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82
382화. 끝과 시작
“때?”
백우진은 눈썹을 내리며 카렌을 보았다. 살짝 붉어진 얼굴과 달리 그녀의 표정은 덤덤했다.
-때라면 설마 내 몸?
흑암은 제비처럼 떠올라, 카렌의 앞으로 날아갔다.
-내 육체가 벌써 준비되었다고?
[아니.]
카렌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무슨 때가 됐다는 건데?
[네 육체를 만들 준비.]
-엥? 방금은 준비 안 되었다고 했잖아.
[육체는 준비되지 않았지만, 네 육체를 만들 그릇의 준비가 끝났어.]
카렌은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검은 실선이 피어나며 사각의 형체를 만들었다.
“상자?”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만들어진 건 길쭉한 검은색 상자였다.
[맞아요. 상자.] -음, 이 상자는….“그 상자가 흑암의 육체를 만들어 줄 그릇인가요?”
[카바론이 흑암의 육체를 억지로 만들었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물론입니다.”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바론이 흑암을 기둥에 넣었고, 그가 짧은 시간 만에 인간이 되어 나타났던 일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카인의 영혼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육체를 만들어 주기엔 그 방식을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더라구요.] -어떤 방식이지?[이 상자 안에는 네 육체가 되어 줄 재료들이 담겨 있어. 그 재료들은 네 영혼이 기억하는 육체의 형태대로 새로운 몸을 만들어 줄 거야. 네 혼과 맞는 육체가 만들어지니, 완성도는 원래의 몸 이상이지.] -그럼 이 안에서 나와 내 육체가 성장한다는 말인가?
[바로 그거야!]
카렌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혼과 육체의 분리 문제도 없겠고, 육체에 대한 적응도 필요 없겠군.
[맞다. 다만 장점만 있지는 않지….]
-그럼….
“단점은 뭐죠?”
백우진은 흑암보다도 먼저 단점에 대해 물었다.
[시간이에요.] “시간?”[네. 카인은 이 안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해요. 어떻게 보면 짧지만 긴 시간이기도 하죠.]
카렌은 손가락 끝에 매달린 상자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우진 님에게 주어진 제 능력들도 사라질 거예요.] “시스템이 사라진다는 거죠?”[네. 상태창이나 시스템 메시지, 퀘스트가 전부 없어져요. 이미 얻으신 능력들은 상관없지만요.] “흑암에게 문제가 일어날 일은 없겠죠?”
[물론이에요. 안전 하나는 확실해요.] “그럼 전 상관없습니다.”
백우진이 입매로 호선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능력이 없어져도 상관없어.’
4년이면 흑암의 몸이 생긴다는데 자신의 능력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도 참을 수 있었다.
-후, 4년이나 걸리는 건가….
흑암은 카렌의 손가락 위에 뜬 검은 상자를 보며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 4년밖에 안 걸리는 거지! 육체 만드는 게 쉬울 리가 없잖아.”
-그건 알지만….
“카렌 님이 원래보다도 완벽한 몸을 만들어 주신다잖아! 그만 입 털고 빨랑 들어가!”
-시, 시꺼! 좀 기다려!
“설마 드라마 때문이야?”
백우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깊은 한숨을 뱉었다.
“너 돌아오면 초대형 티비로 지금까지 나온 드라마 전부 볼 수 있도록 렉플릭스까지 결제해 놓을 테니, 걱정 말고 들어가.”
-그것도 있긴 한데….
“그것도 아니면 대체 뭔데?”
-…다.
“어?”
-…않는다.
“제대로 좀 말해!”
흑암에게 귀를 가져다 대었다. 작게 말하는 게 아니라, 아예 발음을 죽이고 있어서 들리지 않았다.
-네놈 자식이 걱정돼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흑암이 빽 소리를 지르며 칼날을 내리쳤다.
“어? 음.”
백우진이 부르르 떠는 흑암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크하하하하!”
카렌이나 흑암이 보이지 않게 손으로 눈을 가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뭐, 뭐가 웃겨! 너보다 약한 내가 걱정해 주는 게 웃기냐! 심검 좀 쓴다고 이제 뵈는 게 없지? 엉?
“아니, 아니야.”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방진 이유일 리가 있겠는가.
‘저 녀석도 한결같군.’
처음 만나 연무장을 달릴 때부터 지금까지 흑암은 자신을 걱정해 주고 있었다.
