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신입생 환영회(2)
“한수현, 이창훈, 심민영, 김민준, 박상현.”
호명을 마친 학생회장이 다섯 명의 새내기를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우리 회화과의 기둥이자 희망, 그리고 전사입니다.”
“……?”
감정이 온몸을 지배하는 유형으로 보이는 학생회장은 닭살 돋는 말을 뱉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다음 주에 있을 백현대 미대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미대 11개 과가 돌발 경합을 벌이게 될 겁니다. 경합은 아마도 첫째 날이나 둘째 날 저녁 중 열릴 텐데, 거기서 우리 회화과가 기필코 우승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 영광의 트로피를 회화과로 가져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와아아아-.
학생회장의 선언에 환호하는 선배들. 98학번 새내기들은 그저 눈알만 데굴데굴 굴릴 뿐이었다.
미대 전체가 참여하는 오리엔테이션.
그 일정 중 11개 과가 벌이게 될 경합에 참여하란 건데, 결국 회화과 전통이란 게 거기 내보낼 대표 선수를 뽑는 이벤트였던 모양이었다.
그런 거라면 경합은 드로잉과 관련된 내용이란 건데…….
어쨌거나 회장은 우승한 과에는 특전이 주어지고 올 한해, 미대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행사에 베네핏을 얻을 수 있다는 걸 힘주어 강조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좀 귀찮네…….’
수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식으로 남들 앞에 서는 건 영 체질에 맞지 않았다. 떠밀리듯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하지만 벌써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이 기대로 반짝이며 자신을 향하고 있었고, 그걸 무너뜨릴 정도로 이 일이 싫은 건 또 아니었다.
전시회까지도 제법 여유가 있으니 지난 생엔 제대로 즐기지 못한 대학 문화를 온전히 즐겨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고.
‘저렇게들 기대하는데, 어느 정도는 맞춰줘 볼까.’
고개를 끄덕인 수현이 쓰윽- 함께 대표로 뽑힌 애들을 바라보았다.
김민준이야 전부터 알았으니 논외로 치고,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은 오늘 초면이었는데, 이름과 얼굴을 다시 확인할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은 그림을 그린 애들이었다.
‘멤버도 그렇고, 이왕 나가는 거면 이기는 게 좋겠는데?’
수현이 그렇게 마음을 정해갈 때,
“그런데 선배님, 그 돌발 경합이라는 게 대충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을까요?”
소몰이하듯 몰아가는 분위기에 끌려온 동기 중 하나가 학생회장에게 질문했다.
“좋은 질문입니다! 그런데 답을 드릴 수가 없네요. 경합 내용은 매년 달라지거든.”
어깨를 으쓱 올리는 학생회장.
“다만, 미대 안의 행사다 보니 주로 그리기와 관련한 미션이긴 해. 오늘 출중한 실력을 보인 우리 후배님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우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답을 들었는데, 들은 것 같지 않은 묘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두루뭉술 학생회장의 이야기가 마무리됐고, 수현을 포함한 대표 학생들이 자리로 돌아가자 기다렸다는 듯 회화과 교수들이 신입생 환영회 장소에 나타났다.
“주모오옥! 회화과 교수님들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모두 박수우!”
학생회장의 오버에 선배들이 먼저 환호했고, 새내기들도 얼떨떨한 얼굴로 박수를 보냈다.
수현의 눈이 처음으로 빛났다.
‘권인호 교수님이다.’
예고 시절, 김여진 선생이 수현에게 세인예술대 진학을 권했을 때 곧바로 떠올렸던 인물.
입시의 마지막까지 수현이 백현대와 세인대를 두고 고민한 것도 저 권인호 교수라는 인물이 장차 해낼 일들에 관심이 컸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고민은 권인호 교수가 파격적인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백현대로 옮겨가게 됐단 소식에 시원하게 해결될 수 있었지만.
‘반갑네.’
수현이 싱긋 웃었다.
길게 이야길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권인호 교수는 전국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수현과도 연이 생겼다. 시상식에서 짧은 인사를 나누었고, 격려의 말도 들었고.
또 JK 노영국 부회장을 통해 권인호가 수현의 그림을 크게 칭찬했단 얘기도 전해 들었다.
그러니 내적 친밀감만은 무척이나 높은 상태.
