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75
375화. 마계화 (4)
이그니스와 설빙을 비롯한 네 정령들은 왕의 그릇답게 막강한 정령력을 발휘하여 심계 앞을 지키던 마족들을 모조리 쓸어 버렸다.
“정령들이 더 강해진 것 같은데요?”
“강해진 정도가 아니야. 하나하나가 정령왕에 근접할 정도로 성장했어.”
백연휘의 물음에 윤우민이 헛웃음을 흘렸다.
‘세계수가 있던 차원에서 많은 성장을 이루고 온 모양이군.’
백우진의 능력을 따라 그 차원으로 넘어갔을 때 세계수의 존재를 느꼈다. 그의 정령들은 그 기운을 받아 저렇게 성장한 것 같았다.
“저게 그 백우진인가?”
“소, 소문이 반도 못 따라가네요. 검술도, 정령도 모두 규격 외예요.”
미국의 절대자 리제와 남미의 유일한 절대자 하드겐이 백우진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초월이라는 새로운 단계에 올랐다더니, 거짓이 아니었어. 격이 다르더군.”
“같은 인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야.”
일본의 9등급 마법사 츠구모가 입술을 깨물었고, 최강의 신성 능력자라 불리는 트리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중계에서 싸우던 능력자들은 백우진의 무력과 정령에 압도당해 넋을 반쯤 놓고, 그를 바라만 보았다.
“모두 수고했어. 마족이 더 나타날지 모르니, 이곳을 지켜 줘.”
[크르르!]
[캬우웅!]
이그니스와 설빙은 알겠다는 듯 허공을 향해 불과 얼음을 내뿜었다.
“돌아가면 너희들이 좋아하는 간식 맘껏 먹게 해 줄게.”
[크어어어엉!]
[카오오오오!]
[크르르릉!]
[쿠룽!]
정령들은 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포효를 터트렸다.
-역시 간식이 최고지.
흑암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정령들을 보며 킥킥 웃었다.
“그럼 방향을 나눠서….”
“이곳에 오는 길에 연화를 보진 못했나?”
정령들을 배치할 때 적위진과 적경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적연화를 데리고 왔지만, 걱정되는 것 같았다.
“큰 부상은 없었지만, 지친 상태라 길을 잘 아는 녀석을 붙여서 돌려보냈습니다.”
“돌려보냈다고?”
“여기서 다 끝날 테니까요.”
백우진은 당연한 일처럼 덤덤하게 대답했다.
“이야! 자신감 보소? 아버지! 이 녀석 잡아야 한다니까요!”
“넌 좀 가만히 있어.”
적위진은 쫑알거리는 적경훈의 이마를 치고서 자신에게 살짝 고개를 내렸다.
“신경 써 줘서 고맙다. 또 빚을 졌어.”
“아닙니다.”
백우진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체 언제 돌아온 거냐.”
뒤에서 지켜보던 백천웅이 다가왔다.
“하루도 되지 않았습니다. 누나에게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왔으니까요.”
“바로 왔다고? 피곤할 텐데….”
“괜찮습니다. 푹 쉬고 왔어요.”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다. 마루툰 대륙에서 한 달간 휴식하고 왔기에 체력과 정신력은 만전이었다.
“정말 괜찮아?”
“그래. 지금 당장 마왕하고 싸워도 이길 정도로 거뜬해.”
백연휘의 걱정에 움켜쥔 주먹을 들어 올리며 웃어 주었다.
-다들 네 걱정만 해 주네. 이거 부러워서 살겠나….
‘네 걱정은 카렌이 해 주잖아.’
-으윽!
흑암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카렌은 이 상황을 몰랐던 건가?’
-차원 이동과 내 몸을 준비하느라, 몰랐을 거다. 알았으면 미리 알려 줬겠지.
‘하긴.’
고개를 끄덕이고서 흑목의 밑동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우우우우웅!
