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60)
60화. 공작(2)
김하영이 간과한 첫 번째 문제는 민심.
“드레스코드가 뭐야?”
미술과 실기동으로 향하던 2학년 여자애들 셋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색깔을 맞춰서 입고 오란 거지?”
“맞아. 베이지랑 핑크라고 했잖아. 그 색깔 옷만 입어야 한다는 거 같은데?”
“우리 토요일에 교복 입고 학교 오잖아. 마치고는 바로 김하영 집에 갈 거고. 어떻게 갈아입으라고?”
“옷을 미리 준비해 가지고 오면 갈아입게 해준대.”
“하, 복잡하네. 귀찮게.”
“그러게 말이야.”
입을 삐죽이는 애들.
처음엔 무려 진한우유 회장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는 사실에 들떴으나 며칠 지나자 슬슬 귀찮은 감정이 들었다.
파티 초대장에 적힌 요구사항이 꽤 까다로웠던 거다.
“선물도 준비해야 한다며?”
“어, 무슨 마니또 같은 걸 한다던데?”
“10만 원 미만은 안 된다고 했지?”
“왜?”
“선물들 한데 모아놓고 뽑기로 하나씩 가져가게 할 건데, 비싼 거랑 싼 거 섞이면 짜증 난다고 무조건 10만 원 이상으로 맞추라고 하던데?”
“뭐야…….”
다른 쪽에선 또 다른 애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럼 결국 내 돈 주고 내 선물 사는 거랑 다를 게 없는 거 아냐?”
“그건 아니래.”
“왜?”
“김하영이 그날 초대받은 애들한테 줄 선물을 따로 준비했다더라고.”
“그래?”
“선물이 뭔데?”
“그것까진 몰라. 이주호가 아까 말해줬어. 걔 김하영이랑 단짝이잖아. 없는 소리 한 건 아니겠지.”
“흐음. 그렇다고 해도.”
“솔직히 귀찮긴 하다.”
애초에 너무 많은 인원을 초대한 것도 문제였다.
“부담스러워.”
“옷도 사야 해?”
“난 핑크색 옷 태어나서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데.”
세현예고에 다닐 정도니 대부분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애들이긴 했지만 몇몇은 비교적 평범했고, 또 집이 부자라고 씀씀이가 다 화통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김하영의 비밀 파티에 기대를 품고 열심인 건 성향에 맞는 10명 남짓 애들이 전부였고, 나머지는 부담, 귀찮음, 껄끄러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김하영이 간과한 두 번째 문제는 2학년 3반에 있었다.
“1반 애들 웃기더라?”
몸에 쫙 달라붙게 수선한 교복을 입고 다리를 꼬고 앉은 오유나가 자신을 둘러싼 애들에게 들으란 듯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왜? 무슨 일 있음?”
“아니, 1반에 김하영 있잖아.”
오유나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걔가 이번 주 토요일에 지네 반 애들을 집으로 초대한다던데?”
“김하영이?”
“어, 1반 애들만 특별히 초대한대. 무슨 드레스 코드가 있고, 선물을 준비해가야 하고, 기념품 같은 걸 주고 할 거라고.”
“허, 진짜?”
애들이 오유나의 눈치를 보며 반응했다.
오유나.
연예인처럼 예쁜 얼굴에 끼도 많아 미술과보단 연영과 쪽이 더 어울려 보이는 아이였다.
실제로 오유나는 연영과 진학을 더 원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얌전히 미술과에 진학한 케이스였다.
한성모터스 오너 후계자 오양호의 셋째 딸, 집안으로 따지면 세현예고 전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재력.
다만, 원치 않은 진로를 선택했기 때문이었을까. 학교 일에 큰 관심이 없고 학업에도 대충이라 성적은 들쑥날쑥했다.
머리는 좋은 편이지만 의지가 없는 데다가 어차피 지옥 같은 한국 입시를 거쳐 명문대에 들어갈 생각도 없었던 거다.
졸업과 동시에 미국이든 유럽이든 유학을 떠날 계획이니 성적 관리는 늘 뒷전이었다. 성적순으로 배치되는 이번 학년에 3반에 들어오게 된 것도 당연했다.
