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역전극(1)
“상설전시를 제안드리고 싶어요.”
“뭐? 상설전시?”
“물론 그렇게 된다면 대관료가 비싼 일선아트센터가 아닌 다른 장소가 되어야 할 수도 있겠지만요.”
“잠깐. 그러니까 전시 일정을 대폭 늘리자는 거잖아. 얼마나?”
“2년 정도면 어떨까요?”
“2년?”
“2년이요?”
강유진과 김영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수현이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사실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을 보면서 더 많은 사람이 이 그림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이 위로받았으면 좋겠다고요.”
“허.”
“관장님, 부장님 말씀대로 당장 그림을 10만 원에 팔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반박 기사를 릴레이로 내면서 시끄럽게 만드는 것도 꺼려지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그림을 판매하는 시기를 좀 늦추면 어떨까 싶어요.”
“…….”
“흐음.”
강유진과 김영인의 미간이 깊어졌다.
당장 수익이 돌아오진 않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괜찮은 방법이었다. 수익이라는 게 꼭 그림의 판매대금으로만 계산되는 건 아니니까.
수현의 말대로 많은 사람을 위해 상설전시로 전환한다는 기사를 낸다면, JK와 일선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 상설전시를 통해 그림이 유명해지면 그림값 또한 처음 책정한 금액보다 훌쩍 뛸 가능성이 컸다. 전시가 끝난 후엔 수현의 인지도가 높아질 테니까. 게다가.
“대신 한 작품 정도는 미리 판매하는 게 가능할 것 같아요.”
수현은 기특한 아이디어를 하나 더 갖고 있었다.
“한 작품? 어떤 거?”
강유진이 묻자 수현이 씩 미소 지었다.
“가장 마지막에 걸린 100호짜리 그림요. 표정들.”
“아. 그 그림을?”
강유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지막에 추가된 150여 명의 표정 그림은 전시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었다.
만약 그걸 판매하고 나머지만 전시한다면 감동이 줄어들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걸 연작으로 그려보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제가 다음 그림을 완성할 즈음, 먼저 걸렸던 그림을 판매하고 새 그림을 그 자리에 걸면 어떨까요? 상설전시라 해도 반복해서 찾아오는 분들도 계실 텐데, 조금은 새로운 감상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수현은 상설전시 안에서도 변화를 주고, 또 유지비 정도는 해결할 방법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거 좋은데요?”
김영인 부장이 눈을 빛냈다.
“저, 당장 보고하러 들어가 봐야겠어요.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김영인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두 시간 후.
“하하하!”
김영인 부장의 보고를 받은 JK 노영국 부회장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게 한수현 작가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라고요?”
“네. 직접 제안한 방법입니다.”
“이야. 이거 알고 했다고 해도 놀랍고 모르고 했다 해도 놀라운 일이네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감탄하는 노영국 부회장. 그에게 김영인 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이렇게 진행해도 될까요?”
“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 아니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은데요? 근데 김 부장님.”
“네?”
“이 소식, 부장님 말고 제가 직접 전하고 싶습니다.”
“부회장님께서요?”
“네. 좋은 아이디어를 들으니 또 괜찮은 생각이 떠올라서요. 내일 저랑 일선아트센터로 가시죠. 아무래도 한수현 작가를 직접 만나야겠어요.”
노영국이 싱긋 웃고는 비서를 호출해 급히 스케줄을 조정했다.
***
다음 날, 일선아트센터 기획 회의실.
수현이 긴장한 얼굴로 노영국과 마주 앉았다.
“상설전시를 제안했다고?”
노영국이 기특하면서도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네.”
수현이 짧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같은 표정. 그래서 노영국의 속내를 읽기는 더 어려웠다.
‘아무래도 힘들다고 하려나.’
넘치는 후원을 받았는데, 한 번 더 통 큰 투자를 하란 말이니 무리일 수도 있었다.
작가들의 개인전은 보통 일주일 정도 전시장을 대관해 연다.