자신 덕분에 여유를 찾은 절대자들과 신성 능력자, 마법사들이 마기로 가득 찬 바닥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들은 바닥에 깔린 마기를 뚫기 위해서 각자가 가진 최고의 무예와 마법들을 펼쳐 냈다.
마지막으로 신성 능력자들의 축복이 그 기운을 휘감았다.
콰아아아아!
능력자들의 기운은 벽을 뚫는 드릴처럼 바닥에 깔린 마기를 가르기 시작했다.
“어?”
“마, 막힌다! 더 힘을 줘!”
“크윽!”
하지만 그들의 기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진하고 두꺼워지는 마기를 뚫지 못하고 흩어져버렸다.
고오오오!
어느 정도 뚫렸던 마기의 구멍은 샘물처럼 차올라 원래대로 지면까지 솟아올랐다.
“워, 원상복구?”
“절대급 능력자 열 명이 동시에 힘을 썼는데 안 뚫린다니….”
“마기가 얼마나 담겼기에 이 정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능력자들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다시! 다시 해라!”
황병훈의 외침에 능력자들은 다시 기운을 모아 바닥에 쏟아부었다. 신성 능력자들과 마법사들도 탈진할 것처럼 모든 기운을 뿜어냈다.
콰아아아아!
뭉친 기운은 이전보다 더욱 강하고 빠르게 마기를 찢었지만, 결국 심계로 들어가는 통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짙은 마기 앞에서 녹아 버렸다.
-에잉, 무능한 것들.
‘마기가 강한 거야.’
백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흑목 밑에 있는 마기는 이곳에 떠도는 것과 질이 달랐다. 벨제뷔트가 직접 손을 쓴 게 분명했다.
“후우….”
라사둠의 오러를 휘돌리며 능력자들이 모인 곳으로 다가갔다.
“우진아?”
“제가 해 보겠습니다.”
당황하는 황병훈에게 싱긋 웃어주며 설영검을 뽑았다.
“너는 힘을 많이 쓰지 않았느냐. 이건 우리에게….”
“제게 좋은 게 있거든요.”
백우진이 ‘시르콘의 성령 팔찌’와 ‘엘프와 드워프의 선물’을 가리켰다.
“잠시만 물러나 주세요.”
자신감 있는 목소리에 능력자들은 귀신에 홀린 듯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치이잉!
설영검에 라사둠의 오러를 두르자, 팔찌에 담긴 성령과 반지에 어린 세계수의 기운이 칼날 위로 번져 갔다.
우우우웅!
검게 물든 설영검의 검신 위로 백광과 녹광이 어우러지며 신비로운 광채를 펼쳐 냈다.
-뭘로 벨 거냐?
‘당연히 참마로.’
마를 베는 검로 참마의 투로를 운용하며 마기로 가득 찬 바닥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아!
무시무시한 검격이 타오르며 대지를 덮은 마기가 홍해처럼 갈라진다.
찌지지직!
참마의 검격은 그 이름 그대로 모든 마를 벨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마기가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바닥까지 밀려났다.
퍼어어어엉!
고막이 파열될 듯한 굉음이 터지며 구멍에 박혀 있던 지독한 마기들이 모조리 녹아내렸다.
치이이익!
엘프와 드워프의 선물이 가진 특수 효과 때문인지 주변의 마령토까지 정화되어 원래의 빛으로 돌아갔다.
“와….”
“저, 저 정도 신성 능력까지 있다고? 트리온 이상이잖아!”
“진짜 미쳤어….”
능력자들은 설영검에서 피어난 성령과 세계수의 기운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표정들을 보니, 아까 반쯤 나가다가 다시 들어온 혼이 완전히 가출한 것 같았다.
“끝이 보이질 않는군.”
백우진은 참마로 뚫어 낸 구멍을 바라보았다. 무저갱처럼 바닥이 보이질 않았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진한 마기가 들끓고 있었다.
“음?”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때 구멍에서 어마어마한 마기가 치솟았다.
“모두 물러나!”
