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개인전(1)
날이 제법 선선해졌다.
끈적끈적한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포장마차 안에 있는 것도, 음식들을 끓여내는 것도 고됐다.
제일 힘든 건 손님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고.
“오늘은 좀 나으려나.”
떡볶이 포장마차를 하는 50대 아주머니, 나경자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몇 년만 고생하면 자그마한 분식집이라도 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포장마차를 끌고 다닌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매년 새로운 고비가 생기고, 재정에 구멍이 나고, 기껏 모은 돈이 줄줄 샜던 거다. 거기에 IMF가 터지면서는 손님이 부쩍 줄어 문제였다.
지갑을 여는 데 인색해진 거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마음이 완악해진 사람들이 행패를 부리거나 장사를 방해하는 일이 생길 때는 그냥 확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먹고 살려면 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어도 이걸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먹여 살렸으니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었고. 물론 자식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쁜 녀석들 같으니라고.”
나경자가 코를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긴 건 빚과 막 두 살, 네 살이 된 남매였다.
나경자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억척스럽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야 했으니까.
배운 게 없으니 처음엔 식당 주방 일을 도왔다. 그러다가 마음 좋은 언니를 만나 포장마차를 넘겨받았고.
생때같은 애들을 떼어놓고 늦은 밤까지 장사해야 했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그래도 애들 학교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열어 한 번씩 그놈들 얼굴을 볼 수 있는 게 위안이었는데, 녀석들이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뭔가가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휙-.
분명 엄마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모른 척, 친구와 자기 앞을 쓱- 지나가 버리는 거였다.
서운했으나 그럴 수 있다고 넘겼다.
배운 것도 없고, 그러니 무식하고, 맨날 기름 냄새와 고추장 냄새가 나는 엄마를 친구들 앞에서 소개하기 싫었겠지.
애써 이해하려 했다. 조금만 크면 그래도 엄마의 고생을 알아줄 거라고.
근데 그게 아니었다.
“에구구. 지들이 어떻게 큰 줄도 모르고.”
나경자가 고개를 흔들며 혼잣말을 했다.
고만고만한 대학에 간 자식들은 갈수록 자기를 따돌렸다.
학비며 이런저런 돈이 부족할 때만 우물쭈물 고지서를 내밀었는데, 지난여름엔 하도 장사가 안돼 1년만 휴학하고 돈을 벌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첫째 딸은 대성통곡을 하곤 집을 나가버렸다.
둘째인 아들놈은 잔뜩 반항하는 눈빛으로 곧바로 입대를 결정해버렸고.
이럴 거면 왜 낳았느냐, 우리도 엄마처럼 살기를 원하냐, 가슴을 푹푹 찌르는 말들을 모질게도 하고 갔다.
그걸 떠올릴 때마다 나경자는 가슴이 욱씬거렸다.
“그래. 내가 못 나서 그렇다. 내가 배운 게 없어서 그래.”
그렇게 자조적인 말을 노래처럼 흥얼거릴 때, 손님들이 들어왔다.
“떡볶이 1인분이랑 튀김요.”
“아, 어묵도 하나씩 먹을게요.”
딸내미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 둘,
“저희 떡볶이 2인분이랑 순대 하나, 어묵 여섯 개요.”
아들 보다 한두 살 아래로 보이는 남자애 셋이었다.
‘희한하네. 이 시간에 젊은 애들이.’
낮에는 보통 동네 사람들이나 초등학생들, 점심시간에 맞춰 나온 회사원들이 몇몇 드나들었는데 오늘 손님들은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젊은 애들이었다. 그런데,
“와. 전시 진짜 감동이었어. 그치?”
“맞아. 마음 놓고 있다가 확 쓸려 들어간 것 같은 그런 기분, 뭔지 알지?”
“완전 알지.”
“되게 여운 남는다. 좋았어.”
“맞아.”
흥분한 듯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 손님들, 그리고.
“나 솔직히 별 기대 안 하고 갔는데 윤범이 이 새끼 말이 맞았네.”
“와, 난 전시회면 되게 딱딱할 줄 알았는데 다르더라.”
“그러니까. 야, 윤범아. 그럼 너도 그런 그림 그리는 거야?”
“뭐래. 나랑은 레벨이 다른 애라니까. 우리끼리 천재라고 했던 애야. 전국대회 일등도 했고. 그러니 벌써 개인전을 열었지.”
“어쨌든 되게 좋더라. 그림이 어렵지도 않고 감동 있고.”
“맞아. 그런 전시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지.”
남자 손님들도 어쩐지 같은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근처에 뭐가 열리나?’
