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시동(1)
방학 중에도 백현대 미술대학 실기동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회화과, 특히 1학년 실기실은 무척이나 붐볐다.
지난 1년, 학기 중에 낼 수 있는 시간으로는 모든 과제를 처리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한 덕분에 알아서 미리미리 다음 학기 과제 준비에 나섰던 거다.
그러나 분위기는 어둡기보다 발랄했다.
시기가 시기였으니까.
“담주에 신입생들 온다던데?”
“와. 벌써 그렇게 됐나?”
작업을 하던 애들이 기지개를 켜며 날짜를 헤아렸다.
“그럼 드디어 우리가 선배가 되는 거네?”
“그렇지. 이제 2학년이니까.”
98학번 새내기들이 새내기를 맞을 시간이 됐다.
때는 바야흐로 2월. 비둘기 학번이라 불릴 99학번이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이번에도 작년이랑 똑같이 하려나?”
“술 먹이고, 크로키 미션 주고?”
“재밌겠다. 애들 황당해하겠지?”
“어우. 그땐 선배들 진짜 얄미웠는데, 우리가 속여 먹을 생각하니까 왜 이렇게 신나?”
“그치? 재밌겠지?”
신입생환영회와 미대 OT가 연달아 있을 예정이었다.
작년 호되게 당한 98학번들은 이번엔 자신들이 칼자루를 쥐게 됐단 사실에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 한수현이다!”
“수현아, 왔어?”
“이제 바쁜 거 좀 끝난 거야?”
작당모의를 하던 애들이 수현의 등장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다들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그러게. 너 얼굴 까먹겠어. 오늘은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작업하려고 나왔지.”
“오오. 진짜? 천재 작가 한수현이 우리랑 같은 공간에서 그림을 그려주신다고?”
“어우, 왜 이래. 부담스럽게.”
“부담은 우리가 더 부담이지. 넌 이제 어엿한 개인전까지 한 작가인데, 게다가 그게 어디 보통 개인전이야? 무려 일선아트센터에 JK까지, 아주 세상이 떠들썩했잖아.”
“맞아. 나 작년에 쇼케이스 때부터 이 작가 누굴까 엄청 궁금했는데, 너라고 해서 기절할 뻔했어. 와,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수현이 그 ‘위로’의 작가였을 줄이야!”
“그나저나 전시회 진짜 잘 봤다. 그림 너무 좋더라.”
“나두나두. 나 완전히 감동받았잖아. 근데 그 그림들, 언제 다 그린 거야? 너 학교 다니면서 과제하면서 전시회 그림까지 그린 거야? 괴물이세요?”
이제 백현대 미대 안에서 수현의 입지는 대단하다는 말 정도로는 설명하기 어렵게 됐다.
어딜 가도 시선을 끌고 화제의 중심이 됐으니.
전시가 시작되고, 작가가 수현인 게 공개되면서 학교는 한바탕 뒤집어졌는데, 이후로 수현만 나타나면 동기는 물론 선배와 교수들까지, 우르르 달려들어 팬미팅을 방불케 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탁. 탁탁.
간혹 그런 소란스러움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붓을 거칠게 터는 애들도 있었다. 그러나 시끌벅적 요란을 떠는 애들을 향해 불만을 살짝 표출하는 정도였지, 수현에게 나쁜 감정을 갖는 건 아니었다.
사실 질투도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이어야 하는 거고, 완전히 다른 세계로 넘어간 애다 싶으니, 그냥 대단하고 엄청나다 다들 인정해버리는 분위기였다.
“어쨌든 잘 왔다. 나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은 거 있었는데.”
“어?”
“이거, 새로 잡은 스케친데 느낌 어떤지 봐줄 수 있어?”
“나도, 나도 봐줘. 기말에 냈던 과제 점수 너무 안 나와서 아무래도 재수강해야 할 거 같거든. 이번엔 소재가 괜찮아야 할 건데, 의견 좀 줄 수 있을까?”
“내가?”
“시간 많이 안 들여도 돼. 그냥 쓱 보고 느낌만 말해주라.”
“그래. 말해주라.”
“뭐, 그 정도야 어려운 건 아니지만…… 나도 정답을 아는 건 아니니까 심각하게 듣진 말고.”
“어어.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게.”
“자자, 이리로 와. 이거부터 좀 봐줘.”
때론 조금 성가실 정도로 관심과 칭찬이 쏟아졌으나 수현은 이런 것도 한때일 거라 생각하며 웃어넘기곤 했다.
그러나 그건 완벽한 오산이었다.
시선을 충분히 흩을만한 신입생환영회와 OT가 지난 3월 첫 주까지도 수현의 인기는 여전했다.