본인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육체를 가질 기회가 왔음에도 자신을 걱정해 주다니, 순간 울컥해서 눈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는 알아. 날 계속 봐 왔으니, 무력이나 정신과는 다른 면을 걱정하고 있겠지. 다만 가문의 일도 해결되었고, 내가 25살이 될 때까진 별문제도 벌어지지 않아.”
백우진이 눈을 가린 손을 떼며 한결 편해진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내 걱정은 그만하고, 상자에나 들어가라.”
감사함이 담긴 미소와 달리 흑암을 꽉 말아쥐고 카렌에게 다가갔다.
-야, 얀마!
“걱정하느라 못 들어가니까 내가 직접 넣어 주마! 카렌 님 상자 열어 주세요!”
[네.]
카렌이 방긋 웃고서 손에 든 상자의 덮개를 열어 주었다.
[지금은 작지만, 흑암의 육체가 성장함에 따라 상자가 함께 커질 거예요.] “들었지? 좁지도 않겠네. 빨랑 들어가!”-아, 알겠어! 알겠으니까 좀 놔 봐!
활어처럼 펄떡이는 흑암을 놓아 주었다. 흑암은 상자를 힐끔 내려다본 후 다시 백우진에게 몸을 틀었다.
-나 없다고 수련 게을리하지 마라. 내가 몸만 생기면 금방 따라잡아. 알지?
“물론.”
-이게 정말 중요한데, 다른 사람 위한다고 절대로 무리하지 마! 이번엔 일주일 만에 일어났지만, 평생 자는 수가 있어! 알겠냐?
“네. 엄마.”
-으휴, 내가 말을 말지. 말을 말어!
흑암은 검날을 바들바들 흔들며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녀석은 아쉬운 듯 계속 자신을 보고 있었다.
-금방 돌아올 테니까….
“응.”
-내가 돌아오는 날까지 드라마 전부 녹화해 놔라. 너희 세계 음식도 뷔페식으로 준비하고. 알겠지? 엉?
“단단히 기억하고 있을게.”
역시 녀석의 입에서 드라마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4년 뒤에 보자. 너 죽으면 진짜 죽는다.
“잘 다녀와라. 기다리고 있으마.”
흑암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상자로 들어갔고, 상자의 뚜껑은 자신의 인사와 함께 닫혔다.
“음….”
흑암이 상자에 들어가자마자, 녀석과 이어진 혼의 연결이 끊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태창.”
상태창을 불러도 아무것도 나오질 않았다.
[상태창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제대로 된 모양이네요.]카렌이 흑암이 든 상자를 축소시켜서 손 위에 올렸다.
[아쉽진 않으신가요?] “지금에 와서 상태창은 큰 의미 없어요. 다만 어깨 위에서 떠들던 고철이 사라진 건 조금 아쉽네요.”[후후, 확실히 제가 본 어떤 주인보다도 카인과 친해 보였어요.]
카렌은 푹신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저희 세계에 넘어오는 몬스터들을 막을 수는 없습니까?”
[연결된 기간이 너무 길어서 이치가 이미 확립되었어요. 이걸 잘못 건드리면 다른 세계와 연결될 가능성도 있어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카렌 님이 죄송할 필요는 전혀 없죠.”
백우진은 머리를 숙이는 카렌에게 손을 저었다.
“그럼 하나만 더요.”
[네.]
“절 흑암의 주인으로 선택하신 이유는 뭐죠?”
[음, 왠지 그 질문일 것 같았어요.]
카렌은 눈을 내리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백우진 님은 후보조차 아니었어요. 적가 다음 백가의 사람들을 살피다가 우진 님이 근맥이 찢어지고, 오러가 깨진 채 쫓겨나는 걸 봤죠.] “아, 그때….”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가장 절망했을 때였다.
[카인의 주인을 찾는 일이 바빴기에 후보들을 빠르게 살펴야 했지만, 저도 모르게 우진 님을 찾게 되더군요.] “대체 왜.”[쫓겨난 후 가문을 돌아보는 당신의 눈빛에는 절망보다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으니까요.] “으음….”
[흑암의 주인을 찾으면서도 우진 님을 살폈어요. 우진 님이 왼손으로 검을 쥐고 수련을 시작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때부터 당신을 살피는 횟수가 더 많아졌죠.]
카렌이 별빛 같은 눈동자로 자신을 보았다.
[맞아요. 정말 많았죠. 여기나, 마루툰 대륙이나, 수없이 많아요. 다만 당신만큼 의지와 마음이 강한 사람은 없었어요.] “으음….”