의념을 펼쳐서 능력자들을 뒤로 보내자마자, 대지 아래에서 막대한 충격파가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지진이 난 듯 대지가 뒤틀리고 있을 때 구멍에서 검은 인영이 튀어나왔다.
눈동자는 장미처럼 붉고, 고양이처럼 세로로 갈라졌다. 이마 위론 네 개의 뿔이 솟구쳐 있었고, 등 뒤에서 여섯 장의 날개가 펄럭이며 붉은 안개를 피워 냈다. 외형도 마기도 겪어 보지 못한 수준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대로군.”
마족에게서 용암이 들끓듯 열기로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놈 디아볼로스잖아!
‘디아볼로스?’
-예전 5마계의 서쪽 겁화 지대를 지배하던 마족이다! 마계의 절반을 지배하던 괴물이라고!
‘그렇군.’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로 거대한 마기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이치에 맞는다.
“다만 이후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너희는 모두 여기서 죽을 테니까.”
디아볼로스의 손아귀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불? 아니 잠깐, 저거….’
저건 불길이 아니었다. 끈적하고 비릿한 액체, 물도 불도 아닌 놈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였다.
“혈괴우.”
디아볼로스가 손을 쫙 펼치자 그의 손아귀에 어려 있던 핏덩이가 구슬처럼 작은 알갱이가 되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 피는 단순한 비가 아니었다.
콰아아아아아!
마법보다도, 포탄보다도 더 막강한 위력을 펼치며 주변을 초토화로 만들었다.
“끄아아아악!”
“커허억!”
내리치는 혈우에 미국의 절대자 리제의 신체가 붕괴되었고, 최강의 신성 능력자 트리온이 펼쳐 낸 신실의 우비가 물에 젖은 한지처럼 녹아내렸다.
-저건 단순한 혈액 마법이 아니야! 저주가 어린 힘이다!
흑암의 말대로 혈괴우엔 지독한 저주가 어려 있었다. 작은 알갱이에 닿는 모든 걸 터트리고, 녹여 버렸다.
“뭐야 이게!”
“무, 물러나! 막을 수 없어!”
능력자들은 다급하게 피의 비가 내리는 범위를 벗어나려 했지만, 비가 번지는 범위가 더 빨랐다.
“흥! 마족 따위!”
황병훈은 매처럼 비상하며 장창에 가진 기운을 모조리 쏟아부어 디아볼로스를 향해 날렸다.
지지지직!
장창엔 황병훈이 펼쳐 낸 무의 묘리와 막강한 강기가 어려 있었지만, 디아볼로스의 주변에 퍼진 붉은 안개를 뚫지 못하고 부식되었다.
그 뒤를 이어 마법사들이 날린 9등급 마법 라키아크의 벼락과 질레튼의 파랑 역시 피의 안개를 가르지 못하고 흩어졌다.
“허억!”
“미, 미친!”
“창왕의 강기도, 9등급 마법도 통하지 않는다고?”
마법과 강기가 녹아내린 것에 능력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강기도, 마법도, 신성 능력도 통하지 않으니,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우우웅!
백우진은 물러나지 않은 채 흑암을 손에 쥐었다. 쏟아져 내리는 혈우를 향해 낮은 구릉처럼 부드러운 호를 그렸다.
펄럭!
바람에 나부끼는 긴 깃발처럼 허공이 검게 펼쳐지며 비를 뿌리는 피의 덩어리를 모조리 감싸 버렸다. 흑암의 네 번째 검 흑현금이었다.
“혈귀필.”
디아볼로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놈의 손가락 끝에서 붉은 빛이 피어나더니, 한 줄기 선이 터져 나와 자신의 심장으로 쇄도해 왔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모두가 반응하지 못할 속도였지만, 백우진은 홀로 그 궤도와 속도를 파악했다.
파아앙!
회를 뜨듯 흑암의 칼날을 눕혀 혈귀필을 비껴 낸 후 놈의 목을 향해 비뢰섬을 쏘아 냈다.
파지지직!
