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쇼케이스(1)
“와, 집 엄청 좋은데?”
“그러게. 상상 이상이다. 너 대체 돈을 얼마나 번 거야?”
졸업식과 주말을 보내고 난 월요일 아침. 수현을 도우러 차윤희와 박선화, 박준영, 오유나, 스티브가 찾아왔다.
오늘은 수현이 이사를 하는 날이었다.
“온전히 내 돈은 아니고, 미리 받은 돈이랑 대출도 좀 있어.”
수현이 작게 웃었다.
부자인 친구들의 집에 비하면 아담하겠지만 수현에겐 더 이상이 없는, 대궐 같은 집이었다.
무려 2층짜리 단독주택이라니.
“대출? 무슨 대출? 아니, 너 스무살 되자마자 대출부터 땡긴 거야? 그러다 큰일 나!”
깜짝 놀란 얼굴로 박선화가 다그쳤고 수현이 그런 박선화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설명이 복잡해서 대출이라고 한 거야. JK그룹에서 이자 없이 돈을 빌려줬거든.”
“무이자로? 확실해?”
“응. 서류랑 절차는 강유진 관장님이 몇 번이나 확인해주셨어.”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투룸 빌라와 신축 오피스텔, 그리고 이 집.
노영국 부회장은 김영인 부장을 통해 수현이 모은 돈이 크긴 하나, 집값이 크게 떨어지기 전 시세로 사려면 좋은 집을 구하긴 어렵단 얘기를 해왔다.
그러니 어차피 부족한 자금을 끌어와야 한다면 오래 살 수 있고, 방음 문제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집이 낫지 않겠느냐며 이 집을 권했고.
대신 부족한 금액은 무이자로 융통해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앞으로 수현이 그려낼 작품과 여러 가지 작업을 생각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투자라면서.
겁나는 돈이긴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에게도 리스크가 있는 건 아니었다.
작품으로 받게 될 대금, 광고료, 상품 기획 같은 것들을 전제로 주는 선수금 개념이었던 거다.
게다가 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1층엔 커다란 거실과 주방, 화장실이 하나. 2층엔 작은 거실과 방 두 개, 작은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1층은 아뜰리에로 꾸며 친구들도 종종 초대하면 좋겠다 싶었고, 2층은 아기자기한 생활 공간으로 만들기 딱이었다.
영국에서 제임스 리와 준이 쓰던 작업실 같은 멋진 작업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제대로 벌지 못하면 이 집을 팔고 다시 이사해야 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내 집이긴 한데, 장기전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
대충 알아듣겠는지 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주 놀러 와도 되지?”
“그러게. 여기 백현대 코앞이라 거의 참새방앗간 될 거 같은데?”
“언제든지 놀러 와. 나야 좋지. 어차피 1층은 작업실로 만들 생각이거든. 와서 같이 그림 그리자.”
“어우. 한수현. 놀러 와도 되냐고 물어봤잖아. 그림 그리러 와도 되냐고 한 게 아니라.”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긴 했지만 애들도 들뜬 표정이었다.
어쨌거나 애들 입장에서도 훌륭한 아지트가 생긴 셈이었으니까.
“그런데, 집에선 뭐라고 안 하셔?”
차윤희가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자신도 입학과 동시에 작업실을 구하고 싶어 집에 말했는데, 아버지인 차수혁 작가가 적어도 1학년 동안은 집에서 통학하라고 말했다는 거다.
윤희의 성격상 독립을 허락하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노느라 정신없을 게 분명하다고 했다는 건데, 그 점이 윤희는 몹시 서운하면서도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어쨌든, 윤희는 수현이 자신과 달리 어떻게 곧장 독립을 허락받은 건지 궁금한 눈치였다.
“잘 이야기했지. 기숙사 생활하면서부터 집에 내 공간이 없어지기도 했고, 갑자기 나온 얘기는 아니었으니까.”
수현이 웃으며 대답을 넘겼다.
