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21)
21화. 과제 검사
“너, 이 녀석. 대체 그림을 얼마나 그린 거야?”
점심시간 후.
전시회 전담반으로 들어선 수현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김윤수에게 스케치를 꺼내 보였다.
방대한 양과 그림의 깊이에 어지간히 놀랐는지 김윤수가 커다란 목소리로 반응했다.
“어, 2주 동안 매일 그리긴 했죠.”
“아이고, 그러니 얼굴이 피곤해 보였지.”
잠시 딱하단 눈빛으로 수현을 살피던 김윤수는 다시 그림으로 시선을 돌려 한참을 들여다봤다.
“하. 이거 참.”
짧은 탄식.
그러나 어떤 감정인지 너무나 잘 묻어나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잠시 후-.
“다 좋다. 너무 좋아. 그런데 수현아, 이거 가능하겠어?”
예상했던 질문이 튀어나왔다.
“유화로 해볼 생각이라고 했잖아. 작업량이 만만치 않을 텐데.”
“네. 그래서 아크릴로 해보려고요.”
“아크릴로?”
김윤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음. 확실히 시간이 단축되긴 하겠지만, 너. 아크릴은 좀 써봤니?”
이번에도 당연한 궁금증이었다.
예고 입시를 치른 애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예중에서 올라온 아이들과 일반중에서 올라온 아이들.
예술중학교에 다녔다면 다양한 커리큘럼을 경험할 기회가 많고 당연히 여러 재료를 다루게 되지만 일반 중에서 올라온 애들은 그렇지 않다.
비교적 늦게 진로를 결정해 예고 입시에만 전력을 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현 역시 일반중 출신.
기껏해야 수채화와 소묘, 그리고 예고 입학 후 배운 것들이 전부일 가능성이 크니 김윤수는 수현이 가진 능력치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유화야 1학기 때 회화 수업에서 잠깐 다루긴 했지만, 아크릴은 아직 따로 수업한 적이 없잖니.”
“네. 그렇죠.”
“물론 너라면 금방 익히겠지만, 아크릴의 색감은 유화와는 달라서 네가 떠올린 구상과 결과물에 차이가 생길 수 있어.”
묵직하고 부드럽고 깊이 있는 느낌을 주는 유화.
반면 아크릴은 선명하고 맑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는 두 재료. 김윤수는 그 점을 짚어주려는 것이었다.
“음. 아크릴도 써보긴 했어요.”
수현은 그런 김윤수에게 걱정 말라는 듯 싱긋 웃어 보였다.
과거 수현은 대학에 가서야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봤지만, 지금은 그 경험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상태.
아크릴 회화의 기법이나 특성에 대해서도 어지간한 것들은 숙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게 보조제야?”
“응. 아크릴의 단점이 너무 빨리 마른다는 거잖아.”
“유화에 비하면 엄청 빠르긴 하지.”
“맞아. 유화는 밑색이랑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뭉개지는 느낌으로 밀도를 쌓을 수 있는데, 아크릴은 그게 어렵지. 하지만 이 보조제가 그 문제를 해결해줄 거야. 이게 시간을 다스리는 마법이 되어줄 거거든.”
스티브가 따로 넘겨준 보조제는 물감이 건조되는 속도를 지연시킬 수 있는 것으로, 과거 수현이 알던 것보다 훨씬 질이 좋은 것이었다.
“와, 건조되는 시간이 이렇게 조절될 수 있다고?”
“응. 보조제의 비율에 따라 속도 차이가 있을 건데, 몇 번 실험해보면 감이 잡힐 거야. 너한테 맞는 속도를 찾아내기만 하면 돼.”
“좋다. 이거면 유화 느낌을 살릴 수 있겠어.”
“그리고 이것도 받아.”
“뭔데?”
“이건 마띠에르(유화에서의 질감)를 그대로 살릴 수 있는 보조제.”
“허, 진짜?”
“그래. 이거 두 병이면 어느 정돈 유화와 비슷하게 그려질 거야. 그리고 마지막 팁 하나!”
스티브는 수현에게 가까이 다가와 아크릴화를 유화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필살기를 하나 더 일러주었다.
그걸 모두 얻었으니 전보다 훨씬 여유롭게 작업을 구상할 수 있었고.
수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따로 관심이 있어서 그려봤거든요. 그리고 도움이 될 재료들도 이미 구했어요.”
