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최초의 그랑프리(4)
“이쪽으로 들어오십시오.”
늦은 밤이지만 경매 후 면담을 미리 요청했던 터라 강유진은 자연스럽게 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왜 뵙자고 했는지는 아시죠?”
강유진은 교장의 건너편 소파에 가볍게 기대앉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네? 아. 하하. 그게 저도 관장님 말씀을 듣고 부랴부랴 사정을 알아보긴 했습니다.”
교장이 머쓱한 얼굴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최형욱 선생의 건의로 이번 경매 행사를 밀어붙인 양진우 교장.
당연히 최형욱이 갑작스러운 경매를 기획한 배경과 그 과정에서 뒷돈을 받은 사실도 인지하고 있었다.
행사를 허락하면 자신에게도 큰돈이 생길 거라는 것도 계산하고 있었고.
‘하마터면 체할 뻔했지.’
최형욱과 구체적인 딜을 하던 중, 양진우는 강유진의 연락을 받았다.
강유진은 최형욱의 비위행위를 고발하며 몇몇 학부모가 이번 사건을 묵과하지 않으리란 경고를 날렸고, 양진우는 부랴부랴 불을 끌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번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제대로 선을 그었고.
그러길 얼마나 잘했나, 하늘이 도왔다 한숨을 내쉬는 한편, 양진우는 자칫 시끄러워질 이번 일을 덮을 방법은 없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하. 어쨌든 다행히 경매 행사에서 한수현 학생이 위너가 됐고, 덕분에 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지게 됐으니 의심은 이만 거두셔도 되지 않을까요?”
양진우가 슬그머니 강유진의 속내를 떠보았다.
자신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형욱은 꽤 철저하게 움직였다.
촌지는 현금으로 받았고, 특정 인물과 만날 때는 학교가 아닌 다른 장소를 통했다.
그러니 강유진에게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면 이 압박은 얼마든지 피할 길이 있었다.
‘엉뚱한 애가 경매 행사의 주인공이 됐으니 경매와 전시회에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긴 애매하게 됐잖아? 잘하면 이대로 어물쩍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최형욱 선생이야 따로 불러 단단히 혼을 내주면 되고, 눈치가 있는 인간이면 그간 챙긴 촌지를 혼자 먹진 않을 거라 계산기도 두드렸다.
그러나 강유진은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교장 선생님. 제가 그동안 매너를 지켰던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네?”
“세현예고의 중요한 행사인 전시회에 추문이 도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에요.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고요.”
강유진이 서늘하게 웃더니 핸드백을 열어 몇 장의 사진을 꺼냈다.
“이게 언론에 공개되는 걸 원하시는 건 아니겠죠?”
사진을 확인한 양진우 교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
같은 시각 최형욱 선생의 연구실.
최형욱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전화기를 부여잡고 있었다.
“네, 네. 회장님, 저도 그 부분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인지요? 일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놓고 지금 그런 태평한 말이 나옵니까?
수화기 밖으로 터져 나오는 고성.
천만 원이란 거금을 내고도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긴 김하영의 아버지, 김기욱이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본래도 카리스마 넘치고 다혈질인 그는 경매 결과에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지난 학기 소묘 시험에선 엉뚱한 석고를 내놨지요! 그래도 기회를 달라고 해서 기다렸더니, 내가 우습게 보였습니까?
실수를 제대로 만회하겠는 최형욱의 말에 잔뜩 기대했는데 돈은 돈대로 쓰고 우스운 꼴이 되어버리다니 김기욱은 도무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 그게 저희도 미처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라. 그 제임스 리가 한국에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정말 몰랐던 거 확실합니까? 그 한수현이라는 애, 뒷배가 따로 있는 거 아니고요?
“절대 아닙니다, 회장님. 아주 평범한 집안의 아이예요. 그리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랑프리는 규정상 학교 선생들이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특별심사위원인 고유 권한이라서요. 어쨌든 매년 그랑프리가 탄생하지 않았고 올해도 분명 그럴 거라 예측했는데, 저도 이게 무슨 일인지…….”
