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개인전(2)
훌쩍훌쩍.
그림 앞에서 한바탕 울고 난 나경자는 퉁퉁 부은 눈을 소매로 쓱쓱 닦았다.
“앗 따가워.”
소매에 떡볶이 국물이 묻었던지 닿은 눈이 몹시 따가웠다.
“흐잉. 흐이잉.”
나경자가 괜히 또 서러워져 눈물을 뚝뚝 흘렸다.
참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림을 배운 적도 즐겨 본 적도 없었는데, 이렇게 진하게 뭔가를 느낄 수 있다니.
훌쩍.
나경자가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마음이 한번 무너져내린 탓일까. 다음 그림부터는 감정이 더 출렁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경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그림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이거 쓰세요.”
언제부터 지켜본 걸까. 웬 여자가 다가와 나경자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아유, 아니에요.”
나경자가 손을 저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은 낮부터 까맣게 낀 먼지랑 번져 몹시도 지저분할 게 빤했다. 이렇게 고운 손수건을 받아 망가뜨릴 순 없었다. 그런데,
“괜찮아요. 쓰세요. 돌려주지 않으셔도 돼요. 걱정 마시고요.”
여자는 친절한 말로 나경자의 손에 손수건을 쥐여 주었다.
나경자가 물끄러미 여자를 바라보았다.
애들과 비슷한 또래, 아니 좀 더 어린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예쁜 말을 해주다니, 나이답지 않게 속이 깊은 아이일까.
“고마워요. 그럼 좀 쓸게요.”
나경자가 손수건으로 툭툭. 눈가에 남은 눈물을 닦아내고, 패애앵- 코도 풀었다. 그러고는 생각보다 큰 소리에 놀랐는지 어깨를 움찔거렸다.
“괜찮아요. 편하게 하세요.”
여자는 싱긋 웃으며 나경자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도 전시장인데, 아유. 내가 주책이네.”
“아뇨. 저는 오히려 아주머니를 보고 감동했는데요?”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나를 보고요?”
“그림을 이렇게 솔직하게 감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
“에이. 무슨 감상씩이나.”
나경자가 부끄러운지 손에 든 손수건을 주물럭거리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실은 나 전시회는 처음 와봤어요.”
그리고 나경자는 누가 들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여자에게 자기 이야길 털어놓았다.
“먹고 살기도 바쁘고, 나랑 어울리지도 않는 것 같아서 이런 데 한 번 와볼 생각도 안 했거든요. 근데, 하이고.”
뭔가 북받치는지 나경자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미술이라는 게 되게 신기하네요. 내가 다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가슴이 막 울렁울렁하고 이상해요. 그림에 그려진 사람들이 막 안 됐고, 어휴. 딱하고. 잘 됐으면 좋겠고 그래.”
“하하, 그러셨어요?”
“근데 어떻게 이런 전시가 공짜예요? 아까 낮에 손님들이 가보라고, 가보라고, 아무나 가도 되고 돈도 안 든다고 해서 와보긴 했는데. 아, 내가 요 앞에서 떡볶이를 팔거든.”
나경자가 두서없이 낮부터 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근데 떡볶이 그림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보고 떡볶이 먹으러 왔다는 손님들이 있어서, 세상에 무슨 전시장에 떡볶이 그림이 걸려 있나. 그리고 어떻게 그려놨길래 사람들이 그걸 보고 찾아왔나 궁금하더라고. 하. 그래서 왔더니 떡볶이를 진짜 기가 막히게 그려놨더라고요. 내가 사실 떡볶이라면 아주 징글징글한 사람인데, 아니 그렇다고 내가 장사를 싫어한다는 건 아니고. 에구.”
한참 떠들던 나경자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왜요?”
“내가 너무 주책맞게 떠드나 싶어서요.”
“아니에요. 재밌어요. 더 말씀해주세요.”
“으응. 어쨌거나 떡볶이 그림도 그림이지만 다른 그림들이 참 좋아요. 마음이 뭉클해진다고 해야 하나. 내가 억척이거든. 억척이. 근데 봄에 눈 녹듯이 사르르. 마음이 녹아내렸어. 세상에, 어떻게 이런 걸 그릴 생각을 했을까. 아, 이 전시 제목이 위로라면서요? 진짜 위로가 되는 기분이야. 위로를 받은 것 같아.”
다시 감탄하며 전시장을 둘러보는 나경자. 그런 나경자에게 여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잘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응?”
“실은 제가 이 그림을 그렸어요. 찾아오신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걱정이 많았는데 너무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저도 위로받은 기분이에요.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갸웃하는 나경자. 그에 수현이 싱긋 웃어 보였다.
