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385
385화. 끝과 시작 (완)
금색 불길에 휩싸인 장검이 푸른 천공을 노닌다.
그 검로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우아하면서도, 인어의 춤처럼 아름다웠다.
차악.
한껏 자유로움을 누리던 금빛의 검이 땅으로 내려와 백우진의 손에 잡혔다.
“이제 이 검도 익숙해졌군.”
손에 쥔 검을 가볍게 휘둘러 볼 때,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에 진동이 일었다.
우우웅!
허공섭물로 핸드폰을 가져와 보니, 전화가 아니라 ‘시작의 날’이라고 적인 알람이었다.
“시간이군.”
백우진은 알람을 끈 뒤 손에 든 금색의 검을 놓아주었다. 검은 공간을 십자로 가르고 푸른 차원으로 사라졌다.
“검사님!”
연무장 정리를 한 뒤 밖으로 나가자,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무영객이 손을 흔들었다.
“휴일 오전부터 어딜 가십니까?”
“내 시작을 확인하기 위해서.”
“시작이요?”
예상외의 대답이었던지 무영객이 벌떡 일어났다.
“오호!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사고를 치시려는 겁니까? 역시 검사님! 존경합니다!”
“너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백우진은 우후후 웃는 무영객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타이밍에 시작이라고 하시면 첫사랑밖에 없죠. 첫사랑이 누굽니까! 제가 아무도 모르게 데리고 올….”
“가주님은 너 같은 쓰레기가 아니야!”
서류를 들고 오던 문주영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뱉었다.
“넌 검사님의 시작이 뭔지는 알고 입 터는 거야?”
“가주님은 시작은 기본 검술! 기본 검술을 수련하기 위해서 연공실에 들어가시려는 게 당연하잖아!”
“그런 건가? 에이, 재미없어….”
“가, 가주님의 근본이 재미없다고? 이 도둑놈이 진짜!”
“미안하지만, 그것도 아니야.”
“엥?”
“네?”
백우진의 단호한 대답에 무영객과 문주영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럼 어딜 가시는 겁니까?”
“말했잖아. 내 시작을 확인하러 간다고.”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따르겠습니다.”
“재밌을 거 같은데 저도 갈게요!”
문주영이 옆으로 다가오고, 무영객이 입맛을 다셨다.
“너희는 따라오지 마.”
“엥? 오른팔인 저를 놓고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가주님!”
“가문이나 지키고 있도록.”
그렇게 말하며 손을 저었다. 두 사람은 멍하니 멈춰서 자신의 등을 바라보았다.
‘미안하지만, 정말 중요한 날이거든.’
오늘은 이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직접, 그리고 홀로 가야만 한다.
“그럼.”
백우진은 미소를 지으며 만변귀의 가면을 착용했다. 가면의 눈구멍 사이로 강렬한 안광이 번쩍였다.
“가 볼까.”
**
백우진은 신검백가 근처 아파트 단지의 상가로 향했다. 상가의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억나네. 저 시꺼먼 하늘.”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어둑하다. 다만 오늘 내리는 건 비 따위가 아니다.
상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경쾌하게 걸어가는 두 아이가 보였다.
처음 보지만, 처음 보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때가 됐군.’
백우진은 낮게 숨을 뱉으며 카페를 나섰다.
빠지지직!
바싹 마른 나뭇가지를 밟은 듯한 소리와 함께 천공에 거미줄 같은 금이 그어졌다.
“균열이다!”
“경보도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이, 일단 도망쳐!”
금이 간 하늘이 찢어지며 수백 개의 붉은 점이 번들거린다. 살기와 광기를 담은 몬스터들의 흉악한 눈이었다.
“아아….”
“으어어억!”
아이들은 몬스터들이 내뿜는 살의에 질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움직일 힘도 없는지 손만 바르르 떨었다.
“끼에에엑!”
“크오오오!”
균열이 쩍 벌어지며 몬스터들이 뛰어내린다. 숫자도 많았지만, 고블린부터 트롤, 오우거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때.
백우진이 움직였다.
의념과 오러를 조화시켜 쏟아지던 몬스터들을 모조리 허공으로 띄웠다.
“끼이익!”
“끄어억!”
놈들은 악만 지를 뿐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딱 하나.
중앙에 있던 거대한 오우거 한 마리만을 제외하고.
“크오오오오!”
아이들의 뒤쪽으로 떨어진 오우거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온다.
“기억하고 있다. 네 모습만큼은.”
백우진은 아이들을 뒤로 보내며 오우거의 앞을 막아섰다.
