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온에어(2)
“음. 확실히 앞부분이 과한 느낌은 있어.”
영상을 보며 아쉬웠던 점을 털어놓자 여태 말을 아끼던 권인호 교수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고,
“하지만 3초, 4초 정도 되는 짤막한 구간이라 순식간에 지나갈 거야. 너희야 작업을 하면서 계속 영상을 들여다보니 단점이 도드라져 보이겠지만.”
이태훈 교수는 현실적인 조언을 던지며 애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게다가 온에어가 된다면 앞뒤로 우리가 흔히 봤던 실사 광고가 붙을 거란 말이지. 갑자기 애니메이션 화면으로 확 전환된다는 점에서 이미 시선이 집중될 거라 터치가 역동적인지 스무스한지, 그런 디테일까지 영향받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그래도 앞부분에 터치가 요란해 보이는 느낌이 살짝 눌러지는 게 완성도 면에선 훨씬 낫겠죠?”
하지만 수현은 끝까지 확실하게 정확한 감상을 물었다.
이만하면 넘어가도 괜찮다와 흠잡을 데가 없다는 감상엔 큰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
“그래. 확실히 수현이 네 고민대로 앞부분의 색감이 눌러지면 완성도는 올라갈 거야. 하지만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고, 효율을 따져볼 때 그걸 위해 수십 시간을 투자하는 게 맞느냐를 생각해보자는 거지.”
이태훈이 한숨을 내쉬며 수현을 설득했다. 권인호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현아. 욕심이 과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단 말도 있잖니. 조금 덜어내는 연습도 필요하겠다, 싶구나.”
그때였다.
“그렇네요.”
수현이 뭔가에 얻어맞은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응?”
“과해서 그런 거였어요. 너무 지나친 게 문제였다고요.”
빠르게 다시 되뇌이는 수현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환하게 번졌다.
“알 것 같아요. 교수님. 이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현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
“허 참.”
“하하. 그것참.”
수현과 친구들이 돌아간 후, 이태훈과 권인호 교수가 뭔가에 홀린 듯한 얼굴로 짧은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다.
“교수님, 백현대 학생들은 다 이렇습니까?”
침묵을 먼저 깬 건 이태훈 교수였다.
“나도 백현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확답은 어렵지만 아닐 거예요. 저 나이에 저 정도 실력과 근성까지 갖추는 건 일반적이지 않죠. 그보단 드물게 보이는 천재과로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권인호가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수현이 저 애는 몇 년 전부터 내가 지켜보던 학생입니다.”
그리고 권인호는 수현과의 인연을 천천히 풀어놓았다.
전국대회에서 심사위원과 참가자로 만났던 일을 짧고 굵게 소개한 거다.
“고작 고등학교 2학년짜리 애가 그려낼 그림이 아니었어요. 다들 무척이나 놀랐죠.”
“될성부른 나무였군요. 하기는, 광고 수업 때도 확실히 튀긴 했어요.”
“그 정도가 아닙니다. 그 JK그룹에서 곧바로 후원을 약속할 정도였으니까요. 노영국 부회장, 그 사람이 투자에는 또 귀재잖아요. 그 까다로운 눈에 단박에 든 거죠. 아마 수현인 지금 첫 개인전 준비도 병행하고 있을 겁니다. JK와 함께 한다고 들었어요.”
“허. 개인전이요? 고작 스무 살짜리가요?”
“보통 사람의 상식이나 경험을 들이대면 이해하기 어렵죠. 하지만 잣대를 치우고 지켜보면 구경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고 해야 하나. 어디까지 성장할지 기대가 큰 학생입니다. 아니, 학생이라는 말도 어폐가 있군요. 벌써 작가의 길로 진입했으니.”
“그러게요. 저도 아까 얼마나 놀랐던지.”
권인호 교수의 말에 이태훈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고민을 털어놓던 수현이 갑자기 방법을 찾았다며 눈을 반짝였을 때, 이태훈은 저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수현의 입에서 그 또래가 할법한 고만고만한 이야기가 아닌, 충격을 주는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단 예감이 강렬하게 들었던 거다.
그리고, 정말 수현이 내놓은 아이디어는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시간도 줄이고, 효과도 한결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즉석에서 떠올린 거잖아요. 그것도 과유불급이라는 교수님 말씀 한마디에.”
“나도 놀랐어요. 과유불급이란 게 그림을 보고 한 얘기도 아니었고, 작업 분량을 적당히 조율하란 조언이었는데, 거기서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릴 줄이야.”
두 교수가 다시 고개를 흔들며 허허 웃다가 멍하니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
같은 시각, 백현대 정문 앞.
“그럼 우린 가도 되는 거지?”
“어. 오늘은 쉬자.”
“무르기 없기야. 진짜 금요일까지 쉬는 거다?”
“그래. 이제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될 거라니까? 물론 완성까지 기본적인 시간 투자는 해야겠지만.”