아니,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꺄아아! 한수현 선배님,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 사인해주세요!”
“저도요! 위로 전시회에서 포스터 샀어요. 거기에 사인 좀 해주세요!”
수현의 작품에 열광하는 신입생들이 더해진 바람에 팬덤은 이전보다 커지고 있었다.
“하하. 사인. 아, 그래.”
어색한 표정으로 후배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다시 손을 흔들어 줄 무렵,
“여어!”
“오, 한수현!”
수현은 반가운 얼굴과 마주쳤다.
미술대학 실기동 앞 미대 벤치에서 학생회장이었던 이경민과 새롭게 학생회장이 된 인간줄자 서지훈을 만난 거다.
“잘 지내셨어요?”
“그럼그럼. 우리 수현 후배님, 아니 한수현 작가님도 잘 지내셨죠?”
“이거이거 못 본 사이 후배님 품격이 몇 단계 더 상승한 느낌인데요?”
“아, 진짜. 왜들 이래요.”
은근한 장난에 수현이 인상을 확 구기자 두 선배가 껄껄 웃었다.
“장난 반, 진담 반이야. 전에도 그랬지만 넌 이제 인간계가 아니라고.”
“맞아. 쇼케이스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미술계에나 대중들에게나 확실하게 눈도장 찍은 거 아니야.”
“운이 좋았죠. 그리고 이제 시작이고요.”
“아, 제발 겸손하지 마. 네가 겸손해버리면 나도 잘난 척하고 싶은 걸 참아야 하잖아. 회장도 됐는데 일주일이라도 좀 우쭐하게 해주라.”
서지훈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흔들더니 생각났다는 듯 핸드폰을 확인했다.
“맞다. 안 그래도 너한테 연락하려고 했었어.”
“저한테요?”
“수강 신청 못 했다며.”
“아, 그거요.”
수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지훈을 바라봤다.
올해 역시 백현대 미대에선 전공공통 수업이 인기였다.
그중에서도 학생이 몰린 몇 과목이 있었는데, 작년 두 선배가 강력하게 추천한 전집 수업이 그것이었고.
수현과 친구들도 당연히 그 수업에 들어가려 신청했으나 놀랍게도 탈락하고 말았다.
정원이 적기도 했고, 컴퓨터 수강 신청 요령을 익힌 애들이 전광석화와 같은 빠르기로 신청에 성공해 빈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거다.
그러니 누군가 수강 신청을 정정하거나 다음 학기를 노려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지훈이 방법이 생겼단 얼굴로 싱긋 웃고 있었다.
“이거 보통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한데 말이야.”
“네.”
“한 반을 더 개설하겠대.”
“어, 진짜요?”
“응. 학교 쪽에서 수업 반응이 너무 좋으니까 부랴부랴 한 반을 더 만들기로 결정했다더라고. 담당이 우리 교수님이라 회화과 조교실에서 신청받을 거야. 빨리 가봐.”
“와, 고맙습니다.”
“뭐, 이 정도를 가지고. 이게 다 내가 학생회장이 되고 하니까…….”
우쭐하며 생색을 내려던 서지훈이 뚝. 말을 멈추었다.
정말 급했던지 수현은 빠르게 인사하고는 휭- 실기동 쪽으로 달려가 버렸던 거다.
“가자.”
“네, 형.”
이경민이 짠하단 눈빛으로 서지훈의 어깨를 툭 쳤고, 서지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
“대박.”
“와, 성공이다.”
“으아아아! 성공이야!”
수현의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온 친구들도 수강 신청에 성공했다.
오유나, 차윤희, 박선화, 박준영, 수현까지 이번에도 모두 같은 수업을 듣게 됐다.
“근데, 담당 교수님이 누구지?”
“그러게. 우리 이름도 안 봤네.”
“조교님, 새로 열린 반은 어느 교수님이 가르치세요?”
한시름 놓은 애들이 뒤늦게 조교에게 수업 정보를 물었고, 조교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안 그래도 내가 그것 때문에 너희 의사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왜요?”
“그, 담당이 권인호 교수님이야. 그분 깐깐하기로 유명해서, 너희 학점 따기 쉽지 않을걸? 진짜 괜찮겠어?”
“권인호 교수님이요?”
“음? 그분이 누구지?”
수현을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멀뚱멀뚱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할 뿐이었다.
회화과 교수이니, 다른 과인 애들에겐 별다른 정보가 없는 게 당연했다.
“왜, 우리 작년에 광고 수업할 때 하루 일찍 과제 검사 받은 날 있잖아. 그때 이태훈 교수님이랑 같이 계셨던 교수님. 기억하지?”
수현이 애들의 기억을 더듬어 주었고,
“아. 완전 기억나지. 그분 좋은 느낌이었는데?”