후우웅!
오우거의 흉흉한 몽둥이가 자신의 머리통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미안하지만, 난 그때와 달라.”
전생에선 죽을힘을 다해야만 간신히 피했던 공격이지만, 지금은 손날을 든 것만으로 가볍게 막을 수 있었다.
“끄아아아아!”
오우거가 포효를 내지르며 연속으로 몽둥이를 후려친다.
회귀 전엔 몽둥이가 내려올 때마다 심장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지만, 오늘은 눈을 감고도 쳐낼 수 있었다.
“크아아아!”
짜증과 분노에 휩싸인 오우거가 몽둥이를 가로로 휘둘렀다.
‘이거에 당했지.’
전신의 뼈를 뭉개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세웠던 그 공격이었다.
‘아직도 기억나.’
오우거가 내리찍는 거대한 발 사이로 몬스터를 썰어 버리는 신검백가 검사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모습을 보며 억울하다고, 불공평하다고, 재능은 좆 같은 거라고 절망한 덕분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
강해지고, 운이 좋아졌으며, 모두에게 인정을 받으면서도 항상 위를 향할 수 있던 건 그 기억 덕분이다.
터엉!
파리를 쫓듯 손을 젓자, 몽둥이가 부러지고, 오우거가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끄으으으….”
죽어가는 오우거와 허공에 뜬 몬스터들을 균열 앞으로 모았다.
“균열과 함께 사라져라.”
백우진이 오른손 수도를 수직으로 내리쳤다.
콰아아아!
손날에서 치솟은 패도적인 검격이 몬스터들을 가르고, 균열을 그대로 찢어 버렸다.
“규, 균열을 찢어 버린다고?”
“저런 게 가능해?”
“억!”
“와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경악하며 주저앉았고, 몬스터들을 막기 위해서 달려온 능력자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입을 벌렸다.
“아아….”
백우진은 낮게 들리는 신음에 뒤를 돌았다. 두 아이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가, 감사합니다.”
“으아아앙!”
한 아이는 울음을 참고 고개를 숙였고, 그 옆의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괜찮아.”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울던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고맙다고 말한 아이는 오히려 울기 시작했다.
“저, 저기!”
“이봐요!”
아이들을 달래고 있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능력자들이 달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렴.”
두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서 기척을 감췄다.
“어? 아, 아저씨!”
“방금 그 사람 어디 갔어?”
“이봐!”
사람들과 능력자들이 자신을 찾을 때 백우진은 옆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게 내 시작이었지.”
자신의 시작은 태어났을 때도, 회귀했을 때도 아니다.
바로 여기다.
신검백가에 복수한다는 대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오우거에 맞섰던 것이 자신의 시작이었다.
카렌 역시 아이들을 구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선택했다고 했었다.
백우진은 능력자들의 품에 안겨 우는 아이들을 보며 만변귀의 가면을 벗었다.
“고맙다.”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철통같이 닫혀 있던 신검백가의 정문이 활짝 열렸다. 정문의 위로는 하얗고 붉은 꽃들이 구름다리처럼 펼쳐져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의검대 검사들은 전투복이 아닌, 예복을 입은 채로 입장하는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정문으로 들어가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화환이 늘어선 길이 나온다.
화환에 적힌 건 결혼을 축하한다는 상투적인 내용이었지만, 그 글을 적은 단체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대형 길드와 능력자들이었다.
화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신검백가의 중앙 정원이 나온다.
부가주 백천웅이 직접 관리하는 정원으로 화려하진 않지만, 단아하면서도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정원의 앞에는 검은 턱시도를 입은 백우진과 백연휘를 비롯한 백가의 직계들이 나와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르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우진이 윤우민의 손을 잡으며 활짝 웃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제자의 결혼식인데 당연히 와야지!”
윤우민은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허허 웃었다.
“어? 제자?”
정근호가 윤우민을 보며 눈을 흘겼다.
“어르신! 분명 우리는 제자 아니라고….”
“넌 아닌데, 우진이는 맞다.”
“끄응!”
“하하하!”
윤우민은 정근호의 뒤통수를 가볍게 두드리고 식장인 정원으로 들어갔다.
“음, 축하한다.”
축하한다는 말과 달리 정근호의 어조에는 불만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고맙다. 넌 여전해 보이네.”
“한국 최고 미녀를 네가 데리고 가는데 기쁠 수가 있나. 복 받은 줄 알아!”
“알고 있어.”
“쩝, 잘 살아라!”
여유롭게 웃어 주자, 정근호는 입맛을 다시고서 윤우민을 쫓아갔다.
