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상담
“먼저 실기 점수를 꼼꼼히 확인해주시고, 학생 개인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전공이 뭔지 파악해주세요.”
“2순위까지 보면 되나요? 3순위까지 볼까요?”
“안전하게 3순위까지는 정리해두죠. 궁금증이 많은 애들도 있을 테니까요.”
“네, 그럼 이름 옆에 1, 2, 3 이런 식으로 순위를 적으면 될까요?”
“그것보단 A, B, C. 이렇게 과목별 점수를 적어두는 게 보기 편하지 않을까요?”
“점수는 아무래도 프라이버시라, 애들이 예민하게 굴 수도 있어서요. 큰 표에는 1, 2, 3 순위만 표기하죠.”
“하긴 그렇겠네요. 그럼 점수는 개별 상담 때 공개하기로 하고 표에는 순위만 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술과 실기동 교무실.
1학년 실기 선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앉아 있었다.
지난주, 미술과 1학년은 동양화, 서양화, 조소, 디자인, 네 가지 전공수업을 모두 마쳤고, 이제 세부 전공을 정하는 상담 주간이 된 거다.
미술과장이던 최형욱의 빈자리를 송민식 선생이 임시로 맡았고, 실기 선생들은 학생들의 과목별 점수를 일일이 산출해 적성에 맞는 전공을 파악하며 상담자료를 만들었다.
“근데, 실기 점수가 중복인 애들도 있는데요?”
“그래요?”
“네, 수진이는 B+만 세 과목이에요. 하영이도 A-가 두 과목이고요.”
“그럼 공동순위로 표기해두고 상담 순서는 애들에게 맡기는 게 어떨까요?”
“음, 그게 좋겠네요.”
네 번의 전공수업은 각 실기를 지도한 선생들의 평가로 마무리됐다.
실기역량과 앞으로의 가능성 등을 고려해 A+부터 C-까지의 점수를 매기고, 간단한 코멘트를 더한 약식 성적표를 냈던 것.
그러니 한 학생당 4개의 성적표가 나왔는데 선생들은 그중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과목부터 상담하게 할 예정이었다.
1순위 상담에서 전공을 정하면 그대로 상담은 종료. 뭔가 부족하거나 궁금한 게 있는 학생은 2순위, 3순위까지도 상담을 이어갈 수 있다.
상담을 모두 마친 후엔 개인의 의사를 반영해 전공을 정하는데 이때 낮은 점수를 받은 과목을 선택하는 것도 자유.
다만 입시에 매인 학생들은 높은 평가를 받은 전공을 선택할 확률이 높았다. 그래야 좋은 학교에 갈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까.
어쨌든 선생들은 상담 순서와 스케줄을 정하기 위해 A부터 C까지 점수대로 애들을 줄 세웠는데 그중 몇몇은 순서를 정하기가 애매했다.
네 과목 다 부진하거나, 엇비슷하거나, 골고루 특출나기도 했던 거다.
그중 가장 주목을 끈 건 수현이었다.
[1학년 2반 한수현]동양화 A+
서양화 A+
조소 A+
디자인 A+
“어머, 이 점수 진짜예요?”
“얘가 그 1학년 신의 손이죠?”
“네. 지난 학기 소묘 시험 때 붙은 별명일 거예요. 애는 얌전한데 그림 그릴 때 보면 기세가 어마어마하더라고요.”
“별명이 과장이 아니었나 본데요?”
“그러게요. 어떻게 네 과목이 전부 A+일 수가 있지?”
“수현이 맡은 선생님들, 누구셨죠? 의견들을 좀 더 들어봤으면 좋겠는데요?”
전례가 없는 만점 성적표에 선생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수현의 전공 실기를 맡았던 선생들이 헛기침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수현인 감각이 좋아요. 데생 실력이나 기본기가 받쳐주니까 스케치에서 망설임이 없고, 농담을 표현하거나 붓을 누르고 꺾는 테크닉 같은 것들도 몇 번 연습도 안 했는데 금방 해내더라고요. 다른 애들은 난만 몇 번 치다가 수업이 끝났는데 수현이는 혼자 국화 그리기까지 진도가 나갔어요.”
동양화 선생이 먼저 수현의 기본기와 센스를 칭찬했고.