나경자가 손가락을 들어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니까, 아가씨가 작가님이에요?”
수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나경자가 화들짝 놀라며 수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나 오늘부터 아가씨, 아니 작가님 팬 할래요!”
***
나경자를 배웅하고 수현은 전시장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완벽한 흥행이었다.
노영국 부회장의 기가 막힌 마케팅이 제대로 통했던 거다.
올 초부터 게릴라식으로 진행된 쇼케이스.
전시 직전엔 장소와 날짜만을 고지하며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겠단 그의 생각은 마치 미래를 내다보고 한 말처럼 현실에 딱 들어맞았다.
오픈과 동시에 긴 줄이 이어졌고, 사람들이 우르르, 전시장으로 밀려 들어왔다.
소문의 그림이 어떤 건지, 그림을 그린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하면서.
아침과 낮, 저녁, 밤. 잠깐 뜸한 시간도 없었다. 빠져나가면 또 그만큼 사람이 채워지며 전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오픈 효과라 하더라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게 벅차면서도, 수현은 한편으로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전시장을 찾아주었는데, 행여 실망하고 돌아가면 어쩌나, 자신의 그림을 좋아하고 공감해줄 수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겁이 났던 거다.
그런데.
“작가님. 그림 너무 좋아요.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림이에요.”
“작가님. 전시회가 정말 멋지네요. 작가님 성함 꼭 기억할게요.”
“전시가 언제까지라고 했죠? 일요일에 한 번 더 와야겠어요. 부모님 모시고요.”
“너무 멋지세요. 그림도 작가님도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수현에게 다가와 전시를 본 감상을 전하며 아낌없이 칭찬해주었다.
“저 그림은 제 방에 걸어놓고 싶어요. 매일매일 봤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리실 수 있어요?”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멀리서 뭉클한 얼굴로 꾸벅, 인사해주는 사람.
“…….”
그림 앞에서 한참이나 머물며 생각에 잠기는 사람.
“흐흡.”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나경자처럼 북받치는 감정을 폭발시키는 사람도 있었고.
“다행이야.”
수현은 그제야 안도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밤 10시.
2시간만 더 버티면 첫날 전시가 모두 끝날 시각이었다.
“안 피곤해?”
“너도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거야?”
“첫날이라 그런가?”
스티브와 차윤희, 박선화, 그리고 오유나와 박준영이 수현에게 다가와 물었다.
애들은 전시장 지킴이처럼 아침부터 나와 여태 남아 있었다.
“아마 며칠은 자리를 지켜야 할 거야. 게다가 오늘은 첫날이니까 마지막까지 있는 게 맞고. 근데 너흰 안 힘들어? 그만 들어가 보라니까. 지금도 늦었어.”
“에헤이, 무슨 소리. 너만 두고 어떻게 가?”
“내일 토요일이라 괜찮아. 수업도 없고. 이따가 집에 가는 것도 고생일 거잖아. 시간도 늦었는데.”
“아냐, 담당자분이 집이 백현대 방향이라 내려주신다고 하셨어.”
수현은 아까부터 애들을 들여보내려고 했으나 다들 막무가내였다.
광고 영상 수업으로 밤샘에도 이골이 났는데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는 전시가 뭐가 힘드냐며 손을 내젓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분한테 말해서 취소해.”
오유나가 턱을 들며 말했다.
“뭘?”
“이따가 너 내려준다고 하셨다며. 취소하라고.”
같이 택시라도 타고 가자는 건가 수현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박선화가 곤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수현아, 실은 오유나 오늘 차 끌고 왔대.”
“차라니?”
“쟤 여름방학 때 면허 땄대. 면허증 나오자마자 새 차 뽑았고. 이따가 그 차 타고 같이 가자는 거야.”
“허, 정말?”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묻자 오유나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만 믿어.”
“너 근데, 운전 잘해?”
여름방학이라 봐야 8월, 지금은 10월이니 길어야 두 달 정도의 운전 경력일 거였다.
“나도 오늘 그 차 타고 왔잖아. 멀쩡하고.”
그러나 오유나는 그런 의심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고.
“하하. 유나야, 근데 우리가 인원이 안 맞잖아. 스티브랑 수현이랑, 준영이랑 윤희랑 나까지 다 탈 순 없으니까 우리 두 팀으로 나누는 게 낫지 않을까?”
박선화는 그 와중에 재빠르게 살길을 모색했다.
“아, 그럼 선화랑 나랑 또 누가 택시를 탈까?”
그리고 박준영이 수현에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눈치 게임에 성공했고.
