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시험(2)
“뭐, 충분히 올 수 있는 곳이긴 하지.”
수현이 혼잣말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김민준.
전국대회 이후로 존재 자체를 잊고 살았는데, 오랜만에 얼굴을 다시 보게 됐다.
태연하게 받아들였으나 구태여 귀찮아질 일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수현은 김민준 쪽에서 자신을 알아보기 전에 등을 돌려 자리를 빠져나왔다.
잠시 후.
시험장 인근 햄버거집.
전국 소묘 모의평가는 지역별로 마련된 시험장에서 치러졌고, 서울 지역은 강남과 강북에 각각 두 군데씩 네 개 장소로 나뉘었다.
그런데도 참가자 수가 어찌나 많던지, 평소라면 한산했을 시험장 주변 카페와 음식점들에 응시자 관계자로 보이는 손님들이 붐볐다.
햄버거집도 마찬가지였다.
“주문이 밀려서 3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해요.”
“아.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번호표를 받아든 수현이 2층으로 올라와 겨우 자리를 잡았다.
그나마 혼자라 창가에 일렬로 놓인 의자 중 구석 자리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대충 스케치나 몇 장 끄적여볼까, 가방을 뒤지던 중이었다.
“아까 그 애 김민준이죠?”
“그러니까요. 나 진짜 놀랐잖아.”
“어머어머, 자기들도 봤구나? 걔 학교 실기 수업 나가고 별별 소문 다 돌았다면서요. 그래도 그림은 그리고 있었나 봐요?”
“당연하죠. 실력도 좋은데……. 학교 수업은 강 과장님이랑 다투고 나갔단 말이 있더라고요.”
“어머머. 정말요? 왜?”
“진학 상담하다가 뭔가 틀어졌던 모양이에요. 어쨌든 백현대 앞에 블루아이 미술학원에서 입시 준비한단 말이 있더라고요.”
“백현대 앞에? 와, 거기까지 가려면 우리 학교에서 꽤 멀 텐데?”
“어휴. 웬일이래. 그냥 선생님 말씀 듣고 학교에서 할 일이지, 괜히 걔 때문에 분위기 흐린 거잖아요. 다른 애들 생각도 좀 했어야지.”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그대로 귀에 날아와 꽂히는 목소리.
학부모로 보이는 중년 여성 네 명이 햄버거집 2층에서 큰 소리로 김민준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얘기의 내용으로 보아 중앙예고 학생들의 부모인 듯했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잘한다, 잘한다 하면 그게 다 지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아요.”
“강성실 선생님이 다른 건 몰라도 입시 전략 하나는 다들 인정하는 베테랑이잖아요? 그런 선생님 말 안 듣고 얼마나 잘 되는지 두고 보면 알겠죠.”
“어휴. 어쨌든 우리 애들은 다 잘 돼야 할 텐데 말이에요.”
김민준을 신나게 깎아내리던 학부모들은 다시 중앙예고 상위권 학생들의 순위며, 입시에 관한 정보를 나누다가, 잠깐 남편과 시댁 욕을 하다가, 또 자식 자랑을 하며 끊임없는 수다를 이어 나갔다.
그사이 주문한 음식을 받아온 수현이 밀크셰이크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백현대 앞 블루아이 미술학원이라…….’
백현대 앞엔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형미술학원이 많았는데, 그중 블루아이는 백현대 회화과 입시에 특화된 곳으로 유명했다.
중앙예고 수업을 박차고 나가 블루아이로 갔다면, 김민준 역시 백현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뜻일 테고.
‘갑자기 왜지?’
수현이 미간을 찡그렸다.
과거 김민준은 한국대 서양학과에 입학했다.
실기 성적은 좋으나 학과성적은 기복이 있던 김민준.
마지막까지 회복하지 못한 내신 점수 때문에 백현대에 가려면 실기 두 과목 모두 A를 받아야 했고, 리스크를 고려해 지망하지 않았던 거다.
과거 김민준은 전국대회 대상을 타긴 했으나, 수현처럼 압도적인 실력을 보인 게 아니라, 대학에서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지금과 같은 백현대 특차전형의 혜택도 없었고.