나경자는 잠깐 고개를 갸웃하다가 손님들에게 어묵 국물을 잔뜩 떠주고는 다시 떡볶이를 달달 볶았다.
그런데.
“전시 정말 끝내주더라. 나 아직도 가슴이 막 저릿저릿한 것 같아.”
“맞아요. 되게 사소한데 감동 있죠. 게다가 마지막 그림요. 그냥 표정들인데 왜 울컥해요? 나 울었잖아.”
“김 대리, 아직 감성이 살아있네. 어휴, 근데 나도 찌릿하면서 뭔가가 느껴졌어. 그런 게 예술인가?”
학생들이 떠나고 새로 들어온 회사원들도,
“옛날 생각도 나고 참, 나를 돌이켜보게 하고.”
“그러니까요. 똑똑한 말로 정리는 안 되는데 그냥 좋았어요. 그렇죠?”
“맞아. 오랜만에 볼만한 전시였어. 현대 미술이라고 하면 알아먹지도 못하는 것들을 가져다 놓는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식견이 짧았던 모양이야.”
“하하. 작가가 그랬잖아요.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었다고.”
“근데 작가가 무척 어려 보였죠? 그림만 봤을 때는 중견 작가는 될 줄 알았는데. 솜씨가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그러니까. 그것도 참 신기했어요.”
중년으로 보이는 지긋한 남성들도, 똑같이 어느 전시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손님들이 같은 얘길 하고 가자, 나경자도 슬슬 궁금해졌다.
“어디서 전시를 하나 봐요?”
4시쯤 들어온 손님에게 물었더니, 그가 활짝 웃으며 답해주었다.
“요기, 한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일선아트센터라고 갤러리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전시회가 열렸어요.”
“아. 갤러리요…….”
자기와는 먼 세계의 일이니 급격히 흥미가 떨어지려는 찰나.
“오늘 여기 떡볶이 많이 팔리지 않았어요?”
손님이 점쟁이처럼 오늘 매상이 남달랐던 걸 맞혔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나경자가 놀라서 묻자 손님이 거보라는 듯 같이 온 일행에게 눈짓했다.
“전시에 걸린 그림 중에 떡볶이가 있거든요. 아, 희한하게 그 그림을 보니까 떡볶이가 먹고 싶어지잖아요? 근데 나오니까 저기 포장마차가 하나 보이길래 온 거예요.”
“맞아요. 아마 그렇게 온 손님들이 꽤 될걸요?”
“떡볶이를 그렸다고요?”
나경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문턱이 높은 미술 전시회.
자기 같은 사람들은 이해하지도 못한 대단한 작품들이 걸려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떡볶이라니, 그런 걸로 전시회가 된다고?
“떡볶이뿐만이 아니에요. 솜사탕, 카세트테이프, 도시락, 포옹, 또 뭐더라? 여튼 진짜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기가 막히게 그려놨어요.”
“아니 그런 게 전시가 된답니까?”
나경자가 눈을 끔뻑이자 손님들이 와하하 웃었다.
“미술이라는 게 그래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여튼 말로는 설명이 안 돼요. 아주머니도 한번 보러 가세요.”
“에이, 내가 무슨 전시회를 가요. 나 같은 사람이.”
“어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시회 가는 사람이 어디 정해져 있나요? 아무것도 모르고 가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전시니까 한번 가보세요. 마침 여기서도 가깝잖아요.”
“에이, 아침엔 장사 준비하느라 바쁘고, 밤에도 정리하고 보면 10시가 훌쩍 넘어요.”
“그것도 걱정 없어요. 전시가 되게 특이한 게 오픈하고 한 달은 자정까지 문을 연다고 하더라고요.”
“히익. 12시까지요?”
“저 전시 주제가 ‘위로’예요. 요즘 사람들 힘들잖아요. 보고 위로를 받으라고 연 전시라,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도 와서 볼 수 있게 한 달은 자정까지 문을 열겠다는 거예요.”
“하, 그래요.”
나경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은 반반이었는데, 저녁까지 손님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이 하나같이 전시회 얘기를 하니 슬슬 궁금해졌다.
고맙기도 했다.
자기를 알아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작가가 떡볶이를 그려준 바람에 손님이 많아졌고, 재료가 떨어져 장사도 일찍 마감하게 됐던 거다.
“대체 어떤 그림을 그려놨는데 이 난리인 거야……?”
나경자가 중얼거리며 50미터 떨어진 건물을 바라보았다.