“이거, 이거, 신성한 실기실에서 술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하는구만.”
권인호 교수가 껄껄 웃으며 회화과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먼저 98학번 신입생 여러분, 백현대 회화과 입성을 환영하고 축하합니다.”
와아아-!
권인호 교수의 인사에 선배들은 함성을 질렀고, 새내기들은 뭉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 익숙해지면 차츰 희석되겠지만, 지금은 입시 기간 해왔던 노력과 힘들었던 시간, 그리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결국 백현대 미대에 합격했다는 감격이 모두에게 충만할 시기였던 거다.
“백현대 미술대학은 총 11개 과, 크게는 순수미술과 디자인과로 나뉘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은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차이점이 뭔지 알고 있습니까?”
권인호 교수가 40명의 새내기에게 차례로 시선을 주며 가볍게 물었다.
“여러 가지 차이가 있겠지만 주체가 누구냐로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순수미술은 작가가, 디자인은 대중이 주체가 되는 일이 많으니까요.”
다행히 주입식 교육에 찌들어 사소한 질문에도 위축되기 쉬운 학생들에게 압박 없이 쉽게 답을 내어주는 권인호.
이에 학생들이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 백현대 미술대학은 앞으로 이러한 경계를 차츰 무너뜨릴 생각입니다.”
그리고 권인호 교수는 싱긋 웃으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백현대 미대는 규모나 수준, 어떤 면에서 봐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학교입니다. 해서 올해부터 백현대 미대에서는 각 과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은 물론, 장벽을 넘어 협업하며 시야를 넓히고 깊은 경험을 하게 할 수업을 개설하게 됐습니다. 재학생 여러분은 물론, 신입생 여러분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이 수업에 꼭 참여해주길 바라겠습니다.”
웅성웅성.
신입생들과 재학생들이 그 말에 곧장 반응했다.
부족한 수업 소개는 오리엔테이션과 학기 초에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겠으나, 이 짤막한 예고만으로도 기대와 우려, 여러 가지 감정이 들끓기 충분했던 거다.
“소문이 사실이었네.”
“그럼 학교 다니기 더 힘들어지는 거 아냐? 지금도 과제가 엄청난데, 타과 전공까지 들어야 한다는 거잖아.”
“글쎄. 자세한 건 몰라도 몇 개 수업이 없어지고 새로 개설되는 거 아닐까? 인기 없던 수업들은 전부터 말이 많았으니까.”
“근데 협업이란 거지? 조별 과제 같은 걸로 생각하면 되나? 타과생들이랑? 하. 괜찮을까?”
“경험이 많아진다는 게 나쁠 건 없겠지만, 개인 작업 시간만으로도 빠듯하니 문제지. 협업이 제대로 될 거란 보장도 없고.”
선배들도 갈피를 못 잡고 당황하는 걸 보니 권인호 교수가 부임하면서 생긴 변화가 확실했다.
‘하긴. 권인호 교수님은 세인대에서도 그런 수업을 만들었던 분이니까.’
어쩌면 그 자리에서 동요하지 않는 건 수현 정도였다.
세현예고 김여진 선생이 미리 귀띔해준 이야기가 있었고, 과거의 경험으로 권인호 교수가 초창기 바우하우스처럼 경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예술을 경험하는 틀을 대학에 만들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빠르다.’
백현대는 현존하는 국내 미대 중 최고 수준의 학교.
그러니 기존의 커리큘럼을 수정하고 개혁에 가까운 수업을 적용하는 데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일이 수현의 입학과 동시에 이루어지려는 모양이었다.
‘애들한테는 물론이고 나한테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경험이 짧은 학부생들은 당장 과제량이 늘어날 것과 협업의 과정에서 생길 마찰을 우려하고 있었으나 그보다는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커 보였다.
무엇보다 작가라는 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니까.
자신의 스타일을 개발하고 화풍을 만들고 소재를 발굴해 이름을 알리는 것. 해본 사람은 알 거다.
그게 얼마나 지난하고 괴로운 과정인지.
‘눈을 감고 운전하는 기분이 그럴까.’
핸들을 잡고 있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공포와 불안.
그 감정이 지속되면 한 번씩 큰 파도를 일으켜 작업자를 덮친다.