“근데 수현이 네 말대로 하면 문제가 다 해결될까?”
“괜찮을 거야. 오히려 처음 우리가 하려던 것보다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해.”
수현이 확신에 찬 투로 말하자 그제야 애들도 한결 편한 얼굴이 됐다.
“그래, 수현이가 그렇게 말하면 맞는 거겠지.”
“응. 나도 상상해봤는데, 아까 수현이 말대로 만들어지면 오히려 전보다 더 멋질 것 같아.”
교수들이 놀라고, 친구들이 인정한 수현의 새로운 아이디어.
그건 생각지도 못한 순간, 수현의 머리에 번뜩인 것이었다.
과유불급.
지나치면 부족함보다 못하단 권인호 교수의 말 한마디가 엉켰던 수현의 머릿속 실타래를 시원하게 풀어냈던 것.
오브제가 많고 카메라 워킹이 화려한 광고의 도입부.
거기에 색감까지 총천연색으로 들어가 그 터치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 영상은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
수현은 그저 도입부의 터치를 잔잔하게 누를 생각만 했고, 적당한 느낌에 도달할 때까지 무수히 반복해 톤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게 된 거다.
‘도입부의 색감을 아예 빼면 어떨까.’
이태훈 교수는 광고가 온에어 되면 실사로 만든 광고들 사이에 끼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조언했다.
그러니 애니메이션 광고라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모으는 효과가 있을 거라 너무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아도 될 거라 설득했고.
그런데 수현은 그의 이야기와 권인호 교수의 말에서 도입부의 색감을 완전히 빼버리는 방법을 떠올렸다.
흑백의 선으로만 도시의 전경이 그려지고 카메라가 도시 부감에서 자전거가 달리는 강변도로로 이동할 때.
툭. 종이 위에 떨어진 물감이 순식간에 번지듯 화면이 채색되는 효과를 생각한 거다.
‘화면에서 색을 빼버리면 실사 광고와 대비되는 효과가 더 커질 거야. 쭉 색감이 없는 스타일로 가면 밋밋한 느낌이 들겠지만 3초 이내에 물감이 번지는 효과로 색감을 입힐 테니 오히려 그림이 생명력을 얻은 듯 생생해 보일 거고. 그렇게 하면 초반부 어지럽게 느껴졌던 터치의 문제도 저절로 해결될 테니 더 고민할 이유가 없는 거잖아.’
다시 생각해도 기막힌 해답이었다.
물론 제대로 그려낸 결과물을 확인해봐야 확실해지겠지만 당장 머리로 돌린 시뮬레이션으로는 완벽했다.
그렇게 해답을 찾은 수현은 가벼운 마음으로 애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새로운 계획표를 짜기로 했다.
채색을 모두 끝내기까지는 아직 한참이라 작업 분량이 꽤 됐으나, 도입부를 무한 반복하며 마음에 들 때까지 만들려던 때와 비교하면 아주 경제적인 작업량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걸로 수현도 수현의 친구들도 충분히 만족했고.
일주일, 이주일.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중간고사가 지나갔다 싶었는데, 어느새 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 6월이었다.
“끝!”
그리고 스무 살 여름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오유나의 집에서 함께 과제에 열을 올리던 수현이 마지막 프레임 작업을 마치고 종료를 선언했다.
함께 작업하던 친구들의 얼굴이 단박에 환해졌다.
“진짜 끝 맞아?”
“스캔 다 받은 거지? 마지막 장만 받으면 되는 거지?”
“그건 지훈 선배한테 체크해 봐야지. 선배, 넘버링 제대로 했죠?”
“당연하지. 스캔 원데이 투데이도 아니고, 나 이제 기계야, 기계. 스캔 속도며 정확도며 디자인 전공생보다 내가 나을걸? 장담한다.”
“보정도 절반 이상 끝났어! 희한하네. 똑같은 스캐너로 스캔받는데 왜 색감이 조금씩 틀어질 때가 있지?”
“기계라고 완벽하겠냐. 작업한다고 우리가 과하게 돌려대기도 했고.”
“하기는, 이 장비들 하루에 몇 시간을 돌린 거야. 만져보면 뜨끈뜨끈해. 그 바람에 에어컨도 벌써 돌리기 시작했고. 와, 전기세 많이 나오겠다.”
와글와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거실.
각자 전공수업에 교양수업에 과 행사를 해내면서도 펑크 없이 과제를 완성해냈다는 데에 자부심이 느껴지는 얼굴들이었다.
“빨리 보고 싶다.”
“이제 70%는 된 거 아니야?”
“그치. 수작업은 다 끝났고, 이제 컴퓨터에 입력해서 보정 마무리하고 동영상 프로그램에 얹어서 출력만 하면 되는 거니까.”
“기가 막히네.”
“그러게. 시간표 누가 짰냐? 아주 기가 막히게 떨어진다.”