대신 한국대 교장추천제 전형에 밀어 넣을 자격이 돼 비교적 수월하게 입시를 지난 것으로 알았다.
아마 이번에도 한국대 교장추천제 입학은 문제없었을 텐데, 김민준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던 걸까.
‘이거 잘못하면 대학 생활이 피곤해지겠는데…….’
만약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된다면 부딪힐 일이 많겠다 싶어 걱정된 것도 잠시.
수현이 곧 고개를 저었다.
‘피곤하려면 김민준이 피곤하겠지.’
수현은 마이웨이를 제대로 걸어가고 있었고, 어떤 변수에도 흔들릴 일이 없었다.
똑같은 흐름 안에서도 과거와 다른 형태의 사건들이 조금씩 펼쳐졌으나, 수현은 오히려 그게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
“나 270점이야!”
“뭐래, 난 284점이다!”
“미안해서 어쩌지? 난 302점인데?”
“뭐? 네가 300점이 넘었다고?”
전국 소묘 모의평가가 끝나고 결과가 발표되고, 희비가 엇갈린 것도 잠시. 아이들은 곧 다가올 수능에 긴장하며 바짝 공부에 열중했다.
그리고 11월 19일.
마침내 수능시험이 실시됐고, 다음 날 아침. 시험 직전 쉬는 시간까지 요약노트와 오답노트를 달달 외운 보람이 있었다며 자랑스럽게 자기 점수를 자랑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현은 그런 애들을 조금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수능 바로 다음 날인 오늘까지 애들은 흥분 상태일 거다.
작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애들이 대부분일 테니까.
자신이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감격하겠지만, 그건 얼마 가지 못할 테고.
‘역시 수능은 이번에도 쉬웠어.’
수현이 고개를 저었다.
예상했던 대로 순한 맛의 물수능.
예체능계 상위 5%에 들려면 280점은 넘어야 할 테니, 작년과 비교하면 큰 점수 차다.
상위권 대학을 노리려면 300점 이상이 안정권일 테고. 물론 소묘와 전공 두 과목의 실기시험에서 모두 A⁺를 받는다면 학과성적에 상관없이 합격시키는 학교도 드물게 있긴 했지만 그걸 기대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한수현, 넌 어땠어?”
“어?”
“가채점했을 거 아냐. 잘 나왔어?”
“그럭저럭 괜찮았어.”
“그러니까, 그게 얼만데!”
애들은 곧 수현의 책상 앞으로도 몰려들었다. 이미 대입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인 수현이었으나, 워낙 성실하게 학과와 실기 수업에 임해왔으니 결과가 궁금한 얼굴이었다.
“330점 정도 나올 것 같던데?”
“……!”
“……뭐?”
“……진짜야? 330점?”
애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미친. 너 그럼 전국 수석 아냐?”
“맞아! 예체능계 수석이 작년에 저 정도 점수 아니었어?”
“미쳤다. 한수현. 수능까지 그렇게 잘 봤다고? 필요도 없는 시험을?”
“허. 미쳤어. 미쳤어.”
애들이 질린다는 얼굴을 하며 크게 흥분했다.
“아니야.”
수현이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뭐가 아니야?”
“수석 같은 거 아니라고.”
“왜! 점수가 증명하는데!”
“그래! 너 겸손도 지나치면 별루라고!”
실기시험 당일 컨디션이 평소보다 좋지 않더라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의 점수는 되겠으나 수석과는 거리가 멀었다.
상위권 대학에선 흔히 보게 될 점수.
수현은 전시회며 이런저런 일에 시간을 뺏겨 시험점수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애들한텐 먹힐 소리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분위기는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급반전을 맞았다.
“흐어어엉. 나 어떡해.”
“난 망했어. 목표했던 대학들 커트라인에 다 걸릴 것 같대.”
“280점에서 300점 사이가 진짜 많을 거래. 하. 실기시험 기깔나게 보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것 같다는데 어쩌지.”
차례차례 상담을 다녀온 애들이 곡소리를 냈다.