변명을 하면서도 최형욱은 어지러운 기분을 느꼈다.
제임스 리가 왜 한국으로 와 경매장에 나타났고, 수현의 그림을 3만 달러란 거금을 주고 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거다.
어쨌든 이해는 나중의 일이었고, 당장은 김하영의 아버지인 김기욱을 달래야 했다.
행여 이 끈이 끊어지거나 잘못될 경우, 세현예고에서 자신의 입지도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약속했던 2등 상은 문제없을 겁니다. 경매 점수도 그렇고, 내부 심사에서도 하영이 그림이 압도적인 표를 얻어서…….”
-시끄럽고!
김기욱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최형욱의 말을 끊었다.
-2등에 고개를 끄덕인 건 1등이 없다는 전제하였다는 거 모릅니까? “하, 그러니까 그게 정말 불가피한, 천재지변 같은 일이라고 봐주시면…….”
-아무래도 선생님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군요.
차갑고 단호한 대답. 최형욱이 할 말을 잃었다.
바로 그 순간-.
-아빠 진짜 왜 그래! 그러다가 2등 상도 놓치면 어쩌려고! 그러면 나 진짜 학교 안 다닐 거야!
-시끄러워. 어디 어른들 얘기하는데 버릇없이 끼어들어?
-안 그래도 한수현한테 밀려서 열받아 죽겠는데 아빠까지 왜 그러는 거야!
-저런 모자란 녀석! 최고로 실력 좋다는 선생들을 붙여줬더니 그 결과가 고작 이거야?
수화기 너머로 하영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대드는 소리와 김기욱이 야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최형욱 없이는 한수현에게 이길 자신이 없다고 생각한 김하영이 이대로 최형욱을 내쳐선 안 된다고 어필하는 듯했다.
최형욱은 김하영의 반항이 먹히길 간절히 기대했으나-.
뚝.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하이 씨.”
눈앞이 캄캄해지는 답답한 상황에 최형욱이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맞나? 지금이라도 하영이 집으로 가서 회장님을 만나 뵙고 설득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띠리리리리-.
연구실 전화가 다시 울렸다.
‘설마, 하영이 말이 먹혔나?’
일말의 기대를 품고 수화기를 조심스럽게 든 최형욱.
그러나-.
“여보세요?”
-최형욱 선생님?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나 양진웁니다.
“아, 교장 선생님.”
떨떠름하게 전화를 받는 최형욱의 얼굴이 볼썽사납게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이 인간은 또 누구 속을 뒤집으려고 전화를 건 거야?’
경매 행사로 들어올 촌지 중 얼마가 자신에게 떨어질지 은근히 기대하던 양진우 교장. 경매가 끝나니까 귀신같이 전화를 걸어온 거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쯧.’
한심한 상황이었다.
최형욱은 대충 교장을 달래놓고 얼른 김하영 쪽으로 움직여야겠다 생각했다.
양진우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선생님, 대체 뭘 어떻게 하고 다니신 겁니까?
양진우 교장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으르렁댔다.
“네?”
고개를 비트는 최형욱.
양진우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꼬리를 잘라냈다.
-여기저기 학부모들 만나고 다니면서 무슨 약속을 한 겁니까? 그 과정에서 대체 얼마를 받은 거고요?
“아니 갑자기 무슨 말씀을.”
-긴말 필요 없습니다. 이미 증거도 다 확보됐고.
“증거라니요?”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합시다.
“정리요? 뭘 정리합니까?”
-사직서 제출하란 말입니다. 내가 최 선생을 구제할 방법이 없어요. 다 끝났습니다.
“뭐라고요? 아니, 교장 선생님!”
-일 더 키우고 싶은 게 아니면 조용히 물러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찰서까지 갈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달칵.