중간고사 이후, 작업 분량을 기가 막히게 조절한 덕분에 다른 과목에 피해 없이 광고 과제도 시간 안에 완성해낼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작업량은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면 끝날 정도.
내일이 광고 수업이 있는 금요일이니 이 밤만 무사히 보내면 기일을 어기지 않고 제대로 된 영상을 제출할 수 있게 됐다.
“동영상 만드는 데 시간 얼마나 걸릴까?”
“전에 테스트했던 거 생각하면 1시간이면 되지 않을까?”
“그럼 이미지 보정하고 서두르면 3시간 안에 다 끝나겠네?”
그리고 애들은 슬슬 희망 회로를 돌리며 12전 퇴근을 꿈꾸었으나,
“밤 새울 각오들 하는 게 좋을 거야.”
수현은 고개를 흔들며 그 희망을 꺼트렸다.
“왜?”
“야작이라고? 이제 거의 다 왔는데?”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수현에게 되묻는 애들.
미안한 말이었지만, 수현은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회화풍으로 그렸잖아. 각각 이미지 파일이 용량이 꽤 되고.”
“응?”
“채색을 화려하게 한 데다가 컴퓨터로 이미지를 보정하면서 파일의 용량이 커졌을 거야. 그걸 수백 장 올려서 동영상으로 만드는 거라, 테스트 때보다는 시간이 걸릴 거란 거지.”
이 역시 몇 년만 지나도 우습게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컴퓨터의 성능이 참으로 보잘것없는 시기.
인터넷만 해도 아직 전화선 케이블에 모뎀을 꽂아야 연결되는 때다.
데이터 통신을 고속으로 이용할 수 있는 최초의 ADSL 서비스는 내년에야 개통된다.
그런 배경이니 조금만 용량이 큰 파일을 올려도 컴퓨터는 버벅거리기 일쑤였고, 심지어 작업 중간 화면에 폭탄 그림을 내보내며 저절로 다운을 선언하기도 했다.
수현은 그걸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래도, 설마 한 두 시간 더 걸리는 정도겠지.”
“그래. 어쨌든 서두르자.”
애들은 불안한 눈동자로 마지막 작업을 서둘렀고, 드디어 프리미어를 구동해 450의 파일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거 왜 이래?”
“어?”
“마우스 커서가 사라졌어.”
“찾아봐! 그게 왜 사라져!”
슬프게도 수현의 예측대로 파일을 불러들이기가 무섭게 컴퓨터가 퍼져버렸다.
“꼬졌네. 최신형이라더니.”
오유나가 당장이라도 목을 칠 듯 애꿎은 컴퓨터를 노려보았고.
“다시 해보자.”
“어. 어쩔 수 없지. 재시동이다.”
종료조차 되지 않는 컴퓨터를 강제 종료하며 애들은 쓰린 속을 달랬다. 그리고.
“또야?”
“왜! 대체 왜!”
“야야, 쳐다보지 마. 쳐다보니까 멈추는 거야. 모른 척해. 저 컴퓨터 알고 보면 내성적인 성격일 수도 있어.”
“아니, 진짜 이번엔 중간까지 잘 갔잖아! 왜 안 되는 건데!”
“윽박지르지 마! 그럼 더 안 돼! 긍정적인 말을 해줘야지! 매킨토시야, 힘을 내! 넌 할 수 있어!”
다운, 또 다운, 다시 또 다운.
몇 번이나 퍼지는 컴퓨터 앞에서 애들은 좌절하며 비명을 지르며 헛소리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이럴 것 같았다니까.’
수현 역시 긴장한 얼굴로 초초하게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벌써 새벽 1시를 훌쩍 넘어, 2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각.
‘안 되면 과제는 저용량으로 출력해가고, 정식 제출은 제대로 된 사이즈로 내는 수밖에 없겠는데.’
플랜B를 떠올리면서도 제발 제대로 된 영상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기를 얼마나 했을까.
“어?”
“뭐야! 이번엔 여기까지 가는데?”
“처음이잖아!”
“오오! 간다! 간다! 간다아!”
동영상 제작 완료까지 진행률을 보여주는 바가 50%, 70%를 넘어 90%까지 채워지고 있었다.
한일전 축구 경기에서 골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선수를 향해 응원 구호를 외칠 때처럼 애들은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고.
“어!”
“어!!!”
“됐어! 됐다아!!!”
덜덜덜. 힘겨운 소리를 내던 매킨토시가 툭. 완료된 파일을 약속한 위치에 뱉어냈다.
“흐어어어! 완성이야!”
“됐어! 이제 됐다고!”
“확인하자! 한번 보자!”
저용량으로 테스트 영상을 한차례 본 후라 다행히 오류없는 파일이 완성됐다.
“담아.”
“외장 어딨지?”
시뻘게진 눈으로 애들이 조심조심 깨끗하게 포맷한 외장하드에 완성된 동영상 파일을 옮겨 담았다.
그와 동시에 캄캄했던 오유나의 집 거실에 차르르-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