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질투는 그들의 힘(1)
전시회는 연일 성황을 이루었다.
스무 살의 신인.
그가 힘든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
무료 전시. 한 달간 자정까지 입장.
권위를 내려놓은 다가가는 미술.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온기.
새로운 시도와 그에 붙은 긍정적인 수식들은 열띤 호응을 끌어냈고, 사람들을 매일같이 전시장으로 불러들였다.
“작가 선생님, 떡볶이 좀 먹고 해요.”
나경자 아주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시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와, 안 그래도 출출하던 참이었는데 감사해요. 근데 이렇게 자꾸 신세를 져서 어떡해요. 저희가 가면 되는데요.”
“이 좋은 그림을 매일 공짜로 보여주고, 손님까지 몰아주는데 신세를 져도 내가 더 진 거지요. 그리고, 작가 선생님은 벌써 우리 가게에 친구분들이랑 몇 번이나 오셨잖아요. 에이. 어쨌든 어른이 주면 그냥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별것도 아닌데 손부끄럽게. 이러면 내가 서운해!”
“하하. 네,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그래요, 선생님. 팬이 주는 거니까 그냥 기쁘게 받아줘요. 흐흥. 그럼 난 그림 한번 또 보고 올게요.”
“네네. 둘러보세요.”
재밌는 건 상당수 관람객이 나경자처럼 몇 번이나 전시장을 찾는다는 점이었다.
그건 수현의 그림이 보고 나서도 생각나는, 그래서 또 보고 싶은 그림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볼수록 새로운 점이 발견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기존의 관람객에 새롭게 방문한 관람객까지 수가 점점 불어나니 여느 전시장과는 다르게 북적북적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수현 작가님, 다음 주에 잠깐 인터뷰 괜찮을까?”
그리고 강유진 관장은 쓸만한 인터뷰 요청을 몇 개 골라내 수현에게 내밀었다. 본격적으로 2차 홍보에 나설 시기라면서.
“인터뷰요……?”
수현이 긴장하며 되물었다.
인터뷰라면 얼굴이 드러나고 작가 개인의 목소리가 실릴 테니 부담스럽기도 위축되기도 했던 거다.
그러나.
“세부 조건은 우리 쪽에서 걸면 되니까 걱정할 거 없어. 작가 얼굴이 공개되는 게 꺼려지면 그림만 실어달라고 하면 되는 거고, 개인 신상이나 흥미 위주의 글은 묻지도 쓰지도 말라고 하면 그만이거든.”
수현의 속마음을 너무 잘 아는 강유진 관장은 불편할 요소들이야 미리 차단할 수 있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지만, 제가 나서면 오히려 감상에 방해되진 않을까요? 작가의 의도를 듣고 나면 그림을 순수하게 감상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수현은 한 번 더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아직은 그림이 아닌 자신을 대중에 알리는 게 어색했고 무엇보다 감상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다.
“흐음.”
강유진이 흥미롭단 얼굴로 그런 수현을 한참 바라보았다.
“하여간 천상 아티스트라니까. 어떤 작가들은 나서지 못해 안달이기도 한데. 어쨌든 한수현 작가님, 이번 인터뷰는 전시회 홍보에도 필요한 일이지만, 작가님이 걱정하는 일에도 도움이 될 일이 분명해.”
강유진 관장이 눈으로 그림을 구경하는 관람객들을 가리켰다.
“사람들은 위로라는 전시회에도 매력을 느끼지만 한수현이라는 작가를 궁금해하거든.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이 자기들의 가슴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그림을 펼쳐 보였으니까. 그러니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부드러운 말투였으나 거절할 수 없는 톤의 이야기였다.
결국 수현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할게요. 대신 제 사진이나 전시와 상관없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이지. 지금은 인터뷰해주는 것만 해도 좋다고 달려올 사람들이라.”
강유진 관장이 밝은 얼굴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어 보였고, 며칠 후, 수현은 첫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
“반응이 뜨거운 거 실감하고 계시나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기자 둘이 일선아트센터 근처 카페로 찾아왔다.
강유진 관장이 동행했고, 수현이 조금 긴장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글쎄요. 특별히는 모르겠어요.”
“흐흠. 후기가 엄청나게 좋아요. 얼마 전에 라디오에 소개된 사연도 화제였고요. 최근 정리해고를 당했다는 한 가장이 우연히 작가님 전시를 보고 크게 감동받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릴 적 포기했던 화가의 꿈에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했고요. 혹시 방송 들으셨나요?”
