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Family's Sword Prodigy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아케인의 의뢰 (3)
문 안쪽의 바닥엔 거대한 팔각형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알 수 없는 도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백우진이 놀란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벽의 한 면이 완전히 뚫려 있었고, 그곳에 지하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자연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땅은 타오를 듯 붉었고, 나무와 수풀은 열기에 빼빼 말라 있었으며 멀리에 우람한 산봉우리마저 보이고 있었다.
‘한국이 아니야.’
열려 있는 저 공간은 한국의 환경과 전혀 달랐다.
‘던전이 온 세계와 같아.’
확실했다.
뚫린 벽 안쪽에선 던전 특유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던전도 아니다.
‘뭐?’
-저긴…. 내가 있었던 대륙이다.
흑암이 혼을 떠나보낸 목소리를 흘리며 뚫려 있는 벽면으로 날아갔다.
-확실해. 여긴 세이란 왕국 옆에 있는 펠런 섬이다.
흑암의 검날이 부르르 떨렸다.
펠런 섬은 여러 가지 골렘, 특히 파이어 골렘이 많이 발생하는 장소다.
자신이 키웠던 검사들을 데리고 한 번씩 와봤기 때문에 몰라볼 수가 없었다.
“저기 여긴….”
백우진이 담담히 서 있는 서공명에게 고개를 돌렸다.
“알아보신 모양이군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우리 세계와 다른 곳입니다. 아마 던전이 온 세계와 같은 곳이겠죠.”
-백우진 빨리 물어봐! 여길 어떻게 만든 거냐고!
흑암이 백우진의 어깨를 마구 쳤다.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실수였습니다.”
“실수요?”
“그렇습니다.”
서공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제논과 범죄자 길드들이 저희 공방을 공격한 건 장인의 섬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전에 부산과 광주에 숨겨둔 공방도 습격을 받았죠.”
기사를 막았는지 백우진도 전혀 모르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존재하는 공간 대신에 던전처럼 새로운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전방에 갔던 이유도 더 많은 던전을 살펴보기 위해서였죠.”
“음….”
장인의 섬에서 김장훈이 서공명은 전방에 가서 연락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모든 실험을 끝내고, 신물이라 불리는 불의 화신을 이용해서 새로운 공간을 열었습니다. 긴 시간과 수많은 실험 끝에 겨우 성공한 거죠. 다만….”
서공명이 뚫려 있는 벽면을 가리켰다.
“새로운 공간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는 화산섬을 가져와 버렸습니다.”
“그럼 저 장소는….”
“지구가 아닌 다른 차원에서 가져온 장소입니다. 연결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저 화산을 이곳에 소환해버렸죠. 저흰 이 장소가 불의 화신과 관련이 있는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찾지는 못했다만 고대 마도사의 유산이 잠들어 있다는 소문이 있었으니까. 불의 화신이라는 도장도 그중 하나일 수도 있다.
흑암이 서공명의 말에 동의하듯 검날을 까딱였다.
“저희의 예상을 벗어났다고 해도 저 섬은 장인들이 일하기에 최고로 좋은 환경입니다.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죠.”
“그건 다행이군요.”
“모두 검사님 덕분입니다.”
“예?”
“검사님이 장인의 섬에 있던 불의 화신을 지켜주셨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서공명이 백우진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나도 장인 섬의 이야기는 들었어, 정말 대단했다던데.”
“그땐 운이 좋았습니다.”
“화염 저항력이 강한 건 운이 아니라 실력이지.”
적경훈이 시원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었는지 별반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그럼 저와 권룡 선배를 부른 이유는….”
“저희는 섬만이 아니라, 섬 안에 있는 몬스터도 함께 데려와 버렸습니다.”
서공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 밖에 있는 땅 이곳저곳에서 골렘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쿠구구.
골렘들은 벽을 넘어올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
파이어 골렘을 바라보는 백우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입가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두 분은 강하기도 하지만 이곳의 비밀을 지켜주실 분들이라 믿고 부른 겁니다.”
서공명이 이 일은 아케인과 협회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식으로 의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무인들과 함께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들을 처리해주십시오.”
* * *
서공명은 전투 준비를 하는 백우진에게 시선을 주었다.
‘전혀 긴장하지 않았군.’
백우진은 이곳에 있는 무인 중 가장 등급이 낮고, 경험이 적음에도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장에서 여유를 즐기는 백전노장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인아나 아저씨 말씀대로 비슷한 나이의 능력자와는 격이 달라.’
장인 섬에서 있었던 일을 들어보니, 백우진은 불의 화신이라는 신물을 몰래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당연하다는 듯 불의 화신을 김장훈에게 돌려주었다.
그런 신뢰 있는 모습을 보여줬기 서공명은 백우진을 이곳에 부른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알았으니, 투자할 가치가 있는 보석인지 판단하기 위해서.
“저 친구 어떻게 보셨습니까?”