백현대 입학이 확정되던 날, 수현은 집에 합격 소식을 알리면서 앞으로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 자신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세현예고에 들어올 수 있게 도와주셨던 부분에 따로 감사 인사를 했고.
어쩐지 너무 성숙해버린 수현의 모습에 부모님은 당황한 얼굴이었는데, 수현은 거기다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고 있단 말을 짤막하게 덧붙였다.
엄마는 당황한 얼굴로 어떻게 그걸 알게 됐는지, 또 친부모에 대해 알고 싶은지를 물었고.
수현은 몇 가지 사건으로 짐작했다며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
친부모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고,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한단 말을 전하자 큰엄마는 결국 펑펑 눈물을 쏟았다.
자신에 대한 연민과 수현을 향한 연민이 동시에 느껴지는 눈물.
그 끝에 큰엄마는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주었다. 수현은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안아주었고, 미움을 털어냈고, 조금은 복잡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으니까.
그러니 수현의 독립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었다.
“아, 어쨌든 너무 부럽다.”
차윤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비단 수현의 작업실만 놓고 하는 소린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 빼고 너희 다 백현대 앞에 살게 된 거잖아.”
“뭐, 1학년만 잘 버텨. 그다음에 허락받으면 되지. 아님 너도 일선화랑에 들어오든가.”
스티브가 싱긋 웃었다.
일선화랑에도 몇 달 사이, 큰 변화가 있었다.
수현의 전시회를 계기로 JK그룹 노영국 부회장과 강유진 관장의 미팅이 몇 번 생겼는데, 그러면서 새로운 사업이 시작된 거다.
노영국은 1차 시장 중에서도 으뜸인 일선화랑에 투자하고 싶단 의사를 밝혔고, 대신 JK가 2차 시장인 경매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협조해달라 요청했다.
자세한 계약의 내용까지야 어른들의 얘기라 알 수 없었지만, 일선화랑이 ‘일선아트센터’로 이름 바꿀 준비를 하며 기존의 건물들을 새단장 하는 것만으로도 프로젝트의 규모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강유진 관장은 전시장은 그대로 두고, 입주작가들에게 내주었던 아뜰리에 공간을 또 다른 전시장으로 리모델링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입주작가들을 위한 공간을 새로 구하게 됐는데, 그게 마침 백현대 앞에 있었다.
당연히 스티브와 박선화는 거기에 들어가게 됐고, 수현의 집과는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오유나는 오유나였다.
“근데 윤희 너, 여태 독립할 자금도 안 모아두고 있었어?”
“뭐?”
“어릴 때부터 받은 용돈이며, 통장이 있을 거 아니야. 그걸 잘 굴렸어야지. 그럼 부모님께 이런 아쉬운 소리 안 하고 네 힘으로 나올 수 있었을 거잖아.”
“뭐야. 오유나, 넌 그랬단 말이야?”
“뭐, 나야 씨드머니가 좀 크긴 했지만, 그래도 제때제때 투자해서 재미를 좀 봤거든. 그걸로 이번 집도 구한 거고.”
오유나는 백현대 앞에 초호화 아파트를 하나 얻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임시로 지낼 곳을 부모님이 구해준 줄 알았는데, 말하는 걸 들어보니 자신이 번 돈으로 아예 사버린 모양이었다.
“미친.”
차윤희가 필터를 거르지 않고 격한 감정을 표현하더니 크게 소리쳤다.
“아, 몰라! 나도 이 동네 살고 싶어! 나도 너희랑 살고 싶다고오오!”
***
가구와 가전, 큰 물건들을 들이고 작은 짐들은 차차 정리하기로 했다.
다행히 수현의 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종류가 다양해 정리에 신경 써야 할 건 그림 도구들 정도였고, 고등학교 내내 교복을 입었던 탓에 옷도 얼마 없었다.
덕분에 이사가 마무리된 건 오후 세 시쯤이었다.
“후웁.”
수현이 크게 심호흡했다.
친구들이 돌아간 후, 짜장면 냄새가 요란해 한참 환기하고 문을 닫았는데, 그래도 빠지지 않는 냄새가 있었다.
