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62)
62화. 어긋난다는 것(2)
“어?”
수현이 조금 놀라며 말했다.
“내가 한수현인데?”
“오, 너구나! 맞다! 너 복도에서 몇 번 봤다.”
호들갑을 떨며 1반 교실을 밀고 들어오는 아이들.
3반의 오유나와 친구들이었다.
“근데, 나는 왜?”
오유나와 수현은 과거에도, 돌아온 후에도 아무 접점이 없었다.
간단한 인사조차 나눈 일이 없는데 불쑥 친근한 얼굴로 찾아오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수현은 얼른 감이 잡히지 않았다.
“너 오늘 생일이라며?”
“어?”
오유나는 대답을 들으려던 질문이 아니었는지 같이 온 애들한테 눈짓했다.
순식간에 애들이 수현을 둘러싸더니 손뼉을 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한수현. 생일 축하합니다.”
언제 준비했는지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케이크까지 들고 선 애들.
와아아아-.
노래를 마친 애들이 다시 손뼉을 치며 환호했고 오유나가 활짝 웃었다.
“불어.”
“어?”
“촛불 불라구. 소원도 빌고.”
해맑게 웃는 표정인데 왜 해로워 보이는 걸까.
수현은 살짝 뒷걸음질 쳤으나,
후우우-.
일단은 분위기에 맞춰 촛불을 끄고 봤다.
“너네 뭔데?”
황당하게 지켜보던 박선화가 대뜸 끼어들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데?”
“왜? 오늘 한수현 생일 아니야?”
“아니, 그건 맞는데. 너희가 왜…….”
왜 끼어들어? 왜 난리야? 왜 생색이야? 왜 친한 척이야?
마땅한 뒷말을 고르지 못한 박선화가 고개만 갸웃거렸다.
“에이, 다 같은 과 친군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우리 1학년 때도 애들 생일 서로 다 챙겨줬잖아. 2학년 됐다고 갑자기 쌩까고 그러면 웃기는 거지. 안 그래, 친구야?”
오유나가 반죽 좋게 다가오더니 수현의 어깨에 한쪽 팔을 걸쳤다.
수군수군.
동시에 1반 애들이 동요했다.
“뭐야, 오유나랑 한수현이 친했어?”
“대박. 한수현 그랑프리 타고 신분 상승한 건가?”
“어?”
“오유나가 아무나랑 친하게 지내지 않잖아. 쟤 완전 공주님인데, 먼저 나서는 거 처음 본 것 같은데?”
“그렇긴 하네. 생일 파티까지. 헐, 잠깐만. 저건 선물이야?”
웅성거리는 애들의 말을 못 들은 척 은은한 미소를 짓던 오유나가 이번엔 들고 온 쇼핑백을 척, 내밀었다.
“뭐야?”
“생일선물!”
“어?”
“부담 갖지 말고 받아. 나도 다음 달에 생일이다?”
“아, 그래.”
수현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으나, 오유나의 돌발행동이 1반 애들을 흔들고 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생일 파티는 언제 해?”
그리고, 선물까지 건넨 오유나는 생일 파티에 참가할 충분한 자격을 얻었다는 듯, 수현의 스케줄을 물었다.
“어, 글쎄. 특별히 뭘 준비한 건 아니라서.”
“흐음. 설마 끼워주기 싫은 건 아니지?”
“어?”
살짝 슬픈 얼굴을 하는 오유나를 보며 수현이 화들짝 놀랐다.
“아, 우리 지금은 바빠. 어디 좀 가야 해.”
보다 못한 박선화가 한 번 더 나섰고,
“어. 우리 그림 그리러 가. 봉사활동으로 벽화 그리기 할 거거든. 생파는 저녁에 따로 할 거고.”
차윤희가 차라리 잘됐단 얼굴로 오늘의 계획을 밝혔다.
차윤희는 며칠 전, 수현의 생일에 맞춰 김하영이 파티를 열기로 했고, 자신을 비롯 수현과 박선화를 제외한 모두에게 초대장을 돌린 사실을 알았다.
고의성이 의심되는 이벤트에 화르르 열을 냈는데, 정작 당사자인 수현은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는 데다가 벽화 그리기에 진심으로 보여 참고 있던 차였다.
근데, 이렇게라도 수현의 생일이 밝혀졌으니, 비겁한 반 애들에게 들으란 듯 큰 목소리로 우리도 계획 있다, 훨씬 재밌을 거다, 하는 말을 휙 던진 것이었다.