“오, 그래? 그럼, 그걸로 가도 괜찮겠어?”
김윤수가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네, 선생님. 2주 정도만 연습해보면 충분할 거예요.”
수현이 활짝 웃어 보였다.
***
같은 시각, 최형욱 선생의 전담반 교실.
“2주 동안 준비들 잘했지? 먼저 과제부터 확인해보자.”
최형욱이 자신이 맡게 된 전시회 전담반 학생들에게 카리스마 넘치는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10명씩 소그룹으로 나뉜 가을 미술 전시회 전담반.
최형욱 역시 한 반을 맡았다.
실력과 인기는 물론 입결(입시결과)에서도 최고의 합격률을 증명한 덕에 최형욱의 반은 유독 경쟁이 치열했고 가장 빠르게 선착순 마감을 쳤다.
그러나 사실 그건 공정한 과정을 거친 게 아니었다.
최형욱은 미리 자신이 점찍어둔 아이들에게 대자보가 걸릴 시간과 장소 등을 일러주어 선착순 경쟁에서 유리하게끔 도왔으니까.
어쨌든 최형욱의 반에는 그의 마음에 드는 애들이 대거 들어온 상황.
김하영, 장민영, 이주호, 최주희 등 주기적으로 촌지를 받고 관리해온 애들과 방학 동안 새롭게 자기 관리 안으로 들어온 학생 둘, 그리고 앞으로 촌지를 받을 가능성이 큰 네 명의 학생들로 알차게 구성됐다.
‘다들 학과 성적 상위권에 실기도 나쁘지 않아. 방향만 잘 잡아주면 결과야 어느 정도 나올 애들이니까. 이 정도면 뭐 땅 짚고 헤엄치기지. 흠.’
다만 문제는 관리할 대상에 비해 트로피의 숫자가 턱없이 적단 것이었다.
돈맛을 봤으니 돌려줄 부분도 잘 챙겨야 뒤탈이 없을 텐데.
그렇다면 개선이 필요할 부분이었다.
‘굳이 가을 전시회 수상자를 3명으로 고정할 필요가 있나? 애들 기도 살려줄 겸 3등 상 아래로도 작은 상을 몇 개 더 만들자고 해야겠어.’
어려울 건 없었다. 3등 상 아래에 특선 따위를 몇 개 더 만들면 쉽게 해결될 일.
물론 자기 반에서만 수상자가 나오면 말이 생길 테니 다른 반에도 몇 개 나눠줄 요량이었고, 그럼 자신이 관리하는 반 애들이 모두 수상하기는 어렵겠지만, 그것도 간단히 정리할 수 있었다.
‘촌지 액수 따라 정하면 되지. 이번 미술 전시회에선 서너 명 정도 상을 받게 해주고 나머진 학기 중 실기평가 점수를 후하게 주는 식으로 처리하는 거야.’
“저부터 보여드릴게요, 쌤.”
바쁘게 행복한 계산을 그려가는 최형욱 앞으로 김하영이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났다.
“그래, 그럼 우리 하영이 것부터 보자.”
최형욱이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환하게 웃었다.
방학 중, 최형욱은 자신이 맡은 학생들에게 특별한 과제를 따로 내주었다.
미술 전시회에 제출할 그림의 중간과정을 미리 준비해오라는 것.
심사위원이 중간과정까지 꼼꼼히 체크할 거란 걸 알기 때문에 내린 과제이기도 했고, 자신이 개입하기 수월한 판을 다지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오, 훌륭한데? 선생님이 보여준 샘플대로 잘 그려왔구나.”
최형욱이 김하영의 스케치북을 확인하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내 작전이 통했어.’
결과물은 훌륭했다.
이 정도면 그랑프리 심사에 관여할 제임스 리의 눈에 들기까진 어려워도 2등 상, 3등 상 수상 정돈 너끈하겠다 싶을 정도로.
“역시 살바도르 달리 스타일이 하영이 그림이랑 딱 붙는구나.”
최형욱이 한 번 더 칭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짜 이거 완전 저랑 찰떡이에요. 스타일리쉬하고 작품성도 확 올라간 것 같고요.”
김하영도 자기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표정이 밝았다.
세현예고 미술 전시회는 기본기는 물론, 예술가로 성장할 잠재력을 확실히 보여주는 그림에 높은 점수를 준다.