“입체 감각도 뛰어나요. 부조를 만들 땐 애들이 원근 표현에 대해선 별생각을 안 하는데, 이 녀석은 아주 과감하더라고요. 인체에 대한 개념이 완벽하게 정립됐다고 해야 하나. 특히 조각 시간에 깎아놓은 작품을 보면 굉장히 역동적이에요. 그건 솔직히 타고난 감각이 아니면 훈련으로 되기 어려운 부분이거든요.”
조소 선생은 투시와 입체 감각이 타고났다며 혀를 내둘렀다.
“회화야 뭐,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이번 전시회 때 다들 보셨잖아요. 아크릴이랑 유화로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솔직히 그게 고등학생의 실력입니까. 그 제임스 리가 인정할 정도면 말 다 한 거죠.”
회화 선생은 자기가 감히 평가할 실력이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창의력은 어떻고요. 새로운 걸 배우면 순식간에 흡수해버리고 자기 주제에 응용해서 쉽게 그려버리더라고요. 사고가 유연하고 자유로워요.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나는 아이예요.”
뒤늦게 합류한 디자인 담당 김여진 선생도 군침을 흘렸다.
칭찬을 마친 네 선생은 잠시 서로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꼈다.
과연 누가 수현을 데려가게 될까? 팽팽한 신경전이 시작된 거다.
“근데 조소과엔 차윤희 학생도 있잖아요. 수현이랑 똑같이 A+를 받은 데다가 차수혁 작가님 딸인데 이번 기수 조소과는 아무래도 윤희가 접수하게 되지 않을까요?”
“흠. 동양화에도 최주희나 장민영 같은 기대주가 갈 것 같은데요?”
“그러는 서양화도 박준영 학생이 있지 않나요?”
“한 명으론 부족하죠. 디자인이야말로 박선화나 이주호 같은 애들이 영입될 가능성이 크잖아요. 그쪽은 해외 대학도 노려볼 만하겠던데.”
“이주호는 아니죠. 걘 디자인이랑은 전혀 안 맞는데요?”
다른 학생들을 뜬금없이 칭찬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다른 과엔 수현 말고도 좋은 학생들이 있으니 수현은 자기네 과로 양보해달라는 것.
뛰어난 학생을 끌어들여 성과를 내려는 경쟁이 벌써 치열해진 거다.
가장 눈을 빛내는 건 디자인과 김여진 선생이었다.
‘2학년에 올라 본격적인 입시에 들어서면 갑자기 실력이 훅 느는 애들도 생기지만, 수현이 같이 당첨이 분명한 로또를 놓칠 순 없지.’
김여진은 자신이 세현예고로 온 목적을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래도 수현이 의사가 먼저겠는데요.”
“그러게요. 한쪽에만 재능이 보인다면 모르겠는데, 네 선생님이 다 이렇게 극찬에 욕심을 내시니.”
소묘 지도를 맡은 김윤수 선생과 송민식 임시 과장 선생이 과열된 분위기를 식히려 허허 웃었다.
“그럼 수현이는 네 선생님 모두와 상담을 하게 하면 어떨까요? 사실 반 학기 수업으로 해당 전공의 매력을 전부 알긴 어렵잖아요.”
행여 수현이 한두 과목 상담만으로 전공을 정할까 우려한 김여진 선생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했고, 송민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머지 애들까지 얼른 정리하고 상담 순서를 정하도록 하죠.”
***
“올A? 그것도 전부 A+야?”
“뭐야, 진짜? 누가?”
“또 한수현이야?”
1학년 전공 수업 성적표를 배부받은 수요일 오전.
차윤희의 시원한 스포일러에 미술과 애들이 우르르 수현의 자리로 몰려들었다.
“와, 기운 빠져. 이건 뭐 의욕이 그냥 사라지네.”
“그러게. 한수현 넌 그냥 오늘부터 천상계 해라. 인간계에는 관심 끄고.”
“맞아. 우리는 2등 자리부터 박 터지게 싸울 테니까 가끔 불쌍한 중생들 위해서 기도도 해주고 팁이나 알려주고 그래.”
“왜들 이래. 그만 놀려.”
수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차윤희에게 슬쩍 눈을 흘겼다.
“일부러 말한 거 아니야. 네 쪽으로 가는데 성적표가 눈에 딱 들어오잖아. 근데 전 과목 다 A+? 이걸 어떻게 말 안 해? 어떻게 참아? 그냥 본능적으로 말이 튀어나온 거라니까?”
차윤희가 팔자 눈썹을 만들며 수현의 성적을 공개한 걸 사과했고 수현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1학년이잖아. 전공이라 해봐야 기본 수업이었고. 본격적인 건 시작도 안 했는데.”
