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홍콩에서(1)
“여권 챙겼고, 돈 챙겼고. 짐도 오케이.”
집에서부터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도 수현은 공항에서 한 번 더 가방과 소지품을 확인했다.
“후우.”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스티브와 강유진 관장, 그리고 전시에 필요한 핵심 인물들은 벌써 일주일 전, 홍콩으로 향했고 수현만 후발대로 가게 된 거다.
“좀 떨리네.”
초행길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부담 때문만은 아니었다.
친한 친구의 전시회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 거기에 성큼 다가온 자기 전시회까지 떠올리자 묵직한 긴장감이 느껴졌던 거다.
먼저 달려 나간 주자를 응원하며 배턴을 기다리는 다음 주자가 된 듯한 기분. 수현의 심정이 딱 그랬다.
“잘 될 거야. 그래야 하고.”
시계를 확인한 수현이 서둘러 항공사 카운터로 향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출국심사장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3시간 후.
수현은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수현!”
“잘 찾아왔네!”
“어? 나오셨어요?”
입국장에는 뜻밖에도 스티브와 강유진 관장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초행길이잖아. 미아가 되면 어떡해. 당연히 모시러 나왔지.”
“고맙긴 한데 스티브, 넌 지금 이럴 시간 없지 않아?”
바로 내일이 스티브의 전시 오픈이었다.
전날에 할 일도 많을 거고, 마음도 심란할 텐데 공항까지 나와주다니 수현은 반갑기보다 걱정이 앞섰다.
“괜찮아. 어제 준비는 거의 다 끝났어. 오늘은 크게 할 게 없고. 마인트 컨트롤 정도만 하면 되는데, 혼자 있는 것보단 이렇게 움직이는 편이 나아.”
스티브는 어깨를 으쓱 올리며 자연스럽게 수현의 짐을 받아들었다.
강유진 관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현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가자. 홍콩은 처음이라고 했지?”
“네.”
“후훗. 이왕 온 거 전시도 전시지만 구경도 실컷 해야지. 이게 다 작업에 필요한 엄청난 소양이 될 텐데 말이야. 음. 그런 의미에서 밥부터 먹으러 갈까? 홍콩이 또 미식의 도시거든. 마침 좋은 레스토랑이 있어서 예약해뒀어.”
강유진 관장이 언제나처럼 쾌활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었다. 수현이 그런 강유진 관장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음. 관장님. 그럼 오늘 저녁은 제가 사도 될까요?”
“어? 네가?”
깜짝 놀라는 강유진 관장.
“저 얼마 전에 광고 한 편 했잖아요.”
수현이 조심스럽게 식사를 대접하려는 이유를 밝혔다.
“아, 그랬지. 부스터 광고. 그거 아주 훌륭했어.”
“얼마 전에 제작비가 입금됐거든요. 홍콩 경비도 그걸로 해결한 거예요. 여튼, 그래서 오늘은 제가 저녁을 사고 싶어요. 관장님껜 항상 받기만 했잖아요. 스티브 격려도 해주고 싶고요.”
“와. 나 감동했어. 관장님. 제 친구 진짜 능력 있지 않아요?”
수현의 말에 스티브가 신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런데 강유진 관장의 표정이 어딘가 좀 어색했다.
“어머. 우리 수현이는 훌륭하네. 상금으로 홍콩 경비를 해결한 거구나. 200만 원씩 받았다고 했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다음 질문. 수현이 아무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총 천만 원이었는데, 저희 조가 다섯 명이라 200만 원씩 나눴어요.”
“그래. 어렵게 번 돈이니 참 의미 있는 돈이잖아?”
감동은 짧았고, 이내 서늘하게 웃는 강유진 관장.
그제야 수현은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챘다.
그랬다. 강유진 관장은 수현의 후원자인 동시에, 친구 박선화의 엄마였던 거다. 박선화 역시 이번 광고 과제에 참여했고.
“관장님, 혹시 선화는…….”
“응. 우리 선화는 그걸로 무슨 투자를 해보겠다더니,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그림을 한 점 사 왔더라. 하. 애가 귀가 얇은 건지 뭔지, 전혀 투자 가치가 없는 작품에 아주 통도 커. 200만 원을 한 번에 질렀어. 뭐, 스무 살이면 이제 성인이니까 감당도 자기 몫이긴 하지.”
“하하. 그랬어요? 그래도 선화가 보는 눈이 좋은 편이잖아요. 혹시 모르죠. 나중에 정말 유명해질 작가의 작품일 수도 있고요.”