“직접 듣진 못했어요. 요즘은 수업을 마치면 거의 전시장에 있는 편이라, 라디오나 TV를 접할 시간이 없거든요. 그래도 친구가 이야기를 전해줘서 대강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었어요.”
“하하. 어쨌거나 반응이 엄청나요. 사실 쇼케이스를 열었을 때부터 예견된 인기긴 했어요. 제 주변에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갑자기 전광판에 아무 설명 없이 멋진 그림이 뜨니까, 뭔가 싶으면서 묘한 매력에 슬슬 빠졌던 거죠.”
처음엔 근황을 주고받듯 가벼운 질문과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면서 수현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리자 차츰 깊이 있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이제 스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실력이에요. 외모도 그렇고, 좀 전에도 학교 이야길 하셔서 맞아, 작가님이 학생이었지 하는데, 그림에서는 완숙미가 느껴지거든요. 깊이 있는 통찰을 한 작가구나 싶고. 뭐, 그러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관객이 공감하며 그림에 빠져들게 되는 거겠죠?”
기자가 와하하 웃더니 눈을 빛내며 물었다.
“저는 작가의 어떤 경험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음. ……제가 직접 경험한 일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경험을 빌려오기도 했어요. 물론 동의는 구했고요.”
“오. 역시 그림마다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겠구나 했어요. 좀 들려주실 수 있나요?”
그 말에 수현이 싱긋 웃었다.
“영감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많이 가공됐어요. 또 취재한 사연은 사적인 부분이라서요. 대신 선인장이랑 책더미 그림은 설명할 수 있어요. 제 경험이 온전히 들어간 거라서요. ……그런데 저는 감상하는 분들이 어떤 이야기에 갇히기보다 편하게 그림 속 인물을 상상하고 자기 이야기를 떠올리셨으면 해요.”
“흐음. 그렇군요. 그럼 이번엔 주제에 대해 이야길 나눠보도록 하죠. 전시회 주제를 ‘위로’로 택한 점도 굉장히 영리하다 싶었어요. 또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게 만든 부분이었고요. 어쩌다 그런 주제를 떠올리게 된 걸까요?”
“아, 그건 개인전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상황을 말씀드리면 좋겠네요. 그러니까…….”
조금씩 밀고 당기는 맛은 있었으나 인터뷰는 선을 넘지 않는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예민한 질문이 나올라치면 강유진이 슬쩍 눈썹을 올리며 막아섰고, 수현이 적절하고 위트 있는 답으로 넘기기도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인터뷰를 끝내고, 다시 며칠 동안 몇 번의 인터뷰를 거치며 수현도 제법 실력이 늘었다.
그리고 속속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당연하게도 수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물론, 수현을 질투하며 끌어내리려는 무리의 눈에도 들게 됐다.
***
“어이가 없습니다, 정말.”
“하하. 아주 기고만장, 경거망동하더군요.”
“이걸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합니까? 이러다가 시기를 놓치는 거 아닙니까?”
종로 인사동의 한 전통 찻집.
황 화백 무리가 안쪽에 놓인 테이블 두 개를 차지하고 앉아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우호적인 기사가 계속 쏟아지고 있어요. 관람객도 많이 들고, 해외 유명 전시와 비교하는 글도 있더군요. 이거 아무래도 JK에서 밀어주기를 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공짜 전시 아닙니까. 그러니 우르르 몰리는 거지요. 두고 보세요. 얼마 안 갈 거품입니다.”
“거품이요?”
“사실 내가 며칠 전에 슬쩍 보고 왔는데, 수준이 아주 처참해요. 그림이 하나같이 유치하고 유행가처럼 천박한 느낌이 들더군요. 고고하고 깊이 있는 클래식이랑은 거리가 멀어요.”
“흥. 그러니 못 배운 사람들이 열광하는 거겠네요. 수준이 높지 않고 자기들 눈에 딱 맞으니 말입니다.”
“어쨌거나 대중가요 같은 그림이라면 몇 달 반짝하고 말 인기긴 하겠어요.”
“그래도 이대로 둘 순 없죠. 미술이 어려운 게 아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그릴 수 있다. 한수현이라는 아이, 아주 번드르르하게 말은 잘하더군요. 근데 어디 미술이 쉽습니까? 그림이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거예요? 그럼 작가가 왜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제 수준을 깎아내리는 거야 자유지만 왜 미술은 이렇다, 예술이 어떻다 하면서 우리까지 도매금으로 묶는단 말입니까?”