“백가주님. 결혼 축하드려요.”
정근호가 떠나자, 블랙 마켓의 본부장이 된 유진아가 영업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아쉽네요. 가주님은 제가 꼬시려고 했는데.”
그녀는 헷 하고 웃으며 윙크했다.
“저는 한쪽만 봐서요.”
“하긴 신부님의 미모가 장난이 아니니까.”
유진아는 장난과 진심이 섞인 미소를 흘리며 직속 수하들과 함께 정원으로 향했다.
“얼굴이 훤해졌구나!”
황병훈이 시원한 미소를 그리며 걸어왔다.
“총사령관님!”
“이제 그냥 아저씨라 부르거라.”
“저희에겐 항상 총사령관님이십니다.”
다른 손님을 맞이하고 온 백연휘가 황병훈의 손을 잡았다.
“야 이놈들아! 은퇴 좀 하게 나 좀 놓아줘!”
“그렇게 말해 놓고 작년의 ‘천마대전’에서는 날아다니셨지 않습니까.”
“노인네의 1년을 얕보지 말거라. 하루가 멀다고 늙어 가니까.”
황병훈은 약한 소리를 하는 것과 달리 자신의 손을 부술 듯 잡고 흔들었다.
“착한 아이이니 울리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라.”
“감사합니다.”
백우진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황병훈과 함께 온 전방의 능력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그들을 식장으로 들여보냈다.
“혼인 축하드립니다. 은인.”
단아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검후와 검주들이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인께서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작년에 은인께서 와주시지 않았다면 검각은 멸망했을 겁니다.”
검후는 작년에 있었던 ‘천마대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전 자그마한 도움만 드렸을 뿐입니다.”
“그 작은 은혜를 저흰 평생을 보내도 갚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검후와 검주들은 정중한 포권을 취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백가주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능력자 협회의 실장이 된 이영현이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바쁘실 텐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장님.”
“가주님의 결혼식인데 세상이 멸망해도 와야죠!”
이영현이 높아진 직책만큼이나 펄쩍 뛰었다.
“결혼 선배로서 하나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결혼이라는 건 설레는 신혼 생활 후 서로 익숙해졌을 때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힘든 일도, 슬픈 일도 많겠지만, 마음 넉넉하게 먹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살면 행복할 겁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실장님께 주례를 부탁할 걸 그랬네요.”
“캬아! 백가주님 주례를 섰으면 가문의 자랑이었을 텐데 아쉽네요.”
이영현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크하하 웃었다.
“10년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깊게 고개를 숙인 뒤 식장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에도 많은 단체와 길드에서 온 사람들이 축하 인사를 건네주었다.
“오는 사람마다 네게 감사하다는 말만 하는구나. 결혼식을 많이 가 보았지만, 신랑이 감사 인사만 듣는 건 처음 본다.”
백천웅이 헛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상부상조죠.”
백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매번 도움을 받았다고 고맙다고 말하지만, 자신 역시 저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서로가 있었기에 각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본식 시작 10분 전입니다. 하객 여러분들은 식장에 들어와 주시길 바랍니다.]식장 내부에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잠깐 신부 대기실에 다녀올게.”
더 이상 들어오는 손님이 보이지 않았기에 잠깐 움직여도 될 것 같았다.
“아까 다녀왔잖아.”
식장으로 들어가려던 백은경이 고개를 틀었다.
“마지막으로 보고 가려고.”
“하여튼.”
“금방 올게.”
씩 웃으며 임시로 만든 신부 대기실로 향했다.
“쯧.”
백우진은 미소를 지우며 짧게 혀를 찼다.
‘결국 이 고철은 안 오는군.’
예정된 시간이 2개월이나 지났음에도 흑암과 카렌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조건 4년이라는 말까진 하지 않았지만,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오지 않을 줄은 몰랐다.
‘괜찮으려나.’
결혼식에 오지 못한 아쉬움보다도 두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신부 대기실 앞에 도착했다.
“들어오세요.”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자, 진한 설렘이 담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흰 소파에 앉아 있는 적연화와 서인아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함께 앉아 있지만, 둘의 복장은 확연히 달랐다.
적연화는 어깨가 드러나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었고, 서인아는 어두운 톤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
“와! 신부가 얼마나 보고 싶으면 또 왔대?”
서인아가 얇게 눈을 흘겼다.
“보고 싶다기보다는 시작 전이라, 준비는 다 끝났나 확인하러 온 거죠.”
백우진이 귀밑머리를 긁적이며 적연화를 보았다.