다시 한번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하. 허.”
기막힌 듯 허공에 대고 헛웃음을 내던 최형욱.
“으아아악!”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하고 괴성을 질렀다. 그게 세현예고에서 볼 수 있던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강유진 관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주말 사이 최형욱의 흔적은 세현예고에서 깨끗하게 지워졌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그랑프리 – 1학년 한수현]말 많고 탈 많던 미술전시회 결과가 미술과 실기동 1층 복도에 붙었다.
“축하해, 한수현!”
“진짜 대단하다. 우리 학교 ‘신의 손’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러다 세계적인 작가 되는 거 아니야?”
“그러게. 최초의 그랑프리잖아. 세현예고 미술전시회 최초의 그랑프리, 한수현!”
“와, 근데 너 그럼 제임스 리한테 레슨 받게 되는 거야? 어디서? 언제부터?”
애들은 자연스럽게 수현의 주변으로 몰려들어 축하를 전했다.
“고마워.”
“말로만? 한턱 쏴!”
“맞아! 햄버거? 피자? 떡볶이? 야, 말 나온 김에 오늘 먹자. 내가 주문할까?”
“어우. 왜 주접이야. 니가 한수현 그림 그리는 데 뭐 보태준 게 있다고.”
“뭐야, 너는 왜 한수현 편드는데? 이래 놓고 한수현이 사주는 거 먹기만 해!”
“사주면 먹지, 왜 안 먹냐? 바보임?”
“아, 그럼 조용히 하시든가요.”
티격태격하면서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수현은 이 엄청난 결과를 완전히 실감하지 못했다.
‘열심히 하긴 했지만, 정말 그랑프리를 타게 될 줄이야.’
아직 지난 금요일 밤의 여운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제임스 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니, 그리고 겨울방학엔 그에게 레슨을 받게 된다니 암만 생각해도 꿈만 같은 일.
기분 좋은 일은 또 있었다.
[2등 – 차윤희] [3등 – 박준영]프랑스 파리 미술관 투어가 포함된 여행 상품은 2등을 한 차윤희에게, 한 학기 등록금에 해당하는 장학금은 3등을 한 박준영에게로 돌아갔다.
그랑프리와 2등, 3등 상, 그리고 특선 둘, 입선 셋까지 이번 전시회에서 최형욱에게 촌지를 주고 부정행위에 가담한 학생들은 단 한 명도 수상하지 못했다.
어느 때보다 기강이 바짝 들어간 미술과에선 칼같이 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졌던 거다.
“야, 야.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진짜 너무 좋아. 나도 부상 액수로 따지면 엄청난데 나한테 한턱 내란 애는 한 명도 없네?”
차윤희가 너스레를 떨며 자신이 2등 상을 탄 걸 강조했고-.
“무슨 소리! 내가 기억하는데! 하, 1등은 몰라도 내가 2등은 자신 있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차윤희한테 지다니 원통하고 분하다.”
박준영도 장난을 치며 3등 수상의 기쁨을 만끽했다.
“안 되겠어. 너희 모두 공평하게 한턱 쏴라.”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미술과 전원한테 쏴.”
“메뉴는 햄버거로! 이번에 새로 나온 치킨버거 예술이던데 그걸로 하자!”
짓궂은 애들이 수상턱을 내라 아우성을 치자 수현과 차윤희, 박준영이 짧게 시선을 부딪치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까짓거. 오늘 실기 수업 전에 햄버거 쏜다!”
“햄버거 받고 콜라랑 감튀도 쏜다!”
“난 거기에 치킨 얹어본다!”
와아아-.
애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환호했다.
김하영과 장민영, 이주호, 최주희 등 최형욱 선생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아이들은 부글부글 속을 끓였지만 거기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하아.”
수현이 긴장하며 거울 속 자기 모습을 점검했다.
“가볼까.”
수현의 눈이 반짝 빛났다.
제임스 리, 그리고 준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