서공명의 옆으로 적경훈이 다가왔다.
“내 예상보다 실력이 더 뛰어난 것 같아. 풍기는 아우라가 수준급이야.”
둘만 있으니, 서공명은 적경훈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스스로 매번 상인이라 하시더니, 확실히 사람 보는 눈이 있네요.”
적경훈이 작게 웃었다.
“비슷한 나이대에선 저 친구를 상대할 자가 거의 없을 겁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네.”
“좀 민망하지만 제가 18살 때에도 저 친구 수준은 가지 못했어요. 확실히 강해요.”
“그, 그 정도인가?”
서공명이 눈을 크게 떴다.
적경훈은 천재 소리를 듣고 커 온 만큼 다른 사람을 쉽게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정도면 백우진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소리였다.
“그에게 관심 있다면 잘 챙겨주는 게 좋을 겁니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선을 대려고 줄을 서고 있을 테니까요.”
그 말을 한 뒤 적경훈은 백우진의 옆으로 다가갔다.
둘은 무슨 대화를 하는지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신검백가의 백우진….”
백우진을 바라보는 서공명의 눈빛은 새로운 도구를 보는 것처럼 반짝였다.
* * *
“준비는 다 됐어?”
“예.”
적경훈은 홍인수 수준의 친화력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새 백우진과 말을 놓고 있었다.
“그냥 골렘만 잡으면 심심하니까. 내기 어때?”
“내기요?”
“누가 더 많은 골렘을 잡는지 내기.”
“당연히 선배님이 이기겠죠.”
백우진이 손을 저었다.
아무리 자신에게 사기적인 기술들이 있어도 지금의 적경훈을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딱 6등급 초반의 힘만 쓸게.”
“전 5등급입니다.”
“그렇지만 실제 능력은 6등급 중반을 넘잖아.”
적경훈이 손가락을 흔들며 웃었다.
그는 이미 백우진의 무력 수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기면 연화에게 네 칭찬 퍼부어줄게. 분명 좋은….”
“필요 없습니다.”
“크하하하!”
백우진의 단호한 말에 적경훈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연화가 들으면 실망하겠는데.”
말과 다르게 적경훈의 미소는 더 진해졌다.
“좋아. 그럼 부탁 들어주기 어때? 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그 말을 들으니까 생각이 나네요. 전 이미 적연화 권사에게 그 부탁권이 하나 있었어요.”
“남매에게 하나씩 있으면 더 좋잖아. 한번 해보자고.”
“휴우, 알겠습니다.”
백우진이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골렘의 수준이 다른데 그냥 숫자로 하시진 않겠죠.”
“역시 설렁설렁하지 않네. 머드 골렘 1점, 스톤 골렘 2점, 파이어 골렘 5점으로 하지. 어때?”
“혹시 보스가 나온다면 어떻게 합니까?”
“보스?”
“네.”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에서 보스가 나오니, 이곳에도 보스급 몬스터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보스는 100점으로 하자. 던전과 마찬가지로 보스를 잡으면 이긴다고 보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각자 점수 잘 세자고, 너나 나나 숫자를 속일 사람은 아니잖아.”
“물론입니다.”
“시원시원해서 좋네. 준비됐으면 가자.”
“네.”
백우진과 적경훈이 열린 벽 쪽으로 다가갔다.
그 옆으로 아케인의 무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보호막을 열겠습니다.”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자 반투명한 막이 사라졌다.
“후….”
백우진이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뜨거운 열기와 텁텁한 대지의 냄새가 느껴졌다.
“먼저 가마!”
적경훈이 발을 두 번 튕기자, 그의 몸은 어느새 스톤 골렘 앞에 가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수준의 보법이었다.
화아악!
적경훈의 손이 벌겋게 빛나기 시작했다.
쾅! 콰앙!
그는 주먹을 쥐지 않고, 표면적이 넓은 손바닥을 이용해서 스톤 골렘에게 장법을 날렸다.
빠각!
적경훈이 장법을 10번 사용하기도 전에 스톤 골렘의 목에 있던 핵이 깨졌다.
쿠구구….
핵이 파괴된 스톤 골렘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후배는 어떻게 하려나.”
적경훈이 뒤를 돌았다.
내기한 이유는 백우진의 실력을 보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소원 따윈 어떻게 되든 좋았다.
“저기 있…. 어?”
백우진의 위치를 확인한 적경훈의 입이 쩍 벌어졌다.
놀란 건 적경훈만이 아니다.
“어떻게 저런 일이!”
“뭐, 뭘 한 거야!”
서공명을 비롯한 아케인의 무인들도 백우진을 보고 터질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 * *
-저 친구 용이란 칭호도 가진 주제에 보기보다 유치하군.
‘그게 아니라, 내 실력을 보고 싶은 거야.’
백우진은 적경훈의 생각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진정한 실력을 보고 싶어서 저런 내기를 건 것이다.