드레스보다도 하얀 피부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적발이 어우러진 그녀의 자태는 여태까지 본 그 어떤 여성보다도 아름다웠다.
“그 친구분들은 오셨나요?”
적연화가 가는 눈썹을 내리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쉽지만, 안 왔어.”
“아….”
“괜찮아. 나중에 축의금 몇 배로 받으면 되니까.”
적연화까지 걱정시킬 필요는 없었기에 넉넉한 미소를 지었다.
[본식 시작 5분 전입니다. 하객 여러분들은 착석해 주시길 바랍니다.]5분 남았다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들려왔다.
“나도 가야겠네. 이따 보자.”
“네.”
“아직도 존대야?”
“아, 응.”
적연화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와 줘서 고마워요.”
“가주님 때문이 아니라, 연화 때문에 온 거예요!”
“어쨌든.”
손을 흔들고서 대기실을 나섰다. 식장으로 가려 할 때 신검백가의 정문이 검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일그러진 공간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떨어지며 흙먼지가 솟구쳤다.
“무, 무슨 일이에요!”
“적인가요?”
굉음에 놀란 서인아와 적연화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왔군.”
“네?”
“아까 말했던 놈이 왔다고.”
두 사람에게 씩 웃어 주고서 정문으로 달려갔다.
후우웅!
회색 먼지가 가라앉으며 두 남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여자는 신화 속 천사처럼 금발 금안에 하얀 피부를 가진 미소녀였고, 험악한 외모의 남자는 좀 전까지 전쟁을 치르고 온 것처럼 꺼끌한 기파를 뿜어냈다.
“크하하하!”
자신을 발견한 남자가 큼지막한 웃음을 터트렸다.
“넌 누구냐!”
“감히 백가에서… 헉!”
백가의 검사들이 남자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그의 막강한 기세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스르릉!
남자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으며 걸어온다.
“창천.”
백우진 역시 남자에게 다가가며 손을 뻗었다. 하늘이 갈라지며 금빛의 검이 그의 손에 강림했다.
우우우웅!
백우진과 남자는 원수를 만난 것처럼 서로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앙!
검과 검이 격돌하며 폭발한 충격파가 대지를 가라앉히고, 하늘을 갈랐다.
“못 보던 검이구나.”
남자가 금색 검을 보며 말했다.
“어쩌다 보니 얻었다.”
백우진이 웃었다.
“운빨은 여전한가 보군.”
“네 찌질함도 그대로네.”
“흥!”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우측으로 검을 그었다.
“네놈이 결혼한다니, 그동안 적연화의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갔을지 뻔히 보인다.”
“수천 년 동안 기다린 카렌만 하겠어?”
백우진이 히죽 웃으며 그의 뒤에 있는 금발 여성을 흘낏 보았다.
“나, 난 상황이 다르잖아!”
“아직도 모르냐? 넌 말로 나 못 이겨.”
남자의 검을 흘린 뒤 그의 목에 창천검의 검극을 가져다 대었다.
“그런가 보네. 검술도 여전하고.”
남자가 검을 검집에 넣으며 피식 웃었다.
“다녀왔다. 백우진.”
“어서 와라. 흑암.”
백우진이 창천검을 돌려보내며 만면에 미소를 그렸다.
“두 사람은 진짜 변하질 않네요.”
흑암의 뒤에 있던 카렌이 방긋 웃으며 다가왔다.
“결혼 축하드려요. 우진 님.”
“감사합니다. 식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일단 들어가시죠.”
옷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며 흑암과 카렌을 안내했다.
“카인. 가자.”
“음.”
“두 사람은 식이 끝나고 잠시 남아 줘.”
따라오는 흑암과 카렌에게 몸을 돌렸다.
“왜?”
“연화한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해 주고 싶으니까.”
백우진이 흑암, 카렌에게 온기 어린 시선을 보냈다.
“뭐라고 소개할 건데?”
“친구라고.”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최고의 친구라고 해야지.”
“커험!”
“후후!”
흑암은 민망한지 연신 헛기침을 했고, 카렌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백우진, 레, 렉플릭스는 결제해 놨겠지? 보고 싶은 드라마가 한 트럭이다.”
녀석은 쑥스러움을 감추려는지 고개를 숙이며 화제를 돌렸다.
“거기 망했어.”
“어? 그, 그럼 녹화는 했지?”
“아….”
백우진이 입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까먹었다.”
“이익!”
흑암의 이마 위로 힘줄이 불룩 돋아났다.
“이 구라쟁이가 끝까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