초승달처럼 펼쳐진 강대한 뇌전이 번졌지만, 디아볼로스의 주변을 덮은 피의 안개를 가를 수는 없었다.
“너희들의 추잡한 힘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디아볼로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손가락 위로 붉은 꽃봉오리를 피워 냈다.
화아아아!
봉오리가 조금씩 개화하자, 놈의 주변에 어린 마기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지독해졌다.
“이 혈화가 완전히 피어나는 순간 네놈들의 생은 꺼지게 될 거다.”
“그건 확실히 위험해 보이네. 막아야겠어.”
“이미 늦었다. 혈멸화가 피어난 이상 너희들에게 남은 건 죽음뿐이다.”
“아, 그래?”
백우진이 피식 웃으며 아무것도 들지 않은 왼손을 뻗었다.
“이제 정신까지 나간 모양이구나. 무슨 헛짓을… 어?”
그의 전신에서 칠흑의 빛이 번쩍이자, 디아볼로스의 손에서 개화하던 혈멸화가 담뱃불에 지진 것처럼 회색 재가 되어 사그라졌다.
“이게 무슨… 커헉!”
그것만이 아니다.
디아볼로스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바닥으로 추락하고, 그의 주변을 둘렀던 피의 안개도 사라져 버렸다.
“끄으윽! 네, 네놈,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베었다.”
백우진은 서늘한 눈빛으로 디아볼로스를 굽어보았다.
“베, 베었다고? 넌 분명 검을 들지도….”
“손에 쥐는 것만이 검이 아니지.”
디아볼로스가 혈멸화를 개화하기 직전에 심검으로 놈의 혼을 베었다. 저놈의 생은 이미 끊어졌다.
“그게 무슨 개소리….”
“네 목은 이미 떨어졌어.”
그 말을 남기고 디아볼로스를 떠나 심계로 들어갈 수 있는 구멍으로 향했다.
“어, 어딜 가는 거냐! 난 아직 죽… 지 않았….”
디아볼로스는 마지막 말조차 잇지 못하고 땅에 머리를 박았다. 혼이 베인 놈의 신체는 한 줌의 핏물이 되어 녹아내렸다.
“어? 어어?”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설마 저거… 시, 심검?”
“마, 맞는 거 같아요. 우진 님의 주변에서 압도적인 검기가 번쩍이고 저 악마가 죽었으니….”
다른 사람들은 상황 자체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평생 검을 수련한 백천웅과 검후는 심검을 알아본 것 같았다.
물론 그걸 알았기에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놀라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뒤로 자빠졌지만.
-사기로 이기니까 좋냐?
흑암은 녹아내리는 디아볼로스를 보며 검날을 절레절레 저었다.
디아볼로스 수준의 악마를 저렇게 간단하게 잡을 줄은 몰랐다. 막을 수 없는 마음의 검이라니, 아무리 보아도 심검은 개사기였다.
“저 안이로군.”
백우진은 흑암의 질투를 무시한 채 심계까지 뚫린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아래가 보이지는 않지만, 거대한 마기는 느껴졌다.
“혼자 다녀올 테니, 여기서 대기해 주세요.”
“우, 우진아!”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나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구멍으로 뛰어내렸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진해진 마기가 폐부를 압박해 왔다. 라사둠의 오러를 둘러 마기를 밀어내며 계속 내려갔다.
터억!
한참 떨어지고 나서야 바닥에 닿을 수 있었다. 다만 이 아래의 마기는 오히려 위보다 적었다.
-마기가 적어.
‘다 빨아 먹었다는 뜻이겠지.’
혀를 차며 뒤를 돌았다. 애벌레가 실을 내뿜어 번데기를 만들듯 마기의 실로 둘러싸인 거대한 고치가 바닥과 연결되어 있었다.
고치에서 역겨우면서도 거대한 마기가 느껴지는 걸 보니, 벨제뷔트라는 마왕이 저 안에서 바닥에 깔린 마기를 모조리 먹어 치운 게 분명했다.
-빨랑 베라.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흑암을 양손으로 쥐었다.