“맞아. 인자한 미소. 상담도 친절하게 해주셨잖아.”
애들은 아름다운 첫인상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 차차 경험하면 알게 되겠지.’
수현은 더는 말을 아끼며 고개만 끄덕였다.
수현 역시 권인호란 이름을 듣는 순간 이번 수업이 쉽진 않겠단 생각은 들었으나, 전부터 궁금했던 권인호의 수업이라니 도전해보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본격적인 유학 준비를 하기 전,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생기겠단 기대감이 걱정의 크기보다 훨씬 컸고.
그리고 이틀 후인 수요일 오후, 첫 번째 전집 수업이 열렸다.
“다들 반갑다. 난 권인호라고 하고, 한 학기 동안 여러분과 책 수업을 하게 될 거야. 여러분이 만들 책들을 전집으로 엮게 될 거라 수업의 이름은 전집 수업이 됐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통일된 주제나 표현기법, 판형 같은 걸 따를 필요는 없다. 전집은 그저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야. 그러니 자유롭게 나만의 책을 만든다는 자세로 수업에 임해주길 바란다.”
권인호는 강의실에 앉은 학생 한 명 한 명과 시선을 마주치며 한 학기 동안 진행될 수업의 얼개를 간략하게 소개했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들. 배우려는 의지가 가득해 보이는 학생들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권인호의 말에 경청했고, 그건 권인호의 사기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저 녀석이 들어오다니.’
권인호는 출석부에서 발견한 수현의 이름이 동명이인이 아니었음을 강의실에서 확인하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한 번쯤은 수업에서 만날 일이 생기겠지 했는데, 그 궁금했던 한수현이 기특하게도 이번 학기, 자기 반으로 걸어들어온 거다.
‘가능성이 엄청난 아이니 그 재능을 더 꽃피우게 도와줘야겠어.’
물론 수현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소중했으나 권인호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재능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는 데에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워밍업이다. 다들 이 그림에 주목하도록.”
권인호는 강의실 조명을 끄고 준비한 슬라이드 자료를 스크린에 비춰주었다.
철컥.
아마도 해외 작가가 그린 것처럼 보이는 한 장의 일러스트.
철컥. 철컥.
그리고 슬라이드를 넘길 때마다, 일러스트가 연결되며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다.
보다 보니 그게 어떤 그림책의 일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 이건 남미의 한 작가가 그린 그림책이다. 텍스트는 아주 단순해서 그림만 봐도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권인호의 말대로 그림은 아주 쉬웠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쉽게 보였다.
그리는 이가, 보는 사람이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편안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던 것.
“자, 그리고 다시 이 그림에 주목하도록.”
권인호가 철컥. 다음 슬라이드를 넘기고는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게 이 그림책의 하이라이트 부분이야. 자, 이제 여러분은 이 그림을 보고 그림 작가에게 그림에 관한 질문을 다섯 개씩 써보도록 한다.”
“……?”
“……??”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학생들. 그러자 권인호가 설명을 덧붙였다.
“조교가 여러분한테 종이를 한 장씩 나눠줄 거야. 거기에 다섯 개의 질문을 쓰면 된다. 그림과 그림책에 관한 질문이면 뭐든 좋다. 다섯 개씩 적어서 내도록. 시간은 10분 줄 거다. 그리고 오늘 출석은 이 질문지로 대체할 거야.”
그 말에 애들이 슬쩍 긴장한 얼굴을 했다. 질문을 던진다는 건 주입식 교육에 한참 찌들었던 애들에겐 아직 힘든 수업 방식이었다.
미대에서 자유로운 작업을 해왔다 하더라도 편안하게 질문을 던지는 건 아직 몸에 익지 않은 애들이 많았고. 그러니 강의실엔 잠시 나지막한 한숨 소리가 퍼졌고. 잠시 후.
“자, 이제 제출한다.”
10분이 지났는지 권인호가 조교에게 눈짓을 했다.
슥슥. 종이를 내며 긴장한 얼굴을 하는 학생들.
그런데,
“……?”
“……?”
“……뭐야?”
애들이 당황하며 시선을 마주쳤다.
조교가 아까와 똑같이 A4 용지를 한 장씩 또 나누어주었던 거다.
그리고.
“자, 이번에도 10분을 주겠다. 이번엔 좀 전에 적은 다섯 개의 질문을 제외한 새로운 질문 열 개를 써서 제출하도록 한다.”
권인호가 해맑아서 더 잔인한 얼굴로 싱긋 웃으며 다음 지령을 내렸다.
“열 개를요?”
“또요?”
반문은 소용없었다.
종이는 차례차례 아이들 앞에 한 장씩 놓였고, 권인호식 강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