“몰라, 나 사실 좀 서운해. 며칠 후면 내 생일이잖니. 돈도 받았다길래 좋은 선물을 사주려나, 속으로 기대를 했단 말이야. 근데 그 돈을 그렇게 홀랑 써버리다니. 막 배신감까지 느껴지는 거 있지?”
“에이, 선화가 관장님 생신을 대충 넘어가진 않을 거예요.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기대하세요, 관장님!”
수현이 최선을 다해 박선화를 변호했다.
어떻게든 박선화에게 연락을 취해 이 상황이 크게 번지지 않게 해야겠다 생각하며.
“그래. 뭐, 당장은 중요한 게 아니니까. 여튼 가자. 근데 수현아, 내가 예약한 식당 꽤 비싸다?”
“각오하고 있어요. 가시죠.”
“좋아. 따라와.”
“어우, 배고파. 나 많이 먹을 거야, 수현.”
그렇게 수현과 스티브, 강유진 관장이 공항을 벗어나 식당을 향했다.
***
“홍콩은 야경이 죽인다더니 진짜네.”
식사를 마치고 전망이 좋은 바로 자리를 옮겼다.
하버뷰가 유명한 곳이었는데, 과연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이 일품이었다.
“흠흠, 이걸로 감탄하면 안 돼. 진짜는 빅토리아 피크니까.”
감탄하는 수현을 보며 스티브가 고개를 저었다.
“빅토리아 피크?”
“어, 홍콩섬 정상인데, 트램을 타고 올라가면 스카이라인이 쫙 펼쳐지는 게 경치가 진짜 죽이거든. 특히 일몰이 환상이야. 그걸 봐야 홍콩을 봤다고 할 수 있지.”
“와. 멋지겠다.”
“거기도 가보자. 전시회 바쁜 게 좀 끝나면 말이야.”
“좋지. 너무 들뜬다. 물론 네 전시회도 기대되고. 근데 스티브. 넌 빅토리아 피크는 언제 가본 거야? 전시 준비로 내내 바쁜 거 아니었어?”
“나? 안 가봤지.”
“어? 좀 전에 가본 것처럼 말했잖아.”
“다녀온 분들이 그렇게 말하더라고. 하하. 난 아껴뒀어. 너랑 같이 가면 되는 거니까.”
스티브가 칵테일을 홀짝거리며 다시 하버뷰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어머. 난 먼저 일어나봐야겠다.”
잠시 후, 메시지를 확인한 강유진 관장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마이클 알지? 전시 홍보 자료 때문에 잠깐 보자는데,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수현, 스티브. 둘 다 숙소까지 갈 수 있지? 여기서 바로 코앞이니까.”
“그럼요. 아까 지나올 때도 알려주셨잖아요. 찾아갈 수 있어요.”
“그래.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 특히 스티브. 또 잠 안 오면 따뜻한 우유 한 잔. 정 안 되면 안정제 먹고. 알지?”
“네네. 그럴게요. 가보세요, 관장님.”
스티브와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고, 강유진은 정말로 일정이 급했는지 빠르게 바를 나섰다.
“잠을 못 잤어?”
그리고 강유진이 남긴 말로 스티브의 근황을 읽은 수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스티브의 안색이 초췌해 보였다.
“거의 일주일 넘게 제대로 못 잤어. 어제도 꼬박 새웠고.”
스티브가 두 손으로 거칠게 마른세수하며 눈을 끔뻑였다.
“눈이 빨갛네. 아니 왜 잠을 못 잤어. 전시 때문에? 신경 쓰여서?”
긴장이 되지 않을 리가. 검증된 상품을 약속한 수량에 맞게 시장에 내놓는 일도 아니고, 작가가 자기 세계를 대중에 오픈한다는 건 반응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떨리고 압박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스티브잖아. 이전 생에서도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했던 앤데 이번 전시도 잘될 거야.’
수현은 과거의 경험으로, 그리고 여태 지켜봤던 스티브란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이번 전시회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수현의 입장일 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스티브는 초조함과 긴장으로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솔직히 확신이 없어.”
생각이 먼 곳까지 달려간 건지 스티브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확신이 없다니.”
“내가 제대로 그림을 그린 건지 모르겠다고.”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는 스티브. 칵테일 잔을 움켜쥔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몇 년이나 준비한 전시잖아. 네 그림은 처음 봤을 때도 놀라웠고, 몇 년 사이 더 깊어졌어. 그건 내가 보증해.”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었다.