당연한 일이다. 순수미술에서 요구되는 건 권인호 교수의 말대로 작가가 주체가 되는 것.
즉 작가가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그리로 대중을 끌어들이는 행위니까.
쉽게 말해 파랑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깔끔한 파란색 물건을 내미는 것이 디자인이라면, 파랑을 좋아하는 아이 자신조차 몰랐던, 파랑보다 더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색을 찾아 선사하는 게 순수미술이다.
대상자도 모르고 작가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
그러나 영향을 미쳐 기필코 닿아야 하는 이상향.
그게 쉽겠냐고.
하지만 작업자들은 있는지 없는지 모를 파랑새를 찾기 위해 얼마나 긴지 알 수 없는 터널을 눈을 감고 달려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수많은 오해가 생겨난다는 점이다.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된 수많은 작업자가 과격하고 충격을 주는 이미지에 집착하며 빠져들기도 하고, 이미지로 전할 수 없는 감상을 주렁주렁 긴 부연 설명으로 대체해 오히려 대중과 벽을 쌓기도 한다.
평생 배고프거나 평생 타인을 원망하거나, 또 다른 삐딱선을 타면서 저지르는 삽질은 종류가 다양해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권인호 교수의 제안대로 순수미술과 디자인 사이의 담이 낮아진다면, 의외의 시너지를 기대해볼 수 있었다.
당장 수현만 하더라도 시험하고 도전해보고 싶은 것들이 벌써 여럿 떠올랐다.
‘게다가 공동작업이라면 스케일도 커질 수 있잖아. 혼자 하기 힘든 작업을 단기간에 끝낼 수 있을 테니까, 꽤 즐거울 수도 있겠어.’
학생들이 웅성거리고 수현이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권인호 교수 외에 새롭게 부임한 해외파 교수들 몇몇이 인사를 마쳤고, 다시 뿔뿔이 흩어져 학생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젊음이 좋구나. 많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도 좋은데 술이든 노는 일에 너무 빠져드는 건 경계해야 해. 결국 작업자에게 중요한 건 또 성실이거든?”
“하하. 명심하겠습니다, 교수님.”
“알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잔 받으세요!”
어딘가 요란했던 신입생 환영회는 어느새 선후배, 교수들이 경계를 허물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부드러운 분위기로 바뀌었고, 수현 역시 아까보다 편안한 자세로 회화과 사람들의 얘기를 경청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톡톡.
누군가 수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뒤돌아보니 오늘의 MVP격인 학생회장이 수현의 뒤에 서 있었다.
“잠깐 나올래?”
눈치를 보아하니 아까 호명했던 대표 선수들도 한 번에 불러낸 모양.
드르륵.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곤 의자에서 일어나 학생회장을 따라 복도로 향했다.
거기엔 예상대로 다음 주 오리엔테이션에서의 과별 경합에 참여할 대표 선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고, 학생회장과 97학번 선배 둘이 비장한 표정으로 애들을 둥글게 모이게 했다.
“원한다면 지금 돌아가도 괜찮아.”
“네?”
“어딜요?”
“집. 벌써 10시가 됐잖아.”
한참 뜨거운 분위기에 조기 퇴근을 허락하는 갑작스러운 말에 애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학생회장이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신입생 환영회, 이대로 안 끝나. 새벽 서너 시나, 심하면 아침까지 달릴 수도 있거든. 너희 체력이 받쳐준다면야 상관없지만, 이 일로 컨디션에 이상이 생겨선 안 되니까 하는 소리야. 월요일이 바로 오티니까.”
“하지만, 안에 가방도 놓고 왔는데요?”
“그건 우리가 챙겨줄게. 어차피 다들 취해서 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거고. 어수선할 때 슬쩍 빠져나가. 오케이?”
다음 주 오리엔테이션에 있을 경합을 위해 컨디션 조절을 해두란 소리. 이렇게까지 배려할 일인가 싶었는데.
“이거 엄청난 편의를 봐주는 거야. 다 너희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인 거 알지? 우리 파이팅하자?”
학생회장은 눈에 힘을 잔뜩 주며 애들과 차례로 눈을 마주쳤다.
이쯤 되니 대체 오리엔테이션에서 벌어질 경합이 뭔지, 거기에 걸린 구체적인 보상이 뭔지 수현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