특별 기획이라 해도 몇 달을 넘기는 경우는 드물고. 게다가 수현의 전시는 이미 3개월 일정으로 크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작품을 2년 동안 상설전시에 묶을 수 있겠냐는 제안을 했으니 어쩌면 당돌해 보일 수도 있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얘길 듣고 무릎을 쳤어.”
노영국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우리 한수현 작가 그림이 10만 원짜리란 소문이 떠돈단 얘기를 들었을 땐, 그 노인네들 목을 따야겠다, 내가 흥분을 좀 했었지.”
노영국은 어제의 강유진처럼 서늘한 눈빛을 했다.
“그런데 상설전시라니, 그 헛소문 덕분에 오히려 우리의 시야가 확장된 셈이잖아?”
“네?”
수현이 노영국의 표정을 천천히 살폈다. 우리라니, 수현이 던진 제안 외에도 다른 아이디어가 더 있다는 뉘앙스였다.
“나는 무조건 찬성이다. 마침 JK가 미술시장에 진입했다는 확실한 신호탄이 필요했는데, 상설전시장이라…… 이거 아주 괜찮은 아이디어야.”
노영국이 깍지 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우리한테 적당한 전시장이 하나 있어. 규모가 제법 크지. 위치도 좋고. 경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프리뷰 전시를 하려고 마련한 공간인데, 거길 상설전시장으로 쓰도록 하자.”
“네?”
수현이 화들짝 놀랐다.
비교적 대관료가 싼 허름한 전시장을 찾을 거라 생각했는데, 노영국은 일선아트센터와 비등한 수준의 전시장을 내어주겠다고 한 거다.
그리고.
“근데 거긴 4개 전시실로 돼 있어서 말이야. 1전시실에 한수현 작가 작품을 채워두면 2, 3, 4전시장을 비워두기가 또 곤란할 것 같거든. 괜히 한수현 작가 전시까지 썰렁해 보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해봤어. 2, 3, 4전시장도 당분간 대관료 문제로 곤란을 겪는 재능있는 작가들에게 내어주면 어떨까 하고. 뭐, 일정이야 경매 사업이 시작될 때 다시 조율하면 되는 거니까.”
“허. 정말요?”
“물론 재능이라는 게 포인트긴 해. 훌륭한, 그리고 대중에게 소개할 만한 작품들을 선별할 거니까. 어, 그리고 수현 작가 전시랑은 다르게 거기선 작품 판매도 바로바로 활발하게 할 거야. 대관료가 없으니 작품료도 대폭 내려갈 거고, 그럼 판매가 쉬워질 거거든. 여튼 그렇게 빈자리가 나면 또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을 집어넣고, 선순환이 될 수 있겠지. 물론…….”
노영국이 살짝 콧등을 찡그리며 말했다.
“JK는 철저하게 2차 시장만 공략할 생각이라, 전시 작품 판매에는 직접 나설 수 없어. 그러니까 우리는 장소만 제공하고, 나머지 일은 일선아트센터에서 해주는 걸로 해야 할 거야. 그 부분 역시 내가 강유진 관장님이랑 따로 정리할 거고. 어쨌든 알고는 있으라고. 하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전개도를 대강 그려준 노영국이 다시 짓궂은 얼굴로 수현에게 물었다.
“수현 작가가 망설이면서 이 제안을 해줬다고 들었는데, 사실 상설전시는 나한테 손해될 게 하나도 없는 장사야. 한수현 작가를 지원하고, 또 전시 장소를 제공하고, 후원했다는 것만으로도 홍보 효과가 대단할 테니까. 게다가 가난한 작가들을 위해 훌륭한 전시장을 내어주기까지 한다? JK의 이미지가 얼마나 좋아지겠어. 문제는 작품 판매가 2년 뒤로 미뤄지면 한수현 작가도 손해가 생긴다는 건데, 그 부분은 괜찮겠어?”
작품을 판매하면 갤러리와 작가가 비율에 따른 금액을 나눠 갖는다.
일선이나 JK는 규모가 크니 판매대금을 유예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오히려 이 일로 이득도 생기겠고. 다만 수현의 경우는 당장 받을 수 있는 돈이 훗날로 밀리는 것이니 그게 괜찮겠냐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수현은 이번에도 태연한 얼굴이었다.