일선화랑에서 처음 스티브의 그림을 봤을 때, 수현은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화가의 혼이 깃든 진짜 작품을 마주했을 때 오는 감격.
설명할 수 없는 마음 깊은 곳에서의 화학작용이 뭘 어찌해 볼 틈도 없이 강렬하게 일어났던 거다.
그리고 스티브는 신기할 정도로 기복 없이 꾸준히 발전하며 지금에 다다랐다. 자신이야 한 번의 생을 경험하고 되돌아왔지만 스티브는 처음으로 사는 생.
이 나이의 아이가 견뎌내기 힘들었을 아픈 상처를 안고도 꿋꿋하게, 오히려 그걸 자신의 예술 세계로 승화하며 작가로서의 시간을 살아온 거다.
그걸 생각하자 수현은 어쩐지 울컥해졌다.
“난 널 믿어, 스티브. 그리고 내가 본 걸 이제 수많은 사람이 보면서 놀라고 감탄하고 아름답다고 느낄 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의심하지 마. 너를, 그리고 네 그림을 믿어.”
물론 작은 전시회가 아니었다.
세계 미술시장을 언급할 때 런던, 뉴욕과 함께 손꼽히는 홍콩에서의 전시.
국제무대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개인전인 만큼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거추장스러운 걱정은 아무 득이 될 게 없었다.
불안할 순 있으나, 이런 불안은 대부분 실체가 되지 못하니까.
그러니 수현은 스티브가 조금 더 힘을 내주기를, 이 밤엔 편안히 잠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고마워, 수현. 그래도 네가 와서 정말 다행이야.”
스티브가 싱긋 웃어 보였고, 잠시 후 둘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
“덥다.”
햇살이 밝기가 아니라 온도 때문에 눈이 떠졌다. 여름의 한가운데, 홍콩은 푹푹 찌는 찜통이었다.
“사람이 많이 와야 할 텐데.”
수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창밖 너머 한 지점을 응시했다.
스티브의 전시가 열리는 장소는 화랑과 유명 경매회사가 밀집한 곳으로 미술에 조예가 깊은 이들과 관광객들로 늘 붐비는 곳이었다.
그러나 워낙 전시가 많아 그 안에서의 경쟁이 또 한 번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누가 화제가 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확실해지는 일이기도 했다.
“첫날은 몰라도 결국 알려질 거야. 스티브의 그림이니까. 뭐, 못 알아보면 그 사람들의 손해인 거지.”
수현이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기 전시가 아닌데도 이렇게 긴장이 되니, 스티브는 어떨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제는 제대로 잠을 이루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굿모닝.
그리고 수현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스티브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30분 후, 로비에서 기다릴게. 같이 가자.
메시지를 확인한 수현이 후다닥 욕실로 들어가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잠시 후.
“준비됐어?”
호텔 로비에서 만나 전시장까지 함께 걸어온 스티브와 수현이 심호흡하며 시선을 마주쳤다.
“어. 가자.”
전시 오픈 30분 전.
아직 거리는 한산했다.
그러나 전시장 안은 도록과 엽서, 기념품 등을 내놓은 테이블 정리와 마지막 동선 확인, 조명 확인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왔니? 잘 잤어?”
오늘도 에너지가 넘치는 강유진 관장이 스티브와 수현을 반겼고,
“어쩐 일인지 어제는 푹 잤어요.”
스티브가 편안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래, 스티브. 잘될 거야.”
강유진이 눈을 찡긋하며 응원했고,
“잘했어, 스티브. 그리고 축하해. 전시회 성공한 거.”
수현이 예언하듯 축하 인사를 미리 건넸다.
“못 살겠네. 진짜.”
스티브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어머.”
“허.”
“이게 무슨 일이야.”
잠시 후, 수현의 예언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잠시만요! 이쪽으로. 네. 조금만 간격을 두고 입장해 주세요.”
안내를 맡은 사람이 후다닥 전시장 입구로 달려 나가 관람객들의 동선을 정리했다.
“뭐지?”
“그러게.”
오픈과 함께 물밀듯 들어오는 관객들.
어디서 단체 관광객이라도 온 게 아닐까,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썼지만 그럴 일이 아니었다.
“점점 많아진다.”
“아니, 어디서 이렇게 오는 거야?”
스티브의 전시장은 순식간에 관람객들로 가득 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