-저 녀석이 6등급의 실력만 사용한다고 해도 경험이 다르고 기술이 달라. 이길 수 없다. 왜 내기를 받은 거냐?
‘이길 수 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직접 보여줄게.’
백우진이 아무것도 없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가 가느다란 나무 사이를 지날 때 파이어 골렘 2마리가 불꽃과 함께 솟구쳤다.
“역시!”
백우진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여유를 잃지 않고, 골렘들을 살폈다.
그의 시선은 골렘의 왼쪽 옆구리와 오른쪽 허벅지를 향하고 있었다.
화아아악!
파이어 골렘 2마리의 열기가 폭풍처럼 퍼져나갔지만, 백우진에겐 사우나조차 되지 않았다.
쿠웅!
백우진은 골렘의 묵직한 주먹을 가볍게 피한 뒤 암인검으로 옆구리를 찔렀다.
퍼억!
작은 구슬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파이어 골렘의 움직임이 멈췄다.
쿠구구구.
두 번째 파이어 골렘이 백우진을 내려찍으려 했지만, 그는 보법을 밟아 골렘의 뒤로 이동했다.
머뭇거리지 않고, 골렘의 오른쪽 허벅지를 찔러 그 안에 있던 핵을 부숴버렸다.
후우욱.
거대하고 위협적인 파이어 골렘 두 마리는 눈 깜빡할 사이에 타버린 종이처럼 재로 변해버렸다.
-너, 너 뭐야!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보여.’
백우진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골렘의 위치와 골렘 내부에 있는 핵이.’
-끄억….
흑암이 숨이 막히는 소리를 냈다.
그가 검날을 부들부들 백우진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다는 아니고, 파이어 골렘만.’
백우진이 뒤쪽에서 움직이는 파이어 골렘을 보았다.
그의 감각은 골렘의 어깨에 핵이 있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아마 화 속성 감응력이 크게 올랐기 때문일 거야. 파이어 골렘의 몸속에서 더 뜨거운 곳이 느껴져. 그곳이 바로 핵이 있는 장소야.’
최근 이그니스 덕분에 화 속성 감응력이 거의 15포인트 올랐다.
그 덕분인지 파이어 골렘의 몸속에 있는 핵의 위치가 생생히 느껴졌다.
‘내가 한 건 약간의 오러를 실어서 핵이 느껴지는 곳을 찌른 것뿐이지.’
-허….
흑암은 말조차 잊어버리고, 백우진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흑암만이 아니었다.
“저게 가능한 일인가?”
서공명의 표정이 무너지며 안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찌 골렘을 일 검에….”
옆에 있던 호위의 눈동자가 부르르 떨렸다.
“마, 말이 안 됩니다. 대체 어떻게!”
문을 열어준 중년의 마법사가 지팡이를 놓쳤다.
마나에 민감한 마법사들도 골렘의 핵을 알아차리긴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백우진은 핵의 위치를 아는 것처럼 찌르기 한 번으로 골렘을 처리해 버렸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빨이 떨릴 지경이었다.
“이, 이봐. 후배!”
적경훈의 목소리와 눈동자엔 백우진에 대한 경악이 담겨 있었다.
자신도 파이어 골렘을 빠르게 잡을 수 있지만, 저렇게 일격에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백우진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을 만들어냈다.
“방금 어떻게 한 거지? 어떻게 일 검에 골렘을….”
“남매 아니랄까 봐. 똑같네요.”
백우진이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적연화도 말해줄 수 없는 것을 물어보던데. 똑같으세요.”
“음….”
적경훈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럼 내가 내기를 이기고 방법을 물어본다면 알려줄 건가?”
“물론입니다. 다만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아까는 내기하기 싫어하더니, 지금은 또 다르군.”
“이왕 시작했으면 이겨야죠.”
“점점 후배가 마음에 드는데? 이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보여줘야겠어.”
적경훈이 강렬한 눈빛을 쏘아내며 보법을 밟았다.
한 줄기 바람처럼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저게 힘 조절 한 속도야? 미쳤군.”
백우진이 혀를 내둘렀다.
적경훈의 이동속도는 좀 전과 전혀 달랐다.
자신이 전력을 발휘해도 절대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얌생이 자식아! 파이어 골렘의 위치와 핵이 보이는 걸 알고, 저놈에게 골렘의 점수를 따로 매기자고 하자고 한 거냐?
‘당연하지.’
백우진은 파이어 골렘의 위치와 핵을 느낄 수 있으므로 일부러 점수를 다르게 하자고 말한 것이다.
-너란 놈의 머리 회전은 여전히 미쳐있다만, 저 권룡이라는 놈이 조금만 진지해져도 넌 못 이긴다.
‘너도 이제 알 때 되지 않았냐?’
-뭘?
‘난 지는 내기는 하지 않아.’
백우진이 산의 중턱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내가 무조건 이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