바로 앞에서 직접적인 칭찬을 들으니, 쑥스러워서 볼을 긁적였다.
[어때요? 궁금증이 풀렸나요?] “그게 제 시작이었음을 알았으니, 충분합니다.”백우진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가야겠네요. 이대로 오래 놔둘 수는 없어서요.]카렌이 아쉬운 듯 입매를 옅게 내렸다.
[한동안 이쪽 세계에 신경 쓸 수 없을 거예요. 우진 님이 계시니 상관없겠지만.] “제 걱정은 하지 말고 흑암을 챙겨 주세요.”[후후, 둘이 똑같네요.] “네?”
[흑암이 상자에 들어가기 전에 우진 님을 잘 봐달라고 부탁했거든요.] “하여튼.”
[그럼 4년 뒤에 뵐게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검은 알갱이가 되어 사라졌다.
“…….”
백우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벙쪄 있던 정령들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정령들에게 걱정 말라고 말한 뒤 다시 음식을 챙겨 주고 소파에 앉았다.
정령들이 밥을 먹고 있음에도 적막감이 느껴진다. 멈췄던 티비를 재생했다.
[말도 안 됩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정말이다. 그 아이는 내 딸이야.]막장 드라마의 대사가 흘러나와도 적막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선 태클을 걸어 줄 고철이 필요한데.”
픽 웃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빨리 돌아와라.”
**
백우진은 기본 검술 천 번 반복을 마친 뒤 고개를 들어 올렸다. 푸른 도화지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나….’
흑암과 카렌이 떠난 지 일주일이 흘렀다.
지금처럼 수련하거나, 가주 업무로 바쁜 시간을 보낼 때는 괜찮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면 흑암의 빈자리가 크게 다가왔다.
‘의외로 말이 많았지.’
수백 년 동안 혼자 있었던 것 때문인지 녀석은 말을 쉬는 법이 없었다. 수련을 조금만 엇나가도 난리를 쳤고, 드라마를 볼 때도 입을 쉬지 않았다.
인간과 마검의 두 삶을 통해 수많은 고생을 겪고도 그렇게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건 그놈뿐일 거다.
백우진은 눈을 감고, 따스한 햇볕을 쬐다가 픽 웃었다.
흑암이 방금의 자신을 봤으면 쇼하지 말라고 했을 거라 생각하니,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네.’
식사를 마치고, 남은 업무를 보기 위해 연무장을 나서려 할 때였다.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일었다.
“적연화?”
액정에 적힌 이름은 적연화였다. 오랜만의 연락이라고 생각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 여보세요?]핸드폰의 진동이 계속된다고 느낄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네가 걸어 놓고 왜 그렇게 당황하는 거냐?”
[다, 당황은 무슨! 전혀 아니에요!]
“그래?”
계속 목소리가 흔들렸지만 그러려니 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그… 오, 오랜만에 수련 좀 봐주시겠어요? 새로운 권을 익혔거든요.]
“수련이라….”
스케줄을 떠올려 봤지만, 바쁜 일은 없었다. 적연화와 적가에 도움받은 것들이 꽤 있었기에 수련을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시간은 너 편할 때로 정해.”
[그럼 내일 모레는 어때요?]
“알겠어. 그날 적가로 갈게.”
[여, 여기로 오신다구요? 제가 가는 게….]
“가주님께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으니까. 겸사겸사.”
[아, 알겠어요! 그럼 준비할게요!]
“그래.”
적연화는 끝까지 말을 더듬다가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흐음….”
백우진은 액정에 깜빡이는 적연화의 이름을 보며 옅게 웃었다.
“나도 때가 됐나.”
**
“후우….”
적연화는 연무장에서 눈을 감은 채로 천천히 숨을 골랐다.
‘오늘이야말로!’
백우진은 분명 대련 형식으로 자신의 수련을 도와줄 거다.
대련을 전력으로 하지는 않을 테니, 작게나마 한 방 먹인 뒤 그가 감탄할 때 데이트를 신청할 생각이다.
‘그 인간은 그런 쪽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니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이 아니던가.
백우진의 머릿속에 수련과 가문밖에 없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먼저 데이트하자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멘트는 아영이가 알려 준 대로….’
풍신단의 단원 장아영이 알려 준 데이트 신청 멘트를 생각하고 있을 때 연무장의 문이 열리고 백우진이 들어왔다.
큰 키에 백옥 같은 피부를 보자 연무장이 밝아진 느낌이다.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목구비는 그 빛을 더했다. 그의 외모는 무력만큼이나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 오셨어요?”