그리고 오유나는 그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호들갑을 떨었다.
“와! 벽화 그리기? 진짜 재밌겠다. 나 그거 해보고 싶었는데, 나도 끼워주면 안 돼?”
“어?”
이번엔 박선화와 차윤희도 놀란 얼굴이었다.
“페인트랑 스프레이가 많이 묻을 거야. 교복 차림으론 어려울걸?”
그사이 조금 냉정을 찾은 수현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도 교복 차림이잖아.”
“우린 따로 여벌 옷을 준비했어.”
“흐음. 괜찮아. 교복이야 또 사면 되니까.”
그리고 오유나는 수현의 만류를 들을 생각이 없는 얼굴로 아예 수현의 팔짱을 끼었다.
“그래도, 점심은 먹고 갈 거지? 아, 장소는 어디야?”
이거 아무래도 무슨 일이 말리는 기분인데. 뭐, 나랑은 상관없겠지.
수현이 보기 좋게 일그러지는 김하영의 얼굴에 잠깐 시선을 주었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정원동. 152번 버스 타고 도서관 앞에서 내리면 돼. 점심은 간단히 먹고 출발할 거야.”
“오오. 그렇구나. 정원동? 정원동 도서관 앞이란 거지?”
“어.”
수상하게 장소를 큰 목소리로 되뇌이는 오유나를 보며 수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수현이 먼저 교실을 나섰고, 박선화와 차윤희, 그리고 오유나와 그녀의 추종자들이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왔다.
“하아.”
오유나가 사라진 후, 김하영의 얼굴은 흙빛이 됐다.
‘오유나 뭐야? 토요일에 선약이 있다더니 거짓말을 한 거야? 아니, 선약이라는 게 한수현네 붙을 거란 얘기였어? 아닌데, 한수현이나 차윤희, 박선화. 다 몰랐던 일처럼 굴었는데? 오유나가 제멋대로 군 건가? 아니면 이것들이 단체로 연기라도 한 건가?’
황당하게 펼쳐진 뜻밖의 상황에 펼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떠올렸으나 이거다 싶은 답은 보이지 않았다.
잘근잘근 손톱을 씹는 김하영.
“이게 무슨 일이야?”
“김하영, 너 오유나랑 무슨 일 있었어?”
그리고 눈치 빠른 애들, 그중에서도 김하영을 중심으로 몰려다닌 장민영, 이주호, 최주희가 유독 불안한 눈빛을 보였다.
“일은 무슨 일.”
“이상하잖아. 오유나가 갑자기 왜 저러는데?”
“맞아. 언제 한수현이랑 친해져서 생일까지 챙기는 거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빽 소리를 지른 김하영.
그러나 일이 이렇게 흘러가게 둬선 안 된다는 강렬한 직감 때문이었을까.
드르륵.
의자에서 일어난 김하영이 빠르게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
“유나야! 오유나아아!”
수현과 박선화, 차윤희 그리고 오유나의 무리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을 때, 숨이 턱까지 찬 다급한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왔다.
“뭐야?”
“유나, 널 부르는데?”
힐끔거리며 뒤를 돌아보는 애들. 그러나 오유나는 전혀 들리지 않는단 얼굴로 하던 얘길 재잘대고 있었다.
“그러니까, 영화 극장 간판 같은 거로 생각하면 되는 거야? 벽화 그리기라니 뭔가 낭만있다. 너흰 어떻게 그런 걸 생각했어?”
“아, 사실 겨울 방학에 런던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만난 애들이 알려줬어.”
“오오. 런던 친구들. 어떤 애들이었는데?”
이제는 수현도 슬쩍 뒤가 신경 쓰이는 얼굴을 했다.
들리지 않을 리가 없는 목소린데, 오유나 얘는 대체 뭐지?
그러자 오유나가 한번 더 활짝 웃으며 수현에게 말했다.
“잠깐만, 수현아.”
헉헉.
그사이 오유나가 있는 곳까지 달려온 김하영.
오유나가 걸음을 멈춰 세우자 조금 안도한 얼굴로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왔다.
“왜?”
그리고 해맑은 얼굴로 싱글거리는 오유나.
“저, 유나야. 잠깐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잠깐? 뭐, 그래. 뭔데?”
“저기, 조금만 저쪽으로 가서…….”
한수현과 다른 애들의 시선을 느낀 김하영이 부탁했으나,
“잠깐이면 된다며.”