국내 최고 예술고등학교니만큼 입시뿐 아니라 장차 예술계의 거목이 될 인재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라는 걸 과시하고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 크기 때문.
그러나 언제나 이상과 현실엔 괴리가 있기 마련이고.
기껏해야 막 예고 입시를 치른 고등학생들에게 기성 화가들이나 보여줄 법한 퍼포먼스나 깊이를 보이라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천재라 불리는 화가들도 수년, 수십 년에 거쳐 얻는 깨달음을 17살짜리 애들이 몇 달 사이에 얻을 수가 있나.’
최형욱이 코웃음을 쳤다.
세현예고 미술 전시회를 벌써 여러 번 진행해본 그는 학생들이 어디에서 좌절하고 어떤 그림을 그릴 때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괜히 새로운 시도를 한답시고 이런저런 것들을 그려보다가는 시간만 까먹는 거야.’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애들에게 지름길을 일러주었다.
“하영이 너는 달리의 스타일을 연구해봐. 그리고 민영이는 샤갈 그림을 분석해보고. 주호는 형태가 좀 약하니까 차라리 인상파 화가들 그림처럼 형태를 흐릿하게 하는 방식으로 가보자. 어, 주희는 색감이 탁월하니까 몬드리안의 추상에서 힌트를 얻어보자고.”
최형욱은 애들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거장의 그림 중 몇 개를 샘플로 뽑아냈다.
그리고 자기 반 애들이 그들의 스타일을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글 쓰는 애들이 필사를 하듯, 미술도 명화 따라잡기를 하는 게 도움이 돼. 무엇보다 단기간에 실력이 오를 수밖에 없어.’
최형욱은 이 지도법이 먹힐 거라 확신했다.
아주 틀렸다 할 순 없었다.
실제로 꽤 많은 전공자가 명화를 따라 그리며 그 시대와 화풍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도 하니까.
다만 자신의 역량과 가능성, 예술가로서의 가치를 보여줘야 할 전시회에서 이미 검증받은 예술가의 화풍을 베껴 작품을 퀄리티를 높이는 건 해당 예술가를 향한 헌사라고 둘러대기엔 너무나 초라하고 궁색한 변명이었다.
물론 그것도 양심에 가책을 느낄 인간들에게나 꺼려질 부분이긴 했지만.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딱 맞는 그림을 찾아주셨어요? 저 진짜 감동했잖아요.”
김하영이 한 번 더 스케치북을 후루룩 넘겨보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형욱이 김하영에게 권한 그림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녹아서 흘러내리는 듯한 시계를 그려 당시 무명이던 달리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그 그림을 참고하는 것만으로도 평범하던 김하영의 그림은 몇 배나 더 심오한 것으로 발전했다.
“그래? 역시 선생님이 보는 눈이 있지? 그러니까 너희는 그냥 선생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 이거야.”
“네, 선생님.”
“네!”
“알겠습니다!”
고분고분하게 답하는 김하영과 애들을 보며 최형욱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걸로 지난 야외스케치 후, 짜증 나게 따라붙던 소문도 잠잠해지겠지. 김하영과 한수현의 그림은 단순히 소재가 겹쳤을 뿐 이후 노선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거고. 어쩌면 한수현보다 김하영의 그림이 뛰어나단 소문이 덧붙을 수도 있을 거야.’
최형욱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2주 동안 부실한 구멍을 제대로 메울 특별 과제를 준 건 다시 생각해도 신의 한 수였다.
‘다른 애들도 나쁘지 않지만, 김하영이 아주 잘 따라주고 있어.’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은 김하영이 소재로 삼은 바다, 해안선, 항구, 절벽 등을 소재로 다뤄 참고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모사에 능한 김하영은 능숙하게 달리의 화풍을 익혀왔고, 이제 살짝 포인트만 더하면 고등학생 수준으론 볼 수 없는 그림이 탄생할 거라 기대할 수 있었다.
‘이대로만 발전시키면 미술 전시회는 걱정할 게 없겠어. 어쩌면 그랑프리도 노려볼 수 있겠지.
최형욱이 김하영의 그림을 한 번 더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자신이 묘수라 내놓은 교수법이 세현예고 미술 전시회의 취지와는 점점 멀어지며 결국 자기 발목을 잡을 악수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