 없어.
‘너답지 않은 소릴 하는군.’
백우진이 덤덤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 때문이 아니라, 일이 그렇게 흐른 거다. 네가 나한테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언제부터 그렇게 약해졌지?’
-이, 이 녀석….
‘무언가 하고 싶다면 이후의 전투에서 최선을 다해 날 도와. 그거면 충분해.’
-오냐! 내 칼날로 벨제뷔트의 목을 베어 주마!
‘좋네.’
백우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휴식과 네 드라마를 방해한 그 망할 놈의 면상을 보러 가자고.’
**
백우진은 문주영, 무영객을 데리고 백가를 나왔다.
외부의 상황은 백가 내부보다 더 심각했다. 마령토가 도로와 인도 곳곳이 퍼져 있어서 사람도 차도 다니지 않았다.
조를 이루어서 순찰하는 능력자들이 아니었다면 유령 도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문을 꽉 걸어 잠그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을 챙기기보다 이 원인을 해결하는 게 중요했기에 바로 차원문을 타고 전방으로 향했다.
“쯧, 예전보다 훨씬 심하군.”
차원문을 나와 전방의 전경을 살핀 백우진이 입매를 비틀었다.
첨탑처럼 우뚝 선 흑목은 없었지만, 흑목이 박혀 있던 곳에 하늘을 뚫는 크기의 검은 기류가 치솟아 있었다. 끝없이 회전하는 용오름이 천공을 뚫어 내는 것 같았다.
“가, 가주님. 바닥이….”
“전부 마령토로 뒤덮였는뎁쇼?”
“음….”
문주영과 무영객의 말대로 전방의 대지 전체는 마령토로 바뀐 상태였다. 일부분만 침식당한 서울과는 전혀 달랐다.
다만 문제는 마령토가 아니다.
이 공간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는 막대한 농도의 마기가 심각했다.
-마계화가 거의 진행되었군.
‘내 눈에도 보여.’
흑암의 말대로 이곳은 지구가 아니라, 마계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막지 못한다면 이 세계 전부가 저런 형태가 될 거다. 드라마도 제대로 촬영하지 못하겠지.
‘거기서 드라마가 나와?’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나 참.’
백우진은 헛웃음을 흘리며 전방의 숲으로 향했다.
전방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백의를 입은 능력자들이 둥글게 모여 있었다. 지원 부대인 것 같았다.
“어? 저, 저 사람은!”
“서, 설마!”
“백우진! 백우진 님이다!”
“드디어 오셨어!”
“협제님!”
“으아아아아!”
자신을 확인한 지원 부대의 능력자들은 기타 줄처럼 손을 흔들며 환호를 보냈다.
“백우진?”
환호하는 사람들의 중심에서 정근호가 튀어나와 눈을 부릅떴다.
“너 어떻게 된….”
“이제 돌아왔어. 넌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너 사정은 다 알고 온 거냐?”
“능력자들이 어제 진입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휴우,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난 여길 지키는 중이다. 저곳에서 튀어나오는 마족들을 막고, 부상자들을 빼내기 위해서.”
정근호가 어둠으로 가득 찬 숲의 입구를 가리켰다.
-중요한 일을 맡고 있군. 요 녀석도 이제 밥값 좀 하나 본데?
‘기운도, 기세도 강해졌으니까.’
정근호가 가진 정령의 기운은 이전과 격이 다를 정도로 성장했다. 이런 중요한 일을 괜히 맡은 게 아니었다.
“상황은?”
“오늘 오전에 중계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그 이후에는 통신이 되질 않아.”
“중계?”
“저곳이다.”
정근호가 몸을 돌려 검은 기류로 뒤덮인 숲의 중앙을 가리켰다.
“우리가 임의로 나눈 단계다. 이 입구부터가 원계, 저 기류가 터지는 곳이 중계, 기류의 중심이자 가장 깊은 곳이 심계다. 단계가 달라질 때마다 마기의 질과 마족들의 수준이 달라지지.”
“그렇군.”
전과 비슷했다. 중앙으로 갈수록 힘들었으니까. 다만 이번엔 더 지독한 기운과 강한 마족들이 설치고 있었다.
“부상자들은 없어?”
“그래. 한 명도 나오질 않았어.”
“…좋은 징조가 아니네.”
마족, 마물과의 전투인데 부상자가 없을 리가 없다.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는 뜻이다.
“바로 갈 거냐?”
“가야지.”
백우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원 부대를 떠나 숲의 입구로 향했다. 문주영은 단호한 얼굴로, 무영객은 오묘한 눈빛을 발하며 그 뒤를 따랐다.
“백가주님! 부탁드립니다!”
“마왕을 꺾어 주세요!”
“제발! 다른 사람들을 구해 주십시오!”
“으음….”
정근호는 능력자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으며 떠나는 백우진을 보고 눈매를 좁혔다.
‘갑자기 불안감이 사라지는 느낌이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원 부대는 마족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로 짓눌려 있었다. 이름난 능력자 모두가 모였어도, 마족을 뚫고 마왕을 죽이기엔 힘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백우진이 온 것만으로 지원 부대 능력자들의 눈동자에 어둠이 사라지고, 광명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제 좀 알겠군.’
스승 윤우민이 말했던 백우진의 진짜 능력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저게 희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