오유나는 여전히 싱글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여기서 말해. 우리 바빠.”
“하아.”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뱉은 김하영이 다시 표정을 관리하며 물었다.
“저, 유나야.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응? 뭐가?”
“아니, 내가 파티에 초대했을 땐 선약이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한수현이랑 어딜 간다고 하니까. 무슨 일인가 해서 말이야. 혹시 내가 네 기분을 상하게 한 일이 있을까?”
“아니? 그런 거 없는데?”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오유나가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자 김하영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 하하. 그래. 난 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해서 말이야.”
“응. 없어. 그런 거. 그럼 우리 이제 가봐도 되는 거지?”
“아니, 유나야.”
다시 돌아서려는 오유나를 김하영이 붙잡았다.
“저, 별일 없으면 그냥 너 우리 집으로 오는 건 어때?”
“뭐?”
“난 선약이 있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선약이 취소된 거지? 에이, 그럼 말을 해주지 그랬어. 내가 혹시 몰라서 의상이랑 이거저거 다 준비해뒀어. 넌 그냥 몸만 오면 돼.”
비굴할 정도로 오유나에게 매달리는 김하영. 그냥 지켜보는 게 민망하고 괴로울 지경이었다.
“하영아.”
상황을 말끔하게 정리한 건 오유나였다.
“어?”
“너, 전부터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내가? 뭘?”
“나는 네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어?”
강렬한 어퍼컷을 맞은 김하영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난 오늘 어렵게 수현이란 친구랑 친해졌고, 벽화 그리기에 같이 가도 된다는 허락도 정말 어렵게 받았어. 근데, 왜 네가 그걸 망치려고 하는 거야?”
“아니, 유나야. 난 그런 뜻이 아니라.”
“흐음. 전부터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하는데, 너 말이야. 오해할 행동을 안 할 자신이 생길 때까지 내 앞에 좀 안 나타나는 건 어때?”
싱글싱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오유나. 결국 김하영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미, 미안해.”
“어? 뭐가?”
“본의 아니게 자꾸 네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한 것 같아서. 근데 진짜 진심이 아니야. 유나야.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음. 하영아. 내가 충고 하나 해도 될까?”
고개를 푹 숙인 김하영의 얼굴에 오유나가 목을 쭉 빼며 가까이 다가갔다.
“어…….”
“나대지 마.”
“어?”
“나대지 말라고.”
“…….”
김하영의 목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수치심에 붉게 물든 목덜미만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을 뿐.
‘대박.’
살벌한 오유나의 행동에 놀란 것도 잠시.
‘김하영, 이런 꼴을 다 보네.’
수현이 덤덤하게 김하영을 바라보았다.
“야,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딨니? 돈으로 안 되는 게 아니라 돈이 부족해서 안 되는 일인 거지. 그냥 돈 좀 더 주면 안 될 게 없어. 자본주의 사회가 그래.”
동창회에 나타나 열심히 사는 동기들을 딱하다는 듯 바라보던 김하영.
‘그땐 무서울 게 하나도 없다는 듯 안하무인으로 굴더니, 너도 무서운 게 있긴 있었구나.’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해도 자기보다 강한 존재 앞에선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는 김하영을 보며 수현은 조금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저, 김하영. 미안한데 내가 일이 좀 생겨서.”
“뭐?”
“나도 집에서 오늘 빨리 들어오라고 해서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아.”
“미안. 우리 먼저 갈게.”
교실을 박차고 뛰어나간 김하영을 쫓아왔던 장민영, 이주호가 누구보다 빠른 손절을 하며 슬금슬금 김하영에게 거리를 뒀다.
“너희 지금 뭐하는 거야?”
“어?”
“지금 장난해?”
“야, 김하영. 너 왜 화를 내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갈 수도 있는 거지.”
“맞아. 우리가 무슨 니 꼬붕이야?”
“하, 너네 미쳤어?”
“야, 미친 건 너 아니야?”
저희끼리 물고 뜯기 시작하는 애들을 보며 오유나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더니 다시 한수현의 팔짱을 끼었다.
“우리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지?”
살짝 기막힌 얼굴을 하는 수현의 등을 박선화와 차윤희가 스윽 밀었다.
“일단은 벗어나자.”
“그래. 가서 얘기하자. 사람 몰린다.”
“그, 그래.”
수현이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교문을 향해 걸었다.
그러나 수현의 생일에 터질 서프라이즈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