“부회장님. 죄송한 말씀인데, 저 지금 사는 집 구하면서 JK에 선금을 크게 받았잖아요. 그림 대금을 받았어도 어차피 JK에 갚을 돈으로 나갔을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저도 손해 볼 건 없죠. ……오히려 JK에 갚을 돈이 밀리는 셈인 건데, 부회장님이야말로 괜찮으시겠어요?”
“뭐? 하하. 으하하!”
노영국 부회장이 한 방 맞았다는 얼굴로 한참을 웃었다.
“야, 하루가 다르네. 처음 봤을 때 한수현은 엄청 내성적인 학생이었는데, 이제 제법 사회인 티가 나려고 해.”
노영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다시 눈을 빛냈다.
“그리고 말이야.”
“네?”
“수현 작가가 좋은 생각을 해줘서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게 됐지만, 헛소문을 낸 당사자들을 이대로 둘 순 없는 노릇이잖아?”
“아…….”
“혹시, 그 영감들,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 같은 거 있을까?”
“제가요?”
“새로운 프로젝트랑은 별개로 응징을 해줄 생각이거든. 흐흠. 뭐,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으면 괜히 안 좋은 생각으로 마음 어지럽힐 일은 없고.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노영국의 눈빛이 다시 서늘해졌고 수현이 꿀꺽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
JK는 JK였다.
-10만 원짜리 그림은 없다. 한수현 작가의 ‘위로’에는 값이 없다.
-한수현 작가 첫 개인전 ‘위로’.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2년간 상설전시 결정!
-통 큰 후원 결정한 JK와 일선아트센터, 한수현 작가뿐 아니라 재능있는 신인 발굴에 힘쓰겠다
-JK 특별 전시장, 대관료 없는 전시, 작품료가 반값이 될 수 있는 구조는?
-한수현 작가의 첫 개인전 ‘위로’ 뜨거운 반응엔 이유가 있다
-뜨거운 관람 후기, 전시장에서 울어도 되나요?
다음 날, 정정보도와 함께 관련 기사들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왔다.
전날까지 황 화백 무리가 흐려놓은 기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밀려났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상설전시? 말이 됩니까? 그 그림이 뭐라고 상설전시씩이나 한다는 겁니까?”
“아니 그보다, 다른 작가들에게도 전시 기회를 준다지 않습니까. 공정한 심사를 통하니 어쩌니 하지만 이걸 기회로 작가들을 빼돌리겠다는 심산 아니겠습니까?”
“단도리들 해야겠습니다. 혹시라도 JK 쪽에 얼쩡거리는 인간들이 없게 다들 단속하세요!”
황 화백 무리는 당황하며 분열했다. 무서운 신인 하나를 끌어내리려고 대뜸 찔러본 일이 오히려 감당 못 할 답으로 돌아오고 있었던 거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대응해오다니, 어쩌면 이 기사가 끝이 아닌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모두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띠리리리-.
황정식 화백은 아까부터 끈덕지게 울리는 PCS폰을 사색이 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화 안 받으십니까?”
“무슨 일이세요?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주변에 앉아있던 다른 화백들의 참견에도 꿈쩍하지 못하던 황정식은 결국 계속해 울리는 전화를 받아들었다.
“네, 황정식입니다.”
주르륵. 황정식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2년 전, 자신의 치부를 하나하나 내놓으며 JK 노영국 부회장의 뜻을 대신 전해주었던 김영인 부장이 그날 이후 처음으로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왔던 거다.
“흐흠. 부, 부장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태연한 척 했으나 황정식의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
다시 이틀 후.
“한국에서 그런 재밌는 일이 생기다니.”
일본에 있던 한 남자가 미술시장 관계자들에게 어떤 소식을 전해 듣고는 호텔 방으로 돌아와 짐을 챙기고 있었다.
“가만히 지나칠 일이 아니야. 당장 가봐야겠어.”
남자는 자신의 직감을 의지하며 짐가방을 집어 들었다.
영국 미술계의 큰손.
이제는 세계 시장을 무대로 뛰어다니는 유명 콜렉터.
바로 개코라 불리는 윌터 센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