고오오오오!
흑암의 기운과 라사둠 오러의 흐름을 하나의 선으로 조화시키며 인의의 검격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아!
검극에 어린 묵색의 광휘가 폭발하며 지하 전체를 가르는 장대한 검격이 펼쳐졌다.
찌지지직!
단단해 보이던 고치의 외피가 두부처럼 베어졌다. 흑암을 끝까지 내리그어 외부만이 아니라, 그 안까지 모조리 갈라 버렸다.
“어?”
고치를 완벽하게 녹였지만, 백우진의 표정은 비할 데 없이 심각해졌다.
“없어….”
고치 안에는 막대한 마기만 압축되어 있을 뿐 벨제뷔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뭐야! 벨제뷔트 어디 갔어!
“이게 무슨….”
[난 그곳에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자신감과 흥미로움이 어우러진 목소리다.
-설마….
“네가 벨제뷔트인가?”
[그래. 내가 마귀들의 왕 벨제뷔트다.]
목소리는 스스로 벨제뷔트라 칭했다. 염화를 듣다 보니, 전에 백은경이 말해 주었던 놈이 처음 나타났을 때의 상황이 생각났다.
“너 지금 어디야. 아직 65일인데 왜 여기에 없는 거야!”
[눈을 감아 보아라.]
“무슨 짓을 하려고….”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 눈만 감아 보도록.]
“음….”
백우진이 입술을 깨물며 눈을 감았다. 이 상황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어?”
눈을 감자, 다른 세상이 보였다. 어둑한 보랏빛 하늘이 펼쳐져 있고, 그 앞에 화려한 고층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잠깐만 저거!
“서, 서울?”
수없이 보아 온 그 장소. 서울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 너희들에게 보여 주는 건 내가 보고 있는 시야다.] “네가 왜 서울에 있어! 왕이라는 놈이 약속을 어긴 거냐!”[아니, 난 제대로 약속을 지켰다.] “개소리! 넌 분명 66일 동안 이곳에서 힘을 모은다고 했잖아!”
[그랬지. 다만 그 66일의 시작이 너희들에게 나타났을 때부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전부터 시작하고 있었지. 제대로 말하자면 오늘이 70일째다.] “아….”
백우진이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저놈은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능력자들을 이곳으로 부른 뒤 텅 빈 도시를 학살할 생각이었던 게 분명했다.
[첫 번째 게임은 내가 이겼으니, 두 번째 게임을 시작하겠다. 이 땅에 있는 인간들을 모두 죽이기 전에 날 막아 보도록.]그 말을 끝으로 염화도 영상도 끊어졌다.
“젠장!”
백우진이 무극을 발동시키며 위로 뛰어올랐다. 만상보로 허공을 터트리며 내려온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구멍을 벗어났다.
“아아….”
“다, 당했어! 제기랄!”
“시발! 시발!”
능력자들에게도 벨제뷔트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모두가 절망하며 땅을 내리쳤다.
“이동 마법은! 이동 마법으로 절 한국으로 보내 주세요!”
백우진이 일본의 9등급 마법사 츠구모에게 달려갔다.
“바, 바닥만이 아니라, 이 공간 전체에 마기와 공간 이동 방해 마법이 깔려 있어서 이동 마법을 쓸 수가 없어요.”
“망할!”
이가 갈린다.
숲을 정화시키는 건 숲을 벗어나는 것 이상으로 시간이 걸린다.
결국 전방을 벗어나서 차원문을 나가야 한다는 건데, 그 시간이면 벨제뷔트는 서울에 있는 모든 인간을 죽이고도 남을 거다.
-아무리 마족의 왕이라고 해도 약속이라는 걸 지킬 리가 없었는데….
“젠장!”
당한 건 맞지만,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달려서라도 백가에 가야 했다.
“이그니스! 지금 당장… 어?”
이그니스를 타고 숲을 벗어나려 할 때였다. 머릿속으로 벨제뷔트와 전혀 다른 청아한 음성이 흘러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