포장마차를 대충 정리해놓고 한 번 더 건물을 뒤돌아본 나경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구경하고 올까. 딴 건 몰라도 떡볶이 그림은 좀 궁금한데.”
그렇게 나경자가 일선아트센터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삐이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와하하- 웃음소리와 요란하게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못 찾아왔나?’
두리번거렸지만, 제대로 온 게 맞았다.
“전시장에선 떠들면 안 되는 줄 알았더니.”
나경자가 중얼거리며 통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오메.”
그리고 나경자는 깜짝 놀랐다.
벌써 밤 9시가 넘은 시각. 그런데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전시장은 북적북적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만한 인파라면 자신이 눈에 띄지 않게 구경할 수 있을 테니.
꿀꺽. 침을 삼킨 나경자가 천천히 눈을 들어 그림을 찾았다. 그리고,
“어머나.”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이곳에 오신 모든 분에게 작은 위로를 전합니다.
전시장 입구에 적힌 짤막한 인사말. 그리고 걸린 그림들은 오늘 손님들이 해준 얘기처럼 하나도 어렵지가 않았다. 그런데 무척이나 좋았다.
첫 그림은 스티브의 솜사탕.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손에 솜사탕을 들고 있었다.
어린 애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이니 흠뻑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어쩐지 그 애가 딱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왜 그러지?’
나경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무슨 일이 있었네. 한바탕 울었던 모양이야.’
자세히 보니 남자애의 눈시울이 붉었다. 한참 울고 난 애가 솜사탕을 받아들고는 애써 웃음을 짓는 모습이었던 거다.
“에구, 딱해라.”
나경자가 저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자기도 애들을 키워봤고, 학교 앞에서 장사를 오래 하면서 여러 애들을 봐왔던 터였다.
이런 표정이 뭘 의미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지간히 속상했나 보네.”
어떤 앤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애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경자가 다시 다음 그림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흐응.”
그림을 보다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사연이 있는 인물이 어떤 물건을 하나씩 들고 있는 그림과 그 물건이 아주 큼지막하게 그려진 그림이 세트로 걸려 있었다.
몇 번 보기도 전에 나경자는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전시 주제가 위로라고 했지? 그니까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랑, 위로가 되어준 물건을 그려놓은 거네.”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짝. 하고 손뼉을 크게 쳤다.
“어머나. 나 천재 아니야? 이걸 어떻게 생각했지?”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어떤 그림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손님들이 쉬운 그림이라고, 가보라고 했던 건가.
나경자는 아까 보단 조금 자신감을 느끼며 다음 그림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헤드폰을 끼고 처연한 표정을 하고 있는 학생의 그림이었다.
“으이구. 힘을 내야지. 그렇게 처져있으면 어떡해.”
나경자는 TV를 볼 때 하던 습관처럼 그림에 말을 걸며 몰입했다.
저도 모르게 그림 속 인물들의 감정에 동화되기 시작한 거다.
“그래도 음악을 들으면서 위로를 받았던 모양이네. 그렇지. 나도 우울할 땐 동해열차 같은 걸 틀어놓고 신나게 불러제끼면 기분이 확 좋아지곤 하잖아.”
포근한 인형을 품에 안고 입을 삐죽이는 아이, 멍이 잔뜩 든 얼굴로 누군가 보내준 편지를 읽는 남자,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울음을 애써 참는 여자 앞에 놓인 떡볶이 한 접시. 아무 미련 없는 얼굴로 단출한 짐가방을 챙겨 어디론가 떠나는 노인.
“…….”
코너를 돌아 새로운 그림을 만날 때마다 나경자는 점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나경자는 자신이 전시장에 있다는 것도, 그림을 감상 중이라는 것도 잊은 듯했다.
그러다가 주룩.
나경자의 눈에서 뜻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수건을 쥐고 있는 상복을 입은 여자 그림 앞에서였다.
“어흑. 흐흐흑.”
나경자가 흐느끼며 그림 앞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갔다.
멍하니 초점을 잃은 눈. 파리한 안색을 한 여자는 누군가 건네준 손수건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순간 나경자는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남편의 장례식장을 기억해냈다.
그때는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빚쟁이들이 몰려왔고, 어린 애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했으니까.
그러니 애도할 시간도 없이,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억척을 떨며 살아왔는데,
“흐흐흑. 흐어어엉.”
그때 누군가 내게도 저렇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힘들 때, 기댈 곳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견딜 수 없는 설움이 폭풍같이 밀려오더니 20년을 참아온 눈물이 한 번에 터져버렸다.
수현의 그림이 나경자가 꼭꼭 숨겨온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를 건드렸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