어쨌거나 여태 학교 일에 시큰둥하던 오유나가 웬일로 1반 애들의 초관심사인 김하영의 파티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오유나를 추종하는 다른 애들도 덩달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무슨 편 가르기도 아니고, 같은 미술과 안에서 1반 애들만 모여서 노는 거 좀 웃기지 않냐?”
눈치 빠른 애 하나가 오유나의 심기를 건드렸을 만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냈다.
오유나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자 다른 애들도 경쟁적으로 나섰다.
“김하영 나대는 거 좀 심하긴 하지. 솔직히 진짜 주인공은 우리 오유나인데.”
“맞아. 세현예고 얼짱에 집안 좋아, 성격 좋아, 머리 좋아. 우리 유나 아이큐도 140이잖아. 방학 전엔 연예인 기획사에서도 막 찾아오고 그랬고. 솔직히 파티를 주최하려면 김하영 같은 애가 아니라 우리 유나가 해야 하는 거 아냐?”
“맞아. 격이 있고 급이 있지.”
애들의 칭찬과 아부를 천천히 즐긴 오유나가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파티가 나쁘다는 게 아냐. 그냥 다들 힘들게 공부하고 그림 그리고 열심히 사는데, 성적으로 나누고 왕따시키는 게 좀 어이없어서 그렇지.”
“……왕따?”
“그, 그래! 감히 김하영 따위가 말이야.”
애들이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김하영이 오유나 같은 거물을 따돌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하영은 오유나가 손만 내밀어준다면 언제든 달려올 마음이 있었고.
그건 오유나도 다른 애들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다만, 오유나가 ‘왕따’라는 민감한 단어를 입에 올리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건 이유를 차치하고 김하영이 교내 정치를 하려 나섰기 때문이었다.
학교 성적, 실기 따위야 누가 1등을 하건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인맥을 과시하고 그 중심에 서는 역할은 달랐다.
어딜 가든 사교계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되어야 하는데, 김하영이 감히 그 선을 흔든 거다.
‘얘가 분수를 모르네? 같은 학교 다니니까 같이 놀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오유나가 피식 웃으며 코웃음 쳤다.
“어쨌든 말은 한번 해봐야겠지?”
오유나가 팔짱을 끼며 몸을 책상 의자에 편안하게 기대자, 추종자들이 차에 장식하는 강아지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같이 가줄까?”
“그니까. 말만 해. 뭐, 도와줄 일은 없어?”
“아우. 생각하니까 1반, 진짜 짜증 나네?”
재잘거리며 어떻게든 오유나의 눈에 들려는 아이들.
그런 애들을 유나가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정말 고마워, 얘들아. 우선은 내가 좋게 이야긴 해볼게.”
오유나가 햇살처럼 환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그리고, 김하영이 간과한 마지막, 세 번째 문제는 공격 대상이 한수현이란 점이었다.
“수현, 우리 토욜에 뭐해?”
쉬는 시간. 박선화가 수현의 앞자리에 와 칭얼대듯 말했다.
“토욜에? 글쎄?”
“글쎄? 글쎄에?”
박선화가 토끼 눈을 하더니 차윤희를 불렀다.
“야, 차윤희 이리 좀 와봐.”
“아, 왜에.”
“한수현, 한수현 좀 봐.”
“수현이가 왜?”
“얘, 토요일에 아무 계획이 없나봐.”
“헐.”
차윤희가 나라 잃은 허망한 표정으로 수현을 바라보았다.
“뭐야, 나 완전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
“그날 생파하는 거 아니었어?”
“아, 그래?”
당황하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셋.
“하하. 뭐 어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지. 그럼 우리 토요일에 생일 파티 제대로 하자.”
“그래그래. 피자 먹으러 갈까? 나 샐러드바 이용하면 그릇에 샐러드 산처럼 쌓는 거 보여줄 수 있어. 그거 진짜 잘하거든.”
“오, 개인기 나오나요?”
박선화와 차윤희가 즉석에서 생일 파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걸 본 수현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 계획이 없는 건 아냐. 기다리고 있는 소식이 있어서 그래.”
“소식?”
“뭔데?”
다시 기대를 부풀리며 수현을 바라보는 둘. 그러나 수현의 입에선 뜻밖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정원동 벽화 봉사하러 가려고 신청해뒀는데, 아직 답이 안 와서. 아마 오늘쯤은 답이 올 거 같거든.”
“어? 벽화?”
“봉사라고?”