“어휴. 초장에 불러들여서 따끔하게 혼을 냈어야 했어요. 가만히 두니까 무서운 거 없이 자기가 잘난 줄 알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못난 얼굴을 하고 한바탕 성토를 벌인 황 화백 무리.
그중 나이가 지긋한 60대 원로가 대각선 자리에 앉은 후배를 지목하며 물었다.
“신 화백, 자네 지난번에 좋은 수가 있다지 않았나. 꾸물거릴 거 뭐 있어. 이제 슬슬 기강을 잡아야지 않겠어?”
그러자 신 화백이 황정식 화백의 눈치를 한번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꾸물거리는 게 아닙니다. 좋은 때를 기다린 거지요.”
“좋은 때?”
“본래 추락은 높은 데에서 떨어져야 충격이 큰 법 아니겠습니까? 요만치 낮은 데서는 떨어져 봐야 타격이 없으니까요.”
신 화백이 껄껄 웃자 나머지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니까 잠깐 상황을 관망했다, 이겁니다. 전시가 이대로 폭삭 망하면 괜히 우리 손을 지저분하게 할 이유가 없고, 혹 유명해져서 인기를 끌게 된다면 아예 절정에 달하길 기다리다 크게 흠집을, 크흠. 어쨌든 제일 꼭대기에서 목을 빼고 있을 때 분수를 알게 해줘야 뼈아프게 깨달을 거라, 이 말씀입니다.”
신 화백이 마른 입술에 침을 적셔가며 탐욕스러운 눈을 빛냈다.
“하지만, 너무 느슨하게 두고 볼 이유는 또 없겠지요. 안 그래도 이쯤에서 고삐를 잡는 게 어떨까 하고, 바로 어제! 제가 우리 황정식 화백님께 따로 여쭈어봤습니다.”
그 말에 까딱. 황정식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흠흠. 오늘 다른 때와 다르게 여러 선배님을 모셔놓고 약주 한잔 대접하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그러더니 신 화백은 바지춤에서 폴더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편집장님? 응. 여기 인사동 그 찻집이야. 어제 말한 거기. 어어. 지금 들어오시게. 다들 계시니까. 그래, 그래. 괜찮아. 들어오라고.”
거만한 톤으로 통화를 끝낸 신 화백이 잠시 후.
딸랑, 종소리와 함께 열리는 찻집 문을 홱 돌아보더니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야, 여기!”
40대로 보이는 퉁퉁한 남자 둘이 어기적거리며 황 화백 무리가 앉은 테이블로 걸어왔다.
“허허, 윤 편집장. 이게 얼마 만이야.”
신 화백이 반갑게 윤 편집장이란 남자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하하. 잘 지내셨죠? 아이고, 여기 한국 미술계의 대들보, 아니 별들이 다 모여계셨군요.”
반죽 좋게 꾸벅 인사를 올리며 빈자리에 털썩 앉는 남자들.
그들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몇몇 화백들에게 신 화백이 큰기침을 몇 번 하며 소개에 나섰다.
“여기 갤러리와 현대아트 윤문식 편집장, 그리고 이형식 기자입니다. 오늘 우리한테 한국미술에 대한 개괄적인 얘기들을 좀 묻고 싶다고 찾아왔어요. 에, 전부터 우리한테 참 우호적인 기사를 많이 써주셨던 분들이고, 또 JK 같이 큰 기업이 문화예술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려는 걸 경계하는 아주 참된 기자정신을 가진 분들입니다. 그러니까 허심탄회하게 우리 한국미술계가 나아갈 길과 또 앞으로 경계해야 할 일들에 대해 가감 없이 말씀을 나눠주시면 되겠습니다.”
빙빙 돌려 말했으나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속뜻을 알아듣고는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니까 자기들처럼 JK와 척을 진 언론사의 기자들이 펜을 들어 힘을 보태주기로 한 게 아닌가.
자기들을 올려치기 하며, 겁을 상실한 신인을 겨냥해 얼마든지 쓴소리를 해도 되는 판이 깔린 거다.
“흐흠. 그럼 내가 먼저 간단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황정식 화백이 쌍화차를 호로록 마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리고 며칠 후.
“아니, 이 노인네들 보게? 단체로 노망이라도 난 거야?”
막 도착한 월간지 기사를 확인한 강유진 관장이 격앙된 얼굴을 하더니 껄껄 실소를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