“그럼 우리 수현이 집에서 만날까? 괜찮지, 수현아. 그래도 전시 뒤풀이는 해야 하잖아. 우리 1시간, 아니 딱 30분만 놀다 가자.”
“어, 그거야 괜찮은데.”
“좋아. 그럼 내가 선화랑 준영이랑 택시 타고 갈게.”
마지막 자리에 차윤희가 올라타며 배정이 완료되었다.
결국 자정이 되어 전시장에서 나온 동시에 스티브와 오유나의 새 차에 타게 된 수현.
“나 껴도 돼? 어? 깜빡이 켠다?”
“어, 어. 봐줄게. 잠깐만!”
“지금 껴? 어?”
“어디로 낄 건데? 왼쪽? 오른쪽?”
“스티브! 왼쪽으로 끼면 중앙선 넘어가는 거야! 지금 1차선이잖아!”
“아 조용히 좀 해봐! 정신없어! 껴도 되냐고!”
차선을 끼어들 땐 무서웠지만, 그래도 오유나는 걱정했던 것보단 능숙하게 운전했고, 아무 사고 없이 수현의 집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하고 들어갈게. 너희 먼저 들어가.”
오유나의 말에 스티브가 먼저 덜컥,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봐줄까?”
수현이 괜찮겠냐는 눈빛을 보내자 오유나가 쿨하게 답했다.
“아니, 난 누가 지켜보면 주차 못 해. 그러니까 얼른 들어가.”
“어, 그래. 알겠어.”
집 앞엔 지극히 당연하게 택시 팀이 먼저 도착해 있었고, 미안함과 민망함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수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겁한 자식들.”
수현이 고개를 젓자.
“아잉. 미안해, 수현아. 사실 너도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 오유나가 너무 무서웠어.”
“어. 그리고 아까 낮에 오유나 차 잠깐 타봤는데,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히잉. 그래도 미안해. 그리고 축하해! 첫 개인전!”
박선화와 차윤희가 수현의 양팔에 매달리며 수현의 기분을 풀어주려 애썼다. 그걸 보자 수현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장난이야, 장난. 와, 근데 오유나 차 좋더라.”
“그치? 차 엄청 좋더라. 하여간 부자야, 부자.”
“그냥 부자가 아니지. 까먹고 있다가 한 번씩 쟤 재벌인 게 깨달아진다니까.”
재잘대는 애들과 수현이 집으로 들어왔다. 간단한 다과를 놓고 오프닝 리셉션을 벌인 거다.
전시장에서도 저녁 식사 시간에 잠깐 열었지만 친구들과 따로 만든 자리니 특별했다.
“축하해!”
“한수현 작가님! 첫 개인전을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이대로 승승장구하자!”
“그래! 한국의 대표, 아니 세계적인 작가가 돼라, 한수현!”
요란하게 주스 잔을 부딪치며 축하해주는 친구들. 수현이 애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어땠어?”
스티브가 전시의 소감을 물었다.
“글쎄. 처음엔 떨리고 걱정도 많았는데, 와주신 분들이 즐겁게 봐주시니까 너무 좋더라.”
수현이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당연하지, 그림 너무 좋던데.”
“그래. 어려운 그림이 아니라 더 좋았어. 뭐, 어려운 그림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뭔가 전시장의 문턱을 낮춘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다들 편하게 보는 느낌이더라고. 그게 좋더라.”
“난 뱅크시랑 그 친구들 생각도 났어. 걔들, 거리를 전시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었잖아. 그게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었어.”
친구들은 격려와 함께 자기 생각들을 활발하게 나누었다. 그리고 수현은 스티브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뱅크시 생각이 났어. 실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고민한 것 중 하나가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나, 요즘 사람들에게는 어떤 그림을 보여주면 좋을까 하는 거였거든.”
수현이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뭔가 잡히는 것 같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느끼는 것도 있고. 그러다 보니 또 새롭게 고민이 생기고 그러네.”
“새로운 고민? 그게 뭔데?”
이번엔 박선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음. 이 주제를 정할 때부터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싶단 생각을 했거든. 근데 전시가 끝나면 이 그림들이 여기저기로 팔려나가게 될 거잖아. 그럼 몇몇 사람들의 집에 걸리게 될 거고.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려.”
더 많은 사람이 위로받기를 바라며 그린 그림.
그러나 전시회의 성공은 그림이 얼마나 팔리느냐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니 수현은 작가의 의도와 전시회의 속성 사이에서 아이러니한 감정에 젖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수현의 걱정은 생각지도 못한 사건으로 돌파구를 만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