생일날 벽화 봉사 계획을 잡아놨다니 쭈욱 힘이 빠지는 소식이었다.
“아니, 벽화는 왜?”
박선화가 뾰로통한 얼굴로 따지듯 물었다.
세현예고에 와서 가장 친해진 친구. 수현과 단짝이 되고 처음으로 함께하는 생일이었다.
근데 파티는커녕 따로 봉사활동을 떠나기로 준비하고 있었다니 실망스럽기도 아쉽기도 했던 것.
“실은 영국에서 했던 게 생각나서 말이야. 한국에 오니까 근질근질하더라고.”
수현이 싱긋 웃으며 설명했다.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스티브도 그렇다고 했거든. 스티브도 영국에서 벽화 그린 게 무척 기억에 남고 즐거웠다고.”
“흐응. 그럴 수 있지.”
“어. 그래서 스티브가 알아봤나 봐.”
“뭘?”
“합법적으로 벽화를 그릴 수 있는 방법? 어떻게 알아본 건지는 모르겠는데 정원동에 벽화 봉사자를 모집한다면서 거기에 가자고 하더라고.”
“잠깐.”
이야기를 듣던 박선화가 한쪽 손을 들더니 수현의 말을 멈추었다.
“그러니까, 이 일의 원흉이 스티브란 거네?”
“어?”
“와, 이 음흉한 자식. 그러니까 네 생일날 너를 독차지 하려고, 벽화 데이트 같은 걸 기획한 거잖아?”
“어? 그건 아닐걸?”
“아니긴 뭐가 아니야. 와, 스티브. 내가 진짜 이 자식을 가만두나 봐라.”
박선화가 씩씩댔고, 차윤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콧김을 뿜었다.
“아이, 그런 거 아니야. 스티브는 내 생일이 언젠지도 모를 텐데.”
수현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지만, 둘의 생각은 달랐다.
“하. 우리 수현이 이렇게 순진해서 앞으로 험한 세상 어떻게 살지?”
“수현아. 우리 영국 갔을 때, 티켓 끊고 할 때, 스티브가 몇 번 여권 가져갔었잖아. 걔가 그때 네 생일을 쓱 본 거야.”
“어?”
“하, 얘가 이렇게 남자를 몰라요. 진짜 미치겠다.”
두 친구가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가며 고개를 저었고, 수현은 이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어?”
“벽화 봉사 말이야. 허락이 떨어지면 너희도 같이 가면 어때?”
“어? 우리도?”
“너희도 우리 연습할 때 몇 번 같이 해봤잖아. 그거 엄청 재밌어. 이번에 제대로 해보자. 날도 제법 따뜻해져서 고생도 덜할 거야.”
“어? 벽화를? 그러니까 우리까지 같이 그리자고?”
“왜? 싫어?”
머릿속에 그리던 생일파티는 아니었다. 그러나 수현의 얘길 듣다보니 이것도 의미있고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싫긴. 함께 하는 건 무조건 좋지.”
“그래. 그럼 같이 가자. 대신 저녁엔 엄청 맛있는 거 먹어야 해. 생일 마무리는 제대로 해야지.”
“좋아, 그렇게 하자.”
수현이 활짝 웃자 친구들도 배시시 미소를 띠었다.
‘생일이 무슨 큰일이라고.’
수현이 그런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제나 조용하게 지나간 생일이었다. 3월 11일. 아이들이 서먹한 학기 초이기도 했고, 마땅히 부를 친구도 없었고, 생일 파티를 열어줄 엄마도 없었으니까.
그나마 단짝인 차윤희가 선물이며 작은 파티를 열어주긴 했지만, 평소보다 조금 맛있는 밥을 먹는 정도였다.
그게 버릇이 돼 이번 생일도 별생각 없이 넘기려 했는데 애들의 저항이 이렇게 격렬할 줄은 몰랐다.
‘여튼 재밌었으면 좋겠네.’
싱긋 웃는 수현.
이처럼 생일이나 파티 같은 데 아무 관심이 없는 수현이었으니, 자기 생일에 맞춰 파티를 연 김하영의 계략 같은 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수현의 완벽한 무관심 속에서 김하영은 부지런히 파티 준비를 했고, 김하영이 간과한 나머지 두 문제가 차츰 고개를 치켜들며 계획에 제동을 걸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