세현예고 입시 전문 선생님들의 정보수집력은 생각보다 빠르고 정확했고, 그 기준에 맞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로 보게 된 애들은 아침과는 달리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래도 미대는 학과보단 실기야.”
“맞아. 내가 볼 대학은 학과 30% 실기 70%야. 역전 가능해.”
“허, 어딘데? 보통은 5:5 아니냐?”
“어쨌거나 이젠 후진도 못 해. 전진뿐이라고! 가자! 실기실로!”
애들은 곧 전의를 불태우며 실기동으로 향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앞으로 정시 실기시험이 있기까지 한 달에서 두 달 사이.
이 시기에 눈 딱 감고 죽었다 그림에 매달리지 않으면 재수라는 고통의 시간이 형벌처럼 찾아올 테니까.
그리고 2주 후.
“후…….”
어느덧 12월. 겨울의 초입이었다.
수현은 두꺼운 옷차림에 화구가방을 들고 백현대 앞에 서 있었다.
“떨진 않겠지만, 떨지 말고. 어우, 내가 뭐라고 하니. 진짜.”
특차시험 당일.
언제나처럼 강유진 관장이 수현을 시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따뜻한 물이랑 혹시 몰라서 청심환도 넣었어. 컨디션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먹어. 알겠지?”
엄마처럼 따뜻하게 챙겨주는 강유진 관장.
수현이 살짝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잘 챙길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관장님.”
“그래. 다 그린 그림을 북북 찢어서 내지 않는 이상 합격이니까 부담 갖지 말고 쓱- 그리고 나와. 알겠지?”
“하하. 네. 그럴게요.”
정시 외에 한 번 더 시험 칠 기회가 주어지는 전형이니 자격이 되는 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들었다. 백현대 앞 정문은 순식간에 복잡해졌다.
“저 그럼 들어갈게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이따가 보자!”
담백한 인사를 나눈 수현이 걸음을 돌려 백현대 미술대학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코가 매울 정도로 찬 공기가 어쩐지 상쾌하게 느껴졌다.
***
“한수현, 축하한다!”
“차윤희, 김세라, 강성연도 합격이야!”
특차시험이 끝나고 다시 2주.
정시 시험이 시작되기 전, 합격자가 발표됐다.
“으아아아! 합격이다아!”
“축하해! 정말 축하해!”
“미쳤다! 우리 같은 학교야!”
특차전형에 도전한 학생 중 절반 정도가 합격 소식을 전해 듣게 됐다.
백현대, 세인대, 경성대.
여러 학교에 골고루 합격자가 나왔고, 불안해하며 백현대에 지원했던 차윤희도 당당히 합격증을 받게 됐다.
“한수현. 나 눈물 날 거 같아.”
차윤희는 합격 소식을 듣고 곧장 수현에게 달려와 손을 붙잡았다.
“눈물…… 이미 나는데?”
“어? 정말?”
“고생했어. 축하한다. 윤희야.”
“히잉. 너도 축하해, 수현아.”
그간 꾹 참고 버텨온 시간이 보상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수현은 감격의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차윤희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주었다. 그런데,
“나 이제 종현 선배랑 같은 백현대야.”
차윤희의 입에선 어이없는 감상이 튀어나왔다.
“뭐?”
“내가 진짜 이날만 기다리면서 미친 듯이 공부하고 그림 그린 거라고.”
“어?”
“두고 봐. 나 꼭 CC한다. 종현 선배한테 고백할 거야.”
“그래. ……파이팅.”
수현이 어색하게 등을 두드려주던 손을 떼며 하하 웃었다.
특차시험 발표로 잠깐 잔칫집 분위기가 나긴 했으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입시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
“나 어제보다 왜 못 그렸지? 슬럼픈가? 이러면 안 되는데?”
“나 원서 써버렸어. 근데 제대로 쓴 건지 기억이 안 나네? 서류 잘못 써서 떨어질 수도 있나? 어? 다시 쓸까?”
여기저기서 멘탈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김하영과 몇몇 무리는 그 와중에도 과거와 똑같이 도피 유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수현은 또 한 가지 반갑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됐다.
김민준 역시 백현대 회화과 특차전형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단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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