적연화는 백우진을 멍하니 보다가 문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연무장을 둘러보는 그의 눈빛은 추억이 흐르는 듯 아련했다.
“아빠. 아니, 아버지랑 대련했을 때였죠?”
“그래. 가주님은 어디 계시지?”
“잠깐 업무를 보고 계세요. 곧 이쪽으로 오실 거예요.”
“그럼 수련부터 시작하지.”
백우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겉옷을 벗어 놓기 위해 휴식 공간으로 향했다.
‘역시! 저 인간은….’
수련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지만, 아영이의 도움을 받아 외모를 꾸몄음에도 아무 말도 없다. 역시 목석 같은 남자다.
‘내가 해야 해.’
적연화는 옷을 걸어 놓고 돌아오는 백우진을 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역시 대련 방식이 좋겠지?”
“네.”
“몸은 풀고 왔으니, 바로 덤벼.”
백우진은 덤덤한 눈으로 검을 뽑았다.
‘계획대로 가면 돼.’
백우진과의 실력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이긴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 따윈 접고 명화권으로 조그마한 감탄만 일으키면 성공이다.
“하앗!”
적연화가 기합을 내지르며 땅을 굴렀다. 백우진의 좌측으로 쇄도해 명화권 일초 쾌산격을 내질렀다.
터엉!
백우진은 검으로 아래로 향하는 호를 그려 권격을 가볍게 쳐냈다.
“발디딤이 느리다. 조금 더 접근해서 주먹을 내지르도록.”
“아, 알겠어요.”
위치를 파악할 수 없게 좌우를 지그재그로 이동한 뒤 백우진의 뒤통수를 향해 명화권 창격세를 흩뿌렸다.
치이잉!
백우진은 여유롭게 뒤를 돌아 검을 중단에 세우는 것만으로 참격세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방위가 너무 단순해. 여덟 방위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움직이도록.”
“윽!”
적연화는 인상을 팍 찡그리고서 명화권의 모든 형을 쏟아부었다.
“초식들의 연계가 투박하다. 오러의 이동이 미진해. 발이 멈춰 있다. 손이 어지러워. 많이 다듬어야겠는데?”
백우진은 처음 보는 명화권의 초식들을 한 번에 파훼한 뒤 아프면서도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었다.
‘이렇게 빈틈이 많았다고?’
백우진의 조언을 받아 다시 공격하면, 그는 새로운 조언을 해 주었다. 아버지와 오빠도 나름 인정해 줬는데, 이렇게 빈틈이 넘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계획이 물 건너가. 아니 그걸 떠나서 스치지도 못하면 너무 열받잖아!’
적연화가 입술을 깨물었다. 명화권은 백우진을 따라잡기 위해서 익힌 권격이다.
잠자는 시간까지 줄이며 수련한 명화권으로 스치지조차 못하니 조금씩 머리가 끓어올랐다.
‘소매라도 흔들어 보겠어!’
소매라도 스치겠다는 일념과 둔한 백우진에 대한 분노를 담아 주먹을 날렸다.
“투지는 좋다. 하지만 섬세함이 부족해졌어. 좀 더 부드럽게 움직여.”
“알겠다고!”
“웬일로 반말을 하는 거지?”
“그럼 안 돼? 어차피 동갑이잖아!”
이미 데이트는 잊었다. 나풀거리는 백우진의 옷이라도 건드리겠다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다.
“상관없어. 오히려 왜 이렇게 늦게 말을 놓나 했다.”
백우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빙긋 웃었다.
“이익!”
저 밝은 웃음 대신 자신을 보는 시선에 조금의 감탄이라도 담겼으면 좋겠다. 그에게 많이 나아졌다는 칭찬을 듣고 싶었다.
“으합!”
적연화는 전력의 오러를 펼치며 땅을 박찼다. 가볍게 물러서는 백우진을 쫓아 명화권의 연계를 쏟아부었다.
“이렇게 대련하는 게 몇 번째지?”
백우진은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권격을 막아 내며 입을 뗐다.
“나도 몰라요! 아니, 몰라!”
“꽤 길었지?”
“6년이 넘었으니까!”
“그래. 많이 나아졌네.”
“어?”
“우리 만나 볼까?”
당황해서 주먹을 멈추려 할 때 백우진이 자신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으며 거부할 수 없는 환한 웃음을 그렸다.
“넹?”
적연화의 눈동자가 팽이처럼 핑그르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