물감과 붓, 그림들에서 나는 그립고 편안해지는 냄새였다.
“이제 여기가 내 집이네.”
수현이 천천히 집을 둘러보았다.
1층 거실은 어느새 그럴듯한 아뜰리에로 꾸며졌다.
통창으로 내다보이는 작은 마당은 평온하고 따뜻했고, 그리로 들어오는 햇살이 두 개의 이젤 위에 올린 그림을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다.
개인전에 낼 그림 중 마무리가 남은 건 1층에, 완성작은 2층 작은 방에 보관했다. 그것들이 제법 꽉 차는 느낌이 들 때, 전시회가 시작되겠단 생각이 들자 수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때,
“……?”
수현의 PCS 폰이 진동했다.
“여보세요?”
발신자는 JK 김영인 부장이었다.
-작가님, 이사는 잘했어요?
“네. 큰 건 어느 정도 끝났고, 이제 작은 것들만 정리하면 돼요.”
-그래요. 고생했겠네. 집은 어때요?
“너무 좋아요. 이런 집에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에이, 그런 말이 어딨어요. 사실 우리 쪽에선 더 크고 좋은 곳도 알아봤는데, 지난번 작가님이 얘기했던 걸 떠올려보니 그런 집을 원할 것 같진 않더라고요.
“맞아요. 지금 이 집도 저한텐 너무 과분해요.”
-하하. 지금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앞으로 수현 씨의 세계는 더 크고 넓어질 거예요. 더 많은 걸 누릴 기회도 생길 거고.
김영인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다음 말을 골라냈다.
-오늘 연락한 건 쇼케이스 일정이 잡혀서예요.
“허, 그래요?”
순간 수현이 바짝 긴장했다.
쇼케이스가 2월의 어느 날이 될 거란 것까진 알았으나 확실한 일정과 장소는 미정이었는데, 그게 막 결정 난 모양이었다.
그런데 날짜와 장소를 기다리는 수현에게 김영인은 또 한 번 심장 박동수를 올릴만한 말을 전했다.
-총 세 군데에서 진행할 거예요.
“세 군데에서요?”
-네, 광화문, 백현대 앞, 강남역. 이렇게 세 군데 전광판을 확보했어요.
“와…….”
-그게 1차 쇼케이스일 거고, 가을 전시회까지 총 세 번의 쇼케이스가 진행될 겁니다.
“세 번요?”
-네, 1차는 광화문, 백현대 앞, 강남역. 2차 장소는 좀 더 확장해서 열 군데 정도로 보고 있어요. 3차는 규모가 훨씬 더 커질 거고요.
“허…….”
게릴라 콘서트처럼 진행될 쇼케이스.
수현의 그림은 아무 설명 없이 옥외전광판과 지하철 전광판에 펼쳐질 예정이었다.
한 번의 깜짝쇼 정도로 생각했고,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떨렸는데, JK에서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 이벤트로 쇼케이스를 기획한 모양이었다.
서울의 최고 핫플레이스에서 동시에 열릴 쇼케이스. 3회차로 점점 확장할 계획이라니.
-내일 오후 2시, 5시, 8시에 차례대로 오픈될 거예요. 광화문, 백현대, 강남역 순서로요.
“그렇군요…….”
-일주일간 걸릴 거고 그림이 총 두 번 교체될 예정이에요.
“두 번요?”
-위로라는 이름으로 전시하지만, 광화문, 백현대, 강남역에 서로 다른 그림을 걸 거거든요. 그걸 로테이션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어? 처음엔 한 장만 공개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수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수화기 너머로 잔잔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장을 고를 수가 있어야죠. 다 너무 좋아서. 어쨌거나 내일 시작이에요. 궁금하면 작가님도 한번 나와서 보세요. 자세한 위치는…….
통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은 수현은 어쩐지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어 스르르 자리에 주저앉았다.
드디어 내일,
자신의 첫 개인전 작품이 대중에 공개되게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