“그래,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근데 수현이 넌 앞으로도 쭉 1등 할 것 같은 느낌이야. 하, 내가 이런 감은 또 틀린 적이 없거든.”
“어휴, 그래도 전공은 어차피 하나만 골라서 하는 거잖아. 한수현만 피해서 가면 승산 있는 거 아니야?”
“뭐래, 한수현 피한다고 네 성적이 저절로 올라가냐? 그리고 대학이 한 명만 뽑는 것도 아닌데 왜 오버야.”
“아, 몰라. 그냥 궁금해서 그래. 한수현 너 전공 뭘로 갈 거야?”
애들의 질문 공세에 수현이 어깨를 으쓱 올렸다.
“비밀.”
“에이, 뭐야. 너 회화로 갈 거지?”
“맞아. 전시회 때도 서양화로 했잖아. 꾸준히 그쪽에 관심 있었고.”
“아냐, 의외로 디자인일 수도 있어. 사실 졸업 후에 진로까지 고민해보면 디자인이 낫긴 하잖아.”
“맞아. 게다가 새로 온 디자인쌤이 한수현 엄청 예뻐했다며.”
농담처럼 던진 한마디에 애들이 또 화르르 불타오르며 떠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수현이 가만히 웃었다.
‘전공이야 이미 정해졌지.’
변수는 없었다.
전부터 수현이 갈증을 느꼈던 오직 서양화였으니까.
‘성적이 좀 의외긴 하지만.’
수현이 물끄러미 성적표를 내려다보았다.
예전에도 네 과목 다 좋은 점수를 받긴 했다. 그러나 동양화와 조소는 A-, 디자인은 B+, 서양화에서만 A+를 받았는데, 이번은 네 과목 모두 A+.
담임인 송민식 선생은 네 과목 점수가 동일하기 때문에 네 명의 선생님과 각각 전공 상담을 해야 할 거라고 귀띔해주었다.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여러 이야길 들어서 나쁠 건 없을 테니까.’
그렇게 수현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상담을 준비했다.
네 명의 선생님들이 얼마나 전투적으로 상담을 준비할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
“힘드니?”
오후 5시.
조소와 동양화 선생과의 면담을 끝낸 수현이 디자인과 상담실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아, 아니에요. 재미있었어요.”
수현이 활짝 웃으며 김여진 선생 맞은편에 놓인 빈 의자에 앉았다.
“그래. 다 좋은 분들이고, 어느 전공이나 흥미로운 부분이 있으니까.”
김여진이 수현의 얼굴을 빤히 보며 말했다.
“수현인 목적이 뭐니?”
“네?”
“그림을 그리는 목적 말이야. 미술을 하게 된 계기도 좋고, 앞으로 하고 싶은 미술이 어떤 건지도 좋고. 한 번 편하게 말해볼래?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됐고, 왜 그리고 싶은지.”
“아. 그림은 그냥 자연스럽게 그렸던 것 같아요. 어릴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림을 그리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갔거든요. 재밌기도 했고요.”
“음, 그래.”
“익숙해지면서 칭찬도 받고, 어쨌든 그리는 게 즐거웠어요. 가장 흥미로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거기까진 편하게 털어놓은 수현이 입을 다물었다.
과거는 몰라도 앞으로의 목적은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다.
이미 한 번의 인생을 살았고, 그림을 포기하면서 느꼈던 절망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이번엔 나만의 그림을 빼앗기지 않고 끝까지 그려내고 싶어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도전해보고 싶어서란 얘길 할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런데 수현의 머뭇거림을 김여진은 다른 의미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아직 먼 미래라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리긴 이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뭐, 당연해. 지금은 그저 그리는 게 즐겁고, 칭찬받는 게 기쁘고, 한 단계 한 단계 성취하며 느껴지는 보람에 가슴이 벅차오를 나이거든. 고등학생이잖아. 그것도 1학년.”
김여진이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슬슬 이런 고민을 시작할 때이기도 해. 특히 수현이, 너 같은 재능을 가진 애들은 말이야.”
김여진이 책상에 몸을 기대며 수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다른 선생님들과 무슨 얘길 나눴는진 모르겠지만 난 오늘 입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을 거야. 대신 수현이 네가 가게 될 미래, 예술가로서의 장래에 대해 말하고 싶어. 너한테 정말 도움이 될 이야길 해줄 생각이거든.”
삼킬 듯 반짝이는 눈. 그 기세에 눌린 수현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